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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분리)에 대한 캘빈의 입장(기독교 강요 4권을 중심으로) 

한국장로교회의 모든 교단은 캘빈주의를 내세웁니다. 또한 캘빈을 장로교 신학과 정치체제의 창시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무슨 논쟁이 생기면 성경을 상고하고 토론하여 성경적이고,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밟기보다는 캘빈의 권위를 빌어서 자기주장을 정당화(正當化)하고, 상대주장을 부당화(不當化)하여 더 빠르고 쉽게(?) 승패를 가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캘빈의 이름으로 상대의 복종을 강요하던지, 아니면 ‘갈라져 나가게’ 하였습니다.

 반대로 졌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캘빈이 교회분리를 어떤 범죄보다 더 큰 범죄로 간주하고, 분리주의자(당시의 재세례파)를 로마교회보다 더 위험하고 큰 이단으로 간주하였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캘빈에게서 분리를 정당화하고, 불가피화(不可避化)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 근거라는 것은 기존 교단 혹은 소위 주류파의 잘못을 최대한 많이 들추어내어 그들이 캘빈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내세워서 자기들의 분리하여 교단을 설립하는 것은 정당하고,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선언서를 발표하고 또 하나의 장로교단을 설립하는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되면 ‘거기에 있으므로’ 그들의 부당함에 동조하는 무리로 오해를 받는 것은 신앙양심에 어긋난다는 양심론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한 교회 안에서 다투는 것보다는 ‘거기에서 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교회를 위하는 길이라는 건덕론(健德論)을 더하여 분리를 정당화, 불가피화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장로교는 교회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 곧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은 수의 교단을(1980년 이후 30년 동안에 설립된 장로교단만 150개 가 된다는 통게도 있음)세웠다는 비웃음을 교회 안팎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똑같은 구실로 분리 상태를 고착화하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괴롭게 하고, 성도의 교제를 제한하고, 교회가 이교도와 불신자에게서 비웃을 받게 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캘빈주의를 표방하는 고신과 합신의 합동에 관한 찬반 논의에 앞서서 교회의 하나 됨에 관한 캘빈주의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캘빈주의는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덧붙여져 왔고, 서로 다르게 정의되고 있기 때문에 보통 목회자로서는 정확하게 이해하기도 어렵고, 조심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캘빈주의 학자들과 그들의 저서들이 아닌 기독교강요 4권에 나타난 캘빈 개인의 교회의 하나 됨(분리)에 관한 입장을 일반 목회자의 수준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4권 전체의 제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4권 전체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교회)로 들이셔서 그 안에 있게 하시는(지키시는) 외적인 수단 혹은 목표’입니다. 캘빈은 그 전체 주제에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란 어떤 곳이며, 모든 신자를 그 한 교회 안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은 무엇인가를 밝힙니다. 그리고 교회를 분리하는 것과 그 고착화의 정당화, 불가피화가 인정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기존 교회가 중세 로마교회와 같이 된 경우뿐이라고 말합니다. 곧 그 기존 교회에서 말씀 사역과 성찬의 시행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집행할 교회 직원선출과 정치체제가 중세 로마교회와 같을 경우에만 교회 분리는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4권에서 한국장로교회의 분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찾으려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만일 찾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해(誤解)이거나, 왜곡(歪曲)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제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캘빈은 4권 첫 장에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로서 연합을 유지해야 할 참된 교회”라는 주제를 붙여서 ‘참된 교회’와 ‘연합 유지’를 연관시킵니다. 그리고 하나 됨과 하나 됨을 유지하는 것이 참된 교회의 본질이며, 증거이며, 사명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캘빈이라면 정정당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사유로 교회를 분리하고, 그 분리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 어느 교단도 참된(혹은 떳떳한) 교회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1조에서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거룩한 일치와 올바른 질서를 위하여 특별히 성례를 제정하였으므로 최소한 성례가 바로 시행되는 교회들 사이에는 믿음의 거룩한 일치가 성립되므로 분리하려 하지 말고, 연합을 유지하여야 할 것을 암시합니다.

2조에서는 참 교회 여부를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일인데 ‘교회의 통일성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지체들과 하나로 연합되어 있지 않으면 장차 주어질 기업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고 경계합니다. 곧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실 기업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와 관계가 있는 심각한 행위임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교회를 공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여러 조각으로 찢어지지 않으시는 이상, 두 개나, 세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인데(고전1;13), 교회 분리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고 개탄합니다.

