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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no image 장애우 실버세대 등 특별프로그램 도입 남서울은혜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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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6 2006-02-17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 장애우, 실버세대 등 특별프로그램 도입 남서울은혜교회를 소개합니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남서울은혜교회는 남서울중동교회와 은혜교회 가 합동하여 1995년 10월 첫 예배를 드리면서 사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각 교회마다 첫 출발과 함께 교회의 사명을 세우듯이 남서울은혜교회는 교회 의 사명을 사랑과 선교에 세우고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 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 지자의 강령이니라󰡓라는 말씀은 95년 에서부터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는 지 표가 되어 교회의 큰 목적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 사명을 따라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성도와 믿지 않는 이웃들과 나아가 세상 모두를 진심으로 섬기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여 2006년도 를 시작하였 다. 남서울은혜교회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다양한 목회 계획들과 또 앞으로 진 행될 많은 사역들이 종국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되기 위해 자신을 되돌 아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되돌아보는 시간이 없다면 어느 새 사 람의 일이 되어 버린 채 하나님을 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의 그 침착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균형적인 발전에 이를 수 있었 다. 남서울교회에 이어 남서울은혜교회를 목회하고 계신 홍정길 담임목사는 지금 까지도 이전의 사역 보다 낳은 사역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오고 있다. 이전에도 풍성한 은혜가 가득했던 목회자의 삶이었지만 현재의 사역에서 예 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한다면 지금의 사역이 반복적인 모습에 그치는 것이라 고 생각했다. 따라서 달라진 시대상황 만큼이나 목사 자신도 변하려고 하였고 하나님이 원 하시는 교회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자가 되기 위해 늘 새롭게 연구하는 것 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도 홍정길 목사의 뜻을 따라 한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형성해 가기 시작했고 한가지의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내었다. 홍정길 목사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 받은 성도가 남서울은혜교회의 주인이며 목사가 아닌 성도가 아름다운 모습 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프로그램 진행이나 관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만족 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 또 성도들이 아름답게 성장하기 위해 늘 뒤에서 묵묵히 기도하며 지켜보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성도들이 좋은 지도자로 세 워져 가며 각 가정과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기치고 있다. 더불어 장애우를 비롯한 소외된 가정이나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고 먼저 다가서는 것이다. 남서울은혜교회는 결코 장애우 들을 다르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 같은 하나님의 형제이며 한 몸 된 지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 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밀알학교를 내 자녀의 학교와 같이 섬기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교회 밖에서도 소외된 이웃의 가정을 섬기고 있다. 같은 성도가 아니라하여도 경계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남서울은혜교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탓하지 않고 시대에 발맞추어 나 아가기 위해 올해도 전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5일제의 시행에 맞추어 주말 기간 동안 말씀으로 온전히 충전될 수 있도 록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자리 잡게 만들고 있으며 특별히 실버세대를 위 해 특별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또 세대에 맞게 성경공부도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대에 맞추는 것은 아니다. 그 중심은 흔들리지 않게 무게를 지키되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새벽기 도 시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온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고 있으며 가족 모두가 나와 새벽을 깨우도록 지도하며 훈련받고 있다.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그 균형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남서울은혜교회는 사랑과 선교라는 뚜렷한 사명과 함께 하 나님의 뜻을 이뤄가고 있으며 교회 내에서도 또한 부흥의 박차를 가하고 있 다. 이제 2006년도 역시 힘찬 변화의 발걸음을 기대하며 남서울은혜교회의 구령 에 귀 기울여 본다.
12 no image 100여 단체 후원 등 이웃사랑 실천에 총력하는 화성교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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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0 2006-02-17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 100여 단체 후원 등 이웃사랑 실천에 총력하는 화성교회 서울시 강서구 화곡본동에 위치한 화성교회는 1967년 원로목사인 장경재 목 사가 개척해 온 이후 지금까지 39년이 지난 역사와 전통이 깃 든 교회이다. 67년 당시 김성실 권사는 개척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해 오던 중 장경재 목 사를 만나 그 해 8월 30일에 화곡동에 대지 97평을 매입하여 화성교회라 이 름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한국교회의 특성상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또 문을 닫기도 하며 나뉘기도 하지만 화성교회는 지금까지 안정적이고 한결같은 사역으로 타 교회들에 모 범이 되고 있다. 그 이후 1979년에 지금의 담임목사인 김기영 목사가 강도사 로 부임하게 되고 1994년에 위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김기영 목사는 원로 목사인 장경재 목사의 목회 철학을 이어 받아 말씀 중심 으로 성도들을 세워 나가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가까이 두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말씀이 아닌 다 른 것을 도구로 성도들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특별히 각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 묵상해 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 떤 형체로도 나타나지 않으셨으며 형체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인 간의 모습으로 보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길 가르쳐 왔다. 이러한 원칙들로 성 도의 삶을 복잡한 것이 아닌 단순한 진리로 인도해 온 결과 지금의 화성교 회 부흥이 이어져 왔다. 화성교회는 교회의 자체적 부흥도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해 왔지만 합동신학 교 외 100여개의 단체의 후원과 구제에 힘써 왔다. 우선 혼자만 잘 되고 나 중에 후원해 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잘 됨을 느끼는 교회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 자신 보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비추는 등대와 같이 내 자신을 돌볼 시간 보다 자식들의 건강을 먼저 신경 쓰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사역에 힘써 온 결과 화성교회는 더불어 부흥을 이루었고 개척한 지 40여 년 동안 어떤 풍파와 어려움 없 이 평안하고 온화하게 주님의 빛을 비추며 그 자리를 지켜 왔다. 그리고 이제 10여년의 준비 기간 동안 고수해 온 새 교회당을 짓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화성교회는 새 교회당을 준공하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여기며 커다란 축복 으로 여기고 있다. 이 또한 현세대를 위함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의 한 방편인 것이다. 새 집을 짓고 입주하는 것 이상으로 청소년 사역, 영․유 아, 어린이 교육과 늘어가는 실버세대를 위한 교회당으로 이 준공을 통해 계 획되어 지고 기대되어 지는 사역들이 계속해서 더해 간다. 따라서 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화성교회는 물질의 모음보다 기도와 회개 의 운동을 먼저 벌이고 있다. 교회당은 물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짓 는 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 운동에 힘쓰고 있다. 이 간절한 믿음으로 작 정된 헌금들이 계속 들어오고 새 교회당은 올 2006년도에 시공에 들어갈 예 정이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차 한 잔의 온기만 있으면 몸 전체가 따뜻해지듯이 앞으 로의 화성교회도 새 교회당의 건축으로 말미암아 많은 성도들의 위로가 되 고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 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해 줄 것을 기대해 본 다.
