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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no image <정창균 칼럼>딸 아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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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3 2001-10-04
딸 아이 생각 “아이가 주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배우자를 만나 경건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이 아이가 이루는 가정을 통하여 경건한 자손이 대를 이어 태어나게 하옵소서.” 이것은 저희 부부가 3남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해오고 있는 기도 가운데 하나 입니다. 큰 아이 태어나고 육개월 되었을 때, 저는 문득 이 아이의 결혼을 위 해서 지금부터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그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엄마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큰 아이가 이제 스무살이니 이십년 가까이 이 기도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아이가 금년에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제법 어른 티를 내 고, 재미있어 하고, 발랄하게 지내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한편으로는 행복해 보이기도하여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2학기 들어서면서 왠지 쓸 쓸 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때로 는 뭔가 불안해 하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너무 바쁜 아빠여서 예전처럼 다 정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가 하여 드라이브를 같이 해보기도 하 고, 같이 음식점에 가서 마주 앉아보기도 해보지만 별효과가 없어보였습니 다. 눈치를 살피고 말을 시켜보기도 하였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란히 누 워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도 해보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딸아이에게는 고민 이 있었습니다. 자기 주위에는 이미 짝이 생겨서 데이트를 시작한 친구들이 있는 모양이었습 니다. 자기도 맘이 끌리는 선배가 있었는데 살펴보니 아니다 싶어서 잊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관심을 보여 오는데, 신앙이 달라 서 아예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형편이고, 같은 과의 선배 한 분이 의도적으 로 접근을 하는 것 같은데 왠지 마음이 없고…. 그러다 보니 뭐가 뭔지 모르 겠고, 그러면서 애인과 잘 지내는 다른 친구를 보면 자신이 왠지 쓸쓸해 보이 기도 하고, 자신은 뒤쳐지는 것 같고, 관심을 갖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려고 해도, “야, 2학년 지나기 전까 지 짝을 못찾으면 영영 못찾고 마는 거야”라 는 선배의 말이 생각나서 장래가 불안해지고 그러는 모양이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남자들이 자기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싫어해서 결혼을 잘하는 사람 이 드물다는 떠도는 소문까지 있어서 우리 아이는 더 불안해지기도 하는 모양 이었습니다. “다른 대학교에 갈 걸, 괜히 이 학교에 왔나봐요” 하는 말이 완전히 농담같지만은 않았습니다. 데이트를 해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 서도 아니고, 자기만 짝이 없어서 친구에게 기가 죽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이 러다가 혹시 결혼을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장래에 대한 순진한 고민이 이 아이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나 결혼하면 엄마 아빠를 모시고 살거야”라는 말은 했어도, 결혼을 안한다는 말은 결코하 지 않았었거든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저는 비로소 이 아이의 고민을 알아차렸습니다. 벌써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할 만큼 이렇게 컸구나 하는 생 각이 새삼스럽게 들면서 대견스럽기도하고, 이제는 나의 슬하에 있는 아이가 아님을 인정해야 할 때가 가까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못된 이기심 r 의 발로인지 몰라도 왠지 설명하기 힘든 쓸쓸함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 다. 그러나 힘주어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너 태어나서 6개월 되었을 때부터 엄마 아빠가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니?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사람 만나서 멋진 결혼하 게 해주실테니 염려하지 마라.” 사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결혼에 대하여 믿 는 바가 있습니다. 태속에 있을 때부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모른 체 하시 랴 하는 베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 을 가끔씩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진 젊은 엄마들에게 저는 꼭 그 이야기 를 합니다. 그 아이의 결혼을 위해서 지금부터 기도하라고.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저에게도 벌써 세 번의 주례가 줄을 서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단풍이 그렇게도 예뻣었는 데…. 이 가을에는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저렇게 훌쩍 커버린 딸아이를 옆자리 에 태우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인생을 이야기하며 이계곡 저계곡 단풍 구경이 라도 하루 다녀와야겠습니다.
40 no image <정창균 칼럼>고통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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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 2001-09-20
고통의 때 비행기 한대가 거대한 건물을 향해 돌진하더니 화염을 일으키며 반대 편으 로 터져 나왔습니다. 조금 있더니 다른 비행기가 옆의 또 다른 건물을 향하 여 고개를 쳐박 듯이 들어가더니 불꽃 연기를 일으키며 반대편으로 터져나와 사라져 갔습니다. 잠시 후, 화염과 구름연기로 덮여가던 그 큰 건물이 땅속 으로 빨려 들어가 듯 거대한 구름 먼지를 일으키며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습니 다. 그리고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그 곳에 는 무너져내린 건물의 철골만 마른 뼈다귀처럼 앙상하게 서 있었습니다. 만 여명의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하였습니다. 지난 주간, 온 세계의 수 많은 사람 들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TV에서 본 장면이었습니다. 흔해 빠진 만화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지구로 쳐들어 온 외계인과 벌이는 우주 전쟁 영화의 한 장면 도, 스타트랙의 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실제로 벌어 진 실제 상황이었 습니다. 원한과 분노와 야망으로 똘똘 뭉친 집단의 과격 분 자들이 제 목숨과 맞바꾸면서 벌인 참혹하고 끔찍한 발악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잔학함의 끝은 어디인 가? 이 의문이 탄식처럼, 비명처럼 한 주간 내내 가슴을 맴돌았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함께 있다는 말을 하였다지만, 그 테러 현장이야말로 악마적 발악의 절정인 듯 하였습니다. TV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그 처참한 모습을 지켜본 온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각 인되었을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깊은 상처와 불신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불길처럼 치솟아 오르는 복수심에 찬 분노와 그로 말미암아 나타날 개인적, 사회적 병리 현상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수천 명의 시민들을 그 안에 담 은 채 맥없이 무너져 내린, 절대 안전을 자랑했다던 110층 짜리 거대한 쌍둥 이 빌딩의 잔해 앞에서 본능처럼 고백하게 되는 인간의 왜소함과 무력감과 깊 은 좌절감은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또 함께 TV 앞에 앉아서 그 악하 고 참혹한 인간의 치부를 함께 보아버린 온 세계의 어린 아이들이 받 았을 충 격과 정서적인 악영향은 어떻게 해소 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순간은 충격으 로, 한 순간은 아픔으로, 그리고 분노로, 절망으로, 허탈함으로, 그리고 어 느 순간에는 무감각으로, 온갖 생각과 감정이 혼란스럽게 밀려왔다 밀려갔습 니다. 그러다가 문득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하신 말씀 몇 마디가 떠 올랐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디모 데후서 3:1). 예수님이 오실 때를 기다리며 사는 이 말세의 때에 경험하게 될 고통에 대하여 알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그 고통의 양 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 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 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 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 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 은 부인하는 자니 이와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2-5절). 사도 바울 이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는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모습들을 곰곰이 살펴 보면 결국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지독 한 이기심”과 “자기중심”, “자기 최우선”의 인생철학인 것입니다. 그래 서 사도는 권면합니다. "네가 돌아서라!" 이 시대에 끝없는 고통을 만들어 내 는 그러한 철학에 대하여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서라는 말씀일 것입 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도 본질적으로는 그 테러리스트들과 다름없는, 고 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로 머물고 말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동생이 자신의 안전을 전하는 메일을 보내면서 끝에 덧붙인 한마디가 제게는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24시간 내내 테러현장을 방송하 면서도 화면 밑에는 어느 지역은 어느 교회, 어느 지역은 어느 교회, 지역별 로 교회를 소개하면서 그 교회에서 기도회가 열리니 모두 기도회에 참여하라 는 자막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며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39 no image <정창균 칼럼>그 눈물이 그 눈물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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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4 2001-08-14
그 눈물이 그 눈물일 줄이야! 오래 전 이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보니 나이 드신 여집사님 한 분이 자주자 주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저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 은혜받 으시는구나." 설교하는 저도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집사님이 다가 오시더니 제 손을 꼭 쥐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약한 몸으로 소리소리를 지르며 힘들게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되보여 자꾸 눈물이 나와서 혼 났네요." 한순간에 저는 맥이 탁 풀어졌습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은 것이 아 니고, 그 약한 체구를 가지고 그 고생을 하는 제 신세가 참 처량하고 안되어 보여서 나오는 동정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몸무게 52kg 미만이 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눈물이면 다 같은 눈물인 줄 알았다가는 큰 코 다치겠구나." 아마 대부분의 설교자들에게는 저의 이 경험이 결코 낯선 이 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가르친 제자 목사님 한 분도 그런 경험을 한 모 양입니다. 글을 하나 써 놓았는데, 그 글을 보니 오래 전 제 생각이 다시 나 서 제자 목사님의 글을 여러분께도 소개 합니다. 갓 서른에 목사 안수를 받고 한번 잘해보겠다는 열정과 열심으로 방배동 어 느 교회를 섬기던 때였습니다. 분열과 분쟁의 와중에서 젊은이들은 다 떠나 고 오십을 훌쩍 넘기신 분들 30여명만이 덩그라니 널찍한 예배실을 지키고 있 는 교회였습니다. 마른나무에도 싹이 나고 고목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데... 저는 교회의 체질을 한번 바꾸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새벽 시간에 홀로 강단에서 무릎을 꿇을 때마다 저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곤 하 였습니다. 설교 시간에는 성경을 모두 같이 찾아가면서 한 목소리로 읽도록 했습니다. 때로는 돌아가면서, 때로는 인도자인 저와 한 절씩 교독으로... 그 러던 어느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었던지 한 사람씩 저녁예 배 참석자가 늘어가더니 평소에 저녁 예배 참석을 전혀 않던 K여집사님 까지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아, 이제 교회에 새 바람(?)이 부는가 보구나...) 저 는 여느 때처럼 성경 본문을 교독했고, 설교를 시작했는데 앞자리에 앉은 K집 사님이 연신 눈물 을 훔치는 것이 아닙니까? (옳거니...은혜를 받으시는가보 다...) 저는 더욱 용기를 내어 설교를 했는데, 집사님은 예배를 마치고도 한참을 그 렇게 울고 가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를 안나오는 것입니 다. 몇 주일째 결석을 하던 즈음 박 권사님이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아무래 도 K집사가 시험이 든 모양이니, 목사님께서 심방을 좀 해 보세요..." 그래 서 심방을 했습니다. K집사님은 그래도 목사가 왔다고 문을 열어주고, 아랫목 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집사님, 무슨 힘든 일 있으세요?" 나의 물음에 입술을 움찔움찔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한참을 뜸을 들이던 집 사님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너무 섭합 니다. 흑흑..." 뜻 밖이었습니다. "예? 저한테 섭섭하시다구요? 뭐가요?" "아 니, 내가 무식한 년이라고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래욧, 나 한글 모 르는 까막눈이유 까막눈. 나보고 성경을 읽으라고 꼭 그렇게 만인 앞에 망신 을 주셔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내...그 날 얼마나 서럽고 분하든지 울 엄 니 돌아가실 때 보담 더 많이 울었습니다."어이가 없었습니다. "하하... 집 사님, 그 눈물이 그 눈물이었어요? 난 또... 맨 앞자리에서 은혜 많이 받으시 느라 눈물 흘리신 줄 알았지요." 저는 정중히 사과하였습니다. "집사님, 젊 은 목사가 잘 몰라서 그런거니까 이해하시고 맘 푸세요. 그리고 글 모르면 입 만 벙긋벙긋하시지 그러셨어요...? 어차피 다 같이 읽는 건데요." 결국 집사 님은 마음이 풀어지긴 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제 마음속에는 목회가 쉬운 일 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정신이 번쩍 나면서 얼마나 식은 땀이 나던 지요. 시험이 들려니까 성경을 읽으면서도 들더라구요. 지금은 성경을 교독하 거나 할 때는 "글씨가 잘 안보이시는 분들은 잘 듣기만 하셔도 됩니다."하고 안전장치를 해둡니다. 다 그때 배운 지혜입니다. 설교를 하다 보면 별 것이 다 시험거리가 되기도 하고, 별 것이 다 은혜의 실 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설교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러니 목사는 설교 를 잘 해야 합니다.
