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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no image 목회적 비전으로 숲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 행복한교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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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2 2006-10-18
행복한교회 - 이종원 목사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자문을 해보았을 것이 다. 그런데 같은 의문이지만 그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믿 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어주시는 은혜만이 아니라 평상시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얼마나 민감하게 감사하며 사느냐에 따라 그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어느덧 2006년도 저물어가는 가을오후 감사함에 있어 참으로 게으르기만 했 던 한 해를 돌아보며, 소슬한 가을바람에 그 마음부터 산뜻하게 여미어 본 다. 오늘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 서구 일산 2동 산들 마을, 베르빌 6단지 상가 2 층에 설립된 행복한 교회를 찾았다. 얼마 전 설립 6주년 감사예배를 드린 행복한 교회는 2000년 9월 17일 이종 원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종원 목사는 고등학교 때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기 도하던 중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거처 목회자로서의 삶 을 시작하였다. 그는 화평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사역을 감당하고 화성교회 부목사로 섬기다 2000년 6월 지금의 행복한 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개척당시에 대해 이 목사는 “완벽한 계획과 좋은 여건 속에 개척하지는 못 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목회의 길을 걸어오던 중 참으로 기쁨과 평 안함으로 보낸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이종원 목사는 목회적 비전으로 숲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이는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교회의 성장을 이룸과 동시에 잘 훈련받은 성도들을 다른 지역으로 파송하여 분립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분립하여 세운 교회들과 더불어 한 숲을 이루고 함께 연합하여 하나 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이미 많이 있는 거목들 중에 또 하나 의 거대한 거목으로 서기보다, 숲속에 많은 나무들 중에 작은 한그루의 나무 와 같은 교회로 서는 것이, 바로 이종원 목사가 소원하는 숲을 이루는 교회 의 상이다. 비록 아직 개척교회의 미약함으로 인하여 경제적 또는 가족부양에 대한 책임 감에서 오는 부담을 안고 있으나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부 르심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흔들지는 못한다.”고 이 목사는 고백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과 근본적 열정은 변함은 없다. 다만 대도시 에서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큰 교회들과 많은 교회들 중에 나만큼도 노력하지 않는 교회가 없겠는가?”라는 회의와 함께 “불신자들을 잘 전도하지 못하는 답보적인 교회가 과연 교회된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일 까? 라는 고민이 있다.”고 진솔하게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목사가 말하는 “대도시 속에서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힘든 현실” 이란 지적,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문화 홍수의 시대에 인본주의적, 세속적 가 치관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복음조차도 자신의 가치관이 앞선 가운데 받아들이는 세태 속에서 더욱 불신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종원 목사는 그러한 그의 고민을 한국의 모든 교회와 나 누며 함께 연합하여 복음화에 힘쓰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박윤선 목사가 말한 ‘목양일념’과 같이 목회는 부단히 양육하 는 것이라는 생각 하에 말 씀을 중심으로 양육과 선교와 봉사에 중점을 두고 자 한다. 현재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는 구속사적인 흐름에 따라 차례로 설교하는 가운데 새 신자 성경공부, 크로스웨이 성경공부, 제자훈련과 전도폭발 훈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성도들이, 삶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이 개입된 삶을 살도록 인도하 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성도들이 나아가 그리스도를 바르게 전하고 행위의 본으로서 참 전도를 실천하는 것을 위해 이 목사는 기도하고 있다. 한편 행복한 교회는 개척교회의 어려운 현실가운데 있으나 이에 구에 받지 않고 선교와 구제에 동참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약간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홀트 아동복지회를 후원하던 중 최근에는 홀트 복지회보다 더 어려운 복지 기관이나 지역 내 어려운 이를 돕고자 후원의 대 상을 찾고 있다. 이러한 작은 노력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또 다른 방편 으로 사용되어질 것이다. 행복한 교회의 영문 이름은 A Happy Church이다. 이 부정관사에는 이목 사의 목회철학이 담겨있다. 작은 한그루의 나무라도, 자연을 숨 쉬게 하는 숲의 저력에는 소중한 지체로 서 각기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있다. 작든지 크든지 자기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나무와 같이 교 회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하고자 고민하는 행복한 교회를 통해 많은 영혼들 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도한다. (이 은 숙 기자)
32 no image 주님을 닮고 섬기기를 기뻐하는 대림교회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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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8 2006-10-10
주님을 닮고 섬기기를 기뻐하는 대림교회 영혼구원에 대한 순백한 열정으로,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1동에 위치한 대림 교회는 1955년 4월12일 양세록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말씀을 중심으로 성도들의 영적, 육적구제와 사랑을 실천하며 믿음의 본을 보여준 선대의 양세록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 받고 최근에는 나경수 목사 가 부임하여 오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나경수 목사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시절 불교 학생회 회원으로 공부하던 중 불경이나 성경이나 진리를 담은 책이라는 것 은 동일하다고 보고 스스로 성경공부모임을 찾아갔던 것. 이러한 계기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1978년 8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 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내적 심리작용이 아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는 성경말씀을 통한 확실한 증거로서의 믿음이었다. 그 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송파제일교회 부 교역자로 첫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나 님의 은혜가운데 송파제일교회 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약신학과 선교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10년간 아프리카 두 군데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헌신하다, 2005년 3월 18일 대림교회 담임목사 로 부임하여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나경수 목사는 “목회와 선교가 사역의 본질은 같으나 기능적인 차이가 있 다.”고 보고 “선교지에서 선교지로 옮겨왔다는 생각으로, 무엇보다 객관 적 계시인 말씀을 중심으로 주관적 체험 또한 경시하지 않음으로써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목회를 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나 목사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타락 했으며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임을 일깨우고 성경만이 객관적 최고의 권위 있는 지식임을 가르치고자 한다. 이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가운데 참 진 리를 발견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겸손함으로 성도들의 삶 가운 데 실질적 목회의 삶이 나타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보잘 것 없고 죄악 된 존재임을 인정하고, 놀라 운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깨닫 게 되었을 때 큰 감격과 함께 누리게 될 참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목사가 소망하는 바이다. 한편 나경수 목사는 대림교회에 대해 “주님을 닮고자 하는 교회, 먼저 섬기 기를 기뻐하는 교회”라고 소개했다. 이는 연륜이 많은 성도들이 연륜과 상 관없이 겸손함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주는 대림교회의 전반적 분위기에서 기 인한 말이다. 실재로 대림교회는 지역 내 봉사를 비롯하여 단기 선교까지도 연륜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본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해외선 교 후원과 함께, 꾸준한 기간 동안 대림중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여 지역 내 어려운 학생들을 살피고, 광야교회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은 봉사 의 손길을 이어가는 등의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나경수 목사는 이에 대해 “선교와 구제에 있어서만큼은 교회형편에 구애받 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대림교회는 지역에서 가장 인정받는 선교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선교유치원에는 교인자녀보다 지역주민의 자녀들이 더 많이 다니고 있다. 교 회와는 별도의 건물에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서 잘 펼쳐나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지역에 복음의 참 진리 됨을 잘 드러 내는 또 한 방편이 되고 있다. 오늘날 대림교회는 51년 전 설립 당시와는 판이할 정도로 개발되어 현재 좁 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나경수 목사도 지리적 여건으로는 부흥하기 힘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 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복음은 물에 녹은 소금처럼 보이지 않게 그러나 강 력한 힘을 나타내는 법이다. 대림교회는 오랜 역사 가운데 그러한 역량을 가 지고 있다. 비옥한 땅에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지각이 불안정한 조산대(造山帶)에 속한 지역에 비해 오랜 세월 유지해온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많은 열매들과 자원으로 풍성하다. 이와 같이, 지역가운데 복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자 하 는 나경수 목사의 바람대로 대림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 비옥해져, 그 견고하고 비옥한 믿음의 땅에서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풍성히 맺어지 기를 기도한다. (이 은 숙 기자)
31 no image 기독교 문화를 심어주고 있는 숭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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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5 2006-09-18
기독교 문화를 심어주고 있는 숭례교회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에 가면 고려대학교 앞, 빼곡한 주택가 사이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숭례교회가 있다. 숭례교회는 봉긋 솟은 지붕위의 종탑이 아니라면 그저 예쁜 집이라 여길 만 큼 소박한 느낌의 교회이다. 이러한 예배당의 특색이 반영된 까닭에서인지 숭례교회는 지역사회가운데서 건강한 교회, 지역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소문 이 났다. 아마도 숭례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지역의 주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을 닮았나보다. 숭례교회는 1980년도 당시 전도사였던 이천성 목사가 부임하면서 오늘에 이 르렀다. 부임당시 교회에는 땅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으 나, 이 목사는 “오직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왔기에 힘든 줄 모르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이천성 목사는 장로교 신앙의 뿌리를 이어온 건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 나, 어린 시절부터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났다. n 청년시절 유명한 수영선수를 꿈꾸며 체육대학교를 졸업하였으나,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목회의 길을 서원하고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입학하였다. 재 학 중 전도사 신분으로 숭례교회에 부임하였고 합동신학대학원을 거쳐 오늘 에 이르게 되었다. 이천성 목사는 ‘건강한 교회’,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삶’을 목회의 지표로 삼고, 무엇보다도 주일학생과 청년부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가운데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아지는 세태를 감안하여 그들의 장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이 부모의 세대를 답습하지 않고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건강한 가정들 로 세워져 나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아야 한다 는 것이 이천성 목사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세속적인 문화의 홍수 시대에, 기독교 문화가 희박한 현실 속에서 주일학교와 청년들에게 기독교 문화를 심어주는 것을 이천성 목사는 목회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천성 목사는 말씀사역과 더불 어 찬양사역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다. r 지역가운데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찬양으로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이를 통해 교회로 인도하는 것, 그것을 위해 숭례교회는 노력하고 있 다. 