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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6 (16:40:56)

사복음서 묵상(85)/기독교 신학을 생각한다(8) 두 종류의 구원론

구약 성경의 구원론은 장소의 이전으로 설명된다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애굽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떠났다(3:8). 이 결과 이스라엘은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유민이 되었다.  구약은 장소의 이전을 통한 신분의 변화라는 결과로 구원론을 설명한다. 장소라는 구체적 개념은 구약 시대의 구원을 실감나게 느끼게 만든다. 아주 효과적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구원론은 좀 다른 듯하다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사적 사건에서 장소의 이전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영적 신분의 변화만 언급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이 된다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또는 천국 백성이 된다. 이렇게 보면 신약 성경의 구원론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다.  존재론적 변화는 유감스럽지만 하나도 실감되지 않는다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

초기 기독교는 이원론적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보다 낮춰 보았고 육보다는 영, 땅보다는 하늘을 더 좋아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의 구원론은 한 쪽으로 심하게 치우쳤다. 육적 인간이 영적 인간으로 변한다. 죄인이 의인이 된다. 땅의 백성이 하늘의 백성이 된다. 이런 표현의 구원론은 주관적 그리고 존재론적 변화로써 구원자 하나님과 피구원자 인간 사이 수직적 관계와 땅에 속한 존재가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었다는 초월적 의미만 강조한다
.

신약 성경의 구원론은 이것이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라는 장소가 갖는 구체적 개념을 이용하여 회개와 복음을 언급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여기서도 하나님 나라라는 장소가 지적되며 거듭남이라는 구원이 언급된다
.

사도 바울이 결론적으로 말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 아들이 행한 구속 곧 죄 사함의 결과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 결국 구속과 구원의 목표는 죄인을 중생시켜 하나님 나라라는 장소로 옮겨 살게 하는 것이다
.

신약 성경도 구약 성경과 같이 장소의 이전에 따른 신분의 변화라는 결과로 구원론을 동일하게 설명한다. , 구약은 구원론에서 차이를 보일 수 없다.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구원과 구속을 받는 것이 신앙 삶의 목표나 목적이 아니다. 이들은 목표와 목적으로 이끄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들은 하나님 나라라는 장소로 옮겨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과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앙 삶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여야 한다
.

그럼 장소의 이전이라는 구원론은 어떤 내용과 성격을 보이는가? 하나님이 구원의 주체로 소개된다기독교 구원론의 중심이 구원 받은 인간에서 구원자 하나님에게로 방향 전환된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라는 객관적 실체와 연결된다. 주관적 구원론에 객관성이 추가된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성도가 들어갈 천국이나 하늘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 활동하는 구체적 실체이다
.

이 덕분에 기독교의 구원론은 초월적 성격만 아니라 수평적이며 내재적 성격을 또한 갖는다. 수평적이란 이웃과의 윤리적 관계를 그리고 내면적이란 인류 사회에 세워지고 확장될 하나님 나라를 각각 설명한다. 비로소 구원론에서 기독교 윤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1:26-28)으로 하나님의 기쁜 경륜에 속한다. 구원론이 인간의 존재론적 관점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적 관점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

다시 말해 기독교의 구원론은 주관적, 수직적, 존재론적 그리고 초월적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 수평적, 경륜적 그리고 내재적이어야 한다. 이 때 구원론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이로써 기독교 신학의 성격과 내용은 헬라의 이원론에서 벗어나 비로소 성경이 말하는 히브리적 사고로 되돌아간다. 그 만큼 기독교 신학도 개혁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rassvet/4019899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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