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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5 (23:24:31)

사복음서 묵상(105)/창세기 묵상(80) – 하나님 나라와 신앙고백

사도행전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36)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5:42, 참조: 9:22, 17:3, 18:5, 28).

복음의 핵심은 인자 예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이라는 세 사건들에 배경을 두고 기록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구원자(Savior)와 동시에 주(
: Lord)로 소개된다.  로마서도 동의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놀라운 성구들이 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8:12)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28:31) 빌립 집사와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긴밀히 연결시켰다.

공생애를 시작하며 처음부터 예수님도 그랬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5)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중생의 관계를 자신의 대속 죽음과 연결시켜 예수님은 설명했다(3:1-15). 사도 요한도 마찬 가지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기까지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해 주었다(1:3). 죽음과 부활로 성취한 자신의 대속 사역이 하나님 나라와 밀접함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0일 뒤에 올 성령 강림을 예언했다(1:5). 성령은 중생케 하는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하게 할 것이다(1:12-13). 그렇게 120문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것이다(3:1-15).  이들이 바로 초대 교회를 구성했다(2).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복음과 신앙 고백을 이해해야 한다. 복음을 처음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Savior)로 영접하는 첫 신앙 고백은 칭의를 그리고 구세주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Lord)로 모시고 신뢰하며 사는 삶은 성화를 각각 가져온다.  이 때 칭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함(1:12)을 그러나 성화는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자라고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각각 뜻한다. 물론 영화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 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 됨을 뜻한다.

유감스럽지만 한국 신자들은 신앙론에서 이신칭의(
以信稱義)에 치우쳐 있다. 예수님을 구세주(Savior)로 신앙 고백함에는 아주 탁월하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주(Lord)로 고백함에는 지나치게 부족하다. 그 결과 한국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출생한 것만 기뻐하지만 성장을 멈추어버린 장애자가 된다. 외국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한국 교회의 문제로 한결같이 지적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구원론이 신자 개인의 존재론적 변화로 치우치며 공동체의 의미를 가진 객체 하나님 나라가 쉽게 무시되기 때문이다하나님 나라 시민 노릇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하나님 나라란 죽어서 비로서 들어가는 천국 또는 천당 정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전통 종교의 이원론과 기독교 교회를 지금까지 지배하는 핼라의 이원론 때문이다. 신학자와 목회자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불결한 속세에 세워질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내재적 그리고 현재적 실체로 본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5)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력이 미치는 곳에 이미 실재한다.

장소라는 구상적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라는 추상적 개념에 의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창세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한다. 다만 아담의 타락으로 죄인인 인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

여기 침노하는 자는 누구인가? ‘침노한다’라는 단어는 적극적이며 능동적 의미를 갖는다.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구세주로 신앙 고백한 후 그를 자신의 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적극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이 세상에 실현된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도 인류 사회에 자연스럽게 세워진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신앙고백은 반드시 두 면을 보여야 한다. 예수님을 구원자와 동시에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 둘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전자가 없고 후자만 있다면 자유주의나 현대신학의 사회 복음이 되고 후자가 없고 전자만 있다면 보수적 신학의 피안적 복음이 될 것이다. 이 둘은 합해져야 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성경적 신앙고백은 사회 복음을 절대로 지향하지 않는다. 복음이나 신앙고백은 인간 사회란 보이는 실체의 개혁이 아닌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실체인 영의 변화를 먼저 추구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인간에게 영(
)이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이다(2:7). 창조주와 구원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류 사회는 사단의 권세 아래 있어 근본적 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3).

기독교 교회가 정치 참여보다 복음 전파에 매진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구원은 인류 사회 전체가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다. 피택의 은총을 받은 무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자신의 통치 즉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한다. 이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이다(1:26-28). 그리고 구속(3:15)은 바로 이 목적을 복구시킴을 겨냥한다.

성경적 복음과 신앙고백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을 목표하기에 절대로 피안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물리적 변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들 영역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 영역 안에서 아담의 후손인 인류 사회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세상 나라 이외 하나님의 나라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새로운 인류에 의해 이 세상에 세워질 것이다. 이로써 서서히 인류 사회의 변혁이나 개혁을 꾀한다.

여기서 기독교는 세 파로 나뉜다. 현실 도피적 신앙을 보여주는 보수파, 인류 사회의 물리적 변혁을 꾀하려는 신앙을 보여주는 진보파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로 인류 사회의 물리적 변화를 장기적으로 겨냥하는 가칭 복음파. 지금까지 전자의 두 파들이 주류이지만 성경파의 출현이 기다려진다. 세째 파만이 인류 사회를 분열시키지 않고 살리고 발전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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