그 가운데 숭례교회는 ‘하이워쉽(high worship) 숭례교회 유다의 사 자’ 라는 이름으로 찬양팀을 조직하고 지역가운데서 규모 있는 찬양사역 활 동을 감당하고 있다. 찬양 뿐 아니라 호주 힐송(hillsong church worship)의 CCM들도 직접 번역하 여 교회 안에서나 집회에서 사용할 정도로 찬양의 전문화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숭례교회는 주일 저녁이나 수요일 예배에 특별히 많은 수의 청년 부와 유초등부 학생들의 예배 참석률을 자랑했다. 이러한 사역은 CTS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에 초청을 통해 더욱 확장되고 있으 며 최근에는 장석교회 ‘장석 아트홀’을 제공받아 정기적인 강북지역 연합 집회를 주최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숭례교회는 청년들이 함께 기도하 고 함께 말씀을 나누며 뜨거운 찬양의 열기를 나누고 있다. 이천성 목사는 ‘하이워쉽 숭례교회 유다의 사자’ 라는 타이틀을 소개 할 때 이들을 찬양 군대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숭례교 회의 영적 부흥의 중심을 이루는 찬양 팀”이라며 앞으로 더 욱 변화 발전되어 찬양사역을 부흥시키고, 주일학교와 청년 또래에 자리 잡 은 기독교 문화를 통해 세상문화를 압도 하겠다는 열정을 내비쳤다. “비록 예배당은 협소하지만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이들 찬양 팀을 초청하고 함께 찬양의 열기를 공유하기 원하는 교회라면 어느 교회이든지 기쁨으로 나 아가고자 한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한편 숭례교회는 숭례교회 주최의 강북 청년 연합 기도운동을 통해 영적, 육 적 구제와 선교를 실천하고 있다. 또 지역의 교동협의회를 통해서도 구제에 참여하는 가운데, 공부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들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며 이들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 는 등의 일을 함께 감당하고 있다. 또한 선교에도 비전을 가지고 여러 선교 사들과 선교 기관을 후원하며 앞으로 선교에도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발 돋움 하고 있다. 숭례교회의 이러한 여러 가지 모양의 발자취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더욱 아름답게 열매를 거두어 숭례교회와 지역사회가운데 되돌아오기를 바라며 이 천성 목사의 소망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을 앞세우고 한걸음 한걸음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숭례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시편 기자와 같이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 할찌니이다.”라고 노래하는 숭례교회의 찬양군대의 모습을 기대한다. (이 은 숙 기자)
30 no image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로, 세영교회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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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0 2006-09-13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로, 세영교회 세영교회는 서울시 강동구 성내1동에, 일상의 삶과 호흡이 느껴지는 조그마 한 빌딩숲 사이로 위치하고 있다. 지역의 일상 속에 영혼의 호흡을 이어가듯 오랜 세월 복음을 들고 이곳에 자 리한 세영교회는, 1984년 5월 24일 강성일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당시 7명의 성도들과 함께 시작하였으나, 철저히 말씀중심으로 예배하며 가 르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장을 이루어 3년 만에 오늘의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었다. 강성일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앙생활을 이어오던 중, 청소년 시 절 말씀의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되는 것을 동경하였으나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하면서 10년 동안 사회생활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10년의 사회생활 가운데서도 청소년기에 품었던 꿈을 잊지 못하고 결 국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총신대학교 목회 연구원과 합동신학대 학원을 졸업하고 세영교회를 개척하였다. 목회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목회 에 전념하면서도 미 국 리버티대학(Liberty University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학위(D. Min) 과정을 마쳤다. 강성일 목사는 개척당시에 품은 뜻 그대로 철저히 말씀 중심으로 성도들을 가르쳐, 인격과 내면이 변화 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을 목회의 지표 로 삼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제자훈련, 셀 모임, 총동원 전도 등이 집약된 프로그램으로 서 ‘목회종합양육시스템’을 받아들였다. 이는‘십자가의 길’이라는 교재 를 중심으로 새 신자 기초훈련을 비롯하여 제자훈련과 파송, 전도, 기도, 치 유 등의 내용으로 6개월간의 훈련기간을 거쳐 리더를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리더들이 나아가 하나님 앞에 진실로 헌신하며, 세상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추고 그들의 삶이 믿음으로 변화되는 열매가 맺어질 것을 강 목사는 기대하고 있다. 한편 세영교회는 각 기관이 남 녀 구분 없이 위원회로 구성되어 예배, 선 교, 교육, 구제, 친교 봉사 등의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성도 들이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고 있다. 특별히 선교위원회에서는 14명의 해외 선교사들을 후원하던 중, 현지 생 활 의 애환을 덜어주고자 하는 방편으로 1년에 한번 입맛에 맞는 한국의 토속식 품을 조달해 주는 이색적 후원을 하고 있다. 그밖에도 구제위원회에서는 지역 내 소년 소녀 가장을 돕고 고아원 방문, 봉 사 및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의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에 강성일 목사도 성내1동 교동협회 회장으로 섬기며 지역의 구제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성일 목사는 “아직 교회가 여러 가지 일들을 감당함 에 있어 답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늘 고심하고 있다. 새로이 고 안한 목회의 지표를 통해 보다 더 풍성한 영적성장을 이루어 세영교회가 지 역사회가운데 큰 믿음과 사랑으로 자리매김 할 것을 기대하며 노력할 것이 다.”라며 겸손하면서도 강한 열정을 내비쳤다. 강성일 목사는 이어서 세영교회에 대해 “아직은 기도와 전도에 취약한 면 이 있으나, 신앙의 인격과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점들 이 말씀에 중심을 둔 교육과 훈련으로 평안가운데 채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 다”고 진솔하게 덧붙였다. 세영교회는 앞으로 ‘목회 종합양육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성도들을 교육하여, 열심히 전도하고, 새로운 신자들을 양 육하여 이들을 파송 하는데 까지 이르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한편 강성일 목사는 은퇴 후 목회 초년생들을 위해 목회자 상담 및 이들을 교육하는 일로 섬기는 것도 계획하고 기도하고 있다. 이는 강성일 목사가 자 신의 목회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이에 대해 고심하며 배운 목회의 경험을 후 배들에게 가르쳐 보다 많은 시간을 시행착오가 아닌 알찬 사역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 목사는 대화중에 기대한다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고 기쁜 일이다. 그러나 세상가운데 살다보면 처한 환경에 익 숙해질수록 기대하는 마음보다는 체념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많 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절망적인 역사적 환경 속에서도 소망가운데 오 늘의 신앙의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삶을 대할 때 늘 기대와 소망을 두고 기쁨으로 주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 이다. 바로 그렇 게 기대와 소망이 그 마음에 풍성하여 그 만남이 즐거웠던 세영교 회를 통해, 다시금 영적 감수성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 소망을 둔 그 복된 기대로, 일상가운데 깃들어 있지만 꼭 필요 한 것, 바로 그러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으며, 또한 이름이 담고 있는 소망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널리 전파하는 세영교회가 되기를 기대 하며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29 no image 하나님의 온전한 그릇으로 담고 싶습니다-배성희 집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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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4 2006-09-06
“나의 인생을 하나님의 온전한 그릇으로 담고 싶습니다.” 배성희 집사 도자기공예사는 심혈을 기울여 빚은 도자기를 조금의 미련도 없이 깨버린 다. 그것은 우리의 눈에 보기에 아름다워도 공예사의 눈에 흡족하지 않기 때 문이다. 도공은 조금의 흠도 없는 온전한 양질의 그릇이 나올 때까지 자신의 피와 땀 이 베인 도자기를 깨고 또 깬다. 그렇게 이 세상에 또 없는 고귀한 보물로 하나의 도자기를 탄생시킨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존귀한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끊임 없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황 청소년 같은 이웃을 섬기며 살겠다 는 열정으로 소년보호직렬 부문 행정고시 수석합격에 이르게 된 배성희 집사 를 소개한다. 배성희 집사는 1973년 6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에게서 신앙을 물 려받고 어린 시 절부터 믿음생활을 이어오던 중 대학에 진학하면서 잠시 영 적 방황을 맞게 된다. 아직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건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배 집 사는 교회에서 접하지 못했던 다른 지식, 다른 가치관, 다양한 사람들을 접 하며 종교라는 것에 갇혀 산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들과 함께 깊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자신이 속해있던 선교 동아리 간사와의 대화에서 성경말씀을 배워보고 싶은 갈망이 생겼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올바로 깨닫게 되었 다. 그러한 경험은 배성희 집사에게 있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계 기가 되었다. 그 이후 “내가 하나님 안에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라 는 내밀한 고민은,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옆으로는 이웃을 돕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가난한 마음으로 귀결되어졌다. 그러나 대학교 졸업과 함께 찾아온 직장생활의 현실은 대학시절의 결심과 멀 어졌고 점점 인생의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는 갈망만이 증폭되기에 이르렀 다. 그러던 중 대학시절 동아리 간사의 소개로 남편 고영호 집사를 만나게 되었 다. 남편 과의 교재는 자신의 갈등과 고민을 의논하며 용기와 힘을 얻는 삶 의 충전이자 작은 도전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두고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하였으 나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직장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뒤, 2001년도 결혼 과 동시에 남편의 지지를 얻어 대학원도 다니게 되었다. 대학원 졸업 후, 교도소 수감자 및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돕고 싶다던 결심 을 떠올려 남편과 의논하던 중 남편을 통해 행정고시 5급 시험 과목으로 소 년보호직렬이라는 업무(보호 소년과 가 위탁소년들을 수용보호하고 교육 및 기술 훈련을 통한 직업 보도 즉 소년원 및 소년 감별소의 운영 감독하는 일) 가 있어 이를 통해 배 집사의 서원한 바를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정보 를 듣고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마침 남편 고영호 집사는 자신의 고시공부 노하우를 살려 고사학원 강사 일 을 하고 있었으므로 배성희 집사에게 교재 선정을 비롯하여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공부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첫아이 임신이라는 현실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로인해 2003년 출산을 하 고 공부를 쉬던 중 2004년도 소년보호직렬 부문 시험공고가 나고 그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그 분야를 모집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이러한 막막함 속에서 배성희 집사는 기도하는 가운데 시험에 응시하기를 결 심하게 되었다. 남편과 어머니의 도움으로 5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하루 8시 간씩 공부하여 1차 시험 합격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2차 시험도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도우심으로 두 아이를 선물로 받았 으며 어려운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게 되는 열매를 거두었다. 배성희 집사는 현재 둘째 아이 출산으로 미루어 두었던 연수를 받으며, 하나 님이 맡겨주신 새로운 인생의 길목에 서있다. 그리고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그 길을 힘차게 내딛으려 한다. 소년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라는 생각으로 청소년 비행 범죄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교화에도 중점을 두어, 일시적 교화가 아닌 영혼의 이성과 지성이 모두 변화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배 성희 집사의 비전 이다. 세례 받은 이성으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을 통해 바울 사도의 기도(엡 1:19)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되는 질 그릇 같은 배성희 집사의 앞날을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28 no image 말씀의 샘물을 공급하는 한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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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1 2006-08-30
