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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독교단이 대동아공영권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서한

日本基督??より大東?共??基督?徒書翰

번역 김 산덕

 

 

서문

기독교는 복음이다. 큰 기쁨(歡喜)의 소식(音信)이다. 따라서 네 개의 복음서를 가지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 제자들의 여행기가 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한들은 교회와 동일한 믿음을 가진 동지들에게 보낸 것들이다. 복음서로 시작하는 성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요한의 서한으로 끝난다. 기독교는 실로 복음이다.

지금 여기서 일본기독교단이 대동아공영권에 속한 모든 교회들과 또한 동일한 믿음을 가진 동지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까닭은 기독교가 큰 기쁨의 소식이라는 신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서한을 현대판 사도적 서한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기독교단은 대동아공영권 산하의 교회에 관하여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발전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교단은 협력자를 파견하고 또한 필요한 것을 보내고자 계획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사정으로 인하여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부득이 교단을 대표하여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서한을 보내는 것으로 문안하고, 평소 우리들의 뜻을 약술하여 전하고자 한다. 우리들의 뜻을 이해하기 원하는 수신자들은 본 서한을 자세히 읽어주기를 바란다.

본 서한은 일본기독교단의 첫 번째 현대적 사도서한으로, 앞으로 몇 차례 계속해서 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바라건대 제군들이 이러한 서한을 격의 없이 받아들이고, 이것을 문자대로 해석하여,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신망애를 같이 소유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일본기독교단에서 특파한 전도사들도 있으므로, 서한 가운데 젊은 제군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들이 곡진(曲盡: 매우 정성스럽고 자세하게)히 설명해 줄 것이다. 그들 또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편지이기 때문에 제군들은 격의 없이 그들과 친교하기를 겸하여 바라마지않는다.

나는 일본기독교단의 통리자(統理者: 대회장, 또는 총회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교단을 대표하는 자를 통리자(統理者)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신사(神社)본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칭호이기도 하다. 종교단체법에 의해서 규정되었던 이 용어는 그 당시의 메이지 헌법에 의하면 최고관직(親任官)바로 밑에 칙임관(勅任官)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들에게는 각하라는 존칭도 붙였다. 천황도 만날 수 있다는 종교에 의한 권력의 상징이었다. 제국주의의 권력수단의 하나로 교단이 이용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로서 여러 가지로 기술(記述)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지금은 서한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 다음 서한으로 미루고자 한다. 더욱이 서한을 읽은 자가 기탄없이 답장을 보낸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2천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사도적 인사로 이 서문을 끝내고자 한다. 바라건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감이 너희 모두와 함께 하기를

쇼와십구년(昭和十九年)

천 구백 사십 사년 부활절 날

일본기독교단

교단통리 토미타 미쯔루(富田?)

