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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no image 부르심에 순종하여 내일을 열어가는 노원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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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9 2008-12-31
부르심에 순종하여 내일을 열어가는 노원중앙교회 오늘은 노원구 공릉동에서 20년 넘게 지역에 복음을 전하며 숱한 어려움 속 에서도 든든히 세워져 가는 노원중앙교회를 만나보았다. 노원중앙교회는 1987년 처음 노병국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노원구 토박이 였던 노 목사는 젊은 시절부터 하던 사업을 접고 인생의 중후반 기에 목회 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릉동 지하 한켠에서 시작된 노원중앙교회는 이후 노 경준 목사가 부임하여 현재의 교회까지 이르렀다. 2대 노경준 목사는 노병 국 목사의 아들이다. 노 목사 부자는 교단도 달랐고 여러 환경이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못 되었다. 다른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노경준 목사는 노원중앙교회로 정식으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담임하던 교회로 부임하면 의례히 있어야할 메리트는 전 혀 없었다. 1997년에 부임한 노경준 목사는 많지 않은 성도에 열악한 재정상 황으로 처음엔 많은 고초를 겪었다. 보통 부자가 이어서 담 임하면 형언하기 어려운 많은 메리트가 있는 법이다. 사회에서 그러한 메리트를 너무나 쉽게 가지게 되는 부자 세습 목회를 비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노경준 목사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마치 시골의 아버지 교회로 전도유망한 젊은 아들 목사가 여러 꿈과 목회적 비전을 포기하고 주의 주신 사명을 묵묵 히 받드는 것처럼 노경준 목사는 그렇게 부임하였다. 노경준 목사는 이 일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할 겸, 부모님께도 효도할 겸 그렇게 결정하였다고 웃으며 회상하였다. 하지만,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이제 전도유망하던 청년이 깊은 기도와 큰 결심 끝에 신학을 시작하기로 결 심하고 합신을 졸업한 후 목회자가 되었는데 이러한 결정은 결코 쉬운 결정 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 목사는 노원중앙교회를 담임한 후 오랜 기간 을 함께 보내온 성도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현재 크게 기뻐하며 목회의 사역 을 이어가고 있다. 노원중앙교회 성도들은 불신자에서 성장하여 교회의 중직들로 성장한 성도들 이다. 또한 대부분이 노원중앙교회가 처음 등록하여 다닌 교회라고 한다. 노 목사는 이러한 성도들을 가족과 같은 믿음의 공동체라고 뿌듯해 했다. 이 들 성도들에겐 노원중앙교회의 모습이 교회이 교회의 모습이다. 이렇게 충성 스럽고 순수한 성도들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원중앙교회의 기둥과 힘 이 되었다. 심지어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청년자매들은 모든 신랑들을 이 교 회로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큰 교회에서 공동체에 녹아듦 이 없이 겉돌며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요즘 세태에서 이러한 노원중앙교회의 모습은 참으로 귀하다. 이러한 하나된 순수한 마음 때문에 주님께서 노원중앙교회를 지켜주시고 오늘까지 지역에 든든히 뿌리박은 튼튼 한 교회로 인도해 주신 것 같다. 노원중앙교회는 몇 해 전 그 동안 정말 익숙해져 있던 교회의 시스템을 바꾸 었다. 구역을 셀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흔히 큰 교회에 있는 셀하고는 사 뭇 다르다. 셀 리더는 추천받아 세우고 그 안의 구성원들도 나이와 지역을 고려하여 골고루 분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셀에 D12시스템을 접목시켰다. 성도들은 이전 나이별, 성별로만 구별되었던 구역에서 느끼지 못하던 많은 도전과, 체험들을 하였고, 말씀지식과 믿음의 측면에서도 크게 성장하였다. 노 목사는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순종하게 할 수 있 는가를 크게 고민하였다. 물론 이러한 교회의 훈련들을 통해 성도들이 신앙 생활의 행복을 느끼고 더욱 깊은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 또한 그 중 심 되는 기도제목들이였다. 교회의 조직을 바꾸고 이러한 필수적 목적들이 잘 적용되어져 나아가는 것 을 보며 노목사와 성도들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노원중앙교회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교회의 규모에 구애받지 않는 선교에 힘을 쓰는 교회 이어왔다. 10여 년 전부터 매년 늘려온 선교사와 기관후원 은 이제 교회 입구를 선교편지로 도배할 만큼 풍성하여졌다. 여러 곳에 지출 될 교회 재정을 꼼꼼히 아껴서 선교에 힘을 쓰며 셀로 전환된 후로는 각 셀 들이 직접 선교후원헌금을 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음전파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이 일을 사모하게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자가 본 노원중앙교회는 예전 어릴 적 보았던 시골교회 의 푸근함이 가득한 교회이다. 도시의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지만 교회의 느 낌은 옛 교회들의 순수함과 정스러움이 가득 묻 어났다. 이러한 장점으로 지 역에 굳게 뿌리내려 믿음의 유산을 크게 남기는 노원중앙교회가 되길 기자 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노원중앙교회 주소 : 서울시 노원구 공릉1동 633-1 (02)973-7407
112 no image 역경을 넘어 진정한 은혜를 경험하는 풍산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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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3 2008-12-09
역경을 넘어 진정한 은혜를 경험하는 풍산교회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때 모든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력하는 자만이 신앙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을 위하여 뿌린 자 가 성령으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얻는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모든 수확의 관건은 뿌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 나게 하는 땅에 있다. 만나를 열심히 거두는 자가 풍성함을 누릴 수 있지만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신앙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히 경험하고, 그러한 믿음의 증거를 강력히 증거하는 고양시 일산구의 풍산교회를 만나보았다. 풍산교회는 일산 장항동에서 처음 도명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일산 장항동의 창고와 공장들 사이에 조그만 부지에서 시작된 도명교회는 설립한 목회자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어 목회자가 없는 교회로 폐쇄될 위기 에 처했으나 정규상 목사의 부임으로 복음 전파의 끈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 다. 하지만 정규상 목사 부임 당시 교회엔 성도가 한 명도 없었으며 설상가상 주 변 지역의 창고와 공장의 인력들도 나날이 줄어가 위기의 상황은 계속 되었 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풍산교회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계속 맡겨 주셨다. 주의 은혜로 교회의 부지를 얻은 정규상 목사는 지금의 풍산동에 교회를 이 전하였고, 아름다운 예배당도 건축하고 성도들과 은혜의 삶을 나누고 있다. 정 목사의 삶은 이러한 위기를 넘는 주님의 훈련으로 가득찬 삶이다. 구한 말 조부 때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정 목사는 유교의 분 위기가 팽배하던 그 시절부터 제사가 뭔지 조차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잠시의 방황은 그에게도 찾아왔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부러울 것이 없던 정 목사는 급기야 교회조차 잘 안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를 그대로 놓아두시지는 않았다. 원인도 모르는 난치병인 척추염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었고 1년 가까이 병원들을 전전하다 포기하고 주님께만 맡기기로 한 끝에 기적적인 치료를 받 게 되고 합신을 통해 신학을 공부하고 주님의 종 으로 부름 받았다. 목회와 삶 자체가 주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정규상 목사는 올 해로 57세를 맞았지만 그의 모습과 생각은 여전히 젊은 목회자의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지병으로 당뇨를 갖고 있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와 운동 덕분으 로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 목사의 왕성함은 목회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 어려운 아파트 전 도에 많은 교회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뚝심의 전 도는 교회가 많은 이 지역에서 풍산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강점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솜사탕을 나누며 복음을 전하는데 어느 때에는 어른이 어린이 보다 더 많이 솜사탕을 받아 간다고 한다. 성경 공부에도 정 목사의 열정은 그대로다. 좋은 교재들과 프로그램들이 많 이 있지만, 정 목사는 성도들에게 때로는 시리즈로, 때로는 주제별로 말씀 을 강론하며 성도들을 성장시켜 왔다. 또한 풍산교회는 새벽기도에 많은 힘 을 쏟는 교회이다. 금요심야기도회가 늦은 시간까지 이루어지지만 토요일 새 벽기도를 쉬는 법이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역은 풍산교회의 설립 이념에 따라 이루어졌다. 가르치 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 치료하는 교회, 세 가지 이념은 교회의 여러 예배 와 훈련들에 고스란히 담아져 성도들에게 전달된다. 정 목사의 설교에도 이 러한 강조점들은 균형 있게 강조되어 나타나며 벌써 선교사 1명을 파송하는 성과를 남겼다. 현재 후원하고 있는 9명의 선교사 및 다른 기관들에도 더욱 그 사역을 확장할 예정이다. 어떤 교회라도 장애는 있기 마련이다. 불모지와 같았던 장항동에서 풍산동으 로 이전하여 어려운 고비를 힘차게 넘어온 풍산교회는 이제 교회 부지가 재 개발로 수용되는 두 번째 고비를 맞았다. 현재 풍산교회는 이러한 문제로 깊 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는 중이다. 정 목사는 이러한 일들을 단 순히 법적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교회가 더 욱 새롭게 변모해야할, 변모할 기회로 바라보고 있다. 부지가 수용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풍산교회는 좀 더 전원의 모습을 보 존한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여 다가올 노령화 사회까지 감당할 교회로 변모한 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어려운 시간들을 통해 단단한 교회로 성장한 풍산교회가 더 욱 주님의 은혜 를 풍성히 나누는 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11 no image 그리스도의 성숙과 부요를 함께....-와우리제일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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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1 2008-12-03
그리스도의 성숙과 부요를 함께 누리는 교회 - 와우리제일교회 오늘 찾아가 만나볼 교회는 와우리제일교회이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위 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자리매김한지도 벌써 22년째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화성시는 전국을 두려움에 몰아넣었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고, 몇 년 전 일어났던 여대생 실종사건도 교회에서 얼 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교회를 방문했을 때 에는 대도시 아파트촌을 방불케 하는 광경에 그런 ‘공포의 추억’은 상상하 기 힘들었다. 하지만 와우리제일교회가 처음 설립될 무렵 화성시와 봉담읍은 농지와 산지 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도시외곽의 전원마을이었다고 한다. 여러 엽기적 사건 들이 일어날 만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척박한 곳에 처음 교회를 설립한 것은 고재민 목사이다. 주 안에서 든든히 사역을 이어오던 중 평택 늘소망교회에서 사역하던 이용전 목사를 눈 여겨 본 끝에 2001년 5월 와우리제일교회 2대 목사 로 세우게 되었다. 이용전 목사는 주변 지역이 개발로 한참 소란하고 교회도 어느덧 설립 20년 이 다가오게 되자 과감히 예배당을 새로 건축할 계획을 잡고 온 성도들과 한 마음으로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이용전 목사는 특이한 전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원래 철도청의 기관사이다. 어린 시절 철도고와 철도대학을 졸업하고 철도청(지금의 철도공사)의 훌륭 한 간부로 쾌속 승진을 거듭하던 그였다. 20대 중반 그야말로 잘 나가던 그 는 아름다운 아내도 맞이하여 부러울 것이 없던 그이다. 당시 철도청이 인재를 키우느라 다른 회사에서 10년 걸릴 승진이 그것의 반 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시절에 철도대학 출신인 이 목사의 미래는 맑은 가을 하늘 처럼 쾌청하기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철도청의 훌륭한 기관사로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 다. 예수님의 구원열차의 차장으로 부르신 것이다. 성전 문지기의 삶을 왕으로서의 삶보다 훨씬 사모했던 다윗처럼 이 목사도 주님의 소명을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했다. 회사에서 기안을 작성하다가 주님 의 십자가와 그 은혜가 생각나서 눈물이 떨어질 때 아무도 없는 빈 객차 안 에서 빈 의자를 적시며 기도했다. 하지만, 젊은 남편과 행복한 단 꿈을 꾸고 있던 아내에게 이것은 마냥 기쁜 일 만이 아니었다. 이 목사 부부는 하나님께 몇 년을 기도하며 한 마음이 되 길 소원한 끝에 93년 합신에 입학하여 주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와우리제일교회는 성도가 50여명 조금 넘게 모일 때 교회당을 건축했다. 