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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 개정에 담긴 신학적 이해

< 손성은 목사, 삼일교회 >

“개정된 웨신 제35장을 수용한다는 것은 원래의 칼빈주의적 정신이 퇴색되고 알미니안주의화 되고 있으며, 이는 또한 오순절주의화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합신교단과 고신교단 안에서 교단 합동에 대한 사안들이 신중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하나라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개인과의 합의를 도모하는 일이 아니라 총회와 총회와의 교제와 연합, 혹은 교단간의 합동을 도모하자면 단순히 마음이 하나 되는 것 이상의 논의가 필요하다.

특별히 고신은 50년 전 성급한 합동으로 인하여 환원하게 되었던 쓰라린 아픔의 역사가 있었다. 때문에 보다 만족스러운 합동이나 연합에 이르기 위해 차분히 그 과정에서 일어나게 될 일들을 예상하며 합동의 원칙과 원리들을 숙의하되, 특별히 신앙의 원리에 대한 논의가 선행, 혹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I. 교단 신학의 근거가 되는 신앙고백에 대한 논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모름지기 총회란 “믿음에 관한 논쟁을 판단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공예배와 교회의 치리를 더 잘 정비하는 데에 필요한 법칙과 지침을 제정하고, 행정오류에 대한 불평들을 접수하여 권위있게 재판”하며, “법령과 결정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한 존경과 복종의 자세로 받아야 하는데, 이것들이 말씀과 합치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결정한 권세 연고로도 하나님의 규례 곧 말씀으로 그렇게 정한 규례로 받아야” 하는 회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직무를 가진 총회가 다른 총회와 연합 혹은 합동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발생하게 될 수많은 논쟁과 치리뿐 아니라 혹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들을 권위 있게 재판해가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들에 대해 양측의 합의된 공통의 원리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공통의 원리가 없다면 감정상 일단 하나가 되었다 하더라도 조만간에 나눠 서게 될 것은 불 보듯이 뻔하다. 이런 공통의 기준이 바로 신조이다.

합신과 고신은 각각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교리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라는 단어에 담고 있는 내용에서 서로가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고신총회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조항이 모두 35장이며, 합신총회는 33장이다. 고신총회는 끝부분의 제34장과 35장, 곧 USA장로교회(PCUSA)가 1903년도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개정하면서 첨가한 장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합신총회는 받아들이지 않은 이전의 것, 즉 1981년부터 제34-35장이 없는 개정되기 전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교리표준으로 결정하여서 지금까지 그것을 견지하고 교리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약간의 차이’에 대한 문제 의식은 이 차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과 신학적 지평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덮어둔 채로 합동이나 연합을 논의하는 것은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같아질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이 신조들의 ‘약간의 차이’에 대해서 솔직한 대화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II. 웨신의 수정 및 첨가된 내용에 대한 논의

미국장로교회 내에서 1903년도 있었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개정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첫째는 맨 앞부분에 ‘선언적 서론’을 두어서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 둘째는 고백서 내용 자체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 셋째는 마지막에 34장과 35장을 두어서 기존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강조가 약하다고 여겨지는 ‘성령’과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를 각각 강조하는 것이다.

1. ‘선언적 서론’에 대하여

1903년에 작성된 ‘선언적 서론’이 강조하는 요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제3장(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대해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작정이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교리와 조화롭게 주장되어야 하고 보편구원론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멸망할 사람들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죄인의 죽음도 원치 아니하신다는 가르침과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하며, 멸망당하는 것은 바로 멸망당하는 사람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제10장 3항의 유아시절에 죽은 자는 모두 구원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본문 자체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선언적 서론’에서의 이런 유권해석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개정되기 전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드러내고자 하였던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그 구원이 인간에게 달린 것처럼 해석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USA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개정 내용에 들어가 있는 ‘선언적 서론’ 자체를 미국정통장로교회(OPC)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메리카장로교회(PCA)도 마찬가지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어떤 장로교 총회도 이러한 미국장로교회(PCUSA)의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선언적 서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통합측도 그렇다.

하지만 뒤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이런 ‘선언적 서론’에서 표방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재해석적 주장들이 맨 뒤에 첨가된 제35장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본문 수정 혹은 삭제된 부분에 대하여

1903년의 USA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본문의 세 곳을 수정하거나 삭제합니다. 첫째, 제16장 7항의 ‘중생하지 않은 자의 선행은 죄된 것’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수정하였다. 둘째, 제22장 3항에서 ‘합법적인 권위에 의하여 부과된 선하고 바른 맹세를 거부하는 것은 죄다’는 문구를 삭제하였다. 셋째, 제25장 6항에 나오는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제거하였다.

