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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13:51:42)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져가는 건강한 교회"                    석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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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아침, 석광교회(전상일 목사)로 모여드는 성도들을 일흔이 다 된 나이의 안내요원이 맞이하고 있다.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을 반기며 휘휘 내젓는 손의 움직임이 크고도 힘차다. 


 1966년 김도검 목사가 개척하고 1975년 김재완 목사(석광교회 원로목사)가 부임해 35년 간 섬겨온 석광교회에 전상일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지난해 8월. 


 권사, 장로, 집사, 목사라는 직분에 연연함 없이 형님, 동생, 누님, 고모, 이모, 할머니, 손자손녀로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석광교회의 전상일 목사를 만나보았다.
 
 -나이가 지긋한 성도들이 젊은 성도들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봉사하시는 것 같다.
 "석광교회는 권사가 56명인데 30대 새댁 시절 교회에 처음 와서 목사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교회를 지켜오신 분들이다. 바울서신을 보면서 뵈뵈(Phoebe)를 연구하게 되었고 '한국교회에서 권사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뵈뵈와 브리스길라, 루디아는 바울을 재정적, 환경적으로 지켜줌으로써 바울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게 도운 여인들이다(롬 16:1-2). 그들의 역할은 '울타리'였다. 바울은 아마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 3명을 기억했을 것이다. 뵈뵈가 바울을 지킨 것처럼 권사는 교회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나 다름없다. 원로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지켜 오신 분들이 권사님들이다.
 그리고 석광교회는 장로들의 섬기는 모습도 참 아름답다. 찬양 인도와 기도, 진행까지 전도사가 아닌 장로가 맡아 하고 목사가 출타할 일이 생기면 설교도 담당하여 은혜롭게 전하기도 하신다. 이것은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진 건강한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져 가는 건강한 교회. 이것이 목회철학인가.
 "석광교회는 40년 동안 오로지 말씀과 기도로, 든든하게 세워진 건강한 교회이다. 나 또한 동신교회, 강성교회, 남서울교회, 개척했던 빛과소금교회, 두란노교회 등을 거치며 적잖은 목회 경험을 통해 '건강한 교회'의 중요성을 느껴 왔다. 목회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말씀이 양분이 되지 못하며, 목회자가 상한 심령을 가지면 성도가 상한 음식을 먹으며 살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 1년 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또한 설교거리를 위해 성경을 본 적은 없었는지, 은연중에 목회자의 욕심이 투영된 설교를 한 적은 없었는지 되짚어 보고 반성했다. 새벽기도 20분 메시지 준비를 2시간 여 투자하는데, 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늘의 새로운 호흡이 공급되는 것 같으며,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심은대로 거두는 역사를 느끼고 있다.
 목회의 꿈 중 하나가 '성도들이 2년 이내에 성경강해를 통하여 성경의 모든 부분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신앙보다는 신학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 주의 뜻을 발견하고 그 말씀을 즐겨 행하는 성도들을 보고 싶다. 조병수 교수가 만든 '1년성경읽기표, 성경통독 114'를 토대로 설교하며 2년 안에 성경 한 바퀴를 돌 수 있도록 목회계획이 짜여져 있다. IVF 선교회 간사 시절, 성경 전체를 귀납법적으로 연구했던 훈련이 도움이 되었다."
 
 -선교단체를 거쳐 목회자가 되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학교 캠퍼스를 지나는데 성경 공부하던 모임이 있더라. IVF 선교회 모임이었다. 그들과 함께 요한복음을 3개월 동안 공부하며 나를 향한 예수의 눈물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복음을 받아들였다. 학생 리더로서의 역할을 거친 후에 혹독한 IVF 간사 훈련을 받아 8년 간 전임간사로 일했다. 그러나 개인으로선 '역사적 교회관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됐다. 어떤 한 시대에 붐을 일으키는 선교단체의 수직적 교회관은 2천년을 이어온 교회의 수평적 교회관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만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선교단체를 거친 젊은이들이 세상에 접목되지 못하고 다분히 비판적인(critical)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목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이들을 재 양육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것이 감사하다."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있을 듯하다. '울타리'는 든든한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거부해서 발전을 더디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오전예배에 200여명, 오후예배 100여명이 참석한다. 새벽기도회나 수요예배에도 늘 30분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많다. 제직회는 한 달에 한번씩 꼭 한다. 두 달에 한번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성도들의 '알 권리'와 교회사랑의 기회를 위해 한 달에 한번으로 못 박았다. 이렇게 전통적인 시스템을 통해 교회가 성장해나가고 양분을 공급해나가는 것은 빈번하게 시스템에 변화를 주는 것보다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명을 낳는 교회,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역동적인 교회가 될 필요도 있다. 성도들보다 목회자의 마음이 앞서 나갈 때에는 성도들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의식이 전환되면 태도가 변하고 방향이 변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말씀을 통해 움직이시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교회가 지니는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대)가 쓴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읽어 보라. 작가가 여러 교회를 옮겨 다니며 바라본 교회의 온갖 모습이 담겨 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하는데 교회 속에 세상이 들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교회가 힘의 논리로 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석광교회에 부임하자마자 먼저, 지역을 알기 위해 파출소 지구대장과 동장을 만나 다른 지역보다 열악한 환경을 전해 듣는 일을 했다. 적게나마 석관고 급식 및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과 쌀 나누기 등의 구제를 진행하고 있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기에 해야 하는 일이다. 동시에 교회 속에 세상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상담학에서 이미 배운 바대로 '1온스의 예방은 1파운드의 치료 효과'가 있다. 수리하는 성도가 아닌 정비하는 성도를 만드는 예방목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씀대로 살기 위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무엇인가.
 "교회가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거룩'과 '화평'을 좇아야 한다(히 12:14-17). 거룩함을 좇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지켜나가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화평을 좇는 방법은 '내가 죽는 것'이다. 교회는 큰 소리가 나는 곳, 시장바닥이 아니어야 한다.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방법 그대로 내가 죽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죽으러 오셨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 오늘 '내가 죽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신다. 그렇기에 나는 석광교회에서 쓴뿌리를 제거하는 설교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죽는 예배를 나왔다고, 화평을 좇는 방법을 성도들에게 강조한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더라.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에, 행복하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거룩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1동 189-49
(02-962-2301)

                                                                                                                                                                      maengoh@hanmail.net 맹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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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내일을 걷는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고! 중문제일교회 첨부 파일 (22)
취재부장
14112 2012-02-11
제주노회 특집-2. 내일을 걷는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고! 중문제일교회 탐방 둘째 날 이른 아침 찾은 곳은 역시 서귀포 중문단지에 위치한 중문제일교회였다. 전날 내렸던 비로 촉촉이 젖어 있는 땅에서 흙냄새인지 풀냄새인지 모를 신선한 향기가 기분 좋게 올라왔다. 수많은 '시' 속에서 자연의 모태로 비유되는 흙이 비를 머금고, 새벽부터 숨을 내쉬며 싹트는 생명을 자라게 하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정화시킬 샘물을 만들어내는 그 활기찬 숨결이 뿜어내는 향수이리라. '시골의 아침' 이라는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전원속의 미세한 맥박에도 민감해지는 아침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만난 중문제일교회 조용대 목사는 매우 평온하고 차분한 인상으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차를 나누며 시작한 대화 속에서 발견한 그의 삶은 그러나 그리 평온하고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토록 차분하게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취재하면서 내내 큰 감동을 얻었다. 조용대 목사는 제주도와 아무런 연고도 없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제주도를 만나게 된 것은 당시 시무하고 있던 교회의 성도들과 여행 중에서였다. 당시 조용대 목사는 시무하던 교회의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뒤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안정된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그런데 시무하던 교회의 좋은 목회여건을 뿌리치고, 목사님을 놓아주기 싫어 불침번까지 서가며 지키는 성도들을 뒤로하고 야반도주(?)를 할 만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은 그의 발을 이곳 제주도로 향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덕스러운 야반도주였다. 불모지에서의 사역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도착한지 1년 만에 60명이 넘는 성도들의 부흥이 있었음에도 현재의 교회 부지를 사서 8년 전에 옮겨와 오늘의 중문제일교회를 건축하기까지 숱한 어려움과 억울한 일들, 고난을 당해야만 했다. 조용대 목사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크신 위로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그때 받은 큰 위로와 은혜들은 조용대 목사로 하여금 목회에 중요한 원칙을 세우게 했다. 물질보다 사람이 사람보다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용대 목사는 어떤 상황가운데 처하더라도 타협하지 않고 말씀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어떠한 경우에도 목회자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성경본문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설교를 하는 것이 조용대 목사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체험이나 신비를 존중하되 엄격히 그것들이 말씀보다 앞서지 않도록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조용대 목사의 지론이다. 조용대 목사는 제주도 사역가운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제주도의 '괸당문화'와 '벌초문화'를 대표적으로 꼽았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제주방언으로 '친척'을 뜻하는 '괸당'의 법도가 우선이 될 때가 많으며 특히 '벌초문화'는 벌초 때가 될 때마다 예배를 드릴수가 없어 교회를 다닌다 하더라도 믿음이 온전히 자라게 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조용대 목사는 제주도의 '괸당문화'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성도들의 심령 안에 믿음이 자라나는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조용대 목사는 현재 한국 국제 기아대책 이사로 활동하면서 2006년 1월부터 평일에 교회에서 지역아동센터인 '행복한 홈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 국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역의 아이들을 무료로 먹이고 가르치는 일이다. 조용대 목사는 복합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양육하면서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소탈하게 웃어 보이며 뜻밖에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왠지 조용대 목사의 웃음에서 아까 본 흙길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조용대 목사는 지역아동센터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면서 앞으로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운영도 함께 하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모든 고난과 슬픔까지도 겸허하게 껴안은 조용대 목사의 기도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들의 생업과 가족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은 신앙의 위인들처럼 제주도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삶을 내어맡기게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52 no image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받은 복을 나누는 동산위의 교회 첨부 파일 (17)
취재부장
8919 2012-02-11