말씀의 샘물을 공급하는 한사랑교회 우리가 마시는 물은 세상의 많은 물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한 물이다. 그것으 로 우리는 생명을 이어가고 우리 육체의 갈증을 해결한다. 우리는 이러한 물 을 더 깊고 맑은 곳에서부터 찾아내어 우리의 생명수가 되기에 알맞게 끊임 없이 정화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도 많은 지식이 있지만, 그중에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는 진리는 오직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밖에는 없다. 우리 교회들도 말씀으로 바로 세워지고 교회의 본질을 말씀 안에서 찾 아내어 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이들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해 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렇게 상하고 갈급한 영혼들을 진리의 생명수로 인도하는, 영혼구원 에 대한 정직한 갈망이 있는 교회,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다 버리고 오직 말 씀중심의 개혁주의신학을 추구하는 건강한 교회, 서울시 송파구 마천동에 위 치한 한사랑 교회를 만 나 보았다. 한사랑 교회는 1987년 11월 30일 나종천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당시 많 은 교회가 있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 당시 교권으 로 얼룩져 있는 교회들의 현실에서 바른 신학 위에 세워진 다른 많은 교회들 과 함께 보다 건강한 교회들로,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는 데 필요한 교회가 되고자 소망하며 개척하기를 결심하였다. 나종천 목사는 마태복음 9장 36~38절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 기시고 가르치시며 전파하고 고치시는 그 사역을 본받아 세상을 위해 존재하 는 교회로서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영적인 필요와 육적필요를 채워주는 교회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영혼으로 온전히 고치고 채워 나가기를 힘쓰며 오늘의 한사랑 교회가 되기에 이르렀다. 한사랑 교회는 위와 같은 영적 필요를 위해 목장 교회라는 목회시스템을 고 안하였다. 목장 모임은 초대 교회와 같은 교회를 회복 하고자 평신도 사역자 인 목자를 세워 귀한 영혼을 위임하고 그들이 기쁨으로 사역하게 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아가는 것을 위해 주님께서 지상명 령으로 말씀하신 주님의 제자를 삼는 것과 가르치며 전파하고 고치는 주님 의 지상 사역을 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한사랑 교회는 평신 도 사역자인 목자를 계속 세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사역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한사랑 교회는 예수님의 고치시는 그 사 역을 본받아 지역사회 가운데서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280여명 수용하여 사단 법인 한빛청소년대안센터를 운영하면서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상 한 마음을 치료하며 이들에게 영혼의 생명수와 같은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 운 사랑을 실천 하고 있다. 이렇게 사랑의 울타리에서 자란 아이들이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도 진학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등의 많은 열매로 이어졌다. 또한 1년에 한번 지역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비롯하여 평상시에도 지역 의 노인들을 섬기기 위해 매주 수요일 노인들을 모시고 떡을 나누며 예배드 리고 기도하는 모임을 지속하고 있고 독거노인들에게 음식을 배달해 주는 일 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 가운데 한사랑 교회의 또 하나의 비전은 청소년대안센터와 같 이 노인센터를 운영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의 마르고 상한 영혼에 맑은 생명수인 복음을 전하고 이들의 상하고 고단한마음을 말씀으로 치유하며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 그 것이야 말로 한사랑 교회가 추구하는 목회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한사랑 교회는 세계선교에도 자리매김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2명을 선교사로 파송하였고 11명을 물질로서 후원하는 가운데 특히 인 도네시아 순다족 3200만 명을 중점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그 족속에 대한 비 전을 가지고 나종천 목사는 순다족 선교회 회장으로 일하며 기도와 후원을 하는 등의 귀한 사역들을 널리 이어가고 있다. 또한 중국의 신학교인 조선족과 한족 신학교에 1년에 세 번 정도 강의를 하 면서 물질적 후원을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귀한 사역에 동참하고 몸소 섬기고 있으면서도 나종천 목사는 “나 같은 부족한 자를 사용하셔서 여러 가지 귀한 사역에 사용하시 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라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말한다. 더불어 나종천 목사는 한사랑 교회에 대해 한 세기의 아름다운 비전을 위해 함께 걸어가는 행 복한 사랑의 가족공동체라고 말을 이었다. 필자는 온전히 내 존재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나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한 사랑 교회를 만나며, 가만히 두면 죄악으로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 앞에 우리존재의 신성함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현실에 대하여 고 민하게 되었다. 곧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야만 하며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론으로부터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한 국 모든 교회와 공유하기를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27 no image 복음의내일을갈망하는 새벽의 기도로 세워진 강성교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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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4 2006-08-23
복음의 내일을 갈망하는 새벽의 기도로 세워진 부평강성교회 밤에서 새벽으로 가는 길은 전심으로 살아낸 어제에서 고단한 몸을 정결하 게 누이고 맞이하는 오늘의 뒤안길이다. 어둡고, 고요한 밤에서 조금은 고독 하기도 한 새벽으로의 길은 내일의 소망이 있기에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우 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희망의 길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고단한 하루를 부지런한 걸음으로 재촉하며 살아가는 이유도 이러한 내일의 갈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아침으로 가기 위해 고독한 뒤안길을 걸어야하는 때가 있을 것이 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주어지 는 특혜일 것이다. 마치 내일을 갈망하는 사람들만이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동터오는 새벽의 뒤안길에서 얼마나 정결하게 오늘을 맞이하는지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사모하는지 생각해보기를 바 라며, 오늘 여기 바로 그러한 간절함으로 복음의 내일을 갈망하는 새벽의 기 도로 세워진 교회,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복음이 없이 황량하고 어두 웠던 지역에 밝은 진리의 씨앗을 품고 고독한 어제의 뒤안길을 묵묵히 걸어 온 교회, 그리하여 오늘의 영적 부흥에 이른 교회,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동 에 위치한 부평 강성교회를 소개한다. 강성교회는 1984년 4월 22일 이철호 목사에 의해 설립되어 지역 사회가운데 ‘열린 교회’, ‘교육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라는 3대 목표와 함 께 22년의 역사를 통하여 헌신하며 달려온 교회이다. 이철호 목사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으로부터 목회자가 될 것을 권 고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삶을 드리기를 서원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인해 서민적 삶을 잘 체득했 던 이철호 목사는 다소 서민적인 지방 소도시이며 교회가 없는 지역으로서 부평 효성동을 택하여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당시 강성교회의 주위 환경으로는 넓은 배밭 가운데 저층아파트와 연립 등 이 있어 약 300 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이철호 목사는 “하나님 께서 나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가!”라고 자문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목회 의 삶을 살기 위해 어렵고 힘든 여건이었음에도 이를 겸손히 받아 안고 하나 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도록 온전히 내어놓은 채 ‘영적인 고독’을 기쁨으로 여겼다. 그렇게 내일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그 지역에 개척을 감행하였고, 예배를 통 해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며 건강한 신앙을 계승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 쓰는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목사는 신학생 시절 전도할 때면 ‘예수님을 믿고 싶으나 교회가 싫어서 믿지 못한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을 고려하여 무엇보다도 지역공동 체로서의 교회를 세워 지역주민들에게 필요한 교회가 되기 위해 불신자들에 게 열린 교회가 되는 것을 목회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교회 1층에 있는 카페에 자신감 있게 놓여있는 당구대만 보더라도 이런 그 의 철학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지역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화공 간과 교육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지역 내에서 함께 교제(communication)하 며 전도하는 방편으로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만한 문화 공연단을 초청하거나 직접 공연을 열기도 하고 교육프로그램으로 원어민 영어강좌, 배 드민턴 클럽, 농구 클럽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을 전도하고 교육하는 교회가 되고자 ‘관계전도’를 통해 믿지 않는 이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고 60%의 성취를 이루어내는 등 많 은 열매를 맺고 있다. 최근에는 특별히 장년에 비해 주일학생들이 줄어드는 추세를 고려하여 아이들에게 보다 즐거우면서도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미국 에서 성공했던 ‘코너학습’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의 코너를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 어 각자 원하는 취미에 따라 선택하여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이를 통해 설교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 역들에는 기독교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깊게 배어있다. 이것은 교회가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융화해야만 한다는 이철호 목사의 교 회관의 열매이다. 또 이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여 매 해마다 새로운 세례교인 의 증가수를 건강한 교회의 지표로 삼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 목사는 “문화는 유대하는 것이지만 신앙은 계승하는 것이다.” 라 고 말하며 지역뿐 아니라 시대적으로 만연한 또래문화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기성세대와 함께 신앙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과 장년들이 모 두 함께 예배에 동참하도록 했다. 이것은 또래들만의 문화를 인정해 주면서 도 기성세대와 함께 걸어가는 신앙생활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교육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육관 확장을 위한 예 배당 건축도 계획 중에 있다. 강성교회는 선교와 구제에도 힘쓰고 있다. 정기적으로 이웃을 위한 밤을 열 어 전 교인이 구제헌금에 동참하도록 하며 매주 헌금의 30%를 선교에 사용하 고 있다. 또한 주파송한 선교사들 뿐 아니라 선교지의 지도자를 양육하기 위 해 현지 신학교를 후원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 목사는 개인적으로 선교사들의 가정문제와 자녀 교육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돕기 위해 선교사 케어 프로그램 및 영구귀국 후 목회에 대한 방법 론적 코칭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 교회의 연합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세워 나가기 위 한 케어(care) 프로그램을 통해 개척교회와 미 자립교회들의 회복을 위한 교 육학교를 열었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시작은 고독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결과인 ‘넘치도록 풍성 함’을 강성교회는 경험하고 있다.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는 영적 인 고독이야 말로 하나님의 복주심(blessing)의 시작이라고 하였는데 강성교 회와 이철호 목사는 그것을 실재로 확인시켜주는 교회였다. 아직 교회 앞에 는 예전의 공터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고독의 상징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강성교 회 성도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제 더 풍성한 성령의 배밭으로 변화될 지역 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도한다. ( 이 은 숙 기자)
26 no image 전통과 내실을 갖춘 송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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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3 2006-08-16