먼저 이런 개정에 대해서 미국정통장로교회(OPC)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첫째와 둘째는 받아들이지 않고, 셋째 곧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삭제한다. 아메리카장로교회(PCA)도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 있어서 OPC와 PCA는 일치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교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이지만 약간 차이가 있다. 통합측은 이런 USA장로교회의 개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합신과 고신은 이런 개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모두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곧,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조항도 모두 원래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정된 것을 부정한다.

첫째와 둘째는 합신과 고신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지만 셋째, 곧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에 대해서 합신은 처음부터 줄곧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반면, 고신은 1992년 총회에서는 “로마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였고, 2011년 총회에서는 그것을 분명하게 직술하고 있다. 그 과정이 어떠하였든 현재로서는 이 점에 있어서 고신과 합신은 일치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고신과 합신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34장과 35장의 첨가의 유무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들의 첨가에 있어서 고신측은 합신총회보다는 통합총회와 더욱 교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이다.

3. 첨가된 제34장과 35장에 대하여

1992년 고신총회에서는 제34장과 35장을 추가하면서 각각 ‘성령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하여’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지난 2011년 총회에서는 그 장들을 각각 ‘성령’ 그리고 ‘복음’이라고 제목을 수정하였다. 다만 그 내용과 형식은 바뀌지 않은 채로 각각 네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제34장은 그 내용에 있어서 기존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성령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지 앞의 제1-33장에 기술되고 있는 여러 곳의 성령에 대한 언급들을 한군데 모아두고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렇게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강조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성령론에 대해서 가지는 관심의 정도와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령론에 대한 관심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개정하던 시점(1903년 이전)과 관계해서 본다면, 이것은 바로 1820년대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1792-1834)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강조를 기점으로 해서 시작된 미국교회 내에서 성령의 능력적인 은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때와 병행되고 있다.

곧 성령의 인격과 구원케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성령의 능력과 그 은사들에 대한 관심은 성령에 대한 일탈적인 관심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은사주의, 오순절 계열의 운동들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제35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신학적 일탈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 제35장 1항에는 “버림받은 온 인류에게 충분하고 다 적용되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이런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구원의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음 당하실 때 그 위하여 죽으신 대상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버림받은 온 인류’라고 주장하는 알미니안신학의 주장을 함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 제35장 2항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한 자기의 사랑과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증거구절로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복음 6장 39, 40절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는 알미니안적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 하고, 요한복음 6장 39, 40절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할 뿐,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 한다”는 구절로, 알미니안적 보편구원론 보다는 오히려 칼빈주의적 제한구속론을 지지하고 있다.

정통적 개혁신학에서는 디모데전서 2장 4절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구절에서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은 개별적인 사람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제35장 2항은 알미니안적 신학의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3) 제35장 3항은 “회개하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머무는 자는 허물을 더 악화시키고 스스로의 과오 때문에 멸망한다”고 진술한다. 이런 진술은 죄인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렸다기보다는 인간편의 어떤 행위에 달린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죄인의 회개가 필요하지만, 이런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은 채로 회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이런 인상을 갖게 되고, 이런 인상을 갖게 하는 주장이 바로 알미니안 신학이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비록 ‘선언적 서론’을 한국장로교회의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할지라도 만일 제35장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 ‘선언적 서론’의 함축하는 바가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곧 한국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원래의 칼빈주의적 정신이 퇴색되고 알미니안주의화가 되고 있으며, 이는 또한 오순절주의화 되어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III. 결론

데이비드 웰즈는 그의 명저 『신학실종』에서 우리들의 현대교회에 “현대성이 낳은 치유중심의 문화가 침투에 들어오면서 ‘신학’은 교리적인 내용을 상실해 버렸다”고 탄식하고 있다. 고백하는 그 신조들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역사적 개신교회 신앙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의 삶이 무엇인가를 규정해주던 중심적인 자리에서 신조들이 점점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서 그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신총회가 교리표준으로 삼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제34장과 35장을 첨가하였다는 것이 이런 신학실종의 형편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문제는 합신총회와의 연합이나 합동을 논의하면서 서로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참된 하나됨을 위하여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알게 됨으로써 사전에 인격적이고 통전적인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솔직하게 그것을 협상의 테이블에 가져다 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된 것을 지키길 힘쓰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요 17:11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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