건 축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교회당이 지어진 면면을 보면 얼마나 성 도들의 헌신이 대단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와우리제일교회 표어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크다는 의미의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그리스도의 성숙과 부요를 함께 누리는 교회’이다. 이 목사는 성도들을 전도에 동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도가 양육되어 성 숙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도가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이것을 위해 이 목 사는 목장시스템으로 교회구역을 개편하고 여러 교회의 좋은 시스템들을 연 구하여 와우리제일교회에 맞는 새로운 목장시스템으로 재구성하였다. 성도들이 목장들을 통해 성숙하며 동시에 많은 전도도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목사의 시도는 성공적 이라고 볼 수 있다. 특별히 이 목사가 주의를 집중하는 부분은 ‘즐거움의 사역’이다. 목장이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정작 목장 리더가 혹은 전도하는 사람이 주 안에서의 즐거움이 없다면 그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와우리제일교회가 이렇게 교회 내부적으로는 잘 성장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 지역적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한다. 주변 아파트지역 공사와 입주도 아 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 지역사회에 깊이 참여하기는 아직 힘든 부분이 많 다. 하지만 유초등부주일학교 방과 후 사역으로 꿈의 학교라는 21세기 리더 양 육 학교를 곧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여러 필요한 인력과 시설들을 거의 준 비해 놓았고 이제는 지역의 준비만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이 목사는 와우리 성도들을 목사의 리더십을 존중해 주는 성도들이라며 칭찬 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을 텐데도 언제나 기쁘게 순종하는 성도들을 볼 때 너무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농담으로 성도 300명이 될 때까지만 있고 그 이후엔 떠나시라고 했지만 이 말 속에는 지금의 성도들과 함께 거하며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기뻐하 는 이 목사의 성도에 대한 사랑이 숨겨져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성장해온 와우리제일교회가 앞으로 더욱 든든한 지역의 구원열차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10 no image 제한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평화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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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1 2008-11-05
제한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평화의 교회 하나님께서는 제한 없으신 능력으로 우리를 다듬어 가신다. 세상에서 하나님 만큼 뛰어난 조각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단단한 재료라도 주님 의 망치와 끌 앞에서는 그저 석회석 같은 존재일 뿐이다. 모든 주의 백성들을 자신의 뜻대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도구 로 사용하기 위해 당신의 목적에 합당한 모습으로 철저하게 준비시켜 나가신 다. 때로는 그 단련함이 극도로 힘든 과정일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그 주님 의 손길은 위대한 작업을 이루어 내신다. 오늘은 주님의 능력으로만 세워져 가기를 원하는 은평구 역촌동에 위치한 평 화의 교회를 만나보았다. 평화의 교회는 올해 10월로 3주년이 되는 개척교회이다. 담임목사인 서영주 목사는 강도사 시절 이 교회를 개척했다. 서 목사는 원래 개척에 별로 뜻이 없었다. 대부분 그렇듯이 강도사였던 서 목사 역시 사역할 교회를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 러운 대형 교통사 고는 서 목사로 하여금 더 이상 교회 찾는 일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6개월 이 넘도록 허리와 목을 다쳐 병상에 있었던 서 목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 무엇인가 기도하면서 깊이 묵상하던 중 빨리 개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큰 단련함으로 시작한 평화의 교회는 이제 6가정이 함께 하는 어엿 한 '교회'이다. 처음 병상에서 일어나 개척하였을 때에는 부모님과 서 목사 부부, 두 자녀 가 전교인이었다. 하지만 절친했던 한 청년 자매가 서 목사가 개척했다는 소 식을 듣고 교회에 바로 등록하게 되었고, 결혼 후 남편과 시부모까지 전도하 여 교회를 세워가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미약한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 시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여러 성도를 은혜 가운데 보내주셔서 지금 의 단란하고 평화로운 교회로 성장시키신 것이다. 서 목사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았다. 우상숭배가 완연했 던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서 목사는 사춘기 시절 잠시 방황하기도 하였지만 목포해양대에 입학하여 열심히 꿈을 키우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하나 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끈질긴 구애에 군 복무를 마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합 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로 부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금도 다듬어져 가고 있다는 서 목사가 가장 중 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요체는 하나님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다는 ‘절실 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인간의 죄성을 치유하고, 살 길로 인 도하실 수 있다는 십자가 중심주의, 신본주의 이다. 목회 초기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님의 큰 위로하심 도 함께 받은 서 목사에게 이러한 절실함은 어쩌면 당연한 신앙의 고백일 것 이다. 평화의 교회의 특색 중 하나는 어린이를 위한 주일학교가 강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상 숭배의 폐해를 많이 보고 자란 서 목사는 어린이들이 그리스 도를 아는 지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깊이 각성했다고 한 다. 그래서 평화의 교회에는 주일 오전과 오후 두 번 주일학교 예배가 있다. 성 경공부 내용도 구원, 성화와 같은 성경의 핵심 되는 주제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믿음으 로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일이라 생각되어 모든 주일학교 학생들을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생각하며 사 랑으로 지도한다고 강조하였다. 평화의 교회에 평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예배당에는 별도의 식당 공간이 없어 주일 예배 후 많은 애로점이 있다. 또한, 이것은 지역 노인들에 게 식사를 대접하며 지역 봉사를 하고자 하는 성도들을 힘들게 하는 주요 부 분이다. 그래서 현재 한 분의 노인 밖에 식사를 대접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는 서 목사와 성도들은 보다 넓은 곳으로 이전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서 목사는 합신축구단 카페지기를 맡고 있다. 승자에게, 패자에게 모 두 위로가 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서 목사는 지나치게 경직되 기 쉬운 목회자들에게 모두를 품는 이러한 마음은 목회할 때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들꽃 같은 생명력으로 오늘까지 이어온 평화의 교회 가 솔로몬의 옷보다 아름다운 들꽃으로서 주의 평화의 복음을 지역과 세계 에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09 no image 信行一致로 지역과 총회를 선도하는, 남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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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1 2008-10-22
信行一致로 지역과 총회를 선도하는, 남문교회 새벽녘까지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긴 여름이 끝나고 드디어 가을이 찾아왔 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의 위세도 묵직해지는 열매들과 붉게 물들어가 는 단풍잎들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하다. 때를 따라 자연을 입히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이렇게 늘 계절의 진미 를 空(공)으로 맛본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때라 하지 않던가? 좋은 가을 의 때에 주께서 주시는 말씀과 은혜로 우리의 영혼도 풍성함을 얻어 가을의 수확물처럼 어려운 때를 이겨내는 귀한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남문교회를 만나본다. 개혁신보 독자들도 대 부분 알다시피 2008년도에 새롭게 총회장으로 선출된 이선웅 목사가 담임하 고 있는 교회이다. 관악산 끝자락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산기슭 도로변에 위치한 남문교 회는 도시에 있는 교회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와 함께 깨끗한 시골 스러움이 늘 묻어나는 정스러운 교 회이다. 소탈한 이선웅 목사와 충성된 성 도들이 모여 3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로 이루어왔 다. 남문교회는 1981년도에 설립되었다. 이선웅 목사가 합신 3학년 때의 일이 다. 3년여 정도 부교역자 생활을 했던 당시 이선웅 전도사는 복음의 열정으 로 독산동 남문시장 입구에 건물을 임대하여 남문교회를 설립했다. 고 박윤선 목사의 설립예배 설교로 시작해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답 게 성장해 나가던 남문교회는 건물주의 전세금 인상 요구에 담대하게 그 건 물을 나와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지금은 처음 예배당이 있던 곳에서 이전하 여 새롭게 건축한 예배당에서 내실 있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긴 세월동안 흔들림 없이 남문교회를 이끌어 나가고 우리 총회를 이끌어 나 가는 총회장으로 세움 받은 이선웅 목사이지만 가정적으로는 힘든 환경에 많 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선웅 목사는 황해도 송화 출신이다. 6.25 전란 동안 더 이상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 목사 의 부모는 월남을 결심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피난 중에 이 목사의 부친과 형 2분은 도 중에 북한군에 붙잡혔고, 결국 모친과 누 이, 그리고 이선웅 목사만 월남할 수 있었다. 이때가 이선웅 목사 8세 때의 일이다. 다 같이 어려웠던 시절에 월남 가족, 그것도 모친과 누이만 있던 이선웅 목 사의 어린 시절은 특별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 목사는 ‘내 아들아, 너는 꼭 목사가 돼야 한다. 내가 늘 하나님께 기도한다.’라는 부친의 말씀을 기 억하고 주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따라 합신을 2회로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 다. 남문교회는 설립이념이 확고한 교회이다. 긴 시간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원칙 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 회’가 되자는 것이다. 예배와 전도를 통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주의 백성을 양육해 내는 것, 그리고 이 시대가 주의 잣대에 비추어 가장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이선웅 목사는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전문적으로 어 린이 교육을 전공한 백원숙 사모와 교사들 그리고 사랑이 많은 자원봉사자들 과 함께 남문어린이집,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더욱 많 은 공간을 제공하여 세상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교회의 품에서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교회당을 더욱 크게 확장하여 이전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신행일치’ 또한 이선웅 목사의 가장 핵심 되는 목회방침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하 지 못한 현실의 문제는 신앙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때문이라 는 것이다. 이선웅 목사는 이것이 회복되면 교회에 대한 신뢰와 칭찬도 다시 금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문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지향하지만 또한 기쁨이 넘치는 교 회이기도 하다. 전국 여전도회 수련회를 2차례나 섬기고 새가족 초청 잔치 때마다 많은 지 역 어르신들을 모셔 식사를 대접하면 봉사에 지칠 만도 한데 성도들은 오히 려 그 일들로 기쁨이 넘친다. 그러한 기쁨과 활력은 금년에만 114명을 전도 하는 열매로 나타났다. 이선웅 목사는 참 착한 성도들이 기쁘게, 재미있게 봉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했다. 총회장으로서 이선웅 목사는 개혁의 3대 이념, 즉 초심을 잃지 말자라고 강 r 조했다. 여러 어려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25주년 대회와 제직수련회를 하면서 3천여만 원 이상을 남겨 재정적 어려움 을 극복하면서 이러한 확신이 더욱 강력해졌다. 봉사활동을 활성화하여 여 러 사업에 대한 약속도 꼭 지키는 총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남문교회와 이선웅목사가 지역과 총회에서 더욱 크게 쓰임 받기를 기 대한다. (이은숙 기자)
108 no image 선교의 비전과 기도의 힘이있는 교회 - 장안중앙교회(최일환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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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0 2008-10-07