38 no image <정창균 칼럼>우리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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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6 2001-07-26
우리 부부 이야기 나는 때때로 내 아내와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보람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조금씩 더 깊이 알아 가면서 아내에 대한 나의 그러한 생각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가만히 눈치를 보면 아내도 남편인 나에 대해서 “이 남자와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그렇게 좋 고,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그 렇게 좋아 죽겠는 어디도 없고, 그렇게 꼭 마음에 드는 무엇도 없고, 죽어도 잊을 수 없는 무슨 특별한“덕”을 본 것도 피차 없지만, 그냥, 말 그대로 그 냥, 지금의 내 짝과 결혼하길 잘했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것입니 다. 결혼 하고 21년째 같이 살면서 나의 모난 것이 깍여서 아내처럼 되고, 아 내의 높은 것이 꺽여서 나처럼 되어오는 사이에 어느덧 서로 정이 든 때문인 가 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이 두 사람 다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이란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줄 다리기가 아니라, 서로 맞춰주기라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이 납니다. 나는 내 아내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칼 날처럼 예리하고, 송곳 끝처럼 날카로운 남자 만나서 참고, 적응하고, 기다려 주느라 아내가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을 결혼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 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아내가 고마와지기 시작했고, 고마운 마음이 드 니 사랑스러웠고, 사랑스러우니 아내를 어떻게 하면 행복스럽게 해줄 수 있을 까를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나를 만났기 때문에 인생을 의미있게 사 는 것에 눈이 뜨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는 것과 그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고마와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부는 서로가 상대방에 대하 여 고마운 이유를 찾아내려 애쓸 때 행복하게 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습니 다. 결혼하여 처음 얼마동안은 부부사이가 아니라 선생과 제자 사이 처럼 산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목회자의 부인이 될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아내 를 대했기 때문 이었습니다. “나의 아내는 목회자 부인이 될 사람이고 나는 아내가 훌륭한 목회자 부인이 되도록 잘 준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깔려있으니 자연히 아내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목회 자 부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은 이러해야 하고, 저것은 저러해야 하고, 이래 서는 안되고, 저래서는 안되고...” 끝 없는 잔소리와 요구를 듣다가 어느날 아내는 내게 말했습니다. “저도 평범한 한 여자예요.” 그 말에 충격을 받 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동안 선생과 제자처럼 살았지, 남편과 아내로 서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내를 아내로써 받아주고 내 제자 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된 다는 이 진리를 우리는 그렇게 해서 깨우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말 다툼도 하고, 짜증도 내고, 상대방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품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만들어내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연애 시절부터 지금 까 지 26년 가까운 세월을 우리 부부가 함께 지내 오 면서 한 가지 절대로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갖고 있 다는 사실, 함께 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부부생활에 있어 서, 자녀를 기르며 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와 내 아내가 같은 신앙을 갖고 있고, 영적으로 같은 세계 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연애 시절부터 지금 까지 누리는 복은 그 어 떤 다른 좋은 것과도 바꿀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생활의 중 심에 계셨고, 그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남자 와 여자가 만나서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그러다가 부부가 되어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 부부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맘에 들면 신앙은 별 문제 아니라며 가정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우리는 위태위태 해 보입니다.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지는 젊 은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우리는 사랑스럽고, 복스럽고, 대견스럽고, 마음 든 든합니다. 금년 여름에는 부부가 함께 행복을 나누어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 겠습니다.
37 no image <정창균 칼럼>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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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6 2001-07-12
관객들 꽤나 큰 극장에 연극을 관람하기 위하여 관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 에서는 배우와 연출자가 이제 막 연극의 막을 올리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연출자 가 다급하게 배우를 불렀습니다. "극장에 불이 붙었다는 연락이 왔다. 빨리 무대로 나가 서 관객들에게, 극장에 불이 났으니 질서있게 신속히 대피하도록 알려 주라." 배우가 무 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그러나 힘이 있게 말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질서있게 이 곳을 신속히 떠나십시오!" 그러자 관객들은 이 배우를 향하여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대로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우가 무대 뒤로 와서 연출자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제게 박수를 치고는 아무 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연출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다시 나가서, 이 극장에 불 이 났으니 질서있게 신속히 이 곳을 빠져나가라고 말하라!" 배 우가 다시 무대로 나갔습 니다. 그리고 이전 보다 더 다급하고도 극적인 음성과 몸짓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극장에는 불이 났습니다. 신속히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질서를 지켜서 대 피해주십시오!" 배우의 말이 끝나자 관객들은 다시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감동 적인 음성과 제스처에 관객들은 감동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배우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는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을 보려고 잠시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자리에 서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꿈쩍도 않고 모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배우는 다시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연출가에게 보고 했습니다. 연출가가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미 시간이 늦어지고 있어! 빨리 나가서 이미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대피하라고 관객들에게 외치란 말이야!" 배우가 뛰어 나갔습니다. "여러분, 큰 일 났습니다. 이 극장은 이미 불길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시간 이 없습니다. 신속히 대피해 주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 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는 우뢰와 같이 기립박수를 쳐댔습니 다. 그 배우의 실감나는 연기에 보내는 찬사였습니다. 키에르케골이라는 철학자가 오래 전에 한 이야기를 제가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 키에 르케골은 이 이야기의 제목을 "설교"라고 붙였습니다. 불이 나서 곧 타 죽게 될 처지에 있다는 긴박한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한 사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대피 하게 하지는 못하는 무능한 설교에 대한 빈정댐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설교를 통하 여 선포되고 있는 메시지에는 관심도 없이 다만 극장의 관람객처럼 설교를 즐기는 관객 교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웃음이기도 합니다. 선포되고 있는 말씀의 내용과 요구에는 아 무런 관심도 없고, 그것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하는가, 얼마나 세련된 연기로 하는가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오늘날의 많은 교인들을 이 철학자 는 이렇게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들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문제입니다. 소위 "좋은 설 교"를 찾아서 마치 유명한 가수에게 오빠 부대 몰리 듯 교인들이 떼를 지어 이리 저리 몰려다닌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을 잘 배워서 그대로 살아보고 싶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그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은 제대로 된 설교를 듣고 그대로 행동하기 위하여 듣는 것 이 아니라, 그 설교자가 그 설교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려고 설교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강단은 무대가 되고, 목사는 직업 연기자가 되고, 교인들은 연기를 즐기 는 관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에 있으면서도 뛰쳐나가 대피하는 사람은 없는 위험한 상황이 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려는 생명의 원 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끌어 모으려는 사업의 원리에 의해서 설교를 내세우는 우 리 설교자들의 책임이 무한대로 큽니다. 그러나 헌신의 철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담주지 않고 편안한 설교를 즐기려는 관객 의 철학에 의하여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책임도 또한 작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득 예레미야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 들은... 제사장들은...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 는 너희가 어찌하려느 냐?"
