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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내 사랑 채석포_김영자 사모
rpress
3570 2008-12-17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cspo.jpg내 사랑 채석포 “모두에게 기쁨이 될 거룩한 밤 준비할 터”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12월 들어서도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겨울의 맛을 마음껏 느끼게 하는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잠깐 사이에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오 래된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하니 그곳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순간을 살아가는데 변화무쌍한 환경들이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날 씨를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검었던 기름 바다 많이 회복돼 좁다고 생각했던 우리나라였는데 한 쪽에서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많은 눈 으로 교통사고가 나고 다른 지방에서는 맑은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에 이민 간 친구에게서 그곳은 여름이며 눈이 없고 춥지 않 지만 여름의 성탄절을 우리와 똑같이 보낸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해 이때쯤, 태안 앞 바다의 기름 유출로 인하여 이곳 주민들은 검은 기 름 바다 앞에서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절망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 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사랑의 실천으로 어느 정도 바다가 복구되고 바다를 떠났던 고기들과 갈매기들이 돌아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들이 많 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을린 얼굴에서도 웃음과 활기를 띠면 서 일상생활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옛말이 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 부임 한 지도 10년이 되어 갑니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숨은 차지만 보는 시 야가 넓은 것을 알게 하고 우리들의 삶만큼 다양한 추억과 감정이 있습니 다. 10년 전에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지 않아서 이곳에 이삿짐을 싣고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갓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아들을 두 고 남편과 같이 이곳에 오는 데 그날따라 오늘처럼 눈이 많이 왔습니다. 서 둘렀지만 이곳에 오니 밤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시골의 밤이 일찍 오고 도 시보다 더 깜깜하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이사 오는 날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해동이 되어 봄이 되면 아들의 복학을 돕고 느긋하게 이곳에 내려와도 좋겠다고 혼자 생 각했었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데 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그후 많은 시간 속에서 눈물도 흘렸고, 추운 겨울에 보온이 되지 않은 처소 에서 보일러가 터져 냉방에서 자기도 하며, 물이 얼어서 해동이 될 때까지 이웃에서 물을 길러 먹었으며, 조립식 벽 하나를 두고 수련회 팀과 같이 생 활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택을 따로 짓 고 교회당을 재건축하여 아름다운 곳에서 예배를 드리니 그 모두가 하나님 의 은혜입니다. 이곳에 와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목사님들을 노회에서 만나고 아름다운 마 음으로 교제하고 많은 사랑도 받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웃 교회에서 ‘어머 니 기도회’를 하는데 “내 자녀 키운 이야기”를 가지고 간증하도록 요청 을 받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울고 웃으면서 사랑을 나 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노회와 노회장 이재철 목사 님이 시무하는 본향교회의 도 움을 받아 목사님과 사모님 27명이 푸켓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겨울이 시 작되는 계절이었으나 그곳은 여름이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경제 속에 있 어 모두가 망설이고 무거운 마음들이었지만 1년 전부터 계획하고 진행된 일 이라서 실행했습니다. 무거웠던 마음은 푸켓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새로운 나라에 대한 부 푼 기대와 설렘으로 차 있었습니다. 남태평양의 바다는 채석포의 바다와는 달리 시시각각으로 다른 빛으로 보여주는 색깔과 원시적인 자연의 섬과 연 한 에메랄드빛의 바다에서 스펙트럼으로 분산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습 니다. TV 화면에서만 보았던 피피섬의 스노크링을 즐기면서 바다 속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환경의 섬들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바 닷가에 사는 나는 더 많이 채석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즐기면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어 보기도 하였지만 절제된 자유 속에서 행복한 시간들 을 가졌습니다. 외국여행을 한번도 다녀오지 못한 목사님들과 사모님을 위해서 부부 한쪽의 여행비만 감당케 하고 나머지를 채워준 노회와 노회장 님께 여행자 모두는 감 사하였습니다.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생각되었 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마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양손이 필요한 것은 주는 사랑 받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누가 말 했습니다. 푸켓을 여행한 목사님, 사모님들과 함께 같은 일을 추억할 수 있 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얼마 전 겨울날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데 직장암을 앓고 있는 어느 사 모님의 병문안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김장을 하는 날이라 같이 갈 수 는 없었지만 하루 종일 눈물이 났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자신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아픈 동료를 생각하면서 칭찬받는 기쁜 일보다는 외롭고 슬 픈 생각만 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모들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자신이 아 파도 남편이나 성도들이 걱정되어서 마음놓고 병원 한번 못 가고 아픔을 참 을 수 없을 때까지 견디다가 병원을 찾는 내 자신의 미련함을 생각해 보면 서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새해 예산을 계획하기 위해 안수집사님들이 모였을 때 사모에게 무관 심하다고 생각했던 집사님께서 ‘사모님이 성가대와 피아노 반주하는데 너무 수고를 많이 한다’는 말을 남편한테 전해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기쁨 의 눈물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인정받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라 생각하며 열심히 기쁨으로 했는데 그 마음이 그 집사님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 뻤습니다. 집사님께서 말을 아끼셨지만 성도를 향한 나의 사랑을 알아주어 서 기뻤습니다. 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새해 계획을 세우기 전에 성탄절을 준비 해 봅니다. 도회지의 화려한 네온의 불빛과 구세군의 종소리가 없지만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되고 나이든 어른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실 버 벨과 거룩한 밤을 준비할 것입니다. 10년 전 이곳의 포구에 가득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보고 소설책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휴양지인 나폴리를 연상하며 서울에 있는 나에게 짐을 꾸리라고 하 던 남편의 무모함을 원망하였지만 이제는 남편의 그 선택으로 채석포를 더 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과 아름다운 내일을 계획해 봅니 다.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고 있어 이제는 얼굴에 굵은 주름과 하얀 무서리가 머리에 많이 내렸지만 제2의 인생 을 살아가면서 항상 젊다고 생각하며 착각 속에 살아가는 남편의 회갑 때 “목사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성도들이 있는 채석포는 영원한 “내 사 랑 채석포” 입니다.