제주노회 교회탐방 특집-1.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받은 복을 나누는 동산위의 교회 첫 방문지였던 서귀포 동산위의교회는 폭포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위에 위치하여 고즈넉한 매력을 더 많이 자아내는 곳이었다. 도착한 저녁시간, 오롯하게 이름을 드러낸 교회의 전경역시 비온 뒤 잠시 드러낸 마지막 햇살과 저녁 그림자로 사뭇 더 시골교회의 경건한 전원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설립 12주년을 맞이한 동산위의 교회는 1999년 11월 23일 추수감사주일날 첫 감사예배로 시작되었다. 많은 생명들을 품고 추수하게 되기를, 지역사회를 온전히 복음으로 세워가기를 소망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동산위의교회 윤서철 목사는 제주도 출신으로 본래 농촌운동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제주도가 발전하면서 갑작스레 부유해진 부농 가정들이 물질로 인해 오히려 해체되는 것을 보며 '농촌 가정 목회'라는 새로운 목표의식을 갖게 되었다. 한 가정이 무너지면 그로인해 자녀를 비롯한 주변 많은 이들이 힘들어지고, 한 가정이 주안에서 회복되면 가족들과 이웃들이 모두 함께 치유되는 것을 보며 윤 목사가 가야할 길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에 속한 각 가정들에 다가가 전도하며, 특히 삶이 비교적 불안정한 젊은 신혼부부들을 중심으로 주안에서 회복 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치유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단 한 가정뿐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말씀으로 양육하여 건강한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부흥에 여념하지 않고 사역의 길을 걸어온 지 12년. 불모지 같았던 제주도 농촌에서 처음 한 가정이던 것이 꽤 많은 대가족을 이루었다. 교회의 내일인 아이들도 농촌으로서는 적지 않은 인원이다. 푸릇한 새순의 아이들은 행복한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왁자지껄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윤서철 목사는 제주도에서의 사역에 대해 "제주도는 여느 농어촌과 다르게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 층이 세대를 이루고 있어 그 어느 농어촌보다 현대 농어촌의 변모되고 발전된 모습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라고 전한다. 때문에 강한 카리스마로 성도들을 이끌어가기보다 가족 같은 마음으로 넘어지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보듬고 말씀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윤 목사의 지론이다. 윤서철 목사는 사역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들로 피폐해졌던 가정들이 주의 말씀으로 회복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각 가정들이 회복되는 모습은 누이나 형제가 잘되는 것처럼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다."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은 것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아프고 힘든 저 가정이 진정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피폐해진 가정에 말씀으로 다가가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거창하기보다는 순수하고 소박한 윤 목사의 말이다. 동산위의 교회는 앞으로 자녀 세대들이 말씀 안에서 잘 양육되어 훌륭한 기성세대로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기독교 대안학교를 연계하려한다. 이를 위해 윤서철 목사는 다음세대를 품고 헌신할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이미 동산위의 교회에서는 유아대안학교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보다 체계적인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동산위의 교회의 소망이다. 시편기자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는,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 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소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동산위의 교회가 말씀의 굳건한 반석위에서 그 소망하는 사역들이 견고히 이루어져 나가기를 함께 소원하며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51 말씀이, 모임이, 그리고 예배가 정말 즐거운 < 즐거운우리교회> 첨부 파일 (8)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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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모임이, 그리고 예배가 정말 즐거운 < 즐거운우리교회> 스갱 씨의 염소는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알퐁스 도데(A. Daudet)가 책 장(sheet)속에 숨겨놓은 결말은 지금도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도데가 참으로 적절히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주께서도 말씀하시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시면서도 "바람이 임의로 불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완전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주께 완전한 복종을 하는 것은 언뜻 보면 매우 모순된 명제이다.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가 아닌가? 그래서 맹목적 복종이 사회적 최고선을 이루었던 나치즘의 시절,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자유를 내어던지고, 나치즘의 전체주의 속에서 행복해하는 현실 앞에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엽기적인 분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와 복종의 한 가운데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두 개념은 완전한 합일의 개념이 된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까?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복종을 드릴수록 참 자유를 느낀다.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 갈수록 오히려 죄악의 속박만을 느낄 뿐이다. 따라서 경건이 깊어질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예배자로 세워진다. 예배야말로 주께 대한 복종의 핵심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즐거운우리교회는 이러한 깊은 경건을 교회의 핵심가치로 삼고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운동을 통해 참된 예배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목표를 가진 교회이다. 2008년에 방배동에 처음 개척되어 이제 갓 3년도 되지 않은 교회지만 모인 핵심 멤버들이 대학 시절부터 경건훈련에 헌신되어 잘 성장한 40대가 주류인 허리가 튼튼한 교회이다. 또한 부모의 연령대에 따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많다. 보통의 개척교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처음부터 잘 훈련된 동역자들이 즐거운우리교회에 세워지게 된 것은 특이한 개척배경이 있기 때문 이다. 다름 아닌 담임을 맡은 변형용목사의 개척동기에 그 비밀이 있다. 변 목사는 30여년 가까이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사역한 캠퍼스사역 전문가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대학 때 캠퍼스 선교사역을 통해 주님께 헌신하게 되었다. 2000년 UBF 2차 개혁 때 CMI로 독립하여 그곳에서 상임총무를 맡아 굵직한 사역들을 많이 맡았다. 2003년도에는 서울대 CMI를 창단하고, 서울대 전체 기독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엘리트 선교사역에 힘을 다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그와 함께 캠퍼스의 활발한 활동과 달리 교회 적응에 애를 먹는 학생 리더들이 많아지게 되자 변 목사는 이들을 섬기고, 또한 사역의 장을 열어주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합신 교단에는 CMI 이사장으로 있던 홍정길 목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소속된 목회자들과 함께 교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설립 배경 때문에 즐거운우리교회에서는 말씀, 교회, 선교의 세 기둥이 무엇보다 중시된다. 깊은 말씀과 섬세한 섬김의 셀로 이전처럼 자주 보지 못하지만 끈끈하고 진한 사랑의 띠가 구성원들을 강력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높은 예배 참여도, 참된 예배자로 성도들을 훈련하는데 근본 된 원리가 되고 있다. 개척 교회 현실에서 기존 성도들이 수준과 헌신도가 높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기존 성도들과 새로운 교인들의 신앙 수준의 간극이 너무 큰 것부터 문제가 되었다. 또한 모두 기본(?)은 하다 보니 '교회론적 만인사제주의'적 문제가 속출하였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에서 목사와 성도로의 관계 재정립이 핵심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리더가 많은 것은 좋은데 그 리더들이 너무 한 셀에, 한 교회에 많은 것이다. 변 목사는 이러한 문제의 돌파구로 '내려놓음'을 택했다. 변 목사의 표현대로 '전투적'으로 내려놓았다. 또한 지역전도를 위해서도 목회자의 전형적인 모습부터 버렸다. 전도전략도 잠시 한 켠으로 보냈다. 그저 함께 어울리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했다. 변 목사는 이러한 모습 덕분에 골목대장이 되었다. 일반 주택을 리모델링한 교육관도 지역에 완전히 개방하여 언제나 아름다운 정원에서 차도 마시고, 원하면 목사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했다. 느리게 가지만 바르게 가고자 하는 것이 변 목사의 지론이다. 즐거운우리교회는 아직은 어린 순 같은 교회이다. 하지만 그 만큼 큰 가능성과 에너지도 함께 가졌다. 자유가 넘치지만, 그것은 자유로운 절제, 자유로운 경건, 자유로운 봉사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즐거운우리교회가 성육신의 낮아지심을 그대로 배워 하나님 앞에 높임 받는 즐거움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한다. (이은숙 기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 448-9 02)888-9182 www.woorich.or.kr
150 "다향공동체 안에서 행복을 수놓는 풍성한 교회" <주은평교회> 첨부 파일 (19)
취재기자
10427 2011-05-24
"다향공동체 안에서 행복을 수놓는 풍성한 교회" <주은평교회> 아버지를 여읜 후 기숙학교 다락방에서 고된 삶을 살게 된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 세라가 가장 부러워하는 이들은 저녁이면 쪼르르 달려 나와 아빠를 맞아 뽀뽀하고, 아빠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주머니에 선물이 들어 있나 살펴보는, 즐거운 일상을 사는 이웃집 '큰가족'이었다. 주은평교회의 안희성 목사는 “교회란 세상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세라의 눈에 비친 이웃집 '큰가족'과 같이 평화롭고 행복이 가득한 교회, 아버지를 여읜 세라 마냥 하나님이 배제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공간이 될 풍요롭고 따뜻한 교회. 주은평교회를 이러한 교회로 세우고픈 큰 그림을 안고 날마다 색을 입혀가고 있는 안희성 목사를 만나보았다. -교회 밖까지 성도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로 느껴진다. “신앙생활은 행복하게 해야 한다.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재미있고 풍성하게. 그래서 성도들에게 공동체를 많이 강조한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면 삶의 풍성함, 영적인 풍성함, 하나님 안에서의 교제권이 강화된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가정도 평화로워지고 개인적 삶의 변화도 뒤 따라 온다. 주은평교회는 주일날 음식을 여자 성도들이 준비했다면 설거지는 남자 성도들이 맡는다. 목사도 예외는 없다. 왜냐하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자의 역할이 권위적이기보다 남녀가 서로 돕고 상호 공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니 정말 삶이 더 화목하고 평화롭게 변하더라. 또 그렇게 더욱 행복해진 모습으로 교회에 들어오니 교회도 더 풍성해져 가정과 교회가 계속 행복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가끔 교회에 대한 상처, 목회자들에 대한 상처를 고백하는 성도들에게는 '목사는 상처 안 받느냐! 목사도 상처 엄청 받는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우리 서로 상처받았으니 상쇄하고 다 내려놓자, 이제부터는 행복한 공동체와 풍성한 신앙생활을 위해 잘 지내보자'한다.” -풍성한 공동체를 위한 외부적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아파트 상가에 있다가 지금 이 터로 이사온 지 2년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매주 노인정에 가서 아이스크림과 뻥튀기를 봉지에 담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인사를 드렸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던 지역주민들의 분위기와 정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져서 그로 인해 교회로 지역주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요즘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이지만, 교회는 세상과 반대로 갈 필요가 있다. 주은평교회는 절기예배를 온 식구들이 다 함께 드린다. 그리고 식사 후, 노방전도를 전부 다 같이 나간다. 예를 들어, 부활절 주일에는 계란을 50판에서 70판 정도 해서 부활의 감격을 전하러 나간다. 그리고 봄, 가을에는 교회 앞에 무대를 꾸며 작은 음악회도 연다. 작년 가을에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동네 약사 중에 섹소폰 부는 약사로 소문 난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을 섭외 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나중에 공연 날 찍은 무대사진을 가져다 주니 매우 행복해하셨다.” -'어머니기도회' 포스터와 '악기교실' 인쇄물을 봤다. 소개를 부탁한다. “다음 세대와 다가가는 세대가 공존하는' 다향공동체'를 꿈꾼다. 자녀세대를 뜻하는 '다음 세대'와 어른세대를 뜻하는 '다가가는 세대'를 합쳐 '다향공동체'라 이름 붙였다. '다향공동체' 안에 문화사역학교, 악기교실, 선교캠프 등이 포함된다. 주은평교회는 청소년들이 많은 편인데 그들이 일년에 한 차례 외국에 나가서 선교지 탐방을 할 수 있게 선교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2월에도 열다섯 명 정도가 다녀왔다. 선교캠프를 통해 선교마인드를 배우고 선교사를 직접 돕고 문화를 체험한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태국에 다녀왔다. 한 곳을 2년 동안 가니까 대학에 진학하면 1년 정도 이 곳에서 선교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아이도 생겼다. 그렇게 선교에 대한 비전을 심어준다. 스스로 참여를 원하는 아이들도 많아져서 아이들이 직접 통장에 저금해가며 선교 준비를 하고 있다. 어머니기도회는 스물 다섯 명 정도가 모이는데, 이들이 기도제목을 정하면 상담하고 함께 기도한다. 어른들 상대로는 문화강좌를 한다면 아이들 상대로는 악기교실을 한다. 악기교실은 방학 때 외부강사를 불러 진행하는데 재정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교회의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이기에 청소년을 바로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악기교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하계발표회 때 가만 보니 다들 피리나 오카리나, 태권도 같은 것을 하더라.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악기교실을 시작해 기타, 드럼 등을 배우게 했다. 자신감이 부족하던 한 아이는 드럼을 2년 정도 배우고 나니 삶에 자신감이 붙었다. 4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는 악기교실의 맨 마지막 주에는 발표회를 여는데 그 아이의 부모도 참석했다. 교회에 난생 처음 왔다던 그 아이의 부모는 현재 발표회 때마다 교회를 찾는다. 그리고 '교회가 이런 곳이라면 내가 왜 교회를 나가지 않았을까, 교회가 이런 곳이라면 나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가 일원이 되고 싶다'고 하시더라. '다가가는 세대'를 위한 복지센터, 요양시설 운영을 위해 부지도 마련했다. 어른세대가 공동체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설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음 세대'와 '다가가는 세대'의 연결점을 찾는 것에 교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 안희성 목사만의 꿈이 있다면? “장기적인 꿈은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고, 개인적인 꿈은 후배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것이다. 교회의 꼭대기 층을 게스트룸으로 만들어 선교사들이 며칠씩 묵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공개하는 것을 의논 중이다. 그리고 예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 카운슬러나 컨설팅이 전무하여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곁에서 도와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 '개척학교' 등의 문제도 뜻이 맞는 목사님들과 의논하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 '다향공동체'를 준비해나가는 것이 꿈이다. 인천시 서구 공촌동 312 032-567-0091 주은평교회 maengoh@hanmail.net 맹보경 기자