36 no image <정창균 칼럼>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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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6 2001-06-28
겁도 없이 요즘에는 교회를 골라가며 물건을 훔치는 교회전문 도둑들이 있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전에는, 우리 교회 근처에서 개척을 한 후 배 목사님 교회에도 새벽에 도둑이 들어와서 음향기기를 들고 갔다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입당예배 드린 다음 날 도둑이 트럭을 대놓고 에 어콘을 몽땅 뜯어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 성령강림주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를 위하여 12시 넘어서 사무실을 떠났다가 저녁 식사까지 하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습 니다. 그런데 급히 보내야 할 원고의 마무리 작업을 하려고 보니 노트북이 안 보였습니다. 어느 놈이 겁대가리도 없이 교회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서 저 의 사무실 제일 안쪽 의자 위에 놓아둔 노트북을 들고 간 것입니다. 알아보 니 우리 찬양인도 팀의 씬디도 들고 갔습니다. 찬양인도 팀에 새로 합류한 여 학생이 찬양사역을 위하여 한 달 전에 자비로 거금을 들여서 사 들고 온 것이 었는데 그것 을 들고 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하기도 하고, 화도 났 습니다. 노트북도 노트북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제 자료가 몽땅 그 속에 있는데 한순간에 다 없어져 버렸으니 참으로 황망하였습니다. "여기가 어디 고, 그것이 뉘 것이라고 감히..." 하는 생각과 함께 누구인지 모르는 그 도둑 에게 분노와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대낮에 하나님의 교회를 침입하여 교회 의 물건을 들고 간 하나님 무서운 줄도 모르는 겁대가리 없는 그 사람을 가만 두지 마옵소서.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도록 따끔한 벌을 그 사람에게 내려 주 소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2-3일을 기도했습니다. "노트북은 가져도 좋으니, 그 속에 있는 자 료라도 백업을 하여 돌려보내게 해주소서." 그러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 다. 오히려 소식은 도둑으로 부터가 아니라 제 자신으로부터 왔습니다. 이번 일은 너무나 게을러터진 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1차 경고가 아닐까 하는 깨 달음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내 노트북 하나 가져갔다고 그 사람에게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하는 가책이 든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 r 에 미치자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그래서 "겁대가리 없는 놈, 큰 벌이나 받 아라"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려고 했던 것도 회개했습니다. 그 전 날 성령강림 주일 오전 설교에 저는 "성령 충만한 자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이야기 를 했었거든요. 남아공에 있었던 94년에 케이프타운에 있는 성 야고보 교회 (St.James Church) 교회 주일예배 시간에 갑자기 흑인 너댓 명이 수류탄과 기 관총을 들고 난입하여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하여 애커만 씨 부부등 수명 이 죽고 방문 중이던 러시아 선원 등 여러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어디론 가 도주해버린 알 수 없는 이 흑인 원수들을 향하여 며칠 뒤 그 교회는 일간 지 신문에 상당한 크기의 광고 가사를 냈습니다. 크고 굵은 활자로 붙인 그 광고 기사의 제목은 이러하였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가 당신들을 사랑 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We want you to know that we love you)." 저는 이것이 성령 충만한 자의 참 능력이라고 열을 낸 것입니다. 하루 전에 강단에서 이렇게 설교한 작자가 노트북 하나 가져갔다고 "큰벌 이나 받아라" 할 수 있습 니까? 그러고 보면 정말 겁대가리가 없는 작자는 교 회의 목사 사무실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들고 간 작자가 아니라, 불과 하루 전 에 성령 충만한 자의 능력을 운운한 그 입으로 자기 노트북 가져간 사람에 대 하여 저주성 발언을 하려 한 저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 것을 회개하자 저의 마음도 평안해지고, 잃어버린 자료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도 자유로와 졌습니다. 인도에서 선교했던 선교사는 번역을 다 끝내 놓은 성 경이 불타버려서 절망 가운데 있다가 "다시하면 된다"하고 일어나서 다시 성 경을 번역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 사건 이후 한결 더 무거워진 열쇠 뭉치를 들고 사무실 입구에도, 방송 실 입구에도, 계단 출입문에도, 여기저기 추가로 달아놓은 보조키를 열 때마 다 저는, 짐승을 가지고 선지자도 가르치신 하나님이 열쇠뭉치를 가지고 나 를 가르치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이래저래 좋은 기회였습니다.
35 no image <정창균 칼럼>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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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5 2001-05-25
스승 나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몇년째 가르치고 있으나, 나는 나 자신을 스승이라 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같은 조무래기 선생에게 감히 붙일 수 있는 칭호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15일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재학생들 은 물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몇몇 졸업생들로부터 스승의 날 인사를 받았 습니다. 스승의 날이라며 전해오는 인사를 받으면서 한쪽으로는 염치가 없고 어색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기도 하였습니다. 밤 11시 가 다되어 부부가 함께 와서 감사하다며 놓고간 화장품을 저녁마다 얼굴에 발 라댔습니다. 화장품을 처음 구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한 제자가 주일 오후예 배 마치고 그 먼길을 찾아와서 놓고간 양말을 하루에 두번씩 갈아 신기도 하 였습니다. 양말을 신어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카드와 함께 혹은 전 보로 혹은 메일로 전해 온 저에 대한 찬양성 몇마디 말들이 그 내용이야 사실 이건 말건 저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 듯 기분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나 는 아직 스승 이라는 칭호로 불릴 수 없는 사람이다” 하는 생각을 여전히 하 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아지면서 은근히 사람 키우는 보람같은 것이 가 슴을 파고 들어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학부형들에게 돈 봉투를 받는다는 오해의 소지를 없앤다며 스승의 날에 아예 학교 문을 걸어잠가버리는 지경까지 되어버린 것은 이 사회의 커다란 비극입 니다. 스승의 날에 정작 스승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큰 불행입 니다.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애버리면 오히려 떳떳하고 좋겠다고 말하는 그 선생님의 속 마음은 얼마나 쓸쓸하고 억울할까요? 우리 사회에는 참된 스승 이 없어서 문제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참된 사도의 길을 가기를 거부 하는 소위 스승된 이들에 대한 질타와 책임 전가겠지요. 그러나 참된 스승 만 들기와 참된 스승 모시기를 거부한 학생과 부모들 그리고 이 사회 풍조가 만 들어낸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점수를 좀더 올려주는 족집게 선 생 앞에서는 두꺼운 돈 봉투를 드리밀며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참되거라 바르 거라 하시며 몇 대 때려준 교실의 선생님께는 폭력 운운 하면서 멱살을 잡고 욕 설을 퍼붓고 경찰을 향하여 핸드폰을 눌러대는 그런 주제에 참된 스승의 빈 곤을 입에 올릴 수 있나요? 지난 15일 스승의 날, 경상도 어느 감옥소 앞에서 있었던 스승의 날 행사 소 식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1700여명의 사람이 감옥소 정문 앞에 모 여 줄을 섰습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 학생과 교수들 그리고 학부모들이었습 니다. 그들은 손에 카네이션 한송이씩을 들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가르치 는 존경하는 교수님들과 얼마전 법정구속되어 그 감옥소 안에 갇혀 있는 자기 들의 스승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을 위한 스승의 날 행사를 치루기 위 해서 였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그 자리를 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눈물 범벅이 되어 그들은 이 노래를 불렀 다 합니다. “총장님, 부총장님 사랑합니다”는 말과 함께 들고 온 카네이션 을 감옥소 정문 앞 땅바닥에 내려놓고 묵묵히 그 자리를 떠났다 합니다. 어 떤 이는 그 자리가 사제의 사랑이 천지를 흔든 자리였다고도 하였습니다. 경 찰들은 그들이 혹시 집단 행동을 일으킬까 하여 바짝 긴장 하였다 하고, 혹자 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스승의 날 행사를 빙자한 단수 높은 데모행위 였다 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동 대의 그들이 자기들의 학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불타는 사명감으로 그 학교를 그 정신 위에 그 분위로 그렇게 일구어 온 자기들의 스승들을 얼마 나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경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그 노래와 그 눈물과 그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심임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판사가 무엇을 어떻게 보 고 그 대학의 김총장과 부총장을 ‘죄질이 나쁜 자’로, ‘도주할 염려가 있 는 자’로 판단을 하여 법정 구속을 하였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 지만, 이 시대에 이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스승과 제자의 감동적인 관계 를 이어가고 있는 그들의 일이 속히 잘 풀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두분 은 비록 감옥에 갇혀있으나 어쩌면 이 시대의 행복한 스승이라는 생각도 듭니 다.
