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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6.14 (00:00:00)
-한국교회는 요즘 이단과 사이비로 인해 얼굴에 먹칠을 당하고 있다. 지난
달 중순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이 몰려가 MBC 주조정실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방
송을 중단케 한 사실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한국기독교회의 추태로 기록
될 것이다. 바로 우리 교단 우리교회 목사님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 아니라고
해서 방관하거나 방치하고 있다가는 복음의 문이 단단히 막힐 지경이다.아무
리 ‘이단 사이비 집단’이라 우리 정통교회들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해도, 교
회 바깥에 있는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도 동일한 기독교회임이 분명하
다. 뿐만 아니라 유형이 다를 뿐, 또다른 모양의 유사이단 유사사이비 집단들
이 한국교회 안에 수없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명하고도 단호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앞으로 불신의 늪에 싸여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누가 이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기독교회는 복음의 변질이
나 왜곡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방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
교 사회 안의 교단이나 언론들이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짖지 못하는 벙어
리 개처럼 무기력해 있을 때, 소리쳐 외쳐야 할 입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복음의 왜곡이나 변질은 어제 오늘
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많은 이단과 사이비운동으로 수난을
겪었다. 주요교단들이 이단 사이비집단으로 규정한 곳도 수십에 이르고 그
외 각 교단에서 이단 규정한 것을 합하면 매우 많은 집단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교회의 복음에 대한 긴장과 순수성 유지를 위한 운동이 꾸준히 있어오
긴 했다. 그러나 자기네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단과
의 교류나 협력을 경계하지 않음으로 입은 한국교회의 손실은 엄청나다.95년
도 여의도광장에서 해방 50년을 맞은 기념으로 한국교회가 매머드집회 ‘희년
성회’를 열었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가진 이 집회의 임원명단에
는 이재록씨를 비롯하여 지금 이단 사이비로 알려진 여러 인사(?)들이 나란
히 끼어 있었고, 그날 단상에는 역시 이들이 각 교단장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광장에는 이단 사이비로 지목되는 교회의 팻말
을 든 신도들
이 광장을 가득 메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집회의 성패
가름이 우선 모인 숫자로 평가될 것이라는데 착안한 주최측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원동원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이단 사이비집단까지 동원하여 이
지경을 만든 것이다. 이단 사이비들의 잔치판 같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이유나 과정이야 어떠했든지 이날 한국교회 희년성회는 이단 사이비를 용납
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현주소 아닌가. 4년전의 일이
지만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조금도 변화된 것이 없다. 이단과 사이비라는 독버
섯이 가장 서식하기 좋은 곳은 바로 연합사업의 현장이다. 연합기관의약점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기관’이란 주인이 많기 때문
에 주인이 없는 것과 같다. 자리를 차지할 주인은 많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
서 책임을 질 주인은 없기 때문에 그 필요(돈)를 공급해 주기만 하면 웬만해
서는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래서 희년성회 때는 한국기독
교총연합회가, 얼마전에는 회장선거로 물의를 빚은 H장로연합회가 망신을 당
했다. 지금은 원로장로 권사연합회가 또 구설에 휘말리고 있
다.기성교회나 교
단들이 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에 소홀한 틈을 언제나 엿보고 있다. 이
단 사이비운동 연구가 탁명환 씨가 주요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모 이단집단
의 한 추종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우리는 생생하게 알고 있다. 그 집단도 지
금 살금살금 인맥을 타고 다시 접근하고 있다.세계기독교회사에 빛나는 한국
교회 성장역사가 요즘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잘살아 보세’라고 노래
부르면서 물질문명의 노예로 잔락해버린 오늘의 세태를 우리교회는 비판한
다. 그러면서 여전히 그 바람에 편성하여 껍데기 성장주의에 빠져 가장 민감
해야 할 복음의 변질에 무감각해 있다.오늘 우리교회의 이 불감증은 초기증세
가 아닌 중증, 곧 암덩어리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급히 인식하고 그 대안모색
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책임있는 교단과 그 지도자들이 현대판 빌라도의 자
세를 버려야 한국교회가 산다. 돌들이 소리치는 데도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
가.박 에 스 더기독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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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no image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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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6 2000-04-24
-그리스도인 정창균 목사 작년 언젠가,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모처럼 귀국한 친구와 몇몇이 서 식사모임을 가졌습니다. 자리에 앉자 그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 와서 받은 인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국도 이제는 아주 살기가 좋아 진 것 같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대답 했습니다. “예, 정치 가들만 없으면 살기 괜찮은 나라예요.” 모두가 맞다는 듯 한바탕 웃었습 니다. 정치가들 때문에 다수의 국민들이 억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데 스트레스 위에 스트트레스가 되는 것은 이러한 질낮은 정치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금뱃지를 자랑스럽게 달 고 다니면서 오히려 국회를, 그리고 정치 자체를 수많은 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 이야말로 이시대의 왕스트레스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 고 지난 3일 총선시민연대가 86명의 낙선대상자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거의 반수인 43%가 그리스도인(기 독교인)이었습니다. 37명중 장로가 5명, 집사가 22명이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로 불려진 사람들은 안디옥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안디옥 지방에 사는 불신자들이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었습니다. 언 제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 언제나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 들, 저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하여튼 저 들을 생각하면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 우리와는 다른 생각, 다른 원리, 다른 행동양식을 가지고 사는 패거리들, ‘그리스도, 그리스 도’ 하면서 사는 좀 이상한 족속들. 안디옥에서 모이는 신자들에 대한 자 기들의 이러한 인상을 배경으로 그 사람들은 안디옥교회 교인들을 그리스 도인이라고 구별지어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실 다분히 경멸 의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좀더 실감나는 우리식 표현으로하면, ‘예수쟁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디옥교인들은 당시 불신자들이 보아도 일반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그 들을 그 사회의 독립된 단체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입니다. 이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 가운데 다 수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도 전체 273명 당선자 가운데 34%에 달하는 92명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혹 시 수사망에 걸려서 당선무효 판결을 받는 사람이 한두 사람 생긴다 하여 도 여전히 90명 이상이 그리스도인 국회의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번에는 독실한 그리스도인 당선자가 많아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정 치’에 이 그리스도인 국회의원들이 앞정설 것이 기대된다는 기사를 쓰기 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기다려 본 뒤에 나무를 판단할 일입니다. 번 지르한 소위 ‘독실한 그리스도인’ 정치가에게 한두번 속아봤습니까? 그러나 곰곰 곰곰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정치가들에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사실, 이 시대 이 나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으로, 혹은 좀더 노골적으로 ‘예수쟁 이’라는 별칭으로 구분하여 부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비롯된 이 별명의 근원을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이나, 한국의 우 리들이나 다같이 경멸과 빈정댐의 뜻으로 이렇게 불린다는 점에 있어서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의 그 신자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반면에,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참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습 니다. 여기에 우리의 아픔이 있고, 도전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인다와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려지는 ‘진짜 예수쟁이’들에게 박수를!
20 no image 장로 아버지의 안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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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2 2000-04-07
-장로 아버지의 안부인사 정창균목사 제가 목회를 시작한 이후 저의 아버님이 제게 물으시는 안부인사는 판에 박은 듯,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교회 다 평안하 냐? 장로님들 (네 목회에) 협조 잘 허고? 집안 다 평안하냐? 아이들도 다 건실허고?” 일단 저와 통화가 되면 언제나 아버님의 첫 마디는 이 내용에 이 순서였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 까지 오랫동안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유별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한결같았던 그 어른의 교회 사랑의 모습은 우리 형제들에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특 별히 목회자를 존중히 여기고, 극진히 수종을 드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심방 가실 일이 있다고 찾으시면, 논바닥에 나가 계시건, 밭에 가 계시건 급히 돌아오셔서 정장으로 옷을 갈아 입고 허연 머리를 단정히 빗어내리고 젊은 목사님 뒤를 따라가며 수종을 들었습니다. “너희들은 교회를 잘 섬기고, 목회에 거침이 되지 말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우리 자녀 들 가운데서 누군가 자기가 섬기는 교회 목회자에 대한 불평이나 비판을 하면 아버님은 언제나 말을 막으며 경고성 충고를 하시곤 하였습니다. “절대로 목회에 거침이 되지 마라. 교회를 분란케하는 일에는 절대로 개입을 해서 는 안된다.” 그런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고 목회를 협력하신 장로 아버지 를 기억하셨음인지, 하나님은 아들 목사인 제게 저의 아버지가 하셨던 것 처럼 교회와 목회자를 섬기는 착하디 착한 교인들을 붙여주셔서 저는 지금 까지 참 순탄한 목회를 해오고 있습니다. 장로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기신 제 아버지는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 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평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안부 를 물으실 때 첫째 관심은 언제나 아들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가 평안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다 평안하냐?” 목회자를 지근거리에서 수종드 셨던 그분은 또한 목사가 목회를 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장로의 협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만 하시면 언제나 교회의 평안을 확인하신 다음에는 장로님들과의 관계를 물으신 것 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은 협조 잘 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 만, 제 아버님은 제게 가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집사 백이 장로 한 사람 못당하는 것이다.” 장로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좋 은 장로님 만나서 동역하는 것이 목회자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 을 어린 목사 아들에게 일깨워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선량한 많은 교인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시험과 아픔들 의 근본 원인이, 그 교회의 목회자와 장로 사이가 원만치 못하여 생기는 일들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동시에 두 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뒷조사를 하는 형사처럼, 실수 를 가차 없이 잡아내려고 눈을 부릅뜬 냉정한 감독관처럼, 주도권 싸움으 로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는 철부지 부부처럼 그렇게 긴장하여 지내는 것 은 정말이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불행한 것은 둘째치고, 교인들이 불쌍하게 됩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 관계가 아 닙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영원한 찰떡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로 맺어 진 당회가 되면 교인들은 목사님 과 장로님들을 생각만해도 감동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가도 목사님과 장로님을 보기만해도 위로가 되는 법입니다. 그러한 교회의 교인은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교회 다 평안하냐? 장로님들 협조 잘허고?” 돌아오는 주일이 그 어른 떠나신 지 3주년이 되는 날인데, 장로 아버지의 그 음성이 다시 그리워집 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의 자신에 찬 대답을 다시 들려드 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믄요!”