Selected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져가는 건강한 교회" <석광교회> 첨부 파일 (176)
취재기자
16650 2011-04-05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져가는 건강한 교회" 석광교회 주일 아침, 석광교회(전상일 목사)로 모여드는 성도들을 일흔이 다 된 나이의 안내요원이 맞이하고 있다.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을 반기며 휘휘 내젓는 손의 움직임이 크고도 힘차다. 1966년 김도검 목사가 개척하고 1975년 김재완 목사(석광교회 원로목사)가 부임해 35년 간 섬겨온 석광교회에 전상일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지난해 8월. 권사, 장로, 집사, 목사라는 직분에 연연함 없이 형님, 동생, 누님, 고모, 이모, 할머니, 손자손녀로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석광교회의 전상일 목사를 만나보았다. -나이가 지긋한 성도들이 젊은 성도들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봉사하시는 것 같다. "석광교회는 권사가 56명인데 30대 새댁 시절 교회에 처음 와서 목사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교회를 지켜오신 분들이다. 바울서신을 보면서 뵈뵈(Phoebe)를 연구하게 되었고 '한국교회에서 권사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뵈뵈와 브리스길라, 루디아는 바울을 재정적, 환경적으로 지켜줌으로써 바울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게 도운 여인들이다(롬 16:1-2). 그들의 역할은 '울타리'였다. 바울은 아마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 3명을 기억했을 것이다. 뵈뵈가 바울을 지킨 것처럼 권사는 교회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나 다름없다. 원로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지켜 오신 분들이 권사님들이다. 그리고 석광교회는 장로들의 섬기는 모습도 참 아름답다. 찬양 인도와 기도, 진행까지 전도사가 아닌 장로가 맡아 하고 목사가 출타할 일이 생기면 설교도 담당하여 은혜롭게 전하기도 하신다. 이것은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진 건강한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져 가는 건강한 교회. 이것이 목회철학인가. "석광교회는 40년 동안 오로지 말씀과 기도로, 든든하게 세워진 건강한 교회이다. 나 또한 동신교회, 강성교회, 남서울교회, 개척했던 빛과소금교회, 두란노교회 등을 거치며 적잖은 목회 경험을 통해 '건강한 교회'의 중요성을 느껴 왔다. 목회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말씀이 양분이 되지 못하며, 목회자가 상한 심령을 가지면 성도가 상한 음식을 먹으며 살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 1년 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또한 설교거리를 위해 성경을 본 적은 없었는지, 은연중에 목회자의 욕심이 투영된 설교를 한 적은 없었는지 되짚어 보고 반성했다. 새벽기도 20분 메시지 준비를 2시간 여 투자하는데, 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늘의 새로운 호흡이 공급되는 것 같으며,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심은대로 거두는 역사를 느끼고 있다. 목회의 꿈 중 하나가 '성도들이 2년 이내에 성경강해를 통하여 성경의 모든 부분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신앙보다는 신학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 주의 뜻을 발견하고 그 말씀을 즐겨 행하는 성도들을 보고 싶다. 조병수 교수가 만든 '1년성경읽기표, 성경통독 114'를 토대로 설교하며 2년 안에 성경 한 바퀴를 돌 수 있도록 목회계획이 짜여져 있다. IVF 선교회 간사 시절, 성경 전체를 귀납법적으로 연구했던 훈련이 도움이 되었다." -선교단체를 거쳐 목회자가 되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학교 캠퍼스를 지나는데 성경 공부하던 모임이 있더라. IVF 선교회 모임이었다. 그들과 함께 요한복음을 3개월 동안 공부하며 나를 향한 예수의 눈물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복음을 받아들였다. 학생 리더로서의 역할을 거친 후에 혹독한 IVF 간사 훈련을 받아 8년 간 전임간사로 일했다. 그러나 개인으로선 '역사적 교회관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됐다. 어떤 한 시대에 붐을 일으키는 선교단체의 수직적 교회관은 2천년을 이어온 교회의 수평적 교회관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만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선교단체를 거친 젊은이들이 세상에 접목되지 못하고 다분히 비판적인(critical)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목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이들을 재 양육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것이 감사하다."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있을 듯하다. '울타리'는 든든한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거부해서 발전을 더디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오전예배에 200여명, 오후예배 100여명이 참석한다. 새벽기도회나 수요예배에도 늘 30분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많다. 제직회는 한 달에 한번씩 꼭 한다. 두 달에 한번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성도들의 '알 권리'와 교회사랑의 기회를 위해 한 달에 한번으로 못 박았다. 이렇게 전통적인 시스템을 통해 교회가 성장해나가고 양분을 공급해나가는 것은 빈번하게 시스템에 변화를 주는 것보다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명을 낳는 교회,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역동적인 교회가 될 필요도 있다. 성도들보다 목회자의 마음이 앞서 나갈 때에는 성도들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의식이 전환되면 태도가 변하고 방향이 변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말씀을 통해 움직이시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교회가 지니는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대)가 쓴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읽어 보라. 작가가 여러 교회를 옮겨 다니며 바라본 교회의 온갖 모습이 담겨 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하는데 교회 속에 세상이 들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교회가 힘의 논리로 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석광교회에 부임하자마자 먼저, 지역을 알기 위해 파출소 지구대장과 동장을 만나 다른 지역보다 열악한 환경을 전해 듣는 일을 했다. 적게나마 석관고 급식 및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과 쌀 나누기 등의 구제를 진행하고 있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기에 해야 하는 일이다. 동시에 교회 속에 세상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상담학에서 이미 배운 바대로 '1온스의 예방은 1파운드의 치료 효과'가 있다. 수리하는 성도가 아닌 정비하는 성도를 만드는 예방목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씀대로 살기 위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무엇인가. "교회가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거룩'과 '화평'을 좇아야 한다(히 12:14-17). 거룩함을 좇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지켜나가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화평을 좇는 방법은 '내가 죽는 것'이다. 교회는 큰 소리가 나는 곳, 시장바닥이 아니어야 한다.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방법 그대로 내가 죽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죽으러 오셨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 오늘 '내가 죽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신다. 그렇기에 나는 석광교회에서 쓴뿌리를 제거하는 설교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죽는 예배를 나왔다고, 화평을 좇는 방법을 성도들에게 강조한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더라.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에, 행복하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거룩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1동 189-49 (02-962-2301) maengoh@hanmail.net 맹보경 기자
148 "배우는 교회, 섬기는 교회, 전하는 교회" <숭신교회> 첨부 파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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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7 2011-03-22
"배우는 교회, 섬기는 교회, 전하는 교회" <숭신교회> 논현역 사거리. 형형색색의 간판을 내세운 고층 빌딩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지나는 사람과 차들 모두 바쁘다며 아우성인 곳. 그 안에 느긋이 서 있는 예배당이 하나 있다. 오래된 철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흙 밟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당 한 편에 자리 잡은 화장실 건물은 시골집을 연상시킨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라는 물리적 법칙마저 이곳을 함부로 재촉할 수 없어 "제가 졌습니다" 하고 물러설 것만 같다. "9년 전에 건축 얘기가 나왔었어요. 그런데 40년 밖에 안 된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을 게 아니라 안전 검사를 해보자 했죠.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고쳐 쓰면 되잖아요? 결국 안전검사 결과 문제가 없어서 내부 수리만 조금 했습니다." 차분한 음성 속에 단단한 소신이 엿보인다. 낡은 듯 보여도 튼튼한 예배당 건물과 외유내강한 목사가 어딘가 서로 닮았다. 숭신교회와 임형택 목사의 이야기다. 숭신교회는 5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숭신교회를 설립한 고 전칠홍 목사는 예배당 건축이 한창이던 1972년 봄, 예배당 건축으로 과로한 나머지 뇌출혈로 소천하였다. 1973년 노윤석 목사가 부임하여 1995년에 원로목사로 추대되기까지 22년간 숭신교회를 섬겼다. 임형택 목사는 2001년에 부목사로, 2002년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으니 숭신교회와 함께 한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 노윤석 목사(좌)와 임형택 목사(우)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군 복무 시절, 고신 대학을 다니다가 온 선임병장이 주일학교를 만들어 놓고 제대했다. 그래서 주일학교 총무를 얼떨결에 맡게 됐다. 어린이 설교를 그 때 처음 했는데 그 경험이 나중에 화성교회(김기영 목사, 당시 고 장경재 목사 시무) 초등부, 중등부 교육전도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화성교회 주일학교는 인원이 꽤 많았다고 들었다. 많은 아이들을 상대로 설교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때 초등부가 250명, 많을 때는 270명까지 예배를 드려서 바글바글 했다. 하지만 한 번도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 라고 얘기한 적 없다. 애들이 떠든다면 그것은 설교준비가 덜 된 내 잘못이다. 중등부를 지도할 당시 합동신학대학원에 다녀서 수원에 살았었는데 토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결석자들에게 150통씩 전화를 돌렸다. 일주일에 하루 교회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아이를 돌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했지만 사실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얘야, 내가 네 얼굴을 모르는데 내일은 중등부 예배실 앞에서 만나자. 그리고 다가와서 네 이름을 좀 얘기해다오' 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전임교역자가 돼서 심방을 갔는데 교적부의 이름만 봐도 누구인지 다 알겠더라. 모두 전화통화를 했던 아이들이었다. 초등부 때나 중등부 때 교사들의 협력이 컸는데 중등부는 크게 부흥을 경험했다." -숭신교회에 부임한 이후 얘기를 해보자. 숭신교회의 비전과 목회철학을 소개해 달라. "나는 목회철학이란 말을 할 때는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목회철학이 필요하다면 성경이 목회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오로지 성경이 목회철학이다. 매년 성경구절을 정해 말씀 자체를 비젼으로 삼는다. 올해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다. 성경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말씀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강조한다." -성경공부 과정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새신자반을 거치고 나면 산상보훈을 배운다. 산상보훈은 현대교회가 꼭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사도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마 5:20). 현대교회는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어야 한다. 현대교회가 지키기 어렵다 교인들이 싫어한다 는 이유로 산상보훈을 포기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산상보훈을 배우고 나면 성경 각권과 <기독교 강요>와 <요리문답>을 공부한다. 그리고 경건서적을 함께 읽고 독서 나눔을 한다. 매주 한 장(chapter)을 읽고 요약해서 나눈다. 교인들이 궁금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뜻 이다. 주로 의식주와 관계된 미래사를 알고 싶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럴드 L. 싯처의 <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와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읽고 나누었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매년 부활절 오후예배 때는 성경암송대회도 한다. 그 날에는 동일한 본문을 정해 부서별로 나와서 암송을 하고, 그 다음 주일 오후예배부터는 개인전으로 이어진다. 개인전은 매주 한 사람씩 암송하는데, 4월에 시작하면 이듬해 1, 2월에나 마치는 장기전이다. 매년 40여명의 성도들이 암송을 한다. 70대 어른들도 암송하는데, 성도들이 성경말씀을 암송하는 것을 듣노라면 얼마나 은혜로운지 설교를 듣는 것보다 더 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에는 로마서 8장을 암송했고, 금년에는 로마서 12장을 암송한다. 지금은 시무 장로 두 분과 은퇴 장로 세 분이 계신다. 교회가 풍파를 겪었을 때 그분들과 60, 70대 교인들은 끝까지 남아서 기둥처럼 교회를 받쳐주셨다. 당회원들과 어른들이 안정돼 있어야 어린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는다. 대개 청년들이 교회의 기둥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분들이야말로 교회의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기둥이 건물을 마지막까지 받쳐주는 것과 같다. 그분들도 산상보훈을 함께 공부했다." -요즘 한국교회가 참 말이 많다. 흔들리는 교회와 교인들. 어떻게 해야 하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은 풀리는 것보다 꼬이는 것이 많다고 한다. 목사와 교인들 관계가 꼬이고, 교인들끼리 꼬이고, 자기 스스로의 인생도 꼬이는 것이 많다.. 그런데 풀지를 않는다. 서운해하고, 괘씸하게 여기고, 급기야는 원한이 맺혀 원수같이 여긴다. 교회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심정을 갖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생겨나면 지체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축복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고 하셨다. 용서가 되지 않는데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가식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이 아니다. 내 감정대로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본인의 영혼과 마음이 평안해지고, 원한관계도 풀린다." 교회 마당으로 교인들이 한 명, 한 명 들어오기 시작한다. 성경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좀 이따 성경공부가 있어서요." 임 목사와 교인들이 정겹게 눈인사를 나누는 모습과 예배당을 내리쬐는 양광(陽光)이 어우러져 인스턴트는 결코 흉내 낼 수 없을 오랜 역사로 다져진 평화로움이 호흡하는 것을 느꼈다. 성경을 영양분 삼아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성장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임형택 목사가 강조한 바로 그 ' 귀한 체험'이 풍성하게 열매 맺어 가고 있다. 서울시 서초구 반포1동 709-5 02-547-3645 맹보경 기자 maengoh@hanmail.net
