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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7 (16:30:28)

목회의 목표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성도 각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도록 양육하는 것이다(4:8-15). 성경의 기록 목적도 그렇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구약의 요셉은 좋은 예이다. 17세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해 들으며 그의 신앙은 자랐다. 하나님이 이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언약을 성취해 갔음을 그는 어릴 때부터 배웠다. 아버지 야곱이 그를 사랑하여 항상 자신 곁에 가까이 있도록 한 덕분이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소천했다(25:7). 이 때 이삭의 나이는 75세였고 야곱의 나이는 15세였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15년 동안 아브라함을 볼 수 있었다. 이삭은 180세에 소천 했다(35:38). 이 때 야곱은 120세였고 요셉은 30살이었다.  요셉도 할아버지 이삭을 17년 동안 볼 수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증인들을 통해 족장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직접 들었다. 신약 시대로 말한다면 그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잘 배웠다. 그러나 17년간의 배움은 13년간의 혹독한 연단을 기약했다.

 

어느 날 요셉은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꿈을 두 번 꾸었다. 두 꿈의 내용은 형제들이 동생 요셉에게 절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더 받았다(37:5-11). 하나님은 이를 이용하여 강제로 요셉을 애굽으로 내보냈다(7:9). 애굽에서 혼자인 요셉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언약에 근거한 임마누엘의 은총이 그와 함께 했고 요셉도 이를 굳게 믿었다. 아버지 야곱이 하란에서 산 삶(28-30)의 이야기가 요셉을 굳게 붙잡아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범사를 축복했다(39:2-3). 절망은 그를 연단시켰고 그를 성장시켰다.  절망을 딛고 마침내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41:38-40). 성공과 출세는 족장에게 준 언약을 성취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와 요셉의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가능했다(105:19).

요셉이 야곱의 집 안에 남아 있었다면 이런 성공은 불가능했다. 성공해도 야곱 개인 가문의 경사 정도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요셉이 어릴 때 꾼 꿈대로 더 큰 무대에서 그가 성공하기를 하나님은 바랬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과 돌봄으로부터 17세의 요셉을 강제로 단절시켰다. 13년 동안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만 의존하며 혼자 살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그는 애굽에서 성공했고 종국적으로 요셉은 세계적인 흉년에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구원하는 구원자 역할까지 수행했다(45:7).

 

오늘날 개인 성도도 바로 이런 독립적인 신앙을 소유하여야 한다. 부모의 돌봄과 무관하게, 자신이 자란 가정을 떠나서도, 자신을 성장시킨 교회를 떠나서도 그리고 자신의 조국이 아닌 타국에서도 변함없이 부활주 예수님만을 만유의 주로 고백하고 의뢰하며 살 수 있는 독자적인 신앙을 성도는 보여야 한다.  이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 역군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상황은 그 반대이다. 목회자들은 등록 교인들이 자기 교회에만 영원히 남아있기 원한다. 이들은 전능한 하나님의 손길에 신자들을 맡길 줄 모른다. 반면 신자들은 가장 큰 교회의 교인이라는 헛된 자부심과 존경 받은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이라는 부질없는 자랑을 좋아하며 그 교회에 영원히 남길 원한다. 이렇게 성도들은 주 앞에서 독립적인 신앙을 소유하길 쉽게 포기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교인들은 지교회를 위해 충성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지 않는다. 또는 목회자에게 충성하지만 만유의 주되신 그리스도에게 충성할 줄 모른다.  이것이 양적 성장론의 문제이다. 이를 피하려면 목회자와 신자들은 지교회만 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나 보편적 교회를 보는 영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목회자는 이기적인 목회관을 그리고 성도들은 이기적인 교회관을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자기부정이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에 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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