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33 no image 깨어진 심령 속에 믿음의 반석을 심는 반석교회 (23)
rpress
5289 2009-12-29
깨어진 심령 속에 믿음의 반석을 심는 반석교회 참으로 잔인한 시간이다. 가난한 자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주님의 말씀 이 있긴 하지만 세계적 경제 한파 탓에 소시민들의 가슴 속 시름의 골은 더 욱 깊게 패이고 있다. 6,70년대 모두가 함께 힘들어했던 시절은 삶의 애환 속에서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고 희망의 풍선을 하늘 높이 날릴 수 있었다. 수도와 전 기의 공급이 되지 않아 물지게를 지어야 하고 조명이 없어 밤엔 유난히도 밝 은 별을 볼 수 있었던 산등성이의 동네들은 자연스럽게 어려운 분들의 보금 자리가 되어 주었다. 천진한 아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골목을 가득 채울 때면 내일을 향한 부푼 꿈도 함께 충만해졌다. 하지만, 이 시대의 상대적 빈곤감은 소망의 작은 싹 마저 싹둑 가져가 버린 걸까?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중한 생명을 버린 소식들이 곳곳에서 들려 온다. 역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질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 더 이 상 사는 것이 무의미한 듯하다. 이러한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만큼 매력적인 분이 또 계실까? 주님은 천국 이 바로 당신들의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극도의 어려움을 겪으면 세상 것들 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아는 법인데, 성령의 은혜만 있다면 가난은 곧 복음 과 구원의 대문이 된다.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반석교회는 이러한 복음의 전도자로 세워진 교회이 다. 경제적으로도 마음으로도 여유가 없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지역 주민 들에게 복된 소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되고자 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 반석교회를 설립한 고동옥 목사도 많은 시련을 겪은 목회자이다. 주의 소명 을 가지고 시작한 사역은 가정에 큰 경제적 어려움이 되어 돌아왔다. 결국 사역을 잠시 쉬고 남포교회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해 다시 희망의 불씨를 틔 워 갈 무렵 고 목사 아내의 점액질 암 발병은 다시 한 번 고 목사를 주님께 만 매달리게 만들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 암은 곧 의사의 사형선고로 이어졌다. 어려운 대 수술을 해야만 했고, 수술보다 독한 항암 치료는 암 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항암 치료의 고통의 절정인 5차 치료가 이제 막 끝난 어느 날, 힘이 없어 발 조차 내딛을 수 없던 고 목사 아내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여보, 이상해요. 몸이 괜찮아진 것 같아. 암이 나은 것 같아.” 이 일은 2007년 10 월 쯤 고 목사 가정에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이다. 2007년 11월, 고 목사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쉬었던 사역을 다시 시작했다. 암 치료 때문에 의지할 만한 경제적 버팀목들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한 달 후 12월 창신동에 고 목사는 반석교회를 개척했다. “아픔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전 까지는 내 힘으로 믿음생활과 사 역을 했습니다. 아내의 아픔을 계기로 하나님의 은혜와 큰 능력을 깨달았습 니다.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더군요. 허허허” 고 목사 의 소탈한 웃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행복한 웃음이었다. 반석교회는 정말 조그마한 교회이다. 어른이 20명 정도 들어가면 더 이상 수 용불가이다. 그나마 고 목사가 솜씨를 발휘해 입구를 개조해 조그만 공간을 마련해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 강대상 옆에 조그만 탁자가 고 목사의 목양실이자 기도실이다. 책을 놓으면 책상이 되고 상 밑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 올려놓으면 훌륭한 컴퓨터 책상이 된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특이한 부엌이었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는 어엿한 주방도 있다. 취재할 때 한 여집사님이 동석했는데 기자는 처음 사모님인줄 알고 인사했는 데 알고 보니 주일학교 부장님이었다. 이 집사님이 부장, 총무, 회계, 공과 공부 교사 모든 역할을 다 하신다. 중고등부도 있어 고 목사가 지도한다. 또한 반석교회는 성도와 목회자가 가까운 교회이다. 강대상과 성도의 거리 가 한 1미터 남짓 되는데, 고 목사는 그것이 반석교회 목사와 성도의 거리라 고 했다. 반석교회는 지금도 가가호호 방문 전도를 한다. 믿지 않는 가정도 문을 열어 주며 집안까지 영접하는 특이한(?) 지역이라 사람 앞에 솔직하고 하나님 앞 에 너무나 간절한 고 목사의 목회자상이 잘 전달된다. 아직은 가난함 가운 데 풋풋한 예스러운 정이 남아있는 곳이다. 대부분이 초신자에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성도들에게 고 목사는 늘 말씀이 삶으로 나타나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겉 가난이 아닌 심령이 가난한 자 가 되어 주 앞에 부유한 자로 서길 도전하며 기도하고 있다. 아픔이 있는 지역에 세워진 반석교회가 진정한 지역의 복음의 반석이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110-543 서울 종로구 창신3동 23-398 02-747-5592 (이은숙 기자)
132 no image 원칙 중심 사역만으로 세상에 도전하다 - 예수비전교회 (2)
rpress
7036 2009-12-15
원칙 중심 사역만으로 세상에 도전하다 - 예수비전교회 2002년도에 설립된 예수비전교회(담임 : 도지원 목사)가 지난달 새로운 예배 당을 건축하고 새로운 2010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설립된 지 만 8년도 채 되지 않은 교회가 700석 규모의 예배실과 훌륭한 부 대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예배당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자, 요 즘 대도시의 상황에서 희귀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가졌기에 부흥을 이루어내고, 새예배당 건축까지 무 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는지 전국 교단 목회자들과 개혁신보 독자들을 위해 취재부는 예수비전교회가 위치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으로 달려가 보았다. 새예배당은 이전에 공장이었던 부지를 교회가 매입하여 세워졌다. 신도림동 의 공업단지가 재개발로 인해 거의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한 요즘, 금싸라기 같은 귀한 땅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비전교회에 허락하셨다. 전체적으로 부채 꼴 모양의 전통과 현대의 모습을 두루 겸비한 아름다운 예배 당은 준공허가 는 이미 되었지만, 아직 세부적인 마무리들이 조금은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틈틈이 울리는 전화를 사무실 직원이 부지런히 받는 것을 보 니 바쁘다는 도 목사의 인터뷰 회피는 겸양이 아닌 사실이었다. 한참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쁠 도지원 목사의 시간을 반강제로 빼앗아 귀한 간증과 교회 의 사역을 들어보았다. 이번 새 예배처소는 예수비전교회 성도들에게는 3번째 장소이다. 설립된 지 2년 만에 장소가 부족하여 근처 더 큰 상가를 구입하여 이전했는데, 하나님 의 치밀하신 인도하심에 따라 결국 오늘의 예배처소를 얻게 된 것이다. 토지 구매단계에서부터 건물 준공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조금도 일 을 진행시켜 나갈 수가 없었다. 구하기 전에 너희 쓸 것을 아신다는 주님 아 니셨던가? 도 목사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굳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온 성도와 함께 ‘주님이 허락하시면 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열심 히 주의 나라를 위해 힘썼다. 예배당 건축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거의 전체 예산의 40% 가까이를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했다. 아직은 소형 교회임에 도 불구하고 풍성한 이웃 사랑의 정신은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대단하다. 본격적으로 건축을 시작하자 비용이 만만치 않아 20% 정도로 구제예산을 축 소해야 된 점이 심히 안타깝다는 도 목사는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구한다면 헌당 전에 얼마든지 주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 다. 도 목사는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헌금 설교를 하지 않았다. 목사가 하나님 께 기도해야지 성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구걸하는 것이라는 척 스미 스의 말을 마음 깊숙이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때론 건축의 중압감 으로 몇 몇 성도들은 헌금설교가 필요하다고 투정하기도 했지만 이제 예수비 전교회는 큰 사역을 이루게 해 하신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는 믿음으로 담대하다. 도지원 목사는 치과의사에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특이한 전력의 소유자이 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 의 책들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 도 목사의 소명의 시작이다. 치과의 료선교에 마음을 쏟으며 점점 그의 소명은 강해졌고, 마침내 미국 웨스트민 스터신학교와 합신을 졸업하고 주의 종 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도 목사는 신학은 조나단 에드워드, 목회는 로이드 존스 목사에게 배웠다고 단언할 정도로 개혁주의 신학에 철저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실용주의적 신 학과 목회가 주변에 가득한 요즘 개혁주의 만으로도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 들이 사단의 세력과 싸워 이겨낼 수 있을 강한 영적 체력을 소유할 수 있다 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 도 목사의 소원이다. 이러한 개혁주의 정신을 도 목사는 개척 준비 때부터 견지했다. 주일에 치 과 병원을 빌려 예배드리고, 여의치 않을 때는 중국집에서도 예배를 드려봤 다는 도 목사는 그 때 함께 했던 성도들의 많은 수가 아직도 함께 주의 사역 을 이어간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초심과 신학에 지금도 헌신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 목사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교회 성장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정답은 ‘성경의 원칙 지키기’였다. 예수비전교회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비원 칙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것은 큰 믿음과 절절한 기도를 요구하는 일이었 다. 비결답지 않은 비결 속에 성경 진리는 참으로 평범하지만 믿음으로 그것 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일하 신다는 것을 예수비전교회는 보여주었다. 주님이 품으셨던 하나님 나라 확장의 비전이 예수비전교회를 통해 지역과 세 계에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예수비전교회 주소 : 152-886 구로구 신도림동 296-91 전화 (02)2678-5553
131 no image 주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성장한 개척교회 - 목인교회 (88)
rpress
5721 2009-12-01
주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성장한 개척교회 - 목인교회 등에 큰 짐을 진 크리스챤은 이 고통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기 에 충분한 마음의 짐으로 크게 고통하고 있었다. ‘멸망시’에 사는 가족들에 이 고통을 호소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 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눈물로 들을 거닐다 우연 히 만난 전도자는 그에게 “문이 보입니까?” 물었지만 그는 문을 볼 수 없 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희미했지만 분명한 빛은 그의 눈에 분명했다. “그 빛을 따라가십시오.” 그 빛은 크리스챤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구원의 문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그 문에서 그는 모든 짐들을 내려놓고 이전에 결 코 맛보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가 걸어가야 할 앞길은 험난하 기 이를 데 없어 구원의 문에 도달하기 전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슬픔에서 기쁨, 외로움에서 함께하심을 경험 하는 것이었다. 번연(J. Bunyan )에게 이것은 꿈이었지만 장중현 목사에겐 늘 절실한 현실로 있던 일들이다. 모태신앙으로 늘 주님의 품 안에 있었지만, 이제 막 사춘기 에 접어든 장중현의 마음속은 겨울의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 남아있는 믿음 의 온기마저 얼려가고 있었다. 결국 그 냉기는 장 목사의 몸마저 패혈증으 로 쓰러뜨렸다. 그 때 아득히 멀리 있던 그 빛이 장 목사의 마음에 비추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모든 죽음의 바람들을 잠재웠다. 잠잠하라……. 하시니 ……. 아주 잠잠하여지더라. 그리스도의 사역은 고요 함에 활력을 넣으실 때도 있지만,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죄성을 잠잠하게 하시려는 고요의 사역이 많으시다. 그 평온함(stillness)이 태산 과 험곡에서도 주님의 인도만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거대한 능력이 된다. 군대에서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매던 중 들었던 신우회 회원들의 찬송 소리 는 천상의 빛으로서 장 목사를 다시 은혜의 품으로 불러들었다. 이후 그의 삶은 주님으로 기뻤고, 주님의 은혜만 사모하게 되었다. 건축과(한양대)를 졸업한 후 시작한 직장생활은 그의 신앙을 단련하는 좋은 곳이 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2000년도 신학 대학원 입학은 장 목사에게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입학 초기부 터 개척을 기도했던 장 목사는 2005년 드디어 목인교회를 설립하게 되어 이 번 11월 29일로 4주년을 맞이했다. 