전통과 내실을 갖춘 송월교회 누구나 한번쯤은 시골의 고요한 밤과 낮고 크게 뜬 달, 선명한 별빛의 밝음 속으로 시선을 묶어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도심에는 없는 깊은 어둠 속에 더욱 밝음의 역설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 어둠과 밝음의 메타포를 끌어들여 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별과 별이 어둠 속에서 서로 소리 없이 스미고 뒤섞이어 우리의 삶으로 까 지 비춰질 수 있는 것은 별이 하나이지 않고 수없이 많음인 때문일 것이고 또한 그렇게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살면서 더불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움인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러기에 오랜 역사 속에서 저마다 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모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온전히 밝은 달과 별을 떠올릴 것만 같은 화창한 날에 아름다운 교 회,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며 우리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별과 같이 빛나기를, 또한 그 마음의 별들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가운데 하나가 되어 하늘의 별처럼 세상 을 아름답게 비추기를 함께 소망한다. 이 땅 가운데 그리스도의 소망의 빛을 심기위해 애쓰는 교회, 전통과 복음 안에서 더욱 새로운 전통을 세워나가고자 하는 교회, 전 세계 모든 교회와 한 영으로 교통하며 어우러져 복음의 빛을 발하기를 소망하는 교회, 인천광 역시 중구 자유공원에 위치한 송월교회를 만나보았다. 송월교회는 6. 25의 포연이 자욱하던 1953년 4월 12일 피난 중이던 약간 명 의 성도들이 자유 공원 기슭에 모여 기도하면서 시작된 교회이다. 그동안 53 년이라는 긴 역사만큼이나 우리나라의 역사적 물결과 함께 항해해 온 교회라 고도 말 할 수 있는 송월교회는 지역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영국 독일 영 사관’, ‘최초의 기상 관측소’, ‘최초의 자장면 발원지’, ‘우리나라 개 항의 진원지’등의 여러 역사적인 변화의 세례 속에서 자유공원 높은 곳에 지금은 동북아의 출입문이 된 인천항을 바라보며 서 있다. 송월교회 박삼열 목사는 고등학교 때 목회자가 되리라는 마음을 가졌다. 그 후 훌륭한 많은 은사들과의 만남이 있는 중, 박윤선 목사와의 담임목사와 부 교역자로서의 만남은 그의 생각과 사역에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박윤 선 목사가 강조해 준 ‘계시의존사색’, 그것은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 임과 동시에 모든 기독교 사역의 진원지라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 거기서 받은 은혜와 힘으로 영혼을 건지 는 훈련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통하여 신학 의 뼈대를 갖추고, 후에 로이드 존스 목사가 세운 영국 런던신학교(Lond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한 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리처치대학원 (Free Church of Scotland College)에서 교회사 속의 한 인물을 정하여 그 를 중심으로 기독교 목회철학에 대해 탐색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장로교 고향 땅의 옛 지도자들이 생각했던 목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리 작업이었다. 그러던 중 1992년 8월 초, 모 교회인 송월교회의 부름 을 받아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박삼열 목사는 ‘목회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며 영혼을 건지고 양육하 는 일’이라는 생각 하에 일찍부터 송월교회의 5대 강조방향을 ‘예배하는 교회’, ‘훈련하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내일 을 준비하는 교회’로 설정하였다. 그렇게 진행해 오다가 후에 알게 된 릭 워렌(Rick Warren)목사의 강조 역시 그 비슷한 5가지임을 알고 남모르는 미소를 지어도 보기도 했다고 박목사는 전한다. 그러한 기둥들을 기초로 송월교회는 오래 전에 제직회를 70여개의 사역 팀으 로 전환하였다. 세계선교의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갱신이 필요하다고 말하 는 박 목사는 뜻 밖에 한국교회의 유산에 대해서도 의미 깊은 말을 한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들을 받았다. 새 벽기도, 수요기도, 주일저녁예배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있다. 새로움에 대 한 적응 못지않게 옛 유산들을 날로 더 기름지고 풍성하게 할 수 있어야 훌 륭한 목회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것은 시대의 조류에 영합하지 않고 예전의 귀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성경 적으로 심화시킬 것인가를 위해 고민하는 가운데 이러한 귀한 전통을 이어받 아 기름진 내일의 신앙으로 살찌우는 것을 지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박 목사는 특히 설교를 준비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 님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은 후 동시에 성도들의 현실 을 깊게 고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설교에는 부르심, 배움, 위임이라는 3대 단계가 항상 고려되어 있다. 송월교회는 인천지역에서 아름다운 소문이 있는 교회이다. 왜냐하면 오랜 동 안 보이지 않지만 그러한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기 때 문이다. 주일학교 교육만 살펴보더라도, 이미 영어주일학교, 중국어 주일학 교, 영아들을 위한 화요일 아기 학교,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예수님처럼 크 기를 원하는 ‘예크’ 문화교실 등이 있다. 특히 등록 신자가 아닌 불신자 가정들도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 다. 그래서 ‘송월교회는 아이들을 맡기기에 좋은 교회’라는 좋은 소문이 나있다. 그것은 불신자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성경적인 노년을 목표로 하는 목요 경로대학 및 무의탁 노인들에게 말 씀을 가르쳐 주고 라면을 나누어 주던 것에서 시작된 금요일 무료급식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누룩’이라고 하는 전도 편지 팀이 있는데 이것은 조용한 성 품의 성도들이 어려운 고난 가운 데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엽서를 보내는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재는 전국의 27개 구치소와 교도소의 130여명의 수 감 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보내주어 그들이 말씀으로 교화되고 훗날 교회 에 찾아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는 등의 열매가 맺어졌다. 이렇듯 지역가운 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 송월교회는 끊임없는 노력 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깊은 맛을 내는 누룩들의 노력들은 지역 안에서 좋은 소문과 함께 성 도들의 부흥으로 이어져 지금은 지역사회 여러 분야에 성도들이 깊이 뿌리 내리게 되는 열매로 맺어졌다. 박삼열 목사는 이에 대해 “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이 거듭나기 시 작하면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새로운 하나님의 사회가 형성이 되는 것을 체험 하게 된다”며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현재 송월교회는 고등학교 이상 어른들이 2,700명을 넘어서고 학생부가 800 명에 달하면서 구예배당에 인원수용이 더 이상 힘들어져 재건축을 시행하게 되었고 지금은 70%이상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를 도약으로 하여 박삼열 목사는 구역 조직들이 더욱 새로워지고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글로벌한 마인드를 함께 가지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또한 재건축에 이어서 자유공원기슭의 일제 시대부터 내려오던 목사 사택 부 지를 인천시에 기증하여 선교연합 기념관 사업승인을 받았고 곧이어 언더우 드-아펜젤러 기념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기념관은 인천 혹은 한국 선교 역사 자료 센터 및 선교사님들을 위한 숙 식제공 등의 다목적의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여러 사역의 중심에는 함께 고민하고 순종하며 울타리가 되어준 성도들이 있었다고 박삼열 목사는 고백한다. 매튜 헨리는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엘리야여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물음에 좋은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하였다. 필자는 송월교회를 통해 온전한 복음의 빛을 비추고자 하는 그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곧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 는 교회라고 생각되어졌다. 아름다운 송월교회 성도들과 함께 죄악된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국 모든 교회와 더불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기를 소 망한다. (이 은 숙 기자)
25 no image 바른 전통속에 변화 추구하는 염광교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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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2 2006-08-02
바른 전통속에 변화 추구하는 염광교회 계절이 바뀌면 그 계절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내음이 있어, 그 내음도 함께 바뀐다. 그 중에서도 가을의 바람과 햇빛 속에는 향토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특별한 냄새가 있다. 제 살들은 지나간 계절에 다 내어 주고 제 껍데기를 태워 다음 생명을 간직 하는, 꾸밈없고 정직한 씨앗을 남기는 계절이기에 그러한가보다. 장마가 끝나가는 여름의 한자락 아래, 동전의 양면처럼 이내 말갛게 초연 한 얼굴을 하고는 정결하게 가을을 갈망하는 눈빛인양 한 하늘을 보며 한국 교회가 이러한 가을처럼 아름다운 향내를 간직한 교회가 다되어지기를 소망 해 본다. 오늘 여기 “정말 자랑할 것이 없다”며 꾸밈없는 겸손한 웃음을 가진 교 회, 바른 신앙의 전통가운데 말씀 중심의 바른 미래를 이끌어가는 교회, 한 결같은 사랑으로 소박한 나눔을 실천해온 가을을 닮은 교회,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염광교회를 소개한다. 염광교회는 1981년 9월 20일 배기주 목사에 의해 설립되어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합신의 정신을 바탕으로 25년의 역사를 달려온 교회 이다. 현재 담임목사인 안만길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평온한 신앙 생활을 해 오던 중 일가에 목사로 시무하는 가족의 영향으로 목회에 대한 사 명을 깨닫게 되었고,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거쳐 목회자로서의 삶 을 시작하여 사역을 감당해 오던 중 2001년 3월 누리교회 목사로 시무하다 염광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삶으로 귀결되기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안만길 목사는 고백한다. 안만길 목사는 하나님 중심과 성경중심의 목회를 통하여 영혼구원에 힘쓰고 복음 전파와 세계선교를 하는 것을 목회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설교를 통해 바른 신학에 기초한 성경말씀을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시대와 삶에 필요한 적용을 함께 하여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혼 돈의 시대에서도 진리를 붙들고 견고히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더욱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 하여 안 목사는 구역조직을 발전 시키는 것을 고안하였고 남녀노소 전 교인이 함께 참여하는 소그룹 형식의 구역모임을 조직하여 교구와 연령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성도들을 하나로 연합시키고 그 안에서 말씀과 삶을 나누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또한 주일학교와 7세 미만 어린이 교육에도 중점을 두어 7세 미만 어린이 부 서에까지도 전도사를 사역자로 세워 말씀중심의 체계적인 교육이 활성화 되 도록 하였다. 말씀 중심의 교육이 선행되고 또한 기도와 물질로 해외선교와 국내 농어촌 교회 협력, 더불어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까지도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 염광 교회는 노력하고 있다. 이에 온 성도들이 마음을 합하여 협력하고 동참하는 가운데 마침 공간이 허락되어 올해, 선교사들의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선교 관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이는 선교사들을 가까운 데서부터 돕고 협력하여 선교사들이 온전히 현지의 복음전파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협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오랜 역사가운데, 꾸준히 농어촌 지역의 미력한 교회들을 협력하고 교 류해 오는 가운데 국내 어느 곳이라도 복음전파의 손길이 끊어지지 않기 위 해 기도하며 물질적 협력을 지속해 왔다. 그리하여 국내외의 균형 잡힌 선교 협력을 위해 힘써오던 중 최근에는 국외 선교사들과 더욱 하나 된 마음으로 협력하고자 매주 수요일마다 모든 성도들 이 함께 선교편지를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한 염광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매달 첫 번째 주 수요일 점심에 지 역의 노인들에게 중식을 제공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자원하는 성도들이 머리 를 깎아주고 침도 놓아 주는 등의 소박하지만 한결같은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다. 안만길 목사는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해야 할 사역들을 감당하 고 있는 것이지 정말 자랑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자랑할 것이 있 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끈끈한 사랑으로, 꾸준하고 성실하 게 믿음생활을 해오는 성도들이라며 교회의 오랜 역사의 저력에는 이렇게 끊 어지지 않는 사랑을 지닌 성도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처음 염광교회를 “매우 전통적인 교회이다, 바른 전통 속에서 바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는 안만길 목사의 짧은 한마디 말을 떠올리며 바로 그 ‘바른 전통’은 오랜 세월 한결같은 사랑을 이어온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 을 통하여 이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안만길 목사는 이어서 말했다. “전통은 무시되어질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선진들의 바른 신앙의 전통을 기반 으로 해서 살을 붙이듯 서서히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고. 이것은 교회의 바른 신학 안에서 말씀중심에서 더욱 말씀중심으로 채워 져 나아가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염광교회는 세상가운데 깃들었지만 세상에 길들여지 지 않고 지역가운데서 복음으로 우뚝 선 바른 신학의 전통을 소유한 또한 그 가운데 바른 미래를 이끌어갈 교회가 아닐까 기대하며 이를 위해 함께 기 도한다.