147 주님과 함께라면 아골 골짜기라도... <다함께교회> 첨부 파일 (16)
취재기자
9271 2011-03-18
주님과 함께라면 아골 골짜기라도... 다함께교회 심장이 멎었다. 평생을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생을 내려놓으려는데 주변이 어두움으로 가득 찼다. 당연히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실 줄 알았건만 알 수 없는 어두운 영들이 나를 맞이한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평생 이런 일도 했고 저런 일도 했고 이 사람들도 사랑했고 등등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구나!” 슬픔에 가득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회개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그러고 있는 내게 또다시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래도 딱 하나 네게 착한 것을 보았다.” 말씀과 함께 바늘로 꼭 찌른 실낱같은 빛줄기 하나가 내게 비춰왔다. 천군천사의 마중이 아니어도 그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을 보며 큰 위로와 감격, 기쁨에 하염없이 감사했다. 모두가 포기하고 생을 마치려던 순간 주님은 새로운 심장과 함께 새로운 삶을 선사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몇 년을 기다려도 차례가 오지 않아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계산을 초월하셔서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새 심장을 준비하셨다.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이다. 심장이 기능을 잃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 사이 수많은 사고를 만났다. 운전 중에 중앙선을 넘어가기도 하고, 길가에 주차되어있는 차에 기절한 채 충돌하기도 했다. 평상시에도 갑자기 정신을 잃는 적도 많았다. 새벽기도 끝난 후 교회 계단을 내려가다가 혼절하고 굴러 떨어져서 코뼈가 내려앉는 중상을 입은 다음에야 심장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주님의 기적적 도우심으로 살았는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강북구 수유동의 다함께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는 이재응 목사는. 심장이식수술 후 주님이 주신 제2의 삶을 참으로 진지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살아가고 있다. ‘작고 가난하지만 천국을 소유한 수유리의 작은 목사’로 본인을 소개하는 이재응 목사에게 그래서 하루하루 아침 창문을 비춰주는 햇살과 삶의 호흡과도 같은 말씀 묵상의 시간은 진정 천국의 만찬 시간이 된다. 그 아름답고 맛난 식사를 혼자만 독차지할 수 없어 설교로, 휴대전화의 메시지로, 그리고 큰 교회 부럽지 않는 주보에 빼곡하게 적어 자신이 만난 주님의 그 사랑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죽음의 터널은 이 목사에게 설교와 기도, 전도를 하는데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전에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거기에 더하여 ‘살아있는 생명’을 전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한다. 이 목사는 이것을 ‘노아의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다가올 확실한 심판을 아는 사람이 간절하게 사람들을 향하여 부르짖는 그 호소……. 그러한 간절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생명이 전달될 수 있다고 이 목사는 간증했다. 힘든 시련을 이겨냈으니 무슨 문제든 당당히 승리하리라 생각되지만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목사도 여러 가지 문제들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한번은 엄청난 치료비로 인해 미처 감당하지 못한 고지서들이 TV옆에 쌓여가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 중에 ‘너는 창조주 하나님을 안 믿는구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화들짝 놀라 ‘저는 주님이 창조주이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강변했지만, 고지서들을 놓고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은 각종 인간적인 해결책들을 생각해 놓고 하나님께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모습이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진정 맡겨드리자 하나님께서 그 후 정말 신비한 섭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사람은 자신의 방법,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의 도움을 생각하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도우시며, 세상의 시련 가운데에서도 온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현재 다함께교회는 이 목사의 건강 문제로 새벽예배는 아직 못 드리지만 모든 예배를 정성껏 드리고 있다. ‘예배는 단지 정해진 시간, 공간에서의 활동이 아닙니다. 삶, 열매, 결과입니다.’ 다함께교회의 예배정신이자, 예배의 지향점이다. 다함께교회는 올해 교회의 표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온전히 세웁시다”로 정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믿음이라고 전했다. 참된 믿음과 사랑이 없는 모든 신앙적 행위는 위선이자 주님께 결코 기억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극심한 고난과 회복,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과 간증이 넘치는 다함께교회와 이재응 목사에게 주님의 신실한 위로하심이 늘 함께하시기를, 이러한 간절한 생명의 복음의 소식이 가득찬 한국교회가 되길 다함께교회와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강북구 수유동 372-2 2층 다함께교회
146 no image "개척교회라는 핑계는 없다! 진리와 사랑뿐! " <거여남포교회> (45)
취재기자
13956 2011-03-08
개척교회라는 핑계는 없다! 진리와 사랑뿐! 거여남포교회 교회의 아름다움의 극치는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이 두 단어 속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우리, 그리고 제자들의 삶의 모습이 함께 용해되어 있다. 이 절묘한 연결고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을 질긴 가지처럼 우리를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께 연결시켜 하나님께로 이끈다. 극심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사랑은 그런 연유로 더욱 간절하고 지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 된다. 이전에 당연시되었던 가치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그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지만 이제는 그 최고의 자리를 공부를 잘하거나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가정과 교회가 이러한 사랑의 울타리 역할을 해 내지 못한다면 처절한 생존 경쟁에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늘은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연어보다 더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길 소원하는 거여남포교회를 만나본다. 이 교회는 2010년 3월 설립된 신선함을 넘어 풋풋함이 넘치는 개척교회이다. 남포교회의 후원속에 최태준 목사가 이 교회를 이끌고 있다. 최 목사는 남포교회에서 부교역자로 16년간을 사역하다가 목회자의 길을 소원하던 처음부터 기도해오던 교회 개척을 무턱(?)대고 시작했다. 특별히 작년 경제적인 어려움들이 많았던 시기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시기를 조정해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20여년이 넘게 개척을 소원한 최 목사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인간적으로는 무모하게 보였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이 함께 개척의 척박한 길을 헤쳐나갈 동역자들을 한 명, 두 명씩 보내주셨다. 특별히 거여남포교회에는 어린 아기 동역자들(?)이 많다. 개척 당시 갓 결혼한 청년들 때문에 비좁은 본당이었지만 유아실 만은 훌륭하게 만들었지만 결혼할 형제들을 거여남포교회로 장가오게 할 만큼 뛰어난 자매들 덕분에 아기들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다. 교회식구들에게 이 아기들은 큰 활력이자 기쁨, 그리고 소망이 된다. 최 목사는 교회를 설립하면서 특별히 ‘함께 자라감’을 목표로 삼았다. 개개인의 신앙 성장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하나됨과 사랑이 있어야 참다운 신앙성장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늘 어느 한쪽에서는 ‘사랑이 없다. 교회가 차갑다’라는 불평들을 최 목사는 본인의 체험과 주변의 전함을 통해 들었다. 그래서 거여남포교회 성도들은 서로 많은 것을 나눈다. 서로를 많이 알아야 진실하게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렵고 부끄러운 상황들을 내어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최 목사의 진정어린 말씀과 살핌, 특별히 최 목사 사모의 여자 성도들에 대한 배려 깊은 돌봄으로 성도들은 서로 서로 마음을 열고 따뜻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거여남포교회에는 특별한 기도가 있다. 공개기도함과 비공개기도함이 그것이다. 성도들은 이곳에 기도제목들을 적절하게 분류하여 넣고 공개기도제목은 예배나 모임 때, 비공개용은 최 목사가 새벽마다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기도한다. 최 목사는 목회 사역 중 가장 큰 선물로 박영선 목사를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영선 목사와 남포교회 사역을 통해 충성과 헌신이 무엇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개척교회지만 최 목사는 강해설교를 고집한다. 목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교훈에 더욱 충성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판단에서는 그러한 말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개척교회라서 더욱 새로운 사람에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기도하다. 먼저 함께 시작한 기존 성도들이 하나됨을 추구하여 결속력있는 사랑이 넘치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갖춘 상태에서 복음 전파를 해 나가야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주의 복음과 영광을 훼손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최 목사의 소신이자, 목회철학이다. 처음 교회를 개척하려고 할 때 ‘이 어려운 개척사역을 누가 함께 하자고 할까?’라고 최 목사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함께 하겠다고 헌신하는 것을 보며 주님께서 이끌어가시는 교회 개척을 담대히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 말씀이 말씀되어, 그것으로 예배의 감격이 늘 있는 교회, 함께 자라감의 소원을 가진 성도들이 이웃과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길 거여남포교회는 소원한다. 이러한 본질적 교회됨을 추구하는 최목사와 성도들에게 주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 넘치기를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송파구 거여동 21-4 선민빌딩 4층 02-3012-1599
145 ‘내어줌’으로 참된 교회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오정성화교회 첨부 파일 (6)
취재부장
9310 2011-01-05
‘내어줌’으로 참된 교회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오정성화교회 연말부터 엄습한 시베리아의 찬 냉기가 땅 속까지 얼릴 듯한 기세다. 추워질수록 우리들의 방바닥은 절절 끓게 되고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옷자락에 아직 배어 있는 서늘함은 종일 따스한 집안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에겐 그저 상기된 볼을 식힐 상쾌한 냉기일 뿐이다. 하지만 그 따스함이 절실한 사람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진공포장 못지않게 꽉 닫힌 창문처럼 우리들 마음도 이 추위에 그렇게 닫혀버린 것일까. 세계 수출 7대 강국에 진입할 정도로 경제가 많이 회복되었지만 구세군의 냄비는 그 어느 해보다 가벼워졌고 연이어 터진 모금비리 때문인지 사랑의 온도는 미지근하다 못해 차가울 지경이다. 교회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들에게 천국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 소유하도록 한다. 하지만 ‘가난한’ 자를 위해서도 교회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사회에서 소외받고 극심한 빈곤함에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늘 관심을 기울이셨던 주님과 같이 힘든 사람들에 이웃이 되어주는 교회까지 되어야 참된 교회라고 할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오정성화교회는 이러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주는 교회’가 되기로 작정한 교회이다. 지난 성탄절에 이 교회는 61번째 경로위안잔치를 개최했다. 올해로 20년째, 초기 1~2회 하던 잔치를 연 4회로 늘려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경로위안잔치 뿐 아니라 실버대학도 매 주 목요일 운영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생활비 보조나 의료, 목욕 봉사 등을 실천한다. 오정성화교회는 1983년에 이주형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허허벌판 부천 한 구석에 설립된 오정성화교회는 지역사회에 완전히 녹아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지역의 발전까지 이끌어 왔다. 지방정부조차 해결하기 힘든 복지소외계층까지 기독교만이 제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왔다. 오정성화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이주형 담임 목사의 목회철학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목사의 목회철학은 ‘주는 목회’이다. 교회 사정이 매우 힘들었던 시절부터 조금은 넉넉한 형편이 된 오늘까지 이 ‘내어줌’을 일관되게 실행에 옮겼다. ‘주는 목회’의 핵심은 이 목사 표현대로 한다면 ‘따뜻한 밥 한 그릇’이다. 궁핍했던 시절, 그래도 줄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었다. 전도 차원의 전략도 아니고 교회 홍보는 더더욱 아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했을 뿐이다. 선교조차 교회의 성장전략화 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오정성화교회는 예수님의 진심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정성화교회는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무엇보다 열심히 배웠다. 이주형 목사는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설교와 칼럼(현재 국민일보 ‘오늘을 행복하게’),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또한 오정성화교회는 기도에 많은 힘을 썼다. 말씀공부가 이성적인 영적 훈련이라면 기도는 감성적인 영적 훈련이라고 밝힌 이 목사는 최대한 뜨겁게, 오래,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회를 인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정성화교회에서 금요기도회는 매우 특별하다. 이주형 목사는 이러한 사역을 ‘체험적인 말씀 증거’라고 말했다. 말씀과 기도했던 내용들을 봉사하는 삶을 통해 직접적인 경험으로 바꾸어 참된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98년 창단된 새생명운동본부 사역(교도소의 수용자와 교도관을 위한 사역, 회장 : 이주형 목사), 불우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 등 오정성화교회의 봉사사역은 매우 다양하다. 매년 개최하는 온가족수련회는 담임목사와 당회원부터 설거지 봉사에 참여하는 사랑과 봉사의 수련회이다. 이러한 섬김과 나눔을 통해 오정성화교회는 오히려 많은 것을 얻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기쁨과 주님을 조금씩이라도 닮아간다는 행복, 교회의 평판이 주변에 자자한 것은 덤으로 얻었다. 이주형 목사는 이러한 사역은 은혜로 힘에 지나게 섬기는 성도들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모나지 않게 묵묵히 순종해주는 성도들에게 너무나 감사한다고도 했다. 아울러 보수교단이지만 조금만 마음을 넓히면 이러한 사랑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도 함께 덧붙였다. 다른 교단이라도 포용력을 발휘하여 장점들을 잘 흡수한다면 신학과 실천 양면에서 존경받는 교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내어줌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오정성화교회에게 주의 충만한 공급하심이 늘 있길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 114-19 (032) 671-0091