설립 초기 임대로 시작한 교회당 문제가 1년 만에 매입해야할 상황으로 바뀌 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역전의 기도응답을 통해 건물 매입과 교회 성장 의 두 목표를 동시에 이루어가는 중이다. 목인교회는 이전에 입주했던 교회가 나쁜 이미지를 주변 지역에 퍼뜨려 많 은 어려움을 겪었다. 목회자의 인격이나 교회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았다. 이 전 교회가 이단 문제를 겪었는데 가뜩이나 폐쇄적인 지역 특성과 맞물려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이전과는 다르다는 분명한 울림을 위해서도 끊임없는 전도는 필수였다. 평상 시에는 성도는 없었지만, 작지만 예쁜 예배당에 늘 나와 기도와 말씀 연구 에 힘썼다. 장 목사의 아내도 이 일을 위해 온 몸으로 헌신했고, 부부의 열심은 교회의 이미지가 개선되어져 가면서, 개척의 열매도 맺어져 갔다. 현재 목인교 회는 이전에 신앙생활을 했던 성도들과 처음 목인교회를 통해 신 앙을 갖게 된 신자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들을 케어링하기 위해 처음 엔 장 목사가 모든 것을 지도했다. 하지만 목사가 인도하다보니 일방적 강의 가 되기 일쑤였고, 성도들도 어려워 자신들의 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못했다 고 한다. 지금은 장 목사 사모가 소그룹을 인도하는데, 그룹의 친화력이 이전보다 훨 씬 좋아졌다. 이러한 따스한 보살핌이 있는 목인교회는 등록한 성도는 있어 도 떠난 성도는 아직까지 없다. 이것은 목인교회가 오늘까지 견고하게 성장 하게 된 좋은 발판이 되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인’을 세우는 것이 처음 목인교회의 목표였 다. 그런데 초신자가 많다보니 ‘바알’부터 설명을 시작해야할 당황(?)스러 운 상황이 종종 연출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목인교회의 뜻대로 ‘목자 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칠천인’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었 다. 어려운 상황에도 파송선교사를 두는 등, 교회의 전인적 모습을 통해 성도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에 오늘도 목인교회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언제나 평 온 한 모습 가운데 꾸준함을 보여주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날마다 삶 으로 증명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4주년 기념으로 찍은 아름다운 공동체의 사진을 보며, 주의 아름다운 사역이 이 분들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길 기도 해 본다. (이은숙 기자) 122-090 서울 은평구 수색동 415-1 대림한숲타운A 주상가 304호 (02)303-1669
130 no image 믿음과 인내로 개척의 문을 활짝 연, 산성교회
rpress
4888 2009-11-18
믿음과 인내로 개척의 문을 활짝 연, 산성교회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전쟁의 참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은 가 능할 수 있어도 그 느낌은 공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 는 일들은 대략 이해할 수 있는 일과 느낄 수 있는 일로 나눌 수 있다. 특 히 후자의 경우 그 느낌은 골수(骨髓) 속에 각인되어 개인의 삶에 두루 영향 을 미치고는 한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상황은 기독교 선교 이래 최대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 다. 혹자는 이런 일들을 계기로 교회가 더욱 정결해질 것이라 담대한 예언 을 하기도 하지만, 세워지는 교회보다 문을 닫는 교회가 많은 참혹한 현실 은 그 사역자에게 담즙보다 쓴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개척교회의 어려움, 때때로 찾아오는 절망과 외로움……. 그 누구보다 목회 자 가정의 일원으로 그것에 동참한 사람이라면 간혹 있는 조그만 보람과 기 쁨으로 이러한 고통들이 보상되긴 힘든 일이다. 평생을 헌신한 교회에서 자 신의 부친 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고, 사임과 동시에 찾아오는 가난을 경험 했다면 교회 개척이라는 일은 쳐다보기조차 힘든 일이 될지 모르겠다. “주 님께 헌신한 우리가 왜?” 라는 반문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라는 대의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마음의 혼돈과 절망이 너무나 당연한 것은 경험하지 않 아도 공감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 만나볼 산성교회 담임 한영우 목사는 그 당연함을 극복하고 ‘주님의 영광’을 붙잡은 사람이다. 한 목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개척 의 현실을 온 몸으로 느꼈다. 부친의 사임과 이어지는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 적인 배신감, 곧 맞이한 부친상의 일은 인간적으로는 극악의 상황이었지만, 한 목사에게 하나님만 철저히 의지하는 광야 훈련의 시간이 되어 현재 아름 답고 풍성한 신앙의 열매가 가득한 ‘산성교회’라는 복으로 다가왔다. 한 목사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인천과 부천의 경계선, 부평 삼산동에 믿 음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산성교회가 2001년에 설립됐으니 올해로 만 8년차 젊은 피가 꿈틀대는 교회이다. 혈혈단신 목회자 가정으로 시작한 교회이니 장로, 권사, 집사가 있을 리 가 없다. 현재 집사의 70-80%가 산성교회에서 처음 집사를 받은 분들이다. 한 목사는 이들을 위해 한없는 기도와 눈물, 인내의 시간으로 기다렸고, 주님께서 보내 주신 착한 성도들은-한 목사는 인터뷰 내내 성도들을 이렇게 불렀다- 어느 덧 성장한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처럼, 교사, 전도회 회장, 찬양대원 으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주님께서 산성교회 성도들에게 큰 은혜와 믿음을 주신 결 과이다. 자살하려던 분이, 우울증으로 주변 가족까지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 던 분이 이렇게 남을 살리고, 공동체를 기쁘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 다. 그래서 산성교회 성도들에게 직분은 자랑의 표시가 아니라, 주님의 인정 과 격려의 상장이다. 서민층 아파트 단지에 세워진 산성교회는 아직 교회 규모는 작지만 서민층이 자 젊은 세대인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허락되는 여건 하에 최선의 분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파트 입주 초기엔 감사하게도(?) 입구 보안문이 없어 자유롭게 방문하며 전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단지는 중화요리 배 달도 쉽지 않는 지역 이 되었다. 관계전도가 전도의 주요수단이 될 수밖에 없 지만, 그래도 노방전도를 포기할 수 없어 2가지를 병행해 나간다. 젊은 세대 지역이라 아이들과 학생층이 다수라 부교역자도 2명이나 두어 기 독교 교육, 기독교 문화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구역들(목장)은 힘 을 다해 모여 기도와 말씀에 힘쓰지만 자신만 돌아보는 성도가 되지 않기 위 해 선교사와 어려운 교회들을 돕고 있다. 교회가 어려워도 함께 어려우면 서 로 마음으로 따스함과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한 목사의 생각이다. 2009년 산성교회는 ‘함께 세워져가는 비전공동체’라는 모토와 함께 새롭 게 도약하고자 한다. 감사하게도 얼마 후면 안수집사 4분이 임직되어 교회 가 더욱 힘 있게 사역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한 목사와 산성교회에 이런 기 쁨이 있었을까? 한 목사는 ‘목회는 기다림의 시간이며, 그 기다리는 목회 는 정말 귀한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목회를 보여줬다. 요즘도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해서 무릎이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한 목사 는 기도와 기다림을 계속할 작 정이다. 주님께서 그 답변을 반드시 주시리라 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미 그 증거로 산성교회가 있지 않은가? (이은숙 기자)
129 no image 바른 신학으로 시류를 거슬러가는 현산교회
rpress
5249 2009-10-20
바른 신학으로 시류를 거슬러가는 현산교회 땅 속까지 스며들었던 여름의 습기와 열기가 어느덧 산들 하게 부는 가을바 람과 함께 먼 남방으로 물러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내 거리의 가로수까지 도 가슴 깊숙이 담아두었던 열기를 토해내는 듯 모든 잎사귀를 붉게 물들이 며 중추(仲秋)의 심미(深味)를 우리 모두에게 선사하고 있다. 차가운 불꽃 이 다 타고 나면 곧 낙엽의 시간도 돌아온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O. 헨리 (마지막 잎새의 저자)에게 떨어짐은 애상의 절정이지만 굳이 그렇게 슬플 일 도 아니다. 더 깊은 나아감을 위한 잠시의 움츠림으로 보면 태연할 수도 있 겠다. 하지만, 훌륭한 농부는 가지치기의 최적의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없 다. 이러한 시기에 나무에서 필요한 열매만을, 그리고 충실한 열매는 전적으 로 농부의 손놀림에 달려있다. 오늘은 교회의 충실함과 강력함은 오직 바른 신학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된다 는 확신아래 신앙의 가지 치기에 특심한 현산교회를 만나본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현산교회는 2000년 11월에 설립된 젊은 교회이 다. 최덕수 목사는 시작부터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교회와 목회가 이루어 지는 교회를 지향했다. 프로그램으로 중무장한 교회들이 넘쳐나는 일산에서 오직 말씀의 능력만을 붙드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다. 십자가 단단히 붙잡 고... 새찬송가가 잘 번역했듯 이 일은 진실로 단단히 붙잡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목회자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자 하 는 성도들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아름다운 아홉 가정과 함께 현산교회는 시작되었다. 곧 9주년을 맞이하는 현산교회는 그야말로 단 단히 성장하여 믿음의 생수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그럼 현산교회의 여 러 모습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예배는 개혁주의 예전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른 교회보다 더 긴 예배시 간을 가진 현산교회는 칼빈이 지향했던 바대로 단출한 예배순서를 가지고 있 다. 특이할만한 점은 매 예배마다 시편찬송을 함께 부르고 있으며, 설교자 의 설교가 40~50분 동안 이루어진다. 예배 순서뿐만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산교회는 프로그램화된 교회를 지 양하므로 대신 성도의 하나님을 알아감과 인격적 성숙에 최선을 다한다. 특 히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는데 있어 많은 교회들이 실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들이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교인들을 동원하고 분주하게 해서 - 교인 동력화- 성도로 하여금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 드는 경향이 있어 최 목사는 프로그램보다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를 더욱 지 향했다. 또한 기도는 소원 관철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은혜의 방편 이므로 기도시간에 인내의 탑(?)을 쌓지 않고 즐거운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 통이 되도록 가르침을 집중하고 있다. “저는 현산교회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설계도대로 지어지는데 최우선적 목표 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혹시 허락 하실 지도 모르는 양적 성장도 개혁주의 신학 방법론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우리 교회를 통해 개 혁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목회하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원 합니다” 이런 열망을 가진 최 목사가 우선적 목표로 삼는 것은 ‘크리스챤으로서 기 본적인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만 강한 성도가 아닌 야전(野 戰)에서 진실한 성도가 되는 것이 현산교회의 비전이자 목표이다. 최 목사는 모태신앙으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마산 시립교향악단에서 일했으며 SFC(학생신앙운동)과 YWAM(예수전도단)에서 간사로 일했고 찬양사 역을 비롯한 신(新)사역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서울에 오게 되고, 어릴 때 다녔던 화성교회로 연결된 것은 전 적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교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합신과 개혁신학을 접했 고 신학적 타협 없는 든든한 교회관을 견지하게 되었다. 일산 지역은 이러한 최 목사와 현산교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지역이다. 지 나친 교육열로 아이들의 신앙은 뒷전으로 간지 오래다. 성인들도 지나친 직 장과 사업 생활로 주말은 휴식과 레저의 시간이지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제 는 잊혀져가고 있다. 말씀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헌신케 하는 참된 믿음의 부흥이 현산교회 와 일산 지역에 가득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411-320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 1585 탄현마을 16단지 031) 913-5316 교회 031) 813-5316 교육관 홈페이지 http://hyunsan.net (이은숙 기자)
128 no image 한국교회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 할렐루야 축구단
rpress
3981 2009-09-22