1

일본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그 복음을 고백하고, 그 은총의 도움으로 한 나라 한 교회(一?一??)가 된 일본기독교단, 여기에 속한 여러 지체된 우리는 대동아공영권 산하의 주님 안에서 충성된 기독교인들에게 마음으로 문안한다. 바라건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안이 언제나 제군들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주 안에서 충성된 형제들이여, 우리는 아직 면식도 없고 서로의 전통과 생활 습관들이 다르지만, 이러한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견고한 유대(紐?)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들의 공동의 적에 대한 공동투쟁이라는 운명적 과제이다. 우리들의 적국들(특히 영국과 미국을 말함)은 백인우월이라는 비성경적인 사상을 가지고 제군들의 나라와 토지와 수익을 마음대로 농단(壟斷: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하는 것)하고, 입으로는 인도와 평화를 제창하면서도 우리를 인종차별 아래에 붙들어 매어, 동아의 모든 민족에 대하여 왕자처럼 군림하려고 욕심을 내며, 피부 색깔의 차별로 인간 그 자체가 마치 서로 상이한 것처럼 망단하여, 우리 동양인을 자신들의 안위와 향락을 위해 부려먹고 노예화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급기야 동아를 자국의 영토적 연장으로 삼으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었다. 물론 그들이 우리보다 하루 빨리 주 예수의 복음을 접했으며, 우리들을 신앙으로 처음 인도한 것이 그들의 복음적 선교 덕분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 우리는 전혀 인색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들이 오늘날 끝없는 탐욕과 지배욕의 유혹에 빠져서, 거룩한 복음으로부터 타락하여 많은 과장됨과 교만에 함몰되어, 헤아릴 수 없는 탐람(貪?: 재물이나 음식을 탐내는 것)과 위선과 불신앙에 빠진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적국 미영의 기독교는 스스로를 절대자와 같이 우상화하여, 이전에 사도가 진심으로 공격했던 유대교적 그리스도인과 동일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로마서 2:17-22). 이 내용 하나하나가 선진 기독교 나라라 자인하는 그들의 행위에 꼭 들어맞지 않는가? 그들이 만약 이러한 자신들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여, 늦게나마 신앙을 가진 우리들과 동일선상에 서서, 처음 믿는 자처럼 매일 주를 고백하는 순진한 신앙을 가졌다면 이러한 반성경적인 동아정책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주님에 대한 참된 순종과 봉사를 매일 결단하고 실행하였다면, 자국 내외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 이르러 그러한 퇴폐와 혼란을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통찰과 인식에 의해서 그들의 현 상황을 불쌍히 여김과 동시에 이 부정불의를 묵인할 수 없는 것으로 증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이들 적성 국가들의 불의에 대하여 모든 평화적 수단을 제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교만은 결국 이것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은 자존자위의 필요에 의해서 감연히 창과 방패를 들고 일어섰다. 더욱이, 여러 전쟁에서 황군이 거둔 여러 전과(戰果)와 그 후에 나타난 여러 사실들은 우리 일본의 성전(聖戰)이 가진 의의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부정과 불의로부터 동아의 모든 민족이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서4:6). 그러면 미국과 영국의 교만은 무엇에 의해 배격되는가? 황군의 장병에 의해서이며, 지상의 정의를 위해서 일어난 동아의 모든 민족의 손에 의해서이다. 제군들의 민족이 우리 일본과 함께 이 대성전(大聖戰)에서 동고동락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투쟁하겠다는 깊은 결의를 가지고 흔연(欣然: 당연히 기쁘게)히 참가 협력함으로서, 대동아의 하늘과 땅에 우리 일본인과 함께 제군들, 즉 대동아의 여러 민족의 해방을 위한 위대한 투쟁과, 사탄의 광폭(狂暴)을 섬멸하기 위한 전쟁의 진군을 고하는 나팔소리가 높이 울려 펴졌던 것이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여, 바라옵건대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언제나 함께 하시고, 나아가는 자를 비추어 도와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따라서 형제들이여, 제군들과 우리들을 연결하는 첫 번째 끈은 우리 서로가 함께 이 성전에 나아가는 전우요 동지라는 깊은 의식이다.

다음으로 여러 다른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하나로 묶는 두 번째의 결정적인 끈은, 우리가 믿는 그 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적으로 함께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의 생사에 유일한 위로가 되시며 교회의 주님이시다. 이 천지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 말씀되신 성자께서 육체를 취하셔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고, 우리의 형제로 지금 여기에 계시며, 우리를 아무런 공로 없이 오직 은혜만으로 주 예수의 형제로 삼아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죄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에 참여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어 우리를 새로운 신분으로 옮기셨다. 신앙인의 삶 가운데 이 주님을 인정하고 이 주님께 봉사하는 것 이상으로 귀중한 재산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형제들이여, 어느 누구도 이러한 신앙적 인식과 봉사, 그리고 이 감사와 찬양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 일치한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귀중한 복음의 부요함과, 그것을 우리의 동포와 이웃에 전달하라는 사랑의 임무를 우리로부터 박탈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마태복음 24:14).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받은 것은 복음 선교의 엄위하신 명령에 메임을 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죄인 된 우리가 우리들의 행위와 말로서 얼마만큼 이 약속을 실증하고 이 명령을 지킬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가진 피조적이고 상대적인 결단과 노력과 행위로는 그 명령을 실천할 수 없으며, 진실로 이 명령을 성취하시는 자는 우리가 아니라 이것의 명령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시며, 오직 그 분만이라는 확신에 있어 우리가 일치하고 있음을 믿는다. 주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들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 주님의 계명을 듣고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동아공영권의 이상(理想)은 이 주님의 이웃사랑 계명을 믿음으로 듣고 스스로 몸소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주님의 명령에 입각하여 모든 장애를 극복하여 일직선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이 필연적인 길에서 우리는 완전한 일치를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4: 1, 3). 형제들이여, 우리는 소가 힘을 다하여 쟁기를 끌듯이 이 강인한 유대를 끌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제군과 우리들을 연결하는 제2의 결정적인 끈이다.