11 no image 성경 이해 중심 강해 설교가 교회 성장의 힘 - 남포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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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4 2006-02-17
성경 이해 중심 강해 설교가 교회 성장의 힘 - 남포교회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에 자리하고 있는 남포교회는 남포라는 이름에 맞게 따뜻한 기운으로 성도들의 마음의 추위를 녹여주는 교회이다. 담임목사님이 신 박영선 목사님과 여러 교역자님들과 성도들 모두 세상의 추위와 구별되 어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오직 말씀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따뜻하게 이 겨 울을 보내고 있다. 박영선 목사님은 남서울교회의 홍정길 목사님의 안식년 동안 설교목사 및 임시담임목사님으로 계시다가 남서울교회에서 박영선 목사님의 분립개척 및 지원을 결정하고 1985년 1월 16일에 강남구 개포동 지하 자리에서 창립예배 를 드렸다. 이 창립예배에는 남서울교회에서 온 50여명의 성도들과 평소 박영선 목사님 의 책과 설교 테이프를 듣고 오신 250여명의 성도들의 함께 모여 300여명이 모이게 되었다. 남포교회는 처음부터 중형교회의 모습으로 시작한 것이다. 시작부터 넘치는 축복이 함께 했던 남포교회는 이 제 창립 21주년을 맞이하 여 장년 출석 교인수가 7000여명이 넘는 대형교회가 되었다. 시작의 발걸음 도 가벼웠지만 87년도 4월에 지금의 자리인 아시아선수촌으로 대지를 넓혀 이사를 오면서 더 많은 성도들이 함께 하였다. 매년 500~700여명 정도가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이 성장은 특별한 프로그램 이 아닌 오직 성경강해를 통한 말씀 위주의 메시지 전달이 탄탄한 교회 위 에 탄탄한 믿음의 성도들을 세워지게 했다. 사람들도 자신의 지어진 이름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것과 같이 남포교회도 그렇게 지어진 이름만큼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남서울교회와 개포동이라 는 지명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남포라고 지었는데, 남폿불이라는 의미와 영 어로 쓰면 lamp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어 진다. 지역 주민들에게 밝은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과 함께 어두운 밤 가장 앞장 서서 걷는 선구자로서 열심주의적 구원관이나 완전주의적 윤리추구의 극복 의 대안들을 제시하며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화된 모습이 드러나도록 제시해 왔다. 박영선 담임목사는 오늘까지도 성도들이 프로그램을 통한 일로써 나타날 것 이 아니라 신앙적인 인격의 성숙으로 먼저 양육되어야 한다는 목회 방침을 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온 교인관리 중심의 목회 패턴과 다른 관 점을 갖는 것이 박영선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위해서 교인들이 소모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교인 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목회자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남포교회는 교회의 행정 이나 관리 등의 문제는 2차적인 것으로 여기고 성경말씀을 통하여 성도들 개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데에 제일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강해식 설교 위주의 예배 자체가 성경공부 시간으로 활용되도록 한 다. 주중에도 목요일마다 성경공부가 90분씩 5주간을 계획하여 꾸준하게 진 행되어 오고 있다. 또한 평일에 참석하기 힘든 남자 직장인들을 위하여서는 가 새벽마다 45분씩 진행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지난 21년 동안 꾸준히 말씀을 연구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또 성도들이 말씀대 로 성화되는 모습에서 남포교회의 진보적인 부흥이 함께 했었다. 예수님께 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그를 좇는 무리들에게 많은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복음 을 전 파하셨듯이 박영선 목사는 자신의 사명은 오직 허다한 무리가 모두 참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께 사랑받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척 당시부터 21주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박영선 목사의 성도 사랑은 언 제나 한결 같았다. 박영선 목사를 따르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사의 의견에 반대하는 성도들이 있다하더라도 결코 동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의견 도 신중히 검토하고 또 모두의 편에 서는 목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 였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며 동일한 사랑으로 지켜주 듯이 박영선 목사도 교회가 한 가정으로 여기며 자신은 부모의 입장에 서서 늘 성도들을 자녀들처럼 보살펴 왔다. 그 한결같은 사랑과 인내와 부흥의 때 를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에서 7000여명의 자녀를 한 가족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작년부터 미자리 교회를 찾아다니시며 특별히 농어촌 교회에서 강의와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고 베풀고 있다. 개척교회 시절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성장을 함께했던 남포교회는 이 제 청년 나이를 맞이하여 2006년도에 더욱 성숙하고 진보적인 부흥의 선구자 로 남폿불을 뜨겁게 피워주길 기대해 본다.
10 no image ‘특별새벽기도회’와 ‘어머니 기도회’로 결실맺는 중계충성교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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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2 2006-02-17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 ‘특별새벽기도회’와 ‘어머니 기도회’로 결실맺는 중계충성교회 북서울노회의 중계충성교회의 역사는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중계충성교회의 담임목사이신 김원광 목사의 아버지 김근호 목사는 답십 리2동 목사의 사저에서 첫 예배를 드린다. 첫 예배 후 개척교회 나름의 가족 같은 분위기를 품고 사역이 진행되던 1985 년 김원광 전도사가 교육전도사로 부임하게 된다. 1985년부터 1992년 담임목 사로 임직을 받던 때까지 7년 동안 함께 사역하던 기간동안 김원광 목사는 많은 것을 옆에서 보고 깨닫게 된다. 지금의 중계충성교회의 부흥의 힘은 이 기간에 함께 울며 하나님께 매달리 던 그 7년이라는 기간이 반석이 되었다. 이제 홀로 교회 사역의 큰 책임을 안게 된 김원광 목사는 합신에서 배웠던 첫 강의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토대로 성경 공부 중심의 교회 사역 을 시작하게 된다. 90년대 초 는 각 지역에 성령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던데 반해 중계충성교회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성도들의 신앙의 기반을 잡아가기 시 작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1996년 현 중계충성교회 성전을 짓게 되었다. 성 전을 지으면서도 중계충성교회는 신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체험하게 된다. 지금의 노원구 중계동은 많은 주택 단지가 즐비해 있지만 96년 성전부지를 매입할 당시만 해도 아무 건물도 서있지 않았던 흙무더기의 불교부지 땅이었 다. 따라서 김원광 목사는 중계동이 아닌 다른 곳에 교회당을 짓기 위해 계획해 보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자리를 원하셨으므로 주님의 뜻을 따라 그 곳 에 부지를 매입하게 되었다. 매입을 하고 보니 그 장소는 매일 새벽 김원광 목사가 기도하며 돌던 조깅 코스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곳이 아닌 기도의 제단에 교회당이 세워지 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 이후 교회당과 함께 주택단지와 상가들이 들어 서고 지금은 교회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부흥을 이루고 더 큰 성장을 꿈꾸 게 되었다. 2006년도를 맞이하면서 중계충성교회도 그동안 해왔던 사역에 재정비를 통 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이웃에게 사랑 받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 고 힘을 모으고 있는 중계충성교회는 성도 개개인의심령에 임하시는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 위에 종합적인 사역의 꿈이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신도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떠도는 교인들의 중심을 잡아 주고 개인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한 성도간의 어울림에 관심을 기울인다. 