19 no image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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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 2000-03-21
자업자득 (自業自得) 정창균 목사/ 본보 편집위원 쪾 진리의 교회 신학교 복학을 위해서 신혼살림을 끌고 학교 아래 골목집에 사글세 방을 얻어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20년 전입니다. 큰 길로 나와서 학교 쪽으로 조금을 걸어 올라가면 왼쪽으로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이층에 개척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그 아래 집에 살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하다 가 그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저희 부부는 그 목사님댁에 안내되 어 들어가서 차도 한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저 는 복학을 다른 학교로 하게 되었고, 6개월도 못살고 그 동네를 떠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은 채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인가 갑자기 그 교회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 가봤더니 교회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부흥이 되어서 이사를 간건지, 잘 안되어 문을 닫은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얼마를 지나다가 우연히 그곳을 잘 아는 분을 만나게 되 어 그 교회 소식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참으로 기가막힌 대답 을 들었습니다. 그 교회는 개척한 지 여러 해가 되었어도 교인이 몇 안되어 목사님은 여러 모로 어려운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래 동네의 큰 교회에서 교인 한 사람이 이 개척교회의 목사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목사님에게 목회가 얼마나 어려우시냐고, 목사님 곁에서 목회를 돕고싶다 고, 등등 개척교회 어려움에 고생이 찌든 목사님에게는 귀에 솔깃한 이야 기들을 늘어놓았겠지요. 그리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드디어 기도를 들으 시고 헌신된 일군 한 사람을 보내주시는구나 하며 잠시 흥분도 하셨겠지 요. 그 사람은 조건이 붙어 있는 제의를 목사님에게 내놓았습니다. 교회도 옮겨오고, 열심히 충성을 할 것이니 장로를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내 목사님과 이 사람은 합의에 이르렀고,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개척교회로 옮겨왔고, 잠시 후에 장로도 되었습 니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그 후에 터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장로가 된 그 사람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도 장로고, 장로도 장로이니 설교를 우리 둘이서 나누어 서 합시다.” 세상천지 어디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겠느냐고요? 제 자신도 믿기지가 않았습 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생을 할지라도 말이 안되는 일은 하지 않고, 말 되 는 일들만 하는 인생들이었다면 이미 세상이, 정치판이, 이 나라의 많은 교 회들이 오늘 우리가 보고 한숨짓는 이 모양 이 꼴은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 교회는 그것이 문제가 되어 한참 동안을 싸우다가 문을 닫고 없어져버 렸습니다. 문득, 단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자기 자신이 저 지른 잘못의 과보(果報)를 자신이 받는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미 우리가 교회 안팎을 불문하고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문제와 괴로움들과 왜곡된 역사의 현장들의 상당 부분이 우리가 뿌린 것의 결과를 거두고 있 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저런 질 낮은 정치인들 을 갖게 된 것도 사실 상당 부분은 이 백성의 자업자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말도 안되는 씨들을 여러 방면에서 뿌리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 빚을 갚기 위하여 안수집사를 수십명씩 세우는 데, 기본료가 이천만원이라는 소 문도 들리고, 그렇게 해서 안수집사가 된 사람 가운데는 예수 믿은 지 3년여 밖에 안되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도 들 립니다. 교회는 집단적으로, 교인은 개인적으로, 그 결과가 심상치 않아 보 이는 많은 일들을 겁 없이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자업 자득을 신랄하게 경고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 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 나?”(렘5:30-31).
18 no image 단번에 결혼 승낙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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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1 2000-03-03
-단번에 결혼 승낙한 이유 정창균 목사 저의 큰 누님은 연애 결혼을 하였습니다. 매형은 외아들 이었습니다. 사돈 할머니는 20대 후반에 혼자 되어 이 아들 하나 키우며 살아 온 분이었습니 다. 당신의 아들이 결혼 하고자 하는 아가씨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인사차 시골 저희 집에 오셨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인사차”이지, 사실은 아가씨 의 가정 환경을 살펴보려고 “심사차”오신 것이었습니다. 연애 중이던 누 님과 매형에게는 물론 우리 집안 식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 다. 여기서 이 할머니가 결혼을 허락지 않으시면 누님과 매형은 그동안의 연애가 물거품이 되고, 우리 집안도 큰 상처를 입을 판이었으니까요. 20대 에 혼자되어 외아들 대학까지 졸업시키며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라면 보 통 수준 보다는 훨씬 더 까다로우실 것이라는 생각에 저희 부모님은 이 분 이 머무시는 이틀 동안 다소 긴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누님의 결 혼은 의외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두 분은 결 혼을 하였고, 그 할머니가 90이 훨씬 넘으신 지금까지 30년도 넘는 세월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누님이 결혼한 후 이 할머니는 저를 작은 아 들 같다며 많이 사랑해 주셨고, 저도 이 할머니의 사랑이 고마와서 유학 가 있는 동안에도 매년 음력 팔월 열이튿 날이면 할머니의 생신을 잊지 않 고 축하 카드와 전화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누님이 결혼한 후 어느 날인가 할머니는 제게 왜 첫 순간에 누님을 며느 리감으로 합격시키셨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것은 순전히 저희 어머니 덕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에는 80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연세가 높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대변을 잘 가 리지 못하셔서 자신도 모르시는 사이에 그냥 옷에다 대변을 보시곤 하였습 니다. 그렇게 한번 일이 터지면, 치우는 일이며, 냄새를 빼는 일이며, 옷을 갈아 입혀드리는 일이며, 복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 이 생기면 우리는 으레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 생각해 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께는 잡수실 것을 많 이 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데 사돈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할아버지와 관련된 한 광경을 목격하신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 머니께서 할아버지께 간식을 드리시는데, 아이들이 있다가 어머니께 핀잔 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할아버지께) 먹을 것을 자꾸 드리지 마 세요. 그러니까 옷에 똥을 누시잖아요!” 그러니까 제 어머니의 말씀이, “내가 치우지 너희들이 치우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할 아버지께 먹을 것을 드리시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 “이런 어머니의 딸이라면 볼 것도 없다”싶어서 그 순간에 우리 누님을 며느리로 맞기로 마음에 결정을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딸 은 결국 그 어머니의 모습대로 된다”는 고래의 통설을 굳게 믿고 계셨습 니다. 얼핏 생각하면 참으로 엉뚱하고 어이도 없는 며느리 선택 기준같아 보입니 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은 그가 자란 가정의 환경과 가정 교육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은 우리 선조들의 혜안이었습니다. 부자로 살았는지 가난하게 살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고, 자녀들을 어떠 한 철학으로 가르쳤으며, 가정의 분위기가 어 떠하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것은 저희 부모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사실은 이 할머니께 서 누님의 가정 환경을 심사하기 위하여 저희 집에 오시기 훨씬 전에, 저 희 아버님께서도 매형의 가정에 대한 “탐문 조사차”매형의 시골 동네에 가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그 집안을 물어보고, 먼발치서 매형의 어머니와 집도 보고 돌아오신 것이었습니다.