한국교회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축구팀으로 할렐루야 축구단 단장 이영무 목사 우리 교단의 목회자 중 TV에 가장 많이 출연한 분은 누구일까? 고(故) 박윤 선 목사님일까? 아니면 연세 지긋하신 신복윤 목사님일까? 안타깝게도 모두 아니다. 정답은 할렐루야 축구단 단장을 맡고 있는 이영무 목사이다. 이 이 름을 듣고 혹시 70-80년대 유명한 축구 국가대표선수였던 이영무 선수? 하 고 생각했다면 정답이다. 또, 2006년 독일월드컵을 치르고 최근(2008년 7월) 까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던 이영무 위원장을 떠올렸다면 그것 도 정답이다. 요즘 많은 젊은 교단 목회자들이 잘 모르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영무 목사 는 합신 87학번인 우리 교단 목회자이다. "아니 목사가 교회가 아닌 축구단 단장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또 무엇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 지만 이 타이틀들의 뒤에는 하나님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사역, 은혜, 그리 고 간증이 숨어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영무 목사와 할렐루야 축구단과 함께 한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기적의 소식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요즘 많은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고 기도하는 세레머니를 해 보는 성도들로 하여금 축구 보는 감동을 배가 되게 하곤 한다. 하지만 이 기도 세레머니의 원조는 바로 이영무 선수였다. 수없는 골과 함께 펼쳐진 기도 세레머니는 지 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도 논란거리가 되었다. 여러 곳에서 압박이 왔지만 자 신의 능력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아는 이영무 선수였기에 차라리 국가대표 선 수를 그만 두었으면 그만 두었지, 이 기도 세레머니를 그만 둘 생각은 없었 다. 기쁨의 표현이 아닌 진정한 감사의 표현이자 기도 그 자체였기 때문이 다. 축구선수 이영무가 축구선교를 꿈꾸게 되고, 목사까지 된 계기는 1977년 미 국 빅토리아 농구팀의 스포츠선교를 통해서다. 스포츠를 통한 선교는 지금 은 선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지만, 그 때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당시 토마스 아켐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해 큰 감명을 받고 있었던 이영무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 을 주님 앞에 포 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것은 국가대표였다. 모든 축구선수의 꿈인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힘든 1주일간의 기도 끝에 국가대표 축구팀 단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기도 원에 들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라고 생각하던 중 어린 시절 보았던 농 구팀의 선교가 선수 이영무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렇게 할렐루야 축구단의 비전은 시작되었다. 국가대표까지 내려놓고 주님의 섬기고자 했지만 하나님 의 생각은 다르셨다. 3개월 뒤 이란과의 중요한 축구경기를 앞두고 단장은 “예수 믿는 선수들이 더욱 국가를 사랑하는 줄 믿는다”라며 이영무 선수 를 다시 불렀고 이영무 선수는 그 경기에서 2골이나 넣는 큰 역할을 감당했 다. 그 경기 때 함께 경기를 뛰었던 차범근 선수는 부상 통증으로 너무나 힘들었 다고 한다. 경기 전 이제 예수를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차범근 선수는 같이 기도하자며 ‘내 주를 가까이’ 찬송을 함께 불렀고 하나님께서는 차범 근 선수에게도 기적의 힘을 주셔서 좋은 경기를 하게 해 주셨다. 물론 이슬 람의 한 복판에서 이영무 선수의 기도 세레머니 가 당연히 올려져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다. 할렐루야 축구단은 1980년 창단되었다. 그간 83년 수퍼리그(K리그 전신) 우 승을 비롯해 수많은 대회에서 많은 수상을 하였다. 현재는 N리그(실업리그, 한국에서는 2부 리그의 성격을 갖고 있다)에 소속되어 뛰어난 성적을 거두 고 있다. 축구단은 바쁜 리그 일정 중에서도 선교와 축구를 적절히 병행하 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최근에는 태국에 여왕컵에 다녀왔다. 출중한 팀들이 출전했는데 뜻밖에도 할 렐루야팀이 우승하게 되었다. 이 일로 태국의 거리를 지날 때 승려조차 할렐 루야팀 선수들을 보고 “할렐루야”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상 숭배 가 가득한 국가에서 경기 하나로 할렐루야를 각인시킨 것이다. 고생하는 한 국선교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준 것도 값진 일이었다. 무엇보다 복음전파에 있어 큰 장벽을 허무는데 역할을 잘 했다는 것은 축구단의 감사한 간증이다. 이영무 목사는 작년 7월까지 기술위원장을 지내며 2006 독일월드컵과 2010년 에 열릴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했다. 기술위원장 임명 당시 목사의 신분 때문 에 축구협회 내부에서 반대하는 목소 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월드컵에 서 비록 16강에는 실패했지만 원정 1승과 함께 전체 17위라는 나름대로 많 은 소득을 올려 반대했던 목소리들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축구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히딩크, 아드보카트 같은 감독을 임명하는 자리가 기술위원장이다) 이영무 목사에게 있어서 기술위원장은 하 나님을 위한, 그리고 할렐루야 축구단을 통한 선교를 위해 주님이 주신 훈련 장이었다. 축구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수준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한 다. 감독의 수준이 팀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렐루야 축구단을 맡고 있던 이영무 목사에게 기술위원장 직책은 세계 축구 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훈련장이었고, 할렐루야 축구단의 선교 비 전을 이루는데 진실로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께서 축구단을 위해 나를 그 자리에 올리신 것입니다.” 이영무 목사는 요즘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힘들어 견딜 수 없 다고 한다.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 축구단 운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선 수들 급료도 못 줄때가 많았지만 때마다 견디게 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팀 전체가 한 마음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들의 관심과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2020 세계적 명문구단의 선교비전을 갖고 뛰는 할렐루야 축구단에게 믿음의 힘을 가득 실어주자. 그 래서 제 2의 이영무, 차범근, 이영표, 이근호, 박주영, 기성용 같은 선수를 많이 배출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의 불모지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 는 축구단이 되길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경기 안산 단원구 초지동 안산 와~스타디움 내 할렐루야 축구단 031-485-4641, www.ashfc.com
127 no image 혼돈의 시대에 진리의 생명을 전하는, 밀알교회 (16)
rpress
5048 2009-09-15
혼돈의 시대에 진리의 생명을 전하는, 밀알교회 오늘날 포스트모더니티의 가장 중심 주장은 ‘해방’으로 정의될 수 있다. 모더니티 사회가 이전 고전주의나 프리모더니티 사회의 봉건주의와 일원주의 를 공격했다면 포스트모더니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권위의 해체와 기 존 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문학, 예술, 과학, 공학에 이르는 모 든 분야가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학의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더니티의 공격을 받아 신학적 자유주의 가 성경해석의 일원주의를 탈피하고자 했다면 이제 포스트모더니티는 기독 교 자체의 상대화(다원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자명한 결과 로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상대화된 기독교를 ‘선택’하고 있으며 보수적 기 독교인들도 성경해석과 영적 경험의 제한되지 않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어 느덧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설교자들의 성경해석을 분별하는 능력은 거의 상실되어가고 있으며 거 의 모든 종류의 영적 경험도 무조건 성경적인 것으로 수용되고 있는 듯 보인 다. 한 목회자는 이러한 상황을 ‘영적 무장 해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회의 총체적 위기는 ‘윤리의 위기’가 아닌 ‘진리의 위기’라 고 강하게 주장했다. 엄위한 성경 진리가 무디어지고, 교회가 세속화 되어 윤리적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위기가 해소되어지지 않 는다면 윤리적 위기를 해쳐나갈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 묵직한 느낌의 목회자는 바로 원주 밀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정욱 목 사이다. 2003년 10월에 개척하여 올해로 만 6년째 되는 젊은 교회를 담임하 고 있다. 오늘은 강원노회 교회 소개 2탄으로 진리의 등불로만 밝혀지기 원 하는 밀알교회를 소개한다. 원주 밀알교회를 설립한 김 목사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 지점에서 주님의 사 역자로 조금은 늦게 부름 받았다. 청년시절, 고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자신만만했던 사람이 장로님이었던 장인어른의 반강제적인 결혼조건 에 못 이겨 교회 다니는 흉내만 내려고 했더니 점차 신앙을 갖게 되고 큰 은 혜 받고 목회까지 하게 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주님의 부름의 공식에 딱 들어맞는 케이스이다. 듣는 사람들은 한 번 듣고 감동받고, 눈물 흘리고 나면 되는 즐거운 이야기 이지만 본인들에겐 주님을 따르는 대가를 지금도 단단히 치르고 있는 지라 늘 기도로 주님께 힘을 얻어야만 이어갈 수 있는 힘든 사역의 길이다. 밀알교회도 하나님의 공식에서 예외가 없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 고 말씀만 믿고 간다는 김 목사에게 풍성함 보다는 어려움과 싸우는 훈련을 선사하셨다. 한 성도의 식당에서 시작된 모임이 성장하고, 여러 번의 어려 움 속에서 예배당을 이전 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말씀에 대한 열정 이 없었다면 김 목사와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남다른 충성됨에 성도들은 점점 거주지와 멀어지는 교회 당을 주저함 없이 출석하였다. 워낙 거리가 멀어 담임목사도 매일 찾지 못하 는 예배당에 성도들은 자주 찾고 기도하고 함께 모여 예배한다. 기자가 교회를 방문한 날은 밀알교회의 여름 성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휴가 철 마지막 연휴를 앞둔 목요일이었음에도 교통정체를 마다않고 많은 성도가 교회를 찾았다. 청년들은 일찌감치 도착해서 찬양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고, 여성도들은 먼 길을 찾아온 성도들을 대접할 식사를 준비하느라 흐르는 땀도 닦을 새도 없어 보였다. 특별한 강사가 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온 성도가 모여 담임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온 것뿐이다. 하지만 모든 성도들의 모습엔 기대감과 기쁨이 넘쳤다. 김 목사의 목회철학은 오직 하나이다. 하나님 말씀, 그것 하나를 갖고 적용 하며, 기쁨 가운데 열매 맺는 것이다. 이것으로 개인, 가정을 세우고, 그것 으로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개인,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온전함을 최선으로 추구 하며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가고자 하는 것이 밀알교회의 지향점이다. “참된 은혜라는 것은 진리가 더욱 빛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김 목사 는 그래서 가장 정상적인 보통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성도들이 겪는 많은 문제를 프로그램과 훈련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요즘 세태 에 김 목사는 말씀으로 그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게 해 주고, 철저한 회개 와 풍성한 관계의 회복을 거쳐 다시 그 문제를 겪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많 은 교회가 ‘위로’로 편향되어 있는 것과 많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사역으로 밀알교회는 자발적으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성경적으로 맞 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밀알교회에도 조그만 소망들이 있다. 그것은 이제 교회가 이사를 그만 다니 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김 목사의 지병도 성도들의 큰 기도제목이다. 모든 어려움을 딛고 오늘까지 달려온 밀알교회가 이 땅의 진리의 밀알로 풍성한 생명을 전하는 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1999-7 왕가B/D 2층 033)731-2722 010-3794-2972 http://cafe.godpeople.com/milaldream (이은숙 기자)
126 no image 조용하고 편안한 말씀 중심의 교회, 온유한교회
rpress
5541 2009-08-18