이어서 모든 상황이 교회가 없어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거기에도 ‘이스라엘 가운데 남겨 두신 7천 명’처럼 하나님이 이적적인 방법으로 보존하여 ‘남기신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왕상19;18). 그러므로 엘리야 시대의 7천 명을 이스라엘 안에 ‘남기신 교회’가 아니라, ‘떠나게 하신 교회’로 보고 분리를 정당화하는 것은 오해나 왜곡이라 할 것입니다.

3조에서는 사도신경을 들어서 “하나님이 모든 신자의 공통의 아버지시오, 그리스도께서 형제의 사랑 안에서 연합되어 있는 자들의 공통의 머리시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믿는다면” 성도의 교제를 끊는 분리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이 자기에게서 갈라져 나가도록 하시지 않으며, 그의 지체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허용하지도 않으시는 분”이신데도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그러한 주님의 의지(意志)를 대적하는 심각한 행위임을 암시합니다.

7-9조에서는 참된 교회인 여부를 분별하는 것은 하나님만의 특권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함을 아시고 그것을 위하여 참 교회의 표지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 사역과 그 사역을 공경함이 있고, 성례를 정당하게 시행한다면, 그 무리를 참 교회로 인정함으로써 마귀의 심성을 가진 자들이 항상 갈라놓으려 애쓰는 교회의 통일성을 보존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참된 교회의 표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없다는 이유로 그 무리를 참 교회로 인정하려하지 않고, 분리하려는 것은 마귀의 심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10-16조에서는 ‘교회에 참된 표지가 있는 한 아무리 다른 결점들이 있더라도 거기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제를 통하여 이미 교회의 분리가 잘못임을 암시합니다.

10조에서는 그 교회에 참된 교회의 표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성과 교제를 파괴하고 교만하게 교회를 떠나는 것은 반역이요, 배도’에 해당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행위이며, 더 없는 끔찍한 죄악’(엡5;23-32)이므로 하나님이 벼락을 내려 깨뜨리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12조에서는 그 교회에 온갖 결점들이 많고, 심지어는 교회의 표지인 교리나 성례시행에 다름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본질적이고, 신앙의 총체(總體)에 해가 되고, 구원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 아닌 한, 그러한 이견(異見)을 분열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빌3;15, 고전14;30).

캘빈에 의하면 한국장로교회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을 근거로 삼아 분열했다고 할 것입니다. 

13조에서는 ‘도덕적인 결점도 분리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주제로 도나투스파와 당시의 일부 재세례파들처럼 말씀에 맞는 삶을 볼 수 없는 곳에는 교회도 없다고 판단하고,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교회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그 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은 오도(誤導)된 의를 향한 잘못된 열심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헛수고라고 책망합니다.

따라서 분리하면서 내세웠던  명분 곧 교회의 정결은 커녕 오히려 하향평준화가 된 한국장로교회 안에서의 분리는 모두 실패했다고 할 것입니다.

14조에서는 고린도교회가 이교도도 혐오하는 끔찍한 악행(고전5;1), 우상 숭배(고전10;14-22), 교회의 표지인 성찬을 오용하는 자(고전11;17-34), 복음의 핵심인 부활 교리를 조롱하여 복음 전체를 파괴하는 자들(고전15;12)로 거의 온 교회 전체가 오염되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말씀과 성례 사역이 부인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교인들을 교회와 성도로 인정하고 거기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려 하지 않은(고전1;2) 실례를 들어 도덕적인 문제로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성경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악행의 10분의 1도 없었던 한국장로교회에서의 분리는 정당성이 없습니다.

15조에서는 고린도교회가 범죄자들에 대한 권징을 바로 시행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고, 권징을 바로 시행하라고 권고한 것이 사실이지만(고전5;1-3. 고전10;9-13), 그러나 교회가 권징시행에 나태하다는 것 때문에 분리할 권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성경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살펴보라고 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신자들과 교회를 살펴본 결과(고전11;28) 거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그 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은 악한 일이라고 경계합니다.

