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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23:19:11)

창세기 이야기(73)- 창조 기사가 증언하는 성경의 역사관

창세기 1장은 천지(天地)와 그 가운데 인간을 비롯한 만물(萬物)의 창조라는 하나님의 보편적 창조 역사를 기록한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이 모든 것들을 지었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첫째 삼일과 둘째 삼일 사이 창조 사역에서 유사한 면이 발견된다.

첫째 삼일의 첫 날: 원형적 우주와 초자연적 빛       둘째 삼일중 첫 날: 해와 달과 별들

             
둘째 날: 궁창이란 하늘과 바다                           둘째 날: 날짐승과 물짐승
             
셋째 날: 뭍이라는 대지와 온갖 식물들                 셋째 날: 뭍동물과 인간

첫 삼일 동안 주거 공간들을 그러나 둘째 삼일 동안 그 공간의 주인공들을 하나님이 창조했다. 첫 삼일과 둘째 삼일을 각각 주기로 본다면 첫 주기와 둘째 주기 사이 관계는 겉보기와 달리 아주 긴밀하다. 거주 공간의 주인공이 순서에 따라 창조되면서 하나님의 창조 과정은 마침내 절정에 달한다. 다시 말해 6일이라는 기간 동안 두 주기가 반복되면서 창조 과정이 완성되었다.

여기 6일이란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그러나 7일은 안식 즉 쉼을 의미한다. 6일 동안 하나님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행한 후 7일째 마침내 안식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완성되었다고 성경은 밝힌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출발된 하나님의 구속사가 동일한 방법으로 성취되고 마침내 완성될 것을 성경은 계시한다
.

창조 과정에서 보여진 첫 주기는 예비적 단계라면 둘째 주기는 완성적 단계이다. 이들은 반복되면서도 동시에 발전한다. 이것은 성경이 암시하는 역사관이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도 단번에 완성에 달하지 못했다. 마찬 가지로 인류 역사나 하나님의 구속사도 단번에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첫 주기는 둘째 주기를 위한 예비적 성격을 가질 것이다
.

성경의 이런 역사관은 어떤 면에서 진화론과 유사하다. 그러나 진화론은 종말(
終末)을 가정하지 않지만 성경의 창조론은 종말론을 전제한다. 성경의 역사관에서 첫 주기가 출발이라면 둘째 주기는 완성을 목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관은 종말을 전제한 반복과 발전의 성격을 갖는다.

이 점에서 성경의 역사관은 히브리인의 선형적(
線形的) 역사관과 다르며 헬라인의 원형적(圓形的) 역사관과도 다르다. 성경의 역사관은 나선형적(螺旋形的)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역사관은 히브리적이면서 동시에 헬라적이다. 성경의 이런 역사관은 성경의 계시들과 약속들 또는 언약들도 나선형적 성격을 띨 것이라고 증언한다.

성경학자 게르하르드 보스는 계시의 점진성(
漸進性: graduallity)이란 표현으로 설명했다. 여기 점진성은 반복과 발전을 모두 함께 공유하는 단어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된다. 구약은 예비적 성격을 지닌다면 신약은 성취적 또는 완성적 성격을 띤다. 하나님도 자신의 구속사를 단번에 완성시키지 않았다. 예비적 단계를 거쳐 완성으로 가도록 하나님은 구속사를 진행시킨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이 두 인물을 통해 성경의 역사관을 설명했다. 첫 사람 아담과 둘째이며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5:15, 고전15:45-49). 인류의 역사는 둘 아담으로 출발한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로 출발한 역사 - 로 나뉜다. 첫째 역사는 둘째 역사를 위한 예비적 단계이라고 성경은 설명한다. 그리고 둘째 역사로부터 세상 종말이 이미 카운트 다운되었다(1:15, 4:4, 9:26-28
).

이미 위에서 암시되었듯이 창조의 첫 주기는 불완전했다. 둘째 주기에 의해 완성되었다. 마찬 가지로 아담으로 출발한 인류의 첫 역사도 불완전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출발한 둘째 역사에 의해 첫째 인류 역사를 출발시킨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내지 완성될 것이다. 예수님은 둘째이면서 마지막 아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적 역사관은 우리로 하여금 인류 역사를 새롭게 보도록 돕는다
.

하나님의 창조는 분명히 하나님 자신의 경륜에 따른다. 창조 행위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인류의 첫 역사는 불완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역사를 통해 둘째 역사를 예언했고 대비했다. 즉 하나님은 불완전함을 통해 완전함이 무엇인가를 암시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인류 역사가 그렇게 진행되도록 허용했다
.

인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명도 수많은 실수와 잘못 그리고 착오를 거치며 점점 더 발전하고 성장한다. 과거 인류가 범한 잘못과 실수 그리고 착오 덕분에 현재의 발전과 성장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단번에 완성에 달하도록 자연 만물을 창조하지 않았듯이 인류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도 인류 역사가 단번에 완성에 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

아담의 타락 이전 이미 하나님은 예비적 단계를 거친 후 이 세상을 완성 단계로 이끌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예비적 단계는 더욱 혼란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속사자를 약속했다(3:15). 이 약속은 하나의 인류가 둘로 나뉘어 다툴 것을 예언한다. 아울러 오로지 구속의 은총을 통해서만 성취내지 완성에 달할 것을 또한 예언한다
.

성경의 역사관과 구속관에 따르면 기독교와 신자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허용된 인류 역사의 과오를 주인인양 비판하고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오히려 그 과오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미래의 성취와 완성 단계로 나아가도록 노략하라고 충고한다. 주인이 허용한 것을 종인 주제에 비판하고 현재를 부정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비신앙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

기독교와 신자는 성경의 창조론, 타락한 인간을 다루는 인간론 그리고 구속을 약속한 기독론에 근거를 둔 성경의 역사관에 따라 인류 역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저출산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10년 뒤 조국의 장래를 불안케 한다. 그러나 좌파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과거를 볼모 삼아 현재를 부정함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결국 공멸이다. 왜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는가
?

우리의 행위는 믿음에서 나온다.  어떤 믿음을 소유했는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 믿음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주장하면서 인본주의적 역사관으로 사는 모순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개혁주의자라고 자처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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