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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5 (19:51:50)

굳이 이 글을 씀은 개혁신보에서 조차 예배에 대한 개념을 '관행' 이라는 말로 스스럼 없이 쓴 것등에 대하여 

 

60여년을 합동측과, 이에서 분립한 합신측의 교회중에서도  나에게는 정통으로 각인 된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한 것을 기조로 하는     하나의 분명한 견해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합신측 분립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바른신학,  바른교회냐 아니냐를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잣대는

교회 예배일 것이다.  예배의 순서들과 그 내용들을 통해서 신학과 교회의 모습이 다 드러난다고 본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많은 장로교회들이   무언으로 인도하는 예배로 하였는데

찬송가나 성경을 빨리 못찾는 새신자 등을  옆의 분들이 찾아주면서 천천히 주보의 순서에 의하여 예배하였었다.

 

그러므로 주보의 예배 순서지는 누구도 함부로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성령의 인도로 교회가 하나님께와 성도에게 사전에 약속된 것으로 알고 엄숙하게 진행되었었다. 

 

그 후 예배시간을 줄여가기 위해서 성도들이 빨리빨리하라고 예배순서를 구두로도 안내하기 시작하더니 

특히 오후찬양예배 등에서는 예배사회자(?)들이 예배가 마치 자기의 것인 것처럼 온갖 사람의 얘기들을 늘어 놓다가

 

겨우 1, 2분을 줄이기 위해 말 한마디로 주보에 인쇄로 하나님과 수백명에 약속된

하나님께 찬송을 아예 빼거나 줄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철저히 주보에 의한 무언으로 인도되는 예배로 하나님과의 신실하고 엄숙했던 관계가

 

예배인도자가 아닌  사회자에 의해서   예배가 그때 그때 분위기 잡아가는 사람끼리의 행사가 되어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고   주일예배의 순서까지도 교회의 담임목사가 맘대로 빼고 넣고 할수 있는 분위기로 발전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예배의 무언인도는 바른(정통)교회의 본질인가,    아니면 그냥 전통일 뿐인가?

인도자가 유언으로 하더라도 바르게만 할 수 있다면 예배의 무언 인도는 그냥 전통일 뿐일 것이다.

 

 

정통 장로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정통 감리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요즘은 교리가 없어지고 교회가 굳이 분별하거나 가르치지 않으면서

어떤 감리교회가 '하나님 중심과 주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면서 오히려 더 칼빈주의 같고

 

어떤 장로교회는 예배 등, 실제에서 신인합일주의의 행태를 보이면서  감리교회보다 훨씬 더 알미니안인 경우도 본다. 

이런  경우들은 각자의 정통성을 상실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정통' 이라 하는 것은  시작될 때의 본질을  말함이다.

 

 

실질적으로 '예배' 가  성경으로부터 왔으며  성경에 근거한 것이며 

어떤 교회의 정체성을 알게하는 가장 확실한 것이라면 

 '예배'란 정통성으로 말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더라도 예배는 역시  전통이라는 말이 더 알맞는가?

아니,  그저 관행이라  함이 예배를 더 쉽게 하기에 편한가?

 

 

정통 기독교교회가 아닌 이단들과 사이비 교회들은 주로 교회이름에 다른 이름을 덧붙인다.

요즘은 정통 장로교교단에 소속되었으면서도 교회 이름에 'OO체교회'  '견OOO교회' 등등 딴 이름을 덧붙이거나 교회라는 말 대신 사용하는 

기묘한 교회들이 많다. 

어차피 성경과 예수와 큰 상관 없이 '내 교회'로 내마음대로 운영되는 교회라면 이단이든, 사이비든, 기묘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예배란      의를 갖춘 형식을 말함이라면

장로교회든,  감리교회든  예배를 바르게 하지 못하거나 흉내만 내는 교회를 정통교회라 할 수 있을 까?

 

나는  한국의 초대교회식의 정통장로교회라고 생각되어지는 교회에서만 생활하며 수천번을 넘는 예배설교와 수백번의 사경회 등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알게 되고 또 정통예배를 습득하였다.

.