조용하고 편안한 말씀 중심의 교회, 온유한교회 바야흐로 광고전쟁의 시대이다. 거리 구석구석 마다, 회사건물들 마다 저마 다 자신들의 강점을 내세워 알리기에 바쁘다. 남들과 차별되는 조그마한 조 각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는 건 생존경쟁 체제에서 도태될 수도 있는 심각한 망각이다. 교회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새벽기도회 라도 알리고, 목회자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러다 보니 교회는 어느덧 ‘경건하고 차분한 이미지’에서 구원에 관한 특 별한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시끌 법적한 매장 이미지’로 탈바꿈한 느 낌이다. 그런데 ‘조용하고 편안한 말씀 중심의 교회’를 모토로 이러한 거대조류를 담대히 맞선 교회가 있어 화제다. 교회의 본질을 구현 한다는 것 때문에 외 적 성장을 희생시키지도 않았다. 다른 교회들보다 오히려 더욱 수적 부흥을 이루었고, 교회당 건축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루었다. 서울 목 좋은 곳에 위치한 교회도 아 니다. 지방 중소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서 특별한 지역적 강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하지만 강원 원주시 관설동에 위치한 온유한교회에서는 이 모든 것이 현재완 료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형 규모의 예배당은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주변 건물들과 조화로운 모습으로 지역 속에 녹아있고 담임을 맡고 있는 변 세권 목사는 우직하게 설교 열심히 하고 화려한 모습보다 소탈하지만 경건 한 인격의 본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 순수한 목회자이다. 흔히 합신의 신학적 컬러는 지방에서는 사역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말을 많 이 듣는다. 남미지역에서 실패한 미국장로교회의 사례로 볼 때, 합신의 신학 이 잘못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한 듯하다. 따라서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 은 어떻게 성공적인 사역을 이어올 수 있는가 였다. “기도원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성도들과 은사주의적 집착을 못 버렸던 성도 들은 한두 번 왔다가 대부분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집중하는 설교 로 계속 도전하고 성도들과 순수한 인격적 관계를 맺으며 계속 사역했습니 다.” 변 목사의 말이다. 너무나 단순하다 못해 깨끗한 목회철학이다. r 하지만, 이러한 깨끗함을 위해 변 목사는 너저분한 것들을 거둬내는 정말 많 은 기도와 노력을 기울였다. 성도들에 의해 평가되는 변 목사는 ‘설교되고 인격 되는’ 목회자이다. 칭찬을 위한 수사가 아닌, 온유한 교회 성도들의 자랑으로 하는 말들이다. 많은 독서와 깊은 신학적 검토 및 노력, 바른 신학만이 바른 교회로 이끈다 는 굳은 신념이 변 목사의 가장 중심 되는 생각이다. 1998년 11월 교회 개척 부터 지금까지 심한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온 철학이 다. 이러한 철학 때문에 온유한교회는 행사중심이 아닌 예배 중심의 교회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변 목사는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목회자 상이 아닌 함께 하는 목회자 가 되기 위해 진심으로 애써왔다. 기자를 접대해 주신 성도들의 태도는 ‘함 께’라는 단어의 참 뜻을 잘 보여주었다. 성도들은 목회자와 격이 없는 편안 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변 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접대하는 손끝 에서 진하게 묻어났다. 변 목사는 이러한 관계는 오직 성도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기 위 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변 목사 본인은 자신을 볼 때마다 위선 같다며 겸양했지만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이 온유하셔서 온유한교회라니까요."하는 것을 보며 변 목사의 성도들 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K권사님 이라고 하셨던 한 성도는 “우리교회는 온유한교회가 아니라 합신교 회에요.”라며 교회의 지향점을 정확히 지적해 주셨다. 그리고 이것은 변 목 사가 원주시에 뿌리내리고 싶은 그 교회관이다. 변 목사는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 합신 합격한 날이다. 어린아이 같이 아 내 앞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영재만 입학하는 항공과학고등학교와 연대 대학 원을 졸업했지만 신학공부 원 없이 해보고 싶었던 그에게 합신은 ‘신학 천 국’과 같은 곳이었다. 잠시 20대 고난의 시기에 좌절감도 느꼈지만 안양대 신학을 통해 어린 시절 소명감을 회복하고 합신을 통해 그의 신학을 확실히 정립했다. 이러한 과정 들은 온유한교회가 오늘의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어떤 준비를 하셨는가를 잘 보여준다. 지금도 변 목사는 합신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수고 하며 이러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온유한교회는 사회복지에 관련된 또 하나의 큰 사역을 준비하고 있 다. 이웃사랑의 큰 걸음을 내딛어 주의 말씀을 실천할 계획이다. 또한 교회 사역도 더욱 온전하게 성장해서 강원노회와 전국교회들에 ‘합신적’ 신학 도 ‘된다’는 도전을 주는 교회가 되는 꿈도 가지고 있다. 돌아오는 길까지 성도들의 사랑을 듬뿍 담아준 온유한 교회가 강원 온 지역 에 주의 사랑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길 기대한다. (이은숙 기자)
125 no image 복음의 참빛을 들고 새롭게 뻗어나가는, 참빛나라교회 (1)
rpress
4662 2009-07-21
복음의 참빛을 들고 새롭게 뻗어나가는, 참빛나라교회 예장 통합측이 지난 2008년 총회에서 예장 300만 성도 운동을 결의하고 시행 에 들어간 지도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갔다. 270여만 명의 교세를 자랑하 는 예장 통합측은 얼마 전 그 중간결과 발표에서 4만9천여 명의 새로운 교인 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특이할만한 점은 이 운동으로 기존의 중대형 교회가 더욱 성장하는 면도 있 겠지만, 교단 차원의 운동과 지원으로 인해 비자립교회가 자립교회로, 위기 를 겪던 몇몇 교회가 교인 4~500명 수준의 안정된 단계로 교회가 세워졌다 는 사실이다. 아직 교단 내 70% 가까운 교회들이 안정권에 접어들거나, 완전 자립의 형태 를 갖지 못한 우리 교단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주목할 만한 결과이다. 힘 들어하는 교회들을 강 건너 남의 일로만 치부해버리는 현실은 교단 교회로서 의 책임감이나 최소한의 동정심마저 없는 잔인한 일이다. 이번 교회 탐방은 이러한 의미에서 교단 내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어 많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한 한 개척교회를 소개한다. 지난 5월말에 새 목회자가 취임해서 건물, 성도, 목회자 모두 새로운 도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 는, 봄 날 새로 돋은 맑은 연두빛깔의 잎사귀 같은 신선한 교회이다. 바로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참빛나라교회이다. 2개월 전 은평구 염광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던 강성욱 목사가 새롭게 취임하고 복음의 참빛을 지역의 모 든 계층 사람들에게 힘 있게 전하고 있다. 참빛나라교회는 사실 몇 년 전 개척된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가 있던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완전히 철거되어 불가피하게 완전히 새로운 지역으로 이전 하게 되어 제 2의 개척이 되어버렸다. 또한 전 목회자의 유학으로 인해 목회 자마저 교체된 상황이라 참빛나라교회는 본의 아니게 중고 신인(?) 교회가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성도들과 새롭게 옮긴 지역에서 함께 하게 된 성도들과 아이 들 덕분에 교회는 주일이면 어느 교회 못지않게 시끌법적하다. 강 목사 특유 의 우렁찬 설교 소리가 교회 창을 넘어 길가에 흘러 나가고, 정성스럽게 준 비한 점심식사는 온 성도들에게 주의 애찬을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로님의 긴 식사기도는 찬송으로 에너지를 다 소비한 온 몸을 다시 긴장시 켜 식사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이 모든 것은 개척교회 만의 아름다운 특권이 다. 이 사역을 감당하는 강 목사에게 개척교회 사역은 사실 무엇보다 낯선 일이 다. 합신과 독일 유학 후 남문교회, 동흥교회, 염광교회 등을 거치며 중대형 교회 사역에 익숙한 그다. 그러한 그가 개척교회 청빙에 선뜻 응한 데에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결정적이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 니라(잠 5:21). 이 말씀이 길을 묻던 강 목사 심령 깊숙이 뿌리박혔고 현재 눈에 보이는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들을 더 이상 그러한 걸림돌들로 보지 않 게 만들었다. 강 목사는 참빛나라교회에서 복음이 구원의 문제를 넘어 생각과 가치관의 변 화를 이끌어내는 목회를 하기 원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삶의 중심에 능력의 말씀을 심고, 진리 안의 자유와 기쁨을 마음껏 향유하는 성도들로 성장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또한 교회가 하나님 중심의 교회, 평안한 교회,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는 교 회, 전도된 심령이 자라나 교회의 일꾼이 되는 교회, 순수성이 지켜지는 교 회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목표도 덧붙였다. 참빛나라교회는 현재 유초등부 주일학교가 폭발적인 부흥을 하고 있는 중이 다. 처음 2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 15명으로 배가의 배로 부흥하였다. 30 명 목표로 전도하고 있다고 하니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 때문에 교회당이 모 자를 판이다. 성도가 작으니 교사도 태부족이다. 7월 중 시작하는 여름성경학교도 문제이 지만 주일 어린이예배의 교육이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것들 은 참빛나라교회의 기도제목들의 극히 일부이다. 강 목사는 모든 개척교회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이러한 어려움들을 해결하 기 위해 모든 교단 교회들의 기도를 부탁했다. 강 목사는 여러 가지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려움들을 함께 겪는 교회 들에게 조그마한 힘과 위로가 되자는 취지로 취재에 기쁨으로 응해 주었다. 국가적 경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척에 기도와 응원을 보내준 성도들과 특별히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은 염광교회 측에도 감사의 말을 잊 지 않았다. 아직 교단적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의 능력만을 신뢰하는 참빛 나라교회가 주의 빛을 높이, 멀리 전파하는 이 시대의 참된 교회로 우뚝 서 길 기대해 본다. (이은숙 기자)
124 no image 행복한 전도로 배가의 부흥을 이룬 언약교회
rpress
5038 2009-06-23
행복한 전도로 배가의 부흥을 이룬 언약교회 가시고기라는 물고기는 참으로 특이한 습성이 있다. 어미 가시고기는 알들을 낳고 바로 떠나버리고, 아빠 가시고기가 그 자리에 남아 알들이 부화될 때까 지 지킨다. 시간이 지나 알들이 깨어나고, 새끼 물고기들은 마침내 뿔뿔이 흩 어져 제 갈 길을 가게 되면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숨긴 채 죽고 만 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러셨다.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지니셨지만 우리에 대한 한 없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부활로 그 분의 영광스러움은 회복되셨지만, 우리에 대한 사랑만큼은 이미 십 자가 위에서 모두 증명하셨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역 사 이래 수많은 주의 종들과 교회들이 택한 방법은 썩어지는 밀알과 같은 가 시고기가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러한 숭고한 주의 사랑으로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자 애쓰는 영등 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언약교회를 만나본다. 언약교회는 1997년도에 정운기 목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이다. 처음 시작 때부 터 대림동에서 시작했으니 이미 10년이 넘게 대림동에서만 터를 잡아왔다. 정 운기 목사가 목회를 준비하기 전 사업을 열었던 장소도 대림동이니 정 목사 편에서 보면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언약교회는 2005년도에 현재 예배당으로 이전해 왔다. 조그마한 빌라 한 동 전체를 리모델링을 해 아름답고 예배당으로 쓸모 있는 건물로 만들었다. 3층에 아름다운 본당, 2층은 사택, 아래 1층은 교회의 여러 부서가 사용하기 에 적합하도록 오밀조밀하게 잘 만들었다. 언약교회는 교회로서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위치인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하 고 있다. 주차는 고사하고 사실 외부사람들이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는 교회 를 찾기 조차 힘든 곳에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옛적 시골 동네의 사랑방처럼 오며 가며 들러 기도할 수 있는 편안한 교회이 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평일이었지만 교회는 꽤 시끌벅적했다. 구역식구들을 위 해 기도하는 소리들, 잠시 들린 성도들의 인사소리들, 아이들의 마냥 천진스 r 러운 웃음소리들로 취재가 아름다운 방해(?)를 받을 정도였다. 정 목사는 “좀 시끄럽죠?” 하며 해 맑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언약교 회는 이렇게 즐거운 북적거림이 있는 교회이다. 정 목사는 목회 이전에 평신도로서 오랜 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는 기쁨과 자유함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위장병, 불면증 등의 문제들로 건강도 악화되어 갔다. 새로운 곳에서 새 길을 찾겠다는 마음에 고향을 등지려고 할 때 고향 교회에 서 있었던 부흥집회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 의 치료하심으로 모든 질병은 떠나가고 신앙의 기쁨도 완전히 회복하였다. 이후 평신도로서 주님을 더 알고 섬겨 드리자는 마음으로 신학의 길을 간 것 이 오늘의 아름다운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열매 맺었다. 언약교회는 2005년 예배당 이전 후 배가의 부흥을 이루었다. 다른 교회처럼 D-12 시스템도 있고, 해피데이 전도시스템도 실행 중에 있지만 언약교회는 오 직 재생산만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교회이 다. 주께서 새롭게 부여해 주신 생명을 가 진 자라면 반드시 영적인 자녀를 생산 해 내야 한다는 것이 정 목사의 교회관이자 목회관이다. 하지만 정 목사는 전 도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확 인이다. 전도보다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다. 정 목사는 이러한 작업을 ‘생명확인작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전도는 고 전 4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는 말씀 에 따라 건강한 생명을 가진 자가 관계 전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제 언약교회의 전도 목표는 청소년과 중국교포이다. 대림동 지역은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들이 많은 탓에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하고 있다. 또한 저 렴한 임대료 덕분에 많은 중국교포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이에 언약교회는 주님이 주신 전도와 선교의 기회로 생각하고 이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교회에는 중국교포들로 구성된 성경공부모임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사역을 열정적으로 펼치는 언약교회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목표도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감당하는 성도라고 정 목사는 자랑 스러워했다. 인사하러 들린 여성도의 얼굴에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이 베어나 는 것을 보면 그 협력이 어떤 협력인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듯하다. 믿음과 경건의 능력으로 대림동 지역을 복음으로 일깨우는 언약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23 no image 지난 3년 여간의 교회 취재기를 되돌아보며…….