17 no image 목회자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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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0 2000-02-12
-목회자의 자녀들 정창균 목사 2년 반쯤 전 주일 날 아침, 결혼을 앞둔 저의 조카가 예비 신부를 데리고 인사차 교회로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예배 후 두 사람은 우리 아이들과 오 후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나중에 그 아가씨가 의아스럽다는 둣이 말했습 니다. “목사님 자녀들 같지가 않아요. 참 발랄하고, 밝고, 자기 표현도 잘 하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말하는 그 자매의 말이 의아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교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목회자 자녀다움의 이미지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꾹 참아내고, 왠지 주눅이 들어 있는 듯하고, 왠지 눈 치를 보는 듯 하고, 등등이라는 것이 생각나서 서글퍼졌고, 우리 아이는 그 렇게 자라지 않았다는 확인인 것 같아서 위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옛날 부터 목회자의 자녀들이 부모와 교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 온 말은, “목사의 자녀이면서 … 수 있는가?” 혹은 “목사의 자녀이니까 해 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이 들 말로 하면, 목사의 자식이라는 것 때문 에 교회와 가정에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한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목사지 내가 목사냐? 나는 죽어도 목사 안 될 거야!” 중학교 때 저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아버지가 목사님이시던 저의 친구가 때로는 혼 자 중얼거리는 독백처럼, 때로는 내게 털어놓는 하소연처럼 자주자주 쏟아 놓던 말이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첫 아이를 낳은 후 아이들 기르는 것과 관련하여 서로 약속한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절대로 아빠가 목사라는 것을 내세워서 아 이들을 꾸짖거나, 일을 시키지 말 것(목사의 자녀가 아니라 신자로 키울 것). 둘째, 절대로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 선생님을 흉보거나 욕하지 말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유학을 떠나서 6년 이상을 외국에서 산 덕분에 교인들로부터 목사 자녀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받을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저희 부부도 첫 약속을 지키기가 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작년 언젠가, 목사님들을 상대 로 강의하면서, 한국의 목회자 자녀들이 자신들이 단지 목사의 가정에 태 어났 다는 사실 때문에 받는 고통의 심각성을 알아서, 목사님의 위신과 체 면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을 조심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나누 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한 목사님이 손을 드셨습니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저의 이야기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목사님 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 큰 아들은 교회를 잘 다니지 않습니다. 체격이 얼마나 크고 주먹도 센지 누구도 비위에 거슬리면 가만 놔두지를 않습니다. 한번은 이 아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한 스트레 스를 받고 있으니까 저를 상관하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세요.’ 그 아들이 지금은 군대에 갔는데 많이 변해서 제대하면 새생활을 할 것 같습니다. 문 제는 둘째 아이입니다. 이 딸 아이는 국민학교 때부터 가출을 했습니다. 저 는 제 아내와 이 아이 찾으러 정신 없이 다니면서 성경이 말씀하는 한 영 혼의 귀중함을 체험했습니다. 매주 라면 값으로 돈 만원씩을 통장에 넣어 주는데, 그것을 꼬박꼬박 찾아가는 것을 보고 아직 우리 아이가 어디엔가 살아있다는 확인을 합니다. 목사들끼리 모인 이런 자 리가 아니면 내가 어 디가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하겠습니까?”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적지도 않은 데다가 그 목사님께 너무 죄송해서 그 분이 이야기한 대로 정확하게 옮기지는 못하였습니다. 여하튼 그 목사님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공감과 탄식의 한숨소리가 터져나왔고, 저 와 몇분의 목사님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 땅의 목사의 자녀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16 no image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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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7 2000-01-27
정창균 칼럼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의 감격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운 처지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은 내 곁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의 감격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 곁에 있어 줄 수 있 다는 사실의 은총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 없으니 못살겠 습데다.”며 옛날 미국 유학시절에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는 방학 때면 너 무나 사람이 그리워 혼자서 도서관 밖에 나가 왁왁 소리를 질러보곤 했다 던 박윤선 목사님의 생각이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을 사귀며 사는 것도 보통 감사한 일이 아닌데, 하물며 한 성령을 받아 같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같은 영원한 나라 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잠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 그리스도 때문에 함께 사귀고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사실 보통 감격스러 운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한창 핍박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물고 기 표시를 암호로 삼아서 서로 그리스도인인 것을 표시하고, 그것이 확인 되면 얼싸안으며 좋아하고 서로의 만남을 감격스러워 하던 때가 있었습니 다. 그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내걸지 않고는 서로 만나거나 사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사귐을 위해서 기 꺼이 그 생명을 내걸곤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갇히거나, 고립되거나, 따돌림을 받으며 같은 그리스도인들과의 눈에 보이 는 만남과 사귐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해 겨울 중국 땅 어느 골방에서 제가 만났던 강건너(북한) 에서 온 한 그리스도인은 말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믿는 형제들이 다리 위 같은 데서 몇명씩 웅크리고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는 체 하면서 서로 만나 는데,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오면 카드놀이 하다가 싸우는 것처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딴청을 피우고, 그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믿는 자의 교제를 은밀히 나누는 식으로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본회퍼가 말한대로 믿는 무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 씀과 성례전을 중심으로 보이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 의 은총입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이 은총을 누리며 사는 것도 아닙니 다. 그런데도 그 축복을 날마다 누리는 사람은 그것을 예사로 넘겨버리기 가 일쑤입니다. 심지어는 귀찮아 하고, 지겨워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리스도인이 몸으로 옆에 함께 있다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비할 수 없는 기 쁨과 힘의 원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낯선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다 가 한쪽이 신자임을 밝히면, “나도 믿어요!”하면서 아주 반가와 하고, 금 방 친해지고, 오랜 친구로 보일 만큼 격의 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신자 정도가 아니라, 같은 교회 회 원인데도 이러한 모습을 보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 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서로 만나고 사귀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도, 한없이 계속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큰 은총일 뿐입니다. 본회퍼가 쓴 그리스도인의 서로 사귐에 대한 절절한 글을 읽으면 마음 이 뜨거워집니다.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단절되어 감옥에 외롭게 갇혀 있다가 히틀러의 교수대에서 사라져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 니다.“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 유롭게 눈에 보이는 교제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만나고, 사귄다는 이 사실 은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되는 신자들이 이 은총을 은총으로 알고 살고 있는 것인지, 때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합 니다. 우리 주위에 언제라도 서로 얼굴을 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그리스도 인들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 다만 큰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잠시 우리 에게 주어진 한시적 기회일 뿐입니다.
15 no image 또다시 입시철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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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5 2000-01-13
-정창균 칼럼 우리가 바라는 세상 - 또다시 입시철을 맞으며- 또 다시 입시철이 돌아왔습니다. 그 어려운 고등학교 시절 3년을 용케도 잘 견뎌내고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아이들이 대견스럽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려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는 이 아이들이 앞으로 견뎌내 야 할 3년이 훤히 보이는 듯하여 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2-3년 전에 있었던 한 젊은이의 충격적인 자살 사건이 생각납니다. 그는 제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이미 이 나라 최고 수준의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재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학원에서 성적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고 고민 고민하던 끝에 결국 자살로 그 아까운 인생을 마감짓고 만 것입니다. 이전에도 나이 어린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심심찮게 있곤 했습니다. 그중 어떤 학생들은 유언까지 남기고 가기도 했습니다.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시험의 중압감에 눌리다 못해서 이제는 어디엔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시 험 없는 나라를 찾아가겠노라며 그 귀한 생명을 던져버리고 이 사회를 떠 나간 것입니다.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획일화 된 가치 기준의 희생자들입니다. 이 사회는 아이들을 학교 성적에 의하여 분류하여 점수와 등급을 매겨주고, 반에서 몇등짜리, 평균 몇점짜리로 아이들을 즐겨 부릅니다. 노래를 잘 하는 아이, 글을 잘 쓰는 아이, 공을 기가막히게 잘 차는 아이, 키가 훤칠하게 큰 아 이, 남을 잘 돕는 아이 등으로 불러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치가 획일화 된 세상은 몹쓸 세상입니다. 부모들은 사회가 그러 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사회의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라고 눌러댑니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들이 이 지옥과 같은 세상, 차라리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버리고 싶어지는 이런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부 모들 탓입니다. 버드나무의 멋은 축축 휘늘어지는 데 있습니다. 사회가 쭉쭉 뻗은 낙엽송 소나무를 좋아한다 하여 그 멋지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모두 위로 치 켜 세우고, 억지로 철사줄로 묶어매면서 소나무처럼 곧게 자라라고 해대니, 버드나무에게는 그것이 다름아닌 지옥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보 니, 버드나 무는 제 모습을 잃은 꼴불견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버드나무가 내린 마 지막 결론이, “나더러 소나무가 되라고 하지 않고, 나 생긴대로 버드나무 가 되라고 하는 세상을 찾아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소나무만 좋아해도 너는 네 모습대로 버드나무의 멋을 즐기며 버드나무로서 살라” 고 하는 세상 말입니다. “시험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서 떠납니다.” 그 시험 말고도 더 멋지고,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시험 하나 때문에 이 멋지 게 살 수 있는 인생을 던져버린단 말입니까? 그러나 사실은 시험이 있어서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시험의 결과에 의하여 아이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모든 평가와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그 못된 획일화된 가치판단의 기준이 문제입니다. 학교 성적은 별볼 일이 없지만, 축구인으로서는 한평생을 생기 있고 재미 있게 살 수 있는 아이가 학교 성적 않좋다는 것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있습니다. 음악인으로서는, 미술인으로서는, 만화가로서는, 소설가로 서는, 코미디언으로서는, 영화 배우로서는, 교회 사찰로서는 아주 재미 있 게 보람을 느끼며 살 사람을, 자기들이 요구하는 그것 한 가지 맞지 않는 다고 버린 자식 취급하고, 필요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이 잔인한 부모들과 이 사회가 지금 간접적인 살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소나무로 소나무 되게 하고, 버드나무로 버드나무 되게 하며 인생을 여유 있게 사는 멋쟁이 부모들 어디 없습니까?