 

2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제군들을 기대하며 제군들을 신뢰한다. 제군들은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을 생각하라(빌립보서 48). 이것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이 대동아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우리 일본과 일본국민이 얼마나 고매한 이상과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를 제군들은 점차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역시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분야에서 제군들과 제휴하기 위해서 부심하게 정신(挺身: 앞장서서 몸을 던져서 곤란한 문제에 스스로 부닥치는 것. 예를 들자면, 일본제국주의는 1944년 여자정신근로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 강제성을 희석시키려고 사용한 정신대란 용어를 사용하였다.)하는 우리 조야(朝野)와 군관민 지도자들의 보고를 통해 들은바, 제군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존경과 공감과 친애의 정을 느끼며, 제군들에게 아주 강하게 이끌리게 됨을 느낀다. 우리는 제군들이 지역의 여하를 막론하고 문화의 경향을 따지지 않고 좋은 것에 공감하며, 존경할 만한 것을 존경하는 공명정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적국 국민들의 무책임하며 방종한 개인주의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제군들이 인간의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진실로 깊은 것을 소유하며, 각자가 자신의 직업에 어디까지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높은 공적 희생정신을 갖추고 있다는 모습을 듣게 되니, 하루빨리 제군들의 풍모를 접하고 싶은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하나님이 만약 허락하신다면, 언젠가 우리가 제군들의 곳으로 가고, 또한 제군들이 우리 곳으로 와서 서로 인격적으로 친밀히 교제하며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를 알고 서로의 손을 견실히 잡게 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제군들에 대하여 서로 깊이 알지 못함과 같이, 제군들 역시 우리 일본의 참된 모습을 알기에는 아직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바라건대, 여기서 우리가 조금 기탄없이 자랑하는(고린도후서 11:17)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본디 우리 일본제국은 만세일계(万世一系: 영원히 하나의 계보, 즉 황실계만이 이어져 존속된다는 것)의 천황의 통치를 받으며, 국민은 황실을 종가로 우러러보고, 천황은 국민을 돌보기를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자애를 가지고 보살피며, 국민은 한 마음이 되어 충효의 고매한 도덕으로 살아가는 국풍이 아득한 선조로부터 먼 장래의 자자손손까지 전달되고 있는 하나의 대가족국가이다. 우리 국민은 황공하게도 국민을 생각하고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천황의 덕()에 보답하여 드리고자, 이 천황을 위해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도 자식도 남편도 부인도 집도 고향도 모든 것을 받쳐드리며, 끊임없이 충성을 다하고자 주야로 염원하고 있다. 이 사실은 제군들이 이미 대동아전쟁에서 세계를 경도하게 하는 황군 병사의 용맹한 전투를 보면서 그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신비한 힘을 느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일본의 역사를 풀어본 자는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이러한 정신으로 충만 되어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형제들이여, 제군들은 바울 사도가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라고 언급한 것이 단순히 교회가운데의 여러 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일반 사회에서도 그러한 것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존경하라는 것임을 십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미덕을 사모하는 마음에 있어 제군들은 우리와 동일할 것이다. 분열붕괴 전야인 서구의 개인주의 문명이 아직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무엇에든지 경건하며가 동양에는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동양적인 것이 금후의 전 세계를 인도하고 구원 할 것이라는 희망과 신념에 있어 제군들과 일치한다. 전 세계를 참으로 지도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만방무비(万邦無比)한 우리 일본 국체(國體)라는 사실을 신앙으로 판단하고 우리들을 신뢰하길 바란다.