491 no image |살며 생각하며|우리가 본 그대로 주님은 우리에게 시행하십니다_이천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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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6 2008-12-11
살며 생각하며 우리가 본 그대로 주님은 우리에게 시행하십니다 이천우 목사·부천개혁교회 범사에 주님 인정하는 삶을 나타내 증거해야 믿음 안에서 함께 신앙 생활했던 어느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한지 는 얼쑤 25년 이상은 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와 헤어지게 되었습니 다. 서로 잘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에 종종 연락을 주고 받았지요. 가끔은 만 나 식사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연락을 하고 만날 때마다 얼마나 반가워했 는지요. 그러다 서로 만나지는 못하고 그저 가끔, 아주 가끔 통화를 하는 정도가 되 었습니다. 그 통화도 내가 해야만 비로소 되었지요. 서로 소식이 없으면 그 저 잘 지내는 줄 알았습니다. 옛날 어른도 그렇게 말해서 과연 그러려니 했 구요. 그러다가 근자에 그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었 습니다. 일상에 빠져 사는 친구 소식 듣게 돼 “그 친구, 어디에 있는 OO교회 다닌다고 해요. 그런데 예수 믿는 게 아니에 요.” 무슨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신앙 생활도, 사회 생활도 부 지런하게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기에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런데 과연 말을 듣고 보니 예수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참으로 잘 살기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만, 그래서 중년 에 이른 지금은 그래도 중산층이라고 할 정도의 상태에 있습니다만, 그에게 서 개혁주의 신앙이니 개혁교회이니 하며 바른 신앙과 바른 교회 속에 있어 오고자 했던 것이 사라진지가 이미 꽤나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어 느 정도는 잘 사는 것으로 믿음의 형제를 돌아보는 일도 외면했습니다. 그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 종일 마음이 걸리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 한 생각으로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여전히 아픕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 이 듭니다. ‘그와 계속 함께 믿음의 교제를 하면서 붙잡아 주었어야 했는 데......’ 그와 함께 할 수도 없었지만, 그저 미안한 마음에 가져보는 부질 없는 생각인줄 알면서도 가지게 됩니다. 그렇더군요.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신자들을 이 세상의 현실 속 에 두시고서 시험하여 그들의 믿음을 심판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 말입니다. 매주 드라마를 정기적으로 들려주듯이 주일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 님의 말씀을 듣고도 도무지 깨달음을 갖지 못하는가 하면, “어찌 저렇게 하 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배우는 일에 관심이 없을까?” 하는 말을 불쑥불 쑥 해주고 싶습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으련만 도대체 뭔 힘들고 어려움이 그리 많은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은 제껴 놓고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을 미 워하는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주님은 천국 복음의 비유인 ‘씨 뿌리 는 비유’에서 알려 주십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인내하여 결실에 이르는 착하고 좋은 마음은 주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데서 이미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며 세상은 미워하고, 세상으로부터 사 랑을 받는 자는 세상을 사랑하며 주님은 미워합니다. 그렇듯이 주님의 미움 을 받는 자는 주님을 미워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자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신자는 삶의 모양으로 증거되기 마련 천국 복음을 듣고도 결실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세상에 자신들이 주 님께로부터 받은 천국 복음의 말씀을 다 내어주어서 빼앗기는 것은 세상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미워하여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을 사랑 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기를 위하여서는 천국 복음도 외면하고 배척하여 버리 는 것입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천국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뿌린 씨가 생명 의 풍성한 결실의 열매를 맺는 것은 좋은 땅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여기에 뿌려진 씨만이 결실하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 켜 나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천국 백성으로 나타나는 마음을 주신 그 사람에게서만 천국 복음의 씨는 자라서 마침내 결실을 맺습 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로서의 신자에게서 그가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 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임을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십니 다. 우리는 주님이 행하여 나가시는 이 두 가지 일을 여실히 보고 그들을 통해 서 우리 믿음에 변호를 받는 증거로 삼습니 다. 천국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 을 듣고도 빼앗기는 자를 가리켜 “그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가 행한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지 않습니까?” 하며, 천국 복음인 하나 님의 말씀을 듣고 인내하여 지키는 자를 “그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 합니다. 그가 행한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지 않습니까?” 하는 것으로 “네가 본 그대로, 내가 너에게 시행하리라!”고 말입니다.
490 no image |하늘이슬로쓴편지| 내 이름 아시죠!...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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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4 2008-11-20
하늘이슬로 쓴 편지 내 이름 아시죠! “나무들 이름 알아가며 주의 경이로움도 알게 돼”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어느 날, 늘 다니는 호숫가 작은 숲을 지나다가 한 나무 아래 발길이 머물렀 다. ‘자작나무’라고 써있는 나무명패 때문이었다. “아! 이 나무가 자작나 무구나, 사모님이 좋아하신다던...”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기에 좋아하실 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무척 반가웠다. 새록새록 다가선 나무들 이름 수년 전에 섬기던 교회 교역자 부부들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다녀온 후 소감 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사모님 한 분이 말씀하시던 중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가 백두산 가는 길에...”라는 대목에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 았다. 평소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모님의 존재가 그 순간 크게 느껴졌기 때문 이다. 전에도 가끔 나무이름을 말해주곤 하셨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많은 이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작나무를 반갑게 만나던 그 날 우연히 ‘하얀 자작나무 위로 하얀 비둘기 가 날아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다음 날 다시 그 나무를 찾았다. 놀랍게도 그 나무 기둥이 조금씩 벗겨졌지만 은빛 흰색이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힘들 때마다 늘 새로움과 희망 을 주었던 거목이 바로 느티나무라는 것도 그 즈음에 알았다. 나무에게 미안 했다. 자작나무, 산사나무, 신갈나무, 순수꽃다리, 자귀나무, 이팝나무, 살 구나무, 계수나무, 뽕나무, 화살나무, 명자나무, 홍단풍, 비롱나무, 산수 유, 층층나무, 팽나무, 메타쉐콰이어... 하루하루 나무들이 내게 다가왔다. 잎이 비슷해서 구분하기가 어려워 그 특징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조금씩 이름을 알게 되던 때에 내가 보기에 산사나무 같은데 ‘신갈나무’라 고 명패가 붙어있어서 “참 이상하다” 하며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어느 날 보니 나무 명패가 없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에 ‘산사나무’라고 걸려있었다. 