34 no image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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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9 2001-05-03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어 "나로 하여금 우리 교인들에게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게 하소서. 저에게 목자 의 마음을 주시고, 아비의 마음을 주소서." 작년 한때 새벽마다, 그리고 틈 만 나면 처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애원한 저의 기도였습니다. 걸핏하면 교인들 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야속하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고, 때로 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도 혈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고, 목회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목회를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허 우적대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어느날 문득 발견하고 부터였습니다. 목회자 라 할 수 없을 참으로 몹쓸 모습으로 변절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 런 목사에게 기만당하고 있는 우리 교인들이 한없이 불쌍하고, 그런 제 자신 이 더없이 비참하고 서러워서 이대로는 살 수 없다하여 시작한 기도였습니 다. 끝까지 그 모습 그대로 갈 것이라면 차라리 골목 한귀퉁이 포장마차에서 야식 우동을 팔든지, 아니면 들판에 나가서 쑥이라도 캐다가 노상에 펼쳐놓 고 팔아서 죽이라도 먹으며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백년 전에 어떤 성자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하고 차원 높은 기도 를 했다는데, 저는 아직 제 갈길도 확고하지 못해서 낑낑대고 있는 모습에 화 가 나기도 하여 이제는 어떤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 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것은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상당수의 목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요, 적지 않은 교회들이 앓고 있는 가슴 앓이의 원인 이 바로 이 문제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요즘 이 나라 교회의 심각한 문제 들 가운데 하나는 많은 목사들이, 그리고 더 많은 목회 지망생들이 목자가 되 고 아비가 되려하기 보다는 사장이 되고 최고 경영자가 되려하는데 있습니 다. 헌신된 사역자가 되려하기 보다는 화려한 영웅이 되려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방면의 책들이 불티난 듯이 팔리고 금방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러다보니 명칭은 목자인데 하고 있 는 일은 오히려 정 반대인 현상들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때로 는 우리들 이 사랑했던 선생님이신 박윤선 목사님의 말년의 아우성이 다시 들 리는 듯합니다. "한국 교회는 목자가 양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양을 잡아먹 습니다." "(목사에게 교인들을 맡겨놓은 것이)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은 것과 같습니다." 사려깊지 못하게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꺼내서 목사들을 매도하거나, 스스 로 누워서 챔뱉자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고민을 함께해보자는 충정일 따름 입니다. 목회를 하고 있는 동안은 이 소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싶은 것입 니다. "나로 하여금 우리 교인들에게 목자가 되게 하소서." 그들의 신음 소리 와 노래 소리를 민감하게 구별하고, 그들의 필요를 미리미리 감지하여 살길 로 인도해나가는 목자. 그들을 위험에서 건지는 일에 내 목이라도 기꺼이 내 놓는 목자. 속썩이고 딴 길로 가려고 기를 쓴 양이라도 기꺼이 품에 안고 기 뻐 뛰며 돌아오는 목자. 그런 목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목자의 마음 을 가진 목사였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나로 하여금 우리 교인들의 아비가 되게 하소서." 끝 없이 사랑하되, 무조건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아부하지 않 고, 책망할 때와 권면할 때와 위로할 때를 분별하여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 아비. 그런 아비와 같은 목사, 그 런 아비의 마음을 가진 목사였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사실 교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목자처럼 아비처럼 신뢰하며 따를 수 있는 목회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될 책임은 우리 목사들에게 있 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신학생 시절 이후로 피붙이처럼 절친하게 지내는 친 구 목사의 영광스러운 위임식에 불려가서도 그래서 저는 이것을 권면하였습니 다. "평생토록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는 목사가 되십시오!"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한데, 목자의 모습으로 아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제 모습은 더디기만 합니다. 그러나 일년이 될지 이년이 될지, 아니면 평생 이 될지 주님이 제게 목회의 길을 허락하시는 동안은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 어 이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불림받은 신실한 목회자들이 그 마음에 한결같이 품고 있는 소원이 바로 이것이라고 저 는 확신합니다.
33 no image 부끄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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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2001-04-12
부끄러운 이야기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였습니다. 부활주일 오전 예배였습니다. 성가대에서 여러 날 동안 부활주일 칸타타를 준비하여 참으로 은혜로운 찬양을 드렸습니다. 분위기로 보아 모두가 은혜를 받은 것이 확연하였습니다. 저도 성가대원으로 테너 자리에 서서 찬양을 하였는데, 저에게도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은혜와 감동이 적지 않았습니다. 찬양 후, 부활절 감사헌금을 드리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헌금위원들이 헌금 주 머니를 들고 일일이 헌금을 거두어서 드렸습니다.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습 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하는 찬송가 가사를 혼자 떠올리며 감동 에 젖어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헌금주머니가 제 앞을 돌아가고 잠시 후에 저는 깜 짝 놀라며 속이 상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드려야하는데 착오로 왼쪽 주머 니에 있는 것을 드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천원짜리와 동전 몇개가 있 었고, 왼쪽 주머니에는 만원짜리가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오른쪽 주머니에 천원짜리와 동전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왼쪽의 만원짜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헌금주머니가 돌아간 후에야 만원짜리를 아낄 수 있는 더 적은 돈이 다른 쪽 주머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이미 드려버린 그 만원짜리가 그렇게 아깝고, 속 상하고, 후회스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한달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5만원을 받는 당 시 저에게는 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왔습니다. 바로 조금 전 바로 그 자리에서, 은혜받았다고 눈물 을 글썽이며, 부활의 주님 이 너무 감사하다며, 주님을 위해 나도 큰 헌신을 하겠다 며, "내게 있는 모든 것" 어쩌고 저쩌고를 읖조리며 헌금을 드리고는, 그 다음 순간 그 보다 덜 드리고도 넘어갈 수 있었는데 하면서 후회하고 아까와 하고 속상해 하는 저의 모습이 강력한 대조를 이루며 문득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코미디 같은 저의 대조적인 모습가운데서 저는 참으로 가증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기 까지 한 제 자신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자신에 대하여 분노와 두려움이 솟구쳤습니다. 사람 이 하나님을 상대로 해서도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고, 이중적일 수 있 는가, 얼마나 처절하리만치 가증해질 수 있는가를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마치 경고음을 울리듯 그 사건이 떠오르곤 합니다. 부활절이 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년 전 서울 어느 지 역에 있는 한 교회가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걸어놓은 부활절 현수막을 보았던 이야기입 니다. 역시 코미디 같이 웃기는 일이었지만, 한쪽으로는 큰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 것처 럼 장탄식이 나오고, 심지어 분노마저 터져나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멀 리서도 잘 보이는 크고 선명한 글씨로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OO천(川) 부 활!" 그 지역을 흐르고 있는 OO천(川)이라는 개천이 있었는데, 그 교회가 부활절 행사 로 지역봉사를 겸하여 그 개천을 청소하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역 에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어 현수막을 도로에 걸기로 하 였는데, 그 현수막에 "예수님 부활, OO천(川) 부활!"이라고 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이 부활하셨다는 것과 우리 교회가 이 개천을 청소한다는 것을 눈에 띄는 특이한 문구 로 동시에 알리고 싶은 발상에서 나온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현수막을 보는 순간 예수님의 부활을 오염과 쓰레기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한 동네의 개천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으로 대비시켜버린 그 발상에 대하여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오려하였습니 다. 그러나 꾹 참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류의 발상이 꼭 그 교회만의 일은 아니라 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나 행적이나 가르침을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갖다 붙여서 써먹는 일은 근래에 교회 여러 구석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이 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분노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부끄러워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 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다행히 3일 후엔가 그 교회는 그 현수막을 철거하였습니다.
32 no image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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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1 2001-03-15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자기들과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 밖에 있는 존재로 인식되 는 목사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진 높은 강단에서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가르치고 주장하는 모습으로만 교인에게 이미지가 박혀있는 목사여서 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곁에 바짝 붙어 앉아서 서로 속내를 드러낼 수 있고, 함께 울 수도 함께 웃을 수도 있는 목사임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거룩하고, 언제나 아무런 문제없이 형통하게 잘 지내고 있는 수퍼 맨 목사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부드러 운 목소리로 옆에서 속삭이고, 따스한 마음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마음을 어 루만지는 오랜 친구 같은 목사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벌려 광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 어느 날부터 주 보 한편에 "사랑하는 교우들께 드리는 목회자의 편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목 회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 의 중심이 전달되기 시작했는지 저의 목회 편지를 교인들이 좋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일 날 교회에 와서 자리에 앉으 면 주보를 펼치고 제일 먼저 목회편지를 읽는다는 교우들이 늘어가기 시작하 였습니다. 어떤 교우는 자기 회사의 게시판에 우리 주보의 목회편지를 붙여놓 고 직원들이 같이 읽는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고등부 아이들은 저의 팬클럽을 만들었다며 달려왔습니다. 몇 잔 술에 거나하게 취하면 제게 전화를 걸어서 형님 같다며 괴로운 심사를 털어놓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다가 2년 반 전 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파탄 난 나라의 온갖 처참한 모습이 온 나라를 벽지 바르듯 뒤덮어가고, 삶이 고달픈 많은 사람들의 감성 이 메말라 가고 있을 때, "몇 줄 글이라도 써서 다만 몇 사람의 마음 한구석 일 망정 어루만질 수 있다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기독교 개혁신보에 "정창 균 칼럼"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의 잔잔한 이야기들, 그러나 진한 감동 을 주는 사연들을 함께 나누며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오른쪽 뇌들을 자극하 여 감동을 주고 싶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고정 독자가 생기기 시작하 였고, 여 러 사람의 입에서 "잔잔한 이야기, 진한 감동"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 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아니고 사소한 일에도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그 글들을 쓴 저의 작은 소망의 성취 였습니다. 