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조회 수 : 2241
2014.01.31 (18:11:49)

창세기 묵상(83)/사복음서 묵상(108) – 창세기 1-2장의 신학과 신앙 세계

성경과 신학을 가능한 한 최소로 축소시킨다면 무엇이 남을까란 글(http://blog.naver.com/rassvet/40204809999)을 이미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세기 1-2장이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조주 하나님이 하늘과 땅, 그 가운데 만물과 인간을 창조했다. 창조 기사의 주역들은 창조주 하나님, 자연과 인간이다.

성경의 많은 가르침들과 아주 복잡한 신학 체계를 넷 창조주 하나님, , 이웃과 자연 - 으로 결국 줄일 수 있다. 마찬 가지로 신앙 삶의 내용도 나와 창조주와의 관계(종교적/신앙적),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영적/인격적), 나와 이웃과의 관계(사회적/윤리적)와 나와 자연과의 관계(자연적/물질적)로 구성된다.

신앙 삶은 근본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때문에 를 중심으로 4가지 관계들이 나타난다. 물론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근본적이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없었다면 나를 비롯한 인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인으로서 끝까지 계속 일할 것이다(11:36).  그러므로 창조주를 부인한다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는다.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는 속사람인 인격의 성숙과 관계된다. 개인 인격의 성숙 정도가 대신(對神) 관계, 대인(對人) 관계 그리고 대물(對物)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성경은 자연스럽게 개인 인격의 성숙에 대해 많이 기록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만 아니라 하와도 창조했다. 나 이외 다른 인격과의 관계도 또한 중요하다. 성경에 윤리적 관계에 대한 가르침들이 많은 이유이다.

그리고 대자연과의 관계도 있다.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서 가장 무시되는 관계이다.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물질 세계를 불결하게 본다. 그러나 히브리인의 사고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히브리 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최고의 신으로 믿는다. 이들에 따르면 창조주는 물질 세계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내재한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는 인류 사회가 활동하는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구성하는 4가지의 관계들은 마치 하나의 몸과 같이 분리될 수 없다. 이를 안 다윗이 말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29:11)  머리란 단어는 몸을 전제한다.

4
가지 관계로 구성된 우주는 하나의 몸과 같고 창조주 하나님은 그 몸의 머리이다. 대신(
對神) 관계가 가장 근본적이지만 이 관계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성경의 창조 기사는 이들을 유기적 관계에서 살피라고 말한다. 성경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은 그가 우주의 머리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의 몸인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도 통치한다고 증언한다.

성경의 창조 신학은 종교, 인간의 실존, 사회와 자연을 하나의 세계로 보라고 가르친다. 이들을 부분적으로 보고 문제의 답을 찾으려 하면 불가능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달리 말한다면 유일한 창조주를 믿는 종교를 무시하고 인류 사회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에 대한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성경은 주장한다. 종교에 치우쳐 다른 것들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잘못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은 타락 사건 때문에 한 몸을 구성하는 4가지 관계들이 망가졌다고 기록한다. 창조주와의 관계가 깨지고(3:9-10, 24), 인격적 분열 현상이 나타났고(3:5, 7), 부부 사이에도 갈등과 분열이 생겼고(3:12-13, 16) 그리고 자연도 인간에게 순종하지 않았다(3:17-19).

하나님은 즉시 깨어진 관계를 복구시키기 위해 메시아를 통한 구속을 약속했다(3:15). 그러나 교회와 기독교 신학은 헬라의 이원론적 철학의 영향을 받아 타락한 세상을 죄악시했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기독교는 인류와 세상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했다. 현실도피적 신학과 신앙이 한 동안 기독교를 지배했다.

그 결과 기독교 신학에서 윤리가 거의 무시되었고 오늘날 인류 사회가 봉착한 생태학적 문제에 대해 어떤 해석이나 평가 그리고 아무 답도 줄 수 없게 되었다. 창조 신학이 무시된 불행한 결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기독교 신학은 창조 신학에 바탕을 두고 신학을 재정립함과 아울러 기독교 윤리도 세워야 한다.

여기 윤리란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 관계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생육하고 번성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인류의 번성과 자연의 통치를 함께 명령한 이유였다(1:28). 그리고 자연 통치의 결과 나온 부산물들의 분배 문제는 정치, 경제와 사회 분야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해 신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성격과 목적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창조 신학에 바탕을 둔 기독교 윤리로 무장한 신자들의 수를 늘리고 그들로 하여금 가정, 직장, 사회 그리고 나라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함으로 가능하다. 승천 전 예수님이 명한 선교 사명(28:18-20)은 이 점에서 너무나 탁월하며 위대하다. 선교 사명이 명하는 복음 전파의 목적은 세례를 주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자의 수가 증가한다면 민족과 나라별로 사회 안에 눈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이로써 주의 이름이 만방에 드높여질 것이다(4:5-8).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http://blog.naver.com/rassvet/40205465474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53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6)
장창수
2714 2014-03-01
152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5)
장창수
2247 2014-03-01
151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4)
장창수
2554 2014-02-27
150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3)
장창수
2361 2014-02-27
149 하나님의 영과 그 역사하심이 따로 분리 된 유령의 세계가 아닌 증거들 1
박인철
2586 2014-02-25
148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2)
장창수
2450 2014-02-25
147 창조 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1)
장창수
2435 2014-02-25
146 구속과 구원의 목표
장창수
2955 2014-02-21
145 성경의 하녀인 신학
장창수
2293 2014-02-21
144 예수와 사도들 사이 교리적 차이
장창수
2409 2014-02-21
143 하나님의 영은 머리 셋 달린 떠도는 유령이 아니다.
박인철
2756 2014-02-20
142 칭의와 성화 사이 관계
장창수
2637 2014-02-18
141 하나님 나라와 교회
장창수
2588 2014-02-14
140 신앙, 윤리와 과학
장창수
2335 2014-02-09
139 현실 참여와 현실 도피
장창수
2529 2014-02-09
138 조직신학의 구조적 문제
장창수
2741 2014-02-07
137 예수님을 다시 배우자!
장창수
2362 2014-02-05
136 치유와 회복의 고백 시
이상록
2447 2014-02-03
135 시험의 이중성
장창수
2174 2014-01-31
Selected 창세기 1-2장의 신학과 신앙 세계
장창수
2241 2014-01-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