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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7 (00:00:00)
'꿈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주진 교수/ 합신


새해를 맞이하여 올 한 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
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호기심인 것 같습니다. 특히 불확성의 시대, 불안정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미래사를 미리 알아서 어떻게든 대처해 보
려는 욕망이 더욱 강한 줄 압니다. 반면에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체념하면서 운명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다짐하면서 나
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생의 중
요한 결단을 앞둔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열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
다. 이 간절한 추구의 시점에서 꿈과 영음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질문이 좋은 예가 되리라고 봅니다. 신학교의 면접시
험에서는 어떻게 신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는지를 묻게 됩니다. 소명에 대

확신과 하나님나라의 일에 대한 열심을 알아보기 위한 예비적인 질문입니
다. 이 때에 간간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이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혹
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답변이 아닙니다. 먼저 이런 체험들은 대부분 개
인이 소중하게 간직하는 보화입니다. 이런 체험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
성과 개인적인 확신을 유지하고 가꾸어 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성경에
도 하나님이 꿈이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나타나시고 그 뜻을 전하
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에게 그 뜻을 알리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방법
에 대하여 유한한 인생이 함부로 논단하는 일은 외람된 일입니다. 그러나 다
른 한편으로 언약의 하나님은 자의적으로 행하시지 않으시고 일정한 경륜에
따라 구속사를 경영해 나가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가 꾸
었던 꿈과 들었던 말씀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강림 이후 완결된 성경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경

n험해야 할 지침으로 삼을 성경신학적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독단적으로 주장되기보다는 다른 증거에 의하여 보강
되고 확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부름
을 듣고 그곳으로 선교지를 바꾸기까지 밟은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동
역자들과 함께 그가 본 환상을 나누고 면밀한 탐색을 거쳐 합의된 결론에 도
달한 다음에야 마게도냐 지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공동체의 증거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
다. 지난번 면접에서 어느 교회가 한 지망생의 지원타당성을 놓고 투표를 하
였다는 이야기를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깊은 교제를 나누는 믿음의 형제들
은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대하여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신
앙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성도의 은사와 부르심과 인도를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
하시는 귀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적 증거는 개인적인 체험
이 혹 주관주의나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방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에서 개인의 의지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중요합니
다. 만일 꿈
에 신학교에 가라는 말씀을 들었다는 지원자가 필요한 시험준비
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됩니다. 준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이니까 입
학시켜야 된다는 논리보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았으므
로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반대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나
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그 뜻을 행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미래사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바울이 자기에게 환란이
닥치리라는 예언을 듣고도 하나님나라의 일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
렘으로 올라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동기 또한 공
동체의 증거와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서 재삼 강조되어야 할 요소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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