선교의 비전과 기도의 힘이있는 교회 장안중앙교회(최일환 목사)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고 말씀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 믿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불확실성을 붙잡는 것일 것이다. 불확실한 상 황, 불확실한 미래가 있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경의 지침을 신뢰하며 한걸음씩 전진할 때 주께서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의 예정과 섭리적 인도하 심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지로 인도하신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의 모습에서는 점점 믿음보다 ‘환상’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 믿음이 발을 내딛기보다 환상을 보고, 다른 말로 하면 주의 뜻을 알 고 안전하게 전진해 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그 일의 성공여부가 그 일이 ‘주님께 순종하는 것인가’하는 측면보다 훨씬 강조되 다보니 미래를 알기 원하는 인간의 욕구가 기도로 둔갑한다. 오늘은 주님의 부르심을 순종하여 모 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주의 교회를 개척 하여 오늘까지 복음 전파에 매진한 수원 장안중앙교회를 만나본다. 장안중앙교회는 1985년 새생활교회라는 이름으로 최일환 목사에 의해 설립되 었다. 소아마비 장애를 안고 있는 최일환 목사는 강도사였던 28세에 교회를 개척했다. 연소한 나이와 장애 때문에 수 없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도와 선 교를 위한 주의 뜻에 순종하여 굳건하게 교회를 목회했다. 목사 안수가 만 30세에 이루어지는 교회법에 따라 3년을 기다리는 동안 성도가 20명 정도로 늘어나자 교회를 향한 주의 뜻을 더욱 확신하고 힘 있게 사역을 펼쳤다. 최 목사는 목사 안수 후 2년 만에 바로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20평 상가건물 에 있던 장안중앙교회로서는 교회당 건축은 꿈만 같던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기대와 상상을 뛰어넘었다. 당시 교회 건축재정은 2,000만원이 고작이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건축 하는 한 집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집사는 마침 자신의 아들 목사의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8,000만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약금 1,000만원, 중도금 1,000만원만 일단 받고 건축을 시작하게 된 것이 다. 남은 금액은 매년 1,000 만원씩 상환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건축은 4년 만에 이루어졌다. 장안중앙교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로 주의 사역을 이어왔다. 교회당 건 축뿐만 아니라 다른 사역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을 통해 풍성함을 누 려왔다. 장안중앙교회의 중국 선교는 이러한 사역 원리의 한 좋은 예이다. 중국선교사들과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며 기도하던 중 보내는 선교를 감당하 겠다고 서원하고 최 목사 부부와 아들이 3,000원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선교 의 시작이다. 지금은 교회 재정의 30%를 선교비로 지출하고 있으니 하나님 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최일환 목사의 목회 철학은 뚜렷하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사람, 땅 끝까지 선교하는 교회(엡 4:11-13)가 장안중앙교회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안중앙 교회는 성경공부에 열심이다. 구원에 관한 주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선교 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알기 위해 말씀 을 파헤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선교와 교회사역을 위해 장 안중앙교회는 무엇보다 중보기도에 진력중 이다. 주의 사역은 하나님의 뜻과 기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매튜 헨리 의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기 전에 반드시 기도부터 시키신다. 최 목사에게 사역의 관건은 기도이다. 월요일에는 신학교(C국 H신학교, 인도 샤론목회대학원, 탄자니아 은종배신학 교)를 위한 중보기도모임을 가진다. 화요일은 목회자와 기도가 필요한 성도 들을 위해 천국열쇠중보기도모임을 만들었다. 목요일은 북한과 탈북자들을 위한 기도 모임, 토요일은 주일 예배와 설교자 및 예배 준비위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한 매년 선교를 위한 기도를 위해 모든 성도들에게 200여 국가들을 하나씩 배정하여 1인 1국가 중보기도를 감당하고 있다. 최 목사는 충북 괴산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성도들도 충청도 출신들이 많다 고 한다. 몸이 불편한 목사를 아무 내색 없이 잘 순종하고 잘 보살펴 주어 주의 사역에 지금까지 한 번도 어려움이 없었다. 순박한 충청도의 후덕함이 잘 드러난 것일까? 무엇보다 최 목사와 한 마음으로 기쁘게 주의 사역을 감 당한 성도들의 믿음의 열매일 것이다. 장애에도 불구 하고 최 목사는 합신 총회 선교회(PMS) 이사와 특수지역 신학 교 교장, 광야장애인 선교회 이사와 수원 중부경찰서 경목위원장 등을 맡아 복음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뜨거운 선교와 기도로 장안중앙교회가 더욱 주의 뜻을 잘 이루어가길 기자 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07 no image 호산나교회 설립30주년 제자훈련 20주년 기념교회-장유호산나교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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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5 2008-09-24
장유호산나교회 호산나교회 설립30주년 제자훈련 20주년 기념교회 복음의 불모지 부산에서 주님의 복음을 뜨겁게 전하여 온 호산나교회가 이제 새로운 도 전을 시작했다. 1977년에 교회가 설립되고 1987년 최홍준 목사가 부임하여 제자 훈련 을 시작한지 20년 만이다. 여러 선교사를 파송하고, 1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부산호산나교회와 최홍준 목 사는 늘 새로운 개척교회를 설립하기를 소망했다. 이미 교회의 재정적 여력과 여러 상 황들은 새로운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와 복음과 헌신으로 무장한 제자 들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린 것이다. 장유호산나교회는 이러한 설립의 비밀을 지니고 김해시 장유읍에 설립되었다. 장유는 부산에 있어서 서울의 분당과 같은 신도시 지역으로, 현재 인구는 10만명, 현재 교회 가 세워진 지역에 올해 11월부터 입주가 시작되면 15만의 신도시로 발전할 예정이다. 총공사비는 19억여원이 투입되었으며 호산나교회가 220억에 달하는 부채가 있음에도 교 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기쁨으로 감당했다. 비록 복음화율 10%도 안 되는 지역에 설립되었지만 그리스도의 헌신된 제자들로 시작 한 장유호산나교회는 결코 미약하지 않다. 이미 호산나교회에서 주님의 강한 풀무질로 단련된 담임목사 최상근 목사의 복음 열정은 이러한 지역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최상근 목사는 호산나교회에서 27년간이나 성도로 교역자로 양육 받고, 양육을 했다. 긴 시간은 최홍준 목사의 목회철학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 의 입장에서 철저히 이어 받게 했다. 청년부로, 교사로, 교육전도사로, 전도사로 주님 의 사역을 이어오던 중 장유호산나교회를 설립할 때 준비된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 은 것이다. 그래서 최상근 목사의 목회철학은 최홍준 목사의 목회철학과 동일하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훈련과 양육을 통해 성도를 섬기며, 전도와 나눔을 통해 세상을 섬기 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호산나교회에서 이러한 목회철학에 따른 양육 프로그램들과 훈 련 코스들에 익숙한 최상근 목사이기에 장유호산나교회에서의 사역도 목회철학의 혼란 r 없이 잘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목적은 같으나 상황은 다르다. 호산나교회와 목회철학을 공유했지만 장유는 부산과는 다른 밭이다. 복음화율이 저조한 것도 문제지만 장유 지역은 젊은 세대가 특히 많이 사 는 곳이다. 40대 이하가 거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장유에서 모든 세대가 고르게 분포 하고 있는 호산나교회의 상황처럼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상근 목사는 장유호산나교회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했다. 장유의 10%의 영혼 을 책임지고 믿음의 다음 세대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때 교회는 본질이 흐려져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최상근 목사는 장유호산나교회가 특별히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이를 위해 다음 세대와 성도간의 강한 멤버십에 특별히 집중하는 교회가 되 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문화적 타락과 죄의 유혹을 가장 강하게 받고 있는 청소년들 을 영적 동역자로 세우고 소그룹을 통한 모든 성도들의 친밀한 영적 교류가 이루어지도 록 하는 것이 다. 또한 소그룹을 전도의 통로로 사용하여 새롭게 전도된 영혼이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이다. 현재 장유호산나교회는 약 70여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7월 20일 설 립예배를 드린 후 거의 매주 2~3명의 성도가 등록했다. 4명이던 유초등부 주일학교도 벌써 20명을 넘어가는 주일이 늘어가고 있다. 최상근 목사는 장유야말로 복음의 황금어 장임을 실감한다고 밝혔다. 출석할 적절한 교회가 없어 인근 김해나 창원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예배하러가던 성도 들도 교회를 찾고 있으니 장유호산나교회의 위치는 교회로서 최상의 입지조건을 갖추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유호산나교회의 성도들은 벌써부터 담임목사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하다. 환한 미소 로 성도를 맞아주며, 진지하게 성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눈물로 기도하는 목사님 이라고 자랑한다. 최홍준 목사는 설립예배에서 복음의 열정을 가지라고 설교했다. 최상 근 목사와 성도들은 이러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을 더욱 계속 불타오르게 할 성령의 충만을 늘 기도하고 있다. 장유호산나교회가 말씀 을 지켜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섬김과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장유 온 지역에 크게 전하는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제 2의, 제 3의 호산나교회가 설립될 때까지 아름다운 모델교회로 세워 지기를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106 no image 전도와 선교의 열정으로 승리하는 안디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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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4 2008-09-02
전도와 선교의 열정으로 승리하는 안디옥교회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파송하였던 초대교회의 선교 전초기지, 안디 옥 교회를 본받아 이 시대의 영적 이방인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설립 된 노원 안디옥교회가 이번 9월로 10주년을 맞이한다. 작년 새 예배당과 교육관을 건축하고 더욱 확장된 주의 사역에 전심을 쏟고 있는 안디옥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선교와 지역 전도에 힘을 썼던 교회이다. 지금도 교회의 6면 주보 중 2면 전체가 선교 관련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 정 도로 안디옥 교회의 선교의 사명감은 투철하고 절실하다. 안디옥교회를 설립 한 이종길 목사는 설립 초기 5-6개월 동안 사례비도 못 받는 상황에서도 2명 의 선교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 때 후원한 2명의 씨앗은 이제 21명의 선 교사와 여러 곳의 선교단체를 후원하는 열매로 결실하였다. 이종길 목사는 신학 초기 선교사를 소원하며 사역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하 나님의 인도하심이 해외 선교가 아닌 국내 선교와 보내는 선교임을 깨닫고 설립 초기부터 선교 마인드가 특별한 교회를 설립하였다. 경제적으로 심각 한 어려움은 계속 되었지만 때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안디옥 교회 는 서울 지역 다른 교회들보다 훨씬 이르게 예배당을 건축하는 ‘누르고 흔 들어 넘치게 하시는’ 주의 복을 맛보았다. 이종길 목사는 원광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합신을 통해 주의 사역자로 부 름 받았다. 원광대에 있던 익산C.C.C에서 학교 측의 온갖 핍박과 방해를 받 으며 신앙생활을 했던 이 목사는 두려움 없는 주의 종으로 잘 연단되어 주께 서 쓰시기에 좋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었다. 어려운 교회 형편 때문 에 전세 집을 작게 옮겨 가면서 살림살이들을 많이 버려야 했지만 오히려 그 때 생긴 여유자금으로 주변 어려운 교회들에게 전도지를 무상으로 인쇄해 주며 함께 주의 사역을 위해 전진할 것을 격려했을 정도로 이 목사는 ‘경 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목사의 경영 무관심은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크게 경험하는 믿음 의 증거가 되었다. 교회 부지를 매입하고 예배당과 교육관을 건축하면서 은 행 문제와 법적인 문제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건축비용과 내부시설비 용은 모두 헌금으로 채워졌다. ‘힘든데 또 괜찮다. 선교하다 어려운데 하나 님이 채우시지 않겠는가?’ 라는 이 목사의 표현대로 하나님께서는 능력으 로 함께 하셨다. 안디옥교회의 전도는 열심을 넘어 지독한 수준이다. 화요일에 시작되는 커피 전도, 목요일에는 빵 전도, 토요일에는 교회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며 전도한 다. 7여 년 동안 이어온 커피전도는 하루에 600~800여명에게 복음을 전한 다. 커피 타는 팀, 나누어주는 팀, 사무실이나 상가에 배달하는 팀으로 나누 어 하다 보니 이제 전도팀들이 자신의 사역에 모두 전문가들이다. 거부하거 나 부담스러워하던 주민들은 이제 의례히 전도지와 커피를 받아들고 전도하 는 성도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기까지 한다. 목요일에 빵 전도를 위해 안디옥교회는 빵 굽는 기계까지 구입하였다. 