rpress
3228 2009-06-10
지난 3년 여간의 교회 취재기를 되돌아보며……. 아름다운 교회 취재가 시작된 것이 벌써 9년, 본 기자가 취재를 시작한 지 도 만 3년이라는 꽤 긴 시간들이 흘렀다.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다양하고도 복잡한 목회 환경과 그에 따른 독특한 교회 형태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한 ‘합신’, 혹은 ‘개혁 주의’ 라는 줄기에서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취재 중 내내 기자를 많이 놀라게 했다. 도시지역과 도시외곽지역, 그리고 농촌지역의 교회들이 처한 환경은 동이 서 에서 먼 것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도시 지역 교회라고 해서 반드시 많은 전도의 대상과, 열매가 있는 것도 아니며, 농촌지역의 교 회라고 해서 꼭 지원을 받는 미자립 교회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설교가 강점인 목회자가 있는 교회더라도 꼭 교회가 많은 성도들로 붐 비는 것도 아니었다. 목회자의 관심이 성도의 양육 쪽에 더 집중되어 있는 측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성도들이 교회에 기대하 는 바가 좋은 설교만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탄탄한 기반을 잡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거의 힘든 역경과 고난을 통해 성장 한 교회들이었다. ‘끌과 정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그대로 옮겨진 교회들이다. 목회자가 하루아침에 온 가족과 길거리로 내 몰리는 상황에 처 하는가 하면 교회 내부의 분열로 큰 상처가 생기는 교회들도 있었다. 하지 만 모든 고난들을 기도하며 주님이 주신 지혜로 극복해 나가 지금의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더욱 많은 교회를 취재해야 알 수 있게 되겠지만, 이제까지 돌아본 바로는 특별한 강점을 가진 교회보다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구색이 잘 갖추어진 진열대처럼,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가는 교회가 더욱 든든한 성장을 해 가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교회 탐방’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미 아름다 운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신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교회를 이 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 다. 그런데 실상 많은 목회자들이 취재 요청에 자 랑할 만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취재를 거절하는 경우가 꽤 되는 편이다. 기사의 편집 제목이 ‘아름다운 교 회’라 부담이 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의 아름다움은 어떤 특출함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적 혹은 집단적 죄악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경건과 선행을 이루어가는 데 있다 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막 설립해서 집중적인 고난을 받는 개척교회나 많은 사역으로 지쳐가는 중대형교회나 모두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 이 번 지면을 빌어 이러한 오해가 계속되지 않고 많은 교회가 교회 취재 요청 을 하길 기대해본다. 때때로 취재하다보면 교단 신문의 존립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목회자들 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매체를 대할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의 학급에서도 학급신문을 발행하는 이유와 동일하게 교단의 전체적인 정체성이나 우리 교단 교회들만의 목소리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신문 발행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더욱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신문사에 많은 원고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취재를 담당하는 취재부로서 서울, 수도권 외의 타 지역 교회들에게 깊은 죄 송함이 있다. 아직 여력이 부족하여 사실 상 신문사와 장거리에 있는 교회들 을 탐방하지 못하고 있다. 직접 취재원칙을 고수하다보니 충청 이남권 교회 들에게 본의 아니게 죄송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방의 교회들도 수도 권의 교회와 완전히 동등하게 소중한 우리 교단의 교회이다. 혹시라도 이러 한 면에서 오해가 있었다면 널리 양해를 부탁드린다. 여건이 개선되는 대로 지방의 교회들도 아름다운 교회 탐방 목록에 올릴 것을 약속드린다. 앞으로 주 안에서 자랑할 만한 풍성함을 가진 교회들의 봇물 터지듯 한 원고 와 기사 제보 및 취재 요청으로 우리 교단 신문이 아름다운 소식들로 가득 차길 소망해 본다. (이은숙 기자)
122 no image 공동목회로 교회의 참 모습을 구현해가는, 새연수교회 (1)
rpress
5505 2009-05-13
공동목회로 교회의 참 모습을 구현해가는, 새연수교회 기독교 각 교단의 고유한 특색들은 한국 교회 역사의 맥락 속에서 심하게 훼 손된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방향으로 귀결되었 을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의 특이한 기독교 부흥 속에서 몇 가지의 교회 형식으로 고착 되어버리고 말았다. 신비주의-카리스마적 리더십의 교 회, 기업 CEO형 리더십의 교회 등은 대형교회로 성장한 몇몇 교회들의 리더 십이 하나의 풍토로 자리 잡은 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유형이 과연 주께서 말씀하신 참 교회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있는가 생각해 보는 것은 옳다, 그르다의 문제와 함께 매우 중요한 문 제이다. 오늘은 현대사회의 급변함 가운데 교회의 참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공동목회 라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인천 연수구 청학동에 위한 새연수교회를 만나 보았다. 이 교회 목회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길을 위해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많은 고민과 기도, 논쟁과 분담을 통해 이러한 교 회의 리더십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새연수교회도 초기에는 보통 교회에서와 같이 한 목회자에 의해 인도되었 다. 하지만 여러 힘든 상황을 통해 리더십의 문제를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 었고, 신대원 시절 배워본 적이 있던 공동목회를 시도하게 되었다. 서로의 신학과 은사, 여러 다른 부분들이 많은 토론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를 채워주자, 메워주자는 생각으로 점 점 하나가 되어갔다. 처음 함께 하였던 3명의 공동목회는 특별한 사정으로 한 분의 목회자가 타교 회로 부임해 가 현재 임효영, 김수환 목사 2명이 교회를 이끌고 있다. 초기에는 그야말로 수학적 나눔의 형태로 공동목회를 했다. 주일설교도 3개 월씩 했을 정도로 나눔에 철저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적 나눔은 성도들이 적응하는데 매우 어려움이 있었다. 한 목사의 설교가 익숙해 질 즈음 새로 운 설교 스타일이 시작되니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거친 후 각각의 은사를 따라 예배 설교, 성경공부, 여러 사역들 을 세밀하게 분 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특이한 교회 형태에 처음에는 주변에서 이단의 오해까지 받았다. 본 교회 성도들도 익숙해하지 않는데 주변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오히 려 당연한 일이었다. 대외적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임효영 목사는 아버지의 역할을, 김수환 목사는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하는 방향으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갔다. 새연수교회의 공동목회는 목회자들 간의 공동목회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별다른 어려움이나 새로움도 없었을 것이다. 이 교회의 공동목회라 함은 목 회자와 성도들의 공동목회이다. 결국 제직들도 목회에 참여하고 각 그룹의 리더들도 목회에 깊이 참여한다. 새연수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모든 교회의 여러 사역과 사업들, 비품 구 입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고, 회의하고 결정한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일을 목사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로 생각한다. 자연이 교회가 자신의 교회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특색 때문에 보통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강력한 요 구와 애원으로 나가야 하는 전도도 새연수교회에서는 성도들 이 먼저 요청해 와 차 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설교 주제나 성경공부 주제 같은 것도 성도들의 요구와 필요가 빠르게 적용 되어 그야말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회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더 교회 가 부흥하게 되면 교회의 모든 대소사를 공동의회에서 결정할 수는 없겠지 만 현재는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거의 자기의 몫을 찾아가고 있다. 새연수교회는 아이들이 많은 교회이다. 특이한 형태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 만 젊은 성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도 성도 수에 비해 많은 편이다. 교회 예배에는 모든 성도가 참여해야 한다는 목회철학이 뚜렷 한 새연수교회에서는 그래서 예배도우미가 아이들의 예배를 돕는다. 놀아주 는 놀이도우미가 아닌 예배도우미이다. 아이들이 교회의 손님이 아닌 당당 한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이나 착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만 들어진 편안한 길을 걷고 싶어 한다. 게다가 새로움은 언제나 낯섦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어떤 일의 선구 자에게라도 담대함은 최고의 덕목이 된다. 아직은 힘든 초창기인 새연수교회가 이러한 믿음의 담대함을 굳게 가지고 참 교회의 모습을 연수구에 펼쳐가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21 no image 신앙의 행복이 가정에 가득할 때까지, 남서울평촌교회 (1)
rpress
5487 2009-04-15
신앙의 행복이 가정에 가득할 때까지, 남서울평촌교회 이미 1998년 이후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이혼국가가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소식은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권을 넘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8년 이후 한국에 불현듯 찾아온 경제 위기는 많은 가정을 경제 파탄으로 몰아갔고, 결국 가정의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서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자 명한 이치이다. 물질적 풍요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더라도 그 이면에 가정의 따스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가 세계 국가행복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의 반증이라 하겠다. 성경의 원리는 참다운 가정의 원리를 세워가는 것이다. 가정과 같은 교회, 가정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 해나가는 것이 곧 주의 통치를 이루어 가 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성경적인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 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은 이러한 성경적 사회적 요청에 시대적 사명감으로 이러한 사역을 감당 하는 남서울 평촌교회(강신욱 목사)를 만나본다. 남서울평촌교회는 가정예배와 입양운동을 통해 신앙적, 사회적 책임을 감당 하는 아름다운 본을 보이고 있는 교회이다. 평촌 중심의 상가지역에서도 이 면도로에 위치한 남서울평촌교회는 사실 교회로서는 최악의 입지조건을 갖추 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교회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에 모여들고 있다. 이유는 그리스도 안의 행복 을 구현해 나가는 가정들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남서울평촌교회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강조가 늘 교회 안 여러 프로그램들 속에 존재한다. 주일의 설교말씀을 월요일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앙의 진보를 이루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또한 가정에서도 강조될 수 있도록 가정예배를 통해 말씀의 집중적 이해가 이루어 지도록 하고 있다. 강신욱 목사는 부흥을 경험한 가정들이 모였을 때 공동체적인 아름다운 예배 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정예배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서로 깊 게 소통하고 신앙이 다음 세대에게 전수될 때 기독교적 공동체가 이루어져 간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은 입양사역이다. 남서울평촌교회에는 강신욱 목사 가 정을 포함하여 공개 입양된 아이가 모두 7명이 있다. 