24 no image 은혜의 골짜기(the Valley of Grace)를 이루는 은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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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8 2006-07-11
은혜의 골짜기(the Valley of Grace)를 이루는 은곡교회 뿌리가 건강한 나무는, 겨울 내내 서리 옷으로 마른 살을 덮고 있을지라도 봄의 신비로운 기운이 닿으면 곧 겨울의 냉랭함을 벗고 푸른 잎사귀를 무성 하게 늘어뜨린다. 그뿐인가, 우리에게 색색의 꽃과 열매를 자랑하는 풍성함도 보여준다. 그 풍 성함은 해가 갈수록 더하며 우리의 마음까지도 풍성하게 한다. 교회도 그러하다. 찰스 스펄전 목사가 표현한 것과 같이, 오랜 역사가운데 때로는 겨울처럼 시린 계절을 견딜 때도 있겠지만 그러한 시간이 지나고 나 면 오래 지나지 않아 온 마음 속 작은 봉오리들이 활짝 꽃을 피우는 때를 맞이할 것이다. 이와 같이 건강한 뿌리로 오랜 세월을 지탱해오는 교회는 깊 은 믿음과 높은 소망들로 풍성하다. 바로 그렇게 오랜 세월 욕심 없이 고요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말씀위에 뿌 리 내려온 교회, 은혜의 골짜기가 되어 주님의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높은 소망과 깊은 믿음을 가진 교회 , 서울시 관악구 봉천1동에 위치한 은곡 교회를 만나보았다. 은곡교회는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67년 8월 13일 이무호 목사에 의해 봉 신 제 6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1년 뒤인 1968년 6월 9일 현재 원로목사로 있는 박윤성 목사가 부임 하여 교회 명칭을 은곡교회로 개칭하였다. 현재 은곡교회가 소재한 지역은 그 당시 동네에 큰 당집이 있어 당 골 즉 당 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당곡’이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큰 느티나무가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을 당 골이 아닌 은혜의 골짜기로 바꾸자 는 의미에서 은곡교회라 이름 하게 된 것이다. 박윤성 목사가 1968년부터 1997년 4월 25일 까지 시무하고 1997년 심정현 목 사가 부임하였고 1999년 9월5일 지금의 허태성 목사가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 게 되었다. 허태성 목사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으나 교원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선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원대학교를 졸업하고 8년 동안 교 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목회에 대한 사명을 느꼈고, 합동신학대학원에 들어가 목회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사역을 감 당해 오던 중, 1999년 강변교 회 부목사로 시무하다 은곡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허태성 목사는 무엇보다도 말씀중심의 목회를 통해 성도들이 말씀을 깨닫고 내면이 먼저 변화되고 습관이 변화되는 믿음의 진보를 주안점으로 삼고 있 다. 개인적인 특별한 특색을 추구하기보다 성경말씀 가운데 맞추어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 성경말씀 전체를 고루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교사 출신이라 는 경력을 살려 교육 목회로 방향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그의 목회방침은 교육을 통해 말씀에 바른 지식을 가진 성도들을 양 성함으로써 참다운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내는 선교, 가는 선교’의 균형을 잡기가 힘든 현실에서 이러한 교육은 스스로 헌신을 다짐한 성도를 교회에서 교육하고 지원하여 캄보디아 선교사 로 파송하게 되는 열매로 맺어지기도 하였다. 이 뿐 아니라 필리핀에 현지인을 위한 교회를 헌당해 필리핀 제 2 은곡교회 라는 이름으로 세웠고 그것을 도약으로 현지인을 목회자로 양성 할 수 있는 신학교 건립을 위해서도 기도 하고 있다. 이는 미전도 종족 선교를 위한 밑 걸음으 로 크게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열매들이 있음에도 은곡교회는 “역사에 비해서 해온 것이 미비하 다. 선교에 힘쓰는 교회가 이제 막 되어보려고 한다”고 소탈하게 웃으며 성 도의 반이 선교위원회에 가입되어 13교회를 후원하고 있으나, 선교 뿐 아니 라 지역사회가운데서도 온전히 자리매김하고 있지 못한 것이 은곡교회의 숙 제라고 진솔하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기도와 교육 그리고 헌신으로, 선교의 부흥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위해 힘쓰기를 소망하며 그 뿐 아니라 예배당 재건축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 오랜 역사와 이름에서 베어 나오는 향토적인 느낌 때문일까, 허태성 목사는 은곡교회를 가족적이고 도시교회 같지 않은 전원적인 교회라고 그 느낌을 전 했다. 허태성 목사가 부임하기 전, 교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 만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평안해졌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때로는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어려움 가 운데서도 오직 말씀만으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든든한 평안을 이루는, 교 회의 이름 그대로 은혜의 골짜기(the Valley of Grace)를 이루는 은곡교회 가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의 참 평안을 누릴 때만이 상처의 초상화도 은혜의 풍경화로 바뀐다 는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표현같은 은곡교회가 되기를, 시련을 통해 아침 해와 석양을 바라보는 눈을 변화시키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서 하나님 의 은혜를 우리 영혼에 예민하게 각인시키는 은곡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 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23 no image 아름다운 변화를 사모하는 교회 - 일산은혜교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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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3 2006-07-05
아름다운 변화를 사모하는 교회 일산은혜교회 물이 없는 꽃병의 꽃과 같이 목이 마를 때, 꽃병에 물을 갈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보아야할 때가 있다. 한국 교회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변화되기를 사모하는 교회, 정체된 걸 음을 재촉하는 교회, 아름다운 변화를 한국 모든 교회와 나누고자 하는 교 회, 경기도 고양시 마두동에 위치한 일산은혜교회를 만나보았다. 교회를 만나고 그 안에 한 사람인 나를 만나며,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다 시금 감사하고 그 소망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돌아보게 됨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산은혜교회 강경민 목사는 처음 기독교적인 사회변혁 운동을 위해 신학을 시작하였는데 신학을 공부하던 중 교회가 바로 되어야 사회변혁도 가능하다 는 인식 하에 영혼구원을 통해 사회가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목회의 길로 들 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6년에서 1995년까지 서울 반포에 위치한 남서울교회를 섬기다 가 1995년 11월 남서울일산교회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개척을 했다. 이어서 1999년 11월 25일에는 일산영락교회와 남서울일산교회를 통합하여 구 일산영락교회에서 통합예배를 드리고 1999년 12월 5일 일산은혜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강경민 목사는 개교회(individual church) 주의가 아닌 보편적 교회 (universal church)를 추구하는 목회 철학으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는 교회’, ‘예수님의 정신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 라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워 시대와 문화에 영합하지 않은 교회의 보편적 정체 성을 일산은혜교회에 담아내는 것으로서 목회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상의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강경민 목사는 ‘가정교회’라는 목회 시스템을 계획 하였고 또한 그 정신을 한국교회와 나누며 그것을 성공시키는 것을 하나의 목회적 비전으로 삼고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의 정신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라는 목표를 실천하 기 위해 지역사회의 65세 이상 어머니들을 위한 정기적인 효도 관광을 비롯 하여 2000년도에는 호스피스사역을 위한 자원 봉 사자교육을 시행하여 일회성 이 아닌 지속적인 봉사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고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고 루 지원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에 힘써왔다. 그러한 노력들은 기독교 윤리 실천운동에서 선정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 는 교회로 선정되는 등의 열매로 맺어졌다. 그러한 일로 상금을 받기도 하였 는데 그 상금 전액을 암환자를 돕는데 사용했다는 미담(美談)도 전해진다. 강경민 목사의 목회 비전에는 분명한 컬러가 베어 나온다. 항상 바른 신학 의 기초 위에 바른 교회를 세우고 바른 삶을 살기 위해 힘써 왔으나, 주님께 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좋은 일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 했던 분명하지 못한 신학적 안목을 가졌다고 강 목사는 솔직히 고백한다. 그의 이러한 목회 비전의 정화와 개혁의 산물이 바로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 의 건강한 몸으로서의 가정교회라는 목회 시스템이다. 가정교회란 평신도가 지도자가 되어 가정에서 6~12명이 매 주일 한 번 이상 모이며, 지역교회(local church)의 직 능(예배, 교육, 친교, 전도(선교), 봉 사(사랑의 실천))을 다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가정교회는 성경적이고 (로마 서 16:3~5, 14, 15; 골로새서 4:15; 빌레몬서 1:2) 1세기와 마찬가지로 20세 기에도 효과적이다. 이미 중국 가정교회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가정교회는 크기보다는 모이는 장소에 중점을 두며 사역이 아닌 신약교 회의 회복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셀교회(cell church)와 차별되며 같 은 지역 사람간의 구성이 아닌 회원의 선택에 의한 구성이며 독립적 개체로 서 여러 가정교회들이 모여 ‘일산은혜교회’를 이루며 단순한 친교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의 사역을 다한다는 점에서 구역모임과 차이를 갖 고 있다. 또한 가정교회는 기존 신자들의 훈련 모임은 분명하지만 불신자들도 참석하 여 삶을 나눌 수 있다는 점(sharing community)에서 제자훈련모임과도 차별 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가정교회 사역을 통해 교회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목적이자 지상명령 인 영혼구원을 실천하고 이를 통해 수평이동에 의한 교회 성장이 아닌 불신 자들을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 가는 것이 가정교회 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0년간 개신교의 성도수가 약 15만 명이 줄었다는 인구센서스 결과 를 한국교회는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이제는 옷깃을 여미고 ‘선교 부재라 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꼬?’ 탄식해야 할 때”라고 강경민 목 사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강 목사는 수평이동이 아닌 영혼구원에 의한 교회의 영 적부흥을 위해 또한 가정교회의 정신을 한국 교회와 나누고 그것을 확산시키 고자 금년 여름 합동신학대학원 교수들과 가정교회의 사역을 하고 있는 교 회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갖고자 계획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곧 바른 교 회 안에 바른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라면, 일산은혜교회는 분명 참된 성경적 교회 상을 찾고자 노력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교회관의 재정립 은 참예배의 회복도 이루어 낼 것이다. 예배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의 선포와, 참 예배 즉 성령과 진리 안에서 산 제사(living sacrifice)의 삶을 드리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정체된 성도들 이 심령으로부터 부흥하기를 일산은 혜교회와 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22 no image 마음을 물들게 하는 사랑이 있는 교회 - 은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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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0 2006-06-29