144 진리에는 열정으로 공동체에는 깊은 나눔을, 성은교회 첨부 파일 (30)
취재부장
9266 2011-01-05
진리에는 열정으로 공동체에는 깊은 나눔을, 성은교회 북극에 있는 다채롭고 신비한 광경은 보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 중에서도 관광객들이 직접 겪어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도 신비한 체험은 이글루(igloo - 얼음집) 체험일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에 얼음 속에까지 들어가 잠까지 잔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그 의외의 따스함에 놀라게 된다고 한다. 열역학의 원리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단단한 얼음과 좁고 긴 입구를 지나다보면 에스키모 인들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추위는 얼마큼 바람을 잘 막느냐에 달려있다. 교회는 진리의 공동체이다. 단단한 얼음 같은 진리의 이글루가 없으면 날 좋은 날이라면 모를까 초겨울 서리에 삭풍(朔風)이라도 불어치면 그 공동체의 생명력은 움츠려들고 말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영적, 양적 부흥을 위해 매진하다 못해 돌진중이다. 하지만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보면 상당수는 진리의 이글루 속에서 살았던 흔적이 아득하다. 희희낙락 좋은 때만 있을 수는 없다.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동서울노회 성은교회는 이러한 진리의 단단한 울타리를 튼튼히 쌓아가는 교회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안에서 사랑의 모닥불을 지피며 한 가족 됨을 늘 확인한다. 1999년에 처음 이상업 목사가 부임했을 때 성은교회는 그야말로 시베리아 한복판에 내던져진 유랑민과 같은 교회였다. 많은 성도들은 떠나가 10여명만 남아있었고,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시베리아의 찬바람보다 더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다. 이상업 목사가 부임한 이후에도 금세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매서운 추위를 온 몸으로 겪은 성도들은 꽃샘추위에도 두 세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목사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오직 진리의 터를 닦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묵묵히 인내하며 기다렸다.(!) 기다림은 예술이라 했던가? 시간은 성은교회에 터를 닦고 울타리를 세우며 모닥불을 지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따스한 모닥불이 피어오르자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인간적이고 계획을 앞세웠다면 더 빨리 교회가 회복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타는 모닥불처럼 포근한 따스함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이 목사와 성도들은 그렇게 환난을 통해 인내를 키웠고, 주의 진리 안에 거하는 참된 행복을 누려가고 있다. 이상업 목사에게 성은교회는 두 번째 교회이다. 원래 합신 졸업반 시절, 이 목사 표현대로라면 한참 의욕만 넘치던 시절, 교회를 개척했었다. 그때도 설교나 사람 모이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인내의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고, 이 목사는 그것을 통해 철저히 주님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고, 사역하는 법을 배웠다. 성탄절 시즌이 다가오자 성은교회 모든 성도들은 요란벅적스럽게 축하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 이전에 이상업 목사는 목회자 원하는 방향으로만 성도들을 이끌려고 하였다.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이 목사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행사가 있으면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하는데 더 중심을 맞춘다. 진리의 울타리 안에 있는 성도들이 그 안에서 즐겁게 지내다가 조금 오버(?)를 했다고 치자. 그래봤자 진리의 울타리 안 아닌가? 진리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이끌림 받도록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 목회자의 참다운 역할이라는 것이 이 목사의 생각이다. 신조가 명확하고 수단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교회에 죄와 사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성은교회는 20대부터 40대층까지 고루 분포되어 여러 사역을 할 때 큰 힘이 된다. 수요일 전도와 쌀나눔회 구제는 성은교회 성도들이 힘쓰는 교회의 기본적인 사역이다. 부유한 지역 한 가운데 경제적 섬 같은 상태인 교회의 입지 탓에 주변에 아직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하지만, 성은교회는 그것을 전도의 소중한 기회로 삼았다. 해마다 이웃초청주일을 정해 전도와 구제를 동시에 실천하고 있다. “돈 안 푼 안 받지만 몸 바쳐 헌신하는 성도들… 부족한 목사에게 너무 잘하고 잘 따르는 성도들, 어떻게 하면 목사에게 힘이 될까 기도하는 성도들이 성은교회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을 평가하신다면’이라는 질문에 이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본인은 정말 ‘좋은’ 목회자가 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분위기 좋은 교회, 좋은 목사와 좋은 성도, 그리고 따스한 사랑이 넘치는 성은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좋은 일꾼이 되길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43 오직 주님께만 간구하여 모든 것이 풍성한교회_넘치는 교회 첨부 파일 (110)
편집부
9169 2010-11-25
오직 주님께만 간구하여 모든 것이 풍성한, 넘치는 교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류마티스의 기세는 여전하다. 엊그제 한 일이 조금 힘에 부친다 싶었는데…… 어깨 근처까지 올라가던 팔이 이제 반도 안 올라가는 것 같다. “어휴, 그러게 애기 낳고 몸 푼지 얼마나 되었다고…….”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진하게 교차하는 남편의 말을 듣자 몇 푼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던 나의 소치(所致)에 한없는 후회가 밀려온다. 둘째 녀석은 내리사랑이라 그런지 더 애절하게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런 사랑스러운 녀석을 두고 일터로 나오는 것은 나로서도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제적 압박감은 사정없이 그렇게 엄마와 자식을 떼어놓았다. 개척부터 지금까지 밤 9시는 우리 가족과 하나님의 가장 깊은 만남의 시간이다. 기억할 수 없는 많은 날들을 남편과 나는 하나님과의 은밀하고도 친밀한 이 시간을 즐겨왔다. 어느 때부터인가 새로운 사람들이 아무도 끼어들 수 없을 것 같던 주님과의 좁은 간격에 파고들어왔다. 신기한 것은 그럴수록 주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우리 부부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사이는 좁아졌다. 이렇게 좋은 기도의 시간에 이제 좋은 기도거리가 하나 생겼다. 나의 아픔은 나의 기도제목을 넘어 남편에게는 믿음의 시험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형제자매의 참 사랑을 경험하는 소중한 교육의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기도해오던 어느 날… 그날따라 무슨 필(?)을 받았는지 은혜가 넘쳤다. 마음속에 한없는 평안과 주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 것 같은 충만함이 나의 온 몸으로 파고들었다. 기도회가 끝났다. 온 몸을 휘젓고 다니던 그 녀석들이 온데 간데없다. 마치 10년은 쓰지 않았던 기계처럼 뻑뻑하던 어깨가 잔뜩 윤활유를 머금은 베어링이 미끄러지듯 돌아가는 것처럼 움직여진다. 그렇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인천 서구 넘치는교회 이현송 목사와 사모의 간증은 이 교회의 은혜로운 믿음의 증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감동의 이야기 거리들이 넘치는교회에는 그 이름대로 넘쳐난다. 인천 서구 중에서도 교회가 위치한 석남동 일대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가정적으로 파탄위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매우 척박한 지역이다. 이 어려운 지역에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IMF 직후에 이 목사는 넘치는교회를 개척했다. 처음부터 함께 하는 개척멤버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교회 개척의 시기가 아니라는 말을 주변에서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계약하러 주변을 둘러보니 애초에 성도들의 헌금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는 교회를 개척했다. 지하에서 시작한 교회에서 오직 시편 121편 말씀과 마태복음 7장 7절 같은 기도의 확신과 능력을 주시는 말씀들을 붙잡고 기도에 힘썼다. ‘우리가 주변을 보는 사람들인가? 오직 위만 바라봐야 할 사람들 아닌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막무가내식의 교회개척기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의 교회개척으로 받아주셨다. 개척 후 10년이 지난 작년, 하나님께서는 넘치는교회에 새로운 건물을 주셨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 결과는 모든 것에 풍성했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지만, 현재 입주해 있는 건물을 매입하여 들어오려고 하였으니, 넘치는 은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건물주의 사정이 있다. 넘치는교회의 기도제목 중 하나이다. 건물이 달라졌다고 교회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현송 목사의 목회철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드러나고,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성도와 교회’였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 바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회도 여전하다. 11년 째 9시 기도회는 변함없이 넘치는교회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주님께 받는 것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님의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넘치는교회에는 도움을 받아야 할 분들도 많지만, 교회는 이에 머물지 않고 선교와 전도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특별히 장애인선교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현송 목사가 오래전부터 섬기던 엘림세계장애인선교회에서 현재 21c위원장으로 수고하며,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성도들도 후원 뿐 아니라, 지역전도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규칙적으로 전도에 힘쓰고 있다. 말씀을 순수하게 믿고 그에 따라 기도하며, 주 앞에 깨끗한 양심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넘치는 교회가 인천 서구의 어두움을 비추는 큰 등대 같은 교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404-222 인천 서구 석남1동 210-2 070-4123-0258 cafe.daum.net/thenewlife
142 아름다운 계승으로 제 2의 도약을! - 강변교회 첨부 파일 (213)
취재부장
11919 2010-09-01
아름다운 계승으로 제 2의 도약을! 강변교회 4년 만에 다시 만난 허태성 목사의 소탈한 웃음은 여전했다. 한 여름 교회 행사와 여러 스케줄이 분주함에도 기자의 강압(?)에 속절없이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빼어주는 것이 허 목사의 스타일이다. 교역자 회의, 선교사와의 중요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여 강변교회,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에 대한 바람과 솔직한 생각들을 애정 가득한 마음으로 밝혔다. 허태성 목사는 공주교육대학교와 합신, 리폼드 D.Min을 졸업했고, 강변교회에 김명혁 원로목사의 후임으로 2008년 1월에 부임하였다. 허 목사의 강변교회와의 인연이 이번 처음은 아니다. 이미 부목사로 95~99년 동안 수고하였다. (좀 더 자세한 뒷이야기는 아름다운 교회 탐방-24번 기사 참조)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 강변교회는 허 목사에게 어느덧 낮선 교회나 마찬가지이다. 부목사에서 담임목사로의 위치도 변경되었고, 그간 성도들도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김명혁 목사의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위임식을 치른 지금에도 여전하다. 자신을 '김명혁 목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족한 자'라고 밝힌 허 목사는 청빙 제의가 있을 때 왜 자신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제의가 올까 많은 고민을 했다. 더군다나 허 목사는 이미 부임 전 교회였던 은곡교회에서 위임까지 마친 상황이라 더욱 심사숙고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목사님이 장례 치러 줘야하는데 가시면 어떻해요?" 있는 모든 정을 담아 목사를 섬기고 사랑했던 은곡교회 성도들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마치 결혼을 두 번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 허 목사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내둘러 말했다. 하지만 깊은 기도 끝에 주의 부르심을 깨닫고 은곡교회에 양해를 구하고 강변교회에 아름답게 부임하게 되었다. 허 목사에 대한 은곡교회의 사랑은 대단했다. 박윤성 원로목사의 깊은 사랑과 배려가 묻어나는 격려와 위임식 때 많은 은곡교회 성도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 부임한 지 2년이 지나가지만 허 목사는 아직 적응중이라고 전했다. 은곡교회와 강변교회의 상당히 다른 분위기 탓에 좀처럼 쉽게 적응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강변교회 성도들의 따스한 섬김으로 날마다 힘을 내고 있는 중이다. 허 목사가 부임했을 때 강변교회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다. 김명혁 목사가 철저히 성경적 교회와 예배, 그리고 사역을 추구했기 때문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강력한 성경적, 그리고 신학적 기초를 가진 교회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선교와 전도 부분에서는 적절한 훈련을 위해 또한,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 프로그램으로 보충할 필요도 있었다. 