참 기뻤다. 산사나무는 나를 깊은 계곡근처 근처로 데려다 주곤 했다. 나지막하니 넓고 소담스러운 그늘을 주면서도 검붉은 고풍스러운 열매 들로 인하여 단아함이 돋보였다. 올 여름에도 날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하루는 선생님과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 대여섯 명이 내가 좋아하게 된 산 사나무 아래 모여 있었다. 호기심에 그 나무 밑 아이들 틈에 끼어 들었다. 나무이름을 묻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별 대답을 다한다. 심지어 앵두나무라 고까지 했다. 선생님은 산사나무라고 말해주면서 ‘메이플’이라는 외국이름 과 나무에 얽힌 내력들을 말씀해주셨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청교도들이 탔던 메이플라워호가 바로 이 나무이름이었다. 5월에 눈부신 흰 꽃이 바로 메이플라워(mayflower)이 다. 예수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이 이 나무라고도 믿기에 벼락도 악마도 막아 준다고 신성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며칠 후에 나 또한 교회 청년자매와 아 침 산책을 하면서 나무 이름들을 신나서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산사나무 아 래도 데리고 갔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무 이름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이 참 기쁘고 감사했다. 가을이 되니 산사 나무 아래는 붉은 열매들과 잎들이 떨어져 예쁘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키 가 제일 큰 가중나무 잎이 제일 먼저 떨어졌 다. 햇빛을 잘 받은 느티나무 잎 들이 흔들릴 때는 황금처럼 눈부셨다. 온 호숫가를 물들이는 계수나무, 산수 유 열매들은 가을의 보석처럼 빛났다. 순수꽃다리 잎은 정말 가슴을 시리게 할 정도로 곱게 물든다. 그 잎을 하나 들고 만져보았다. 내 마음이 들여다보 이는 듯 했다. 이제는 낙엽을 주우면서 이름을 부를 수 있다. 나뭇잎 하나 하나에도 이름 이 있다. 비슷한 것 같아도 색도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떨어지는 시기도 다 르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잎들이 수북히 쌓여 어우러진 곳에 햇빛이 비치 면 마치 문틈으로 천국의 황금빛을 엿본 듯 황홀하다. 가끔 나무 밑에서 나무 위를 쳐다보고 기둥을 만져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름 을 불러본다. 나무도 나에게 대답을 하는 것일까. 반갑기도 하고 참 뿌듯했 다. 그러다가 늘 가깝게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정말 내가 그 이 름을 알고 있는 것인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작나무로 인연하여 나무들과 친해지면서 사모님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미숙한 사모의 길에 항상 그분의 모습이 큰 그림으로 인도해주고 있었다. 그분이 전도하거나 일을 하는 모습도 못 보았고 크게 소리내어 기도 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목사님을 세우려는 모습을 본 적은 더더욱 없었는데 도 그림자처럼 개척교회 사모의 삶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래! 그분에게 사랑을 느꼈었지. 나뿐만 아니었어!” 마치 자작나무를 좋 아하시듯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무들 이름이 하늘의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이름을 붙여주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해주었다(시 140:4). 별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시는 그 분은 정말 어떤 사랑이실까!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이 가슴에 부어진다. ‘아브라함’이라 ‘사라’라 부르신 하나님, 시몬을 ‘베드로’라 부르신 주님, 그분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주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도라 부 르시고 그날에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주신다고 하셨다. “내 이름 아시죠!” 긴장과 답답함과 탄식 중에라도 나는 내 이름을 아시 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으로 나아간다. 온 땅에 가득한 주님의 경이로 운 이름을 부르며 그분께 나아간다. 이름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요... 사람 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시 8:1, 4).
489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엘리야의 기도처럼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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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0 2008-11-20
엘리야의 기도처럼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성도 한 사람 느는 것처럼 큰 감동도 없어”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이 높게 뻗은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가을의 풍경이 우 리들의 눈을 풍요롭게 합니다. 뜻하지 않게 하나님의 사랑 느끼기도 가을이면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 색깔의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만 나무 입장에서 보면 낙엽은 겨울을 나기 위한 식물의 생존전략의 일종이 고 가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아름답다 고 생각하고 계절이 바뀌면 또 다가오는 계절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 다. 며칠 전에 외출해서 돌아오니 택배가 배달되었습니다. 포장되어 있는 것으 로 보아 책 같아서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니 본인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있 었습니다. 가끔씩 원치 않는 택배가 배달되어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있어서 편치 않는 마음으로 포장을 풀어 보니 짧은 글과 함께 몇 권의 책이 들어 있 었습니다. 우 리 부부를 잘 아는 내 친구가 보낸 책이었습니다. 잊혀질 만하면 가끔씩 책을 보내면서 우리를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 하고 행복했습니다. 영혼의 갈급함을 느낄 때마다 보내주는 책으로 목마름 의 갈증도 해갈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마다 구역예배를 여러 모양의 조직과 형태로 모이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지역 환경에 맞게 금요일 밤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안수집 사님들이 인도했으나 금년부터는 목사님과 내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신앙 재충전을 위해 제자훈련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은혜와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이해하고 그리 스도인의 복된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농어촌 교회의 실정처럼 우리 교회는 전교인 거의 집사님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 집사는 영원한 집사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일 년 열두 달 중에 금어기 때 두 달과 일이 없는 겨울에만 예배 참석하는 성도 도 있습니다. 그래도 구역예배 때는 젊은 성도는 나이든 성도의 가방을 어깨 에 메고 손을 잡고 참석합니다. 때로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는 못해도 이웃 들이 모이는 구역예배는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면서 예수님 의 열두 제자를 외우기도 하고, 모르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성경목록 가를 부르면서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내 준 숙제도 검 사 받아야 합니다. 숙제는 성경요절 암송입니다. 더듬거리면서 요절을 외우 는 연로하신 집사님들의 소녀 같은 미소는 참 아름답습니다. 85세가 넘은 여자 집사님이 계시는데 김 집사님입니다. 작은 키에 허리는 많 이 굽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차에 서 뛰어내릴 정도로 건강합니다. 작은 텃밭을 손수 일구며 각종 채소를 심 고 가꾸어서 철따라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저희에게 선물합니다. 며칠 전에 는 한 알 한 알 껍질을 벗긴 땅콩과 참기름 한 병을 목사님 손에 들려주셨습 니다. 목사를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김 집사님 댁은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 외딴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대문까지는 밭고랑 사이에 난 좁은 길을 꽤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김 집 사님을 바래 다 드릴 때는 깜깜한 길목에 자동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갈 때 까지 불빛을 비춰줍니다. 