마음을 물들게 하는 사랑이 있는 교회 은평교회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물들이듯이, 교회를 만나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 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마음의 잎사귀도 물든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생활이라는 3대 목표와 함께 예수그리스도 앞에 빛 진 자의 심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 며, 나눔과 겸손과 헌신을 위해 힘쓰는 교회가 바로 서울 강동구 길동에 위 치한 은평교회이다. 은평교회 장상래 목사는 처음 농촌목회에 희망을 품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 는데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잠실에 있는 개인소유 아파트를 팔아 현재 은평교 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0년 5월 4일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성우 아파트 상가(현 LG자이아파트위치)에서 당시 장상래 전도사는 설립예배를 드 렸다. 초기의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지역사회를 섬기며 선교와 나눔을 아끼 지 않고 교회의 목표를 잃지 않는 가운데 은평교회는 교역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성 도들과 사랑으로 한 마음 되어 지금의 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은평 교회로 부흥하게 되었다. 현재 은평교회는 새 성전 재건축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새 성전 건축 후에 는 은평교회 뿐 아니라 타교회의 청소년들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의 장 으로서 충북 계산의 청소년 수련관도 건립이 예정되어 있다. 특별히 청소년 수양관은 은평교회의 한 성도가 땅을 헌물 하므로 그곳에 건 축이 가능했다. 또한 2010년에는 은평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과 협력하는 전 세계 여러 선교사들, 그리고 현지 지도자들까지 초청하여 세계 선교대회 를 개최하고자 하는 비전도 있다. 초기 장상래 담임목사의 뜻은 농촌선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 데 그의 비전은 세계선교라는 큰 나눔의 실천으로 이어져 러시아와 필리핀 선교 및 북한선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97년 9월에는 의료선교회와 기술인 선교회가 해외 선교지원을 위해 발족되어 보다 구체적이고 활발한 선교를 위 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선교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장상래 목사는 북한선교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북한 의료지원, 특 별히 항생제 및 의약품지원에 앞장서 왔다. 실재로 여섯 차례에 걸쳐 북한 을 방문해서 영육간의 궁핍함을 채우는 참 선교의 실천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모든 사역의 동역자로서 교역자들과 성도님들이 있었다고 장상래 목 사는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동역자로서 자리하며 기도하고 협력하므로 90 년대 초 건축된 기존의 교회에서 2004년 새 성전 기공예배를 드림으로서 새 성전 재건축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마무리단계에 있다. 이 모든 것이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와 자발적인 나눔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마도 지역사회를 섬기며 선교와 나눔을 실천 하고자 하는 담임목사인 장상래 목사의 마음을 성도들도 닮은 것이 아닐까. 말씀중심 곧 예수님 중심으로, 이어서 교회중심으로 특별히 개교회 뿐 아니 라 한국의 모든 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섬김의 교회가 되기 위해 지 금까지 기도하며 걸어왔기에 지금의 부흥이 있었노라고 은평교회는 자랑한 다. 그러나 겸손히 주님 앞에 기도하는 무릎으로 나아가며 여기에 안주하지 않 고 더욱 섬기고자 하는 교회가 또한 은평교회이다. 2010년 세계 선교대회 와 청소년 수련관 건립 뿐 아니라 노인복지를 위한 복 지 센터 건립도 계획에 있다. 노인들을 위한 치료와 상담 및 노년 대학운영 그리고 치매 어르신들을 섬기는 것을 위해 기도하며 이러한 것들을 위한 여 러 경제적, 환경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또한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새 성전 재건축을 도약으로 하여 이러한 여러 가지 귀한 사역들을 감당해 나 가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의 눈물이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기를 함 께 기도한다. 거류민과 같이 잠시 잠깐 사는 이 땅에서 다만 1%도 개인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집착하는 것이 없기를,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한 가지로 귀착되기를, 은평교회를 만나고 그 섬기는 마음 에 함께 물들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21 no image 교회 전체가 선교체제로 구성된 장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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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9 2006-04-19
장안중앙교회를 소개합니다. 교회 전체가 선교체제로 구성 성도 한명 한명이 선교 후원자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장안중앙교회는 85년 4월 28일 최일환 담임 목사가 강도사 시절에 개척된 교회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상가 건물의 한 모퉁이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개 척 후 모든 교회마다 어려움이 따르고 말 못할 고생들을 많이 있지만 장안중 앙교회는 개척 시작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개척 후 3~4년까지도 변화가 보 이지 않았다. 그 인고의 세월 동안에 사모님이 둘째 아이를 유산하는 참혹한 시련도 닥쳐 왔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더 기도와 전도에 매달려 전념한 결과 장안중앙교회의 묵직한 발걸음도 조금씩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일환 목사가 28세의 젊은 나이에, 강도사로서 개척을 시작했기 때문에 중 장년층의 성도들의 마음을 붙잡기가 쉽지 않았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에 소아마비 지체장애를 갖고 있기에 교회를 방문한 사람 들을 등 록을 고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순수한 주일학교 아이들은 달랐다. 목사의 나이나 장애여부 보다는 진심으로 대해주는 목사의 모습을 보고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을 배우고 전도 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래서 장안중앙교회는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에서부터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 했고 1부 예배는 주일학교 예배, 2부 예배는 장년예배로 여기고 힘을 쏟은 결과 차츰 장년층도 늘어갔다. 그리고 개척한지 6년째에 지금의 성전을 기적 같이 지었다. 지금의 성전을 짓기까지 놀라운 일화들이 많이 있다. 먼저 성전 부지를 매 입했지만 건물을 짓기 위한 헌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많은 기도와 고심을 한 최일환 목사는 친구목사로부터 소개받은 건설업자인 안수집사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 보냈다. 편지를 받아 본 그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교회를 짓기로 결정하였고 계약금 만 내면 공사를 시작할 상태였다. 하지만 마침 보궐선거기간이라 은행대출 이 정부 정책으로 금지되어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이때 최목사는 기도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통령과 경기도지사에게 대출을 열 어달라는 편지를 했고 도지 사의 소개로 대출을 받아 드디어 성전을 지을 수 있을 형편이 마련되었다. 그 도전 정신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용기를 힘입어 지금의 성전을 짓고 부 흥을 이룰 수 있었다. 최일환 목사의 목회비전은 전도와 선교에 있다. 신학교재학 시절 외국 선교 사님에게서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 선교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친구들이 모두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나서는데 자신은 나갈 수 있는 용기 가 없었다. 그러던 중 보내는 선교사가 되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SENDING MISSION 교 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장안중앙교회가 개척을 시작하자마자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선교 후원에 큰 힘을 쏟게 되었다. 현재 파송선교사 3가정, 협력 선교사 8명, 선교기관 후원 7기관, 해외 지교 회 4교회, 미자립교회 후원 3교회가 있다. 가장 역점을 두는 선교사역으로는 2003년도부터 J국의 HD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HD신학교는 3년제 신학교로 올해 7월 1기생이 배출되며 현재 60여명 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장안중앙교회는 교회 전체가 선교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천국열 쇠 중보기 도팀’이 매주 화요일 모여 목회자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기관도 남·여전도회가 아닌 ‘남·여선교회’로 이름을 짓고 각 구역도 선교 후원 하는 나라 이름으로 구역이름을 짓고 매주 구역예배 때마다 그 나라 선교사 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한 성도마다 기도할 국가와 선교사, 신학생 이름을 배정해 주어 기도하며 후원하게 연결시켜 돕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선교헌금을 하고 있다. 장안중앙교회는 성도 한명 한명이 곧 선교 후원자이다. 장안중앙교회 온 성도들은 교회를 통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배출되고 또 기 도후원으로 세계의 선교 열매가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또한 교회가 부흥됨에 따라 새 성전 건축에 대한 기도에도 온 전력을 다하 고 있다. 그러나 최목사는 현재 하고 있는 선교사역을 멈추고 교회를 건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한다. 자기교회 보다는 언제나 세계 각국의 선교에 힘써 왔던 장안중앙교회에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 본다. 부인 조복희 사모와 사이에 2남 1녀(기정, 선, 기상)를 두고 있다.
20 no image 중증 장애인들의 천국 '은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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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8 2006-04-05
중증 장애인들의 천국 '은혜의 집'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은혜의 집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대가족이 모인 공간이다. 박인숙 사모에 의해서 10여 평의 창고를 빌려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시작된 작은 모임이 1990년 5월 마침내 정식으로 설립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부모의 이혼과 가출로 돌볼 사람이 없었던 아 이들과 심한 장애 때문에 더 이상 가정 형편상 같이 지낼 수 없어서 버려진 사람들이 전부였다. 은혜의 집 설립의 기쁨과 함께 이들에게 던져진 것이라고는 이웃 주민들의 심한 박해와 이웃으로 같이 살기를 반대하는 냉정한 시선이었다. 땅값이 떨어지고, 자녀 교육에 안 좋다는 이유들로 일년 반 동안이나 진행 된 극심한 반대는 가난하고 병든 자의 친구이신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서서 히 줄어들고 현재 '지게의 집'과 함께 70여명 이상의 식구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은혜의 집 대부분의 식구들은 혼자 신변처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선생님이나 봉사자의 손길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두발로 서서 걷고 혼 자서 음식을 먹으며 내가 아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혜의 집 식구들에게는 커다란 사치이자 곧 행복이다. 대,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는 가족들 과 식사 또한 스스로 하지 못하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먹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신체가 건강하지 않아 찬물로 씻기는 것이 힘들어 항상 따뜻한 물을 사 용해야 하는 가족들도 있다. 이들은 항상 옆에 누군가를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함께하는 가족들의 얼 굴에 천진난만함이 흐르고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은혜의 집 설립자인 최재학 대표이사는 강원도 동면에서 4남 3녀 중 네 번 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가난은 그에게 숙명처럼 따라 다녔지만, 청년이 되어가면서 더불어 사는 봉사의 관념이 자리매김 하였고 잘 살아보는 것이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보다는 여러 가지 재주가 있는 만큼 매사에 어떠한 일에 든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 든 늘 적극적으로 일하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 는 아이었다. 군 제대 후에는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해결해야겠 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사우디에 가서 목돈을 마련하려 는 계획을 세웠다. 많은 돈을 벌어 사업을 해보고 싶어 출국을 위한 모든 서류를 준비 하던 중 친구의 공장에서 잠시 일을 돕다가 뜻밖의 사고로 한 팔을 잃게 되었다. 모 든 꿈과 희망이 한 순간에 좌절과 절망이 나락으로 빠졌다. 스스로 감당해야하는 고민도 컸지만 장애라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등, 이 루 말할 수 없는 사회의 두터운 벽에 맞부딪치게 되었다. 이후 장애라는 고통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방황하다가 종교를 접하게 되었 다. 그가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동기는 본인 보다 더 장애가 심한 한 자매를 통해서였다. 전도를 받아 믿음을 통해서 도전을 받은 것이다. 인생의 꿈과 목표는 달라졌고 오늘의 은혜의 집을 운영하게 한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은혜의 집에는 최재학 대표이사의 젊은 날의 아픔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 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아직은 작고 연 약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은혜의 집을 통해 한 사람이 변 화되기를 원하고 문 밖의 세상도 보다 평안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 다. 장애인들을 더 이상 다른 존재로 구별시키지 않고 같은 형제와 자매로써 감 싸 안아주길 바랄 뿐이다. 은혜의 집이 세워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기도가 함께 했지만 앞으 로 더 많은 절망의 사람들을 위로하기에 부족한 것들이 많이 있다. 일회적인 동정보다는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사랑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 다. 남의 일이라는 시선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감당해 나가 기를 원한다. 어떠한 일이든지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 알기 마련이며 그 좁은 경험으 로 드넓은 세상을 판단하고 살아간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이 하늘의 한 부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큰 사랑을 이제 나누며 살아갈 때이다. 앞으로 은혜의 집에 더욱더 많은 관심의 손길들이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19 no image 하나님 중심의 삶, 말씀이 생활화되는 한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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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6 2006-03-29
