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조회 수 : 5420
2005.08.03 (00:00:00)

영악한 그리스도인의 초상


성주진 교수_합신 구약신학 교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신약시대에 유대사
람들은 초대교회의 거룩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경외심을 가지고 제자들을 칭
송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호감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여론조사
는 친절(?)하게도 교회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낮다는 통계를 보여줍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가 이렇게 비쳐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
니다. ‘기독교인은 영악하다’는 인상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
다. 사실 영악한 그리스도인의 초상은 바울이 그리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
의 모습과 대조가 됩니다. 예수님도 양같이 어리석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
혜로워지라고 당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당부를 영악해지라는 말씀으로 오
해하기도 합니다만.

뱀 같은 지혜는 비둘기 같은 순결과 짝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뱀 같은
지혜는 영악한 지혜가 아니라 성결한 지혜를, 순결을 포기한 영악함이 아니

라 순결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교훈은 핍박을 각오한
전도자들을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영악하게 굴
면서 뱀의 지혜를 말하는 것은 오늘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
는 이들에게 심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영악한 성도의 초보단계는 양다리 걸치기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
성들처럼 담을 타고 앉아서 하나님과 세상 중에서 유리한 쪽, 상황에 따라
득이 되는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장애자를 돕는 행사에 참여하면
서 다른 때는 장애시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남이 하는 것은 투기이
기만 내가 하는 것은 투자요, 남의 공돈은 불로소득이지만 나의 불로소득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우깁니다.

영악한 종교인은 제도를 잘 이용합니다. 그중 압권은 예수님이 지적하신 고
르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경건하다는 명예를 얻고, 부모를
봉양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피하면서,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입니다. 그러나 이 관행은 드릴 생각 없이 서약하고, 자기 욕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합리화하며, 자기 입맛대로 성
경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신
앙적, 신학적 기만행위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도 오용을 피할 수 없습니
다. 열매가 없는 삶을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은총에 기대어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이미 십자가를 지셨다는 이유
로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어린양이 이미 영단번의 제사를
드렸다는 이유로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
를 위해 죽으신 사실은 강조하면서도 형제를 위하여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은 외면합니다. 말로, 머리로, 감정으로는 열심을 내지만 자신을 드리
는 일은 절대 사절입니다. 이렇게 영악한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를 자기 희생
이 없는 종교로 만들어 버립니다.

영악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비까지도 이용합니다. ‘나중에 회개해도
하나님은 용서하실 것이다. 이것이 그의 직업이니까’라는 계산으로 심상하
게 죄를 짓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용서를 당연시하
면서 회개의 제스처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마저도 요령껏 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
다.

영악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 교리도 얼마든지 오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믿음이 좋다고 자랑
합니다. 성경은 이런 믿음을 허탄한 믿음이라고 책망하면서 심은 대로 거두
는 원리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일수록 그 믿음으로 인
해 하나님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손해를 입어도 감사하고, 환란을
당해도 기뻐하며, 박해를 받아도 축복하며, 까닭 없이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리석은’ 제자가 되기에는 우리가 너무
영악해진 것은 아닌지요. 조금 어리석고 뒤떨어져 보여도 그리스도를 본받
는 제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히 영악한 그리스도인의 초상을 지우
고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의 초상을 그려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21 김병혁의 vivavox(3)_열정 칼빈주의자의 고백 (72)
rpress
6478 2006-02-22
120 김병혁의 vivavox(2)_개혁된 교회Reformed는 항상 개혁되어 (20)
rpress
5226 2006-02-17
119 김병혁의 vivavox(1)-황우석 신화와 한국 교회
rpress
5000 2006-02-16
118 <성주진 칼럼> 신앙 유전자?
rpress
5089 2006-02-16
117 <성주진 칼럼> 탕자 콤플렉스
rpress
5297 2005-11-24
116 <성주진 칼럼> 난 사람, 된 사람
rpress
5605 2005-10-28
115 <성주진 칼럼> 일상과 이벤트
rpress
5094 2005-09-30
114 <성주진 칼럼> 엘리사 스캔들
rpress
5848 2005-08-31
Selected <성주진 칼럼> 영악한 그리스도인의 초상
rpress
5420 2005-08-03
112 <성주진 칼럼> 올무인가, 도약판인가?
rpress
5224 2005-07-07
111 <성주진 칼럼> 신화, 판타지, SF영화 바로 보기
rpress
6337 2005-06-13
110 <성주진 칼럼> “스타일이 달라서…”
rpress
5372 2005-05-12
109 <성주진 칼럼> 3초만 기다리세요
rpress
5432 2005-04-14
108 <성주진 칼럼> 기어이 번지점프를 하다니....
rpress
5505 2005-03-17
107 <성주진 칼럼>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rpress
5446 2005-02-17
106 <성주진 칼럼> 쓰나미 충격파
rpress
5524 2005-01-12
105 <성주진 칼럼> 성탄절에 던지는 세 가지 질문
rpress
5778 2004-12-16
104 <성주진 칼럼> 불평의 광야에 핀 감사의 꽃
rpress
5405 2004-11-18
103 <성주진 칼럼> 종교적인, 너무나 종교적인
rpress
5244 2004-10-20
102 <성주진 칼럼> 야베스의 기도
rpress
6812 2004-09-23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