부모들의 죄악 가운데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에게 정상적인 가정을 준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 지만, 강신욱 목사는 이 사역을 통해 아이를 입양한 가정도 ‘몰랐던 큰 행 복’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재 올해 한 명이 더 입양될 예정이라 남서울평촌 교회에는 총 8명의 입양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남서울평촌교회는 교회와 가정이 유리되지 않고 온전한 연합을 이루 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사역을 이루어 가는 강신욱 목사의 가정 또한 남다르 다. 강 목사는 가정예배를 통해 신앙을 배웠다고 한다. 강 목사의 아버지는 청바지 같은 진(jeans)은 노동복이므로 교회 갈 때는 적 합하지 않다고 가정 형편에서는 가장 좋은 양복을 어린 강 목사에게 사 주었 다고 한다. 입양을 할 때에도 무조건 찬성이나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여 신중하게 결정한 후 입양을 했다. 남서울 평촌교회가 가정사역에 힘쓴 나머지 다른 사역을 못 감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제를 위해 3년 마다 십일조를 별도로 모아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있으며 교회의 순장들은 선교사들과 직접 교류하며 선교를 위해 기도 와 후원을 하고 있다. 이제 남서울평촌교회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올해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할 예정이다. 새로운 부지는 안양시의 대표적 낙후지역이다. 그 지역에 서 방과후교실을 비롯한 여러 사역을 통해 지역 아이들을 돌보고 가정적 해 체를 맛본 아이들이 그러한 유산을 답습해 가지 않도록 주의 말씀으로 그들 의 빈 마음을 채워갈 예정이다. 강 목사는 20년 후 남서울평촌교회가 시대의 영성을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었 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복한 가정을 통해 교회의 참 부흥을 이루어 하나님 의 나라를 이루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남서울평촌교회의 아름다 운 꿈이 주의 나라와 함께 펼쳐지기를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20 no image 봉천의 하늘의 은혜의 새하늘로 - 새하늘교회 (14)
rpress
5388 2009-03-17
봉천의 하늘의 은혜의 새하늘로, 새하늘교회 독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오늘날 봉천동은 서울 관악구의 대표적인 동명 (洞名)이다. 높고 험한 준령의 관악산 기슭과 계곡 틈에 오밀 조밀 모여든 사람들이 어울려 마을을 이루고 또 그 경계선을 계속 확장해가다 지금의 거 대한 봉천동으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행정 개혁의 일환으로 그 10여동에 이르던 동들의 명칭을 모두 개칭(改稱)하여 우리가 아는 봉천동은 이제 우리 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추세이다. 원래 봉천동은 금주(衿州)라고 불리는 조그만 부락이었다. 고려 시대 강감 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그의 원래 이름이 ‘은천’이었는데, 이번 행정 개혁에서 봉천본동이 은천동으로 바뀌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하늘 의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낙성대도 있는 이곳은 그래서 예로부터 하늘을 섬기는 천신사상이 강한 곳이다. 지금도 기가 센 곳이라 하여 많은 무당들 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척박한 영적 환경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새하늘 교회는 시작되었다. 하 지만 처음 교회를 개척한 김선우 목사는 그 흔한 상가건물도 아닌 8평짜리 슈퍼(?)마켓 자리에서 교회를 시작하였다. 사실 김 목사는 이러한 어려움이 매우 낮선 목회자이다. 건국대에서 CCC활동 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본격적 사역에 뛰어든 후로는 은곡교회와 송월교회을 거치면서 청년부에 부흥의 불길을 이끌어내었다. 이 시기 경제 적 여건도 이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부 모님과 아이들을 데리고 관악구에 이사 왔지만 전세금 사기를 당해 전세보증 금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그 때 간신히 구한 건물이 그 슈퍼마켓이다. 김 목사를 따르던 청년들 몇 명과 함께 오직 주만 바라보며, 말씀만 의지하기 로 하고 눈물의 못질로 시작한 교회가 이 새하늘교회이다. 2001년 초라하기까지한 ‘슈퍼마켓 교회’의 시작은 이제 2009년 오늘날 내 천 기슭의 ‘슈퍼 교회’로 발돋움할 태세이다. 2008년 말 극심한 취업난 속 에서도 취업준비생 청년들 전원이 세상이 부러워할만한 직장에 모두 취업하 였다. 사법시험만큼 어렵다는 중등교사임용고시를 비롯하여 외국명문대로 취 n업하기 힘든 외국계 회사까지, 직장보다 신앙의 진급을 더욱 소중히 했던 청 년들에게 주님은 감격의 선물로 갚아주셨다. 새 예배당에 입당할 때 매일 같 이 기도와 봉사의 땀방울로 교회를 사랑한 청년들을 주님께서 외면치 않으 신 것이다. 김 목사는 교회는 묵은 밭을 기경하듯 세상의 죄악의 뜨거움에 메말라 버린 심령을 철저히 갈아엎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의 영향력 에 압도되어 버리면 주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셉이 어떤 미래도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만으로 저항했을 때 큰 은혜를 부어주신 것처럼, 힘든 역할이라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굳건하게 이 일에 매진할 때 하나님 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김 목사는 철저히 경험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목회 의 철학을 철저히 구현할 생각이다. 이러한 김 목사의 목회 방침은 새하늘교회의 사역에 잘 드러나 있다. 새하늘 교회는 전도하기 힘든 지역이지만 3년 전부터 3개월에 한 차례 전도초청집회 를 갖고 있다. 이러한 꾸준함은 또한 꾸준한 결실들이 얻어지게 하고 있다. 새하늘교회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지향점은 진실한 헌신과 봉사 이다. 사실 새하늘교회는 전도와 이러한 헌신과 봉사가 늘 함께 이루어진 다. 진실한 헌신과 봉사야말로 전도의 문을 열고 마음 밭을 기경하는 가장 좋은 쟁기가 되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믿음보다 자아가 자라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애통함을 표현했다. 성도의 신앙이 직분과 헌금으로 측정되어지 고, 많은 성도들이 그에 따라가면서 한국 교회가 혼란해진 것을 지적한 것이 다. 참 신앙은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한 순백의 믿음으로만 커가야 하고 이러 한 의미에서 봉사와 헌신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하늘교회 성도들은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교회 인근으로 이사를 온다고 한 다. 청년 자매들은 새벽기도를 하는 다른 자매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방도 아낌없이 내어준다. 상을 당한 지체의 빈소를 지켜주기 위해 휴가를 내어 장 례에 함께 하는 새하늘교회의 성도들도 있다. 참 헌신과 그를 통한 주의 사 랑을 몸소 실천하는 새하늘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참 믿음과 헌신으로 봉천의 미신의 하늘을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주의 새하 늘로 바꾸어가는 새하늘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 한다. (이은숙 기자) 관악구 봉천본동 903-30 삼화빌딩 02-889-9491
119 no image 가장 어두운 곳에 가장 밝은 빛을, 등대교회
rpress
4322 2009-03-04
가장 어두운 곳에 가장 밝은 빛을, 등대교회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해변에서야 바위에 기어오르고 모래 위를 굴러가는 파도 소리가 낭만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다 한 가운데 배 위에서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선장은 모든 감각 을 오직 눈에 집중한 채 촛불 하나 정도의 빛도 놓치지 않으려 흐르는 땀 한 방울 조차 닦을 틈이 없다.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빛을 찾게 마련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암흑의 공기 속을 헤매고 있다. 누군가 외 치는 소리를 듣고 빛을 찾아 나선 사람도 있지만 아예 밝음의 느낌조차 잃어 버릴 정도로 철저히 어두움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오늘은 이러한 어둠 가운데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그 원초(原初)의 빛 되 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복된 소식을 알리는 교회, 등대교회를 독자 여 러분께 소개한다. 등대교회는 서울 5개 노숙자 집중 지역 중 동대문 쪽방 지역에 유일한 주의 복음의 전령사로 우뚝 서 있는 교회이다. 총 550여개의 쪽방과 약 350명의 주민들이 있는 동대문 쪽방촌에서 2006년 3월 개척되어 오늘까지 쉬지 않고 심령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 쪽방촌인 영등포역 주변에는 광야교회(합신, 임명희 목사 시무)가 있 어 쪽방촌 사람들의 영육을 살리는 전진기지가 되고 있는데 반해, 동대문 쪽 방촌 지역은 지역주민을 감당하는 교회가 없어 영적 어두움이 심해지고 있 는 형편이다. 광야교회에서 3년 6개월을 부목사로 시무한 등대교회 김양옥 목사는 준비된 일꾼으로 이 교회를 개척하고 오늘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노숙자와 쪽방촌 주민을 상대로 하는 사역은 거의 선교 사역에 가까울 정도 로 일반 교회사역과 차이가 있다. 흔히 예상하듯이 알코올 중독과 폭력에 맞 서면서 사역을 해야 하는 어려움 등은 사실 그렇게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김양옥 목사가 맞서야 했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소망 없는, 가장 최 소한의 행복조차 소망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이다. 그리고 그 절망감에 폭발해 버리는 분노심이었다. 쪽방촌 주민들의 분노심 은 외면으로는 전도하는 목회자에게 대한 분 노심이지만, 실상은 절망감에 빠 져 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심이다. 김 목사는 “이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주의 성령이 이들의 굳 은 마음을 푸시는 길 밖에 없다”며 오직 ‘외치는 소리’가 되길 작정했다 고 전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예배 할 때마다 눈물과 기쁨이 가득했던 김 목사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좋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고민하던 중 목회 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다. 전도사로 사역하던 때에 노숙자들이 교회에 와 구걸할 때 무서워서 접근도 못하고 돈을 주어 내어 좇아내다시피 하는 것을 보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김 목사를 사로잡았고 광야교회에 서 등대교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역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등대교회의 사역은 매우 다양하다. 보통 교회와 같이 예배, 전도도 하고 성 경공부도 한다. 뿐만 아니라, 취업을 알선시켜 주며, 목욕도 시켜준다. (0.5~1평 남짓 쪽방은 난방과 온수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에는 나름대로 괜찮지만, 겨울철에는 전혀 씻을 수가 없다) 아이 를 낳게 된 쪽방주민에게는 산후조리원에도 들어가게 해 주었다. 심지어 안 갚을 줄 알면서 김 목사의 사비를 빌려주기도 한다. 성도들 모두가 공공근로 나 구걸, 육체노동에 종사하여 매우 어려운 교회 사정이지만 하나님의 놀라 운 은혜로 등대교회는 어엿한 지하 25평의 예배당도 가지고 있다. 이 예배당에서 주민들과 ‘형님, 동생~’이라 부르며 매주 눈물 가득한 은혜 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담배도 피고, 소란도 부렸지 만 이젠 제법 고상한 성도의 모습들도 보인다고 김 목사는 전했다. 김 목사 는 현실은 이러한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들이 모일 교회가 필요하지만, 각 처에 있는 교회들이 이 어려운 사람들을 품는다면 등대교회 같은 교회는 필 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등대교회는 현재 있는 예배당의 계약이 2월로 마감된다. 40명의 성도들 이 함께 웃고, 웃을, 그리고 예배드릴 처소는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어려 운 경제 상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점점 힘이 들어 하고는 있지만 6일 동안 뼈 속까지 시리게 하는 추위와 싸우다 예배에 온 사람들에게 예배당이 없어 지는 것만큼 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주께서 특별한 사랑으로 등대교회와 함께 하시길 기자도 함께 기도한다. (이은숙 기자) 서울 종로구 이화동 90-11 (02)765-0671, 010-3283-0671
118 no image 사랑의 띠로 지역과 세계를 묶어가는, 한가족교회 (1)
rpress
3997 2009-02-10