제군들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일본인들의 선조는 아주 겸허하면서도 그러나 적극적인 마음으로 외래문화를 섭취하였다. 중국으로부터는 제군들의 훌륭한 선조인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인도로부터는 제군들의 성자 석가가 가르친 불교와 그와 함께 인도의 문명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결코 당시의 선진 외국의 문화에 심취한 것이 아니라, 심히 박애한 마음과 겸허한 자세로 이것을 섭취하고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높고 강한 국체에 대한 신념과 그것에 기초한 자주성에 서서 그것을 우리나라 국풍에 알맞게 순화하여 일본화(日本化)하여 왔다. 쇼토쿠타이시(聖?太子)가 준비하고 나카노오에노오지(中大兄皇子)가 완성한 타이카의 가이신(大化改新: A.D. 646년에 임금의 칙령에 의거한 정치개혁)은 중국고대의 유교와 제도문화가 일본화되어 구현된 최초의 결실이다. 다음으로 우리 카마쿠라(鎌倉)의 일본불교 특히, 도우겐(道元)이 시작한 니혼젠(日本? 또는 ?宗)은 인도의 불교가 중국을 경유하여 우리 토양에 흡수 소화되어 완전히 일본적인 것으로 바뀌어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것으로, 이 시대 이후 우리 국민의 정신적 기조가 되고 일본 무사도 배양의 근원이 되었다. 또한 중국의 돈란(曇鸞, 담란)과 젠도(善導, 선도)에 의한 정토교 신앙은 일본의 호우넨(法然) 신란(親鸞)에 의해서 세계의 종교학자들이 경탄할 만큼의 절대은총의 종교로 순화 발전하였다. 우리가 아스카텐표(飛鳥天平)의 문화, 헤이안(平安) 시대의 문예, 카마쿠라 시대의 무예와 선학과 조각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무로마치(室町) 시대, 아즈치(安土) 시대, 모모야마(桃山) 시대의 호화스런 건축과 차도와 회화, 그리고 에도(江?) 시대의 유교학과 국학과 난학, 마지막으로 메이지유신 이래의 유럽문화의 섭취와 순화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일본인들의 깊은 겸허함과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숭고한 신념의 소산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조상들은 외국의 좋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배움과 동시에, 깊은 비평정신에 의거하여 그것에 창의적인 것을 덧붙여 일본화하고, 독자적인 일본 문화를 만들어내어 오늘날의 융성함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의 풍성한 모습을 창출하게 된 원인은 일본정신의 창조적 활동의 근저에 존엄무비의 국체가 엄숙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유래한다. 특히 외래문화의 섭취에 있어서 지도자들이 언제나 신문화의 선각자였다는 사실은 일본정신이 얼마나 강인하며 또한 유연성에 충만한가를 보여준다. 이는 실로 영봉(靈峰) 후지산으로 상징되는 맑음과 청렴과 곧은 마음이다.

지금까지 기술한 위대한 정신은 단지 일본 국내에만 머무르기에는 너무나도 숭고하고 광대무변한 것이다. 지금부터 15여 년 전에 독립한 이래로 점점 발전하고 있는 만주제국, 우리와 협력하여 적국 미/영에 선전한 중화민국, 동맹국 태국, 지난날 독립을 경축한 신생 버어마 제국, 최근 독립하여 신정부를 조직한 우리들의 형제 필리핀, 그 외 어떠한 지역, 어떠한 변두리라 할지라도 마치 태양이 만물을 비추어 성장하게 하듯이, 이 위대한 정신의 빛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처럼 상호간에 깊은 결의를 가지고 서로 도우며 서로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고, 정의와 공영의 아름다운 국토를 동아(東亞) 천지에 건설함으로서, 마치 하나님 나라(神?)를 지상에 출현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은, 이 동아에 태어난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음으로부터 기도해야 할 제목이며 최고의 의무라고 믿는다.

 

3

 

우리나라의 유력한 기독인의 한 사람인 우찌무라 간조(?村鑑三)는 당시 구미문명의 도도한 유입과 그것에 대한 동경이 지배하던 시대적 풍조 가운데서 세계는 결국 기독교에 의해서 구원될 것이다. 더욱이 무사도에 접목된 기독교에 의해서 구원될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는 일찍이 구미의 선교사가 성공이라 칭하였던, 세력과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는 신앙을 비신앙적인 것으로 배척하고, 선교사를 하루 빨리 일본으로부터 퇴출시킴으로써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에서 자생된 기독교의 필요성을 부르짖은 선각자이다.

