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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2 (00:00:00)
<정창균 칼럼>

부끄러운 이야기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였습니다. 부활주일 오전 예배였습니다. 성가대에서 여러 날
동안 부활주일 칸타타를 준비하여 참으로 은혜로운 찬양을 드렸습니다. 분위기로 보아
모두가 은혜를 받은 것이 확연하였습니다. 저도 성가대원으로 테너 자리에 서서 찬양을
하였는데, 저에게도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은혜와 감동이 적지 않았습니다. 찬양 후,
부활절 감사헌금을 드리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헌금위원들이 헌금 주
머니를 들고 일일이 헌금을 거두어서 드렸습니다.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습
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하는 찬송가 가사를 혼자 떠올리며 감동
에 젖어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헌금주머니가 제 앞을 돌아가고 잠시 후에 저는 깜
짝 놀라며 속이 상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드려야하는데 착오로 왼쪽 주머
니에 있는 것을 드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천원짜리와
동전 몇개가 있
었고, 왼쪽 주머니에는 만원짜리가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오른쪽 주머니에 천원짜리와
동전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왼쪽의 만원짜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헌금주머니가
돌아간 후에야 만원짜리를 아낄 수 있는 더 적은 돈이 다른 쪽 주머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이미 드려버린 그 만원짜리가 그렇게 아깝고, 속
상하고, 후회스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한달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5만원을 받는 당
시 저에게는 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왔습니다. 바로 조금 전 바로 그 자리에서, 은혜받았다고 눈물
을 글썽이며, 부활의 주님 이 너무 감사하다며, 주님을 위해 나도 큰 헌신을 하겠다
며, "내게 있는 모든 것" 어쩌고 저쩌고를 읖조리며 헌금을 드리고는, 그 다음 순간 그
보다 덜 드리고도 넘어갈 수 있었는데 하면서 후회하고 아까와 하고 속상해 하는 저의
모습이 강력한 대조를 이루며 문득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코미디 같은 저의
대조적인 모습가운데서 저는 참으로 가증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기 까지 한 제 자신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자신에 대하여 분노와 두려움이 솟구쳤습니다. 사람
이 하나님을 상대로 해서도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고, 이중적일 수 있
는가, 얼마나 처절하리만치 가증해질 수 있는가를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마치 경고음을 울리듯 그 사건이 떠오르곤 합니다.

부활절이 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년 전 서울 어느 지
역에 있는 한 교회가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걸어놓은 부활절 현수막을 보았던 이야기입
니다. 역시 코미디 같이 웃기는 일이었지만, 한쪽으로는 큰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 것처
럼 장탄식이 나오고, 심지어 분노마저 터져나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멀
리서도 잘 보이는 크고 선명한 글씨로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OO천(川) 부
활!" 그 지역을 흐르고 있는 OO천(川)이라는 개천이 있었는데, 그 교회가 부활절 행사
로 지역봉사를 겸하여 그 개천을 청소하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역
에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어 현수막을 도로에 걸기로 하
였는데, 그 현수막에
"예수님 부활, OO천(川) 부활!"이라고 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이 부활하셨다는 것과 우리 교회가 이 개천을 청소한다는 것을 눈에 띄는 특이한 문구
로 동시에 알리고 싶은 발상에서 나온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현수막을
보는 순간 예수님의 부활을 오염과 쓰레기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한 동네의 개천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으로 대비시켜버린 그 발상에 대하여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오려하였습니
다. 그러나 꾹 참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류의 발상이 꼭 그 교회만의 일은 아니라
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나 행적이나 가르침을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갖다 붙여서 써먹는 일은 근래에 교회 여러 구석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이
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분노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부끄러워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
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다행히 3일 후엔가 그 교회는 그 현수막을 철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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