사랑의 띠로 지역과 세계를 묶어가는, 한가족교회 어떤 사람이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 안에 넣어보았다. 의외로 그 둘은 잘 지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에 넣어보았 다.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그들 역시 서로에게 잘 적응하였다. 이번에는 장 로교인과 침례교인과 감리교인을 한 우리 안에 있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시 간이 지나도 결코 잘 지낼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깊 이 있는 교제에 어려움을 느끼는가를 꼬집은 크리스천 작가 마크 트웨인의 풍자 속 이야기이다. 제인 오스틴이 사랑을 시작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은 오만과 편견이다라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회 안에 있는 교만 과 색안경들은 많은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로 묶여져 나가는 시흥 한가족교회를 소개한다. 한가족교회는 교회 명칭처럼, 진정한 주 안에서의 가족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교회이다. 교회 주보 전면은 아이들 과 성인 성도들의 사진들로 가득차 있다. 교회 로비는 아예 북카페로 꾸며 져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성도들, 지역주민들로 분주하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황대연 목사는 이러한 사랑의 교제를 더욱 깊이 있게 이루어나가기 위 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속 분투중이다. 황대연 목사에 의해 개척된 한가족교회가 원래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황 목 사가 아프리카 보츠와나 선교사로 4여 년간의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 을 당시에는 교회 개척에는 별로 뜻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따르던 2명의 청 년들과 함께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하던 중 이웃에서 이단으로 보는 것이 두려워 정식으로 장소도 마련하고 간판도 걸었다고 한다. 농담으로 이런 저 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황 목사지만 사실 황 목사의 개척의 비전은 명확하 다. 황 목사가 선교에서 돌아온 후 한국교회를 보니 선교지의 상황을 잘 모 르고 후원하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선교지의 가려 운 데를 긁어주는 교회가 되자”처럼 전문적 선교를 담당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하며 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한가 족교회는 이렇게 선교적 비전 가운데 시작되었다. 하지만, 비전만 있다 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교적 비전을 품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한가족교회는 전도에 열심이다.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에게만 전도하 는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도 전도한다. 30년간 교회를 다녔지 만 아직도 구원이 무엇인지도, 구원의 확신도 없는 사람들을 보며 믿음보다 행위가 더 믿음 있어 보이는 비극을 막기 위해 열심히 전도한다. 그래서 한 가족교회는 이전에 어떤 믿음생활을 했던 반드시 5주의 교육을 받고 교회를 등록하게 하고 있다. 등록 후에는 1:1 제자 양육으로 성도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교회 초창기 때에는 제자훈련을 시도하였지만, 지역의 여러 가지 상황 은 이 프로그램과는 맞지 않았다. 지금은 1:1 제자 양육으로 키워진 리더들 이 다음 세대들을 1:1로 양육하고 있다. 이렇게 성도들간, 목회자와 성도간 끈끈한 관계로 세밀하게 엮어진 한가족교 회는 이제 거의 모든 성도들이 선교구좌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기 본부터 하나하나 정검하며 성장한 성도들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헌 신적으로 성도 들을 돌본 황 목사의 리더십에 감동한 것이다. 황 목사는 이러한 성도들의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에, 열심에 부응하고 자 자신을 훈련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합신 설교학 박사과정도 4학기를 이수 했고 이제 마지막 1년만 남았다. 세계 여러 지역 선교지를 돌아보는 데에도 힘을 쏟는다. 선교지를 모르고 선교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2월에도 캄보디 아를 방문하고 필리핀 단기선교모임을 주도한다. “한국에서는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기댈 곳이 많습니다. 교회들도 있고, 은 행도 있고, 친척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그때는 하 나님 말고는 바라볼 곳이 없습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어려움을 경험 한 황 목사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띠를 펼치기 위해 그래서 더욱 교회 의 선교와 전도사역에,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을 보살필 설교와 훈련 사역 에, 온 성도와 함께 매진중이다. 현재 시흥 시화지구는 경제 한파로 인해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한 가족교회 성도들 중 실직하는 성도도 생겼다고 한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힘 을 얻고,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어 더욱 주를 섬기는 데 부족함이 없 게 되길 황 목사는 기도하고 있다. 가족이 힘을 합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법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진정 한 믿음의 힘을 세상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한가족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17 no image 사회봉사로 복음의 빛을 퍼뜨리는 해맑은교회
rpress
3809 2009-02-03
사회봉사로 복음의 빛을 퍼뜨리는 해맑은교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수님 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아담 이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조차도 그 분의 영광만을 뵈었을 뿐이다. 따 라서 이 말씀은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프레드릭 마이어는 그래서 이 청결의 복을 산상수훈 중 최고의 복이라고 하 였다. 마음이 청결하고 맑은 사람만이 하늘을 우러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 에 비치실 수 있는 것이다. 깨끗한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을 시작할 땐 편견과 오만을 버려야 한다는 제인 오스틴의 말처럼, 주님을 사랑할 땐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순수한 마 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오늘 만나볼 남양주 해맑은교회는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 다. 주변의 오해와 편견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주 님 앞에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함을 가지고 주의 복음을 펼쳐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해 내 었다. 해맑은교회는 처음 선대목사가 암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다. 결국 병세 가 깊어져서 후배 전도사가 교회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도 사의 아내가 암으로 다시 투병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양주가 개발되기 이전 인 이 시기는 시골과 같은 분위기라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갔다. 교회의 성도 들은 “목사님, 교회 자리가 안 좋아요.” 라며 하나 둘 씩 교회를 떠나갔 다. 교회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고, 결국 폐쇄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94년 4월, 당시 좋은 사역지로 갈 기회들이 있었던 전송수 목사는 전 목사 가 부임하기만 하면 교회를 폐쇄하지 않는 다는 말에 바로 부임하여 오늘까 지 이르렀다. 전 목사가 부임할 당시 교회는 상당히 어려웠다. 미신이 횡횡하던 지역에서 성도들조차 흔들려 많이 교회를 떠났고, 전 목사도 만성적 피로누적으로 체 력적으로 많이 부침이 있던 때였다. 하지만, 전목사는 ‘하나님은 아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라며 성도들을 격려했다. 성도들 하나, 하나가 다시 편견을 접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잃었던 믿음도 하나 둘씩 되찾기 시작했다. 96년도에는 처음 5명이었던 성도가 40명 이상으로 늘 어나면서 편견에 굴복한 것이 아닌 복음의 능력으로 새예배당으로 자리를 옮 겼다. 현재는 다시 교회당을 옮겨 남양주 도농동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해맑은교회는 평범한 것을 추구하는 교회이다. 전 목사가 가장 강조하는 것 도 ‘하나님은 아신다, 목사 보고 하지 말자, 사람보고 하지 말자,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이다. 단순하 지만 너무나 순수한 가치들이다. 하지만 이 가치들은 힘이 있다. 가히 세속 화되고 있는 교회를 깨울 만한 능력 있는 가치이다. 해맑은교회는 조그마한 교회이지만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성장했다. 전 목사는 “모두가 직분자같이 성실히 일하면서도 아이들처럼 기뻐할 수 있 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며 이러한 가치로 앞으로도 교회를 이루어가길 원 한다고 말했다. 해맑은교회는 성공적인 사회봉사로 칭찬을 듣는 교회이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여 개발의 뒷전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 전임교사 3명과 함 께 하는 지역아동센터는 주변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원은 꿈도 못 꾸는 어 린 아이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다. 부모의 맞벌이와 이혼 등으로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처음 시작했고, 시의 지 원으로 지금은 탄탄하게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의 부재로 움츠렸던 아 이가 밝아지고, 무관심 속에서 성적이 끝에서 맴돌던 아이들이 90점 이상 상 위권으로 올라가자, 주변 정상적 가정의 아이들조차 다닐 수 있을까하고 부 모들이 문의하기도 한다. 지역아동센터는 정식으로는 아이돌보미시스템이다. 방과 후 교실과는 다른 곳이지만, 아이들에게 교육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것도 사실이라, 공부돌보 미도 병행한다고 전 목사는 전했다. 기자가 센터를 방문했을 때에도 벽에 빼 곡히 붙은 성적 우수자 명단을 보며 이러한 열매들을 실감했다. 아이들은 교회에도 잘 다닌다. 지역아동센터와 교회는 별개임에도 주일에는 교회에 온다. 평일에 선생님들에게 들은 기독교적 가치와 성경이야기들로 아 이들은 어느새 전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을 딛고 여러 가지 사역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해 나가는 해맑은교 회가 맑음의 파동을 지역에 널리 퍼뜨리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116 no image 믿음의 능력과 삶으로 크게 성장하는, 산본무지개교회
rpress
7056 2009-01-20
믿음의 능력과 삶으로 크게 성장하는, 산본무지개교회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한국교회는 성장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작년 조사에 서만 미약하게 늘어났을 뿐 최근 몇 년간의 지속된 교세의 축소현상은 한국 교회 이 곳 저 곳에서 우려와 탄식을 낳게 만들었다. 수많은 교회 문제 전문 가들이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했지만 모든 대책은 하나로 수렴되었다. 그것 은 신앙과 삶의 통합을 이루는 일이다. 그 동안 교세확장을 위해 너무나 중 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가운데서도 설립 10년 만에 많은 성장을 이뤄 주 변 모든 교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산본무지개교회를 소개한다. 산본무지개교회는 1997년에 설립된 젊은 교회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도 큰 어려움을 통해 단단하게 다져진 장년의 힘을 갖춘 교회이다. 이 교회는 2000년 5월 현 건물 지하 30여 평에서 시작하여 2003년 5월 같은 건물 지하 와 3층까지 모두 사용해야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1997년부 터 2000년 까지는 그야말로 극단의 연단의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교회의 본당은 경매로 넘어가고, 교역자는 조그마한 사택건물하나 건지지 못 한 채 거리로 나와 앉아야 했다. 이종근 담임목사와 함께 그 교회에서 나온 15-6명의 성도들은 패잔병과 같 은 모습으로 지금의 건물 지하로 들어왔다. 그나마 주변의 도움이 없었으면 조그마한 지하 공간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종근 목사는 이렇게 앉아 있을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제자훈련을 시작하 였다. 그러나 많은 힘듦과 상처가 있던 성도들은 매우 힘들어했고, 함께 왔 던 성도들 중 2가정이 떠나 상황은 더욱 암담하였다. “사람들이 힘들면 한강에 가잖아요.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라는 이 목 사의 말은 그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넘어져도 자빠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앉아만 있는 거 지?” 남은 성도들과 이 목사는 무릎부터 주님께 드리며 다시 시작했다. 매 주 이 목사의 좁은 사택에 모여앉아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QT이 었지만 기존 QT 처럼 주관 적 느낌을 적는 QT가 아니라, 객관적 연구를 통해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의 결과들을 서로 나누는 성경연구시간이 었다. 이것이 산본무지개교회의 성장의 다이너마이트가 되었다. 이 목사는 현재도 교회에서 계속 시행되고 있는 이것을 교회의 보석이라고 하였다. 말씀이 사 람들을 바꾼 것이다. 절망에 빠져 지내던 성도들이 기쁨과 충만함 속에서 살 게 되었다. 넘쳐흐르는 예수의 피가 전도의 열매들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도 들이 총동원집회를 처음 했을 때 1명 결신자가 나왔지만 지금은 어린이들만 150명이 넘는 숫자를 자랑한다. 