더욱이 그의 예언은 제군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양식 있는 이 무사가 이미 생각한 바대로 대동아에는 대동아의 전통과 역사와 민족성에 근거한 대동아기독교가 수립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믿음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자랑을 가지고 일본의 사회와 전통과 민족성에 근거한 독특한 일본적 기독교회가 일본에 건설되게 되었고, 더욱이 그것이 마침내 확립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여기서 그 일본적 기독교 수립의 역사적 연혁과 독자적인 고유성을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일본에 기독교가 도래한 것은 일찍이 텐분(天文: 일본의 원호의 하나로서 무로마치 시대(1532-1555)를 말함) 18(1549)에 프랑시스 자비엘(Francis Xavier)이 최초로 선교사로서 일본에 들어온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기독교였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전도는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일본 국가가 세계를 향하여 개국한 이후의 일이다. 당시 무사의 자제들로서 청운의 꿈을 품은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선교사들에 의해 개교된 성경학교에 처음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그러나 실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 말씀의 씨앗이 심어졌다. 사와야마 포로(澤山保?), 니이지마 죠(新島襄), 혼다 요우이치(本田庸一), 우에무라 마사히사(植村正久), 에비나 탄죠(海老名?正), 코쟈키 히로미찌(小崎弘道) 등 모두 순수한 일본 무사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 가운데 일본 무사도와 서로 깊이 통하는 뜻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아 단순히 한 사람의 기독교 신자가 되기보다 스스로너희들은 가서 전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전심전력으로 순종하여 바울처럼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의 음성을 듣고,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서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라는 믿음과 깨달음 아래서 이 말씀을 이 나라와 동포들에게 들고 가기로 마음으로 결단하였다. 그들은 열심히 달렸다. 그러고 그들과 함께 말씀도 달렸다. 주님께서 달려가셨다. 그들은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함께 넘어지지 않았다. 복음 선교는 여전히 소수의 유아적인 교회에 의해서 대담하게 행하여졌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선교사들은 놀랬다. 그리고 사려 깊은 자는 생각했다. 일본인은 변했다. 일본인의 전도는 일본인들의 손에 위임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일본에서의 사도행전은 일본의 초대 전도사와 선각자들에 의해 엮어졌다. 때로는 동포들의 몰이해와 능멸과 조롱을 샀지만, 그러한 상황 아래서도 믿는 자들의 수가 차츰차츰 증가되어 일본의 기독교회는 성장했다. 주 예수는 그들의 진실한 활동에 의해 이 나라에서 점점 위대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약해졌을 때에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존재하였다. 실로, 기독교는 일본무사도에 접목되어, 유교와 불교에 의해 최선의 상태로 경작되었던 일본정신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결실하게 되었다.

초대 선각자에게 감화를 받은 제2 3의 계승자들 역시 천황에 봉헌하려는 청명심과, 이웃을 경외하는 사랑과, 적들이 천만인이라고 해도 바른 길을 나아가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영예를 버리고 그리스도에 붙들린바 되어, 뒤의 것을 버리고 앞의 목표만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다이쇼우 시대(大正時代: 다이쇼우 시대는 메이지 시대(明治)와 쇼와(昭和)시대 사이에 놓인 일본의 원호. 다이쇼 천황의 재위기간은 1912-1926)부터 쇼와(昭和: 1926-1989) 초기에 이르기까지 노도처럼 밀려오는 개인주의, 자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 여러 사상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가운데, 그들은 이러한 사상에 대응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수호하며, 건국의 대의를 위해서 살아왔다. 이러한 일본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생각하면, 우리 국체의 본의와 일본정신의 아름다움과 엄격함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명실상부하게 일본의 기독교회가 수립되는 날이 왔다. 황기(皇紀: 해설참조) 26백 년을 축전하는 성대한 의식을 앞두고, 우리 일본의 모든 기독교 교회와 교파는 동경의 일각에 모여서, 하나님과 국가 앞에서 모든 교파의 전통, 습관, 기구, 교리의 차이를 일체 불식시키고, 모든 교파를 타파하고, 외국 선교사들의 정신적 물질적 원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여, 한 덩어리로서의 한 나라 한 교회(一?一??)를 수립하여 세계교회 역사상 그 선례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경이로운 사건을 시현하였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도우시는 은혜로 우리의 오랜 기도를 들어 주셨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 일본 국체의 존엄무비한 기초위에 서서 천업익찬(天業翼?: 해설참조)의 황도윤리를 습득한 일본기독교인이기에 비로소 이룰 수 있었던 과업이었다.