뒤에서 비추는 불빛을 통해서 목사님의 사랑을 느 낀다고 합니다. 일전에 성경구절을 외우시기 위해 헌 종이에 연필로 몇 번씩 이나 써 보았던 것을 보여 주실 때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 마음이 뜨거워지 고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상 가득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나이가 많으신 집사님일 수록 더 풍성합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음식으로 준 비하여 상을 차립니다. 음료수 한 잔만 주시라고 하면 “누가 늙은이 집에 이렇게 찾아 주겠느냐”면서 즐거워하십니다. 지난 주 금요일 구역예배는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성도 집에서 예배를 드렸 습니다. 걸어서는 갈 수 없어 구역 식구들이 교회 차를 타고 갔습니다. 맨 끝에 만원이 된 자동차를 타면서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 주셨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목사님이 큰 소리로 “집사님, 무엇이라 하셨어요?” 하니 까 그저 웃기만 하셨습니다. 기도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집사님께서는 구역예배 때 잘 보이지 않았 던 얼굴들이 자동차 가득 채운 것을 보고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글도 잘 모 르고 농사에 바쁜 생활 때문에 기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성도 각 사람 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어촌에서는 교인수가 증가되는 일은 드물고, 연로하신 분들이 장수해서 오 래도록 교회 출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기도의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그 런데 우리 교회는 금년 후반기에 일곱 명의 성도가 증가되어 성도들 모두가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서울 남문교회를 섬기다가 귀농한 가족과 여자 청년이 결혼과 함께 남편을 인도하고 그리고 나이 드신 남편 따라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놀 랍고 신나는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성도들의 기뻐하 는 모습과 적은 숫자지만 일당백인 성도들을 보는 남편은 요즈음 싱글벙글 입니다. 목회자의 기쁨은 성도의 기쁨이고 목회자의 시간은 성도의 시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은혜를 사모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맺어진 열매를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글자를 잘 모르고 기도 할 줄 모른다며 부끄러워 입술 한 번 열지 못하지만 그 마음속에 소원이 담 긴 늙고 연약한 노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연약한 노인의 기도 응답에 감사해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늙고 연약한 김 집사님의 기도도 들 으셔서 교회에 기쁨을 주시고, 자동차에 성도들을 가득 채워주시어서 그 마 음에 감사와 기쁨을 선물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488 no image |선교지에서 온 편지|아프리카 “탄자니아 은좀베 소식”!!_최재명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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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0 2008-11-20
아프리카 “탄자니아 은좀베 소식”!! “순박한 땅에 지상 명령 수행할 동역자 보내주시길” 최재명 선교사_탄자니아 탄자니아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15년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곳이다. 15 년 전에 비해 많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고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곳이기 도 하다. 면적은 남한의 10배에 이른다. 인구 증가 역시 폭발적이다. 현저히 변화되고 있는 은좀베 최근 인구 조사에 따르면 2007년도에 4천만이었던 것이 2010년에는 4천 5백 만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인구가 약 51%로 예배와 전 도가 자유로우며, 그중 개신교가 약 19% 정도이며, 회교도들도 35%로 모스 크 설립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탄자니아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 정되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1961년 영국식민지로부터 독립한 후 사회주의 국가로 출범해 30여 년간 사회 주의 체제를 유지해 온 결과 주변 국가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많이 뒤떨어 져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하면서 덕을 본 것은 120여 개의 부족 어를 배제하고 스 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채택해 언어를 하나로 통일해 놓았기에 다른 인근 국가 에 비해 부족간의 괴리감이 덜 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적 인 면이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부족 언어도 역시 자연스레 쓰여지고 있으면 서 대부분의 국민들 모두가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를 구사하기에 부족간의 이 해와 협력이 잘되어지고 있는 편이다. 경제적으로는 곳곳에 인터넷 카페가 들어서고 국가에서 경제 부양책으로 개 인에게 저리로 건축 자금과 사업자금 등을 융자해주는가 하면 미국과 일본 등 선진 국가들의 지원으로 차츰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60-70여 가정이 들어가 있지만 나라가 넓어 내가 사역하 고 있는 곳인 은좀베는 거의 남한 만한 땅에 한국인 선교사는 우리 가족뿐이 다. 한편 탄자니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의 수는 선교사들과 사업하는 사람 들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과 국가차원에서 파견된 봉사요원들을 합해 약200- 300여명이 된다. 탄자니아는 이슬람이 강한 지역이긴 하지만 선교하는 데에 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비자도 2년간의 선교사 비지를 주고 매 2년 마다 갱신할 수 있다. 만 14년 동안의 지난 사역을 살펴보면 유치원이 6곳이 있고 초등학교가 한 곳, 신학교가 하나 있고 개척된 교회가 8곳이 있다. 그리고 현재 중학교를 건축 중에 있어 2010년 안으로 개교할 계획이며 계속해서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목공 기술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기초 공 사 중이다. 앞으로 이곳에 함께 동역할 각 분야별 선교사들이 필요한 실정이 다. 1. 신학교를 전문으로 맡아서 사역할 선교사를 필요로 한다. 2002년부터 시작한 신학교는 현지인 목회자들과 함께 6년째 이끌어 오고 있 다. 현재 2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한번 모집해서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게 한 후 졸업을 시킨 다음 다시 모집한다. 체계적으로 신학생들을 관리하고 가르칠 수 있는 달란트 소유자의 사역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3년 교육기간 중 사모(배우자) 교육을 년 2회(1주간씩) 총 6회(6주간)를 실시해서 사모들에게도 소명감을 심어주고 남편을 도와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 중. 고등학교를 맡아서 사역할 교육사역에 달란트가 있는 선교사를 필요 로 한다. 청소년 시기에 있어서의 신앙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간의 기숙사 학교생활은 아이들에게 말씀과 함께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매우 좋은 환경이다. 이 사역을 위해 소명이 있고 달란트가 있는 사 역자가 온다면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좋 은 계기가 될 것이다. 3. 목공 기술학교를 맡아서 사역할 선교사를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일자리가 없다.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면 신앙으로 잘 이끌어 준다면 장차 청소년층의 복음화와 함께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더 많은 청소년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하여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 어린이 교육 사역자를 필요로 한다. 현재 유치원이 6곳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각 유치원 의 교사들을 관리하고 훈련시키고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는 어린 이 교육 사역이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생 각한다. 탄자니아의 공용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이다. 