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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00:00:00)
만보기와 삶의 행보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오늘도 나는 걷습니다. 가끔 빨리, 어쩌다 뒤로 걷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
늘도 어제같이 또 걷는 이유는 만 보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만보기가 없다면
오늘도 이렇게 힘들게 걷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만보기를 차고 다니면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가 있다(Every step counts.)'는 말이 문자 그대로 사실임을 눈으
로 보여 줍니다.

한 걸음 걸으면 한 걸음이 표시됩니다. 아무리 작은 걸음도 계산되지 않는
걸음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걸음도 걷지 않으면 숫자가 올라가지 않습니
다. '에누리'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헛되지 않
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오늘도 걷고 또 걷습니다.

가끔 숫자판을 들여다보고 작지 않은 만족을 느낍니다. '벌써 이만큼 걸었
구나.' 만 보를 채웠을 때의 기쁨을 그려보면서 미루고 포기하려는 유혹과 싸
웁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만 보가 되는데... 예
서 그만 둘 수는 없지.' 또
한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익한 만보기가 때로는 매사를 숫자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만 보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환영합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심부름이라도 만 보에 보탬이 될 것을 생각하면 싫지가 않습니
다. 어떤 때는 자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만 보만 넘으면 하기가 싫어
집니다. 나도 모르게 계산속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스운 일도 있습니다. 어쩌다 깜박 잊고 만보기 없이 집을 나섰을 때는 만
보기를 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걷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열심히
걷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만보기를 차지 않았다고 운동이
안 되는 것이 아닐텐데, 만보기 없이 걸으면 헛걸음한 것 같고 재미가 없습니
다. 이쯤 되면 만보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될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5리.10리 비유가 생각납니다. 만보기 중심적 삶은 어떤 일이 숫자
에 도움이 되면 10리도 마다하지 않지만, 일단 만 보가 채워지면 5리는커녕
몇 걸음도 걷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만듭니다. 그런 태도
로는 '5리를 가게
하는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는 말씀대로 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보기는 걸은 걸음의 숫자만을 나타낼 뿐 어떻게 걸었느냐를 묻지 않습니
다. 살살 걸어도 숫자는 올라가므로 구태여 힘들게 걷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렇게 요령을 피우고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고,
질보다는 양,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만보기는 또한 목적지를 묻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러 어디로 가는지 상관하
지 않습니다. 걸을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 누구와 함께 걷는지, 걸으면서 무
엇을 하는지 묻지를 않습니다. 그저 걸음의 숫자만 기록할 뿐입니다. 이렇게
모든 삶의 행보가 만보기의 숫자로 환원되어 버립니다.

만보기는 구체적인 목표와 효과를 전제합니다: '오늘 걷는 만 보가 당신의
건강을 지켜 줍니다.' 그러다 보니 만보기 숫자를 건강지수와 동일시하기 쉽
습니다. 여기에 율법주의의 함정과 공로주의의 곁길이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
하기 위하여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참 좋은 일
이지만, 내 식
으로 달성한 목표량을 곧 신앙과 사역, 그리고 성숙의 정도로
착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만보기는 율법을 많이 닮았습니다. 율법은 삶의 안내자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율법
을 잘못 사용하면 율법주의에 빠져서 율법의 원래 목적인 사랑의 실천을 놓
쳐 버리듯, 만보기도 잘못 사용하면 숫자와 건강을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보기를 원래 쓰임대로 지혜롭게 사용하면 삶에 리듬과 질서를 부
여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율법을 규모 있게 사용하면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믿음과 사역의 행보를 내딛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만보기를 차고 집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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