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조회 수 : 2257
2013.11.22 (23:35:16)

사복음서 묵상(97) – 하나님 나라와 교회

신국론(Doctrine of God’s kingdom)과 교회론(Doctrine of church) 사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란 단어들의 용례를 살피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이란 단어는 주로 사복음서에서 사용된다. 전체 104번의 용례 중 18회만 제외하고 모두 사복음서에서 86회 사용된다. 사도행전에서 7회 그리고 사도의 서신들에서 겨우 11회 사용된다. 반면 교회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110번 사용된다. 사복음서에서 단지 2회만 사용되고 사도행전에서 20, 계시록에서 19회 그리고 서신들에서 69회 각각 사용된다.

사복음서는 구약 예언의 역사적 성취를 기록한다. 그 성취는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역사적으로 건설되었고 출발되었음을 뜻한다(마13장)사도들의 서신들은 사복음서의 역사적 성취에 대한 교리적 해설을 기록한다. 이 서신들에서 교회란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 관심사 면에서 예수님과 사도들 사이 차이가 보인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사복음서의 하나님 나라와 서신들의 교회 사이 긴밀한 관계가 있음에 분명하다. 성취와 그에 대한 해석 사이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여기 하나님 나라는 지정학적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이해돼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며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으로 중생한 신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1:12).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 같은 곳이라면 하나님 나라는 니라 같은 곳이다. 그럼 신자는 누구인가? 복음으로 중생한 신자들은 교회의 회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 또는 백성이다. 교인은 한편 교회를 위하지만 다른 한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된다. 가정(
家庭: home, family)에서 출생한 자녀들(children)은 그곳에서 자라 나중 나라(country, nation)를 위해 일할 시민(citizen) 또는 백성(people)이 된다교회와 하나님 나라 사이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문화 사명이 이를 잘 설명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고 이들이 낳을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1:28). 이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실현될 것이다(1:26). 이를 달성시키고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로 구성된 최초의 가정을 세웠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속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류가 잃어버린 옛 지위를 복구시키는 것을 목표한다.

사도 바울이 말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8-10).

구속의 은총을 받은 신자들은 교회가 전한 복음에 의해 거듭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육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자라 하나님의 통치를 인류 사회에 실현시키는 일군이 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창조의 목적이다. 구속의 은총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참여하도록 이들은 다시 부름을 받는다. 신자들은 교회에만 머물 수 없다. 사람들은 가정에서 안식한 후 사회에서 일하고 그리고 일한 후 가정에 돌아와 쉰다. 마찬 가지로 신자들은 교회에서 쉼을 얻은 후 사회로 나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활동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 쉰다.

칭의와 성화 사이 관계가 쉽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칭의는 중생의 결과 교회의 회원은 물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됨(신분 획득)을 뜻한다. 그러나 성화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삶의 과정(직분 수행)을 뜻한다. 기독교 신학은 늘 칭의로 지나치게 치우친다. 성화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독교 윤리가 기독교 신학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칭의는 주로 교회와 관련된다면 성화는 교회 밖의 삶과 주로 연결된다. 그러나 어떻게 세상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기독교 윤리가 그 동안 무시되었다. 현실 참여적 신앙 삶보다 현실 도피적 신앙 삶이 더 강하다. 맛을 잃은 소금을 기독교 교회가 양산한 결과가 되었다. 기독교 신학에서 신국론이 내세적 그리고 초월적 나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성경이 강조하듯이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그리고 내재적 성격이 강조되어야 한다. 

가정이란 인류 사회와 나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다. 가정이 건강하다면 인류 사회도 건강해진다. 그러나 가정이 병들면 인류 사회도 병든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도 동일한 관계가 성립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일군을 출생시키고 말씀으로 훈련시켜 양성한 후 다시 세상으로 보낸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한 후 다시 교회로 돌아와 쉼을 얻는다. 이런 순환과정을 통해 교회는 건강하고 그 덕분에 인류 사회도 건강해지며 결국 하나님의 창조 목적도 달성된다.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한 목양 명령과 선교 명령이 이를 잘 증명한다어린 양들을 먹이고 다 큰 양들을 치리하며 또한 이들을 먹이라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명했다(21:15-17). 이 명령에서 예수님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 사이 관계를 분명히 염두에 두었다. 교회가 구원의 모태이고 훈련 장소이며 재충전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럼
목회 활동을 구성하는 세 과정들은 무엇을 위하는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을 위한다.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으로서 세 가지 사명의 수행에 집중해야 한다. 세상 정치의 개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알리기 위해 교회와 목회는 존재한다. 세상 정치에 열심히 참여하려는 목회자들의 잘못과 실수가 분명히 지적된다.  

그리고 선교 명령(28:18-20)에서 기독교는 주로 가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이 단어가 주동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라의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고 부활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이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교회가 복음을 동족과 이민족들에게 전하는 목적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에 실현시키는 데 있다. 교회는 이를 위한 특별히 세워진 하나님의 가정과도 같다. 그럼 신약 성경은 왜 교회를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되는가? 부활주는 교회인 몸의 머리로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다. 그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자신의 통치를 실현시키기 원한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설명된다. 몸은 몸 자체를 위하지 않는다. 마찬 가지로 교회도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며 백성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잘 세워지고 확장되도록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부름과 사명을 받는다. 이들의 사명 수행을 잘 돕도록 교회는 존재해야 한다. 결국 사도들이 열심히 설명한 교회론은 결국 예수님이 세운 하나님 나라의 효과적인 건설과 확장에 목표를 둔다.

사복음서와 서신들 사이 차이와 관계는 중세 유럽 교회와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 핵심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국내 전도, 해외 선교 그리고 모든 목회 활동은 지역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달리 말한다면 모든 신학들은 신국론을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한다. 이 때 기독교 신학은 물론 기독교 교회도 계속 개혁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rassvet/40201341166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13 교회도 자기자신을 부정하라!
장창수
2182 2013-12-11
112 하나님 나라와 인체 공학
장창수
2107 2013-12-03
111 하나님 나라와 가정
장창수
2509 2013-12-02
110 창조 기사가 증언하는 성경의 역사관
장창수
2270 2013-11-27
Selected 하나님 나라와 교회
장창수
2257 2013-11-22
108 예수가 아닌 교회가 중심에 있다.
장창수
2263 2013-11-20
107 농학(農學)으로 본 설교 행위
장창수
2143 2013-11-13
106 농학으로 본 성경의 구속사(2)
장창수
2594 2013-11-13
105 농학(農學)으로 본 하나님의 은총
장창수
2344 2013-11-06
104 왼편에 있는 염소
박종훈
2691 2013-11-02
103 이원론(二元論)과 이분법(二分法)의 극복
장창수
2795 2013-11-02
102 식물학이 설명하는 성경의 구속사
장창수
2649 2013-11-02
101 농학(農學)이 풀어주는 예수님의 일생
장창수
2532 2013-11-02
100 농학(農學)으로 본 성경의 구속사
장창수
2536 2013-10-31
99 농학(農學)이 증언하는 하나님 나라
장창수
2684 2013-10-26
98 천국 비유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경륜
장창수
2359 2013-10-21
97 인류의 타락과 인간 수명
장창수
2437 2013-10-16
96 두 종류의 구원론
장창수
2350 2013-10-16
95 사회성 지수와 목회자 파일
장창수
2614 2013-10-16
94 창조와 구속
장창수
2595 2013-10-12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