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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6 (00:00:00)
성주진칼럼

신앙 유전자?

성주진 교수_합신 구약신학 교수

연말을 맞아 지난 한 해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신앙생활의 면면을 반추해 봅니
다. 얼마나 많은 ‘이문’을 남겼는지, 감사와 더불어 아쉬움이 많은 때입니
다. 좀더 믿고 신뢰하였더라면렁렁 좀더 사랑하고 좀더 섬기고 좀더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러운 것입니다.

반복된 신앙의 기복을 탓하는 연례 행사를 벗어나 원하는 수준에서 신앙생활
을 영위할 어떤 묘책이 없을까요? 최근의 유전자 연구와 유전공학의 발달이
유력한 후보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업적’
으로 평가받는 유전자 연구는 생물학적 정보를 이용하여 무병장수를 이룰 수
있다는 유토피아의 꿈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유전학적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과제는 인류에게 맡겨진 중대
한 도전입니다. 기독교회는 이러한 정보 자체를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퇴
행적 복고주의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책임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자 이 땅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며 사용할 수 있을지를 심사
숙고하는데 동참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벌써 믿음마저도 유전자에 의하여 결
정되는 것으로 보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단의 진화생물학자들은 종교적인 믿음이 인간 본성의 표현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신을 믿게 하는 일단의 유전자들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심지
어 어떤 신경학자는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에게서는 뇌의 측두엽에서 더 크
거나 활성도가 높은 신경모듈이 발견된다고 주장하며 광신도의 경우는 일종
의 측도엽상의 간질현상이라고 합니다(리들리).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지 않더라도 유전인자는 인간 설계도요 청사진이자 인간의 운명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유전학의 발전과 경향에 대하여 잘못된 두 가지 대응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하나는 유전자 결정론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신앙에 관하여는 한 사람의 신앙과 불신은 유전적으로 그렇게 프로그램 되었
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기계론적 숙명론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자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선택의 자유
와 책임과 아울러 죄의 실체와 구원의 필요성이
부정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위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는 유전자를 조작하여 믿음을 강화하
는 것입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좀더 큰 믿음으로, 믿음이 지나치다 싶은
사람은 완화시키고 믿음이 약한 사람은 믿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환경처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믿음을 가
질지 결정하는 그것만이 믿음의 내용이 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인간이 피조물의 자리를 떠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인간에
게 있어 가장 복된 자리는 피조물의 자리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
로 지음을 받았기에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자기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할 때에 하나님이 선을 그어 제자리에
주저앉힌 일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 발달한 기술로 하나님 대신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한 바벨탑 사건은 분열과 파국을 초래하였습니다.

오히려 인류는 기술을 노아처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에 따라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는 그의 식구들
을 구출하
는 수단이자 인류의 구원을 준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책
임은 유전자의 생물학적 정보가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온 인격으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믿음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서 어떤 유전자의 교체
로 치환될 수 없습니다. 주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와 사랑, 그리고 성령의
역사와 순종의 삶을 대신할 수 있는 유전학적 대체물은 없습니다. 더욱 진리
를 붙잡고 창조의 질서를 지키며 사랑과 순복에 힘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근
본적인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비록 기복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삶은 선순환을 이루는 나선형의 모습을 지니
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인류의 미래는 유전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께 달려 있으며 인간은 이 놀라운 선물을 선용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주진 칼럼’을 애독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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