오래 전에 은퇴하신 연로하신 목사님 한 분은 목사들이 많이 모인 어느 곳에서 저를 보시자, "아, 칼럼 쓰시는 목사님!"하시며 저를 알아보시 고 그렇게 반가와 하셨습니다. 여러 다른 나라에 나가 있는 분들이, 그리고 나라 안의 여러 곳에서 여러분들이 저의 칼럼을 즐겨 읽는다며 저를 알아봐 주었습니다. 안팎에서 여러 사람들이 책으로 엮자고 하였으나 그럴만한 것들이 아니고 염치도 없어서 미루었는데, 어떤 연유로 이번에 그 글들이 모여서 한 권의 책 이 되어 나왔습니다. 제 얼굴이 표지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받아들 자, 마치 자신의 설교를 녹음한 테이프를 처음 들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고, 왠지 어색하고, 쑥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별것도 아닌 나의 이야기들에 깊은 관심과 호의를 가지고 읽어 n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은 근히 자기 책 선전하는 거냐고 오해를 받을 지라도, 이런 글 쓰려면 그만두라 고 신문사에서 목이 잘릴 지라도 이번 한번은 다른 이야기를 제껴두고 이렇 게 이 난을 채워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 니다. 이 작은 책이 가능하면 여러 사람에게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의 돈벌이를 걱정해서도 아니고, 알량한 제 이름 석자에 대한 인기를 염려해서 도 아닙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점점 더 각박해져만 가는 이 나라의 메마르 고 매서운 마음들이, 그리고 크고 작은 상처로 얼룩진 마음들이 잠시라도 감 동을 누리고, 어루만짐을 받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 떤 이야기들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잊 었던 추억을 가지고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눈가에 이슬을 가지 고 다가오기도 할 것입니다. "잔잔한 이야기, 진한 감동" 그것이 그 책에 실 린 작은 글들의 소망입니다. "감동"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본질이기도 하 고, 모든 변 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감동이 있는 삶, 감동이 있는 가정, 감동이 있는 교회. 이것은 저의 작은 소망이요 소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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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9 2001-02-28
우선순위 바로하기(1) 정창균 목사 / 본보 편집위원, 새하늘교회 한달쯤 전이었습니다. 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모처럼 온 가족이 외출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온 가족이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같이 보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 상영까지는 아직 시간 이 많이 남아 있어서 햄버거를 하나씩 사 먹은 후 아래층의 서점으로 내려갔 습니다. 이책 저책 들추어보는데 눈에 번쩍뜨이는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그 래서 망설임 없이 그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적지 않은 값을 거리낌없이 지불 하며 그 책을 산 이유는 다만 한 가지, 그 책의 목차 가운데 한 대목이 저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집적거리지 말고 제대로 집중하 라.” 그 책 제2장의 타이틀이었습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바쁘게 만 살고 있는 우리들의 급소를 찌르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책에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그래 서 이 일 집적 저일 집적으로 정신 못차리게 바쁘고, 해도해도 일은 끝이 없고, 결국 기진맥진한 채 무엇엔가 질질 끌려가듯이 살고있는 것이 우 리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저는 가끔씩 합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인생 이란 그런 것이려니 하며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고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는 이 사회의 풍조입니다. 정신 없이 바쁜 것이 미덕이 되고, 사는 보람이 되 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 다. 그렇게 바빠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길래 그렇게 바 쁘게 살아가야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확신도 의식도 없이 그냥 바빠야 되니 까 바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큰 일입니다. 어떤 일로든지 바쁘지 않으면 왠 지 남보다 뒤쳐지는 것 같아서 무엇이든지 하여튼 바쁘게 하는 일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인생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바쁘게 할 일이 없으면 왠지 인생 이 쓸쓸하고 공허한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은퇴한 이후의 많은 한국 사람들은 급속히 노쇄현상을 일으킨다는 분석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것 이 두려워서 훌훌 털고 일찍 자리를 내주고 은퇴하는 것을 그렇 게 두려워하 는 이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 노동자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두 가지라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어느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첫째는 “때리지 마세요. 나도 사람이에요”라는 말이고, 둘째는 “빨리 빨리”라는 말이라 는 것이었습니다. 출연자들은 농담삼아 웃으며 그 말을 했지만 저는 큰 충격 을 받았습니다. 이 둘 다 우리의 “바쁨”의 생활철학과 습관이 만들어 낸 결 과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악한 민족이 아닙니 다. 특히, 약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많고 낯선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기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바쁨의 철학은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나 사명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그러다보니 눈돌아가는 소리가 들 릴만큼 바빠야 안심이 되는 이 바쁨의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일이라고 하는 짓거리들이 맘에 차지를 않고 그러다보니 답답하 고 그러다보니 짜증나고 그러다보니 화가나고 그래서 손이 올라가서 몇대 쥐 어박고…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이 땅에서의 자기 의 사표시의 첫마디가 "때리지 마세요. 나도 사람이에요"가 아니었을까 하고 상 상해 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능력의 한계 때문 에 어차피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없고, 어차피 해야 할 일 다 할 수 없고, 어차피 지금 하고 있는 일 다 내가 마무리 할 수 없습니다. 지난 달 어느 날 인가 아침에 책상에 앉아서 그날 해야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니 스 물 다섯 가지 였습니다. 그 일을 다 하려면 그날 하루가 적어도 55시간쯤 되 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 가운데 몇몇은 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그날 하루가 60시간으로 길어진다 하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저는 두가지 일인가 하다가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어차피 할 수도 없었을 스물 다섯 가지 일에 얽매여 종일 분주하고 쫓기고 초조하고 불 안해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일을 두가지나 했는데도, 오늘도 아 무 일도 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하루를 산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루를 이렇게 산 것이야 대수롭지 않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러다가 일생을 이렇게 살아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 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이렇게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아야 되는 것인가요? 인생 의 목적은 바쁘게 일하는 데 있는 것인가요?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요? 다음 에 계속해서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30 no image 목자 없는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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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8 2001-02-14
목자 없는 설움 정창균 목사 / 본보 편집위원, 새하늘교회 어쨌든 교회에 목회자가 없다는 사실은 교인들에게는 큰 설움입니다. 흔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요즘에도 싸우는 교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정치 판에 흔해빠진 표현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교 회 안에서도 드러내 놓고 편을 가르고, 맞붙어서 충돌을 하는 그런 ‘쌈박 질’이 가끔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지방에 있는 어느 교회 교 인들이 교회 문 앞에서 서로 치고받는 난장판 격투 장면이 그 지방 TV 뉴스 에 방영되어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 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은 대부분의 경우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싸움이기 일 쑤입니다. 저는 역사가 꽤 오랜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사실은 아랫녁 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교회입니다. 30년도 훨씬 전인 60년대 중반, 제가 중학교 2-3학년 때 우리 교회는 큰 싸움을 하였습니다. 일간 신문에 교회의 싸움이 중계되고, 교 회는 큰 아픔을 겪었습니 다. 제가 중2 이던 여름 어느 주일날 이었습니다. 예 배를 드리러 11시 예배에 갔는데 가서 보니 그것은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목 사님이 강단에서 기도를 시작하려 하는데 어디서 난데 없이 찬송이 터저나오 고 한 젊은 집사님이 나와서 손을 휘저어 지휘를 하면서 그 찬송을 인도하였 습니다. 소위 장로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방해의 찬송이 끝나기 를 기다리며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마친 그분들이 기도를 하 려하자 이번에는 또다른 데서 찬송이 터져나왔습니다. 소위 목사파로 분류되 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서로 자기 파 사람들에게 찬송가 장수를 알려주기 위 한 수신호가 오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에서 터 져나오는 여러 행동들이 행해지고 예배는 모독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 두가 자기들 나름대로는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하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습 니다. 차라리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러대든지, 아니면 ‘눈물 젖은 두만 강’을 불러댈 일이지 왜 이런 목적으로 이런 찬송가들을 불러대는가? 분노 와 두려움이 범벅이 되어 석고상처럼 굳어있는 저를 저의 학교에서 윤리도덕 을 가르치시던 염 선생님께서 어깨를 툭툭치며 불러내시더니, “오늘은 그냥 가거라”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왠지 서럽고, 분이 차서 통곡을 하며 눈물 범벅이 되어 걸었습니다. 중2 어린 것이 뭘 알아서 그랬을 거냐구 요? 저는 그랬습니다. 그 충격이 그렇게 컸길래 30년도 더 세월이 흐른 지금 도 이렇게 또렷이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후 상당한 기간을 목사님이 안계신 채로 우리는 지내야 했습니다. 물론 머리 허연 연세 드신 목사님이 주일마다 손님 목사님으로 오시기는 하였습니 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와 같은 우리 목사님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도, 교회 연합행사에 가서도 우리는 내놓고 이야기 할 우리 목사님이 없었습 니다. 목자 없는 교회 교인의 사무치는 서러움 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었 던 목사님 사택에는 쥐가 질주를 하였습니다. 후에 미국으로 가신 최 선생님 께서 우리 고등부 학생 몇 사람을 모아서 주일 새벽이면 그 사택 방에서 개인 적으로 가끔씩 코피를 쏟으시면서 성경공부를 시켜주셨는데, 그 집에 들어갈 때마다 저는 목사님이 안계셔서 비어있는 그 집이 얼마나 썰렁하 게 느껴졌던 지…. 제가 고2 때인가, 드디어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처음 목사님이 오셔서 강단에 서시고 가족을 불러내어 교인들에게 소개하실 때 제 속에서 터져나온 탄성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아버지가 있다!” 4년전, 제가 외국에 갔다가 한 달만에 돌아오니 여러 교인들이 “목사님이 안 계시니 주일날 교회를 와도 왠지 쓸쓸하고 허전하고 그랬어요” 하면서 그 렇게 반가와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의 그런 경험 탓인지, 저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이번에 가서 피곤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서 왔다갔다 하시는 목사님 장로님 을 보면서 저 분들이 나의 아버지다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고 간증하 던 한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저는 알아들었습니다. 싸우지 마십시오. 죄 없는 양들의 가슴에는 피멍이 듭니다.
