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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1 (00:00:00)
<성주진칼럼>

축복과 저주의 변주곡

성주진 교수/합신구약신학


지상에 존재하는 각종 종교와 문화의 근저에는 다양한 축복과 저주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불교의 철저한 인과응보 사상은 그 적용범위를 전
생에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상에서는 논리적으로 당
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유가경전인 역경(易經)의 문언(文言)에도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
有餘慶),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고 함으로써, 축복
과 저주의 개념을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간에도 '하늘이 무섭지 않느
냐?' '천벌(天罰)을 받을 X' 등의 말이 있습니다. '하늘' 과 연관된 죄와 벌
의 개념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오랫동안 윤리도덕적으로 유효하게 통제하
여 왔습니다.

성경에도 축복과 저주의 언어가 많이 나타납니다. 저주는 피하고 축복은 누
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만, 성경의 축복과 저주가 흔히 오해되
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
다. 먼저 축복에 대한 오해와 오용의 예로는 번영신
학과 기복신앙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보다는
현세적 안녕과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최근 유행하는
브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도 이런 점에서 잘못 활용될 위험이 있습니
다.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문 속에 과연 어떤 소원을 담겨 있을까요? 하
나님은 기도에 사용하는 말이 성경에 나온다고 하여 기도의 내용이나 기도자
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자판기같이 기계적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의 저주에 대한 오해의 예로는 거짓된 죄책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지배당하는 신앙생활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당하는 어려움의 원인
을 조상의 잘못으로 돌려놓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가계저주론'도 있습니
다. 또는 성경의 저주를 조선시대 구중궁궐이나 부두(Voodoo)교에서나 있을
법한 해코지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의 축복과 저주가 곡해되는 것은 본문을 문맥을 떠나 해석하기 때문입니
다. 어떤 말이나 표현, 그리고 개념까지라도 문맥을 떠나서는 그 의미를 상실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축복과 저주의 본문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신학적 맥락을 떠나서 읽게 될 때 온갖 종류의 잘못된 해석과 적용이 나오는
것은 예상된 일입니다. 번영신학과 기복사상, 해코지론과 가계저주론은, 성경
의 축복과 저주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맺어진 독특한 언약관계에 기초하
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언약적 축복은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할 것을 격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
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은 율법 또는 계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의 결
과로 주어지는 언약적 축복은 '너희의 수고가 그리스도 안에서 헛되지 않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바울
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적 축복은 공로주의적 개념이 아닙니
다. 내가 순종한 것은 나를 축복의 자격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수혜
자로 만들뿐입니다. 나를 축복의 수혜자로 만드는 것은 나의 공덕이 아니라
나를 어여삐 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언약적 저주도 동일한 목적을 가집니다. 그렇기에 저주는 경계과 징계
의 기
능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때때로 이스라엘에게 비를 내리
지 않으시고 적군을 일으켜 곤경에 빠지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언
약의 하나님에게로 돌이키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약의 관점에서 축복은 긍정적 동기유발자요, 저주는 부정적 동기
유발자입니다. 이러한 축복과 저주의 언약적 성격을 생각할 때, 통상적으로
이해된 축복과 저주가 신학적 진술과 신앙적 실천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왜곡할 우려가 있습니다.

성경은 축복과 저주를 기계적, 인간중심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인격적, 하
나님 중심적으로 이해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축
복을 받은 자요, 저주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감격을 잃지 않
고 은혜 가운데 거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죄책의 결여와 거짓된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확보된 풍성한 자유와 축복을 누리
는 첩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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