14 no image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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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8 2000-01-04
-정창균 칼럼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제는 다른 조건 없이, 굳이 사랑의 이유를 붙임이 없이 그냥 사랑합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이것이 만 인 앞에서 고백하는 저의 양심 선언입니다. 저는, 아무런 조건을 붙임이 없 이 그냥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알았던 처음 순간부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여름철 소나기 지나가 듯,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산 꼭대기에 서니 헤매며 올라온 등산로가 내 려다보이 듯, 이제 지난 날들을 돌아보니 제가 통과해 온 하나님 사랑의 오솔길이 보이는 듯 합니다. 처음 저는 이유를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였 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다가, 나는 왜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유를 알고 하나님을 사랑 하였 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살다가 저는 이유 없이, 그냥,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모르고 사랑하다가, 이유를 알 고 사랑하다가, 이제는 이유 없이 그야말로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처음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그래야 되 는가보다”하여 사랑하였습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품에 안고, 무릎에 앉혀 놓고 마치 제게 최면술을 걸 듯 “너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고 반복 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아직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기 전부터 마치 훈련소 병사 훈련시키 듯이 “너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고 가르치며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집사 님들도 “너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법 나이가 들 때 까지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인 줄 알고 자 랐습니다. 사랑해야 된다고 하니 사랑한다고 하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하 나님을 사랑해야 된다고 주입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 처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 말을, 실감도 없는 사랑을, 이유도 모르는 사랑의 고백을 그냥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 게 해야 된다고 하니 그렇게 하는 사랑이 었습니다. 그것은 제 어머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제 아버지의 하나님, 제 선생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사 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제 어머니께서 하나님을 좋아하시는 만 큼, 제 아버지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저는 하나님을 좋아하지도, 잘 섬기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이유도 모르면 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 “다른 사람들”이 그때 제게 있었다는 사실 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너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 게 나를 몰아준 그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영영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현듯 그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고기 근이라도 들고 찾아 가서 이렇게 고마와하는 저의 속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제가 하나 님 곁을 떠나려고 몸부림을 칠 때, 기다려주며, 참아주며, 등을 도닥여주며, 마치 용하다는 의사 찾아다니는 중병 환자처럼 저를 데리고 이 목사님 저 목사님 찾아다니며 애쓰시던 제 어머니 생각도 불현 듯 살아 납니다. 그 어 른이 영영 제곁을 떠난 후인 지금에야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렇게 답답 하고 한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오늘(12월29일)이 그 어른이 떠난지 꼭 5년이 되는 날 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새 천년의 문턱에서 품 는 저의 새 소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나 자신의 새로와 짐이 없고서야 새 천년이 백번을 새롭게 온다 하여도 인생도 역사도 결국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이 끝나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13 no image 인간이 되신 하나님/정창균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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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5 1999-12-20
-“모든 동물들을 사랑하는 농부가 있었어요. 그 농부는 동물들을 사랑해서 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산에 불이 났어요. 큰 동물들은 모두 다 른쪽으로 도망을 가는데 작은 개미들은 앞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불이 난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불이 난 쪽으로 가고 있었어요. 농부는 너무나 안타까와서 개미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러나 개미들은 이 농 부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어요.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농부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네가 개미들에게 그것을 알려줘서 그들을 살려내려면 네가 개미가 되어야만 한단다.' 그래서 농부는 개미가 되었어요. 앞에 불이 났으 니 그리 가면 안된다고, 죽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어떤 개미는 그 말을 믿 고 방향을 바꾸어 다른쪽으로 갔고, 어떤 개미들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냐며 계속 가던 길을 갔어요. 불을 향해서 간거예요. 그런데 이 농부는 예수님이고, 개미는 우리와 같아요. 우리가 죽는 길인 줄 도 모르고 계속해서 가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 시고,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오신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런데 하나 님이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인 거예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우 리를 살려주시려고 인간이 되신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요.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길로 가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해야겠어요.” 재작년 성탄절 즈음, 우리 막둥이 녀석이 우리 집 가정 예배 시간에 한 설 교였습니다. 작년 성탄절에도 이 이야기가 생각나더니, 금년에도 성탄절이 되니 또 다시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이 인간이 되신다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인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 때문에 인간이 되셨어요.”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글썽이기 까지 하던 11살박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아들 녀석의 모습이 이 성탄절에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모욕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되신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그 예수 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들 녀석의 모습이 하도 신기하고 은혜스 러워서 덩달아 눈물을 글썽였던 저의 모습도 다시 생각이 납니다. 아무래 도 자기 자신이 생각해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했더니 주일학교 설교시간에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의 그 설교가 자기에게는 많은 은혜가 되어서 우리 집 가정예배 시간에 자 기 설교 차례가 되면 하려고 자세히 기억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모욕”을 기꺼이 당하면서까지 예수님께서 이 땅 에 오신 그 이유를 놓고, 이 어린 꼬마 녀석 만큼이라도 감격해 본 일이 내게도 과연 있었는가 하는 부끄러운 물음이 새삼스럽게 제 속에서 터져나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비웃지 말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하는 사람이 되자”는 어린 아들 녀석의 호소가 저의 맘에 들이 박혔습니다. 가진 자들의 반란"인가? 백화점 매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특급 호텔은 이미 만원 사례인가 하면, 복지 시설에는 온정이 뚝 끊어져서 난방도 못한 채 "엄동 세기말"을 보낸다는데… 흥청대는 가진 자와 허탈해 하는 없는 자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금년 성탄절은 “나 죽어 너 살라”며 죽은 세상 살려내려 오신 그분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 습니다. 그리고 감당 못할 이 사랑을 받은 빚진 자의 말과 몸짓을 이번 성 탄절만큼은 누구에겐가 해보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싶고, 용서 받고 싶습니 다.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고 싶고, 또 나누어 받고 싶습니다. 누구에겐가 냉 수 한 그릇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만세”를 실컷 외쳐 보고 싶습니다."
12 no image 감사의 눈물/정창균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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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6 1999-12-02
-“주 안에서 목사님을 알게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저는 요즈음 나도 모르 게 나오는 눈물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건 아닌데 가끔씩 교회를 생각하고, 또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서 눈물이 나와요. 주님을 더욱더 뜨겁게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겠어요. 흥하면 흥하는대로, 망하면 망하는대로 감사할래요.” 작년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주일 오후에, 한 형제가 쑥스러운 듯 씩 웃으며 제게 건네준 편지의 첫 대목 이었습니다. 나이 삼십이 넘은 사내 대장부가 마치 어린 아이처럼 이렇게 한자 한자 편지를 써내려간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닌데”, 그 형제처럼 저도 “나도 모 르게 마음에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냥 무엇인가가 감사하였습니다. 제가 가끔씩 사소한 이유를 가지고도 감격해하며 찔끔찔끔 눈물 바람을 하 는 것은 저의 마음이 아직도 문학 소녀처럼 여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러 한 모습은 담임목사 체통에도 맞지 않아 보일 거라고, 그리고 이런 사 람은 큰 일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그러지 않아보려고 때로는 노 력도 해본답니다. 그러나 15-6년 전 어느 새벽, 저에게도 눈물을 주시라는 한달 여 동안의 저의 기도가 마침내 응답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펑펑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쏟아부은 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찔끔거려지 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담임 목사의 체통이 안 선다 할찌라도, 또는 사소한 일에도 찔끔거리는 이것이 장애가 되어 큰 인 물이 못되고 큰 일을 못한다 할찌라도, 감격스러울 때 감격스러워하고, 눈 물이 나올 때 억지로 참고 딴전 피우지 않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목사 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곤 합니다. 편지 첫 대목의 “주 안에서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라 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제가 그렇게 감격하고, 감사하고, 눈물을 찔끔거린 것은 맹세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눈물을 가지고 있고, 교회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품고 있고, 하나님과의 관 계에 대하여 감격이 있고 사랑의 고백이 있고, 그러다가 끝내는 “흥하면 흥하는대로, 망하면 망하 는대로” 감사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한 형제의 진 솔하고 그러나 능력이 넘쳐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제게는 그렇게 감사 하고 감격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청년이 편지 끝에 쓴 "흥하면 흥 하는 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라는 말은 그 전 주일에 제가 한 설교였는 데, 그 형제는 그 말씀이 은혜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청년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수년 째 남다른 많은 마 음 고생거리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저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저의 기도를 간절하게 만들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받 은 쪽지 편지가 바로 이 사람이 내어놓은 고백이어서 제게는 더 진한 감동 이 되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4)고 하신 사도 요한의 심정이 목회자가 되고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이 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과 그리고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때 때로 쏟아내던 그 원망과 한숨과 불평 불만들이 너무 사치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방자함이었다는 아픈 고백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에게는 감사가 능력이라고 어느 주일 설교에서 부르짖었는데, 가만히 생각 해보니 감사는 또한 은혜입니다. 감사하고 있는 내 자신이 이미 은혜이고, "흥하면 흥하는 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 감사하며 사는 지체를 보는 것 이 또한 주체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주 안에서 여러분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11 no image 주께 부어드리는 물/정창균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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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 1999-11-16