29 no image “헌신은 날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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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4 2001-01-31
“헌신은 날아가고” 정창균 목사 / 본보 편집위원, 새하늘교회 어쨌든 한국교회가 이렇게 세계 교회의 주목을 받는 교회로 성장을 한 데는 교인들의 헌신이 단단한 몫을 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 다. 그리고 교인들이 그렇게 헌신하게 된 것은 교회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 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기들 먹을 것이 없을 때에도 밥을 지을 때 마다 그 밥을 먹을 식구 수대로 한숟갈씩 쌀을 떠놓았다가 주일날 교회로 들 고와서 “성미”로 드리게 한 것 등은 유명한 일 아닙니까? 사실, 우리나라 교회는 초기부터 헌신하는 교회였습니다. 제가 유학 중일때, 그 나라 교회들로부터 한국 교회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들과 교회 단체들의 모임에서 자랑스럽 게 우리나라 교회를 소개하곤 하였습니다. 그때 마다 저는 한국교회는 고난 받은 교회요, 수 많은 순교자를 내면서 고난을 통과한 교회라는 점을 첫째로 시작하여 네 가지 특징으로 한국교회의 특징을 요약하여 소개하곤 하였 습니 다. 그때, 언제나 빼놓지 않고 자랑스럽게 소개한 것이 있었는데, 한국교회 는 헌신하는 교회라는 점이었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자기들의 결혼 반 지를 빼어 드리는 것은 보통으로 있는 일이라는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 은 깜짝 놀라는 눈빛들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의식속에서 결혼반지는 얼 마나 중요한 것인데… 당신들은 일년에 한달씩 휴가를 하고, 그 휴가를 즐기 기 위하여 방학때면 교회도 주일학교 문을 닫지만, 우리는 방학때면 주일학교 마다 성경학교라는 특별학교(special class)를 개설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일 년에 휴가가 당신들처럼 한달이 아니라 길어야 5일인데 교사들은 일년에 한 번 밖에 없는 5일동안의 휴가를 이 성경학교를 위해서 그 기간에 맞춰 찾아 쓴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들은 혀를 내두르며 한국교회 교인들의 헌신을 부러 워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그곳에 돌아가도 여전히 그렇게 어깨를 활짝펴고 당신들 맛 좀보라는 듯이 우리 나라 교회는 헌신하는 교회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 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과거의 자랑거리로는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한국 교회 의 중요한 특징으로 헌신을 내세우기에는 양심이 좀 편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헌신이 점점 사라져가고, 헌신이라는 용어도 점 점 듣기가 어려워져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 저 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인상이기도 합니다. 헌신은 자기를 드리는 것을 말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교회들의 자랑스런 자기 교회 선전과 메시지와 행사들 가운데서 우리가 듣는 것은, 우리 교회는 이런 시설도 있고 저런 장치 도 있고, 이런 프로그램도 있고, 저런 행사도 있으니 와서 마음껏 “누리십시 오!”하는 말입니다. “누리십시오!”만 있지, “드리십시오!”라는 말은 사 라져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소님끌기 작전이라도 펼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과응보인지, 교인들에게서 보이는 것은 치열한 자기 “드러냄”의 모습이 지, 자기 “드림”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누리십시오”만 있 지 “드리십시오”가 없는 교회, “자기 드러냄”만 있지 “자기 드림”이 없 는 교인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백명 모이는 교회 들이 교회 청소를 할 교인들이 없어서 일당 수만원씩을 주고 일하는 아주머니 들을 사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천명 모이는 대형교회에서 주일날 식당에서 봉사할 사람이 없어서 파출부 아주머니들을 사서 한다는 이야기를 탄식처럼 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설거지는 할 수 없고, 대신 돈 을 얼마든지 낼테니 파출부를 사서 하라”는 제안을 한 여선교회가 있었다는 어느 큰 교회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문득, 70년대를 휩쓸던 사이몬과 가펭클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철새는 날 아가고…” 그 노래의 가사 내용과 상관 없이 철새는 날아가버렸다는 그 제목 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철새는 날아가고”라고 노래하는 대신 “헌신은 날아가고…”라고 노래하고 있는 애처로운 내 모습 이 떠올랐습니다. 교인 수가 빨리 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교인 수가 좀 떨 어져도 “드리십시오!”라고 말하는 목사가 되고, “자기를 드리는” 삶을 사 는 교인을 길러내는 목회를 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28 no image 아들 녀석의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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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9 2001-01-17
아들 녀석의 변심 정창균목사 / 본보 편집위원, 새하늘교회 저의 막둥이 아들이 세 살이었을 때 저는 온가족을 이끌고 유학을 떠났습니 다. 제 아들 녀석은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서부터, “나도 아빠같은 목사님 이 되겠다”고 서슴 없이 자기 의지를 밝히곤 하였습니다. 제 아버님의 극심 한 반대 가운데서 신학교를 간 저는 “저놈이 목사가 된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반대하거나, 은근히 말리거나 하지는 않겠다” 하고 혼자 생각하였습 니다. 그러나 아이의 그 말을 하나님께 대한 무슨 서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 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아이가 나중에 마음이 변하면 큰일 날 일 이다 하는 식의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하는 대로 결국 목사가 되 면 감사한 일이고, 세상 물정을 알아가면서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 목사가 되 지 않는다 해도 그것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는 배속에 있을 때부터 주의 종으로 드리기로 할머니가 서원을 하였다. 그러니 너는 어떤 일 이 있어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거나, “너는 어릴 때 부터 목사가 되겠다고 했으니까 목사가 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면서 마 음이 변하여 목사되기 싫어하는 아이를 심히 괴롭게 하는 부모들을 가끔씩 보 았기 때문에 저는 제 아들 녀석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공부를 마쳤고, 서울에 있는 교회의 부름을 받고 그 아이가 열살 이 되던 해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위의 누나 둘은 당장 돌아올 형편이 못되 어 그해 연말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도록 남겨놓고 저희 부부는 아들 녀석만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누나들 없이 혼자 있으면서도 이 녀석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오히려 재미있어 하여서 부모인 저희 부부의 마음 을 안심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셋이서 비탈 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데 이 아이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저 목사 안 될 거예 요!” 한국에 돌아와서 몇달이 지난 그해 늦가을 어느 날 초저녁 이었습니 다. 저희 부부는 느닷없는 녀석의 불만과 투정이 어린 한 마디에 놀란 표정으 로 물었습니다. “왜?” 진지하게 묻는 엄마 아빠에게 아들 녀석은 숨돌릴 틈 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날렸습니다. “마음대로 가족도 만날 수 없 는 목사를 내가 왜 해요?” 이리저리 물어보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제 갓 부임해 온 저는 교인들을 익히고, 신속한 교회 적응을 위하여 곧 가 을 대심방을 시작하였습니다. 밤 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심방으로 매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아들 녀석은 거의 매일 집 에 혼자 있어야 했고, 밥은 라면을 끓여먹기가 일쑤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오 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예배드리 고, 대화하고, 산보하고, 가족이 자주 외출도 하고, 캠프도 가고, 음식도 함 께 만들어 먹고하던 그 시절과는 갑자기 판이하게 달라진 가족생활에 이 아이 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목사님이기 때문에 그렇게 단란 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가, 아빠가 목사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렇 게 혼자 있어야 된다는 정반대의 현실에 이 아이는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 니다. 밖에 나가서 같이 놀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재미있는 비디 오 테이프를 재미있게 볼 만큼 한국말이 익 숙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고 아무데나 재미있는 곳 마음대로 찾아다닐 만큼 길이 익숙한 것도 아니었습 니다. 그 후 아들 녀석은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이건 너무 하는 것 아니예 요?” 그때 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꾼 그 사건 이후 아들 녀석은 중학교 2학년을 끝마친 지금까 지 다시는 “아빠 같은 목사가 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학교 에 들어간 이후, 과학고에 가겠다는 말로 목사가 되겠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 습니다. 아이와 다정한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이 바쁘기만 한 목회가 정말 잘 하는 목회일까요?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킬수록 목회에 헌신된 목사라는 옛 생 각은 정말 맞는 것일까요? 내일은 돌아온지 6년만에 처음으로 온가족이 영화 관람과 캠프를 가기로 하였습니다.
