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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교역자 제자들에게 빌립보서 21-5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내가 그 교회에 이용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신학생 한 사람이 단순히 사람 하나가 아니라, 교회 하나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신학생 열 명을 제대로 가르쳐내면, 제대로 된 열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께서도, “우리 교수들은 여러분을 그냥 사람 하나로 보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한 사람을 교회 하나로 보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강의 중에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가르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는 자괴감과 비애에 빠지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쳐서 내보낸 한 사람이 나가서 한 교회를 망쳐놓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을 잘 못 만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 크겠지만, 그래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 선생으로 살아온 교수들의 마음은 미어집니다.

 

얼마 전에도 무척 깊이 알고 지냈던 제자 한 사람이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교인들 여러 명을 챙겨서 인근에 따로 교회를 세우고 다른 교단으로 소속을 옮겨갔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으면 차라리 길바닥에 나 앉아 들판의 나물을 캐어다 팔아서 연명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짓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학교에서 배운 사역자의 정신도 그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그는 배운 바를 저버리고 그 짓을 하였고, 선생이었던 나와 우리 교수들은 또 그렇게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비록 이렇게 극심한 방식으로 교회에 소란과 분란을 일으키고 담임 목회자와 교인들을 깊은 상처에 몰아넣는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교역자로서 도에 지나게 언행을 하고 처신을 하여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듣곤 합니다. 어느 때는 부교역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담임 목회자로부터 하소연과 함께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똑바로 가르치라는 투의 항의를 받기도 합니다.

 

부교역자들에게 들어보면 물론 자신의 처신에 대하여 사람마다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습니다. 부교역자들은 오히려 담임 목사님이나 교회의 처사에 서운함과 야속함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교회나 목사님의 목회가 자신이 좋은 목회자로 자라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불만을 품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불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언행을 발산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담임 목사님의 목회나 교회의 현상이 신학적으로 잘못되어서 신학양심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말로 자신의 처신을 정당화 하는 하소연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교역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느 교회에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로 잡아 교회에 유익을 끼치기 위하여 다소의 마찰과 소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문제를 일으키는 언행과 처신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자기기만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소란을 피워서 얻을 수 있는 유익보다는 소란으로 당하는 손해가 훨씬 크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분명히 증거합니다.

 

부교역자는 내가 좋은 목회자로 자라가기 위한 발판을 얻기 위하여 그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가 나에게 이용 가치가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그 교회에 이용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부교역자는 그 교회를 개혁시키고 잘못된 목사님의 목회철학을 바로 잡아주기 위하여 그 교회에 부교역자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담임 목회자와 어떤 점에 있어서는 신학적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그 교회를 떠날 이유는 될 수 있지만, 담임 목회자와 맞서 그 교회를 소란케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부교역자의 일이 아닙니다.

 

연약한 것은 별 수 없는 일이어서 차차 강해져야 할 일이지만, 악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연약하여 넘어지고 실수하는 것과 성품이 악하여 일을 저지르는 것은 다릅니다. 무능한 것이야 다른 도리가 없지만, 거짓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비겁하게 핑계대거나 간교하게 술수를 부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말들을 합하여 한 마디로 요약해보려니 문득 사도 바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신앙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각종의 일들을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수행할 것인가를 길고 자세하게 설명한 다음(2:1-4), 사도는 그 한 마디로 그 모든 것을 결론적으로 요약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2:5).

 

교회 안에서 담임 목사님이나 교인들과 정말 복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 하면서 멋지게 사역을 하는 부교역자들이 부지기수인데, 몇몇 소수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되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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