구원 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는 전도대상자들에게 영혼과 육신의 빵을 공급하며 그 생명들을 위해 특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토요일 교회 마당의 잔치는 특별 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것이다. 팝콘과 슬러시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 게 준비해 놓고 교회와 복음에 대한 벽을 허물 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안디옥교회의 전도는 교회 내에 많은 새신자들을 있게 했다. 또한 변 화된 새신자들을 보며 기존 신자들이 도전받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제 부활절 달걀도 10,000개나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특별한 훈련 프로그램 없이 흔한 전도 세미나 한 번 받지 않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이지만 가장 중요 한 영혼 사랑을 가지고 있기에 발생하는 장애들은 단지 기도제목일 뿐이다. 이종길 목사는 이러한 모든 사역의 힘의 근원은 예배라고 단언하였다. 안디 옥교회의 예배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기도와 찬양의 뜨거움이 늘 살아있는 예배를 만든다고 한다. 기자가 보기에도 특별할 것 하 나 없는 전통적 예배지만 그 순서 하나하나 마다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 배가 사람을 성도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요즈음 교회들은 여러 프로그램들로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 요한 가치들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다. 안디옥교회를 통해 교회 의 가장 중요한 가치의 엄청난 힘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하나님의 끊임 없 는 공급하심이 안디옥교회와 함께 하시길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05 no image 인내와 순종으로 부르심에 답하는, 늘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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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0 2008-08-26
인내와 순종으로 부르심에 답하는, 늘사랑교회 남아프리카의 장로교 선교사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는 성령 충만은 자 신의 전체를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 고 그 일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시간을 들여 훈련시켰던 것처럼 준비가 필요 한 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인스턴트식 사회에서 시간과 기다림을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조차 이러한 시간과 기다림 을 회피하고 사람을 성도로 급조해 버리는 시도들과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다. 좋은 식사를 먹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지 못하면 그에겐 패스트푸드만 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성향에 맞는 교회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성도나 하나님이 주 신 교회를 찾는다며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랑하는 사역자들에게 온전한 복종 과 기쁨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수도 있다. 오늘은 도시화의 파도 속에서도 고양시 한 켠에서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 해 묵묵히 오랜 시간동안 자리매김하고 있는 고양시 고양동의 늘사랑교회를 만 나본다. 늘사랑교회는 1991년 11월 하학철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 목사는 웨스 트민스터 신학원을 졸업하고 장신 측과의 교단통합 후 중서울노회의 일원이 되었다. 원래 서울 한남동 일원이 생활권이었던 하 목사는 주님의 부르심에 답하는 마음으로 이 곳 고양동에 주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하 목사는 고1 때 친 형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이 중도에 신 앙생활을 잠시 놓아버리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신앙을 이어오던 하 목사는 교회 선배들이 신학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도전을 받아 신학을 공 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도에 의해 교회에 오게 된 초신자였지만 그 선배들의 진지한 말씀 탐구의 노력에 자신도 ‘주님을 좀 알아야겠다!’라는 의지로 신학수업을 도강(?)하 면서 까지 공부를 했다. 이러한 열의는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신학교 진학 으로 이어져 목회자의 길을 걷게 하였다. 늘사랑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비롯한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라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 도 교회에 많은 환자들이 있 다고 한다. 그 환자들 때문에 병원을 심방하다가 또 성도를 얻게 되고, 이러 한 일이 반복되면서 몸이 힘든 분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다. 불편한 몸이지만 늘사랑교회의 성도들은 그 안에 갇히지 않고 함께 모여 기 도하며 위로하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겠다고 늘 다짐한다. 오히려 동병상련이 라고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린 아이부터 청년들까지 대부분 늘사랑교회를 떠나지 않고 한 곳에 서 자랐기 때문에 하 목사는 진정한 영적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초등부 아이들은 목사님을 보면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쿡 찌르고 도망 가며 목사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이들이 자라 서 반주하고 찬양을 인도하고 교사로 봉사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하 목사는 큰 기쁨을 느낀다. 하 목사의 말씀의 중심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과연 믿느냐에 항상 가까이 수 렴된다. 하 목사는 요즈음 말씀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느냐’로 이동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고 만났다 고 하는 성도들이 계속적인 믿음 생활을 이 어가지 못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전했다. 짜릿한 경험, 성령의 능력 체험은 많아도 예수 안의 굳건한 믿음을 이어가 는 측면이 너무나 축소되어버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 목사의 설교는 ‘그리스도를 만나자. 만났으면 믿자. 믿을 때는 계속 더욱 깊이 확실히 믿자.’로 요약된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어지 는 설교로 구속사적 전망을 계속 펼쳐가며 믿음의 여정을 그려내는 하 목사 의 설교는 성도들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다.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는 또는 개척하고자 하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하 목사 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것은 후배들이 너무 쉽게 빨리 포기한다는 것이 다. 주님도 30년을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키우기 위해 3년이나 같이 동거 동 락했는데 그러한 시간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하 목사는 “버텨라, 버티면 산다!”라며 후배 목회자들이 주님 안에서 인내 의 시간에서 승리하여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늘사랑교회의 비전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내, 그리 고 성령과 능력이 늘사랑교회와 늘 함께 하시길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04 no image 광야에서 영생의 샘물을 나누는 광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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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9 2008-08-20
광야에서 영생의 샘물을 나누는 광야교회 어느 사회나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수가 적을 때에는 개인적인 의지와 도움으로도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의 급속한 확산은 어려운 사람들의 수 자체를 늘려 놓았을 뿐 아니 라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구제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또한 가정의 해체는 경 제적 어려움 위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더해 주어 많은 가장들과 가족들을 거 리로 나와 앉게 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펼쳐온 영등포 광야교회가 어 느덧 21주년을 맞이하였다. 그 사이 쪽방촌 3평 남짓의 판자촌에서 시작했 던 예배당은 아름다운 홈리스복지센터로 확장되었고 쪽방촌 식구들 뿐 아니 라 매일 1,5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의 영육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서울의 ‘광 야’가 되었다. 광야교회의 사역은 하나의 기적이다. 가진 것은 오병이어였지만 이 교회의 손으로 펼쳐 나가는 사역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는 주님의 능 력으로 만 가능한 사역이다. 임명희 담임목사는 교회의 재정 상황에 관하여 눈을 감 은지 이미 오래다. 매월 3~4,000여만 원의 예산으로 움직이는 광야교회이지만 자체적으로 조달 되는 예산은 1,000여만 원 남짓이다.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을 대접하기로 고집하는 믿음의 뚝심과 기도는 조지 뮬러의 기도처럼 늘 응 답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주의 복 주심의 증거를 이루어냈다. 임명희 목사는 처음 중국 선교사를 작정했었다. 합신을 졸업하고 ‘선교사 로 나갈 사람이 전도를 못하면 되겠는가? 하는 생각에 청량리를 비롯한 여 러 곳에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을 전도하던 중 그 사람이 영등포 역 옆 쪽방촌에 산다는 말을 듣고 꼭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대로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한 것이 임 목사의 사역의 출발점이 되었 다. 처음 쪽방촌을 방문하였을 때 임 목사가 받은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술을 먹고 쓰러져 있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한 사람 이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병의 고통에, 마음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 로 임 목사는 눈물과 의분으로 한 없이 기도하였다. 곧 한 노숙자와의 약속 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흔들림 없는 사역을 이어오 고 있다. 1987년에 설립된 광야교회는 2007년 오랜 숙원이던 홈리스 복지센터와 예배 당을 마련하였다. 이곳은 노숙자들의 식사,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숙 소와 의복, 교육, 취업 알선까지 제공한다. 물론 믿음과 교회 생활을 통한 근본적 문제 해결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사역이다. 임 목사는 노숙자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식사나 의복 같은 것이지만 그들에 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전한다. 직장을 잃고, 가정 을 잃고, 사회로부터 버림 받은 것으로 인한 그들의 분노와 절망은 오직 은 혜로만 치료될 수 있는 것이다. 광야교회의 사역은 이러한 중심에서 흔들리 지 않고 늘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의 노숙자 복지가 좋은 성과 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광야교회가 사회가 인정하는 복지기관이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임 목사는 몇 가지 독특한 사역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두 가지를 소개 한다. 첫째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이다. 쪽방촌은 영적 어두움이 강한 곳 이다. 이런 곳을 복음을 전하며 도는 것은 거의 순교의 각오가 필요하다. 말 과 폭력, 칼로 수없이 위협을 당했던 임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 사역 원리를 지켜가고 있다. 쪽방촌 곳곳을 주의 복음을 들고 돌면서 포 주와 알코올중독자가 돌아오고 교회의 반대자들이 쫓겨 가는 주의 능력을 맛 본 임 목사와 광야의 성도들은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담대히 오늘도 복음 을 외치고 있다. 둘째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사역 원리이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워도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기다리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포기하 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노숙자들은 이미 큰 좌절을 맛 본 사람들이라 그 들에게 먹는 것 등을 통한 잠시의 기쁨을 주기는 쉬워도 믿음 안에서 희망 을 주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광야교회는 이 어렵고 좁은 길을 택했 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광야교회의 사역은 사역만을 소개하여도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하다. 더 많은 사역을 알기를 원하는 독자는 홈페이지(www.kwangya.org)를 참고하 시길 바란다. 앞 으로 알코올중독자 치료원, 빈민가족 공동주거시설 등을 설 립하는 것이 광야교회의 장기비전 중 일부이다. 주의 은혜와 보이지 않는 도 움의 손길이 광야의 사역에 늘 함께 하시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03 no image 5대 선교비전으로 다음 세대를 열어가는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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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1 2008-08-13