마지막으로 자기 백성을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이웃을 향해 그 접촉점을 찾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모토를 향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특별히 많은 결실을 이룬 부분은 ‘특별새벽기도회’(이하 특새)와 ‘어머니 기도회’(이하 어 기) 이다. 중계충성교회의 ‘특새’는 온 가족이 참여, 그 인원만도 600여명에 달한 다. 이렇게 특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은 어 느 한 개인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일 것이다. 30여명 정도의 인원으로 출발하였으나 목사의 열정과 새벽에 은혜를 경험하 고 싶은 교우들의 열망이 함께 만나 ‘특새’는 계속하여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일년에 두 차례씩 온 가족이 이 기간에 함께 참여하면서 가족이 하나가 되고 교회가 하나가 되어져 온 성도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중계충성교회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새벽의 만나를 경험하 기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고 있다. 특새와 함께 중계충성교회의 큰 자부심인 ‘어기’는 매주 수요일 오전 170 명에서 180여명의 많은 어머니들과 함께 시작된다. 성도가 아닌 예비 신자들도 함께 들을 수 있는 CCM과 함께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갖고 교역자의 자녀와 어머니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자연 스럽게 자녀들을 향한 기도의 부르짖음이 터지는 것이다. 따라서 중계충성교 회는 ‘어기’에 대한 발전 가능성을 깨달아 ‘전국 어머니 기도회 운동 본 부를 추진하고 있다. 이 ‘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지면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복음화 운동 으로 발전될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눈물이 마르 지 않도록 오늘도 중계충성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어머니들 을 맞이하고 있 다. 중계충성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늘 노력하고 개혁하는 모습에 서 이제까지의 열매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함께 기대해 본다.
9 no image 미래지향적 비전, 젊은 패러다임 가진 지구촌 교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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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5 2006-02-16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 미래지향적 비전, 젊은 패러다임 가진 지구촌 교회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지구촌교회는 1988년 한국교회의 부흥의 바 람이 불고 아직 선교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을 때에 ‘All nations all peoples’라는 기치를 들고 개척되었다. 지금은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특히 교회 이름으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개척 당시에는 생소한 교회 이름이어서 조금은 낯설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에는 변화의 흐름과 같이하는 앞서가는 교회로 인정받 고 있으며 상호 협력하는 기관도 많이 생겨났다. 지구촌 교회의 안목으로는 세상 모든 곳곳이 선교의 대상이었고 하나님 아버 지 한 분 아래 모든 민족이 한 형제였다. 그러한 큰 비전 아래 18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영향력을 펼치는 큰 교회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지구촌교회가 선교하는 나라는 남아프리카, 러시아, 말레이시아, 모로코, 몽 골, 베트남, 브라질, 이라크, 이스라엘, 인도, 일본, 중국, 터키, 필리핀, 헝가리 호주 등 해외 선교는 60명을 지원하고 국내 농어촌 교회는 28곳, 단 체는 42곳을 지원하고 있다. 지구촌 교회는 예산의 32%를 선교 사업에 쓰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차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지구촌교회는 선교 활동 이외에도 청소년과 주민을 위한 도서관과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족, 부부, 청소년들을 위하여 지구촌 상담센터를 열고 있 다. 또한 산간 오지 및 섬지방 주민들을 침술, 한약, 의술, 미용 등으로 봉사하 는 의료선교회가 정기적으로 모이며 지역 주민의 건강과 교제를 위해 레포츠 선교회도 활성화 되어있다. 그밖에도 특색 있는 사업으로 지역주민과 함께 하기 위하여 다양한 사업계획 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계속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는 성도이든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예비 성도이든 지 구촌교회와 친숙하며 멀리 보이는 십자가가 아닌 하나의 이웃으로 주민들에 게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지구촌 교회도 처음에는 목동아파트 13단지 A상가 지하 대피소를 예 배처소로 삼아 한가정과 함 께 첫 예배를 드렸다. 벌써 18년 전 4월 10일의 일이다. 그 해 지구촌교회의 겨울은 더욱 춥고 외로웠으며 조봉희 담임목사의 얼은 손과 발은 난로가 아닌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녹여가며 기도한 끝에 지금은 출석교인만 2000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하였다. 지금의 부흥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 하였으 며 미래지향적인 비전에 맞추어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 였다. 세상 사람들 보다 앞서나가고 좋은 사업계획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위 해 먼저 쓰여야 한다는 것이 조봉희 목사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새롭고 젊 은 패러다임에 맞추어 조 목사의 기도와 계획 아래 모든 사역이 순조롭게 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구촌 교회는 개척 당시의 ‘전파하는 교회, 가르치는 교회, 봉사하는 교 회’라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이루어 가고 있으며 계속해서 정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명감은 지역사회 전체를 움직이고 있는 중심 축이 되어 이 땅에서 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전 주민의 교인화, 전 교인의 신자화, 전 신자의 제자화, 전 제자의 목회 화’의 계획은 단지 계획을 위한 계획에 그치지 않고 단단한 믿음의 반석위 에 세워지는 비전돌이 되어 지역 타 교회의 본이 되고 있다. 또한 해마다 바뀌고 변경되는 사업이 아닌 동시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을 펼치 고 있으며 18년이라는 기간에 비해 지나온 발자취가 길고 또 깊게 새겨 있 다. 지구촌교회의 모든 헌신자들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던 사람들이 예수님 을 믿게 되고 변화되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모습에 큰 기쁨을 얻 는다. 그리고 이제는 함께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동반자가 많이 생겨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전파하고 있다. 지구촌 교회는 성도와 믿지 않는 예비 성도간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 은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 원하시므로 지금의 성도는 단지 먼저 믿은 사 람들이라는 인식을 품고 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지역사람들은 단지 늦게 주 님을 믿을 사람들이므로 전도를 한시도 게을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의 친구가 된 지구촌 교회의 2006 년도는 더욱 아름다운 우정이 함께 하는 따뜻한 한 해가 될 것을 기대해 본 다.
