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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1 (17:10:17)

사복음서 묵상(99)  교회도 자기자신을 부정하라!

중세 이후 지금까지 일어난 대부분의 문제들은 교회론과 관계된다. 카도릭에서 교회는 말씀보다 높다. 그렇게 교회가 절대 권력을 소유했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이 발생했다. 반면 개신교에서 교회는 말씀 아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여전히 주목의 대상이다. 맞는 듯 하지만 위험 요소가 있다. 교회의 영광이 강조될수록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종교적 권위도 덩달아 상승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즐겨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이다. 정말 교회는 영광스런 존재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할 것이 있다. 부활한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요, 만유의 주가 되었다(1:20-23). 예수님은 인류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듯 120명의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승천했다(1:9-11).

부활주의 ‘자기부정’이 여기 발견된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도 하나님의 아들 영광의 그리스도란 신분을 감추었다. 교회가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임이라면 그리고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체라면 교회도 예수님의 자기부정을 배워야 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거절한 세상 영광을 교회가 대신 누린다면 이것은 신성모독이다.

더구나 보이는 교회는 불완전한 인간 제직들에 의해 치리된다. 이들이 어떻게 부활주가 거절한 영광을 가로챌 수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교회론이 다시 묵상되어야 한다. 그 동안 기독교는 부활주의 영광만 추구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부활주는 재림 때 자신의 영광을 만인 앞에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도 그 때까지 부활주의 영광스런 몸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낮아져서 교회의 사명 수행만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회사는 기독교 교회가 이런 노력에 실패했다고 증언한다. 교회가 자신을 부정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나 그 몸은 그리스도란 머리의 지시를 받는다.

머리 이외 지체들은 다 동등하며 지체들로써 맡은 직분만 수행하며 된다.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는 자신의 본을 따라 지체들도 자신을 부정하며 맡은 직분을 수행할 것을 늘 원한다. 목회자가 갖는 교회의 대표성은 지체로써 맡은 직분이지 여전히 머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이 때 그의 대표성은 유효하다.

지체들이 말씀에 따라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도울 뿐 지체들을 주관할 권리는 전혀 없다 (고후1:24, 벧전5:3). 그렇다면 목회자도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항상 살아야 한다. 영적 권위가 주는 영광은 불완전한 목회자에게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진실성은 자기부정 노력에 있다.

그리고 교회는 부활주의 몸이다. 상식적으로 몸은 몸을 위하지 않는다. 특정할 활동과 사명을 위해 몸이 존재한다. 즉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 교회는 자신을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몸만 살찌우려는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모으는 목회와 보내는 목회에 힘써 하나님 나라가 인류 사회에 세워지고 확장되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학은 교회론의 내용 규명과 정의에 힘써 왔다. 몸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해서만 주로 연구한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교회란 몸이 무엇을 목표하며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교회들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 덕분에  목회자가 부활주 예수 그리스도 못지 않게 높아지는 비정상적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중세 유럽의 교회처럼 교회의 외형에만 몰두한다. 교인들을 양산하지만 하나님 나라 시민 양성에는 늘 실패한다. 보내는 목회도 늘 모으는 목회를 겨냥한다. 이 결과 목회자들은 목회 성공으로 그리스도가 누려야 할 영광과 존귀를 대신 누린다. 신천지를 비롯한 사이비, 이단도 결국 교회만 중요하게 보는 잘못된 교리에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성경이 강조하는 교회의 영광은 신학적(원리적)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부활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영광과 존귀를 받기를 잠시 보류시켰다. 역사적(적용적) 관점에서 그의 몸인 교회도 세상 영광을 부정해야 한다. 교회의 참 영광은 이 세상에 속한 것도 아니며 세상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오로지 재림 이후에만 나타날 것이다.

기독교의 교회론은 하나님 나라 신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이 때 교회란 몸은 존재와 활동의 의미와 목표를 찾는다(28:18-20).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는 임시적으로 즉 한시적으로 존재한다.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넘기면 보편적 교회도 그 앞에 굴복할 것이다(고전15:23-24). 

이 때까지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며 다른 한편 맡은 사명에 몰두해야 한다. 이 때 사이비 이단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 이단은 계속 창궐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이용하여 자기 백성을 택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영적 혼란과 어둠은 이런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제 교회는 자신을 부정하고 본연의 임무와 사명에 몰두해야 한다. 결국 이것은 목회자들이 자신을 부정하는 결단과 노력에 달린다. 이 결단과 노력 여부가 진실한 목회자 여부를 가르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rassvet/40202436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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