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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1)

누가복음 23:26-31

울어야 하는 진짜 이유

정창균 교수_합신 실천신학


3년 전 시중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기독교인들의 눈에서 눈물
을 쏟아내게 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시는 장면을 너무나 잔인
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자극적으로 묘사한 영화였습니다.

인기 끈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

그 당시 그 영화를 보라고 권하는 말이나 그 영화를 본 소감의 공통된 핵심
은 영화를 보면서 모두가 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들도 그 영화를 보
고 울어서 눈이 벌개져서 나왔다는 둥, 여하튼 모두 울었다는 것이 그 영화
가 좋은 영화임을 말해주는 증거처럼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영화는 예수님이 잡혀서 넘겨지는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얼
마나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는가를 잔인할 정도로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습니
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런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왜 그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우는 것인지를 묻
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영화를 보니 우리 예수님이 저렇게 지독한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
에 실감을 하고 그런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이 너무 불쌍하고 딱해서 나오
는 동정과 연민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끌려가면서 고난당하신 그 날의 그 현장에도 그렇게 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재촉하는 여론을 더 이상 거스를 용기가 없던 빌라도는 예수를 군중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끌려가며 예수
님이 당하는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서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뒤를 많은 사
람들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군중 가운데에 일단의 어떤 여자들은 가슴
을 치고 슬피 울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 여자들은 왜 가슴을 치
며 왜 슬피 울고 있는가? “그를 위하여” 즉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위하
여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27절).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있는데 고난당하며 멸시당하며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향
하여 가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이 여자들을 향하여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
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이 여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괴로워하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 말씀대로라면 그들은 잘못 울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들을 향하여 뒤돌아
선 예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울
고 있는 것이라면, 너희는 잘못 울고 있다!”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며 멸시당하며 뺨을 맞으며 조롱당하는 주님, 잔인한
모습으로 고통의 극치를 경험하며 십자가에 달려버리는 주님을 보면서 그 주
님을 위해서, 그 주님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 울고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주님이 고난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너무 안됐다고, 얼마나 고통이 크
셨겠냐고, 얼마나 괴로우셨겠냐고, 얼마나 모욕적이고, 외로우셨겠냐는 생각
이 우리의 마음을 압도하고, 그것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래서 우리의 눈물 신경을 자극하여 흘리는 눈물이라면 그것
은 잘못된 울음이라는 것을 고난의 길을 가다 말고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서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정말 불쌍한 것은 내가 아니고 ‘너희와 너희 자녀
들’이라고 이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볼 때마다, 생각 할 때마다 우리가 울어야 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심으로써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
고자 하시는 것인가? 주님이 당하는 혹독하고 참담한 고난을 보면서 무엇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저렇게 참담한 모습으로 죽게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저렇게 죽여야 될 만큼 참담한 나의
죄 때문에 울라는 말씀이 아닐까?
그리고는 주님이 당하는 고통 속에서 그 끔찍하고 참혹한 내 죄가 주님의
저 고통 때문에 값이 치러지고 내 죄가 해결되었다는 사실로 감사하여 울라
는 말씀은 혹시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직도 주님이 지불하신 저 고난의 대가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
람들, 그리하여 기다리고 있는 그 끔찍한 마지막 상황(29-31절)을 향하여 겁
없이 나아가고
있는 내 주변의 그 사람들을 위하여 울라는 말씀이 아닐까?

정작 불쌍한 것은 우리와 이웃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돌아보며 울어야할 진
짜 이유를 발견하고 마음껏 주님을 붙잡고 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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