16조에서는 분리를 선동하는 자들은 대개 자기가 제일 낫다는 것을 보여 주려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추종하게 하고, 그게 안 되면 교회에서 분열시키려 하는 ‘악의 자식들’이요, ‘진리의 빛이 없는 자들’이요, ‘망령된 자들’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사모하는 자들이 많으므로 특정한 소수의 특정한 죄악에 오염될 수 있다는 구실로 분리하지 말고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17-22조에서는 그 교회에 거룩하지 못한 교인들이 있는 것을 분리의 구실로 삼지 말고, 오히려 서로 용서하는 기회로 삼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17조에서는 엡4;25-27을 인용하여 교회는 거룩한 동시에 주님이 날마다 주름과 흠을 없애셔야 할 만큼 불완전하고, 심지어는 거룩함의 증거가 거의 보이지 않는 때가 자주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 교회 안에서 항상 특정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므로(롬9;23), 거기에 거룩함의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나님이 구별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도록 ‘그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18조에서는 선지자들의 예를 듭니다. 곧 선지자들이 당시의 예루살렘교회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이 부패하여 소돔과 고모라에 비교될 정도였지만(사1;10), 그 때문에 자기들을 위하여 새로운 교회나, 단을 세우지 않았고, 어떻든지 주께서 그 말씀을 그들 중에 세웠고, 거기서 예배하도록 의식들을 제정하셨다는 것을 생각하여, ‘그 가운데서’ 자기들의 정결한 손을 하나님께로 향하였던 것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온갖 악행들을 보면서도 그 교회에서 자기들을 분리시키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실례를 듭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의 모든 사람들의 도덕성이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거나 혹은 자기의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분리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행위라고 경고합니다.

19-22조에서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에를 듭니다. 곧 당시의 교회 지도자인 바리새인과 백성에게 만연된 불신앙과 방탕함을 아시면서도 그들과 같은 성전에 모이고 같은 의식에 참여하셨던 사실과 ‘그 교회 안에 가라지나 부정한 그릇들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그 교회에서 나와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알곡이 되고, 금과 은그릇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은 주님만이 하실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판단을 가지고 분리하려는 것이야말로 완고함과 경솔함과 교만함과 사악함을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키프리안의 말을 인용하여서 교회에 악행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시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그 악행을 분리의 명분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주님이 우리 모두를 용서를 통하여 교회 안에 영원히 받아 주셨고, 교회 안에 보존하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죄 지은 자들을 용납하지 않거나, 교회 안에 있지 않고 분리하려는 것은 우리를 교회 안에 받아 주셨고, 교회 안에 보존하시는 주님을 거스리는 교만이라고 책망합니다.

23-29조에서는 자기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라고 말씀 하신 것(마6;12. 18;21-22)과 하나님이 범죄한 신자들(공동체로는 이스라엘과 고린도교회, 개인으로는 다윗과 베드로)에게 긍휼을 베푸신 실례를 듭니다. 그리고 용서와 긍휼이 교회의 특징이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셔서 지극히 작은 악행도 묵인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어 천 년을 하루 같이 참아 기다리시므로 비록 그 교회가 최고로 부패했을 때의 이스라엘이나, 고린도교회와 같이 되었다고 하여도 거기에서 분리하려 하지 말고, 용서하면서 참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2장은 자기들의 분리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그것이 왜곡(歪曲)임은 다음과 같은 그 내용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1-2조에서는 신앙의 근본 교리와 정당한 성례를 폐기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한, 그 밖의 다른 오류들은 용인하여야하며 그것 때문에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러나 교황체제하의 로마교회는 성찬 대신에 신성모독(미사)을 도입하였고, 예배를 용납할 수 없는 미신으로 훼손하였고,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매장한 상태였으므로 교회라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거기에서 나온 것은 분리가 아니라 참된 교회를 보존하는 정당한 행위였다고 말합니다.

캘빈이 볼 때는 최소한 교황체제하의 로마교회와 같이 된 적이 없었던 한국 장로교회에는 정당화할 수 있는 분리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할 것입니다.

 5-6조에서는 ‘이단은 거짓 교훈으로 믿음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자들이고, 분리주의자는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성도와의 교제를 끊는 자들을 말한다.’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합니다. 곧 근본적인 교리와 참된 예배를 매장한 로마교회와의 분리는 이단과의 교제를 끊은 것에 해당하며, 그것도 개혁자들이 능동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로마교회가 개혁자들을 추방함으로 생긴 불가피(不可避)한 결과였으므로 그 책임이 로마교회에 있음을 밝힙니다.