8 no image ‘1가정 1교회 돕기 운동’ 펼치는 성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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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 2006-02-16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 농어촌 300교회 신학생, 선교사 300명 지원 ‘1가정 1교회 돕기 운동’ 펼치는 북서울노회 성실교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절로 과실 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그러하리라 너희가 내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5:4) 경기도 의정부시 자리하고 있는 성실교회는 1984년 염종석 전도사가 후배 목 회자의 목회활동을 지원하러 의정부 지역에 찾아오게 되면서 역사가 시작된 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의정부는 교회가 전무하였기 때문에 복음의 열정이 넘치 던 젊은 목회자의 가슴에는 ‘이 곳에 교회가 들어서면 참 좋겠다’라는 생 각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하여 염종석 전도사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자’라는 뜻 을 품고 성실(成實)이라는 교회 이름을 지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면부지인 의정부 땅에 연로하신 홀어머니 와 함께 개척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교 회든지 개척 당시에는 말 못할 어려 움이 많겠지만 특별히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지원도 없이 교회를 개척하였으니 그 설움은 말로다 표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의 시작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있었던 만큼 의정부 성실교회는 사람의 도움이 아닌 하나님의 보호와 감찰 아래 나날이 성장하게 되었다. 염종석 전도사는 85년과 86년에 강도사와 목사임직을 순차적으로 밟고 학생 3명으로 시작한 성도의 수도 점차 부흥되어 개척한지 12년 만에 성실교회는 예배당을 짓고 입당 감사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렇게 빠른 성장을 보이기까지 겪었던 신비한 기적의 체험은 염종석 담임 목사의 큰 신앙적 자부심을 형성하게 되고 성실교회 성도들 모두에게도 ‘하 나님이 함께 하신다’라는 간증으로 말미암아 이전부터 해서 지금까지도 신 앙의 체험적 깊이는 더해 가고 있다. 일례로 교회의 대지를 더욱 확장해야할 필요를 느낀 다음부터 새벽예배를 마 치고 온 성도들이 교회 주위의 땅을 빙 두르며 여리고 성 작전을 펼쳤다. 추운 날씨에도 개의치 않고 연로하신 권사부터 꼬마 아이들까지 따로 임자 가 있었던 땅을 매일 돌며 기도한 끝에 3개월만에 하나님께서는 온 성도들 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부자 성도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으며 땅주인의 마음이 돌아선 것도 아니었 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두의 기도가 이루어진 쾌거였다. 이러한 일들 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루어지며 개척한지 21년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은 신 도 수만 800여명이 넘는 중견 교회로써 이제는 의정부에 빼곡이 들어선 교회 들만큼 의정부 땅에 복음의 지평이 넓어진 것에 무엇보다 감사하며 아직도 의정부 복음화에 성실교회는 앞장서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 그 은혜를 크게 입었으니 개 척교회의 후원에 큰 힘을 쏟고 있다. ‘1가정 1교회 돕기 운동’을 통해 한 가정이 개척교회 한 곳을 정해 꾸준 히 도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농어촌 300교회와 신학생, 선교사 300명 을 지원하는 것을 2003년부터 지금까지 추진해 오고 있다. 2004년에는 교회 건립20주년을 맞이하여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부부들을 초대 하여 위로회를 가졌다. 이 일은 단지 물질적 후원뿐만이 아니라 함께 농어 촌 교회의 어려움을 놓고 중보 하는 성실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시골 교회의 목사들을 본 성도들은 이후로 더욱 농어촌교회를 위해 힘써 기 도하게 되었고 우리교회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신앙적 모습에서 벗어 나 보다 성숙한 교회의 성숙한 성도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성실교회가 점차적인 신앙성장을 이루는데 큰 기복이 없이 은혜롭게 발전하 는 모습은 염종석 담임목사의 모습을 닮아있다. 5살 때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은 지금까지도 늘 지치지 않았으며 초등학교 때 부터 목회자의 뜻을 품고 목사로 안수 받기까지 한번도 하나님의 뜻을 의심 해 본 적이 없다. 한번 받은 하나님의 약속은 잊지 않고 무던히 기도로 나아 가는 모습은 온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고 이제는 염종석 목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과 아이들까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 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의 말씀을 붙잡고 성전에서 새벽을 깨우며 기도로 정진하고 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2006년도의 성실교회는 늦은 비의 축복으로 말 미암아 더욱 신령하고 건강하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7 no image 장애우의 자립 돕는 "굳윌코리아"-호산나교회 후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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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7 2003-08-07
장애우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담아보세요 장애우의 경제·사회적 자립 돕는 "굳윌 코리아"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각종 캠페인을 통해 장애우의 필요와 요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시민운동 이 확산되고 있고 입법 사법 제도 개선과 장애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 한 활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같은 변화가 장애우들의 피부에 와 닿지 못하는 게 현실 이다. 얼마전 장애우들을 위해 피상적이 아닌 피부적인 활동을 펼치기 위해 첫 발 을 힘차게 내디딘 단체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부산에 처음 문을 연 "굳윌 코리아"가 바로 그곳이다. - "선한 사업" 굳윌 - 굳윌(Goodwill)이란 "선한 사업"이란 뜻이다. 굳윌의 역할은 지역적 필요성에 발맞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우 및 소 외계층에게 능력개발을 위한 기회를 확대시킴으로써 완전한 사회참여를 이루 어지는 데 비전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장애우들의 경제적·사회적 자립을 돕는 곳이다.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장애우까지 도울 수 있는 "21세기형 사 회복지 사업의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은 삶에 있어 자기 성취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굳윌의 의무이다. 20세기 초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시의 목사였던 에드가 헬름즈(Edgar J. Helms)박사에 의해 실업자 및 부랑아, 장애인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면서 시 작된 굳윌은 장애 노동자들에게 기중받은 물품의 수선이나 세탁 같은 일들 을 시키고 이를 판매토록 해 이로 인하여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평생직장 과 더불어 "자선이 아니라 기회" 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 오늘날 까지도 굳윌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굳윌 코리아는 현 미국 행정부 국가장 애위원회 강영우 차관보의 적극적인 후 원으로 호산나복지재단(최홍준 목사)를 통해 시작됐다. - 굳윌 매장 - 부산 하단역 인근에 위치한 110평 규모의 매장은 명품 매장 못지않게 내부인 테리어가 깔끔했으며 단정하고 곱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매장 입구에 들어서면 "미국에서 굳윌 매장은 주로 중·상류층의 고객들이 이용합니다"라는 안내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보면, 누군가 기증받은 물품이라고 말하기 전에는 신 상품으로 착각할 정도다. 굳윌 매장에 있는 제품들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게 되면 다시 한 번 더 보 게 된다. 모든 가격표마다 0이 하나씩 빠져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일 정도 로 그 저렴함에 놀라게 된다. 