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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7 (00:00:00)
기어이 번지점프를 하다니....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등으로 유명한 여배우의 죽음을 계기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리스도인임이
알려지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살에 대한 논란도 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
다. 자살의 동기를 밝혀줄 개인적인 정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
의 신앙과 삶을 판단하기보다는 관련 이슈들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
니다.

처음 이슈는 자살한 그리스도인의 구원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살’ 하면
흔히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과 가룟 유다를 떠올립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왕으로 선택한 다윗을 죽이려 했고,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팔았기 때
문에, 자살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단정하기 쉽습니다. 자살은 분명히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범죄와 계명에 대한 불순종을 포함합니다. 따라
서 목사는 전통적으로 자살한 사람의 장례를 거부합니다. 자살한 그리스도인
은 천국에 가
지 못한다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이러한 단정은 자살하지 않을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셈입니다.
성경에 없는 구원의 조건을 추가함으로써 복음의 은혜를 흐리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아무리 중한 죄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군림할 수 없
기 때문입니다. 구원불가 주장은 또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속죄의 능
력과 범위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구속의 은총을 확신하는 일이야말
로 최상의 자살방지책이 될 것입니다.

다음 이슈는 마음과 정신의 질환에 대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믿음
과 상관없이 육체의 질병에 걸릴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마음의 감기라는 우
울증의 치료조차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경정신과적인 질
환을 믿음의 결여나 사탄의 역사로 정죄하는 태도는 상태를 악화시킬 뿐입니
다. 정신적인 질환도 육체적인 질환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도움과 치료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불신앙이 아니라 일반은총을 받아들이는 신앙적인 태도
입니다.

이와 연관된 이슈는 기도입니다. “맨날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램이었다”
는 유서의 내
용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녀가 나름대로 기도하며 몸부림
친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기도하라고 충고합니다.
기도해도 안 된다고 하면 더욱 열심히 기도하라고 다그치기 쉽습니다. 그러
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도하라는 권고를 남발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욥의 친구들이 던진 충고처럼 더 큰 좌절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태를 악화시
킬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강조가 의사의 치료를 부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
에 따라서는 오히려 요청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이슈는 그리스도인의 직업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배우가 될
수 없을까요? 영화가 예술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는 결국 예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됩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도
덕적 실용성을 결여한 미의 추구가 과연 합당한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프랜
시스 쉐퍼의 견해는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에 야긴과 보아
스라는 두 기둥이 실용적 쓰임이 없이 심미적 이유로 세워졌다는 점을 들어
실용성이 결여된 미의 추구도 그리스도인에게 용인되는 영역으로 봅니다.


아가서 쉐퍼는 그리스도인 예술가는 좁은 의미의 ‘기독교적인’ 것만을
그려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그리
는 작업도 합당한 예술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인간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작
업에 몽학선생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쉐퍼는 죄가 아닌 모든 분야에서 하나
님의 통치를 인정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직업에 대하여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선
정적인 경향과 죄악에 물든 현실, 그리고 상업적인 이미지와 내면의 자아가
유리된 개인의 삶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의 어려움에 압도되어
중요한 문화의 영역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
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내리신
대위임령은 아담이 받은 문화명령의 연장이자 확대이며 완성이기 때문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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