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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사도행전 4장 18-21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현실적인 실용성 앞세울 때 믿음의 본질도 상실하게 돼”

 

현대 기독교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말을 진술하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진정한 신앙고백에는 세 가지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첫째, 고백에는 사실에 대한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지 그 내용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가는 관심도 없고 인식도 없으면서 이 말을 백 번하면 병이 낫는다거나, 귀신이 쫓겨간다거나,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어떤 진술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최면이나 염불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진술하고 있는 그 내용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단순한 객관적 사실 진술이 아니라, 나의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진술하고 있는 그 내용과 나 자신과의 관계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제3자적 입장에서 어떤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인가를 분명히 선언하는 것입니다.

 

셋째, 신앙고백이 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진술하고 고백한 내용에 대한 전적인 헌신입니다. 그 고백을 수행하기 위하여, 혹은 그 고백을 보존하기 위하여 어떤 대가나 희생도 기꺼이 지불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 가운데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부인하지 않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순교의 길을 가는 헌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온전한 신앙고백에는 그 고백을 하는 사람의 전적인 헌신이 언제나 수반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선언(statement)만 있지, 고백(confession)이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사석에서 피력한 외국인 교회사 학자가 있었습니다. 선언은 어떤 사실에 대한 인정이라면, 고백은 자신의 삶을 건 헌신입니다. 신앙고백이 분명하다는 것은 그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고백은 단순히 진술(statement)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에게 신앙고백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그 말과 나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언어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사의 사건입니다. 그 고백 때문에 어떤 고통을 걸머지면서라도 살아남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 고백 때문에 모든 부귀와 영화를 내려놓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백은 신자의 능력이고 교회의 능력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이 바로 이 고백으로부터 나옵니다. 참된 신앙 고백을 하며, 그 고백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뵈옵게 됩니다. 그것이 신자가 이 땅에서 누릴 가장 큰 위로요, 보람이요, 행복입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기독교인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여기 저기 교회 안팎에 널려있습니다.

 

오히려 신앙고백을 자꾸 강조하면 교회의 화합과 일치에 장애가 된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합니다. 신앙고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교회를 편협 되게 하고 외곬으로 만든다고 소리칩니다. 포용력을 갖고 폭넓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한다고 불평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를 신앙의 본질로 삼지 않고, 무엇이 더 현실적으로 실용성이 있는가를 중요한 관심사로 삼는 데서 온 병폐입니다. 신본주의를 버리고 인본주의로 살기 시작하면서 초래된 참상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신앙고백을 가르치는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하면 결국은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몰고 올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고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결국 교회를 교회가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신자를 신자가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주이심과 그의 부활을 증거 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은 후 다시는 예수를 증거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그 때 사도 베드로의 반응은 매우 단호하였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모르겠느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느냐? 우리는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사도들은 신앙고백 한 마디를 바꾸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고백한대로 살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기개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사도들에게 나타난 즉각적인 변화였습니다. 신앙고백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고난을 당하고 죽기도 하는 것은 그들의 연약함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이었습니다.

 

신앙고백을 팽개치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명분을 내세우며 이런저런 전략이나 잔재주를 근거 삼아 신앙생활을 하고 또 교회를 이끌어가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반신앙적인 범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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