5대 선교비전으로 다음 세대를 열어가는 소망교회 다음 세대를 키우기를 열망하는 수원 소망교회는 최근 최첨단 교육관을 완공 했다. 비록 본당은 조립식 구조로 지어져 자랑할 만한 것이 없지만 교육관 은 다르다. 최첨단 시스템과 경건하고도 품위 있는 건물 내, 외부는 어느 건물이 예배당 인지 혹은 교회의 교육관이 맞는지 아닌지 혼돈이 올 정도이다. 교육관 1층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전면의 거대한 세계지도는 소망교회가 이 교육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건물 공사의 마무 리 정리 때문에 주변 환경은 어수선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여름성경학교를 준 비 하느라 여념이 없는 교사들과 아이들은 이 건물을 건축한 목적이 무엇인 지 뚜렷하게 보여 준다. 수원시 권선구에 소망교회는 1982년도에 설립되어 올해로 26년째를 맞은 우 리 교단의 역사 있는 교회이다. 박요나 목사는 합신을 졸업하고 유신고등학 교 교목대행을 비롯하여 여러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세상의 소망과 전 인류 의 소망이 되자’라는 비전을 품고 소망교회를 설립했다. 박 목사는 이러한 소망은 오직 선교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실 때에 참 소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망교회는 5대 선교 비전으로 움직이는 교회이다. 해외선교, 농어촌, 미자 립 교회 선교, 청소년선교, 장애인 선교, 노인 선교로 이루어진 5대 선교는 박요나 목사의 목회방침 곳곳에 깊숙이 배어있고 성도들의 마음과 심지어 교 육관 건축의 설계에 까지 반영되어 있다. 개척 시작 때부터 장애인과 고아원을 후원하고 섬겼던 소망교회는 이제 새로 운 교육관과 함께 다음 세대를 세우고 세계에 영향력 있는 기독교 인재를 양 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30여 곳에 달하는 해외 및 농어촌 교 회의 선교는 2012년 까지 해외 및 농어촌 각각 30곳을 후원하길 소망하며 꾸 준히 선교의 지경을 넓히고 있다. 박요나 목사는 하나님의 이러한 사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교회의 사역을 세심 하게 구성했다. 40대 이하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성도들을 돌보기 위해 새신자로부터 기존 신자에 이르기까 지 모두 1:1 제자양육으로 성도를 세워 간다. 이것은 목회자들만으로는 할 수 없으므로 평신도 리더교육에 온 힘을 쏟았 다. 또한 젊은 부부들을 함께 순으로 묶어 교회생활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 뢰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순 모임 다녀오며 부부가 함께 대화하 는 시간이 서로 가장 많은 대화와 교감이 있는 시간이라는 고백들이 나올 정 도로 이 부부 순모임의 순도(純度)는 높다. “교회는 어머니 품 같아야 합니다. 따뜻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교회가 차가 우면 성도들은 흩어지지만 따뜻하면 서로 서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목회자는 멍석을 깔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알아서 그 멍 석 위에서 춤을 추며 즐거이 놀 수 있습니다.” 박 목사의 이 말은 모든 교회의 모임들에 반영되어 있다. 특히 박 목사는 이 러한 멍석은 서로를 비난하거나 헐뜯지 않고 칭찬함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 고 했다. 자신의 목회를 칭찬목회라고 하는 박 목사는 성도들의 조그만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설교도 한 편의 이야기를 하듯 쉽게 전달되어질 수 있도록 적 절한 유머와 함 께 준비한다. 특히 성도들 간의 QT에 중점을 두어 서로 받았던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순모임을 유도한다. 성도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을 깨닫고 나누게 하기 위함이다. 비전에 의하여 움직이는 소망교회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부평 혜림원의 장애우들을 초청하여 2박3일 동안 가정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 이다. 이미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정신적으로 박약한 장애우들 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하던 성도들은 매년 이어올 때마다 신청자 가 늘어난다고 한다. 보통 가정의 따스함과 훈훈함을 너무나 그리워하던 장애우들에게 이러한 경 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하지만 회를 이어오며 그 장애우들 을 섬기는 성도들과 아이들이 오히려 더 큰 위로와 기쁨을 받았다. 이웃을 섬길 때 주시는 주님의 참 기쁨을 성도들이 체험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행사이다. 박 목사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순종 잘하는 착한 성도들 덕분이라 고 말했다. 하지만 목사님이 시키시면 무엇이든 한다는 성도들의 말 속에서 어느 한 쪽의 열심히 아닌 하나가 된 열심히 소 망교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교육관에 입당하여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소망교회, 5대 선교비전의 충 실한 결실이 풍성하게 열리길 기자도 함께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02 no image 성심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성심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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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9 2008-07-28
성심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성심교회 오늘은 30년 넘도록 확고한 개혁주의 신학으로 지역을 복음화하고 이웃 사랑 을 실천해온 성심교회를 만나보았다. 성심교회는 1977년 임운택 목사에 의해 설립되어 현재 2대 목사로 장호철 목 사가 부임하여 주의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장호철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합신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 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중 성심교회의 청빙을 받아 부임하였다. 사랑의 교 회 옥한흠 목사의 권유로 한국에서의 목회를 고민하던 중 3년의 준비기간 끝 에 2007년 첫 주에 부임하게 되었다. 원래 장호철 목사는 어릴 적 어머니가 불치병으로 고생하던 때에 순복음교회 의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되었다. 중고등부 시절을 지나며 영적인 체험도 하 며 신앙이 성숙해 갔으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느껴 사랑의 교회로 옮겨 신 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순복음교회와 사랑의 교회의 분위기 차이를 ‘방언기도’와 ‘성경공부’라 고 밝힌 장 목사는 말씀을 깊 이 알면 알수록 주님과의 관계에서 풍성함을 누 릴 수 있다고 밝혔다. 장 목사는 성심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고 밝혔다. 이것은 장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곧 우리에게 큰 기쁨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장 목사는 많은 장로교회가 소요리 문답 제 1 문인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 돌리는 것을 가르치면서 도 정작 그 뒤에 함께 있는 주님을 섬기는 자의 기쁨을 가르치지 못하였다 고 지적하였다. 참된 영광 돌림은 그래서 성도 개개인의 기쁨과 깊은 관계가 있고 또한 기쁨 이 넘치는, 행복이 넘치는 교회의 관건이라고 하였다. 장 목사는 이러한 목회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예배와 교회 사역 전반을 세심 하게 기획한다. 특별히 성심교회는 한국교회들에게서는 많이 퇴색 되어버린 절기를 말씀 안에서 새롭게 회복하여 지키기를 힘쓰고 있다. 신년예배는 언약백성으로서 할례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은혜 안에서 주 의 부르신 백성된 것을 기념하며, 오순절이나 맥추감사절은 신약교회의 창립 기념일로서 그 의미를 되새기며, 종교개혁주일 이나 성서주일도 그에 맞는 설 교를 준비하여 교회 성도들이 늘 주와 동행할 때 예배를 통하여 그것이 일어 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특별히 장 목사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한국교회는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가 경건하고 성결하여 주 앞에 바로 설 때에는 국가도 바로 섰지만 교회가 세속주의와 성공주의에 빠져 하나님 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할 때 국가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장 목사는 이러한 모든 예배와 사역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성도들이 새로 부임한 장 목사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은 원로목사로 있는 임운택 목사의 보수적이고 충실한 말씀의 가르침이 있었 기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 목사는 현재의 한국교회의 성도수가 주는 현상에 대하여 비관적이 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한국교회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것은 장 목사는 이러한 현상을 교회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쭉정이 성도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장 목사는 교회에 위기가 있 을 때 참된 신앙을 지키는 성도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30년이 넘게 지역에서 복음을 전해온 성심교회는 외부사역이 아주 다 양하다. 담임목회자들은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신학교와 기독교 단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지역을 섬기는 일에도 전도에서부 터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중이다. 특히 150여명에 달하는 독거노인과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돌보는 일 은 성심교회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역이다. 장 목사가 부임하여 새롭게 추구하고 있는 사역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전임목사의 훌륭했던 사역들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이어나가고자하는 장 목사의 뜻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장 목사가 부임하여 리더들과 함께 GBS모임이 크게 활성화되었고 이 것이 더욱 부흥되기를 장 목사와 성심교회는 힘쓰며 기도하고 있다. 또한 주 일학교 교사들이 양육되고 지속적인 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사양성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쓰고 있다. 장 목사가 부임하여 다락방체제로 구역을 편성하였는데 올해에는 정착을 넘 어 크게 활성화되길 온 성도들이 힘쓰고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성심교 회가 이러한 여러 사역을 통해 주 앞에 더욱 크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길 기 자도 함께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01 no image 사랑의 빛으로 지역을 비추는 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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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6 2008-07-23
사랑의 빛으로 지역을 비추는 한소망교회 현대 사회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감을 갖고 살아가기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과거에 비해 사회적 관계는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깊이의 결여는 심각한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각종 동호회나 취미 생활에 집중하지만 사랑이 없는 친근함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오늘은 빈부의 격차가 큰 도시의 한편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정한 인간성 을 회복해 나가고자 힘쓰는 서울 한소망교회를 만나보았다. 한소망교회는 1992년 사당3동의 한 상가에서 시작되었다. 합신을 졸업한 임 창섭 목사는 원래 소원하였던 교수사역의 비전을 접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 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를 설립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4년 전 한소 망교회는 봉천동에 새로운 교회당을 구입하여 주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 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봉천동 지역은 서울에서 부유한 지역에 속하지 는 않는다. 재 개발 사업으로 많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단지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크고 봉천동 원주민들이 주로 사는 임대아파트나 소형아파트 지역은 경제적 으로 어렵고 정서적으로도 소외된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 때문에 한소망교회는 사랑과 치유의 목회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신학과 기독교 상담학을 공부한 임 목사는 이러한 사역에 잘 준 비가 되어있다. 주일 오후면 성도들은 교회 1층에 모여 앉아 직분에 관계없이 서로 마음을 열고 내면을 어루만지는 시간을 갖는다. 경직된 분위기가 아닌 최대한 편안 한 모임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쉽게 자신의 문제를 내어 놓고 기도를 요청한 다. 가족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던 성도들은 이러 한 모임들을 통해 큰 위로를 받고 그 상처를 오히려 동일한 상처를 가진 다 른 사람들을 위한 접촉점으로 사용한다. 임 목사는 이러한 사역을 위해 새로운 성도가 교회에 등록하면 영적, 심리 적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심층 진단지를 나누어 주고 어떤 방법으로 이 성 도를 도울지를 결정한다. 임 목사의 설교에서도 이러한 사역의 집중은 여전하 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 님의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는 임 목사는 성도들을 주의 말씀으로 다듬 어가는 과정은 치유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설교할 때 치유와 성화가 균형감 있게 강조되도록 늘 노력한다. 