따라서 위의 필요로 하는 사역 자들은 공히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와힐리어 는 현지에 와서 배우면 된다. 약 1-2년 정도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배우 는 방법은 현지인 개인 교사를 불러서 하는 방법과 언어 학교에 들어가서 배 우는 방법이 있다. 개인 교사를 불러서 하는 방법은 비용이 좀 저렴하기는 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해 문법이 많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시간당 약 5000-7000원). 언어 학교 에서 배우는 방법은 체계적인 반면 비용이 많이 비싼 편이다(1인당 4개월에 약 300만원, 숙식제공). 은좀베 사역지는 탄자니아 수도에서 약 700여km 떨어져 있고 해발 2000m의 고산 지대이며,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의 40도 이상 되는 고온 다습한 것과 는 달리 년 평균 섭씨 20도 안팎으로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한 가지 단점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아이들을 교육시킬만한 학교가 없어 수도 혹은 이웃 나라인 케냐에 있는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내 야 한다는 불편이 있다. 사역자 절실히 기다리고 있어 탄자니아 은좀베는 오 지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순박하고 좋은 곳이며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사역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함께 힘을 합해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할 동역자들을 보내주시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487 no image |노트북을열며| 광야의 예배학이 필요하다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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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5 2008-11-12
광야의 예배학이 필요하다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예배의 즐거움 알게 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의미 없어”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삶을 놓쳐버 리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이 다 교회는 다닌다 고 하지만 예배 생활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교회 다니지만 예배 실패하는 이 많아 에이든 토저 박사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예배, 그것이 지금 복음주의 기독교가 잃어버린 가장 귀한 보석이다.” 오늘의 교회는 부흥하였고 수준도 높아졌으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실행되 고 있다. 그러나 토저 박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 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진지한 예배자들인 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세속화된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 를 고백했다. “요즘 교회가 가르치는 하나님 속에는 내 영혼을 기다려주시 는 주님 은 계시지 않습니다. 나는 창조주를 필요로 하는데 그들은 내게 거대 한 조직체를 운영하는 대실업가를 소개해 주었을 뿐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 적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설교자들에게 책임이 있는데 어떤 설교자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술을 끊게 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극장 에 가지 않게 하는 분처럼 설교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예배를 원하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 신 목적은 ‘진지한 예배자’에로의 부르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미와 즐거움을 알게 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 토저 목사는 예배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참된 예배 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간절히 예배하는 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을 즐거워하 고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하나님은 옛적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게 하셨 다. 거 기에는 70그루의 종려나무와 12개의 우물이 있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완벽하시면 20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를 벌써부터 예비해놓고 계셨고 그들은 그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삼 일을 못 이겨내 고 “우리가 죽게되었다. 마실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조금만 더 참았다면 엘림이 저기였는데 그 조금을 못 참았다. 이처럼 감사하 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조급하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눈앞에 하나님의 복을 놓고도 서운해한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기 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었다. 기쁘고 경건하게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 과 동행했으며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즉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그 목적에 바르게 살도록 애쓰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갈급해 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 님은 자신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한 사람들이 자 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예 배를 통해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영 혼이 매일의 삶에서 지혜롭고 경건하게 행동할 수 있다. 토저 박사의 권면대로 진정한 예배자로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의 회복자가 되 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분을 찾고 구하는 심령에게 기꺼이 자신 을 계시해주셨고 지금도 계시해주고 계신다. 예배의 회복자 되기 바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 님 앞에 예배해야 한다.
486 no image |살구그늘아래서|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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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2 2008-11-05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추둘란 집사_수필가쪾홍동밀알교회 “7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건만 이런 수익은 처음”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다른 가정처럼 가장이 경제를 책임지게 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이 큰 짐을 지우셨을까?’ 나 도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직장 일은 직장 일대 로 해야 하고, 퇴근 후에나 주말에는 늦은 시간까지 또 다른 부업에 매달려 야 하니 365일 쉼이 없는 내 삶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깨에 온통 짐만 올려놓은 것같아 남편은 무보수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바쁜 것 으로 치면 둘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만날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 은 일 다 하고 그러면서 좋은 일한다고 칭찬도 다 받는 듯이 보입니다. 반면 에 나는 친구를 만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고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일을 뒤로 한 채 집과 직장 , 교회만 뱅뱅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생활이 못 견딜 정도로 답답한 것은 아닙니다. 집에서는 몸과 지혜 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하고,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화목하며 특히 전도대상자를 섬기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또 교회에 가면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듣는 일이 행복하고,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때 마다 감동과 은혜를 한아름 받곤 합니다. 