하나님 중심의 삶, 말씀이 생활화되는 한별교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경기중노회에 소속된 안산시 고잔동의 한별교회는 바른 신학, 바른 신앙, 바른 교회라는 이념아래 세워졌다. 청교도 신앙에 입각하여 '말씀이 생활화 되는 교회'가 되고자 말씀과 기도, 전도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도록 늘 권면하며 하루의 삶에서도 하 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삶이 되기 위해 기도로 정진하고 있다. 또한 누구든지 와서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의 공동체요, 이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가까운 이웃이며,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성도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이용 할 수 있는 한별문화교실을 열고 다 양한 프로그램들로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컴퓨터교실과 미술 교실, 바이올린 교실과 당구, 탁구 교실, 크로스웨이 성 경공부가 매주 꾸준하게 실행된다. 교회 안에서 배움을 익힐 수 있어서 자연 스럽게 성전에 출 입하는 성도들이 늘어가고 성도들 간에 함께 참여함으로 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쉽게 형성될 수 있었다. 또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30분까지 한별쉼터를 개방하고 있다. 한별 쉼터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는 만남의 장소, 당구, 포켓볼, 탁구, PC 방 등이 있다. 지금도 적지 않은 교회가 주일 이외에는 교회 문이 굳게 잠겨있는 경우가 있 다. 한별교회는 그러한 교회문턱을 낮추고 출입문을 넓혀 많은 성도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다. 한별교회는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한별문화교실과 한별 쉼터 이외에도 독서실을 무료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커피전도와 컴퓨터 무 상수리를 하고 있다. 한별교회는 1982년 3월 원곡동에서 오광석 전도사가 첫 예배를 드렸다. 1983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1989년에 지금의 고잔동을 옮겨 입당예배를 드 렸다. 개척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24년 동안 꾸준한 새벽기도와 부흥회를 통한 하 나님 나라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별교회가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한별교회는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 로 성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 며 겸손하게 맡은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선교에 큰 꿈을 품고 여러 교회와 기관과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을 후원 하고 있다. 혼자 성장하기 보다는 함께 진보하기를 염원하는 온 성도들의 바람이 있기 에 많은 교회와 단체들이 한별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기도요청을 하 고 있다. 이 또한 한별교회도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중보하고 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 라” (딤전4:15) 오광석 목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진보된 신앙 위에 진보되는 성도들이 되도 록 가르치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변하는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 에 이 흐름에 맞추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이 흐름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있음을 아 는 것이다. 서로 아끼고 중보 함으로 영적으로 회복되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다. 오광석 목사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성숙되고 성장하 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별교회 모든 성도들이 날마다 신앙의 진보를 가져와 먼저는 하나님께 기쁨 이 되고 영광을 돌려드리며 또한 그분의 자랑거리요, 세상에서는 빛이며 소 금인 성도들로 자리매김하기를 늘 기도하고 있다. 교회가 부흥 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있기까지 많은 과정들 이 있어 더욱 빛이 나는 교회가 바로 한별교회 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순종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사로 받으며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한별교회에 2006년도 진보가 더 크게 꽃 피우기를 기 대해 본다.
18 no image 지역사회에 희망적 비전을 제시하는 송탄제일교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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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8 2006-03-22
지역사회에 희망적 비전을 제시하는 송탄제일교회 경기도 평택시 신장2동에 위치한 송탄제일교회는 1958년 12월에 설립된 50 여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다. 그 긴 시간만큼 송탄제일교회를 통하여 배출된 믿음의 선배들이 많이 있다. 그 믿음의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송탄제일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또 거룩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50년을 회고해 볼 때 앞으로의 50년도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 암아 발걸음이 가볍다. 송탄제일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비전을 중요하게 여기며 목적에 따라 이끌림 받는 것을 성도들에게 매주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송탄제일교회가 발견한 비전은 󰡒예수는 우리의 구원, 우리의 평화, 마지막 희망,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따라가자!󰡓라는 기치이다. "예수를 바라보자" 라 함은 예수님을 알아 가자는 것, 예수님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 "예수를 따라가자"라 함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 예수의 제자를 삼는 것이며, 그리고 그분의 제자를 파송하는 것이다. 송탄제일교회는 그 목표를 5가지로 구분하여 그 목적을 주님 오시는 날 까 지 이루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 이다. 매 주일 오전 9시 예배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드려지는 주일 예배는 박범룡 담임목사의 생동감 넘치는 말씀 선포로 삶이 무력해진 현대인을 향하여 강한 도전과 꿈과 소망을 갖게 한다. 둘째는 선교를 향한 목표이다. 18명의 선교사를 후원 또는 파송, 10개의 선 교 단체 지원, 16개의 교회 및 16개의 단체를 협력 지원하면서 주님이 주신 명령을 지켜 나가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 12만의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 갖 고 열심을 다한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 인재 양성 이다. 기존 주일학교 교회 교육이 시대의 변 천으로 쇠약해져 가고 있음을 견지하여 어린이들의 교육에 최고의 지원과 많 은 부분의 시설이 보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DIA교육원 등사교육 비에 힘겨운 현대인들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밖에 새 생명 교육, 제자훈련, 사역자훈련, 전도폭발훈련 등 성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및 세미나를 상설로 운영하고 있다. 넷째는 가정의 기쁨 회복을 위한 목표이다. 시대의 변천과 핵가족 및 생활환 경의 많은 문제 등으로 무너져가는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결혼 예비 학교, 아버지 학교, 고부 학교 등을 개설하여 예수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가르치며 그 해결 방법과 대책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의 희망을 제시하기 위한 섬김이다. 호스피스훈련, 소망 대학 등을 운영하며,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비록 작 은 시작이 지만 아침에 힘차고 기쁘게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주 2회 송탄 전철역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주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복지센터를 계획함으로 사회적으로 노령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에 따른 대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5가지 목표는 현재와 미래의 송탄제일교회의 모습이며 교회의 테두리 를 벗어나 지역사회의 희망적인 비전이 되고 있다. 지난 2005년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전교인 운동회를 통하여 교회화합을 다짐하였고, 송탄제일교회의 기도 제목이었던 비전 센터 부지가 전 국가적 경제의 고통가운데서도 헌당되는 감격도 경험하였다. 모두가 주님 의 일이라면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성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질서와 평안 가운데 장로 4명을 선택함으로 성숙한 모습을 교 회 대내외에 보여 주었고 이 일은 송탄제일교회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데 기 여하였다. 더불어 교회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중에서 도 주님의 은총으로 95명이 새롭게 등록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바라 볼 때에 고난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송탄교회는 비전 2006년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힘든 오늘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 며 전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송탄제일교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 게 기대감을 갖게 한다. 5가지의 비전이 각자의 색깔대로 큰 열매가 되어 송탄제일교회의 큰 밑거름 이요, 내일을 비추는 등불이 되기를 함께 소원해 본다.
17 no image 예배회복운동, 구령운동, 개혁운동에 전심하는 한양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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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9 2006-03-13
탁월한 사역에 도전하는 한양교회 예배회복운동, 구령운동, 개혁운동에 전심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한양교회는 1973년 9월 창립예배를 드린 이 후 1983년에 지금의 담임 목사인 유병의 목사가 부임하게 되고 지금까지 하 나님의 은혜 가운데 큰 어려움 없이 성장 할 수 있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라.'(시119:105) 2006년 교회 사역의 비전은 이다. 성경이 사제의 손에서 평신도들의 손에 들려지게 함이 제1의 종교개혁이라 말한다면 사역이 목회자의 손에서 평신도의 손으로 옮겨짐은 제2의 종교개혁 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목사는 성도를 온전케 준비하여 성도로 하여금 사역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 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사에게 사역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목사가 성도들 을 도와서 교회를 잘 세우도록 하는 것이 유병의 목사의 지론이다. 금년 한해 한양교회는 세 가지 목표를 걸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최상의 예배를 드리는 예배회복운동이며(100% 출석), 둘 째는 불신자 영혼을 전도하여 구원하는 구령운동이다.(100명 등록) 마지막으 로 셋째는 평신도를 사역자화 하는 개혁운동이다.(100가지 사역) 이 세 가지의 비전이 비전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온전히 세워지기를 바라며 탁월한 사역의 교회가 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유병의 담임 목사는 지금까지 교회를 인도해 오면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 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는 말씀을 가 장 사모해 왔으며 또 그 말씀을 철학으로 삼아 교회를 섬겨왔다. 그리고 해외 선교에 특별한 열심을 품고 많은 성도들이 몰려오는 교회보다 많은 제자들이 파송되어지는 교회를 지향하는 일념으로 세계 각지의 선교사 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양교회도 유병의 목사의 뜻을 따라 교회 사역과 선 교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양교회는 특별히 교회 건축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가 새로운 예 배당이 생긴다는 비전에 감사하며 기도로 제단을 쌓고 있다. 또한 예배당을 위하여 드리는 헌금도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성도들의 거룩한 정성이 담겨진 예물이 쓰여 지길 기도하고 있다. 건축의 시작에서부터 끝까 지 결과에 상관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그 새로운 공간을 통 하여 배출될 많은 일반 사역자들과 선교사들을 기대하고 교회건축을 위한 8 가지의 기도제목을 정하여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앞에 무릎으로 헌신하고 있 다. 특별히 2006년은 한양교회가 33주년을 맞는 해로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중 요한 사역의 위치에 있다. 교회구조상 하부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예수마을 목장사역과 각 기관사역과 사역 팀들을 통하여 교회의 사역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배사역을 비롯하여 전도사역, 새 가족 양육사역, 돌봄 사역과 문서 사역 과 그리고 봉사지원 사역 등을 통하여 교회 현장사역이 왕성해 지도록 모두 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한양교회가 이렇게 여러 사역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데에는 언제나 탁월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통하여 한양교회 모 든 가족들도 탁월해 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여러 노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탁월하심이 곧 성 도들을 통하여 나타날 날이 멀지 않았음 알 수 있다. 이제 새 예배당과 함께 새로운 의식과 열정의 새 탈을 쓰고 멋진 춤사위를 펼칠 한양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드실 아름다운 구원 사역들을 기대 해 본다.