장로교회 목사 모두가 존경하는 어거스틴과 캘빈에 따르면 한국장로교회의 분리에 관계된 분들(신학자, 목회자) 가운데 ‘분리주의자’라는 말을 피할 분이 없고, 분리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분의 말씀을 빌어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던 그 많은 지도자 교수와 지도자 목사님 가운데 ‘나는 분리주의자였습니다’라고 회개한 분이 없었고(정 규오목사님 외에 그런 분이 더 계시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 많은 교단들 중에 자기들의 분리가 성경 말씀(엡4;2,3)대로 겸손, 온유, 인내, 관용의 부족한 탓이며, 또 하나의 교단을 설립하게 된 것이 사실은 개혁을 위한 의지와 용기와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교단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로교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집니다. 또한 선대들이 만들어 놓은 분열로 생긴 배설물과 같은 기득권들을 잃게 될까보아 교단 보존에 급급한 후대들을 보면서 참담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7-11조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교회가 비록 우상숭배와 도덕적 범죄로 부패해 있었으나, 거기에 말씀인 율법이 있었고, 하나님이 세우신 직원들이 그 말씀을 선포하고 있었고, 율법에 기록된 의식들을 시행하고 있었고, 게다가 미신적인 행위에 참여하라는 강압이 없었으므로 하려고만하면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는데 비하여, 참 교회의 증거는 하나도 없고, 미신적인 행위에 참여하라는 강압만 있었던 로마교회로부터의 분리는 정당하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따라서 캘빈이 볼 때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대다수의 목사가 그 말씀을 전하고, 주님이 세우신 성례만을 시행하고, 미신적 행위에의 참여를 강압한 일이 없었던 해방 후의 장로교회에 있었던 교단 분리는 모두 정당하지 못하였고, 또한 신앙고백과 예배모범과 정치체제가 같은 교단들이 서로 합동을 꺼리는 것도 부당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제3장에서 20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3-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목적과 그 사역의 의의와 특권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직분인

                 목사, 장로, 집사의 자격과 직무 그리고 직원을 세울 때 소명의 확인, 자격 심사, 회중이 선택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

                 성경적임을 밝히고(3장),이어서 고대 교회가 제정한 여러 법령에는 성경의 교훈과 다른 요소가 거의 없었다는 것과

                 그 시대의 정치체제가 사람이 주도권을 꿈꾸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앞으로 교황체제하의

                  로마교회가 성경은 물론 고대 교회와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밝힐 것을 암시합니다.

                  5장은 교회 직원 상황을 문제로 삼아 분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됩니다.

캘빈은 당시의 로마교회가 성경과 고대 교회 전통과 반대로 교인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소명감과 자격을 확인하는 과정 없이 당파와 봉급 중심으로 직원을 임명하므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직원이 100명에 1명, 성직매매에 해당하지 않는 임직이 100번에 1회, 평생에 1회라도 강단에 올라가 본 경험이 있는 직원이 100명에 1명, 부패와 악행이 끔찍하여서 교회법에 따라 판단하면 출교나 파면을 당하지 않을 자가 100명에 1명이 될까 말까 할 정도였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원체제와 상황이 중세 로마교회와 다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최소 100명중에 70명은 정상) 상황인 한국장로교 안에서 있었던 모든 분리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6-7장은 교권의 소재를 문제로 삼아 분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됩니다.

캘빈은 교황정치체제가 성경과 고대 교회에 없는 가설인 베드로 수위권을 근거로 조작된 것이고 게다가 그것으로 개인 양심과 교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었으므로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로마교회는 거짓 교회라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거기로부터의 분리는 정당하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교황과 같은 1인 독재자와 교황청과 같은 기구가 없는 한국장로교회에서 교권의 소재를 구실로 삼아 분리한 것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8-10장은 치리회의 횡포를 문제로 삼아 분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됩니다.

캘빈은 성경 해석권이 교황이 주재하는 공의회에 있다 하여, 거기에서 결정한 교리의 무류함을 주장하여 근본적 교리를 부패시키고, 성경에 어긋난 교회법을 만들어서 야만적인 횡포와 살육을 자행한 로마교회는 거짓 교회이므로 거기로부터의 분리는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치리권을 남용하여 근본적 교리를 부패시킨 적도 없고 야만적인 횡포와 살육 행위를 한 바가 없는 한국장로교회에서 치리회의 행사를 구실 삼아 분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11장은 직원의 치리권 오용을 문제로 삼아 분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됩니다.