한편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소망교회는 늘 나누기위해 노력 하고 있다. 교회 개척 후 6개월부터 선교후원을 시작한 한소망교회는 지금까 지 끊임없이 이러한 후원을 지속해 오고 있다. 임 목사는 또한 중국의 신학교를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심한 핍박가운데서 도 8년 째 조직신학을 맡아 강의해오고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오전 8시부 터 저녁 9시까지 이루어지는 초강행군의 강의 사역이지만 말씀에 대한 열의 로 뜨거운 학생들을 외면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다. 신학교에 대한 선교후원도 물론 잊지 않고 감당하고 있다. 한소망교회는 교회당 이전 후 새로운 소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제 지역사 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다. 교회를 개방해서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공부방을 개설하고 상주하는 교사들을 통해 영적으로 또 교육적으로 도움을 주길 원한 다. 이러한 사역들은 모두 성도들의 적극적인 헌신으로만 가능한데 임 목사의 한 소망교회 성도들에 대한 자랑은 대단하다. 교회당을 이전하면서 8천여만 원 의 리모델링 비용을 사용했는데 빚은 하나도 지지 않았다. 새로운 교회당을 구입할 때 이미 모든 재정을 사용하였지만 성도들의 헌신은 계속 이어져서 교회당 구입 당시 발생한 대출도 현재 대폭 줄어 있다. 임 목사는 이러한 성도들을 ‘참 착한 성도’라고 했다. 도시 한 가운데서 목회하지만 시골에서 목회하는 것 같다고도 전했다. 요즈음 관계전도에 힘 을 쓴다는 임 목사는 목회자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이러한 성도들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의 앞길을 인도하실 것이고 전했다. 임 목사는 교회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사에는 때가 있고 어렵 더라도 주님만을 의지하며 인내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역의 길을 한소망교 회와 임 목사는 걸어왔다고 말했다.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지역 을 깨우는 한소망교회에 부흥의 불길이 넘쳐 넘치 는 풍성함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100 no image 어두운 지역 가운데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희망찬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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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2 2008-07-16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 이 나오리라(욥 23:10) 오늘은 긴 인내의 시간을 지내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기쁨으 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인천 희망찬 교회를 만나보았다. 희망찬교회는 인천 남구 학익동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교회당이 2번째 교 회당인 희망찬교회는 1990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예배당을 옮기면 서 교회명도 세광교회에서 희망찬교회로 개칭하고 더욱 주의 사역에 매진중 이다. 희망찬교회는 희망찬기도원과 함께 설립된 특이한 교회이다. 선배 목회자가 설립하려고 했던 교회 건물을 위탁함에 따라 교회와 기도원을 동시에 개원 한 희망찬교회는 지금도 평일에는 기도원집회 장소로 주말에는 교회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희망찬교회는 강진근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강 목사는 25세 때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역자로 헌신하게 되었다. 원래 술과 담배의 문제로 하나님께 헌신하길 주저했던 강 목사는 하나님께 서 기적 같은 계기를 만들어 주셔서 이러한 것들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동일방적에서 8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신학을 시작한 강 목사는 원래 북한 과 중국 선교를 소원하였으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와 기도원을 설립하 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로 설립된 희망찬교회는 설립 초 기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교회당 주변에 많은 사찰과 무속인들이 있어서 영적으로 많은 압박이 있었다 고 한다. 심지어 학익동으로 옮겨 오기 전의 교회당은 강신 무당이 세운 점 집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성도들이 찾아왔다가도 무당집을 지나 서야 교회로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돌아갔다. 강 목사와 성도들은 무시로 기도했고 결국 그 무당은 강신(降神)이 되지 않 아 도망치듯 떠났다. 어려움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강 목사의 2녀 1남 중 막내아들이 큰 사 고를 당하게 되었다. 교회 옆 건물 주차장에서 차가 후진하다가 강 목사의 아들을 치고도 계속 후진하여 아이의 얼굴을 자동차 바퀴로 밟고 지나간 것 이다. 목격했던 사람 들이 혼절하는가 하면 어떤 여성은 몇 일 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충격적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피투성이의 아이는 병 원 진단 결과 뇌에 아무 이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사건 전에 강 목사는 몇 일간 어떤 문제로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은 강 목사에게 하나님의 전폭적 인도를 굳게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담대함을 온 교회 성도들이 소유하게 만들 었다. 현재 아이는 어떤 손상도 없이 건강하여 강 목사 가족에게 큰 기쁨과 은혜 의 선물이 되어 있다. 희망찬교회는 교회와 기도원을 동시에 운영함으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 을 겪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오늘까지 풍성하 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주의 사역을 해 왔다. 매주일 지역사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는데 여전도회 회원들의 전적인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전도목적이 아닌 순수한 봉사로 시작 한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순수한 봉사로 인식되어 지역사 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찾아올 수 없는 연약한 분 들을 위해 매주 반찬을 만들 어 배달하는데 이 일은 지역 동사무소나 국가기관에서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라고 한다. 희망찬 교회의 성도들은 거의 다 이 교회에서 새롭게 신앙을 시작한 사람들 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믿음이 없어 자신의 생활들에 매여 하나님께 거의 헌 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의 어려움을 기도로 극복하면서 전적으 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성도들로 변화되었다. 강 목사는 이들을 위해 성경공부를 개설하였는데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흐름을 따라 가르쳤다. 말씀을 기억하고 닥쳐오는 어려움 을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성도들은 개인적 문제와 교회의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갔다. 희망찬 교회가 위치한 학익동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지역이다. 그러 나 강 목사는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도 있지만 그 중심에 평 안이 없어 실제 어려움보다 훨씬 더 큰 불행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영적으로 어둠속에서 헤매는 이들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희망찬교회를 계 속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강 목사는 희망찬교회가 마지막 때에 주의 백 성에게 하나님의 산 소망을 주고 선교사님들에게 좋은 쉼터를 제공하는 교회 가 되길 소원한다고 덧붙였다. 어두운 지역 한 가운데서 복음의 빛을 더욱 비추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 내는 희망찬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99 no image 반석 같은 믿음으로 세워져나가는 대자반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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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0 2008-07-02
반석 같은 믿음으로 세워져나가는 대자반석교회 번잡한 서울을 지난 지 오래지 않아 싱그러운 푸르름이 어느덧 기자의 길에 가득하다. 이내 차량은 올림픽 기념공원을 지나 최영장군의 묘 옆을 지나쳤 다. 서울과 일산의 경계선인 고양시 대자동이다. 차를 타고 15분만 더 가면 아파트촌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시골스러움이 가득하다. 맑은 냇물이 차도 옆으로 흘러가는가 하면 논밭에 는 제법 녹색과 노란색이 교차한다. 교회 앞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기자를 맞이한 것은 꿩이었다. 교회 뒤편 산에 여러 마리가 산다 고 한다. 맞이하는 전상기 목사의 소박하고 푸근한 설명 때문에 어색함은 생 길 틈도 없이 따뜻한 차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고양시 대자동에 위치한 대자반석교회를 소개한다. 명색은 고양시지 만 개발제한구역 안에 교회가 위치했기 때문에 제법 고향의 교회에 온 듯하 다. 전상기 목사는 이 교회에 1998년 부임하였다. 전임목사가 1988년에 개척한 것을 목사임직을 받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 오늘까지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 며 사역을 이어왔다. 원래 찬양사역자로 사역을 했던 전 목사는 선배 목사의 권유로 웨스트민스 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자반석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신학을 하던 초기 “사람을 보지 말고 영혼을 보고 설교하라!”라는 말씀을 기억하다는 전 목사는 대자반석교회에서 사역을 이어오면서 이 말의 깊은 의 미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적은 숫자인데다 시골의 장년부를 상대로 성 경적 설교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전 목사는 전했다. 하지만, 말씀만이 이들을 살린다는 확신으로 성경 본문들을 주의 깊게 강해 했다. 예화도 적고, 재미는 더욱 없는 설교였지만, 성도들은 차츰 말씀 자체 에 생각을 집중하게 되어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성도로 성숙하 게 되었다. 전 목사는 “사람이 방법론을 찾게 되면 그것이 결국 자신을 넘 어지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인구 자체가 적어 목회의 방법론에 더 집중하기 쉬운 상황에서 전 목사 의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반석교회는 오늘에 이르 기까지 그러한 것들을 멀리하고 말씀의 은혜로 성장하고 있다. 대자동 주변에는 묘지가 많다. 최영장군 묘를 비롯해서 여러 문중들의 묘들 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의 주변 이웃들 중에 묘지기들이 많다. 당연히 해마다 여러 차례 제사를 주관해야하는 사람들이라 전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고 한다. 이런 이웃들을 제외한 다른 이웃들은 거의 주변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노 년층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교회에 청년은 유일하게 1명이 있다. 젊은 성도 들은 대부분 주변 고양과 구파발로 이사를 가서 교회에 출석하기가 거의 어 렵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 목사와 성도들은 교회를 폐쇄하는 쪽을 택하지 않고 견디는 쪽을 택하였다. 우상숭배가 강한 이러한 지역에도 교회가 있어야한다 는 사명감 때문이다. 전 목사는 목회는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들이 자신의 딱딱한 설교를 견디어준 것 같이 자신도 힘든 목회지만 견 딜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교회라 애로사항도 많았다. 청장년층이 거의 없다보니 전 목사의 어린 자녀들까지 교회에 봉사하고 있다. 선교원을 운영할 때는 전 목사의 사모가 거의 1인4역을 감당했다. 교회의 조직이 갖추어지지 않아 전 목사가 많은 일을 도맡아야만 일이 이루 어진다. 특별행사라도 한 번 하려고 하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현재는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교회의 대지 소유권을 가진 사람 이 교회가 그 땅을 매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당은 성도들의 노 력으로 건축한 교회 소유건물이지만 대지는 임대하여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땅 시세가 뛰어 제시하는 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대자반석교회 성도들은 기도만 하고 있지 않다. 푼푼히 모아 대지구입헌금도 마련해 가고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선 히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교회를 지켜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 목사는 이러한 대자반석교회의 성도들이 참 순수한 성도라고 자랑했다. 예배만을 사모하고 다른 욕심은 없는 이들의 순수함을 주님께서 알아주실 것 이라고 전했다. 매주 예배 후 모든 성도가 모여 행복하게 식사하는 아름다 운 시간들이 계속 될 것이라고 전 목사는 확신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주의 참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지키는 대자 반석교회에 주 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98 no image 형제가 동거하는 참 아름다움을 가진 교회 - 성가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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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2 2008-06-25