허 목사는 특별히 이 부분에 관심을 두는데, 좋은 전통을 온전히 잘 살리면서 그 전통을 확장해나갈 좋은 프로그램을 연구 중에 있다. 특히 강변교회는 강력한 50,60대가 있는 데에 반해 30,40대에서 취약점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잘 보완할 수 있도록 신중히 계획하고 훈련프로그램들을 적용해 나갈 생각이다. 강변교회는 처음 개척될 때부터 선교지향적인 교회였다. 북한 선교를 비롯하여 많은 선교 사업을 감당하고 있다. 허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의 경향이 지나치게 성화 집중적 설교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설교가 선교지향적인 교회에서 새신자보다 헌신할 수 있는 기존 신자에게 보다 많은 집중이 되기 때문이다. 선교와 훈련도 있어야 하겠지만 교회가 새신자를 얻는 일과 그들을 돌보며 그들이 이후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주의 나라 확장에 더욱 큰 틀의 사역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이 허 목사의 강조점이다. 특별히 이러한 사역을 위해 허 목사는 '포용력 있는 개혁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용적 개혁주의와 구별되는 이것을 허 목사는 자신을 '복음주의적 개혁주의자'라고 표현함으로써 요약적으로 설명했다. 허 목사는 '포용력은 비진리와의 타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타 교단에도 얼마든지 진리가 있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부분들에서는 얼마든지 협력해야 한다. 특별히 복음전파나 선교가 그렇다. 또한 타교단의 장점에서 우리 교단과 우리의 신학을 점검하고 늘 성경으로 돌아가 자신을 끊임없이 개혁하고자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면서 신학적 유아독존식 사고를 지양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허 목사는 강변교회 성도들에 대해 목사조차 고개가 숙여지는 겸손과 예의를 갖춘 성도들이 많다고 전했다. 영어설교 등이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높고 사회적 위치도 상당한 성도들이 많지만 많은 봉사와 사역들을 소리 없이 일하는 느낌조차 없이 하려는 성도들이 참 아름답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성도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영적 힘과 건강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제 2의 도약기를 맞이한 강변교회, 오직 주의 능력으로 주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141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이 되는 교회 - 신흥교회 첨부 파일 (5)
취재부장
8938 2010-08-0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이 되는 교회 - 신흥교회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 머리의 자리에 다른 것이 올라가 있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어떤 곳에서는 교인들이, 또 다른 곳에서는 목회자가 이 자리를 차지한다. 어떤 곳은 씁쓸하게도 은행이 이 자리를 차지해 속한 모든 지체가 기쁨과 활력을 잃고 수적 확대만을 위해 동원되기도 한다. 평신도 중심 교회이건, 목회자 중심 교회이건, 심지어 건축 중심 교회에서도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또한 이셔야한다. 믿음을 가지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머리됨 아래 세워나가는 것이 주님 나라의 참된 확장이 될 것이다. 당연하지만 흔하지 않은 자랑, 믿음의 능력을 소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자랑,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랑이다. 받은 복보다 그 복을 주시는 주님, 교회 자체 보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모든 감사와 감격을 표현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들에게 낮선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열악한 환경 가운데 이 참된 자랑의 능력을 소유한 교회가 있다. 바로 부천 신흥교회이다. 신흥교회는 자랑을 하고자 하는 목표와 비전을 품은 교회가 아니다. 지금 현재 이 아름다운 자랑이 살아 숨 쉬는 교회이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루신 사랑 앞에 이 가슴에 번찬 감격이 넘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자녀에게 주신 감동이기에 잠을 자다가도 눈물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친히 일하심으로 이루신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요, 이 자비로 만드신 교회는 자기가 포기되어지는 자들의 모임이며, 그 하나님의 자비를 한량없이 누리는 신흥교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앙고백문 같은 이 글들은 신흥교회 교인들이 예배 후 제출한 감사의 내용들이다. 표현도 거칠고 때로는 문맥도 맞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성도들이 예배 후 느낀 진실한 믿음의 고백들은 이 외에도 많이 있다. 신흥교회는 이러한 감사들을 매주 주보에 싣고 있다. 신흥교회가 항상 이러한 교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교회도 다른 교회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들이 있었다. 때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갈등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신흥교회는 1976년 부천 한 켠에서 천막교회로 시작한 교회이다. 현재 원로목사인 이용근 목사가 개척하여 2007년까지 사역하고 이후 민경택 목사가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민 목사가 부임할 당시엔 교회의 상황이 지금처럼 화목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용근 원로목사의 과감한 결단과 전폭적인 위임으로 민 목사는 오래된 교회에서도 새로운 신앙의 부흥을 누리는 복된 목회자가 되었다. 민 목사는 신흥교회는 ‘숫자를 초월한 교회’라고 소개했다. 성도의 수가 적어서 변명하는 것이 아니고 부흥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도의 숫자에 목회자가 매달리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일에 수종 드는 것이 아닌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부임하기 전 경남 우포에서 시골 목회만 10여년이 넘도록 한 민 목사는 그 목회를 통해 성도의 소중함,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웠다. 매일 똑같은 ‘노인네’ 성도들을 만나 말씀을 전하고 함께 교제하면서 반복한다는 지루함이 아닌 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지금 하고 있다’의 감격을 체득했다. 그래서 민 목사는 신흥교회에서도 교회에 나온 성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심지어 주일 같은 때에 모였을 때에는 안 나온 사람을 신경 쓸 틈도 없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몸 버려 세우신 성도가 아닙니까? 더군다나 성령께서 오늘도 역사하셔서 이렇게 모이게 되었는데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이 보다 소중할까요?” 민 목사는 목회자들이 일단 조급증만 버리면 멋있게 일하기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며 현재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 마음과 시간과 몸을 드릴 것을 강조했다. 신흥교회가 그저 모이기만 하는 교회인가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신흥교회의 구역장들은 매주 심방보고서를 여러 편 제출해야 한다. 심지어 장로-집사-권사 피택자들도 매월 4편 이상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의무로서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기쁜 보고로 되는 것이 큰 차이이다.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성도 안에서 주의 영이 일하시기 한 것이다. 민 목사는 성도들에 대한 소감을 묻자 대뜸, “정신 나간 사람들이지요.”하며 껄껄 웃으며 말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신 나간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것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다고 전했다. 그 뛰는 가슴으로 오늘도 사역에 임한다고 전했다. 그들 속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며 감격하며 더욱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참된 교회됨, 그것은 예수의 머리됨에 달려있다. 이 소중한 진리를 가슴에 담은 신흥교회가 더욱 그리스도의 부요함에 거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420-808 경기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273-16 교회 032)681-2785 담임목사 011-566-3153
140 믿음과 섬김으로 이루어가는 교회개척기 - 섬김의교회 첨부 파일 (4)
취재부장
8776 2010-07-06
믿음과 섬김으로 이루어가는 교회개척기 - 섬김의교회 아무도 없다. 고요하다. 몇 달 나오던 여 교인이 목회자 가정을 제외하고는 혼자 드리던 예배가 부담스러웠는지 이제 못 나온다고 통보를 했다. 그 교인이 앉아있던 자리가 특별할 것도 없을 터인데, 유난히 더 크고 냉기서린 바람만 불어오는 것 같다. 새벽기도회까지 세어 넣으면 아내와만 함께 드린 예배가 500번도 넘는 것 같다. 괜히 짜증이 난다. 답답한 마음을 아내에게 풀다보면 어느덧 말다툼이 되어 있다. 억센 두 남자아이 때문에라도 충분히 힘든 아내에게 몹쓸 짓 했다 싶어 서둘러 사과했다. 이내 따스한 예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영혼의 깊은 곳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아내의 사랑이 느껴진다. 1층 상가 떡집 아이들이 교회에 놀러왔다. 삼형제의 위력은 대단하다. 어떤 부흥집회도 이 보다 더 뜨거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한바탕 놀고가면 월드컵응원후유증 같은 것들이 몰려올 정도이다. 아직 부모님이 믿지 않아 교회는 오지 않는다. 나 같으면 놀다가 미안해서라도 예배 드려주겠다. 아이들이라도 야속하다. …… 주일학교 예배시간이다. 우리 아이들이라도 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예배당에 들어서니 앗! 삼형제다. 우리 아이들까지 무려 5명의 아이들이 커다란 눈망울 이리 저리 굴리며 나를 관찰 중이다. 이를 어쩌지? 나는 설교자라 교사까지는 하기가 부담스러운데(?), 아내가 이 많은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5명 아닌가? 어디 이래가지고 참다운 신앙교육을 할 수 있을까?... (웃음) 예배당 놀러왔을 때 아이들은 놀아도 놀고 계시지 않은 분이 있었다. 내가 냉철한 눈으로 바라볼 때 그 삼형제는 분명히 놀았다. 몸과 마음이 철저히 노는데 완전히 헌신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 삼형제의 영혼 속에서 그 분은 그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하셨다. 가만 생각해 보니 500여번의 외로운 예배 때도 누군가 있던 것 같다. 분명하다. 낙심된 마음이 기도할 때 곧추 세워졌다. 새벽녘 어두운 예배당 안에서 내 심장 속에 햇빛 보다 밝은 빛을 펌프질하는 누군가 있었다. 그 빛이 영혼의 핏줄을 타고 온 몸을 몇 일동안 돌아다닐 땐 누구도 부럽지 않았었다. 필립 얀시의 말처럼 하나님은 뜻 밖의 장소에 계셨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도, 나의 낙심된 심령에도, 부산한 아이들의 영혼 속에도,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전도 시간에도. 수지 섬김의교회 이왕준 목사의 개척의 비사(秘史)를 한 번 요약해 보았다. 말이 요약이지 그야말로 얼기설기 엮은 발처럼 구멍이 숭숭한 요약이다. 그 빈 구멍들마다 이 목사 가정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 함께 기도와 물질로 헌신해주고 있는 주의 교회와 백성들의 땀방울이 알알이 배겨있다. 오늘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을 통해 이 목사 가정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간간히 방문하는 방황하는 심령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수지 상현동의 교회개척사를 쓰고 있다. 2009년 3월 수지 섬김의교회는 설립되었다. 이왕준 목사는 개척 1년 전부터 개척의 때와 장소, 물질, 그리고 개척의 헌신자들을 놓고 기도하며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섬김을 받으러 오는 세태에서도 참 섬김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성도를 만들고자 ‘섬김의교회’로 이름을 지었다. 아직은 섬길 것이 많은 개척교회라 목회자가 주 예수님과 같이 끝까지 사랑하고, 발을 씻기는 섬김을 보여주여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이 목사는 이 사역은 개척의 시기가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교회가 감당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끊임 없는 섬김의 모습이야말로 한 성도를, 한 교회를 온전히 헌신의 길로 이끄는 예수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내 최영진 사모의 전도집중훈련을 통해 섬김의교회는 본격적인 가정방문전도를 강화했다. 이전 축호전도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만나는 사람과의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가능한 전문적 전도이다. 아파트촌이 밀집된 수지 지역은 오히려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 많다. 섬김의교회는 그것을 전도전략의 포커스로 삼았다. 정착하지 않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섬김의교회는 예배부터 각 시간대별로 특화하여 복음전파(구도자), 교회, 기도중심, 찬양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목사는개척 16개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섬김의교회를 향한 주의 뜻을 확신했다. 이제 남은 것은 헌신자를 교회에 보내주시는 것만 남았다고 한다. 능력의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역사하신다. 수지 상현동에 복음의 역사가 섬김의교회를 통해 일어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448-132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2동 66-9 상현종합상가 410호 070-7137-0063~4, 010-3340-1964 www.sumgimchurch.com
139 세상의 바위를 기도의 역사로 깨뜨리는 교회, 광성교회 첨부 파일 (8)
취재부장
9976 2010-06-22