27 no image 남편을 위하여 뒤집어 쓴 누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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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 2000-08-02
- 남편을 위하여 뒤집어 쓴 누명 한 부부의 30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입니다. 한번 교회를 떠난 이후 10년이 다 되도록 교회에 발을 끊고 있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가슴 앓이를 해오고 있 었습니다. 남편이 교회를 떠난 것은 어찌보면 순전히 남의 탓이었습니다. 교 회가 패가 갈려 싸움질을 시작하였는데, 젊고 유망한 이 남편을 두고 양쪽에 서 서로 자기 편이 되라고 부추기자 이 남편은 “싸우는 놈의 교회 그만 다니 겠다”며 교회에 발길을 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어느덧 10년 세월이 다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 열일곱에 좋으신 목사님을 만나 전도를 받고, 착 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그놈의 쌈박질에 진저리가 나고, 그렇다고 어 느 한편에도 설 수 없는 난처함 때문에 그만 교회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다가 그 해 부흥회를 계기로 아내는 드디어 대단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남편을 교회로 이끌어내어 야 된다는 결심을 하고,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하나님께 매 달려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집회 마지막 날인 금요일 저녁, 이 아내는 교회 마루바닥에 앉 아서 철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마지막 새벽 집회를 인도하 기 위하여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얼마나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부 르짖어대는지, 집회를 진행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새벽집회 시간이 되고 강사 목사님이 단 위에 서신 것도 모르고 이 여인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남편을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다 못한 강사 목사님이 이 여인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단아 물러가 라!” 그 순간 이 여인이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소리를 질 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내 남편에게는 지금도 집사라고 부르는데, 정작 남편은 교회에 안 나오는 것이 너무 원통해서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지 교회에 나오게 하려고 그러는데 목사님은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게 사단이 라고 하시느냐”고 대든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여러 날을 이 아내는 앓아 누 웠고, 때로는 헛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한 은사가 임한 것 같아 보이는 언행을 하며 온 가족을 긴장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남편과 자식들을 머리맡에 앉혀놓고 심문을 하듯이, 유언을 하듯이 한 사람씩 차례대로 다그치면서 앞으로 신앙생활 잘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그 증거로 찬송을 한 장씩 부르게 하였습니다. 자녀들이 눈 물범벅이 되어 찬송가를 한장씩 부르는 동안 이 어머니는 자신의 찬송가를 뒤 적여 찾아서 연필로 그 찬송을 부르는 자녀의 이름을 제목 옆에 기록하였습니 다. 이렇게 하여 그 남편은 10년만에 떠났던 교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 된다더니… 사실 이 아내는 남편 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해서도 한동안을, 교회에 가자는 남편의 요청을 싫다고 거절하며 안가려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이십수 년이 지나서는, “사단”이라는 끔찍한 누명과 미쳤다는 원통한 소 리를 뒤집어쓰면서까지 남편의 신앙회복을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었 습니다. 그때 다시 돌아온 남편은 그후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기면서, 다른 것 다 포기해도 신앙은 포기할 수 없고, 다른 것 다 버려도 하나님은 버릴 수 없 다는 단호함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수시로 찾아와 괴롭 히던 병 때문에 40대 중반이던 그때 곧 죽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던 그 남편 은 79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남편보다 2년반 먼저 그 렇게 사랑하던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나의 어머니이셨고, 그 남편이 바로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나의 아버지이셨습니다. 어머니의 필체로 우리 형제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30 여년 전의 그 찬송가를 나는 지금도 가끔씩 들여다 보며 내 어머니를 생각합 니다. 달 지난 달력을 뜯어서 표지를 싼 내 어머니의 그 찬송가 516장 제목 옆에는 어머니의 필체로 “창균”이라고 또렷이 써있습니다. 그때 열네 살 꼬 마였던 나는 어머니의 머리 맡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예수 날 사랑하시오 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26 no image 사기꾼과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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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9 2000-07-20
사기꾼과 형사 정창균 목사 아이들을 키우거나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드 러나면 여러 가지 다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지갑에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간 것을 알고서 잡고 물어보는 데, 오히려 “만원 짜리가 어떻게 생겼는데요?” 하고 묻는 아이가 있습니 다. 고단위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게 가장 얄미운 아이입니다. 또 어 떤 아이는 “싫다는 데도 옆집 형이 자꾸 가져오라고 해서, 그 형 때문에 꺼내갔어요” 하는 아이입니다.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그 책임을 지 는 것은 거부하는 아이입니다. “만원 짜리가 어떻게 생겼는데요?” 하는 아이가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대든 가인 타입이라면, “옆 집 형 때문”이라는 뒤의 아이는 선악과 먹은 책임을 남에게 돌려대 던 아담과 하와, 혹은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드리려고 불순종했다고 억지 를 부리던 사울 왕 같은 타입입니다. 요즘 새롭게 등장하는 신세대 타입도 있습니다. “왜요, 뭐가 잘못됐어 요?” 하 면서 고개를 쳐드는 아이입니다. 급해서 좀 갖다가 썼기로서니 그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는 것입니다. 참 화나게 하고 한심하게 하는 타입이 지요. 그런데 딱 잡고 “너 지갑에서 만원 꺼내갔지?” 하면, 그 자리에서 “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하 면서 맞을 준비를 하고 스스로 종아리를 걷는 아이도 있습니다. 희귀하기 는 합니다만, 이런 아이를 보면 종아리를 치긴 하면서도 왠지 고마운 생각 이 들고, 와락 껴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두어 달쯤 전부터, 저는 글을 읽다가, 또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다가, 또는 어떤 이야기를 듣다가 찔끔찔끔 눈물이 나오곤 하는 체험을 하고 있 습니다. 정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도 진실하 고 솔직한 모습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 죄를 거부하는 데 있어 서는 실패하였을지라도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대가를 당당히 치루어 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별안간 그렇게 눈물이 찔끔거려지는 것입니다. 제 자신은 그렇게 진실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의 눈물이기도 하고, 두엄자리 같은 세상 에서 진주를 주은 것 같은 감격의 눈물이기도 합 니다. 정직한 것, 진실한 것, 솔직한 것, 거짓이 아닌 것을 보기가 그렇게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에게서도, 이웃 속에서도, 세 상에서도, “정직” 혹은 “진실”이라는 것을 글자가 아닌 삶의 모습으로 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진실을 비웃을 줄 알지, 진실에 감동할 줄을 모르는 세상. 아무도 정직을 행하지도, 정직을 믿어주지도 않는 세상. 그래서 모두가 속이려 드는 사기꾼과 속지 않으려는 형사의 심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 아무에게도 나를 드러낼 수 없어서 덩그라니 혼자 있다는 외로움과 자칫하다가는 당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경계심에 싸여 살다보 니 결국 사람 대하기가 피곤하고 고달프고, 그래서 세상 살이가 맛도 없고 재미도 없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께서 신학교 강의 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 니다. “교역자는 교인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오면 모 른다고 하시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열 번쯤 모른다고 했는데 또 모 르는 것을 물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 다. 한참 있다가 하시는 말씀이, “또 모른다고 하시요.” 끝까지 정직하고, 결코 거짓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게도 거짓되지 않 으려 몸부림을 치며 사는 신자들, 좀더 정직하고 진실하고자 살이라도 떼 어내는 신자들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기꾼과 형사의 심리로 서로를 대하 며 살아야 될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받아들이며 서로 얼싸안고 살아야 될 사람들입 니다.
25 no image 성현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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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2 2000-06-29
- 성현교회 이야기 성현교회는 수원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목회자 부 부를 오래 전부터 잘 압니다. 십수년 전, 제가 성남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 고 있을 때 만난 부부입니다. 남편은 어느 공장에 전기기사로 다니고, 아내 는 방문판매를 하는 열심 있는 부부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받은 남편이 어느날 신학교를 가겠다며 직장을 그만 두었고, 부인 은 왜 그 고생을 하느냐며 반대하였습니다. 그때 이 부부는 여러번 저를 찾아왔고, 저는 이미 말릴 수 없는 상황임을 확인하고 부부를 격려하여 신 학공부를 하는데 여러 조언을 하였습니다.그후, 이 부부는 제가 섬기던 교 회에 사찰로 들어와 참으로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때, 이 부부가 가난한 부목사인 나와 우리 가정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지 금 생각해도 눈물이 겹도록 잘 했습니다. 혹시 소뼈다귀라도 사다 삶으면 반드시 절반을 나누어서 그 비탈길을 걸어 우리 집에 가지고 왔습니다. 한 번은 저를 붙잡고 어딘가 같이 가자고 재촉 을 하기에 무슨 일인가 하여 물 었더니 제 양복을 맞추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처지에 무슨 양 복이냐며 펄쩍 뛰었으나, 곗돈을 탔다며 억지로 저를 끌고 가서 양복을 맞 추어 주었습니다. 결혼 후 처음 입어보는 맞춤 양복이었습니다. 저는 그 양 복을 유학 갈 때도 가지고 가서 수시로 입다가, 오면서 어느 흑인 형제에 게 건네주고 왔습니다. 그 부부는 어렵사리 신학공부를 마치고, 안수를 받고, 무서우리 만큼 열심 히 기도하면서 수원 변두리 화성군이라는 곳의 어느 마을 밭 가운데에 성 현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교회를 개척한 것을 보고 저는 유학을 떠났습니 다. 그후 그분들은 삼성전관 근처 지하실을 얻어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 어 려운 개척교회를 하면서도 한번도 걸르지 않고 제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매월 5만원씩을 보내주고, 수시로 국제전화를 걸어 격려해 주고, 가 끔씩은 제 아내 약을 해주라며 특별후원금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저 지난 해에는 제가 그 교회에서 4일동안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여름이면 물이 새는 그 지하 예배실에 의외로 헌신된 청년 교인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와 어렵게 공장에 다니며 살고 있는 그 젊은이들이 얼마나 교회에 헌신적이고 목사님 부부에 게 잘 하는지, “자기들이 목회자에게 그렇게 잘하더니, 자기가 목회자 되 어 그렇게 잘하는 교인들을 만나는구나!” 그런데 지난 해 늦가을에, 교회를 수원으로 옮겼다며 두 분이 수원의 학교 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여름이면 물을 품느라 힘이 들고, 퀴퀴한 냄새가 나 서 괴로웠는데, 마침 그 동네로 큰 길이 나는 바람에 동네가 깨어지다시피 하여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옮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새 로 옮긴 교회당에 가보았습니다. 가구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 2층 건물의 130평이나 되는 널찍한 홀이었습니다. 1억3천을 주고 얻었다는 말을 들으 면서 교인 30여명이 그 돈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마음이 아팠습니 다. 그러나 그 아픈 마음는 사모님의 다음 말씀을 들으며 부끄러움으로 변 하고 말았습니다. “별로 큰 고생은 하지 않았어요. 성가대 지휘하는 청년 회장이 4500만원을 대출받아다 헌금하고, 또 다른 청년 하나가 1500만원을 대출받아 헌금하고…. 청년들이 이렇게 좋은 데로 교회가 왔다고 얼마나 흥분을 하고 좋아하는지 몰라요. 청년들이 단체로 자전거를 샀어요. 교회가 멀어졌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면서요.” 넓은 데로 이사를 와 아직 의자를 다 채워넣지 못하여 한쪽이 휑하니 보기 에 좋지 않았습니다. 물으니 15만원짜리 의자가 12개가 모자란다 하였습니 다. 교회를 나오면서 길건너의 은행에 뛰어들어가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 30만원을 인출하여 의자 두 개 값을 헌금하고 돌아오며 저는 여러 가지 생 각을 하였습니다. 교회 이전하는 일을 막 시작하던 제게 왠지 용기가 생겼 습니다.
