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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2 (00:00:00)

웅크림의 역학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개구리의 뛰는 모습을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하여 먼
저 잔뜩 웅크립니다. 이 웅크림은 분명 퇴보가 아니라, 도약을 위한 준비입니
다. 필요한 운동량을 축적하기 위해 웅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웅크림은
도약과 분리된 반대동작이 아닙니다. 웅크림은 오히려 도약과 역학적 연동관
계에 있습니다. 웅크림이 없다면 도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도 도약하기 위하여 웅크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인생
이라는 마라톤 코스를 100M 경주하듯 내내 질주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뛰기도 합니다만, 나름대로 웅크림으로써 필요한 역량을 축적하지 않
고서는 계속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휴식과 연습이 없으면 우리는 곧 탈진하
고 말 것입니다. 적당한 쉼과 학습은 또 다른 도약을 위한 웅크림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요긴한 웅크림은 기도와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로 하여금 기도로 웅크린 후 다시 활동하게 하십
니다. 성경과 교회사가 이 일
의 증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말씀으로 웅크리게 하신 후 가르치게 하십니
다. 아무래도 학생시절은 질주하는 시기라기보다는 웅크리는 시기일 것입니
다.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뛰기 위해 잔뜩 웅크리며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
다. 고난도 도약을 위한 또 다른 웅크림입니다. 따라서 웅크림의 과정이 아프
다고 해서 고통을 없이하는 것은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도약을 방해할
뿐입니다. 고치 속에 웅크려 있는 나방을 억지로 끄집어내면 결국 날지 못하
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웅크림의 역학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에
도 큰 도움이 됩니다. 웅크림을 퇴보로 오해하고 잘못 요구할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한참 웅크리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뛰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약
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막 웅크리기 시작한 모세에게 지금
은 이곳에서 썩을 때가 아니니 빨리 애굽으로 가서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하
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회심한 후 아라비아에 막 도착한
바울에게 이곳에서 시간낭비하지 말고 빨리 로마로 가라고 재촉하
는 것과 같
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웅크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
다. 조급한 사람은 이러한 지체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책망할 뿐더러 다른
사람의 웅크림도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조급한 마음은 웅크림을 낭비로 생각
하기 때문에 웅크림의 시간을 뜻 없이 보내거나 가능하다면 없애려 하기 쉽습
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당히 웅크리지 않으면 제대로 도약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웅크림은 때때로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연단된 믿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
다. 이 시기의 몸부림은 하나님이 지금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처럼 '어찌하여 나를 버리
셨나이까' 부르짖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라고 핀잔을 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욥에게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느냐고 책망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몸짓이 아니라 신앙의 몸부림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웅크림을 배우게 하십니
다.

웅크리고 있는 사람을 쉽게 정죄하는 일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기 쉽습니
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죄의 파괴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정죄는 다른 사람
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파괴합니
다." 마찬가지로 웅크려 있는 사람에게 내 방식을 강요하는 일도 그를 향하
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는 오히려 기도와 사랑으로 품
는 인내가 요청됩니다.

마지막으로 웅크린 사람을 조급하게 일으키지 않는 사려 깊은 지혜도 필요합
니다. 웅크림의 어려움은 제거해야 할 악이 아니라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어
야 할 선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요청되는 것은 감상적인 동정이 아니라 고통
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격려입니다. 무리한 행동을 유발하는 인간적인 조급함
대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자
문해야 할 질문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자세는 과연 도약을 위
한 웅크림입니까, 아니면 일락을 향한 퇴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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