의류중 구제품은 500원부터 시작해서 3천원대에, 이월상품 새 옷은 시중가 4 ∼5만원대가 1만원대에, 10원대가 4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또 동영상, 인터넷, 음악감상, 워드 등을 할 수 있는 아무런 무리가 없는 컴 퓨터를 모니터와 함께 믿을 수 없는 가격인 1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며칠전 남대문시장 신우회에서 기부해 준 각종 이월상품과 재고품은 단장을 마친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팔찌, 목걸이 등 액세서리 소품들은 매 장을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매장 오픈시간이 되면 저렴하면서도 좋은 물건을 고르려는 알뜰 맨들의 눈 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마치 백화점의 깜짝세일을 연상케하듯... 굳윌 매장은 방문객들에게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좋은 마음"을 가지 고 나가는 1석 3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굳윌 공장 - 부산 신항만 배후 부지에 위치해 있는 500평 규모의 굳윌 코리아 공장(본부) 에는 장애우들이 각 처에서 보내온 옷들을 정리하느라 쉴 틈이 없다. "굳윌"로 들어온 옷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대부분 교회에서 정성 으로 모아진 의류들이 트럭 1대분 가득히 실려온다. 이곳에 정기적으로 옷을 보내오는 교회는 호산나교회, 남포교회, 사랑의교 회, 온누리교회, 분당 우리교회, 수지 지구촌교회 등이며 이랜드와 인디언모 드, 남대문시장 신우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의류를 수거할 때 남포교회 목사는 이런 광고를 했다. "못입는 옷이 아니라 안 입는 옷을 가지고 와야 하며, 기부할 의류가 없으신 분들은 백화점에서 사와서라도 기부하라"고 해서인지 옷들은 하나 버릴 것이 없이 깨끗하고 정 성스레 정돈되어 있었다. 보내온 옷들은 굳윌 본부 1층 마련된 작업장으로 곧장 이송되어 장애우들의 꼼꼼한 손길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제공된다. 기본적인 손실과 특수한 공정작 업을 마친 옷들은 종류와 보존상태에 따라 철저히 구분되어 가격표가 붙여진 다. 공정작업을 거치는 옷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고용된 장애우들이 감 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귀한 뜻을 같이 하는 자원봉사자와 단체들이 참여해 의류 재분리하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굳윌 공장에 고용된 장애우들 대부분은 자폐아 또는 다운증후군이다. 질병 과 성격장애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 이들이 직업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다. 굳윌 공장에서는 사회의 소외계층인 이들에게 단순히 일자리 제공 차원을 넘 어 직업창출 및 재활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면 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 굳윌 공장에서는 앞 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500만명에게 직업을 제공한 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 호산나교회 - 굳윌 사업을 비롯해, 사회복지법인 호산나복지재단, "장애아동들의 천국" 교 회학교 사랑부, "입양은 또 다른 행복" 모토를 갖고 출발한 입양운동 등 사 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이끌어가고 있는 그 핵심에는 호산나교회가 있다. 설립된 지 23년된 호산나교회는 그 동안 변화와 성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 다면 이제는 사회를 향해 봉사하는 균형 잡힌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부 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굳윌 뿐 아니라 호산나교회가 벌이고 있는 모든 사업에는 최홍준 목사의 목 회비전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장애인이 사회생활에 활기를 찾을 수 있게 빛을 비추어야 하며 소외 받고 천대받는 친구들을 위해 그들에게 빛이 되어야 하고 소망이 되어야 하 고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최홍준 목사는 장애인들이 인간적 존엄성을 지닌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 의 떳떳한 일원으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핸디캡을 메워주어야 할 의무와 책 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자녀와 손잡고 굳윌매장을 꼭 한번 찾아오십시오. 최고의 교육은 "말"이 아 닌 "행동"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이제 첫 걸음을 내딛는 굳윌에 범교단적인, 범국민적인 사업 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굳윌 이렇게 도울 수 있습니다 - "굳윌"은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돕는 세계적인 단체로 단순히 기증받은 물품 을 판매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들이 완전히 자립할 수 있 도록 사회적응훈련, 기술습득, 산업체와 연계한 인력보급 등 전문적, 체계 적 재활활동을 펼치는 곳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홍보와 참여가 요구되는 "범시민적운동"으로 승화 되지 않으면 "굳윌"의 숭고한 정신이 빛을 발하기 어렵다. ■ 기부물품의 종류 - 각종 사용 가능한 생활용품(컴퓨터, 장신구 외.) - 사계절에 해당하는 모든 의류 -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줄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의류 ■ 기부물품 모집방법 - 교 회, 단체에서 일년에 한번씩 기부 - 후원교회에서 책임자선정(전국이사로 등재) - 정해진 달에 수거하여 굳윌사업부로 연락수송 ■ 기업체 - 이월재고상품기부 - 복지재단에서 영수증발급 - 세금감면처리 - 굳윌사업에서 후원기업체 홍보 - 후원사업체에 우선적으로 훈련된 장애우 인력배치 ■ 로타리클럽 등 사회단체 - 후원금을 주기적으로 지원 - 사업장 고용 확대 추진 ■ 건물헌납 및 무상제공 ■ 후원계좌 부산 029-01-028676-2 농협 944-01-159063 국민 943601-01-032724 우리 407-149530-13-001 ■ 물품 기증 신청 및 문의 TEL : 051-832-0548 www.goodwillkorea.com
6 no image 1400명 쿠오트 부족어로 12년만에 신약성경 펴내-정철화 번역선교사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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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8 2001-12-06
1400명 쿠오트 부족어로 12년 만에 신약성경 펴내 정철화 번역선교사(GBT 소속, 합신 6회) 지난 1988년 12월 파푸아뉴기니의 쿠오트 부족 번역 선교사로 한국을 떠난 정 철화 선교사가 마침내 2000년 11월 신약성경을 완역하고 잠시 귀국했다. 이것 은 12년 만에 이룩한 쾌거이며 성서공회에 의뢰해 지난 달 인쇄를 마친 상태 이다. 쿠오트어 성경은 현재 선편으로 현지로 이동 중이며 12월 중순이면 마 을 근처 항구에 닿을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 1월 26일에는 원주민들에게 전해 지게 된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 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주께서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었죠. 지금도 제게는 꿈만 같기만 하구요, 이 일을 생각하다가 요즘도 잠을 설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정 선교사는 쿠오트 부족어 로 발행된 둔탁한 성경책을 신비하게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아직도 번역 작업에 몰두해 있 던 상태의 심리적 부담감의 무게를 손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성경 번역에 대한 정 선교사의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은 상태 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주시는 장면을 번역 할 때에는 너무나 경외감에 쌓여 부활하신 주님께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 다. 천상천하의 영광을 얻으신 주님께서 무지하고 연약한 두 종을 변함 없이 대하시면서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일일이 성경을 풀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를 깨닫게 하시는 그 수고가 얼마나 송구스럽고 감사하던지......" 여기에서 정 선교사는 아직도 감격에 겨워하는 듯 잠시 말문을 닫았다. 뒤늦게나마 복음을 깨달은 두 제자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생명의 복음을 제공한다는 감격이 번역 선교사의 사명감에 불을 질렀다고 강 조하고 있다. "복음을 접한 감격의 폭발성은 한낱 다이너마이트 류에 비할 바 가 아니죠." 엠마오의 두 제자가 느꼈던 '역전된 기쁨'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지난 12년 동안 쿠오트 부족어로 성경을 번역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 다. 