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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00:00:00)
비너스와 슈렉

성주진 교수/ 합신


만일 밀로의 비너스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다면 여전히 미의 화신으로 떠받
들어지고 있을까요? 호사가들은 비너스조차도 성형수술을 받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고 수근댑니다. 콧대를 약간 높이고, 이마는 좀더 넓히고, 가
슴도 확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쌍꺼풀 수술과 허벅지 지방흡입도 필수적이라
고 말합니다. 그만큼 작금의 얼짱 몸짱 만들기 열풍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외모가 취직과 월급과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약삭빠른 연구발표
도 무조건 예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이상 몸은 손대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자기를 표현
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취향에 따른 머리 염색은 만민
의 상식이 되었고 몸을 캔버스로 삼는 스킨 아티스트라는 신종직업까지 등장
하고 있습니다. '신체발부' 운운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 버렸고, '내면의 아
름다움'이라는 표현 또한 이끼가 파랗게 끼었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교회의 집회 안내자로도 미모가 '되는'여자 성도
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역시
외모를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의 강조점은 하나님은 외모
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는 데 있습니다. 말씀을 이처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세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성경은 미모 자체의 선악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앞선 말씀에서도 알 수 있
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에 구애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외모의 언급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
는 성경 이야기에서 중대변수로 작용하여 전개상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경
우가 없지 않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미인으로는 밧세바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뛰어
난 아름다움 때문에 다윗이 치명적인 죄를 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밧
세바가 과연 객관적으로도 아름다웠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녀가 아름
다웠다는 표현은 다윗의 시각에서 기술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먼 정욕이 그
녀의 아름다움을 과장했을지도 모릅니다
. 어쨌든 밧세바의 미모가 불러일으
킨 소용돌이는 다윗의 통치를 전기의 성공과 후기의 실패로 나누는 분기점이
되고 있습니다.

남자 중 아름다움의 대표는 역시 꽃미남 압살롬입니다. 정수리에서 발끝까
지 흠이 없는 그의 아름다움의 절정은 치렁거리는 머리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지나친 자부심은, 부왕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과도한 분노로, 나아가서는 그에 대한 계획적인 반역으로 치닫습니다. 결국
그가 자랑하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그에게 죽음의 심판을 집행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부정적인 예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의 추구와 몸에 대한 관심 자
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영혼만이 참된 자아이고 육신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
기 때문에 구원이란 곧 영혼이 육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플라톤적 이원론
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몸은 분명 진정한 자아의 구성요소입니다. 몸의 중요
성은 주님과 성도의 몸의 부활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문제는 균형의 상
실이요, 가치관의 전도이며, 유행의 맹목적인 추종입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들이 때맞춰
소개되고 있습니다.
슈렉과 같은 애니메이션이 그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공주의
결혼 상대는 자기를 구출한 멋진 왕자라는 동화적 허구와, 현대미인은 하얀
피부에 금발의 날씬한 팔등신이라는 헐리우드적 허구에 대한 반성이, 외모보
다는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패러디를 통하여 제시되고
있습니다.

작금의 몸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어쩌면 기독교적 아름다움과 대치되는, 비
너스로 상징되는 헬레니즘의 부활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
도인들은 열병처럼 퍼지는 유행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경건과 사랑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재발견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진리로 단장한 아름다움이야말
로 무더운 여름철에 우리의 전인적 건강을 지켜주는 상큼한 영성의 미학이 아
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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