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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00:00:00)
쓰나미 충격파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지난 성탄절 다음날 인도양 주변국들을 순식간에 덮쳐버린 쓰나미는 수많
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에 사랑하는 이들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특히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참상 앞에서 세계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나마 도
처에서 펼쳐지는 온정의 손길이 위로와 소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에 이번 쓰나미는 신자들에게 당혹감을 가져다줄 수 있습
니다. 불신자들이야 문제를 자연의 법칙과 우연에 넘겨 버리고, 다신교에서
야 각종 신들에게 재난을 하나씩 배정하면 그만이지만, 유일신을 창조주와
구세주로 믿고 그분의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에서 재난은 인간의 이해가 미
치지 못하는 신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쓰나미 충격파가 신앙과
신학의 차원에서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편으로 쓰나미는 우상파괴자입니다. 쓰나미는
먼저 피상적인 인과응보 관
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합니다. 재난이 무조건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단정하
는 고정관념을 재고하게 만듭니다. 노아시대에 닥쳤던 홍수는 분명 타락한
인류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자녀들과 소유, 그리고 그의 몸
에 닥쳤던 재난은 어떤 특정한 죄에 대한 벌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경우에
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다고 단
정하기 어렵습니다.

쓰나미는 나아가서 하나님이 인간 문제의 무골호인 관리자라는 선입견에
철퇴를 내립니다. 하나님은 말썽꾸러기 인간들이 저질러놓은 온갖 문제를 정
리한 다음 조용히 뒤안에서 호출을 기다리는 해결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
하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때에 대령해 놓는 지니 같은 피고용인이 아닙니
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자연과 역사를 운행하시는 주권자
입니다.

쓰나미는 또한 사람들이 자연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교정합
니다. 지구는 완벽한 기계도 아니며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품
도 아닙니다. 얼마든지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쓰나미는
하나
님의 그림자를 자연에 투영하여 만든 낭만적인 자연주의를 파괴합니다. 자연
은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낭만주의적 자연관은 일종의 우상숭배
입니다.

쓰나미는 온갖 고통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려는 인간의 고질병을 드러냅니
다. 이번 경우에도 사람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은 마땅
히 해야 할 일을 방치하고 있다가 그 책임을 하나님께 덮어씌우는 우를 범하
기 쉽습니다. 누군가가 지적한대로 매일 2만 9천명의 어린이가 치료 가능한
병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잠잠했던 이들은 이번 불행이 하나님의 탓이라고
떠들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쓰나미는 파괴된 자리에 새 것을 세울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
니다. 지구촌의 자원과 문제를 함께 나누는 상생의 지혜를 찾아보라고 재촉
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이웃으로 알고 인류애를 실천함으로써 과거의 적대관
계를 청산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배우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인
류는 참담한 불행을 소중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쓰나미는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십
자가에서 우리는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시고 인간의 구속
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고난을 봅니다. 십자가는 인간
의 구속을 이룰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쓰
나미는 재난과 고난의 종국적 해결책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
나님의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마지막으로 쓰나미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리켜줍니다. 성경이 재난에 대
한 철학적인 대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측량할 수 없는 섭리의 신비는 하나님
께 맡기고 명백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쓰나미의 틈새를 통하여 언뜻언뜻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초월성이 하나
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 줍니다. 심판의 그림자로서
의 쓰나미는 구속의 완성을 향한 믿음의 긴장을 팽팽하게 당겨주고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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