주님께서 어느 공간에 있든지 좋 은 것들로 채워주시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서운함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남편 의 벌이가 나보다 못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내 어깨 위에만 그 짐이 지워져 있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한때는 가정의 경제를 책 임지라고 바가지도 긁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위한 사역의 길을 시 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더 활짝 열어주시는 것을 보며 한 걸음 물러서 버렸 습니다. 남편도 기도하는 사람이니 그 길이 가야 할 길이 아니면 하나님께 서 먼저 막아서실 터인데,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니 나로서 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당신 은 이 땅에서 박수 받고 칭찬 다 받았으니 하늘나라 상급 은 내가 더 클 거야’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거나 ‘내 돈이 내 돈이랴. 필요 한 만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더 필요하면 더 주실 테지’하고 마음을 다독이곤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의 서운함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남편은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농사를 짓습니다. 내 땅, 내 기계가 없 다보니 밭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논 열 마지기 농사를 빠듯이 짓고 있습니 다. 내가 직장 일과 부업에 매달리다보니 농사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남편 혼 자 다 감당하고 있는데 농사수익이라는 것이 땅 빌린 값, 기계 빌린 값, 퇴 비 값 주고 나면 그뿐이어서 잠시 내 손에 들어왔다가 눈앞에서 금방 다 빠 져나가 버릴 만큼의 액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도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하는 남편의 당당함이 저는 좀 얄밉습니다. 1년 동안 걱정 없이 유기농 쌀 넉넉하게 먹는 것과, 친지들 과 나눠먹는 재미만 없으면 벌써 손을 놓았어야 할 일이 농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올해 농사는 남편이 스스로 인정할 정 도로 ‘한심한 농사’였습니다. 논의 물 관리를 비롯하여 잡초 뽑는 일, 논 둑의 풀 깎기, 제 때에 비료 내기, 심지어 수확 후 건조하는 일까지 모두 적 당한 때를 놓쳤습니다. 급하게 부랴부랴, 마지못해 해치우듯이 농사를 지었 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까지 홍성 지역의 장애인부모회 회장만 맡았던 사람이 올해에 갑자기 충남도회장과 전국 공동대표를 맡아버렸고 대학원에서 사회복 지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시간을 내려야 낼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만 것입니 다. 그런데 엊그제 검정쌀과 빨간쌀 도정을 끝내고 수익을 따져보니 열 마지기에 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7년 가까이 농사 를 지었건만 이런 수익을 내기는 처음입니다. 1년 내내 종종걸음으로 출퇴근 하며 벌어들인 나의 연봉과 똑같은 금액이 올해 남편의 농사 수익으로 나왔 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통쾌하게 하나님은 나의 서운함을 날려버리셨습니다. 서운해하지 말 라고, 내 고생하는 것 다 아시니 내 어깨에만 그 짐 지운 것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 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 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 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그 말씀대로 벼농사의 핵심인 물 관리 를 정말로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다 해결해 주셨으며, 오해가 있어 인사도 받 지 않던 이웃의 맘을 열게 하사 그분들의 손으로 벼 건조 작업을 대신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요즘 추수철에 이곳 홍동에는 집집마다 여러 곡식들로 곳간이 채워지고 있는 데, 벼농사말고는 다른 농사를 전혀 짓지 않는 우리 가정이지만 하나님께서 는 인심 좋은 이웃들의 손길을 통하여 심지 아니한 과실과 곡식도 부족함 없 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 집도 세를 내지 않고 공짜로 살고 있으니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 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신 여호수아서의 말씀과 일치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목자 하시오’ 하는 목사님의 권유에 두말없이 순종하고, 우리 형편도 빠 듯하건만 다른 장애인 가정의 희망 없는 삶을 가슴 아파하며 사회운동에 그 아까운 시간을 다 헌납하여 버린 남편, 그러면서도 집에 오면 설거지와 청 소, 빨래 널고 걷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다 해주는 남편입니다. 나보다 더 바쁘고 나보다 더 힘들고 나보다 더 피곤했을 남편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맡은 모든 일에 순종하고 충성하였기에 이와 같은 복을 누리며 삽니다. 남편의 수고 덕분에 복된 삶 누려 그렇게 순종하고 충성하면 가정에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복을 누릴 수 있 다고,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삶으로 본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이 아닌 내 남편인 것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485 no image |하늘이슬로쓴편지| 내가 너의 이슬이 되리니...이영란 사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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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1 2008-10-22
내가 너의 이슬이 되리니...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나에게 힘이 된 이슬이” “맞아요, 성경에서도 분주하고 분요한 인간의 삶은 결국 손바닥만한 크기라 고 했어요.” 이슬이 엄마의 하소연에 남편은 시편말씀으로 공감해준다. 그 녀는 그날따라 삶의 허무한 자락들을 툭 털어놓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슬 네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은 지도 2년이 다된다. 2년이나 함께 지낸 이슬네 식구들 이슬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식당에서 처음 만난 날, 이름이 이슬이란 말 을 듣고 나는 좀 놀랐다. 이슬같은 주님의 소박한 은혜들을 글로 남기던 나 의 블로그 닉네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린이가 한 명도 없는 우리 교회 에 주님의 특별한 선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첫 어린이가 교회에 왔다. 바로 이슬이었다. 어린이 예배시간에 행 여 아이들이 올까봐 두어 달 정도를 썰렁한 교회당에서 기다렸다. 혼자 나 와 어린이 찬 송을 불러보고 간절히 기도하고 혼자 설교연습도 하며 아이들 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넉 달만에 이슬이가 온 것이었다. 할렐루야! 목마른 대지에 이슬이 내리듯 이슬이가 우리에게 왔다. 오기로 한 첫날 나 는 밖에 나가 저 멀리서 오는 아이를 향해 뛰어나가 뜨겁게 포옹하며 맞았 다. 그리고 감격의 첫 어린이 예배를 유아방에서 드렸다. 스크랜튼 여사가 한 명의 여학생을 가르친 것이 이화학당의 전신이 되었지만 그럴 줄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오후에 이슬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교회로 출근하면 텅빈 교회당이 웃음소리 로 꽉 찬다. 가장 힘들었던 개척 초기에 웃음과 힘을 주었다. 이슬이는 남편 에게 버릇없이 장난도 치지만 그는 오히려 크게 웃었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 다. 나는 남편의 큰 웃음소리가 너무도 감사했다. 토요일 어린이 전도시간에는 나보다 더 일찍 나와 전도지를 만들고 마켓에 서 사탕과 갖가지 물품을 사오는 등 자잘한 심부름을 했다. 이렇게 준비를 다하고는 동네를 지나 놀이터로 나간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다가 점점 동 참하고 아이들을 나에게 데리고 오기도 했다. 혼자 나가다가 이슬이와 같이 나가니 큰 힘이 되고 뿌듯했다. 그런데 놀랍게 도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오게 되었다. 교사 두 사람을 세워서 예배당으로 옮겨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점차로 아이들과 교사들도 함께 전도하게 되었 다. 이제 꽤 되는 아이들이 토요전도모임에도 오고 주일예배를 드린다. 평일에 이슬이와 성경도 읽고 공부도 했다. 그런데 교회 바로 앞집에서 밤마 다 불켜진 교회의 예쁜 방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는 아이와 어른을 유심히 보 게 되었다. 