캘빈에 따르면 그 교단과 직원들이 교황체제하의 로마교회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왜곡하여 자기들 뜻대로 고해, 출교, 재판권, 사면권을 행사하고, 교권을 이용하여 세속적 권세와 부귀와 영예와 면책특권을 비롯한 온갖 특권을 누리고, 국가와 세계의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데도 단순히 교권주의라는 구실로 분리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14-19장은 예배 형태와 의식을 문제로 삼아 분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됩니다.

곧 참된 교회의 표식인 성례를 미신적(화체설, 성찬물 숭배 행위, 일반 신자에게 잔을 금함 등)으로 행하고,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그 속죄의 은혜를 망각하게 하고, 성찬을 더럽히고,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하는 미사와 7성례와 같은 미신 행위를 강요하는 로마교회는 거짓교회이며 따라서 그 교회로부터의 분리는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런 일이 없었던 한국장로교회에서 예배의식을 구실로 분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결론

캘빈이 기독교강요 4권에서 밝히려고 한 것은 참된 교회와 그 표식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표식이 말살된 로마교회는 교회가 아니든지, 거짓 교회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러므로 거기에서 개혁교회가 분리한 것은 정당했다는 것과 그 분리도 로마교회의 박해와 추방에 의한 불가피한 일이었으므로 로마교회가 개혁교회를 이단이나 분리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합동(분리)라는 주제만을 염두에 두고 본 기독교강요 4권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캘빈이라면 그 교회(교단)의 말씀사역과 성례를 포함한 예배 형태와 정치체제와 직원들의 형편이 중세의 로마교회와 같을 경우에는 거기로부터의 분리가 정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 분리가 나가는 쪽의 능동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 교회(교단)가 불법적인 권징행위(제명, 면직, 출교)로 추방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불가피성) 것이 인정될 경우에만 분리를 인정하고 정죄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장로교회가 교단 설립 이후 100년 동안 많은 위기를 겪었고, 현재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소한 교황제하의 로마교회와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장로교회가 존경하는 캘빈선생님께서 볼 때에는 그동안 한국장로교회에서 있었던 모든 분리는 비록 이단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분리주의적인 행위임에는 틀림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잘못을 되돌리기 위하여 "열 개의 바다라도 건널 각오로 한국장로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진력하라." 하라는 권면을 할 것이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참고한 번역본은 김 문제. 혜문사. 1987년 7판과 김 종흡외 3인. 생명의 말씀사. 1993년 1판과 원 광연. 크리스챤사 2006년 초판이며, 문장은 비교적 현대어인 원 광연목사의 것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 글은 번역본만을 볼 수 밖에 없는 목회자의 수준에서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신학자들이 볼 때에는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 부분에 대하 것이라면 조언과 교정은 받겠습니다. 그러나 글의 목적이 신학자들이 아닌 장로교단의 분열 현상에 대한 일반 목회자들의 생각과 견해를 나누고, 모으는데 있으므로 목회자들의 토론 형식의 글에만 답글을 드리려고 합니다.

장로교회가 하나되어 북녁과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평범 목회자 김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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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루터와 칼빈 (67)
장창수
5139 2012-10-17
67 창조론적 관점에서 본 칭의와 성화 (1)
장창수
3643 2012-10-05
66 인류 최초의 가정 (130)
장창수
7772 2012-10-03
65 내가 구상하는 은퇴목사 마을/ 최일환 목사 (204)
최일환
9356 2012-04-26
Selected 합동(분리)에 관한 캘빈의 입장(기독교강요 4권에 나타난) (1)
김훈
3097 2012-04-21
63 사람의 다스림 받는 정원 파일 (19)
박종훈
2951 2012-04-11
62 목회자가 음악을 알아야 제사장적 직무를 다 할 수 있다 (89)
박인철
4982 2012-03-21
61 주인만 바라보는 진돗개 (1)
박종훈
3713 2012-02-10
60 지적, 윤리적 올바름이 전부인가? (1)
장창수
3002 2012-01-09
59 10병동 1010호 /김승식 목사(인천노회 영광교회) (1)
최일환
3526 2011-12-21
58 독자적인 신앙
장창수
3038 2011-12-07
57 정통 교회, 교회의 전통
박인철
3123 2011-11-15
56 교회가 친교하는 공동체인가?
박인철
2799 2011-11-15
55 "나가수"와 나의 목회
황대연
2652 2011-11-12
54 내게 맡기신 교회
황대연
2573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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