내가 수십년 따라 다닌 장로교의 사경회는

회개가 없으면 은혜도 없다 하여 첫날은 영락 없이 회개와 눈물의 날로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나의 체질이 되어  지금도 나는 달콤한 소리보다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려주는 설교에 훨씬 큰 은혜를 받곤 하고 그렇게 설교하는 분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어쩌다 하는 사경회도 첫날부터 좋은 얘기로, 또 심령파의 부흥회는  오로지 성령받으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가 익힌 정통 예배의 형식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예배는 사람의 생각대로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부터라고 알기에

사람이 만든 전통이 아닌 정통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배' 라는 단어의 의미와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신령과 진정의  바른 예배를 통한   감격의 경험이 적은  이들에 의하여(성도들은 힘껏 찬송하는데 강단의자에 앉아서

                                                                                                                                                     주보나 들쳐보는 등)

언제부턴가 모든 집회를 다 예배라 하더니

예배는 다 같은 것(처음에는 다 중요하다는 선한 의미였겠지만) 이라 하면서

 

삼일기도회(주후 2011년 11월 세째주 삼일기도회 - 오일 구역예배 -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이 정하신 년,월,일

                     창조의 날에 맞추어 사용하고 교회달력에도 그렇게 표기했었다 ) 도 기도 중심의 집회였던 것을

수요예배라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손님으로 오는 목사님들을 설교하게 하고 주기도로 마치는 대신 축도를 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느날 부터 예배로 격상시킨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구분을 없애다 보니 심지어 새벽기도회 조차도 새벽예배라 하는 교회도 있게 되었고 

이로써  예배의 구분은 자연히 없어지고

 

주일예배에 교회가 총력을 다하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지고   힘든 성가대도 없애며 대충하게 된 것이다.

주일밤, 또는 오후예배를 주일찬양예배라 함은  주일예배의 연장으로 

요시아가 하나님만 섬김을 회복하고 성일에 백성들을 모아 제사하고 저녁에 해가 질때까지 백성들을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찬송케함에 근거한 것이다.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잠옷 입은 채로 부모님께 문안 인사 올리고 받는 것이 잘하는 것이지만   이를

형식상 결코 예배라 할 수 없으니 

예배란 예의를 갖추고 경배해야 하는 원리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새벽기도회도 예배라 하다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결과적으로  

 

생신날 아침에 경배하는 때에도

잠옷 같은 것으로 대충  입고 절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시끄러운 카세트 음악 틀어 놓고 흥얼 거리며  '부모님 생신 축하 노래' 한다는 꼴로 주일예배한다고 하는 

부모님 경배도 자기 좋은대로 하는 못난 자식들 같은 교회들이 그렇게 많아진 것 아닌가!

 

그리고 주님 죽으심을 기억하며  예비일을 앞둔 날에 헌금도 하며 정식 예배로 하던 오일구역예배는 O모임이니, OO모임이니 하면서 날도 바꾸고 오로지 사람을 모아 교회를 부흥시키는 수단의 단순 친교모임 정도로 전락시키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서 교회 각 지체들의 분명한 자기 역할과 그 유기적 관계들을   무슨 친교회 조직처럼 OO팀이니 팀장이니 하며 교회의 모습을 친목 공동체로 전락시키고 있다.   

 

 

모든 짐승은 날때부터 다 각기의 옷을 입고 태어난다. 

사람은 본래 벌거 벗고 태어나 타락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로 따로 옷을 해입어야한다.(요즘은 부끄러움을 자랑하기 위해 옷을 입지만...)

그러나 사람의 생각으로 해 입은 옷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 피흘림으로 지어주신 가죽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응답하여 그 앞에 설 수가 있고 그것이  바로 예배,  즉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가린 형식의 예배이다.  이것이 피흘림의 속죄를 통한 예수의 이름으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형식에 담아 나타내는 순종의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모든 종류의 제사법, 즉 속죄제, 속건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제사에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음악으로 하게 하며 아주 사소한 것 까지라도 하나님이 지시하고 인도하시는 대로 하지 아니하면 죽음뿐이었던 것은

지시한 형식대로 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곧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는' 순종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과실을 먹음으로 선과 악의 길을 나뉘어 가게 된 아담의 후손인 아벨과 가인은,

하나님께서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의 피흘린 가죽 옷을 입게하심으로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응답하여   바르게 예배하는 길을 분명히 알려 주셨는데 

 

아벨은     순종의 한 길로 짐승을 잡아 피흘림의 제사로 예배하였으나

가인은  불순종의 한길을 택하여 자기 멋대로   피흘림이 없는 곡식으로 제사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선을 행하는 순종이냐,

                                                                자기의 마음대로 하는   악 행하는 불순종이냐의  행위의 문제이다.

 

나는 사경회를 통하여 예수의 피에 의지하여 회개하는 수많은 훈련으로

예배 때에  내가 신앙고백을 함으로써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실체적 존재의 예배자로서  유효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정신이 너무나도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배의 공기도에서도  예수의 피의 공로에 의지하여 회개가 없는 기도는 무익한 기도로 배웠다.

마음으로만 예수 믿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고 함석헌의 무교회주의가 바로 그런것이 아닌가! 