불과 1,400명만이 사용하 는 쿠오트 부족어지만 앞으로 이 사람들과 그 후손들 이 문자를 터득하면서 동시에 복음을 깨닫게 될 것을 바라보면 그동안의 수고 와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란다. 더욱이 인생의 황금기를 이 일에 종사한 희생 을 밑거름으로 이 사람들의 언어로 성경이 탄생했다는 보람은 이 세상에서 얻 는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겨우 신약성경 번역을 마쳤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성경으로 쿠오 트 족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죠. 그래서 엠마오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 럼 그들의 영혼에 불을 질러야 합니다." 정 선교사는 번역 선교사라기보다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로 복음 을 전파하고 교회를 설립하여 원주민들과 일평생 함께 주님을 모시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어 온 한국이 왠지 낯설기만 하다는 정 선교사는 새로 출판된 성 경을 원주민들과 나눠 갖고 여호와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바램과 설렘으로 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속히 쿠오트 마을로 돌아갈 듯이 가방을 싸들고 개혁 신보사 사무실을 나가는 정 선교사의 발걸음 속에서 기자는 마치 엠마오의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었 다.
5 no image 해외입양 장애아 애덤 킹(오인호)이 던진 야구공 -황수섭목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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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5 2001-04-12
해외입양 장애아 애덤 킹(오인호)이 던진 야구공 황수섭(黃守燮,44세) 호산나교회 입양담당목사 봄 햇살이 따스한 4월 5일. 프로야구 개막 경기장에 많은 관중이 모였고 국민 의 이목을 프로야구에 붙잡아 두기라도 하듯이 언론은 개막경기를 앞다퉈 보 도하였다. 이 날의 스타는 잠실에서 시구(始球)를 한 애덤 킹(9세)이다. 애덤 킹은 야구공을 던진 것이 아니라 희망을 던지는 아름다운 시구를 하였 다. 95년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의 오인호(당시 4세)는 선천적으로 다리가 썩 어 가는 희귀 질병과 양손 손가락이 붙은 중증장애를 가졌었지만 이날 야구장 의 애덤 킹은 철제 의족으로 걸어서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태어나자 말자 친부모와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맑고 밝은 웃음과 구 김살없는 표정과 몸짓으로 애덤 킹은 3만 관중 앞에 섰다. 육체적 장애와 정 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한 우리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r 애덤 킹을 통해서 장애인들은 소년의 서툰 말이지만 "희망과 용기를 가지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감동을 받았고 소년의 양부모 밥 킹 (48 세, 미국 LA)씨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그런데 애담 킹의 시구를 보면서 감동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을 가졌다. 해외입 양 장애아 애덤 킹이 아니라 국내입양 장애아로 자란 오인호가 왜 그 마운드 에 설 수 없었을까? 야구장에 초대된 장애인들은 애덤 킹으로부터 어떤 희망 의 공을 받았을까? 아직 세상을 느낄 수는 없지만 입양원의 영아들과 보육시 설의 아동들이 받은 공은 어떤 것이었을까? 절망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눌렀다.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잘못된 복지 정책이 어우러져 오인호가 아닌 해외입양 장애아 애덤 킹이 시구하도록 해 버린 것이다. 해외입양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해외입양을 통해서 3만의 장 애아를 포함해서 14만이 넘는 아이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정을 얻어 서 사랑의 보살핌으로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가정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정을 제공하고 우리의 자식으 로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 성숙한 사회 가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핏줄에 대한 사회 전체의 완고한 집착, 입양은 뭔가 개운치 않다는 잘못된 편견이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게 했고, 장애아를 입양하기는 커 녕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는 것 조차도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우리의 그 릇된 의식이 장애고아 수출대국으로 만들었으니 54년부터 99년 6월까지 입양 된 장애아는 3만 2814명이지만 이중 국내 장애아 입양은 0.5%인 168명에 불과 하다는 통계가 부끄럽다. 장애인 입양은 사회의 의식 변화와 더불어 정부의 발전된 정책도 있어야 한 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입양가정은 육체적인 희생과 아울러 턱없이 모자라 는 양육보조비와 의료비 지원으로 수고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장애 아동을 입양하는 가정에 입양보조금 지급을 현실화하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국 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 또 다른 해외입양 장애아가 아니라 국내입양 장애아가 우뚝 서서 공을 던지 고 차고 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 터라도 입양인과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입양은 자녀를 얻는 행 복이고 기쁨이며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불편일 뿐이라는 사고의 전환과 아울러 발전된 복지정책이 세워지기를 바라면서 낳은 자녀 3명과 함께 8명의 입양자녀(6명이 장애인)를 키우는 애담 킹의 아버지 밥 킹씨의 말을 깊이 생 각해 보자. "애덤을 입양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불쌍한 장애아'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 범한 아이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입양했다. 사랑을 줄 마 음의 준비만 돼 있으면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 황수섭(黃守燮,44세) 고신대학교 의학부 교목, 호산나교회 입양담당목사, 한국입양홍보회(MPAK)공 동회장 h6004@hosanna.net http://kids.logos.co.kr/adkorea 019-590-2207 황수섭은 아내 김인혜(44)와 함께 낳은 딸-아름(고1) 다운(중3)이와 입양한 쌍둥이 아들(5세)-대한, 민국이와 부산시 서구 암남동 24-29(14/4)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4 no image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주양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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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8 2000-12-28
김동식 목사 구명 촛불예배 미 애틀랜타 연합교회서 10년동안 중국인 선교와 탈북자 선교에 힘써 오다 지난 1월 16일 중국 연길 에서 북한의 첩보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김동식 목사(53세)를 구명 하기 위한 촛불예배가 지난 11월 28일 미국 애틀랜타 연합교회(정인수 목사) 에서 열렸다. 이날 예배에는 김 목사의 사모인 정영화 선교사(주양선 선교사)가 참석해 중국 선교 당시의 어려움, 김동식 목사 납북상황 들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날 모인 100여명의 교역자와 성도들은 김동식 목사 구명을 위해 기도하 는 한편, 김 목사의 친구, 선후배 목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김동식 목사 구 명운동 본부'에 적극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정영화 선교사는 지난 12월 21일 본사에 '북에 계신 당신에게 첫 번 째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내왔다. 아내로서 남편의 건강과 안녕을 걱정하며 가장 솔직한 언어로 그리움을 담 은 내용으로 아내의 애절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북을 생각하면서 천국이와 함께 당신의 아내 드림 북에 계신 당신에게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어찌 지내시는지요? 이곳 린치버그에도 크리스마스 분위 기로 완전히 변하여 각 개인 집이나 교회당이나 모든 건물은 아름다운 장식으 로 화려합니다. 이 모든 불빛을 모아 어두운 그 땅에 보낸다면 전 북한이 밝 아질 터인데... 우리도 북한처럼 어둡게 살아왔지만 당신이 밝은 빛이 됨을 상징하듯 창가에 반짝이는 성탄 장식용 불을 밝히는 날에는 천국이가 너무 감격하며 눈물을 흘 리더군요. 