형제가 동거하는 참 아름다운 교회 - 성가교회 세상에서 살 때 참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욱이 어떤 사람도 혼자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 때문에 주님 께서는 믿음의 형제, 자매를 우리에게 교회라는 이름으로 주셨다. 참 성도 의 함께 함은 그래서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은 ‘형제가 동거하는 참 아름다움’을 가진 성가교회를 만나본다. 성가교회는 87년 4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처음 설립되었다. 현재는 마포 구 현석동에 위치한 아파트 상가를 매입하여 예배당과 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마포구지만 조금은 거리가 먼 예배당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거 의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새 예배당에서 현재까지 신앙생활을 이어오 고 있다. 고려대와 합신을 졸업하고 선교단체 간사로 활동했던 박혁 목사는 97년도에 성가교회에 부임한 2대 목사이다. 원래 교회 초창기에 청년부 담당으로 사역 을 하였는데 후에 교회의 청빙을 받고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이전에 청년 들이었던 성도들은 이제 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있는 장년부가 되었고 교 회의 여러 사역에 열심을 내는 보배들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박혁 목사는 특별히 구원받는다는 것은 천국이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라는 목회철학으로 오늘까지 성가교회를 지도했다. 구원받은 후 전도나 교회 의 봉사에 애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통치하시 고 교회를 통치하셔서, 모든 성도의 마음으로부터 천국이 이루어져나가는 것 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가교회는 예배, 말씀, 생활, 봉사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천국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 고 있다. 박 목사는 이러한 예수님의 통치는 말씀이 바로 서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 다. 따라서 예배 때 바른 말씀의 선포는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예배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제시하신 것만을 예배의 요소로 사용할 때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어린이들이나 중고등부 학생들은 요리문답을 만들어 매주 교육하 고 있으며 교육기관 예배 후에 성인예배에도 다 참석하도록 하여 예 배를 통 한 성도의 하나됨을 이루어가고 있다. 특히 중고등부는 성인예배 후에 성경공부를 하여 중간에 도망(?)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실은 부모들과 함께 하는 예배이기 때문에 모두 기 쁨으로 참석하여 주님을 찬양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다. 예배를 바로 세우는 일로 교회의 사역이 끝나지는 않는다. 성가교회는 성경 공부, 선교, 구제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모든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성경공부는 조직신학적인 성경공부와 교회사적인 성경공부가 함께 이루어지 도록 매주 자체적으로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고 있는데 이 교재를 만드는 데 에만 2~3일 투자하여 내실 있는 성경공부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현재 는 돌트신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개혁신학의 핵심적인 부분을 성도들이 공부 하면서 큰 도전과 감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박 목사는 선교는 예수님의 통치의 확장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성가교회 는 ‘공간적 확장’을 위해 12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으며, ‘시간적 확 장’을 위해 신학생을 후원하며 특히 타국(他國)의 지하신학교를 후원하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 하는 신학생도 유학비용을 후원하고 있으며 6월 중 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예정이다. 성가교회의 구제에는 특별함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본적인 구제도 있지만 특별히 교회 내 성도들을 향한 구제가 있다. 성가교회는 부부가 모 두 실직하게 되면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실직수당을 지급한다. 또한 파산하 게 되면 융자받은 금액의 30%까지 무이자로 빌려주어 한 가정이 다시 회복 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전략적으로 구제한다. 어려운 성도가 큰 수술을 받게 되면 300만원까지 지원을 하고 있다. 추후에는 무주택 성도들을 위해 ‘사랑 의 집짓기 운동’도 할 계획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 성가교회는 목적헌금을 통해 성가기금을 만들었다. 십일조 와 감사헌금, 건축헌금 외에 특별한 헌금이 없는 성가교회는 목적헌금에 모 든 성도들이 동참하여 이러한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박혁 목사는 이러한 사역을 감당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바로 서 는 것이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말씀과 예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늘 예 수님의 통치와 천국이 온 교회의 가정 가정마다 이루어지는 것이 박 목사의 소망이다. n 아름다운 성도의 동거가 있는 성가교회가 그리스도의 천국을 날마다 새롭게 이루어가기를 함께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97 no image 근본문제는 일치를, 지엽문제는 자유를, 모든일엔 사랑을!-동락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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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8 2008-06-17
오늘은 균형 있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기독교의 문화 전령사로 널리 알려진 이은상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수원시 망포동에 위치한 동락교회를 소 개한다. 동락교회는 교회명이 보여주고 있다시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동거동락 (同居同樂)을 그 사역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교회이다. 이은상 목사는 현 대의 문제점을 소외되고 지나치게 독립된 인간관계로 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 참된 관계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원질서를 회복해가고자 한다. 동락교회는 이러한 사역의 목표를 가지고 2001년에 설립되었다. 한 때 이은 상 목사의 투병으로 인해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주의 은혜가운데 든 든히 세워져가고 있다. 한국성서대와 합신을 졸업한 이은상 목사는 개혁신학의 핵심을 균형으로 파 악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와 그의 목회철학에는 이러한 신념이 잘 반영되어 있다. 정작 이 목사 자신은 ‘소신 없고 정체성 없는 사람’이라고 겸양하지 만, 그의 목회철학은 실제로 매우 분명하다. ‘근본 문제에는 일치를, 지엽 문제에는 자유를, 모든 일에는 사랑을!’ 이 것은 동락교회가 현재 지향하고 있는 목회철학이다. 흔히 자유함을 추구하 는 교회들이 근본 문제에 대한 일치를 종종 말하며, 비신학적 행태들을 합리 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락교회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이 목사는 근본 문제를 아주 자세히 그리고 강하게 다룬다. 단순히 복음에 대한 동의만이 아니라 고객 중심 교회, 목회자 중심 교회, 새로운 패러다임 의 무분별한 수용 등을 근본적 문제로 파악하고, 주님이 명령하신 참된 교회 로 나아가기 위해 늘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특별히 동락교회는 이러한 일치와 자유를 위해 균형을 강조한다. 조선시대 에 학문의 정점을 균형으로 파악하고 성균관(成均館)을 만든 것처럼, 이 목 사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새로운 것에 대한 무조적적 수용을 거부하고 늘 주 의 말씀에 집중하려는 모습으로 사역을 해 왔다. 동락교회는 ‘큰 교회를 지향하지 않지만, 작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말하 지 않는다. 교회 건축을 신성시하지 않지만, 교회건축문화를 존중한다. 부자 를 비난하지 않지 만, 가난을 경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등과 같이 자칫 편향되기 쉬운 문제들로 교회가 잘 못 나아가지 않도록 늘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사역을 위해 동락교회는 늘 말씀에 집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철저 한 본문위주의 설교가 동락교회 이 목사의 설교이다. 심지어 구역의 성경공 부 조차 본문중심의 귀납적 성경공부이다. 이 목사는 성경 본문보다 설교자가 더 영적이거나(?), 설교자 본인의 이야기 가 본문보다 더 중요하게 이야기 되는 것은 바른 설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설교가운데 재치와 적당한 유머는 본문을 이해시키는데 효과적이지만 설교자가 익살꾼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락교회는 이제 설립 9년차를 맞이하면서 기존에 해 오던 구제와 전도 등 의 사역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역의 지평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오늘까지 잘 성장한 동락교회는 선교사 파송과 청소년 사역에 집중하고자 한다. 특별히 교회 자체에서 선교사가 배출되기를 기도하 며, 악한 세대 가운데 든든한 믿음의 유산을 가진 청소년을 육성하기 위해 전문적인 청소년 사역을 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독거노인 돕기, 청소년가장 돕기 등 기존의 사역들과 병행하여 잘 추진되면 이 시대의 기독교문화를 활력 있게 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목사는 동락교회 성도들을 참으로 동락하는 성도들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임파선 암으로 투병하면서 설교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때 모 두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오히려 더욱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 더욱 든든 히 세워진 교회가 되었다고 했다. 주의 은혜로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동락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였다. 현재 는 예배당이 많이 협소해지면서 확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한 책임을 다하고, 사랑이 있고, 진실한 목회자가 되기를 이 목사는 기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동락교회 온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든든히 묶여지기 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하지만, 자기 자신들만의 교회를 추구하는 세태에서도 늘 그리스도와 온 성도들이 참된 교제로 동거동락하는 동락교회와 한국교회 가 되기를 함께 소원하며 기도한다. (이 은 숙 기자)
96 no image 그늘진 곳에도 복음의 참빛을 - 온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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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6 2008-06-11
그늘진 곳에도 복음의 참빛을, 온사랑교회 아무리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나 사회라고 할지라도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 들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복지와 배려는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 말씀과 같이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의 복 음과 사랑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주의 참빛이 있는 곳은 밝고 행복해졌지 만, 그것이 없는 곳은 음습한 불행만이 사람들을 지배할 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발전되었다고 하는 강남지역에도 역시 이러한 곳이 존재한 다. 많은 사람들이 평균적 한국인보다 2배 가까운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는 이곳이지만 소외되고 삶의 무게만으로도 숨차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이러한 곳에서 주의 온전한 사랑을 힘차게 전하고 있는 서초구 우면 동에 위치한 온사랑교회를 만나본다. 온사랑교회는 1991년도에 설립되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현재는 박세 갑 목 사가 2000년도에 5대 목사로 부임하여 오늘날까지 주의 사역을 이어오 고 있다. 처음 부임하였을 때 10분 정도의 노인들과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현 재는 그 사역이 확장되어 노인과 장애인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청소 년들, 함께 이 사역을 동참하는 청년들과 성도들이 온 사랑교회를 이루어가 고 있다. 박세갑 목사는 이러한 사역에 대하여 힘들지만 많은 보람을 느끼며 사역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몇 명이나 모여?”, “그래서 어떻게 살아?”로 집 약되는 성장제일주의적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제가 많은 돈도 벌어보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힘들지 않습니 다. 또 힘든 분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저에게 오히려 큰 힘이 되죠. 하지만 그 러한 질문들로 순수한 목회에 걸림돌이 되게 할 때가 가장 힘든 때입니 다.” 박 목사는 사람 모으는 것이 목회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목회는 사람 을 키우는 것이라는 철학으로 어려운 교회에서 8년간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박 목사는 어렸을 때 하나님의 사역을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그 야말로 ‘잘 놀았다’고 한다. 