-지난 해 초가을 어느 주일 아침 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때보다 일찍 교회 에 나왔습니다.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 주님께 드리고 싶은 간절한 기도가 있어서였습니다. 구겨진 흰 봉투 속에 들어 있던 돈 3만원을 꺼내어 감사 헌금 봉투에 옮겨 넣은 다음, 두 손으로 그 봉투를 들고 저는 정말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3만원 밖에 안되는 돈이었지만, 그 돈을 제게 가져온 그 분을 생각하면, 그 돈은 단순히 “돈 3만원”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써서는 안될 기가막힌 돈이었습니다. 목요일 오후였습니다. 연세가 높으신 집사님 한 분이 사무실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참 죄송하다는 듯이 당신의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매 달 몇 푼씩 당신 몫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여러 달째 끊기고, 자녀들이 보 내주던 용돈마저도 IMF가 닥치면서 몇 달째 끊어져서 전혀 수입이 없이 어렵게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자녀 중 하나가 오랫만에 돈 10 만원을 용돈으로 주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은 그 10만원을 받자 마 자, 여름을 나느라 헉헉대던 목사가 애처로와 보였던지, 아니면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씀을 잘 가르쳐 주시는 목사님이 감사”하였던지 그 10 만원 가운데서 3만원을 뚝 떼내어 흰 봉투에 넣어 꼬깃꼬깃 접어서 손에 움켜쥐고 저에게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먹고 자픈(싶은) 것” 사 드 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가막혀서 그 3만원에 제가 조금 더 얹어서 돌려드리려 하였습니다. 집사님은 펄펄 뛰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져 오신 그 돈만이라도 그냥 가져가시라고 저도 펄펄 뛰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고집을 꺾지 않고 봉투를 집어던지고는 도망가듯이 사무실을 나가 셨습니다.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달만에야 드 디어 만져본 돈 10만원, 그 귀한 것을 손에 쥐자 목사 생각이 나고, 그래서 한 토막을 뚝 잘라내어 가지고 와서 “말씀을 잘 가르쳐주시니 감사”하다 며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라는 어머니 같은 이 어른의 그 마음이 저의 눈 물을 뽑아낸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이 던지고 간 봉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부하 장군들이 떠 온 물을 받아들고 차마 마실 수가 없 어서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던 다 윗 왕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삼하13:14-17). 다윗은 원수들에게 빼앗겨버린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이 그리워 한번 마시고 싶었고, 왕의 이러한 심 정을 헤아린 장군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달려들어가서 그 우물물 을 떠다 왕에게 드렸습니다. 그 물을 받아든 다윗은 차마 그 물을 자신이 마실 수 없어서, “이것은 (물이 아니라)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라고 하면서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그 물 을 주께 부어드리는 다윗의 그 심정으로 저도 그 돈을 주께 드리고 싶었습 니다. 그래서 그 주일날 아침,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 그 돈을 두 손으로 들 고 주께 드리듯 그 기도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여러 지체들이 그렇게 애틋한 마음과 사랑과 신뢰와 그밖의 모든 호의적이고 자상한 배려로 저와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모습을 저는 자주자주 확인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큰 힘과 용기를 얻곤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그러한 지체들이 하나도 없다면 저는 한없이 기가 꺾이고, 자기 환멸과 회의에 빠져 엉뚱한 길로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도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니까요. 그러나 가끔씩은 찌르고 아프고 고달프게 하는 지체들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그 렇지 않다면, 저는 한 없이 방자해지고, 황제병 환자처럼 자기 착각과 도취 에 빠져 역시 엉뚱한 길로 가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역시 미 혹을 받는 죄된 인생이거든요.
10 no image LCBC/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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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5 1999-10-11
LCBC 운동의 깃발을 한번 쳐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LCBC는 “교회 로 교회되게 하라(Let the Church Be the Church)”는 말의 영문 첫자들 을 제가 멋대로 따다 붙인 것입니다. 재작년에는 제가 유학을 했던 학교에 다시 가서 한달을 지냈는데, 하루 는 교회에 대한 연구로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노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 분을 방문하는 것은 제가 그곳에 다시 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 도 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본질이 어떻게 현장에 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저의 고민을 털어놓았 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 시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첫 마디에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것(Let the church be the church)”이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은 하나님으로 하나님되시게 하는 일 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이 잘못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한 대화로 교수님의 2층 서재를 오르내 리며 한나절을 같이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LCBC”라는 네 글 자가 마치 혁명구호처럼 제 마음과 머리 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인데 교회가 아닌 교회가 있을 수 있는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건물도, 장소도, 시설도, 프로 그램도 아니고 사람입니다. 그러니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사람과 관련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교회라면, 결국 신자들로 하 여금 신자답게 살게 하는 일이야말로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의 관건이라 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당 하는 불신과 치욕과,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당하는 능욕,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의 상실 등 우리가 진통을 앓고 있는 이런 저런 아픔 들의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않은 것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아에 고소를 당한 사람이 야소교를 믿는 사람이면, 포승줄로 묶어서 잡아오지 않고 아무날 아무시까지 관아로 나오라는 통지만 보내면 될 만큼 신자들이 신뢰를 받는 때가 있었습니다.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산 사람이 야 소교를 믿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 발령이 나면 임지를 바꾸어 달라고 조정에 청원을 할 정도로 신자들이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삶으로 유명한 때가 있었습니다. 백여년 전,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초창기 시절의 이야 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로부터 그렇게 신뢰를 받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때는 비율로 따지면 사람 일만 명을 모아놓고 예수쟁이 손들라 면 단 한 명이 손을 드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길가는 사람 너댓 명 만 모아놓고 물어봐도 그중에 한 명이 손을 드는 판입니다. 국회에 들어가 서 예수쟁이 손들라면 반수가 손을 드는 판이고, 국무회의를 열고 손들라 해도 상당수가 손을 들 판입니다. 일년 반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에 들어가 서 예수쟁이 손들라면 대통령이 제일 먼저 손을 들 그런 판이었습니다. 온 통 예수쟁이 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는 지금 교인을 늘리는 일과 교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일이 얼 마든지 아무런 관련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생한 현장을 보고 있습 니다. 교인 수가 많아지다 보니 이런 사람도 생기고 저런 사람도 생길 수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자위하기에는 우리의 낯이 너무 간지럽고, 우 리의 양심이 도리질을 하며 너무 큰 소리로 쿵쿵거리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각을 달리하고, 그리하여 삶을 달리하려는 심각한 결단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9 no image 문득 그리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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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4 1999-09-03
-이번 한국 고관부인들의 ‘고급옷로비 의혹’을 다루는 청문회 석상에서 한국교회 성도들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언필칭, 그들은 소위 세 계에서 몇번째라고 자랑하는 거대한 교회의 성도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경과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침없이 인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앙적인 고백의 수준으로 토로되어지는 증언 중에는 어린아이가 들어도 구별이 가능한 거짓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독교 신자들끼리 서로 거짓말 을 한다고 텔레비전 앞에서 하나님을 인용하면서 싸우는 꼴이란 무엇인가? 어찌하여 기독신자들의 증언이 신용을 상실하고 이렇게 땅에 떨어지고 말 았는가? 첫째로, 한국교회의 대량생산이 낳은 불량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강 남의 소위 부유층과 상류층이 주로 다니고,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 교인 들이 많은 곳에서 더 심각한 불량신자들이 제조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라는 직분을 너무나 쉽게 받았 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학력, 재력, 능 력, 권력을 가진 사람 들이 과연 신앙적으로도 갖춘 사람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우 리 한국교회는 일류병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 은 이런 세태를 개탄하는 음성을 들어야만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번 청문 회를 보면서 하나님을 비웃는 소리를 어떻게든지 외면하려는 태도를 버리 고, 겸허하게 우리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영혼을 철저히 돌보아야 한 다. 심각한 모순을 갖고 있고, 타락해 있는 가치관을 적당히 포장하고 있는 위선을 고쳐주어야 한다. 복음이란 미명하에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간지 럽게 쏟아놓는 설교나 성경공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교회는 기도원 운동을 바로잡아서 성경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기 도원은 만사형통의 복을 얻는 성황당이 아니다. 이번 어떤 고위층 부인들 은 기도원에 자주 다녔고, 기도원에 입고 갔다는 옷이 말썽을 일으켰다. 그 들의 기도는 누구를 위한 기도였던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기도하던 다니엘과 같았을까? 그동안 ‘기도원에 간다’는 말은 매우 신선한 의지를 가지 고 자신을 돌아 보고 잠시동안이지만 하나님께만 매달리겠다는 각오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신선한 의미를 찾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기도원이란 어 떤 곳이어야 하며, 어떤 복장을 갖추어야 할 장소일까? 수천만원짜리 호피 를 두르고, 부유층의 신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찾는 곳 일까?’ 한국교회는 기도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 물 질적으로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흉보지 말아야 한다. 작은 교회의 모습을 경멸하는 한, 거대한 건물의 위용을 자랑하는 기도원 운동은 변질되고 말 것이다. 셋째, 한국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를 철저히 높여야 한다. 이 번 청문회에서 몇 사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서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한다고 하였다. 도대체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에 손을 얹는다고 진실하다고 할 수 있는가?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관례가 있다. 그 러나 대통령이 하는 취임의 다짐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예배행위는 아니 다. 일종의 시민의식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라고 해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 도 관례에 따라서 그렇게 할 뿐이다. 이번에 증언하는 지도급 신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송두리째 땅에 떨어뜨리 고 말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 계시의 책이다. 성경을 인용 하거나, 성경에 대한 맹세를 한다는 것은 곧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의미한 다. 자기의 죄를 은폐하거나 속이 드려다보이는 거짓말을 믿어달라는 보호 막으로 사용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도 양육에 있어서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교회 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야 9장 15절의 말씀과 같이 머 리도(장로와 존귀한 자), 꼬리도(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 모두 잃어버리 는 불행한 시대를 맞을 것이다. 반대로 국민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 양심적 인 인재를 길러내는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될 것이요, 이 나라는 인류 역사에 공헌하는 국가로 도약할 것이다. 묵묵히 예수님처럼 자기의 사명을 다하면서 나아가자.