 

 

 

하나님께 예배당으로 구별하여 봉헌된 장소에서 

 

오직,  하나님이 주인이신 주일(성일- 여호와의 날이므로 거룩한) 의 해돋는 아침에(옛날에는 장소가 없어서 9시는 어린이 예배, 11시는 장년예배로 하였음)

 

강단의 동편에 성가대 세우고

     (얼마 전만 하여도 교회 개척하면 성가대석부터 마련하였는데 요즘은 성가대가 있는 교회도 아무데나 앉아 있다가 예배중에 부시럭 대며 앞에 무대에 나와서 공연하고 박수 받고 들어가며   심지어는 설교자도 무대에 나와    설교인지 강연인지를 하며 박수를 받기도 한다 - 이걸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라고 둘러 댄다 - 성경에는 분명 '하나님 말씀봉독'과   성가대의 '찬양' 후에 백성들은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

  

 예배시작에는 엄숙하고 장엄한 음악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부르고

 

한국교회가 합의하여 검증하고 선정하여  예배찬송으로 헌정한 찬송가(교단연합으로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로

정숙한 소리의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우리가 만든 찬송가의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시편 교독(원래는 시편 교송임- 칼빈은 시편찬송만 부르게 함)을 하고

예수의 피의 공로에 의지하는 회개의 목회기도를 하며

신앙고백으로 예배자들의 실체를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은 성경봉독으로 말씀의 실체로 응답하시고  

 

성가대는 강단의 동쪽에서   잘 준비된 공교하고 정숙한 소리의 장엄한 성가로 하나님의 영광을 한껏 드러내면서  

설교자는 봉독된 말씀을 잘 풀어 예배자들의 영을 살리는 축복을 전하고

이에 성도는 응답 찬송을 부르며  송영찬양으로 예배를 마침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도록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알려주신 방법대로 예배함이 아닌가!

 

 

칼빈주의 신학으로 배우고 칼빈주의 교단에 소속되었으면서도 신학과 신앙의 가장 핵심적이며 궁극적인 표현의 행위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인 예배는 자기들 멋대로 하는가? 

이것이 진짜 자유주의가 아닌가?

칼빈의 요구대로 시편 찬송을 부르든지, 또는 최소한 시편교독(송)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성경의 절기주일 말고  하나님 만이 주인이신 주일을 일년 내내 온통 OOO주일, OO주일, OOO주일.....하며 사람을 주인으로 하여 이벤트예배하는 주일로 만들어 공동체 교회로 만들어 가는 것이  칼빈주의인가?     

 

정녕 종교개혁 직전의 구교회가 주일을 온통 성자들의 축일로 만들고 그들을  추앙하던 날들로 돌아가는 것인가?

안식일이, 성일이 거룩함은 그날이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이다.

 

모 신학교 총장이 시무하는 교회의 스승의주일(스승이 주인인?) 주일예배 중에   교인들이 총장, 목사인 스승을 추앙하는 시를 앞다투어  읊어 바치고 화환을 바치고........(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칼빈주의를 공식 표방하는 한국 보수 장로교단들의 예배에 대한 개념의 현주소이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면

그 번역도 당연히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야 복된 것이라 할 텐데

요즘엔 자고 나면 새번역이 나온다.

 

창조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말만 있다가 하와를 지으시면서 비로서 남자 여자라는 말로 구분되어 나누어졌다. 아담, 하와가 불순종하여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을 따로 말하지  않았다.

 

타락한 이후에는 사람의 영은 죽었다가 살리운 자로 하나님의 영과 구별이 되는데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을, 대부분이, 특히 청소년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영으로 생각하여 영으로 찬양한다고

자기중심적인 노래를 하는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해야

신령, 즉 예배의 대상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진정, 즉 예배자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경배하는 것이  참예배라는 것이

나의 평생의 신앙생활 속에서 나의 정신에 각인된 바른 예배이다. 

 

그러므로 나의 정신 속에 있는 예배는 절대적으로 성경에 의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들을

초대 교회의 많은 지혜자들을 통하여 정립하여 주신 정통예배라고 여기는데

(혹  성경에 다르게 보여 주신 형태의 예배가 있다면  개혁신보를 통해 알려주시면 새롭게 살펴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정통적 본질을 가진 예배가 아닌 

가인처럼 자기들의 멋대로  방법론으로 예배를 격하시켜서  예배의 본질을 훼손시키거나

 

교회나  예배나 성경에 관하여 

없거나, 다르거나,  멋대로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자들은(교회를 가르치는 뜻의 교회가 아니고 교제하는 뜻의 교회라고 하는 등 성경의 정통성 마저도 정면으로 부인하는) 

 

이단이거나, 사이비이거나,  기묘한 집단이라고 해야할 것이며,

 

합신교단이 아직도, 또 앞으로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예배와 교회와 성경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또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들에 대한 권징을 

당연히 행사해야 할 것이다.(교단의 원로들은 거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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