24 no image 선생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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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4 2000-06-16
- 선생님 생각 사는 것이 쓸쓸하고 서러울 때 불쑥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 큰 축복 이 듯이, 살다가 언제라도 큰 감사와 가슴뭉클함으로 떠올릴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제게는 그러한 선생님들 가운데 한분으로 박윤 선 목사님이 계십니다. 사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80년대 중반 이전에 신학공 부를 한 목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 어른을 귀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 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른과 어떤 연줄이 닿아 있다는 것을 어디서나 자랑스 럽게 이야기 합니다. 특이한 것은, 그 어른을 스승으로 여기는 많은 목회자들 이 그분과의 사이에 한두 가지 이상의 개인적인 일화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 니다. 제게도 기도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 84년 12월 어느날 불광동 수양관에서 있었던 합동신학원 졸업생 사은회에 서 있었던 일입니다. "기도 많이 하시오.”“알겠습니다.”“기도 많이 해야 돼!”“예” “기도 많이 하라구.”“알겠습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 님 께서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갈 제 손을 붙잡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 은회의 마지막 순서로 부부를 동반한 우리 졸업생들이 줄을 서서 은사님들 앞 을 차례로 지나가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간단한 목례와 악수, 그리고 한마디 말씀을 들으며 80여명이 늘어선 줄이 진행하고 있었습니 다. 저도 행렬 속에 서서 다른 교수님들 앞을 거쳐 마침내 우리들이 가장 존 경하던 80대 고령의 박윤선 목사님 앞에 섰는데, 제 손을 붙잡고 “기도 많 이 하시요.” 하셨습니다. 의례적으로, “알겠습니다.”하고 지나가려는데 박목사님은 제 손을 놓아주지 않고 세번을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 니다. "기도 많이 해야 돼." "기도 많이 하라구!" 저 때문에 술술 진행되던 줄이 갑자기 정체가 되었고, 제 뒤에 있던 동료들은 잠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 돌아와서 얼굴이 달아올라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어른 이 이제 슬하를 떠나 교회를 향해 제자들을 내보내면서 왜 내게 이렇게 하셨 을까? 평소에 나를 깊이 사랑하셔서인가? 아니면 기도하지 않는 얄미운 신학 생,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목 회자 후보생으로 기억에 남아서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손을 불끈 쥐며 결심을 했습니다. “내 가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노라!” 고. 그야말로 기도에 진력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그 이후, 기도하는 목회자가 되어보려고 가끔씩 다짐도 해보고 애도 써보 고, 때로는 밤을 새우며, 때로는 밥을 굶으며, 때로는 엎드려서, 때로는 소리 도 지르며 몸부림을 쳐보며 지내오지만, 연약한 인간이고 죄성에 물든 인간이 어서 틈만 있으면 딴짓에 몰두하고 기도하는 일을 뒷전에 두고 있는 나의 모 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만은 언제나 불같습니다. 나 뿐만 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내가 사랑하는 우리 교인들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들 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제게는 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 은 많으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적으며, 이런저런 아이디어와 불평을 내놓는 신자들은 많으나 기도의 눈물을 내놓는 자들은 적은 이 때, 박윤선 목사님이 내 손을 잡고 놓지 않 으시며 내게 하시던 그 말씀을,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하 는 우리 교우들의 손을 잡고 하고 싶습니다. 이 달 말일이 그 어른 떠나신지 12주년이 되는 날인데, 문득 큰 감사와 가 슴 뭉클함으로 제게 그렇게 기도를 가르치신 그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이 달 말일에는 합신 뒷 동산에 있는 그 어른 묘소에라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23 no image 우리 아이들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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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6 2000-05-24
- 우리 아이들을 우습게 보지마십시요! 요즘 어른들은 요즘 십대 아이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걸핏하 면 “요즘 아이들은..” “요즘의 십대들은...”하면서 모든 면에서 못미더 워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판단력 도 없고, 믿음도 없고, 신앙의 결단도 없고, 마냥 위태위태하기만 한 걱정거 리로 여기는 편견이 있기도 합니다. 저 자신도 가끔씩 그런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작년 언젠가 저의 둘째 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즈음에 둘째 아이 학교에서 간부 수련회를 계획하였었습니다. 토요일 에 떠났다가 월요일에 돌아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수련회에 안 갈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고민이 생겼습니 다. 주일을 빠지고 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딸이기도 했지만, 자 기 자신도 도저히 주일 빠지고 가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앞으로 나가 기로 최종 결심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때문에 못간다”고 했을 때 여기저기서 터져나올 비웃음과 선생님의 책망을 각오하고, “아마 나 혼자 겠지”하며 "왕따가 되면 되리라" 하는 각오로 앞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런데 -. 놀라지 마십시요. 30명 쯤이 앞으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 두 “교회 빠지고는 못간다”는 것이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야, 너희들은 학교가 먼저지 교회가 먼저냐?”는 선생님의 호통에도 아랑곳 없이 이 아이들 은 안가겠다고 버텼고, 결국 근처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솔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야 참가 신청서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다 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알아보니 수련장 근처에는 교회가 없고, 따라서 교회 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수련회에 안갈 사람을 다시 조사 해보니 여전히 그 아이들이 손을 들어서, 결국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 행하는 간부 수련회에 빠져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안 있어서 동해안 무장간첩 사건이 발생하였고, 계획되었던 수련장이 간첩 수 색작전 본부로 사용되는 바랍에 그 수련회는 취 소되고 말았습니다. 이 아이들 의 용감한 신앙만 돋보이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고, 어차피 수련회는 모두 못 가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저는 그 아이들이 무척 대견스러웠습니다. 얼굴도 본적이 없는 그 중학생 아이들이 왠지 예쁘고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 결단력이면 세상을 이기는 신앙인이 되기에 충분하 겠고, 그들이 자라는 교회면 우리나라 교회도 소망이 있다는 데 까지 저의 생 각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을 긍정적이고 신뢰하는 눈빛으 로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서너주 후에 있었던 우리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도 가보니 이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결석을 당하 며 수련회에 온 아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부모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깨달음을 얻고, 시 골의 여름 기분을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부 모 거역하고 온 친구가 돌아가서 혼나지 않도록 합심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모두 기도한대로 되었다고 신기 해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그 다음 주일에 보았습니다. 학교와 혹은 부모의 반 대를 무릎쓰고 수련회에 왔다는 것만 가지고 그 아이들이 신앙의 결단이 있어 서 그런 것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철썩같이 믿을 수 있느냐구요? 놀려고 도망 나왔을 수도 있고, 은근히 딴 맘을 품고 왔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구요?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우습게 보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리가 정말 골칫거리입니 다. 우리 아이들을 믿어줍시다. 그리고 의심의 갸우뚱하는 고개짓 보다는, 격 려의 도닥임으로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려줍시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논 리 정연한 훈화보다는, 훈훈한 감동을 더 필요로 합니다.
22 no image 주고 받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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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5 2000-05-15
주고 받는 사랑 다른 사람이 내게 베풀어주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에게 나의 사랑을 베풀 수도 없습니다.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 을 줄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외국에 있던 7-8년 가까이 전에 어느 부인 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그 여인이 말했습니 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만하지 받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그 부인은 아주 떳떳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기색이 만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부인 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해 하기 힘들었던 그 부인의 성격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다른 사람에게 대 접을 받거나, 신세를 지는 일을 못견뎌하였습니다. 마치 어떻게 해서든지 되 갚아주어야 할 큰 빚을 진 것처럼 마음에 부담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면, 거의 본능적으 로 "무슨 의도로 그러지? 무얼 바라는 거지?"하며 경계심에 찬 고민 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기만하지 받지는 않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인생철학이 그 부인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 나름대로 확인하고 나 자, 그 부인이 불쌍해 보인 것입니다. "네 것 너 먹고, 내 것 나 먹자"는 식 의 삶은 정말이지 맛도 없고, 멋도 없는 인생살이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고, 나는 그 사람만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은 사랑 은 어떻게 해서든지 되갚아주어야 편안해지는 마음은 그렇게 성숙된 마음도 아니고, 그다지 복된 마음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냥 기분 좋은 일이고, 서로의 인간 관계에 따뜻한 훈짐이 돌게 하는 아름다 운 일입니다. 언제나 받을 궁리만 하고 자기 것을 베풀줄 모르는 사람이 문제 이 듯이, 언제나 주려고만하지 받을 줄을 모르는 사람도 똑 같이 문제인 것입 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그 비싼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에게 주님이 보여주신 반응은 참으로 감동적일 뿐 아니라, 또 도전적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다 그 여인에게 사랑을 잘못 베풀고 있다고, 비싼 재물을 허비하고 있다고 비난 하였지만, 주님은 자기에게 베푼 그 여인의 사랑을 감격스러워하며 받아들이 셨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데 있어서 뛰어난 우리 주님은 사랑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참 멋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불편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재능도 많고, 성품도 좋고, 교회도 열심이고, 다 좋은데 몸이 너무 장애가 심하였습니다. 어느 마음 착하고 희생 적인 그리스도인 아가씨 한 사람이 그 형제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둘이서 교제를 하였고, 그리고 마침내 아가씨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이 형제 와 평생을 같이 지내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 하고 이 아가씨는 결심을 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을 이루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매가 집안 식구들의 반대에 굴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아가씨가 변절을 하여 그 형제와 평생을 같이 살겠다던 마 음을 거두어들여서도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바로 그 형제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아가씨가 자기와 결혼하여 평생을 같이 살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으로"라면 자기는 싫다는 것이었습니 다. 자기 자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어서 자기와 함께 살겠다는 것은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이루어낸 정정당당한 것이어야지, 상대방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도움을 "베품"으로 얻는 것이라면 싫다는 철학인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실강이를 하다가 얼마 후, 서로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 이 상처가 되었는지 아니면 응어리가 되었는지, 그 후로는 뒤틀리는 그 불편 한 몸임에도 열심히 나오던 교회마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젊은 이 를 떠올릴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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