8 no image 목회자가 된 이유/ 정창균 목사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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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0 1999-08-10
-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신학교에 갈 때 제게는 나름대로 의 포부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부한 경영조직론이나 인간관계론, 혹 은 재무관리론 등의 경영이론을 신학에 접목하여 교회를 위한 새로운 학문 분 야의 체계를 세우는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제 눈에는 교회들이 온통 비능률과 비합리 투성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학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가지 않아서 저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신학을 공 부하고, 교회를 배우면서 교회는 세상의 다른 조직들, 특히 대학에서 배운 경 영조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영조직 은 경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경제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말은 그 조 직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윤의 극대화나 능률의 극대화에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서는 100원을 투자하여 50원을 얻을 수 있는 길과 100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100원을 얻는 길로 가야 합니다. 50원을 얻는 길을 택하는 것은 심하게 말 하면 자살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 나 제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확인한 참다운 교회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교 회는 1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얻는 길을 빤히 보면서도, 때로는 오히려 100 원이 적자나는 곳을 의도적으로 택하여 가야되는 때도 있는 특수한 단체였습 니다. 교회는 경제성의 원리가 아니라, 덕의 원리 그리고 사랑의 원리에 따 라 살아나가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가, 어느 정도의 경제 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 교회 의 의사결정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액을 다 손해보는 길인 데도 교회는 그 길을 가야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교회 는 능률 최우선의 단체도 아니고, 프로그램 중심의 조직도 아니고, 성장 최우 선의 단체도 아니라는 그때의 깨달음은 줄곧 저의 교회관과 목회철학의 형성 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덕과 사랑의 원리보다는 경제성의 원리에 의하여 교회 를 세워가려 하고, 믿음의 원리보다는 합리성의 원리에 의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대한 생각 이 바뀌니 진로도 바뀌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 고, 순수한 신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제가 졸업 반이 되면서부터 시작한 교회 사역을 통하여 다시 한번 바뀌었습니다. 52kg 의 깡마르고 볼품 없는 나같은 어린 사람의 설교와 기도를 통해서도 사람들 이 변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목회의 희열을 맛보게 되었 고, 그래서 저는 교회 현장의 목회자가 되기로 최종결심을 굳힌 것입니다. 말 씀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목회 현장의 이 맛을 저는 평생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감격스러운 일에 목회 일생을 걸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목회자가 된 이유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목회자들이 목회자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간혹 회의가 생 기기도 합니다. 교인들이(아니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이) 주는 갈등을 더 이 상 감당할 수 가 없어서 다음 사역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침내 교회 를 사임하고 나 앉는 몇몇 선후배 동역자들을 근래에 보면서 회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이유로 목회자를 괴롭게하고 마침내 대책없이 교회를 나가게 하는 교회들이, 아니 교인들이 사실은 야속합니다. “좀더 참아줄 수 있을텐 데”하는 아쉬움도 생깁니다.
7 no image 교묘한 지혜의 아름다움을 배격해야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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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4 1999-07-20
-깊은 밤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 감사와 평안이 밀려온다. 그것은 마치 개구쟁이 자녀들이 하루를 마치고 잠들 어 있는 고요함 같은 것이다. 반면에 다음날 아침, 신문을 펼쳐들면 갈라져 싸우는 세상의 소식으로 마음에 혼란이 온다. 그것은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 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고집부리고 떼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같이 느껴진 다.세월이 더해 가면서 국가나 개인의 삶이 더욱 방만해지고 복잡해 간다. 그 럴수록 거친 세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매달려 온 마음을 드림의 귀중함을 깨닫는다. 오래 전부터 들어 왔던 부패척결, 그리고 부조리로 인한 대형사고 등. 끊임없이 개혁을 통해 바 로 잡아보겠다고 했지만 나라의 모양은 팽팽한 대립과 긴장의 연속이다. 정치 적으로 국회는 특검제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며 시끄럽고 경제적으로는 삼성 자동차 처리가 큰 난제가 됐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씨랜드 사건 등에서 나타 난 어른의 무책임과 공무원 의 부조리가 우리에게 큰 슬픔을 안겨줬다. 이런 난맥상을 보면서 한 집권당 대표는 “국민의 정부에 국민이 없다”며 “오만 해지면 그 어떤 비판도 비난으로 들리고, 독선에 빠지면 그 어떤 잘못도 소신 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했다. 현정부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건 책 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가 그런 진솔한 자기 반성을 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 인 일이다. 지도자다운 것은 자기 반성과 자기책임을 발견하고 적절한 때에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반성과 성찰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계 에도 냉철히 요구된다. 지금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십자가는 사 라지고’ 그대신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한국 기독교가 다음세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의 메시지에 마 음을 열고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한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은 이스라엘이 시 내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며 뛰노는’ 것 같이, 그리 고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자에게 자신의 부를 자랑’한 것과 같이 기독교를 세상의 즐거움과 자랑으로 대체시킨다. 그것은 기독교를 영원한 생명을 가지 고 ‘아버지 사랑과 인자의 영광과 성령의 권능’의 천국을 누림을 상실하고 물질적 현세종교로 전락시킨다. 이것은 이 시대의 강력한 사탄적 요소이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한국 기독교는 각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의 앎에 더욱 풍성해져야 한다. 복음이 아닌 교묘 한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배격해야 한다. 이 시대의 혼란과 어려움이 정부 만이 아닌 성도의 책임이 크다. 한국 기독교와 성도는 이 사회 앞에 복음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나타내어 어디서든 복음을 기뻐해야 했다. 그런데 교회는 복음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 능력보다 세상적 번영을 더욱 기 뻐했다. 교회에 복음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를 통해 사회에 역 사한다. 교회는 사회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 자가의 복음이 회복되게 하자.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교회가 살고 나라 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갖은 헛된 말과 사악한 비난과 갈등이 난무한 이 시대에 성도는 오직 복음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일꾼이 되 자.김종렬 목사/ 전 편집국장
6 no image 서글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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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1 1999-07-01
-여러 달 전 이었습니다. 은행 계좌 하나를 새로 만들 필요가 있어서 한 은행 에 갔습니다. 돈 20만원을 내밀며 통장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신청하였습니 다. 신분증을 내라고 하기에 지갑을 열고 운전면허증을 주었습니다. 실명 확 인을 한 다음 아가씨가 제게 제안 하였습니다. “골드 카드를 가지고 계시는 데, 저희 은행 카드도 하나 만드시지요?”제가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낼 때 지 갑 다른 쪽에 나란히 꽂혀 있는 두 개의 저의 금장색 카드를 본 모양 이었습 니다. “카드가 이미 두개나 있어서 더 이상 필요가 없는데요.”쓰지도 않는 카드를 남발하기 때문에 경제적 낭비가 심하다는 신문 기사를 본 것도 생각나 고, 사실 더 이상 필요도 없고 하여 정중히 사양하였습니다. 아가씨는 포기하 지 않고 더 정중히 저를 설득하였습니다. “어차피 이 계좌를 사용하시려면 현금카드를 만드셔야 합니다. 그러니 만드시는 김에 서류 한장만 더 써서 골 드 카드를 갖는 게 좋으십니다.” 딴에는 그렇겠다 싶어서 승낙을 하고 아가 씨의 말대로 서류 한장을 더 작성하여 주었습니다 . 그런데 제가 작성해 준 서 류를 검토하던 아가씨가 난처한 모습과 미안한 모습이 뒤섞여 보이는 애매모 호한 표정을 지으며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세요?”“예”여기서부터 문 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제가 목사인 것을 확인한 아가씨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 하면서 난처해 하는 것 이었습니다. 아가씨는 서류를 들고 뒤에 앉아 있는 높 은 분에게도 가보고, 혼자서 서성이기도 하면서 심사가 복잡해 하는 눈치였습 니다. 문득, 목사는 신용카드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 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싫다는 것 억지로 발급받으라고 권유해 놓고서 이제 야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하여 아가씨는 입장이 난처한 것이 분명하였습니 다. 저도 은근히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나서 모른 체하고 좀더 버텨볼까 하다 가, 그럴 일도 아니다 싶어 제가 먼저 아가씨를 불러 시침을 말했습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으신 모양이지요? 말씀드렸 듯이 사실 저는 골드카드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움이 있으면 취소해도 저는 상관 없어 요.” 아가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는 표정 같기도 하였습니다. 아가씨는 고개를 많이 숙여 인사를 하면서 친절한 한 마 디를 덧붙였습니다. “다음에 한번 더 신청해 주세요. 그러면 꼭 해드릴께 요.”저는 그 말을 내가 믿을 줄 아느냐는 듯 씽긋 웃고는 은행을 나왔습니 다. 그날 오후 내내 저는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는 안심하고 신용카드를 발급해주어도 괜찮을 만큼 신용이 있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여겨 지고 있는 이 현실이 서글펐습니다. 은행들이야 목사에게 돈 빌려줬다가 아 예 못받거나, 혹은 받아내느라고 속 썩은 경험이 많으니까 그런 대책을 세웠 을 터이지만, 그래도 서글픈 건 서글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서글픈 사실 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목회가 이렇게 되어버렸고, 어쩌다가 교회 들은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하는 서글픔이었습니다. 물론, 목사들이 빌려 쓰 고 못 갚는 그 돈들의 거의 전액이 사실은 교회의 자금을 목사의 명의로 빌 린 것일 뿐, 목사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돈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 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자신의 명의로 은행에서 돈을 끌어대며 목회 를 해야하는 현실도 서글프고, 교회가 그러한 돈들을 거뜬히 갚아낼 수 있는 n정도로 자라가지 못하는 위축된 현실도 서글프고, 상환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돈을 무리하게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다가 일을 벌여놓아야 되는 교회 운 영 자세도 서글프고... 이래저래 서글픈 하루였습니다. 그러면서 부인할 수 없이 분명하게 내려지는 결론 하나는, 어쨌든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이었습 니다.