결국 그 집 아이가 교회에 놀러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두 아이와 사랑방같은 공부방(?)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부모가 늦게 들어오는 아이들 이 와서 같이 저녁식사도 하며 공부도 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났는데 올 9월부터는 신앙교육과 더불어 인터넷으로 전 과목 을 공부하는 교회 학습이 태동되었다. 모든 것이 미흡하지만 방과 후에 와 서 성경공부와 학습을 하고 있다. 이슬이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에너자이저다. 어린이 방도 가끔씩 다 뒤집다시 피 정리해 놓고 아이디어도 많아 나름대로 멋지게 꾸민다. 요즈음에는 교회 당 청소도 거든다. 내가 주님 앞에 힘들다 버겁다할 때 이슬이는 펄펄 뛰는 생선처럼 싱 싱하게 다가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우리가 밤에 예배당에서 조 용히 기도하고 있노라면 음료수를 살짝 갖다주고 가기도 했다. 다른 선생님 들도 잘 따르고 좋아해서 선생님들도 힘을 얻는다. 해질 녘 이슬이를 데리고 호수로 나갔다. 이슬이만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 다. 사진도 찍어주고 같이 놀고 통닭을 사주었다. "너는 우리교회 주일학교 1호다. 이제 오고 있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해주었 다. 고집도 자기주장도 센 이슬이가 처음에는 아이들에 대해 경쟁심도 가졌 지만 차차 중심역할을 잘 해주고 주일아침에는 아이들 집에까지 가서 잠을 깨워 데리고 온다. 또한 이슬이는 구룡마을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냄새나고 침침한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언제 구룡동에 가냐고 매번 조른다. 이슬 이가 너무 좋아하니 다른 아이들과 같이 가기 시작했고 아이들 손으로 작은 선물드리고 찬양을 불러드리곤 했다. 찬양을 불러주면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다. 이슬이와 같이 만났던 분들 중에 한 분이 교회에 나오게 되고 예수님 을 믿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어린애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작은 아이 이슬이로 인하여 교회의 가지가 벋어나고 꽃이 피 고 때로는 귀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교회 부흥이 우리의 열심으로 성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될 때마다 나는 주님 께서 보내주신 이 작은 아이 한 명이 하나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고백을 한 다. 그 이슬을 받아 머금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살아나고 피어났다. 우리의 힘으로 지혜로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을 주님은 그 아이를 통해 하나씩 하 게 하셨다. 이슬이는 개척교회에 내려주신 주의 이슬이었다. 이슬이 엄마 고백처럼 무엇인가 이루고 얻기 위해 사는 우리의 인생은 지나 고 보면 헛되고 헛됨이요 손바닥만한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 진정한 만족 은 남편이 그녀에게 대답했듯이 오직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이슬같은 은혜를 주시는 주님이 바로 우리에게 진 정한 하늘 이슬이시다. 날마다 이슬같은 은혜주시는 주님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백합화같이 피겠고 ... 가지가 퍼지 며...꽃이 필 것이며...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 리라”(호 14:5- 8 ).
484 no image |살며생각하며|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_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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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3 2008-10-08
살며 생각하며…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 최광희 목사_행복한교회 “자살은 인생의 주인인 주님을 부인하는 것” 지난 주 탤런트 최진실씨가 자살했다. 자살한 사람이 다름 아닌 최진실이기 에 사람들은 더욱 허탈해 한다. 그녀는 예쁘고 인기가 있었다. 이혼의 아픔 이 있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돌봐야 하는 두 아이까지 있다. 그런 사람이 자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잇단 탤런트 자살 소식 안타까워 그러나 나는 다른 이유로 고민이 많다. 그녀가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기 때문 이다. 어떤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최근에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하니까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쉽게 설명하면 된다. 그런데 더 정확한 기사에 의하면 최근까지 강남중앙침례교회를 잘 다녔다고 한다. 목사님과 상담도 하고 새벽기도에 나가서 기도도 했다고 한다. 새벽기 도는 몇 번이나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교회를 완 전히 발 끊었던 것은 아닌 모 양이다. 최진실씨 뿐만이 아니다. 지난번 이은주씨도 그랬고 그 뒤로 유니, 정다빈, 얼마 전의 안재환씨까지 모두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도대체 목사로서 이 현 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떤 성도가 묻거나 어떤 불신자가 와서 비난하 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분들의 장례식을 보면 하나같이 성도라고 써놓고 장례 예배를 드린다. 그 걸 전 국민이 보고 있다. 집례자 목사님은 뭐라고 설교를 하셨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고 이은주씨의 경우 이은주씨는 마음의 병과 싸우다가 간 것이며 천국에 갔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우울증은 자꾸만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는 심각한 병이다. 다른 병과는 달 리 자기 마음이 통제되지 않는 이 병을 앓다가 힘든 일이 겹치면 감당을 못 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사정이 이해되고 너무 불쌍하다. 그 러나 자살은 자기를 살인한 죄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그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전 임진왜란 때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막판에 도쿠가 와 이에야스(德川家康)군에게 패해서 잡혀 할복을 명받고는 “자살하면 지 옥 간다”면서 할복을 거부하고 처형당했다고 하지 않는가? 참 심경이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자살한 사람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 이 아니며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목회현장에서는 그렇게 무 자르듯이 간단히 말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보혈공로가 자살 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도록 연약한가 하는 논리도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성경을 펼치면 자살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자살에 대해 직접적 교훈을 주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신학적인 논란보다 문제는 내가 섬기는 목회 현장에서 이런 일이 생기 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에 유행처럼 번지 는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이 자살하는 것을 막 을 수 있을까? 현대인 가운데 우울증을 앓거나 매우 힘든 일로 살 자신이 없는 사람이 너무 나 많다. 이런 분들이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있을 때마다 용기(?)를 내어 모 방 자살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나는 답답한 가슴으로 넋두리처럼 말한 다.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 자살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신자는 누구나 자 기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고 난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일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이 주신 것이다. 욥은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보다 수백 배 고통을 당하고 친구들의 조롱과 악 플(bad reply)을 받았지만 자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나보다 연약하고 나보다 힘들게 살면서도 용기 를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리고 우울증도 없고 악플 도 없는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님이 보혈을 흘려주셨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면 살 의욕이 없는 상황에 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 도다”(롬 8:18). 천국 바라보며 생명 포기 말아야 죽기보다 힘들다 고 느끼는 모든 성도에게 말하고 싶다. 차라리 죽는 것이 훨 씬 낫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