이제 곧 당신을, 아니 아빠를 못 본지도 11개월이 됩니다. 며칠만 소식이 없어도 안타까워했는데 어떻게 그 많은 날들을 홀로 지내 왔는 지요. 같은 하늘 밑에 살면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어찌 이런 세상이 다 있을까요? 북한의 추운 겨울을 걱정해서 옷 다섯 컨테이너를 챙겨서 보내고 배고픈 사람 들 허기를 채워 드리려 국수공장에 밀가루를 보내고 질병 걸려 죽어 가는 사 람들에게 약품을 보내고 제일 불쌍한 아이들의 고아원을 도우며 그리고 예수 님 없는 영혼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시더니 결국은 그들 곁으로 가셨군요. 수술 후 허약한 몸은 어찌되셨는지요? 수많은 날 꿈속에서 당신을 뵙게 되면 당신의 몸이 붓기도 하고 지팡이도 없이 걷고 갖가지로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더군요. 수술한 부위에 밴드를 자주 갈아 끼워야 하는데 그것은 어찌하시는 지? 추운 겨울이 되니까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그곳을 생 각하면 맘이 저려옵니다. 저 역시도 4월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요. 당신이 알지도 못하고 곁에 지켜보 아 주지 못해 안타깝기도 했지요. 그러나 오히려 곁에 안 계신 것을 다행으 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땅에서 험난한 주의 길을 걸어온 우리 부부가 암이라는 질병으로 허약해지는 희생을 당하였으나, 아직도 어두운 곳에서 허 덕이는 우리 조국 땅의 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영육간의 고통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어 도리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눈물로 많은 시간을 더 곁에서 내조하며 지켜드리지 못한 아픔의 눈물로 회개 하며 기도 드리곤 하지요. 남다른 사명으로 지극히 작은 자 돌보기에 최선을 다하시던 당신은 끝까지 귀한 주의 뜻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어린 아들 천국이가 아빠 안 계신 성탄절을 맞으면서 더욱 큰 아픔은 북녘 땅 에 주님 없이 크리스마스 맞는 고통입니다. 이제는 좀 더 크게 넓게 생각하 고 기도하려 합니다. 이곳 린치버그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학교도 문 을 닫고 온 거리에는 쌓인 눈을 치우며 소금을 뿌리는데 그 많은 소금을 북한 에 보내면 그것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인데 하면서 북한을 생각합니다. 천국이는 농구선수가 되어서 매주 시합을 하러 갑니다. 시합 때마다 이기는 데 부모들이 와서 응원을 하지요. 저는 혼자 앉아 있지만 만일 당신이 곁에 있다면 함께 소리 크게 내어 응원했을 텐데 하고...
3 no image 터키 말테페교회 김요한 선교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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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2 2000-11-12
터키의 말테페교회를 도와주십시오 ! 김요한 선교사(터키 총회선교사) 1996년 10월,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있는 조국을 멀 리하고 창세기와 사도행전의 역사가 숨쉬는 이 땅 터키에 발을 들여놓은 지 꽉 찬 4년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성령의 역사로 꽉 채워진 그야말로 눈물겹고 감격이 넘치는 시간 들 이였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낙심과 절망 속에서 괴로워했고 전도를 하고 싶어도 마음 대로 할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 가슴을 치던 시절들, IMF를 겪으면서 생 존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 어느 미국에서 온 선교사가 자신의 살점 (선교헌금)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던 일, 굶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2년 전 교회를 개척했던 일, 체포당하면 쫓겨나겠다는 결심으로 동네를 돌아다 니며 기도하던 일, 말테페 공원에 경비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영리를 가지고 무식하게 전도하던 일, 수지침을 가지고 빈민촌 마을에 들 어가 집 집을 방문하여 치료해 주면서 전도하던 일, 가장 싼 가격으로 예배처소를 얻기 위해 24시간 경찰들이 지키고 과격한 정치정당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아래층을 얻어 일년간 예배 드렸던 일, 교회 성경책과 교회 비품들을 구입 할 능력이 없어 기도할 때 국제 선교단체가 헌금해 주었던 일, 다리가 붓 고 피곤해 지쳐 쓰러질 때 주께서 한 영혼을 붙여주셨던 일, 시간이 지나 면서 교회에 현지인 전도인을 세우게 된 일, 교회가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 면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일, 수 없는 간증을 다 열거하기에는 일년치 개혁신보도 모자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능력하고 잔머리를 굴릴줄도 모르고 그저 주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 려고 몸부림치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성령께서 팔을 걷어붙이시고 친히 앞서 일을 하셨기에 저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하는 사역이 있다면 매일 아침 교회식구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99%가 무슬림인 척박한 이 땅에 성령님께서 준비시켜 놓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찾으러 나가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훈련시켜놓은 전 도인이 선교사 10명 몫 을 감당하면서 전도를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스럽습 니다. 정말 선교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며 아니 성령님이 하시도록 자리를 내 드려야만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2년 전에 개척된 말테페교회는 우리 개혁교단 총회선교부가 개척한 교회라 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총회소속 선교사이기 때 문입니다. 우리 교단선교부가 사도 바울이 눈물로 복음을 전했던 이 땅에 현지인 교 회를 개척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터 키의 말테페교회는 교단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라가야만 하고 부흥되어 져야만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개척한지 2년이 지나가면서 교회도 새로운 장소로 이사를 했고 가족 단위로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에 주일학교와 중고등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선교지에서 숨겨놓았던 귀한 전도사님 한 분을 보내주셔 서 주일학교를 맡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말테페교회는 장년 10명과 중고등부 1명 주일학교 5명이 되었고 이중 2명이 이번 성탄절에 세례를 받 게됩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모 릅니다. 그러나 교회가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 난 2년 동안은 죽을힘을 다해 버텨왔으나 이제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 솟는 인플레와 월세들로 인해 커다란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매월 교회 운 영에 필요한 재정이 너무나 부족하여 교회를 운영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 다. 그래서 이렇게 교단 산하 교회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김요 한 선교사 개인을 위해 후원하지 마시고 터키의 말테페교회를 위해서 기도 해 주시고 후원교회가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기도와 물질로 개척하신 이 말테페교회가 매월 필요한 운영 재 정의 어려움으로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 니다. 사랑하는 교단 교회 여러분, 초대교회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 땅 에 주님의 영광이 다시 한번 드러날 수 있도록 말테페교회의 후원자가 되 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교단과 교회들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후원연락처 : 총회선교부 ( 02 - 708- 4458 )
2 no image 풍성한의원 박용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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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1 2000-02-12
