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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생각 빌립보서 24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이제는 함께 그리스도의 복된 나라를 이루어가자고 힘써 설교해야

 

 

우리 동네에는 품위 있는 드립 커피를 마시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 융입니다

 

즉석에서 구워 녹차 아이스크림을 얹어서 주는 와플은 정말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런데 귀한 손님 오셨기에 모시고 오랜 만에 찾아갔더니, 아뿔싸! 없어져 버렸습니다. "영업 종료 안내" 팻말만 덩그러니 문에 붙었네요. 덕분에, 미국 간 우리 새끼들 오면 쓰려고 차곡차곡 아껴두었던 나의 적립금 일만 육천 원도 졸지에 종료되어 버렸습니다.


가만 보니 옆집에 있던 “LORO” 스낵 집도 없어졌습니다. 타로점 집이 그 옆에 들어왔는데 한 아주머니가 점은 안치고 텅 빈 가게 안에 서서 애꿎은 화분에 물만 주고 있네요.


살기가 많이 어려워진 게 분명합니다. 이 사람의 어려운 살아가기가 저 사람의 살기를 어렵게 만들고, 그 사람의 살기 어려운 것이 또 다른 사람의 살기를 어렵게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살아가기는 돌고 돕니다. 우리의 살아가기는 모두가 이렇게 얽혀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그걸 모르고, 저 사람을 궁지에 넣어야 내 살기가 편해진다고 믿고 그 헛되고 부질없는 제 욕심 챙기기에만 진력하는 걸까요?


어느 기관에선가 36개 국가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라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능력을 알아보는 설문이었다네요. 한국의 청소년이 주위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36개국 가운데 35등 이었다네요.


부모들에게 설문을 했답니다. 자기의 자녀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가르칠 의향이 있는가를 물었답니다. 한국의 부모가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자녀에게 가르칠 의향은 36개국 중 꼴등이었다네요.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경쟁에서 이기는 일에 모든 것을 거는 사회의 부모들이니 당연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나라 정치현실이 주는 스트레스는 도를 넘고 있습니다. 너는 내 편이 아니니 네가 하는 모든 것은 잘못됐고, 넌 내 편이니 네가 하는 모든 것은 다 괜찮고... 그것이 가능할까요? 정치꾼들이 나누어놓은 편 가르기에 휘말려서 늘 그들을 대신한 대리전에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나요?


싸움은 그들이 내세운 논리에 놀아나는 우리들이 편을 갈라 대신해주고, 정치꾼들은 유권자끼리 싸움만 붙여놓고 뒤로 빠져서 구경한 다음 잇속만 챙긴다는 생각을 하면 억울하지도 않나요?


누구라도 잘못했으면 지적하고 비판하며, 누구라도 잘하는 짓이면 인정하고 칭찬하는 균형과 공평, 그리고 객관적 분별 의식이 우리의 보편적인 상식이 될 날은 영영 없는 것일까요?


정치꾼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수가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하면, 그것을 혼내주어서 그런 짓을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최소한 종교지도자들은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야 이편에 섰건, 저 편에 섰건 결과적으로 모두가 다 행복하게 잘 살게 되는 길이 열리는 것 아닌가요?


사회가 너무 매서워지고 있고, 너무 매정해지고 있습니다. 잔인함과 결별해야 할 텐데, 점점 잔인함에 친숙해지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의 여유로움과 지는 자의 호탕함이 주는 멋스러움을 우리는 점점 등 뒤로 던져버리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기는 자는 방자함으로, 지는 자는 원한으로 모두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노려보는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 만큼 살아서 다행인데, 우리 자식들이 살아야 할 세상은 어쩌고, 이제 태어난 저 손주 녀석들 세대가 살아야 할 세상은 어쩌나,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각 개인의 복지를 넘어, 하나님 나라 공동체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데, 우리의 강단은 이기심 가득한 개인복지와 개인 성공 외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쯤은 모두 함께 얽혀서 사는 공동체로 그의 복된 나라를 이루어가야 된다는 사실을 힘써 설교해야 합니다.


문 닫은 카페 융이 아무래도 맘이 짠해서 간판이라도 다시 한 번 볼 양으로 하던 일 멈추고 가서 안을 들여다보니, 앗싸! 휑한 가게 안에 사장님이 혼자 물건을 정리하고 있네요. 문을 밀고 들어가 화들짝 놀라는 주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간 손해는 안보았어요?” “많이 손해봤지요!” “어제 왔더니 없어져버렸기에, 너무 서운해서 다시 한 번 와봤어요!” “감사합니다!” “어디를 가든 잘 사세요!” 감사하다며 꾸벅 절을 하는 사장님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헤어져 돌아와 앉으니, 마음은 여전히 쓸쓸하고 짠합니다.


커피 집 문 닫았는데, 왜 교회 문 닫는 목사들 생각이 문득 날까요? 여기저기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교회 문을 닫았단 소식이 자꾸 들려옵니다. 그 지경인데 낼 힘이 남아있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힘을 내보세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순종할 길을 어떻게든 찾아봐야 할 텐데... 이래저래 수심만 깊어지는 세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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