세상의 바위를 기도의 역사로 깨뜨리는 교회, 광성교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에 관여하셔서 예상할 수 없는 섭리로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것을 성경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발견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과 가장 적당한 때에 그 계획을 이루시는 치밀하심에 감탄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휴, 하나님 저 사람 빨리 좀 정신 차리게,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 주세요!” 안타까운 마음에 애절하게 기도하지만 그 사람이 꿈쩍도 않는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절망한다. 하지만 그 때가 바로 주님이 가장 열심히 일하시는 때다. 봄철이면 산에서 많은 낙석사고가 발생한다. 겨우내 바위속 깊숙이 베긴 추위가 풀리며 바위를 깨뜨리는 것이다. 서늘한 가을, 스며들었던 물이 겨울 내내 얼음으로 변신하여 바위의 좁은 틈새에서 엄청난 팽창력을 발휘한 것이다. 아무도 깨뜨릴 수 없던 것 같던 큰 바위는 그 작은, 하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얼음의 능력에 굴복하고 만다. 천안함 사태로 우리 국민들은 군의 특수부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UDT, SSU 등 엄청난 훈련을 통해 인간의 한계점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에 대한 방송을 보며, 일반 군생활의 고됨을 자랑하는 우리의 군 무용담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런 특수부대원들의 삶은 복음과 사랑 같은 것과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어둠과 빛 같은 존재 같이 느껴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살면서, 그런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되고 척박한 삶에도 틈은 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인천 광성교회 유석환 목사는 이러한 이야기의 살아있는 증거다. 그는 해군 첩보부대(UDU)에서 대북작전과 첩보 활동을 하다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목회자로 부름받기까지한 특이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유석환 목사와 광성교회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생생한 일하심을 느껴보자. 유 목사는 6.25 전쟁 시절 천안으로 피난 왔다가 주일학교를 다니며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후 거칠기만 한 현실에서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고, 특수부대원이라는 삶은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는 매력적이기까지 한 일이었다. 세상 누구도 두렵지 않은 남자, 밤낮 이어지는 혹독한 훈련, 하지만 오고가는 술잔 속에서 동료들과의 깊은 유대감은 그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존재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일학교 경험은 그의 삶에 깊고 좁은 ‘틈’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셨다. 거대한 특수부대원 유석환이라는 바위는 어느 날 ‘퍽’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지고 죄인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만 될 불쌍한 영혼만 남게 되었다. 군대를 제대시킨 하나님께서는 그를 교회로 이끄셨다. 이후 17여 년 동안 유초등부와 청년부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유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갔다. 교회는 다니지만 이전의 삶의 습관들과 특히 군생활의 여러 훈련을 통해 형성된 성격 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술과 담배를 한 번에 끊고 때로 자기 자신에게 실망스럽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로 매달리며 자신의 주파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 갔다. 1985년도에 유 목사는 합신을 졸업하고 사역자의 길로 들어섰다. 하나님이 이기신 것이다. 광성교회는 이러한 유 목사의 결단과 많이 닮은 교회이다. 유 목사의 퇴직금으로 개척된 교회는 땅을 주시라고 기도하던 중 부지가 생기고 그 다음해 교회당을 건축했다. 현재 전교인들이 선교에 헌신하며 모이기만 하는 교회가 아닌 흩어지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열망중이다. 특별히 광성교회는 중국 선교에 많은 집중을 한다. 공산국가 선교가 어려움이 많은데 선교지역 종교과장이 중국특수부대 출신이라 유 목사의 군 전력이 많은 보탬이 되었다. 이러한 광성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와 기도이다. 예배에 실패하면 삶에 실패한다는 원칙아래 늘 예수님을 영접하는 심정으로 예배도 드리고 삶도 살아간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없이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약한 의지를 붙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지요.” 유 목사는 올해 인천 기독교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제 선교 뿐 아니라 지역 관공서와 회사에 신우회를 조직하여 직장선교에서 더욱 분발하기로 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광성교회의 사역 곳곳의 틈새를 매워 사단의 바위를 깨뜨려 나가시길 기자도 함께 소원한다. (이은숙 기자) )
138 no image 강남에 복음의 풀숲을! 도전하는 개척교회, 동현남포교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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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43 2010-05-26
강남에 복음의 풀숲을! 도전하는 개척교회, 동현남포교회 변덕스러운 날씨에 영민하던 식물들도 어리둥절한 듯하다. 이내 꽃망울을 터 트렸어야할 녀석들은 자신의 몸을 가냘픈 연두색 이불로 감싸고 졸린 눈을 비 비며 연신 하품질이다. 열매를 위한 자숙의 시간을 보낼 녀석들도 창조자의 솜씨가 살아있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놀이터 어린아이들처럼 이리 저리 비추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대 자연의 나르시즘은 태초부터 보는 대상을 위해 주어진 것이리라. 회색빛 도시의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올라온 꼬마 풀잎을 보며 우리는 경이감 을 느낀다. 우리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씨앗은 언제쯤 싹을 틔울까. 경이로운 꼬마 풀잎 만 있어도 만족스럽지 않는가? 씨앗이 있다는 작지만 당당한 증거 앞에 믿음 의 나르시스트가 되어 본다. 주 안에서의 자랑이 그 누군가의 눈에 경의로움 으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봄철 식물의 감상(感想)이, 늘 그렇듯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풀 때문 에 한참동안 신앙과 주님을 번민했던 사람도 있다. 오늘은 강남구 대치동 동 현남포교회 이동혁 목사와 그 심각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4대째 기독교 집안. 수식어 일절 필요 없이 경건한 가정예배 모습이 바로 팝 업(pop-up)된다. 평안북도 용촌에서 복음 1세대로 예수 신앙을 받아들인 이 가정은 이동혁 목사 모친이 신학의 길로 들어서면서 완숙의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동혁 목사 대(代)로 오면서 시련은 시작된다. 이 경건한 가정에서 드리는 가정예배에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어린 이동혁의 심각한 기도 몇 가지 가 응답되지 않은 것이다. 마음이 상한 그는 기도를 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가 정예배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것은 몸 풀기에 불과했다. 메인이벤트는 청소년기 때 찾아왔다. 그 가 고1 때 참석한 중고등부에서 수련회를 참석하게 되었는데, 풀베기 봉사를 하다가 풀독에 오른 것이다. 그 때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수련회와 나는 상극이구나.’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충현교회에서 교사로 섬기고 있을 무렵 조그만 교회의 수련회 봉사요청이 들 어온 것이다. 우물쭈물하다 결국 참석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 치고, 기도하고, 함께 구르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희열을 느끼게 된 것 이다. 군대에 입대하고 난 후에도 하나님의 구애는 계속되셨다. 기도 안하는 조건으 로 가정예배를 참석했던 이동혁 훈련병은 매일 800명 앞에서 기도인도를 했어 야 했다. 하나님을 누가 이길 수 있으랴. 주의 사랑에 매여 이동혁 목사는 오 늘까지 주저 없는 사역을 믿음으로 감당하고 있다. 이동혁 목사는 개척하기 이전 남포교회에서 12여 년간 부목사로 사역했다. 박 영선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교회와 신학의 토대를 박 목사의 기반 위 에 세우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선배의 위대한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오히려 선배의 신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믿음의 선배들이 쌓 아온 금자탑 위에 조그만 나무 조각 하나라도 더 올리려는 마음으로 교회를 이끈다고 이 목사는 말했다. 성화에 관심이 많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한 뜨거운 성화를 그는 소망한 다. 경건한 뜨거움이 있는 교회, 악인에게도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교회를 이루기를 소원하며 모든 성도들이 기도와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고 전했다. 이를 위해 말씀이 흥왕해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하 나님의 주권아래 우리가 있다면 더욱 말씀을 실천하며 기도에 힘쓸 때에 그 의 주권에 잘 반응하며, 그 분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현남포교회의 ‘동현’은 동쪽 언덕이라는 뜻이다. 골고다 언덕이 동쪽 방 향에 있어 구원과 영광이 있는 교회가 되길 소원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 다. 이름이 이름이니 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기댈 언덕이 되고 싶어 이 목사 는 도울 사람들을 열심히 찾았다. 교회 위치가 대치동 아닌가? 못 찾는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동사무소 복지담당조차도 어려운 분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현교회는 구제보다 전도에 많은 힘을 쓰고 있다. 강남 한 복판에서 전도라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 앞에서 지하철역 에 나가서 “예수 믿으세요. 가까운 교회에 꼭 나가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도넛 200개를 구워 나가는데 격려하는 분도 있고, 관심 가져주는 분도 있어 많은 격려와 위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동현남포교회는 아직 어린 교회다. 2007년 3월 처음 설립되었고 예배당에서 시작한지는 2년을 갓 넘겼다. 하지만 하나님의 꿈이 자신들의 꿈이 되길 소망 하는 그 속에 믿음과 성령의 씨앗을 가득 담고 있는 교회이다. 보도블록 사이의 풀이라도 뽑지 않으면, 밟혀도 결국 보도블록이 안 보일 정 도로 무성해진다. 하나님이 심으신 풀이 동쪽 언덕위에 가득 하길 기자도 함 께 소망한다. 동현남포교회 : 서울 강남구 대치동 907-15, (02)2051-6461 (이은숙 기자)
137 no image 선교의 엔진으로 30년을 하루같이 달려온 은평교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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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6 2010-04-28
선교의 엔진으로 30년을 하루같이 달려온 은평교회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도록 범상치 않은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 같다. 소년의 조그마한 헌신이 예수님의 손을 거치자 5천명을 먹이고도 남 을 양식을 만들어냈다. 아마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데이비드 카퍼필드(기자 주 - 유명한 미국 의 행위 마술가) 못지않은 예수님에게 도저히 매료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 다. 그 누가 광주리 기적을 상상이나 했을까? 어찌 되었건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신 그 손에서 시작된 물고기와 떡은 생명을 주는 영의 양식과 함께 모 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그 때만 있으란 법은 없다. 1904년에 웨일즈에서 시작된 복음 의 불길은 이듬해 인도의 카시를 거쳐, 1906년 미국 LA의 아주사에 거대한 부 흥을 일으키더니, 심지 끝의 작은 붉은 빛 조차 희미해져가던 조선의 평양에 말씀의 풀무 불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래서 예상할 수 없다. 다 만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첨단의 창끝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 정보-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기대로 복음의 씨앗을 만천하에 뿌리는 것에 헌신하는 믿음의 무 모함이 살아있는 성도와 교회가 있다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예상할 수 없는 방식과 결과로 일하실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무모한 기대감을 말씀의 열심과 믿음의 기도, 마음으로부터의 헌신을 통해 기대를 넘어서는 은혜와 큰 축복을 맛보고 있는 중인 서울 강동 구에 위치한 은평교회를 만나본다. 은평교회는 1980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만 30주년을 맞이한 청년교회이다. 하 지만 품고 감당하는 소망과 사역은 장년급 이상인 교회이다. 설립된 지 2년 만에 예배 인원 200명을 돌파하더니 해마다 부흥을 거듭하여 제직 1,400여 명, 출석교인 3,400여명을 헤아리는 대형교회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이 2번의 예배당 건축을 감당하면서도 일어났다는 것은 범인(凡 人)들의 예상을 뒤집고, 장 목사의 보잘것없던 아파트를 팔아 상가에서 시작 한 것이라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기대조차 많이 뛰어넘는다. 그렇게 하나님 은 은평교회에서 일하셨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고 싶으신 분은 아름다운 교회 탐방-22번 기사를 보시라!) 은평교회의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은 대단하다. 85년 시작된 옥문기도단은 지 금도 주일 저녁예배 후 계속되고 있고, 역시 같은 시기에 시작된 은평성서모 임은 베델성서모임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끈질기 고도 강력한 말씀과 기도에 대한 열심은 주님이 일하셔야만 개인이 살고 가정 이 살고, 교회가 살 수 있다는 장상래 담임목사의 확고한 철학이 담겨 있다. 은평교회는 선교에 많은 힘을 쓰는 교회이다. 현대에 들어 교회에 대한 사회 적 요구는 참으로 다양해졌다. 지역대형교회의 건물은 거의 사회적 공공건물 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요구가 교회에게 중요하다 는 것을 은평교회는 잊지 않았다. 예배당 건축과 여러 구제 사업들을 감당하면서도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라는 오스왈드 스미스의 구령의 열정을 그대로 실천하기 에 말 그대로 ‘죽도록’ 충성했다. 설립초기부터 강했던 은평의 구령의 열정은 여 러 어려움 속에서도 현재 재정 의 약 65%를 선교부문에 집중하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원하고 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배우고, 따르며, 전하는 것을 주보 표지에 써 놓고 부끄 럽지 않은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은평교회는 주파송 선교사 5명을 비롯하여, 총 113개의 기관과 선교사 를 후원하고 있으며 국내선교부분도 157개의 교회와 기관을 위해 기도하며 최 선을 다해 후원하고 있다. 사회봉사와 장학사업도 약 60여 대상에 대하여 꾸준히 실행하고 있는데 좀 더 확대하여 강화시킬 계획이다. 올해는 은평교회가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한 행사가 계획되었다. 5월 9 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세계선교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총 22개국에서 73 명의 선교사와35명의 현지사역자들이 초대되었다. “그 동안 적은 물질로만 선교사님들을 도와 죄송했는데, 이번 30주년을 맞이 하여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자 합니다.” 장상래 목사는 이번 대회는 현지사역 자들까지 초대된 특별한 선교대회로 준비한다고 전했다. 하나님과 현지사역자 들이 하실 일을 돕는 자로 선교사가 파송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선교는 교회를 새롭게 하 고, 새로운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수를 전하는 일이다. 설립 30주년을 맞이한 은평교회가 더욱 이 봄날의연두색을 지닌 생생하고 젊은 교회로 늘 성장하길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136 no image 따스한 가정의 온기로 교회도 뜨겁게, 행복한교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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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8 2010-04-14