원래 산본무지개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성들 이 교회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남성성도들은 아내들의 전도를 통해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다. 아름답고 진지하게 변화된 아내들을 통해 남성들의 굳은 마음이 풀어져버린 것이다. 이종근 목사는 어려움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개혁주의를 현대목회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를 깊이 고민했다. 결론은 진정한 믿음, 굳건한 신앙 고백 안에서 교회가 성 장해야 하겠는 것이었다. 산본무지개교회의 전도가 대단한 힘을 갖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예수 믿고 천국가고, 기도 응답되고, 하나님 백성 되고 하는 식의 건성 전도 가 아닌, 예수를 믿을 때 나의 신분의 변화, 영광과 고난이 함께 따른다는 점, 죄와의 엄청난 전쟁이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진정한 순(純, full)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예수 믿으면 고생 시작이라는 식이다. 자신을 상품을 구매하는 귀한 소비자로 생각해주기 바라는 현대의 흐름에 대 한 정면도전이다. 산본무지개교회는 세상에 아첨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노력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전하고, 또한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증거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능력과 기쁨을 보여주는 것뿐이 다. 이것이 참된 성장동력이 되었다. 이종근 목사는 무지개교회성도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의 교회 에서 만난 산본무지개교회 성도들은 담임목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종근 목사는 현대교회가 좋은 설교만 있으면 된다는 단편적 생각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죄와 싸우고, 그 삶의 열매를 주님께 산 제사로 드릴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성장을 이루어온 산본무지개교회가 한국교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872-6 세종교육센터 3,4층 031-396-9016
115 no image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자! - 친구들교회
rpress
5626 2009-01-13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자! - 친구들교회 주의 말씀 중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 을 수 없다”는 구절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옛 조상들의 격언 중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 도 못하고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말씀은 삶 속의 진리로써 동일하게 유효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함께 만나볼 친구들교회와 김만형 목사는 이러한 진리를 실천이라도 하 듯 열심히 썩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적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러 나 영적으로는 궁핍함이 가득한 분당 서현동에서 전도지조차 받아들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냉랭한 마음과 물질만능주의의 중심에서 참 영혼의 만족을 잃 어가는 어린이, 청소년의 굳어져 가는 가슴에 주의 진리를 지피기 위해 분투 하고 있다. 주일학교 교사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았을 만한 ‘SS혁신보고서’의 저자 인 김만형 목사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시다 시피 강남 사랑의 교회에서 수석 부목사로 18년 동안 사역하면서 대형 사역에 아주 익숙한 교육전문가이다. 수백 명의 성도를 꿈꾸며 애쓰는 많은 목회자들도 있지만, 김만형 목사는 수 천 명의 어린 심령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 백여 명 조금 넘는 성도들과 함께 믿음의 사역을 함께 하고 있다.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많은 여러 제안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만형 목사는 다 내려놓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초기의 주님의 부르심을 다시 생각했 다. 단 한 사람의 성도가 있더라도 그 성도의 영적 성숙을 위해 몸부림치며 애쓰는 ‘진짜 목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교육전문가 타이틀도 내려놓았다. ‘김만형 목사가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니 교육전문 교회가 되겠구나’라는 선입견은 친구들교회를 보면 여지없이 깨어 진다. 친구들교회는 ‘교육교회’가 아닌 ‘보통교회’이다. 어느 한 세대 에 몰입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으며 결국 참 교회의 좋은 특징 들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목사의 생각이다. 친구들교회가 가질만한 또 하나의 선입견은 ‘교육은 잘 하지만 전도는 잘 r 안 할 것이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흔히 성도를 열심히 양육하는 교회들이 전도가 약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만큼 준비가 잘 된 김만형 목사에게 그러한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 만 친구들교회는 ‘목숨 걸고’ 전도하는 교회이다. 전도지조차 외면하는 분당 서현동에서 철저히 인간적 지혜를 버리고 복음을 정말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찾아내 복음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또 교회까 지 인도하는 어려운 전도를 택하였다. 이러한 전도로 한 때 6~8명밖에 없었 던 어린이, 청소년 부서를 100명 이상으로 성장시켰다. 김만형 목사는 한국교회의 교육이 실패하여져 가고 있는 이유는 교육을 교육 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회교육도 ‘목회’라는 의식으로 전환되어질 때만이 참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친구들교회에도 다른 교회들처 럼 방과 후 교실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다른 교회들처럼 결 코 전도의 접촉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친구들교회의 그것은 철저히 교회에 복음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 중 학습적인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 에게 목회적 돌 봄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복음전도는 복음으로만 한다 는 것이 친구들교회의 전도이다. 이러한 친구들교회의 사역들은 설립당시 가졌던 친구들교회의 가치와 철학 이 잘 녹아진 결과이다. 지면상 이것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김만형 목 사가 강조한 2가지를 소개해 본다. (자세한 것은 친구들교회 사이트를 참조 하면 된다) 첫째, 부지런히 전도하고 부지런히 사람 양육해서 영향력 있는 교회, 세상과 는 구별되는 교회, 사람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앙의 깊이를 가진 교 회가 되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교회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리더를 키우기보다 이전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데 초점 이 있는 훈련을 강조한다. 김목사는 이러한 것이 참 목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 전했다. 2003년 3월에 개척된 친구들교회는 이제 막 6년이 되가는 어린 교회지만 품 고 있는 생각은 이미 중년의 완숙함이 있다. 그것 때문인지 성도들도 새로 태어난 아기부터 100세 할머니까지 다 있는 우리가 그렇게 보아왔던 전통 교 회의 모습이다. 훌륭한 가치와 목표로 매진 하는 친구들교회가 분당 서현에서 진정 주를 찾 는 사람들의 친구로 자리매김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306-1 031)704-7922 (이은숙 기자)
114 no image 고난과 성령을 통해 새생활을 경험하는, 새생활교회 (152)
rpress
16149 2009-01-06
고난과 성령을 통해 새생활을 경험하는, 새생활교회 하나님께서는 욥을 단련시키시길 원하셨다. 그분의 원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했다. 그것은 욥이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크심과 무한하심을 인 식하고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자각하는 일이었다. 앤드류 머리 목사의 '겸 손'에 의하면, 이러한 겸허야 말로 믿음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자신을 포기하고 더욱 주님을 바라보게 만든다. 한 청년이 있었다. 젊은 청년 대학 시절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988년 충남대를 졸업하고 녹십자에 입사하 고 다음해에 서울대 의대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며 그는 큰 행복을 느꼈 다. 밤을 새는 일이 잦아졌지만, 새롭게 시작한 위암 관련 연구에 성과와 진 척이 나타날 때 마다 피곤함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였다. 3년 전 85 년도에 대학 복학 후 진로 를 놓고 고민하던 시기에 들었던 목사님의 노아의 홍수 설교를 통해 깨달았던 하나님의 부르심은 연구에 성과가 짙어질수록 오 히려 더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어느 날 그는 쓰러졌다...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 다. 폐가 반 가까이 손상 되었다. 젊은 시절 함께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다 고 하던 친동생이 있었다. 그는 연구소로, 그의 동생은 신학교로 갔다. 그 는 드디어 주님의 부르심을 생각해 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구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찬 부르심은 마침내 그를 굴복시켰다. 연구소 생활시절 동 생의 신학수업에 필요한 학비를 그는 기쁜 마음으로 다 후원했다. 그러나 이 제 본인의 차례가 되어 합신을 통해 목회수업을 했다. 불신자이셨던 그의 부모님은 이런 자녀들의 목회 열망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 셨다. 그는 제대로 말도 못 꺼내본 체 신학수업을 마쳤다. 목사 안수를 받아 야 하는 그는 본격적인 목회와 부모님의 반대 사이에서 고민과 기도로 시간 을 보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그의 삶에 강하게 개입하셔서 그 를 연단하셨다. 1997년 열심히 목회하던 사랑하는 동생이 하나님의 영원한 부르심을 받았다. 동생의 장례식 마지막 날 그는 부모님께 하나님의 부르심 과 목회의 계획을 다 이야기했다. 몸이 상하고 동생을 잃는 아픔을 통해 그 가 하나님의 사역자로 온전히 서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서울 구로구 새생활교회 김용덕 목사의 이야기이다. 보통 사람들이 하기 힘든 많은 연단을 통해 그는 주의 사역자로 부름 받았다. 남서울은혜교 회 부목사로 있던 김 목사는 목회자를 찾고 있는 새생활교회로 설교 한 번 하고 부임했다. 많은 힘듦을 겪은 김 목사의 설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새생활교회 성도들에게 큰 도전과 감동으로 전해졌다. 많은 힘듦을 경험한 김 목사지만 그는 늘 성도를 해맑은 웃음으로 대한다. 성도를 강하게 하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라는 것을 잘 깨달았고, 심령 깊숙 한 곳에서부터 인간을 치유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기쁨으로 드러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그런 성도들에게 그러한 것을 늘 강조한다. 새생활교회는 원래 1984년 누리교회로 설립되었다. 2001년 김용덕 목사가 부 임하면서 새생활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장소도 이전하여 아담한 건물을 리 모델링 하여 지금의 예쁜 교회가 되었다. 구로동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새생 활교회는 공단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몇 년 전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면서 공장들이 시 외곽지역으로 나가게 되자 많은 성도들도 그 지역으로 떠나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도들 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정을 어둡게 만들고 그것은 교회에도 이어졌다. 처음 김 목사는 남서울은혜교회에서 하던 전도프로그램과 여러 훈련들을 시도했 다. 하지만 마음과 형편이 어려웠던 성도들의 마음은 그러한 것이 맞지 않았 다. 고민하던 김용덕 목사는 합신 노상헌 교수의 새생활 프로그램(New Life)이라 는 것이 이러한 교회의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 다. 성도들은 경제가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부재가 문제이 고 자신들에겐 성령의 치유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목사 와 성도들은 기도하며 이 문제와 싸웠으며 많은 성도들이 회복과 큰 기쁨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두 가정을 파송한 새생활교회는 선교도 이러한 성령의 기쁨으로 감당한 다. 파푸아뉴기니와 이스 라엘로 다시 떠나는 파송선교사들, 후원선교사들과 함께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주의 나라에 새로운 삶을 선사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나는 새생활 교회가 되길 기자도 함께 소망한다. (이은숙 기자)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