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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8 (05:08:38)

창세기 묵상(83)/사복음서 묵상(112) - 성경과 신학을 최대한 축소시킨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물론 신학과 신앙을 가능한 최대한 축소시킨다면 무엇이 남을까? 하나님과 인간이 남는다. 물론 더 줄인다면 영원히 자존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과의 교제를 위해 인격적 존재인 인간을 창조했다. 하나님도 홀로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교제는 관계 형성을 요한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 이 관계가 형성되었다(창1:26-28절).

결국 성경과 신학은 신과 인간 사이 관계라는 추상적 단어로 축소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 관계가 모든 성경의 가르침, 신학과 신앙의 근본이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은 창조주라면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 관계가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 신학의 근거이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이유이다
.

여기 창조주가 주인이라면 인간은 그의 종이다. 이 관계는 자연스럽게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경외, 경배와 순종을 하도록 요구한다. 주인 창조주의 뜻과 목적에 따라 종은 구체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 때 하나님은 약속을 조건으로 행위를 요구한다(창2:17절). 이를 언약이라고 한다. 신과 인간 사이 관계는 언약의 형태를 취한다.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이 영이라는 것이다
.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 관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다. 이 믿음이 부인된다면 창조주와 인간 사이 관계도 의미와 방향을 잃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한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그의 말씀을 믿고 삶 속에서 순종하는 형태를 취한다. 

믿음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 삶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믿음으로 그의 말씀인 언약을 지키는 것이 신앙 삶이다.
여기서 인간이란 인류를 뜻한다. 하나님과 나 사이란 주관적 관계가 하나님과 나 그리고 이웃 이라는 관계로 더 확장된다. 창조주와 나란 인격 사이 종교적/신앙적 관계가 사회적/윤리적 관계로 발전한다.

성경에서 종교와 사회 그리고 신앙(믿음)과 윤리(사랑)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성경의 가르침들은 결국 세 관계 - 하나님, 나란 인격과 이웃 에 집중된다
. 성경은 나란 인격이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대하는가에 대한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학과 신앙 삶도 또한 나란 주체가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대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때 란 주체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1:26-27)와 구속 행위(2:8-10) 덕분에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 받는다고 기독교 성경은 말한다
. 창조와 구속을 부인한다면 관계도 사라진다. 이들은 신과 인간 사이 관계를 존속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에는 목적이 있다. 인간의 참여로 하나님은 자신의 통치 즉 자신의 나라를 인류 사회에 건설하고 확장시키는 것이다(1:26-28).

이것은 창조주가 피조물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증명한다. 이 사랑만이 인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인류 사회는 하나님이 창조한 보이는 자연 세계에 세워진다. 자연은 인류가 사는 무대이자 곧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현장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 관계에 자연이라는 대상이 새롭게 추가된다. 신앙 삶의 내용과 범위도 좀 더 확대된다
. 하나님과 나 사이 둘만의 관계는 하나님, , 인류 사회 그리고 자연이란 4자 관계로 발전한다. 이에 따라 신학과 신앙의 내용과 성격도 이웃만 아니라 자연으로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만 주로 다루었다. 이젠 윤리와 사회 그리고 자연도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며 성경이 요구하는 바이다
. 사람들 사이 윤리학, 인간과 자연 사이 관계에서 파생되는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자연 자체를 연구하는 자연과학, 이들은 신앙 삶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종교적 관계만 아니라 이웃과의 수평적/사회적 관계와 자연과의 물리적/과학적 관계도 요구한다. 이렇게 믿음은 통전적이며 통섭적 성격을 띤다. 하나님, 인간과 자연은 유기적 관계를 갖는 하나의 몸과 같으며 그 몸의 머리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대상29:11
). 성경은 항상 이런 전제 아래 기록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에선 윤리는 물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배제된다. 성경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성경의 구속사는 세속사의 중심으로 인류의 구속에 대한 부분만 기록한다. 성경과 구속사는 인류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인류의 사회와 문화 영역에서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창조와 구속의 목표이다.

신학은 이를 지도해야 한다
. 이를 위해 기독교 신학은 신국론을 중심으로 기독교 윤리학을 세운 후 인문사화과학과 자연과학을 인도해야 한다. 이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구속한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다. 이제 기독교 신학은 그 영역을 확장시켜야 한다. 신학 안에만 머물지 말고 통섭적 연구 방법을 택해야 한다.


http://blog.naver.com/rassvet/4020480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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