그는 한양대 공과대학을 졸업 후 시멘트 관 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교회의 좋은 조력자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9세가 되던 12월, 신학을 해보라던 친구의 권유를 주의 부르심으로 깨닫고, 합신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 이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역을 감당해야하는지 늘 도우심을 구하며 오늘까지 사역을 이어왔다. 조금은 역설적으로 온사랑교회는 예배에 힘을 다하는 교회이다. 힘들고 소외 된 지역이라면 ‘나눔’이 우선일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으면 그것 은 나눔이 아니라 분배라는 것이 박 목사의 소신이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풍 성함을 누리는 자들이 함께 나눌 때 참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서 예배를 최대한 엄숙하고 경건하게 드리고자 늘 노력한다. 이러한 나눔으로 인근 불량학생으로 불리던 아이들이 변화되어 대학에 입학 까지 시키는 좋은 열매도 맺었고, 마음의 문이 완전히 닫혔던 노인분이 예배 하러 교회 오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드리러(?) 교회에 올 정도로 주변에 많 은 영향력을 나타내었다. 지금도 온사랑교회는 매주 소외된 노인이나 장애인을 병원에 다닐 수 있도 록 차량봉사에 열심을 쏟고 있다. 또한 지역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마련하 여 경제적으로 어려워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주 신서(新書)를 구입하고, 또한 신청된 도서 를 구비하여 알찬 도서관을 꾸며놓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도 한 어머니와 여자아이가 열심히 영어로 된 성경동화 를 읽고 따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현재 잠시 공부방이 중단되었는데 신청자를 모아 곧 다시 시작한다. 무료로 공부도 시키고, 장학 금도 주며 ‘나눔의 목회’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박 목사는 온사랑교회 성도들을 ‘사랑을 배워가는 성도들’이라고 했다. 받 으려고 하는 자기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온전히 내어주는 성도들로 바뀌어가 고 있다고 전했다. 비록 현재의 삶은 어렵지만, 서로 도와주고 인내하며 주 는 사랑의 참 행복을 느끼고 있다. 온사랑교회는 처음에 모이는 분들 때문에 ‘이단’으로 오해받았다. 교회에 한 번 왔던 사람들이 문화적 충격으로 더 이상 오지 못했고 주변에서는 이상 한 교회라고 소문이 났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러한 사역의 열매로 인해 주님 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온사랑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온 누리에 펼치는 아름다운 교 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 은 숙 기자)
95 no image 기독교교육의 첨병으로 - 수원 호산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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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3 2008-06-04
기독교교육의 첨병으로, 호산나교회 때 이른 초여름의 더위가 벌써부터 대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사람에겐 고된 일상이 시작되었겠지만, 자연은 이내 그 본연의 푸르름을 어엿하게 되 찾아가고 있다. 주님 주신 시련이 뜨겁게 밀려올 때, 때론 감당하지 못할 만 큼 버거워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역시 그 여미(餘味)는 상 상할 수 없이 풍성한 것 같다. 오늘은 주님의 시련 후에 정금 같이 단련되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단단히 세워져 가는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호산나교회를 만나본다. 호산나교회는 1990년 1월, 바른 신학의 합신 정신을 바탕으로 장안구 연무동 에 설립되었다. 김봉길 목사는 총신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총신낙도선교회를 창설하고 전도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붇던 중 주의 뜻 가운데서 합신을 졸업하 고 호산나교회를 설립하고 사역을 시작했다. 처음의 사역은 주님의 평안케 하심으로 착실하게 잘 이루어졌다. 김 목사는 처음부터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를 양육하고 자 여러 프로그램을 계발하여, 사 역에 잘 적용해 나갔다. 하지만 IMF 사태 이후 호산나교회는 첫 시련을 맞이 하게 되었다. 한 성도의 죽음으로 교회가 힘들어하던 차에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당이 경매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환난을 겪으면서 호 산나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며 신앙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그 본질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다. 제자훈련으로 시작된 호산나교회는 이러한 계기로 프로그램 중심의 훈련보 다 교육과 교제 중심의 양육이 목표인 교회로 바뀌게 되었다. 김 목사는 신 앙은 어떤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아이가 인격과 그 몸이 자라나는 것처럼 교회가 영적 가족이 되고 이곳을 통하여 신앙의 인격 과 내용들이 형성되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영적 가족은 반드시 전도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더욱 큰 기쁨과 풍성함을 누 릴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호산나교회는 이러한 사역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몇 가지 특별한 사역을 시도 하였다. 처음에는 구(區)에서 시행하는 노래교실을 위탁하여 운영하고, 매 주 토요일이 면 열린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를 통해 전도의 기회들을 만들며 성도들을 훈련하는 계기를 삼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과 너무 가까이 있 다 보니 교회의 본질이 흐려지는 여러 부작용들을 목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역들을 과감히 중단하고 교회가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사역으로 교육을 선택하게 되었다. 김 목사는 교회가 무엇보다 사회를 선도할 인재를 배출해야 하고 그것은 반 드시 성경과 믿음으로 잘 양육된 실력 있는 기독교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 다. 그래서 김 목사는 크리스천을 중심으로 사회지도자를 양성해 나가는 미 국의 크리스천스쿨 사회운동단체에서 영감을 얻어 교회 내에 기독교영어스쿨 을 개설하였다. 또한 이러한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선 반드시 부모의 신앙 적 성숙이 중요하므로 소그룹 모임을 통해 성도의 교제와 관계성이 신앙생활 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교회를 조직화했다. 이러한 사역을 뒷 받침하기 위해서 교회의 2층은 아름다운 카페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성도들은 자유롭게 교제와 공부를 할 수 있다. 호산나교회의 기독교교육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단 순히 영어교육을 시키 는 것도 아니고, 전도를 위해 급조된 영어 방과 후 교실 같은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제대로 된 영어로 하는 기독교교육이다. 호산나교 회는 애틀랜타의 초등학교와 협력관계를 맺고 현직교사들을 그 학교를 통해 초빙한다. 그래서 호산나교회에 출강하는 강사는 모두 현직교사이거나 출신 이다. 이러한 실력 있는 강사진뿐만 아니라 분당과 교회에 어학원을 운영하 여 낙후된 지역사회의 아이들이 큰 꿈을 꾸게 하고, 믿음으로 세상에 어떻 게 나아가야하는지를 배우게 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새롭게 일어난 호산나교회 성도들은 자유로우면서 도 질서와 룰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었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정직, 정확한 성도들이지만 목사가 어떤 일을 시행해도 전적으로 협력하는 한 가족의 공동 체라고 자랑했다. 호산나교회는 이제 두 번째 도약을 준비 중이다. 광교신도시에 새로운 터전 을 마련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절차들을 마치고 이전을 위한 기도 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된 호산나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새 일꾼을 일구는 데 크게 사용되길 함 께 기도한다. (이 은 숙 기자)
94 no image 진리의 복된 소식을 온 천하에 - 소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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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4 2008-05-27
진리의 복된 소식을 온 천하에 - 소식교회 오늘은 일산의 새로운 풍동지구에 교회를 이전하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 기 위해 매진하는 소식교회를 만나 본다. 십자가 없는 강단, 소박한 성찬상, 도회지적인 외관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단 순한 교회의 내부... 정통 개혁파 장로교회의 신학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식 교회는 1984년 원당에 처음 개척된 후 수차례의 도시개발로 인해 여러 곳으 로 교회당 이전을 한 후에야 현재의 백마교 근처에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 고 입당하게 되었다. 소식교회를 설립한 김용주 목사는 3대째 신앙을 이어온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막상 신학을 할 것을 강렬히 소망한 적은 없다고 했다. 총신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신대원과 합신을 거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는 기간 동안 큰 결단과 뜨거움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기보다 하나님의 부르 심에 충실하게 응답하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과 그 분의 사역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대로 살고자하 는 열망으로 이 사역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김용주 목사는 철저한 개혁주의적 목회를 지향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것 에 대한 철저함을 진심으로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개혁주의의 ‘신론적’ 목회를 강조했는데 요즈음 교회에서 회자 되어지는 ‘성령론적’과 ‘구원론적’ 목회관과 차별된 것이다. ‘신론 적’ 목회란 체험과 신비적 은사, 혹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초점이 맞추 어져 있는 위의 목회관들과 달리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와 생활 가운데 온 전히 높이며, 하나님의 예정하심의 경륜에 따라 그 뜻과 부르심에 합당한 삶 을 살기를 강조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선서한 대로 목회하는 것이 꿈이자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임직할 때 장로교 신조에 충실하겠다고 했다면 그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 앞 에 올바른 목회라고 강조했다. 강도사 인허 받을 때, 목사 안수 받을 때 했던 그 선서를 엄숙한 맹세로 받 아들여 그 대로 교회에 구현시킨다면 하나님께 누가 되는 목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것은 목사의 ‘정직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특히 예배할 때 하나님 께 온전히 영광 돌릴 수 있는 예배로, 하나님께 기뻐하실 수 있는 예배로 나 아가기를 늘 소망한다고 말했다. 특히 예배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예배의 진실성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예배 모범이 말씀에 충실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한 알미니우스적 예배나, 오순절적 예배는 하나님을 온전히 높여 드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러한 인간을 기쁘게 하는 예배, 목회... 참 재미있지요. 회심 에만 집중한 목회... 건물 기둥만 세우는 목회이지요. 쉽고 재미있지요. 오 순절적으로 체험과 은사를 강조하는 것 이건 정말 세상보다 더 재미있지요. 하지만 늘 총체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강조하고 목회하는 것은 참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본성에 치우쳐진 예배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합니다.”라 고 말하며 힘들지만 하나님의 속성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자 늘 노력한다. 김 목사의 이런 목회철학에 따라 소식교회는 늘 말씀에 집중하고 그것으로부 터 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장년부는 웨 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계속적으로 깊이 있게 배우고 있으 며 어린 세대들은 소요리 문답으로 신앙을 잘 배워오고 있다. 김 목사는 특 히 어린 세대는 소요리 문답을 통해 세례 때에 성경의 진리에 대하여 잘 대 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 교회들이 세례를 소홀히 여기고 성경적 진리에 늘 동의하고 주님을 의 지하여 그대로 사는가 보다는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났는가에 집중하는 것에 반해 소식교회는 늘 교회가 과거 수천 년 동안 해왔던 신앙을 그대로 강조하 고 있었다. 소식교회는 앞으로도 이러한 목회철학과 함께 진정한 장로교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고 했다. 장로교회는 많으나 장로교회적 진리는 적어지는 현실이 슬 프지만, 주께 용기를 얻어 진리를 보전하고 진리를 확산하는 일에 소식교회 가 사용되기를 온전히 사용되기를 김 목사는 소망한다. 또한 김 목사는 사 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남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개혁주의적 진리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고, 순수한 성경적 진리가 어두워져 가는 현실에서 소식교회가 진정한 복음의 기쁜 소식으로 교회와 세상을 깨우 고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는 진리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필자도 함 께 기도하며 소망한다. (이 은 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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