16 no image 노숙인과 쪽방주민의 쉼터 광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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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1 2006-03-08
노숙인과 쪽방주민의 쉼터 광야교회 광야교회는 영등포역 옆의 쪽방지역에 위치하여 1987년부터 지금까지 이 지 역의 쪽방주민들(현재 600여명)과 끊임없이 발생되는 영등포역 주변의 노숙 인들(쉼터 포함 현재 200여명)을 가족같이 섬기며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 애 쓰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숙인 쉼터에서는 100여명이 공동체생활을 하며 재활을 위해 애쓰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안에 매일3끼를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 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이 있지만 비틀거리는 삶 가운데에서 한명 씩 일어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광야교회는 같이 일어서고 있다. 또한 쪽방상담소를 통해 쪽방주민들과 거리 노숙인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복 지서비스를 제공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노숙인 쉼터와 쪽방상담소를 통 한 광야교회의 사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알콩중독자들을 중심으로 내적 치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2박3일 의 합숙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까지 14차에 걸쳐 14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 밤12시에는 영등포역에서 하나님께 뜨겁게 찬양을 드리 고 예배를 드린 후에 거리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배포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에는 무료 의료 봉사를 행하며 지역 주님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물품들을 지원하고 독거노인들과 지체 장애인들을 위해 밑반찬 등을 정성스 럽게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광야교회가 거리의 사람들을 내 몸과 같이 여기 며 열심을 가기고 섬기는 데는 담임 목사인 임명희 목사의 극진한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임명희 목사는 노숙인들과 쪽방 주민들에게 돈은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없다 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겉모습으로 위로하는 것 보다 그들의 속마음까지 함 께하며 육체의 치료와 함께 정신적인 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먼저라고 여겼 기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을 수 있었다. 힘들고 지친 모습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소망을 심게 해주고 싶었고 허무함만 가득하던 삶에 언제나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로 인도하고 싶었다. 그러한 철학으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들은 목사님의 손을 잡고 일어섰고 지금도 광 야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살려 내는 일들을 계속 해오고 있다. 광야교회의 사역의 원리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모습이다. 선한 사마리아 인 은 단순한 구제나 선행을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강도를 만나 죽어가 는 사람을 살려 새 생명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인도 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광야교회 성도들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며 일회적인 봉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 고 또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으며 오직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보이셨던 섬김의 모습들이 광야교회 성도들에게 함께하 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교회 안에 가득하기를 늘 소망 하며 기도하고 있다. 교회가 설립된 1987년부터 지금까지 노숙인과 쪽방주민들을 섬겨온 광야교 회는 2001년 8월부터 교회의 철거를 대비해 주님께 기도하면서 홈리스복지센 타를 건립을 위한 작정헌금을 시작하면서 모금운동을 펼쳐왔다. 광야교회가 철거되면 100여명의 공동체 식구들과 500여명의 쪽방 지체들 그 리고 많은 노숙인들과 함께했던 사역들 이 갈 길을 잃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 의 귀한 복음 사역이 지속되기 위하여 홈리스복지센타를 추진해 오고 있다. 홈리스복지센타는 현재 모든 성도들의 기도제목이며 많은 광야교회 공동체 식구들의 희망이다. 이 센타의 완공 후에는 지금의 노숙인과 쪽방 식구들을 위한 사역에 더욱 큰 힘을 기울일 것이며 많은 길 잃은 영혼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바람보다도 가볍고 티눈보다도 작은 하나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 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영등포역 뒤켠에 해도 들지 않는 그늘에서 시 작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시작된 이사역이 이제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 이 꿈이 되고 산 소망이 되어 가고 있다.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광야교회의 2006년도의 발걸음도 보다 가볍고 기쁨이 넘치기를 함께 기도하며 기대해 본다.
15 no image 사랑의 섬김과 선교의 사명을 수행해 온 강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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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3 2006-02-28
강변교회를 소개합니다. 한 번 왔다 가는 나그네 인생길에서 소유와 탐욕을 버리고 이웃들과 나누면 서 기쁨과 감사로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교회가 바로 서울 강남구 도곡 동에 위치한 강변교회이다. 강변교회는 개인과 개교회 중심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지구촌 여러 민 족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고 있다. 내가 잘 되어야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들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임으로 해서 나 또한 잘 됨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순수한 열정과 하나님을 향한 사모의 마음으 로 조용한 발전을 향해 한걸음 걸어가고 있다. 강변교회의 김명혁 담임 목사는 11살 때에 믿음으로 살기를 소원하는 단 한 가지 소원을 품고 38선을 혼자 뛰어 넘어 이곳으로 왔다. 지금 그 당시 를 회고해 보아도 가슴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모두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섭리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린다. 따라서 의지 할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기에 더욱 기도에 매달리게 되었고 어려서부터 홀 로 새벽기도를 드리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와 교회로 달 려가는 일이 많았다. 후에는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죄인임을 깨닫고 보다 깊은 회개를 사모하며 삼각산과 관악산과 주암산을 찾기도 했다. 결국 김목사는 교수의 일을 하면서도 항상 목회를 겸해서 했는데 후암교회와 영안교회에 이어 강변 교회를 개척하여 지금 성도 600여명을 인도하는 아버지 같은 목자가 될 수 있었다. 1980년 4월 6일에 입당예배를 드리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26년 동안 한결 같 이 샘솟는 사랑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며 사랑의 섬김과 선교의 사명을 수행 해 오고 있다. 선교를 하다 보면 고통을 당할 때가 많다. 아프간의 경우, 50도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투성이 속을 걷고 달리면서 육체적인 고통의 끝을 걸었지만 학 교 준공식에 참여하여 학용품 선물을 받아 들고 얼굴에 행복의 미소를 짓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고통은 넉넉히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선교의 사명을 함께 하는 강변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아프 가니스탄의 한 마을에 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었고 학용품 선물을 다시 전 r 할 수 있었다.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모슬렘 지도자 들이 좌우편에 길게 서서 열 렬하게 환영을 해주기도 했다. 󰡒할렐루야󰡓를 외치는 어린이들의 음성을 들 으며 가슴에 진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세계 곳곳 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일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김명혁 담임 목사는 오랜 신앙생활과 목회 경험을 통해 󰡒인생 칠도󰡓라는 말로 우리에게 깨달음을 얻게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일곱 가지 길을 걷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 만남, 나눔, 버림, 기쁨, 헛됨, 떠남의 일곱 가지 길을 걷는 존재 이다. 그 중 만남이라는 것에 김명혁 담임 목사의 목회 철학과 강변교회의 현재와 미래가 함께 한다. 나그네 인생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이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람과의 만남이 외롭고 두려운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 주 는 등불과 힘이 된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사울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리 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의 삶이 바뀌어 졌다. 구원과 전도와 목회와 선교와 행복과 기쁨이 모두 만남으로 귀결 된다. 이러 한 만남을 확장해 나갈 때 목회도 인생도 풍성해 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강변 교회는 항상 만남이라는 문을 열어 놓고 환영할 채비가 되어 있다. 새 신자 들과의 만남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고 이웃의 동회와 학교와 구청과 주민 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질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기뻐한다. 제 아무리 훌륭한 목회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기쁨이 없다면 진정 한 의미가 사라진다. 따라서 강변교회는 올 한해도 기쁨을 잃지 않고 섬김 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명혁 목사의 새해의 기도 제목 또한 다음과 같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눈물을 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강변교회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정점에 서서 주님께서 맡기신 사 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채우시는 기쁨을 모두 함께 누리고 있다. 섬 김과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강변교회의 꾸준한 진보가 바른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의 등불이 되어 밝혀 주기를 기대해 본다.
14 no image 200명 새신자 구원목표 전교인 총력 기울이는 남문교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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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4 2006-02-22
남문교회를 소개합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남문교회는 관악산 산자락에 위치한 공기 좋 은 곳에 자리 잡은 전원 교회이다. 일찍이 주5일제의 시행에 맞추어 세상 속에서 힘들게 지내온 성도들에게 평 안한 안식과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하고자 200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 다. 이선웅 담임 목사와 함께 6명의 교역자가 함께 하고 장로 4명과 권사 25명, 안수집사가 15명이 함께 연합하고 있다. 교회의 시작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건강하고, 지역사회를 책임 지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 지금의 부흥에 이를 수 있었다. 남문교회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교회성장 6개년 계획을 세우 며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남문교회의 본당 예배실에는 자체 계획과 목표들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 록 적혀있다. “비전2010”은 2004년도부터 시작하여 2010년도에 결실을 거두어 드릴 수 있도록 세운 스스로의 지침인 것이다. 지난 20 05년도에도 새 신자 등록 인원 을 200명으로 정하고 기도하며 주님께 나아간 결과 정확히 2005년 12월까지 200명이 넘는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따라서 올해 2006년도에도 200명의 새신자 구원을 목표로 삼고 모든 목자와 성도들을 그 푯대를 향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말에도 주 님께서 신비한 능력으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모두 확신하고 있다. 또한 2007년도는 300명 구원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렇게 차근차근 2010년 도를 향하여 남문교회는 멈추지 않고 역사하고 있다. 전도의 결실뿐만 아니라 남문교회는 각양각색의 선교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봉사 위원회는 발족된 이래 빠짐없이 지역봉사를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축구선교단, 음악선교단, 몸찬양선교단 등의 각 선교단은 각자의 재 능과 달란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섬기고 있다. 또한 남문교회 내의 청년부 역시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정기적인 단기 선교 활동에 최선의 것으로 섬기고 있으며 모든 단체는 자신의 기관과 함께 타 기 관과의 연합도 원활히 이루어지기에 개척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n 이것은 목사님과 성도들 모두 선교의 중요성에 대하여 절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중보기도의 힘이기도 하다. 최근 남문교회의 여러 사역 중에서 아버지학교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작년에 는 남부지역 아버지학교를 개설한 만큼 아버지학교를 통하여 변화된 가정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 아버지 학교는 남문교회의 담임목사인 이선웅 목사를 중심으로 하여 중점적 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제 아버지학교를 졸업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계속 해서 가정 중심의 사역들이 원활히 이루어져 가고 있다. 작년의 아버지학교 개설의 결실에 이어 올해에는 어머니학교도 개설할 계획 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가정이 먼저 변화되고 변화된 가정 이 모인 교회가 부흥되며 더불어 이 나라가 온전히 서 가는 것이 남문교회 의 큰 기도제목이다. 다른 여러 가지 사업과 계획들 모두 중요하지만 남문교회를 지금까지 이끌 어 온 것은 바로 기도의 능력이었다. 따라서 남문교회는 매월 1일을 전교인 새벽 기도의 날로 정해 놓고 기도에 힘쓰고 있다. 매월 요일에 상관없이 가 장 첫 날에 주님께 먼저 나아가려는 마음에 서 출발된 것이다. 이 전교인 새벽 기도의 날이 활성화 되어 새벽 제단에 주님의 일꾼들이 무릎 을 꿇고 나아갈 때 남문교회의 후세대들은 더욱 큰 부흥을 함께 지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주님께 나아가기 힘든 시간 귀한 것으로 드리는 남문교회의 성도들의 부흥을 향한 기도 소리가 주님께 상달되기를 기대하며 올 한해의 많은 계획 과 사역들과 다짐들이 큰 결실로 맺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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