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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쓸모없는 시대 히브리서 411-13

 

< 정창균 목사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것은 교회와 민족을 살리는 설교의 부흥

 

설교할 기회가 자꾸 없어져 갑니다. 주일 밤 예배를 없애는 교회가 늘어가고, 수요 예배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교회가 늘어갑니다. 예배가 자꾸 없어지니 당연히 설교가 없어져갑니다. 그런가하면 교회가 자꾸 없어지는 바람에 설교할 곳이 자꾸 없어져 갑니다.

 

얼마 전에도, 이제 교회의 문을 닫는다는 제자 목사의 글을 읽었습니다. 엊그제도, 고생만 하다가 이제 한계에 이르러서 도리 없이 교회의 문을 닫는다는 후배 목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설교할 기회가 없어지고, 설교할 곳이 자꾸 없어져 가니, 설교는 점점 쓸모없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설교를 잘해야 한다며 애를 쓰는 우리의 몸부림이 마치 허공을 향해 헛발질을 하는 것처럼 허망하게 생각되어 깊은 시름과 회의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설교할 곳이 없어져 가니 설교가 쓸 데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설교가 난무 하니 결국 설교할 곳이 없어지는 결과가 온 것입니다.

 

설교는 단순히 주일 예배의 30분짜리 순서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단순히 목사의 수많은 일 가운데 한 항목이 아닙니다. 설교를 제대로 하기 위하여 진력하는 설교자는 그의 삶과 사역의 곳곳에서 그 정신이 배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과 교인들에게 은혜가 되어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게 됩니다.

 

사실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설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첫째는 강단에서 본문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설교는 본문을 이탈하게 됩니다. 둘째는 강단을 내려와서는 치열하게 자신이 선포한 말씀대로 일상을 살아냄으로써 강단에서 선포한 말씀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설교는 단순히 말장난에 가까운 연설이 될 뿐입니다.

 

설교에 대한 한국교회 교인들의 불만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설교에서 본문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불만입니다. 둘째는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한 대로 살지 않는다는 불만입니다. 셋째는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한 대로 목회를 하지 않는다는 불만입니다.

 

결국 잘하는 설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설교는 강단에서는 본문을 말하고, 강단 아래의 일상에서는 선포한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설교가 연설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단순히 연설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말씀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는 말씀은 모두가 말씀의 선포와 순종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설교가 예배의 성패를 좌우하고, 설교가 목회자의 모든 사역을 좌우합니다. 설교에 은혜 받지 못하니 교인이 모이지 않고 오히려 떠나갑니다. 설교에 은혜 받지 못하니 교인들이 세상일에 사로잡혀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교할 곳이 점점 없어져 가는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것은 설교의 부흥입니다.

 

교회의 부흥이란 사실은 말씀의 부흥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부흥을 이루는 근본적인 주체는 우리의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들이 문을 닫는 시대라고 하여, 또는 설교가 점점 무력해지는 현실이라 하여 설교에 대하여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설교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오히려 설교의 부흥을 위하여 더욱 몸부림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힘 있게 선포되면 교회는 흥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교회가 병들었으며, 병든 교회는 그 사회가 암흑의 시대로 접어드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지난 이천 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얻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한 시대가 암흑기에 접어들었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잠든 교회가 있고, 잠든 교회가 있는 곳에는 잠든 교인들이 있고, 잠든 교인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잠든 강단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강단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설교자들은 장소가 어디가 되든지, 규모가 얼마가 되든지, 내가 서는 강단에서는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는 설교자가 되고야 말겠다는 결단으로 설교에 진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을 점점 더 크게 반역하고, 교회를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몰아넣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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