따스한 가정의 온기로 교회도 뜨겁게, 행복한교회 첨단의 정보사회에서 치밀한 사회시스템은 사회 유지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이러한 사회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새로운 변화들을 그 시스템에 통합시켜 나간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나간다. 투입과 산출의 경제 원리에 따라 경제, 외교, 국방, 교육 등 여러 사회 분야가 평가 받는다. 이러한 사회시스템에 속한 구성원들은 이 효율성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매우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경쟁원리의 장점은 사회가 적합한 인재를 비교 적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삶에는 효율성으로 평가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경쟁 의 잣대로는 그 가치를 전혀 어림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한 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정이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 대해 효율성을 기준 으로 교육할까? 형제간의 경쟁으로 더 사랑 할 자녀를 고른다면, 이것은 가정 이라기보다 수용소에 가까울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가정회복을 외치고 있는 중이 다. 하지만 그것이 설교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고, 세부적 실천에서 많은 시행 착오를 겪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가정회복을 외치는 교회 중 탄탄한 준비와 철저한 실천으로 여 러 교회에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는 동서울노회의 행복한교회를 소개한다. 행복한교회가 특별한 장점을 있어 이러한 사역을 성공리에 펼치는 교회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여러 교회 내의 갈등으로 교인들의 마음은 갈라졌 고, 여러 사람들이 떠나갔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임한 최경락 목사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몇 명 안 되는, 하지만 갈래갈래 찢겨진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무겁게 짓누르는 빚 뿐 이었다. 교인은 적고, 빚은 이자까지 거대한 짐이 되어 돌아오는 상황, 하지만 최 목 사는 이러한 거대한 짐에 과감한 태클을 걸었다. 주님이 주신 십자가로 인정 하고 그 짐을 지기를 기도했다. ‘내 짐은 쉽고 가벼움이라……’ 불가능할 것 같았던 빚이 해결되기 시작했 다. 교회 계좌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헌금이 헌금되기 시작했다. 조그맣게 시작한 부부모임에서 가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가정으로부터 충분 한 사랑을 공급받게 된 교인들은 다른 교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으 로 허물을 덮고, 진정으로 서로를 한 지체로 받아들이게 되는 기적적인 일들 이 일어났다. 대형교회가 넘쳐나는 주변 환경에서도 알토란같은 교인들이 전도되어 이젠 교 회에 여러 개의 유모차와 아기침대를 준비해야만 했다. 처음 모임의 가장 젊 은 부부가 40대였지만 아기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교회의 싱그러움을 그대 로 보여주게 되었다. “기도모임과 예배를 보면 대략 그 교회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더군요.” 여러 교회들에게서 매너리즘과 종교적 율법주의에서 기인한 차가움이 교회의 기도와 예배를 기진하게 만드는 것을 본 최 목사는 서로의 진실한 나눔이 있 는 기도모임(어머니 모임, 아버지 모임, 가정 모임 등이 있다)과 하나님을 향 한 겸손과 사랑이 가득한 예배를 만들기 위해 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또한, 목회자도 이러한 예배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를 잘 치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도로부터 받은 상처, 스스로의 과도한 중압감 등으로 목회자가 아픔이 있으면 설교를 통해 다시 성도를 상처주고, 교회를 차갑게 만드는 원 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특별히 행복한교회는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준비시키는 사역에 집중하길 원하는 교회이다. 인생의 성공보다 자녀를 주님 앞에 바로 키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최 목사는 이러한 사역에 과감한 실천들을 해 왔 다. 다음세대가 자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신자를 새로운 신자로 얻어 교 회를 채워나가는 것도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 중 하나이다. 주로 젊은 층 에 집중된 이 사역에 최 목사는 자신의 친구들부터 전도하는 모범을 보였다. 무너져 내린 공교육에 계속 기대를 걸기보다 홈스쿨링을 자신의 가정에 실천 하여 자녀들이 모두 집에서 신앙의 양분을 충분히 받으며 교육받고 있다. 홈스쿨링 관련 모임들을 통해 부족한 점을 메워나가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인성적 측면 뿐 아니라, 학습적 면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인다고 전했 다. 이러한 사역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행복한교회가 꿈꾸는 사 역은 회복센터이 다. 부모와 자녀의 담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을 묶는 사역 을 위한 회복센터는 흉악한 범죄가 넘쳐나는 시대에 좋은 본을 보일 사역이 라 생각된다.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교회, 다양하지만 마음은 하나인 좋은 사람들이 있는 교회인 행복한교회가 주 안의 참된 행복을 전하는 파수꾼이 되길 희망한다. (이은숙 기자)
135 no image 세상 속에서 진리의 참된 능력을 드러내는, 찬미교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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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9 2010-03-17
세상 속에서 진리의 참된 능력을 드러내는, 찬미교회 신자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이기가 상당히 껄끄러운 시대가 되었다. 종교 다원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성경 진리의 독특한 배타성은 이제 신비함의 범주 에서 벗어나 어느덧 비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가장 일상적인 대중교통수 단의 부착광고물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관(神觀)을 정면공격하는 상황은 사 회적 파문거리가 되지도 않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교회들은 진리를 전파한다는 미명아래 진리를 보수해야 할 기본 의무를 져버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세계의 많은 곳에서 배타적 기독교는 잔인한 핍박의 대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 없는 곳에 독보적인 소망의 원천이 되었다. 타협적인 기독교는 짐짓 번성하 는 것 같지만 결국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다 소멸하게 된다. 신도시가 개발되면 수없이 많은 교회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간 판을 내걸고 있 다. 목(?)이 좋은 곳은 더 많은 프리미엄을 주겠다는 교회가 가져간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교회들이 말하는 복음엔 행복은 있으나 성 결은 없다. 죄에 대한 지적은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무조 건 기다리시고 용서한다고 한다. 이런 복음이 사회의 저항을 받을 리가 없 다. 그리고 능력도 없다. 찬미교회는 이러한 세속화의 물결을 정면으로 맞서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며, 시대의 유행에 저항하는 교회이다. 신도시에서 성장을 위해 복음을 희생시키 기 보다 복음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는 쪽을 택했다. 담임인 이종섭 목 사는 ‘일단 버티고 보기’를 작심한 사람이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교 회는 아직까지 견고하다. 이종섭 목사는 처음엔 푸른 초창의 주님을 생각하며 푸른교회를 경기도 고양 시에 설립했다. 97년부터 사역을 이어오다 2008년, 근처에 있던 찬미교회와 합병을 했다. 이쪽 교회 목회자의 사정으로 푸른교회 식구들이 찬미교회로 모 두 오게 되었고, 이 목사가 목회를 맡게 되었다. 두 교회가 한 집에 동거하 면 많은 문제가 생기겠지만, 애초부터 한 교회로 살기를 작정했다보니 큰 문 제 없이 오늘까지 아름다운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이종섭 목사는 한양대학교 작곡과를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중학교 음악 교편까 지 잡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군 복무를 할 때 많은 신앙서적 독서를 통해 신앙을 다지게 되었고 대학 졸업반 무렵, 하나 님에 대한 소명을 깨닫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신학을 시작하고 개척 을 시작했을 때, 몇 차례의 건강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기도와 맡김으로 훌훌 털고 이제는 영육간의 강건함으로 목회를 이어오고 있다. 찬미교회는 개척부터 이제까지 그 흔한 전도프로그램 한 번 하지 않았다. 하 지만 자립교회가 되었고, 이제는 몇몇 어려운 교회들을 돕고 선교를 후원하 는 교회가 되었다. 주일예배가 끝날 때 마다 늘 기쁨이 넘치는 교회 분위기 에 이 목사는 더욱 주님께 감사드린다. 신도시 지역이라 더욱 그러해야할 터 인데도 찬미교회는 철저히 유행을 버렸다. 그리고 성경을 택했다. 주일 오후 설교와 수요설교는 특별히 깊은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 모두 노 력한다. 이 목사는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이런 세미나, 저런 프 로그램을 찾아 분주 히 움직이는 목회자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렇게 하겠지만, 차라리 말씀 안에서 소신껏 목회하고, 모든 문제는 기도 안에서 풀 면 된다는 것이 이 목사의 생각이다. 또한 많은 세미나들이 교회 부흥의 사행 성을 부추기며 목회자들을 하나님 앞에서 방법론으로 자리를 옮기게 만든다 고 지적했다.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다면 교회가 미약해도 배운 말씀대로 목회해 나가며 모든 어려움들을 기도하며 버텨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함께 하십니 다.” 이 목사는 찬미교회 성도들과 이러한 사역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오늘도 기뻐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2개의 교회가 합쳐졌지만, 늘 한 교회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서로 동역하는 성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음이 행복하면 몸도 건강해지는 법이다. 개척 전부터 이 목사는 위가 많이 안 좋아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개척 초기 기적적으로 모든 병이 떠나갔 다. 위는 스트레스와 가장 관련이 많은 장기이다. 개척교회 목사가 위병이 나 았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는 것 아닌가? n 시대의 유행을 좇지 않고 오직 말씀과 주 안에서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찬미교 회가 더욱 단단히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이은숙 기자)
134 no image 상황을 초월한 영혼구원과 선교, 한양교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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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9 2010-02-17
상황을 초월한 영혼구원과 선교, 한양교회 이 시대의 삶에 대한 태도의 기치는 여하불문하고 ‘긍정주의’이다. 세상도 교회도 이 긍정주의에 대한 책과 강연들로 가득하다. 특별히 국제적 분쟁, 국 가 내 사회 갈등, 분배 불평등이 심화된 요즘, 척박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긍정주의’를 통해 희망을 보려한다. 성경은 원천적으로 ‘긍정주의적’이다. 믿음이 강조되는 기독교에서 긍정주 의적 경향을 나타내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때로는 교회에서 세상보다 더 욱 더 강한 긍정주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동양적 신비주의와 결합한 내재주의적 긍정주의가 어느덧 교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 안에서 할 수 있다’라고 외치지만 ‘주 안에서’보다 ‘할 수 있다’ 가 훨씬 강조된다. ‘주 안에서’가 철저하지 않다면 명제의 모순을 가져와 말씀의 본뜻을 흐리게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세의 수도원 영성에서 강조되 었던 ‘부정의 길’ 대로 생각해 보는 것은 이 구절을 더욱 새롭 게 한다고 생 각한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양교 회를 담임하고 있는 유병의 목사는 평생 이 구절을 가슴에 품고 27년 째 목회 를 이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주의 도우심만을 구하고, 주 안에 있기 만을 소원하며 주의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힘차게 달려왔다. 유 목사는 불신자였지만, 인격적으로 갖춰지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 지만, 초등학교 5학년 말 일어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평탄스러울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의 아들 로 전락했고, 중학교 졸업도 간신히 한 터라 고등학교 진학자체가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결국 학비마련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수원 삼일학 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주님은 그를 부르셨다. 삼일학 교는 11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션스쿨이다. 신앙과 교회에 대하여서는 아무것 도 몰랐던 그에게 삼일학교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어 신앙의 양분을 충분하 고도 넘치게 제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했던 유 목사는 외교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영어 도 잘해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역자로 세우길 원하셨고, 소원을 두시고 일하셨다. 졸업 후 그의 상황은 여전히 입학 때 못지않았다. 여러 신학교에 문의를 했지 만, 입학금조차 마련할 수 없었던 고학생을 받아줄 수 있는 학교는 없었다. 학비를 위해 농사일, 군대, 직장 생활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어렵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통해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소원했던 목회자가 되는 일이 유 목사에게는 정말 힘든 고된 훈련의 시간이었 다. 철저히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며,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구원에 철저하게 하셨다. 교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양교회는 이런 유 목사의 목회철학과 삶이 잘 반영된 교회이다. 예배당 건축은 뒤로 하고 이제까지 복음전파와 선교를 위 해 힘써왔다. 한 달에 7~800여만 원이 이런 사역으로 비용이 지출된다. 가장 시급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물으며 시작한 이러한 사역은 주의 복주심 을 통해 이제까지 많은 열매를 맺어왔다. 물론 이러한 사역은 목회자 혼자 계획하고 성도는 헌금하는 것으로 되어 지 지 않는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 특별하게 한양교회는 절기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여 나간다. 1월 신년을 비롯해 유월절-부활절, 오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대강절과 성 탄절 등등의 의미와 사역들을 해 나가다 보면 1년이 빠듯할 지경이다. 하지 만 성도들은 이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특별히 유병의 목사는 신학과 목회의 일치, 교회의 다양성이 존중된 가운데 의 하나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학교도 커리큘럼을 지속적으 로 보강하여 세상과 마주친 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을 제공하고, 교회 는 그 신학을 통해 성경을 충실히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합신 교단은 신학적 강점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므로 신학적으로 미비 한 교단들을 잘 섬길 줄 아는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유 목사의 생각 이다. 이제 곧 유병의 목사는 27년 목회 중 처음 안식년(6개월)을 떠나게 된다. 이 시간을 통해 유 목사와 교회가 더욱 깊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 영적, 교회 적 풍성함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함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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