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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03 (00:00:00)
-단번에 결혼 승낙한 이유
정창균 목사

저의 큰 누님은 연애 결혼을 하였습니다. 매형은 외아들 이었습니다. 사돈
할머니는 20대 후반에 혼자 되어 이 아들 하나 키우며 살아 온 분이었습니
다. 당신의 아들이 결혼 하고자 하는 아가씨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인사차
시골 저희 집에 오셨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인사차”이지, 사실은 아가씨
의 가정 환경을 살펴보려고 “심사차”오신 것이었습니다. 연애 중이던 누
님과 매형에게는 물론 우리 집안 식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
다. 여기서 이 할머니가 결혼을 허락지 않으시면 누님과 매형은 그동안의
연애가 물거품이 되고, 우리 집안도 큰 상처를 입을 판이었으니까요. 20대
에 혼자되어 외아들 대학까지 졸업시키며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라면 보
통 수준 보다는 훨씬 더 까다로우실 것이라는 생각에 저희 부모님은 이 분
이 머무시는 이틀 동안 다소 긴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누님의 결
혼은 의외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두 분은 결
혼을 하였고,
그 할머니가 90이 훨씬 넘으신 지금까지 30년도 넘는 세월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누님이 결혼한 후 이 할머니는 저를 작은 아
들 같다며 많이 사랑해 주셨고, 저도 이 할머니의 사랑이 고마와서 유학
가 있는 동안에도 매년 음력 팔월 열이튿 날이면 할머니의 생신을 잊지 않
고 축하 카드와 전화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누님이 결혼한 후 어느 날인가 할머니는 제게 왜 첫 순간에 누님을 며느
리감으로 합격시키셨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것은 순전히 저희 어머니 덕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에는 80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연세가 높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대변을 잘 가
리지 못하셔서 자신도 모르시는 사이에 그냥 옷에다 대변을 보시곤 하였습
니다. 그렇게 한번 일이 터지면, 치우는 일이며, 냄새를 빼는 일이며, 옷을
갈아 입혀드리는 일이며, 복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
이 생기면 우리는 으레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 생각해 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께는 잡수실 것을 많
이 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데 사돈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할아버지와 관련된 한 광경을 목격하신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
머니께서 할아버지께 간식을 드리시는데, 아이들이 있다가 어머니께 핀잔
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할아버지께) 먹을 것을 자꾸 드리지 마
세요. 그러니까 옷에 똥을 누시잖아요!” 그러니까 제 어머니의 말씀이,
“내가 치우지 너희들이 치우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할
아버지께 먹을 것을 드리시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
“이런 어머니의 딸이라면 볼 것도 없다”싶어서 그 순간에 우리 누님을
며느리로 맞기로 마음에 결정을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딸
은 결국 그 어머니의 모습대로 된다”는 고래의 통설을 굳게 믿고 계셨습
니다.
얼핏 생각하면 참으로 엉뚱하고 어이도 없는 며느리 선택 기준같아 보입니
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은 그가 자란 가정의 환경과 가정 교육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은 우리 선조들의 혜안이었습니다. 부자로
살았는지 가난하게 살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고, 자녀들을 어떠
한 철학으로 가르쳤으며, 가정의 분위기가 어
떠하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것은 저희 부모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사실은 이 할머니께
서 누님의 가정 환경을 심사하기 위하여 저희 집에 오시기 훨씬 전에, 저
희 아버님께서도 매형의 가정에 대한 “탐문 조사차”매형의 시골 동네에
가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그 집안을 물어보고, 먼발치서 매형의 어머니와
집도 보고 돌아오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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