풍성한의원 박용진 원장 의사로 할 수 있는 것은 친절하게 환자를 대하는 것 뿐, 치료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 인정해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아 름다운 일이다.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이 땅에서 보람있는 삶을 경영하는 모습이야말로 자랑스럽기만 하다. 늘 바른 길에 서기 위한 그 자태만으로도 성도는 이 시대의 작은 빛이 아닐 수 없다. “너희는 세 상의 빛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래서 늘 새롭기만 하다. 빛이 되어 가라는 말씀도 아니고 빛이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고 하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더 그렇다. 빛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곧 성도인 것이 다. 참 빛은 요한의 증거처럼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그 참 빛에 속한 ‘빛’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 풍성 한의원 박용진 원장도 그 빛의 하나로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 시 대적 현상인지 몰라도 육체적이기보다는 정신적 충격이나 허약에서 오는 질병이 더 많은 환자들 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작은 빛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가 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하면 치료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환자가 완쾌되면 ‘치료가 되어 다행입니다’라고 말하죠.” 이 말 은 치료의 근원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임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창 조주 앞에서 작은 자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치료에 임하는 자세가 다져진 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환자에게 늘 정성을 다한다. 한창 한의학을 다지고 있을 때 몸이 아파 존경하는 교수가 운영하는 한의 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환자로서 한의사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 교수는 아주 성실하고 친절하게 제자를 중요한 환자 대하듯 하는 것을 보 고 박 원장도 환자를 대하는 자세를 바르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교수님이 환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학우들에게 물 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답하시기를 여러분들이 알면 얼마나 알 수 있는가? 찾아오는 분들에게 친절하고 성실하게 대할 때 비로소 더 공부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을 듣고 한의사로서 가져야할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틈을 내 진료 봉사 활동을 떠난다. 서울을 떠나 파주시로 이 전해 풍성 한의원을 개업한지 3년째. 그는 누구에게 보이기보다는 자신에 게 주어진 은사를 펼치기 위해 의료 진료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다. 바나 바 선교회 의료봉사팀에서 다져진 저력이 그 기반이 되었다. “돈이나 명 예를 바라는 유혹도 없지 않습니다. 한의사로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유혹입니다. 그렇지만 이름이 나기보다는 제 자신의 은사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진료 봉사를 자주 하려 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원장은 부인 손소영 씨와 단란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 언제나 밝은 미소 와 맑은 목소리로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손소영 씨의 몫. 그녀가 환자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누구라도 마음이 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질병의 반절은 치료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풍성 한의원을 찾으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아직 젊은 두 부부의 싱그러움이 이 겨울에도 꽃을 피워내는 인동초의 꽃향기처럼 느껴 지기 때문이리라.(풍성한의원 031-946-2275)
1 no image 임정일총무처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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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0 2000-01-27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 생애 마지막 직장이라는 마음으로 합신 가족돼 삶의 곳곳에서 강한 하나님의 손길 느낄 수 있어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임정일 총무처장 1980년 합신 출범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공이 숨겨 져 있다. 특히 성도들의 정성어린 헌금과 이 시대의 교회가 복음으로 다듬어 져야 한다는 교계 지도자들의 눈물겨운 기도와 지도력의 발휘가 아니었다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 가운데 굳이 한 사람을 꼽는다면 임정일 총무처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임 처장을 찾았을 때 예상대로 "합신이 있기까지에는 고 박윤선 목사를 위시해서 성도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교계 지도자들과 교수들의 헌신 적인 힘이 원동력이었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렇지만 일선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 임 처장의 수고는 한 알의 밀알처럼 합신의 교정에 심기워 있음을 아무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총신 재직 시절 주변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합신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신복윤 총장님의 적극적인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신 목사님의 제의를 받고 기도하면서 평생에 있어 마지막 직장으로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남서울 교회 예배당을 빌려 새로 출범한 합신의 일은 그 야말로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들과 공부하는 학생 들 그리고 정열적으로 기도하며 후원하는 전국 교회들을 볼 때 합신의 미래 가 밝을 수밖에 없음을 그는 예지하고 있었다. 현 합신 부지 매입 과정과 건축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 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감정원에서 지금의 부지를 계약하 려고 하는 바람에 부지 매입에 큰 차질이 발생할 것 같았으나 재무부장관의 재가가 나지 않아 오히려 더 저렴한 값에 부지를 매입하게 된 경위가 그렇 다. 특히 건축 과정에서는 고 최삼금 권사가 기증한 명동 소재 건물이 부동 산 매기가 전혀 없던 시기에 단 시일만에 매각된 사건은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라고 그는 회고한다. "그 때 최 권사님은 미국에서 치료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물 매입자 가 최 권사님만 오 시면 일시불로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조심스레 미국에 연락을 하자 최 권사님이 귀국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출발할 때 복수가 차 있었던 터라 세관에서 몸에 무엇인가를 숨겼다 오해하 고 오랜 시간동안 조사를 받고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984년 12월 20일 계약한 상태에서 최 권사님의 귀국으로 한 달만인 1월 20일 전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 권사님은 그 후 3일만인 1985년 1월 23일 소천하시게 된다. 현재 임 처장의 가족들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부인 이중희(53세) 여사 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었다. 이 여사는 첨단 기술의 한국계 회사에 재직 중이며 딸 혜란(27세)은 콜로라도 주립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고 아들 세덕(25세)은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제 정년까지 6년여 남았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 신명을 다 할 것입니다." 지금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혼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 름다운 우리 이웃임을 읽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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