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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695
2012.10.05 (18:41:33)

창조론적 관점에서 본 칭의와 성화(1)

1.
칭의와 성화는 구원론과 관계된다. 그러나 이 두 용어를 창조론에 연결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구원론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칭의는 구속의 결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됨을 뜻한다. 구속이란 방법은 타락으로 잃은 아들의 신분을 되찾게 하고 그 결과가 바로 구원이다.

2.
그럼 어떻게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물론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서이다. 이 때 하나님은 어떤 조건도 붙히지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 귀한 생명을 얻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받았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

3.
이런 은총을 받은 이후 인류는 선악과 규례(2:17)를 지키며 하나님이 준 문화 사명(1:28)을 수행해야 한다. 순종 여부에 따라 문화 사명 수행 결과도 하늘과 땅 사이 차이만큼 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지속적 관계 아래 복을 받으며 살 것인가 아니면 저주를 받아 사망을 당할 것인가? 창조론에선 인간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

4.
창조론도 구원론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 후 자녀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창조론과 구원론 사이 어떤 차이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창조론에서도 구원론처럼 칭의는 무조건적이라면 성화는 조건적이다. 칭의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하나님의 의지의 결과라면 성화는 인간의 의지의 결과에 따라 복과 저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

5.
그러나 성화는 칭의로 얻은 아들의 신분답게 사는 삶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신자는 늘 불완전함에 노출된다. 이 때문에 하나님에 의한 견인의 은총이 신자에게 절대로 필요하다. 이 점에서 창조론과 구원론 사이 다른 차이가 있다. 칭의 후 행복 여부가 창조론에선 인간의 의지에 맡겨졌지만 구원론에선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

6.
이것은 구원론에서 성화 이후 인간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구원론은 성화를 무시하는 구원론으로 값싼 구원 또는 구원파의 율법폐기론적 구원이 된다. 그렇다고 성화를 지나치게 강조하기에 성화 내용으로 구원의 여부를 판단하려는 자세도 문제 있다.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도 있기 때문이다(고전3:1). 그리고 최종적으로 누가 구원 받을 것인가는 교회도 모르고 하나님만 안다
.

7.
그럼 왜 성화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가? 칭의와 성화라는 단어들은 구원론의 이해를 위해 논리적으로 나눈 것이다. 신앙 삶에서 이 둘(논리)은 실제(역사, )로 분리될 수 없다. 칭의가 신분 획득이라면 성화는 신분에 갈맞는 직분을 뜻한다. 왕이란 신분과 왕으로서 수행해야 할 직분은 실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화를 칭의에서 강제로 분리시키지 말라
!

8.
구원 이후 신분에 걸맞게 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녀이므로 그를 징계하며 사랑으로 끝까지 이끈다(12:7). 구속 이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또 다시 실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생자 아들의 피까지 흘려 구속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 은총은 피택자에게만 베풀어진다
.

9.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하나님의 아들된 인류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문화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사명 수행은 아들이 이미 된 증거이며 결과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사명 수행은 아들이 되게 하는 공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창조주 아버지를 거역한다면 칭의와 성화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

10.
구원론의 칭의와 성화를 창조론을 쉽게 설명하며 이 둘 사이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은 줄여야 한다. 이 둘은 선후의 문제이지 대립적 이분법에 맞지 않는다. 칭의가 먼저이고 성화가 나중이다. 그러나 성화가 나중이라고 절대로 무시되면 안 된다. 신분과 직분은 인격과 삶의 관계처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

11.
논리적 분리와 구분을 실제 신앙 삶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어리석음을 버리자! 바른 이해를 위한 논리적 분리는 통전적 삶을 요구하는 역사에선 절대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할 때 조직신학이 설명하는 구원의 서정도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본 칭의와 성화(2)

1.
창조론과 구원론은 칭의란 모두 하나님의 일방적인 그리고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칭의 결과 창조론에선 인류가 하나님의 문화 사명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구원론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조직신학의 구원론도 칭의가 하나님의 아들됨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
사도 바울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

려 하심이니라."(2:8-10)

3.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심을 받은 자가 바로 칭의로 하나님의 아들된 신자들이다. 신자는 선한 일을 위한다. 그럼 선한 일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왜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하지 않았을까? 신약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말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구약을 통해 이미 상식화된 내용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4.
그러나 유대적 배경이 없는 이방인 신자들은 선한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이를 알려면 창조 기사를 통해 인간의 창조 목적을 알면 된다. 하나님은 문화 사명(1:28)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고 확장시키길 원했다. 이를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1:26-27). 신자는 바로 이 선한 일을 위해 구속의 은총으로 새로 지음을 받는다. 구속이란 타락으로 잃은 인간의 사명(1:28)을 되찾아주기 때문이다
.

5.
결국 신약의 신자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성화는 문화 사명 수행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론과 구원론의 공통적 목표이다. 예수님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 복음인 이유이다(16:16). 즉 구원론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 획득만 뜻하지 않는다. 조직신학의 구원론과 달리 창조론은 칭의와 성화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

6.
결국 성화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삶의 과정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법인 말씀에 따라 사는 땅의 시민이다. 땅의 시민은 세속사에 속해 하나님의 일반 은총 아래 이성과 상식을 따라 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시민은 구속사에 속해 하나님의 특별은총 아래 믿음에 따라 산다. 땅에 살면서도 땅에 속하지 않은 존재 - 신자란 참으로 역설적 존재이다
.

7.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려지는 곳이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곳에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통치에 따라 산다면 눈에 안 보이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확장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 통치란 신자 측면에서 성경에서 나온 기독교 윤리에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

8.
이런 신자들의 수가 증가한다면 기독교 윤리가 이 세상에 퍼지며 세상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 만큼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확장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즉 기독교 윤리에 따라 사는 삶 즉 성화는 아주 중요하다. 신자들의 성화 수준이 높을수록 하나님의 말씀 통치는 그 만큼 인류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준다. 기독교 인구가 특정 사회에 15%만 되어도 선하고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

9.
그 결과 세상 사람들은 신자들의 수준 높은 윤리를 칭찬하며 영광을 하나님과 예수님께 돌릴 것이다. 신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설명하며 예수님도 이렇게 말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

10.
사도 베드로도 설명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

11.
이렇게 본다면 영과 육을 나누는 윤리적 이원론이나 교회와 세상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은 비성경적이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신약 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됨으로 이원론과 이분법을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구약 성경은 이를 절대로 지지하지 않는다
.

12.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조직신학의 구원론은 창세기 3장부터가 아닌 창세기 1-2장에서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신자는 늘 현실도피적인 신앙 삶을 살며 빛과 소금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에 반한다
.

13.
이제 기독교 신학은 성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성이란 이원론이 설명하듯이 세상 밖에서 고고하게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세상 안에 살면서도 윤리면에서 세상과 구별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바로 성화의 삶이다. 이것이 창세기가 설명하는 칭의와 성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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