이러한 경과를 통하여 성립된 것이 지금 제군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일본기독교단(日本基督??)이다. 그동안 교단의 통리자가 황공하게도 궁중에 참내(??)하여 알현할 수 있는 은혜를 입는 큰 영광을 얻게 되어, 교단 전체는 천황의 넓은 마음에 눈물로 감사하여 종교보국(宗?保?)이라는 일념으로 천황의 넓은 마음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깊은 마음으로 결의하였다.

 

금년 4월에는 종래의 여러 학교가 교단신학교로 통일되고, 교단의 제도조직과 형식과 내용이 나날이 정비되어 모두가 한 몸이 되는 교회적인 성과를 더욱 구현하고 있다. 이것을 국사(國史)에 명기하는 것 자체도 아주 큰일이며, 예로부터 전쟁으로 시종일관해왔던 서구교회사에 이것을 명기하는 것 역시 주의 날의 예표가 되는 큰 표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가 되리라(요한복음 10:16).

4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제군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우리의 충정을 피력한 이 긴 서한을 끝내기에 앞서 지금 숙고하여 주길 바라는 것이 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도록 부름 받은 자로서, 동일한 사랑과 동일한 생각을 가짐으로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적국(敵國) 국민들의 기독교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 안에도 자기중심적으로 자기를 세우고 타인을 자기보다 높이지 않는 죄가 있으며, 그리고 유일한 것(빌립보 2:2)을 바라고 원하지 않는 인간 고유의 분열적 원심작용이 우리 존재의 깊은 근저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우리들이 성취할 수 없고, 또한 성취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성취하셨다. 즉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는 자기 본래의 고유한 소유까지도 인간처럼 고집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자신의 신적 본질과는 전혀 이질적인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으며,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땅 아래까지 자신의 길을 가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행사하신 유화(宥和)와 계시의 역사가 감추어짐과 동시에 현실로 나타났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은 그를 죽음의 침상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셨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 분의 죽음에서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이 되고, 도움이 되고, 그리고 능력이 된다는 것을 영광 가운데 증명하여 주셨다. 참으로 예수는 교회와 함께 전 세계에 아버지를 제시한 예언자이시며, 교회와 함께 전 세계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중보하시는 제사장이시며, 전교회의 주가 되신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며 그의 몸인 것을 명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로 인하여 화목하게 되었음을 증거하는 직분을 받지 않는 자는 그의 은총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분 없이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고 그 분 안에서만이 구원의 약속을 가진 전 세계의 피조물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고는 우리가 교회의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 할 수 없다. 우리 대동아기독교가 이제 하나의 동포된 모든 민족들에게 이 주님의 빛을 비추지 않는다면 빛을 가졌다고 말 할 수 없다. 나사렛 예수의 선포와, 희생의 죽음과, 권능을 증거하고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위로이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대동아의 모든 민족의 위로이기도 하다. 그 분 안에서 우리 길의 종말이 있고, 동시에 모든 사람의 길의 종말이 있다. 또한 그 분 안에 우리 길의 시작이 있고, 동시에 모든 우리 동포가 살아가야 할 길의 진정한 발단(發端)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희망이다. 단지 우리 기독교뿐만 아니라 동아의 모든 민족의 희망이다. 다시 말하자면 저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버림당하시고, 천지의 주가 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광 가운데 증시(證示: 증거되어 제시)되신 분, 그 분이 우리 교회와 그 지체, 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위로이시다. 우리가 여러 운명과 수수께끼와 고난과 죽음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생명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날, 천지가 갱신되는 날에 드러나게 하실 바로 그것에 있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위로와 이 희망을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일한 사랑과 동일한 생각에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웃사랑에 대한 숭고한 사명가운데서 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지상적 목표를 향해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온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 신앙과 이 희망과 이 사랑을 하나로 바라보는 자들이기 때문에, 동일한 신념과 공동의 전우의식과 견고한 정신적 끈으로 하나가 되어 불의를 누르고 정의와 사랑의 공영권을 수립하기 위하여 이 전쟁의 최후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제군들에게 말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들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맹우이며 전우여! 너는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2:3)

우리는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은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제가 우리와 함께 이것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라는 대동아공영권에 속한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아멘.

 

출처

일본기독교단사 자료집2, 동경: 일본기독교단출판국, 1998. pp, 31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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