Selected no image 돌들이 소리치고 있는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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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1 1999-06-14
-한국교회는 요즘 이단과 사이비로 인해 얼굴에 먹칠을 당하고 있다. 지난 달 중순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이 몰려가 MBC 주조정실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방 송을 중단케 한 사실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한국기독교회의 추태로 기록 될 것이다. 바로 우리 교단 우리교회 목사님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 아니라고 해서 방관하거나 방치하고 있다가는 복음의 문이 단단히 막힐 지경이다.아무 리 ‘이단 사이비 집단’이라 우리 정통교회들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해도, 교 회 바깥에 있는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도 동일한 기독교회임이 분명하 다. 뿐만 아니라 유형이 다를 뿐, 또다른 모양의 유사이단 유사사이비 집단들 이 한국교회 안에 수없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명하고도 단호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앞으로 불신의 늪에 싸여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누가 이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기독교회는 복음의 변질이 나 왜곡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방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 교 사회 안의 교단이나 언론들이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짖지 못하는 벙어 리 개처럼 무기력해 있을 때, 소리쳐 외쳐야 할 입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복음의 왜곡이나 변질은 어제 오늘 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많은 이단과 사이비운동으로 수난을 겪었다. 주요교단들이 이단 사이비집단으로 규정한 곳도 수십에 이르고 그 외 각 교단에서 이단 규정한 것을 합하면 매우 많은 집단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교회의 복음에 대한 긴장과 순수성 유지를 위한 운동이 꾸준히 있어오 긴 했다. 그러나 자기네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단과 의 교류나 협력을 경계하지 않음으로 입은 한국교회의 손실은 엄청나다.95년 도 여의도광장에서 해방 50년을 맞은 기념으로 한국교회가 매머드집회 ‘희년 성회’를 열었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가진 이 집회의 임원명단에 는 이재록씨를 비롯하여 지금 이단 사이비로 알려진 여러 인사(?)들이 나란 히 끼어 있었고, 그날 단상에는 역시 이들이 각 교단장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광장에는 이단 사이비로 지목되는 교회의 팻말 을 든 신도들 이 광장을 가득 메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집회의 성패 가름이 우선 모인 숫자로 평가될 것이라는데 착안한 주최측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원동원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이단 사이비집단까지 동원하여 이 지경을 만든 것이다. 이단 사이비들의 잔치판 같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이유나 과정이야 어떠했든지 이날 한국교회 희년성회는 이단 사이비를 용납 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현주소 아닌가. 4년전의 일이 지만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조금도 변화된 것이 없다. 이단과 사이비라는 독버 섯이 가장 서식하기 좋은 곳은 바로 연합사업의 현장이다. 연합기관의약점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기관’이란 주인이 많기 때문 에 주인이 없는 것과 같다. 자리를 차지할 주인은 많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 서 책임을 질 주인은 없기 때문에 그 필요(돈)를 공급해 주기만 하면 웬만해 서는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래서 희년성회 때는 한국기독 교총연합회가, 얼마전에는 회장선거로 물의를 빚은 H장로연합회가 망신을 당 했다. 지금은 원로장로 권사연합회가 또 구설에 휘말리고 있 다.기성교회나 교 단들이 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에 소홀한 틈을 언제나 엿보고 있다. 이 단 사이비운동 연구가 탁명환 씨가 주요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모 이단집단 의 한 추종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우리는 생생하게 알고 있다. 그 집단도 지 금 살금살금 인맥을 타고 다시 접근하고 있다.세계기독교회사에 빛나는 한국 교회 성장역사가 요즘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잘살아 보세’라고 노래 부르면서 물질문명의 노예로 잔락해버린 오늘의 세태를 우리교회는 비판한 다. 그러면서 여전히 그 바람에 편성하여 껍데기 성장주의에 빠져 가장 민감 해야 할 복음의 변질에 무감각해 있다.오늘 우리교회의 이 불감증은 초기증세 가 아닌 중증, 곧 암덩어리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급히 인식하고 그 대안모색 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책임있는 교단과 그 지도자들이 현대판 빌라도의 자 세를 버려야 한국교회가 산다. 돌들이 소리치는 데도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 가.박 에 스 더기독신문사 편집국장
4 no image 김상분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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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9 1999-05-25
김상분 권사님저에게도 꼭 한번 찾아보고 싶 은 분이 있습니다. “TV는 사랑을 싣고”에라도 나가서 수소문을 하여 이 땅 에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어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의 연세를 생각하면 한낱 부질 없는 소망일 뿐입니다. 벌써 오래 전에 주님께로 가셨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김상분 권사님. 제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이 어른을 지금까지 뭐하느라고 이렇게 잊고 살다가 때 늦은 이제야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김상분 권사님.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꼬마일 때부터 저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분입니다. 가끔씩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보 면 그 분은 마치 하나님을 눈 앞에 모셔놓고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기도 하 셨습니다. 때로는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따지며 대들기라도 하 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를 하시는 그 분의 모습이 어린 제게는 참 인상적이 었습니다. 그 작은 체구의 어디에서 그러한 음성이 나오는 것인지, 그 카랑 카랑한 목소리는 때로는 두려움마저 갖게 할 정도였 습니다. 한번은 저의 부모 님도 다소 염려스러우신 듯 말씀을 하셨습니다.“하나님께 화가 난 사람처 럼 그렇게 기도해도 괜찮은지 몰라!”부끄러우신 듯, 수줍으신 듯, 조용조용 속삭이 듯 기도하시는 제 어머니의 기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권사님은 기도하셨습니다. 3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저는 권사님이 기도하시던 모 습과 어투를 그대로 흉내낼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나 하숙을 하며 중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매 주일 이분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 끔씩 부모님을 뵈러 시골 집에 갈 때면 거의 언제나 권사님을 찾아가서 인사 를 드렸습니다. 토요일에는 왔다는 인사를 드리러 갔고, 주일 오후에는 다 시 간다는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인사를 드리러 가면 권사님은 언제나 제 손목을 끌어잡고 부엌으로 끌고 가셨습니다. 아무도 몰래 나만 뭘 먹이기 라도 하실 것처럼 부엌으로 끌고 가서는 아궁이 앞의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 는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게 하신 후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권 사님의 기도를 받고(?) 돌아가는 제 마음은 언제나 힘차고 즐거웠습니다. 그 맛에 저는 권사님 을 더 찾게 되었고, 마음으로부터 이 어른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눈이 쌓인 겨울 새벽이면 저는 이 어른이 기도를 마친 후에 집 에 돌아가셔야 할 길이 걱정스러워서 그 긴 기도가 끝날 때 까지 뒷자리에 서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권사님의 팔을 끼고 눈길을 헤치며 집에 까지 모셔 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찌 그리 흐뭇하고 보람되고, 즐거웠던지요. 그 런데 고등학교 때 한두번 뵙고, 그 후 서울 딸네 집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 은 뒤로는 그만 지금까지 그 분을 잊고 살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재작년 4 월, 그동안 하루에 두번씩 나를 위해 기도하시던 제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제 가 국민학생, 중학생일 때 이미 나를 위해 그렇게 기도하시던 김상분 권사님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멘트 바닥보다도 더 단단하게 굳 어지고, 타이르 바닥보다도 더 반질반질 윤이 나보이던 부엌 흙바닥에 손을 잡고 쪼그려 앉아 진지한 기도를 드리던 나이든 권사님과 중학생 사내아이 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그 사내아이였던 저는 그 권사님이 그렇게 감 사하고, 그립고 또 죄송한 것입니다. 권사님도 가끔씩 제 생각을 하 시다가 가셨을지... 그 시골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서, 그리고 그 부엌 흙바닥에 쪼 그리고 앉아서 그렇게 기도를 해주던 그 녀석이 지금 이렇게 사십대 후반을 바라보는 목사가 되어 당신을 그리워하며 고마와 할 것을 생전에 상상이라도 해보셨을지... 권사님이 그리워지다가 문득, 이제는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 는 다짐이 새로와집니다.
