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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 정창균 목사, 합신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교회는 어떤 좌절의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아”

 

 

때로는 우리의 목회가 끝도 없는 긴 터널같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때로는 이쯤에서 이제 목회를 내려놓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운해지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내 자신이 서글퍼지고, 그러다가 멀리 서계시는 방관자 같은 하나님이 너무 서운하고 야속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사실은 혼자 자기 도취에 빠져서 가는 실속 없는 길이면서, 하나님을 내세워 소명의 길이라고 억지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과 나의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교회에 유익이 되고 있는 것인지, 배운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밧모섬에 갇혀서 외롭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한 때 잘 나가던 지도자 사도 요한도 간혹 그런 심정이 들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그곳에서 사도는 교회를 향한 비난과 핍박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와 권력으로부터 받는 핍박과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신앙을 버리고 생존을 위한 변절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소문도 간간이 들었을 것입니다.

 

한 때는 복음이 그렇게 왕성하게 번져가고, 교회가 그렇게 힘 있게 진군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제자들은 무엇인가 세상을 바꿀 가능성과 자신감에 흥분했었을 법도 한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이것으로 끝이 아닌가, 우리의 사역과 헌신은 한 동안의 덧없는 수고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그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주일 날, 나팔소리와 같은 큰 음성과 그 위엄에 찬 모습(계 1:10-16절)으로 밧모섬의 사도 요한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일차적인 목적은 아마도 그 당시의 교회들이 품었을 이러한 문제에 주님의 대답을 주시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주님은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교회의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역사의 끝은 어떻게 되며,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를 확실하게 밝히시려 한 것입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흔들리고,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교회들에게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것을 분명히 확인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하찮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우리의 안목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를 주님은 가르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독려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보습을 보고 그 발 앞에 죽은 자처럼 엎드러진 사도에게 주님은 오른 손을 얹고 그리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도가 본 주님의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이 주님의 모습을 그렇게 보기를 원하셨습니다(1:20). 그리고 교회들도 주님을 그런 모습으로 이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2:1).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일곱 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일곱 촛대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혼돈이 없도록 친히 주석을 달아주셨습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였습니다. 결국,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시오, 주님이 교회를 책임지신다는 선언을 주님은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 상황 가운데서 좌절과 회의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교회들에게 주님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드러내주심으로써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그러므로 주님이 교회를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이렇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실 교회의 생존과 영광이 여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교회로서 여전히 소망을 가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이 사회에서는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극렬한 비난과 조롱이 거의 보편화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교회에 대한 신뢰와 영향력이 터무니 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떤 좌절의 상황에 허덕이든지, 목회자가 어떤 무력감으로 절망하든지 결국 주님이 책임지시고, 주님이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가 교회의 사역자인 영광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난히 폭우와 폭염이 심했던 올 여름에도 지칠대로 지친 모습으로 여름 행사를 마치고 다소 의기소침해 있을지도 모르는 이 땅의 많은 사역자들이 생각납니다. 주님께서 오른 손을 얹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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