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조회 수 : 2361
2014.02.05 (05:49:05)

사복음서 묵상(115)  예수님을 다시 배우자!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예수님에 대한 신학적 지식은 풍부한데 반해 예수님처럼 사는 신자들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에 대한 기독론적 지식은 풍부한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수행하는 자세, 방법과 목표에 대해선 잘 모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도 과정보다 결과만 중요하게 본다. 교회에 은연중 성공과 영광만이 회자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을 중요시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5-11)

기독교 신학은 부활과 승귀 그리고 영광스런 재림을 잘 증언하지만 이를 얻기 위해 예수님이 보여야 했던 자기비하 또는 자기부정은 아주 적게 증언한다. 구원이란 놀라운 결과만 보기 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드러내는 일에 아주 신중하거나 조심했다. 반면 기독교 신학은 부활한 영광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교회에 영광의 신학이 자리매김했고 목회자들은 영광의 그리스도의 종 즉 성직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신자들도 그의 영광스런 제자임을 기뻐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부활한 영광의 그리스도가 왜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내 만인의 영광을 받지 않고 그냥 승천했는지에 대해 전혀 묵상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영광을 추구하려는 이유이다. 이런 경향이 기독교를 타락시켰고 썩은 냄새를 풍기게 한다. 기독교 신학과 신앙 삶이 고난의 그리스도보다 영광의 그리스도로 치우친 결과이다. 이들 사이 균형은 이리도 중요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 하지만 그를 인격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출세하려 하지만 그를 인격적으로 배워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신앙 삶의 승패를 결정한다. 기독교 교회와 신학은 예수님의 사역보다 인격에 보다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 사역의 기초를 그의 인격에 둔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1-3)

히브리서는 신자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주온전케 하시는 이란 예수님이 구원 얻게 하는 믿음을 개척한 선구자로서 구원자이며 동시에 그 믿음을 완성시켜주는 주님이란 뜻이다. 개척자가 보인 삶과 본을 신자들이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를 참은 예수님처럼 신자들도 앞으로 받을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십자가의 고난을 참고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신앙인들이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기보다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신앙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받을 내생의 영광과 기쁨보다 금생의 영광과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

이 점에서 히브리서의 수신자인 교인들과 오늘날 신앙인들 사이 차이는 전혀 없다. 히브리 교인들도 신앙 때문에 오는 고난보다 세상의 즐거움을 택하길 원했다. 이 때 신자는 예수님의 본에 따라 앞으로 받을 즐거움을 위해 세상의 즐거움을 택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행위를 보인 신자들만 온전케 하는 이인 예수님이 영광에 이르게 도울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신학적 지식보다 그를 인격적으로 배우고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복음서가 신약 성경 맨 처음 자리한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로서 신자들을 위해 믿음의 개척자와 완성자의 삶을 살았다고 증언한다. 사도 요한이 말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신학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적 관점에서 아들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즉 예수님이 늘 따르려고 노력한 하나님의 경륜적 관점에서 사역의 내용을 살펴야 한다.  예수님이 12사도들을 부른 목적도 이를 잘 증언한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3:13-15) 사도들은 무엇보다 먼저 즉 사역을 시작하기 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를 인격적으로 배워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 했다.

기독교 신학은 결과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보다 그를 인격적으로 배우도록 신학 내용을 달리 해야 한다. 머리와 마음은 분리되어선 안 된다.  지식과 삶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복음서를 하나님의 경륜적 관점에서 다시 연구해야 한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신자들이 어떻게 신앙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믿음의 개척자요, 완성자이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ssvet/40205908141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53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6)
장창수
2713 2014-03-01
152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5)
장창수
2247 2014-03-01
151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4)
장창수
2554 2014-02-27
150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3)
장창수
2360 2014-02-27
149 하나님의 영과 그 역사하심이 따로 분리 된 유령의 세계가 아닌 증거들 1
박인철
2585 2014-02-25
148 창조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2)
장창수
2449 2014-02-25
147 창조 기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이다(1)
장창수
2434 2014-02-25
146 구속과 구원의 목표
장창수
2953 2014-02-21
145 성경의 하녀인 신학
장창수
2292 2014-02-21
144 예수와 사도들 사이 교리적 차이
장창수
2408 2014-02-21
143 하나님의 영은 머리 셋 달린 떠도는 유령이 아니다.
박인철
2756 2014-02-20
142 칭의와 성화 사이 관계
장창수
2633 2014-02-18
141 하나님 나라와 교회
장창수
2585 2014-02-14
140 신앙, 윤리와 과학
장창수
2332 2014-02-09
139 현실 참여와 현실 도피
장창수
2528 2014-02-09
138 조직신학의 구조적 문제
장창수
2741 2014-02-07
Selected 예수님을 다시 배우자!
장창수
2361 2014-02-05
136 치유와 회복의 고백 시
이상록
2447 2014-02-03
135 시험의 이중성
장창수
2172 2014-01-31
134 창세기 1-2장의 신학과 신앙 세계
장창수
2240 2014-01-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