3 no image 말한마디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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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7 1999-05-07
말 한마디의 위력 재작년 이맘 때 였습니다. 50대 중반의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결혼 초 부 터 부부 문제로 많은 상처와 응어리를 가슴에 안고 지난 세월을 살아온 분 이 었습니다. 남편 때문에 상하는 속을 더 이상 감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법원에 가서 이혼 수속을 위한 서류를 가져 왔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했습니 다. 차라리 죽어버리려고 마음을 굳혔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도 했습니 다. 그러나 늙으신 자기 아버지를 욕되게 할 것이 두려워 차마 그리 할 수가 없었노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지금은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밝은 눈 빛을 지으며, 어린 아이 처럼 천진스러운 말투로, 사는 것이 즐겁노라 했 습니다. 얼마 전, 심각한 병이 들어서 고통을 당하였는데 하루는 남편이 그러더라 는 것입니다. “당신 죽지 말어. 당신이 죽으면 내 가슴에 한이 맺혀서 나는 살 수가 없어.” 몸이 망가진 아내를 보며 남편은 사죄하 듯, 비통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쏟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다행 히 건강이 많이 회복 되 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이 남편이 자기 를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서는,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비싼 옷 한벌을 사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손을 꼭 쥐면서 하는 말이, “그동안 잘 참아주어서 고마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역시 어딘가 다르더라고!” 하더 라는 것 입니다. 이혼 서류를 찢어버린 것이 몇 번이고, 차라리 세상을 떠나버리고 싶은 충 동을 늙은 아버지 때문에 짓눌러버린 것이 몇 차례나 되는 줄 알기나 하느냐 고 쏘아부치고 싶기도 했으련만, 이상하게도 이 한 마디 말에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쌓여 온 모든 응어리가 눈 녹 듯 녹아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 고 지금은 행복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까짓 말 한 마디에 이러는 자기 자신 이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어린 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사 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느냐며 그 부인은 행복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리 고 마지막 한 마디를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습니다.“여자는 그런 건 가 봐요. 말 한 마디에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 저는 빙그레 웃으며 속 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여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란 게 그런 거지 요. 유치해서도 아니고, 어린 애 같아서도 아니라, 손을 꼭 쥐며 속삭이는 따 스한 말 한 마디가 수십 년 엉기고 쌓인 응어리를 녹여내는 위력이 있어서 그 런거지요.” 지난 해 5월말,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저는 이 부인에게 전화를 해보았습 니다. 일년 전의 그 행복이 지금도 여전한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부 인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남편은 온 가족을 차에 싣고 꼬박꼬박 교 회에 잘 나가요. 성경공부 모임에 좀 참석했으면 좋겠는데 그것까지는 아직 안해요.” 또 다른 아쉬움을 털어놓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그 부인은 여전히 행복해 보였습니다. 또 다시 가정의 달이 돌아왔는데, 저는 이 년 전의 그 행 복이 지금도 여전한지 또 다시 전화라도 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 한 마디 말의 위력을 때로 너무 무시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 이 듭니다. 그렇게 서로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가지고, 우린 너무 무섭 고, 지겹게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가정의 달에는 누군 가의 손을 꼭 쥐며 이“한 마디 말”을 나누어 보 고 싶습니다. 남편의 손, 아 내의 손, 부모님의 손, 자녀의 손, 형제의 손, 그리고 목사님의 손, 또 교인 들의 손을 이렇게 한번 꼭 쥐며 서로에게 따스한 한마디 사랑의 말을 건네보 면, 제가 만났던 이 중년 부인의 마음을 우리도 알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2 no image 이상한 나라 사람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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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3 1999-04-26
-정창균 칼럼 이상한 나라 사람들 이 집사님에게는 사실 전화를 하 기도 미안했습니다. 전화 몇 마디로 위로를 하기에는 집사님이 걸머지고 있 는 짐이 너무 무겁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에 대한 염려로 말 미암은 한 없는 근심과, 남편의 건강과 구원 문제 때문에 겪어야 하는 가슴 미어지는 아픔과, 여의치 않은 사업 때문에 남몰래 쏟아내는 절망의 한숨. 이 모두를 한 사람이 동시에 다 감당해내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생각이 이 집 사님을 볼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마치 포위를 당한 것 처럼, 첩첩 산중에 홀로 있는 것처럼,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처 럼, 그렇게 꽉꽉 막혀보이는 상황 속에 있는 그 모습을 대하면 사실 안부를 묻기도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인데도 낙심하여 떠나버리지 않고 철야기도 시간에도, 연속 작정기도 시간에도 때로는 부석부석한 얼굴을 내밀 며 기도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의 마음은 끝없이 아렸습니 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늦게야 전해 듣고 심 방을 가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기를 들자마자 활기찬 음성으로 쏟아놓는 첫 마디에 저는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목사님, 고생 끝에 낙이 있다더니 좋은 일이 있을랑가벼요. 목사님, 기뻐해주세요!”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 고,“조국에 계시는 동포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요!”하는 운동선수 같았습니 다. 귀가 번쩍뜨였습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갑작스런 횡재를 했는가? 아 들이 기가막히게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는가? 아들에게 좋은 색시감이라도 결 정되었는가? 아저씨에게 기적이라도 일어났는가? 그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 이 다 스쳐갔습니다.“무슨 일이예요?”가슴을 졸이며 물었습니다. “우리 아 저씨가 이번에 병원에서 나오면 교회 나오겠대요!” 뭉칫 돈이 생긴 것도 아니고, 어렵던 사업 문제를 해결해 줄 백마 탄 용사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남편의 병이 기적적으로 고쳐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신기했습니다. 그동 안 시름과 근심을 안고 나날을 지내 온 이 여인이 어떤 연유로“나 교회에 나 갈께”하는 남편의 그 말 한 마디에 이렇게 즐겁고 신바람나 하는 것인가? 금 메달을 딴 선 수처럼“목사님 기뻐해주세요!”를 연발하며 그렇게 좋아하는 이 집사님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찡하였습니다. 그 남편 교회 나와 구원 받기 를 이 아내가 얼마나 뜨거운 소원으로 품고 애를 태워왔는가를 생생하게 확 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해결 된 것이 다른 어떤 어려움 해결 된 것 보다 더 즐겁고 신바람나는 일이 되는 이 집사님의 그 믿음이 감사하였 습니다. 교회에 가면 밥주냐고, 교회에 다닌 다고 돈 생기냐고 빈정대면서, 우리를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 것처럼 대하는 세상 의 사람들이 생각 났습니다. 어려운 사업 문제 해결 된 것보다, 불치병 고쳐 진 것보다, 드디어 예수님께 돌아 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사는 우리는 정말이지 세상 사람들 눈에는 이상한 나라 사람들입니 다. 그 다음 주일 예배 후에도, 실상 환경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데도, 이 집사님은 밝은 표정으로 손을 불끈 쥐어 보이며 신바람난다는 모습 으로 제게 남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 리고 2주 후, 50대 후반의 남편이 정장을 차려 입고 난생 처음 으로 교회에 나 와서 아내와 나란히 앉아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따라 목에 힘이 좀 들어간 듯 해 보이는 이 집사님은 예배 시간 내내 환한 얼굴로 연신 웃고 있 는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난 11월 이후 지난 주일 까지 5 개월 동안, 그 남편은 빠짐 없이 꼬박꼬박 예배에 참석하며 듬직한 신자가 되 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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