483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저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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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3 2008-10-08
채석포에서 온 편지 저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산에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정상의 기쁨 누리는 법” 햇살과 볕이 많이 누그러져서인지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왔습니다. 농촌의 가을밤은 풀벌레들의 연주로 시작됩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풀벌레소리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 여름을 다 보내고 9월에 늦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몇 년 전에 무모하게 도 전한 대청봉의 정상에 오르지 못한 기억이 있지만 그 때보다는 시간적인 여 유를 갖고 남편과 같이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가장 쉽고 가까 운 길을 선택한 길이 중산리의 법계사 방향이었습니다. 급격한 경사면을 오르면서 그곳에 가기 전에 뒷산에 한번 오르지 못한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너무나 초보인 산행이라 겁도 낫습니다. 뒤따라오는 등산객 들이 성큼성큼 앞지르는 것이 부럽기도 했지만 앞만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여유롭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감상하면서 행복감을 느 꼈습니다. 산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같이 인사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사말까지도 인색했 던 나를 발견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산에 오르며 “안녕하세요?” 하고 연습 을 해 보면서 웃었습니다. 힘들게 정상에 올랐습니다. 운무의 바다가 몰려와 온 산을 점령하였습니다. 숲도 바위도 능선도 계곡도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깐 앞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감격을 정상에 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며 즐 거워했습니다. 천왕봉 정상에 오른 기쁨을 간직하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할 때는 장터목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올라 왔기 때문에 주 위 환경을 돌아 볼 수 없었으나 내려 올 때는 여유를 갖고 주변 경치를 감상 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자기 색깔로 몸을 단장한 모습들은 정말 아름다 웠고 제석봉의 고사목은 신비감까지 들었습니다. 여행은 가끔씩 인습과 습관적인 삶에서의 탈출로 구태의연함과 무기력함 속 의 내 자신을 재발 견하게 만듭니다. 무리한 산행으로 인하여 불편한 걸음걸 이와 발가락 여러 개가 시퍼런 멍으로 치장을 했지만 마음은 산행의 즐거움 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을 때 모 여자 탤런트 의 자살이 보도되었습니다. 믿어져지지가 않았습니다. 드라마나 탤런트에게 관심이 없던 남편도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더 많은 연기 를 통해 우리들에게 삶의 단편들을 보여 줄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습니 다. 더구나 악성 댓글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 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남겨진 가족과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지난 일들이 생각났습 니다. 나에게도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울 때가 있었습니다. 이웃들에게 외 면당하고 지쳐있을 때 같이 기도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곁에서 지 켜 주며 돌보아 준 권사님이 계십니다. 신앙의 연륜은 나보다 훨씬 짧은 분 이셨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그러한 분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매우 엄하고 인 색하시지만 주머니에 돈이 있기만 하면 주위를 돌아보는 분입니다. 30대 때 몇 년 동안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랑의 빚을 졌 습니다. 나보다 10년 연상이지만 소녀 같으면서 항상 미래를 꿈꾸며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아름답게 풍기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생각하면 박꽃이 생각납니다. 밤에 모든 꽃들은 제 모습을 감추고 말지만 박꽃만은 어둠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순수와 소박함 속에 아 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도 그 분을 닮고 싶어합니다. 70세가 가까이 오지만 크로마하프 연주단으로 여러 곳을 방문하여 봉사하고 이제는 오카리나 연주까지 하시면서 그늘진 곳과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 을 찾아 사랑을 전하면서 문득 내가 보고 싶다며 이곳을 찾으시는 조애자 권 사님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이 있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져 버리지 않는 사람으로 일깨 워 준 부부가 있습니다. 내가 어렵다고 한마디도 안 했지만 남편 손에 고기 몇 근과 하얀 봉투를 손에 들려주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영심 사모님, 친정 부모님들이 돌아 가셨을 때 식구들이 많이 있으니 오지 말라면서 시어머님 이 돌아가시면 가족이 없으니 같이 밤을 새우자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그 모 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외롭고 어려울 때 항상 혼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분들이 내 곁에 자 리하고 있어 역경들을 견디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인생은 연극이라 했습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는, 태풍이 일 년 내내 부는 것 이 아니고 언젠가는 지나가듯이 우리들에게 있는 슬픔이나 고통도 지나갈 것 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입술의 찬양과 기도가 기쁨이 되어 내 삶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요즈음에 들려오는 뉴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상심하고 지쳐있을 때 나 또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전도자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 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 더 이해가 됩니다. 많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받고 있지만 그 사랑을 모를 때가 많이 있었습니 다. 그리고 고난을 받을 때 나만 겪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하실 그 무엇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고난중에도 하나님 역사하셔 내 인생의 여정이 다 끝날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 갈 것입니다.
482 no image |살며생각하며| 신자유주의와 성경주의_장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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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3 2008-10-01
신자유주의와 성경주의 장재훈 목사_군산내흥교회 “상생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경제 체제 세워야” 요즈음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미국의 ‘월가쇼크’로 세계 금융과 경제 가 휘청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식 모델을 좇으려고 하거나 미련을 갖고 있으니 염려가 된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관 수술대 올라 과연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와 성경주의는 코드가 맞는 것인가?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아니다’이다. 신자유주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민주 적이고 공평한 게임인 것 같으나, 실상은 주심도 없이 선수들끼리 자유롭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경기를 하는 것과 같고, 힘이 세고 가진 자에게만 유리한 시장만능주의 게임이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나라는 정부가 일체 개입과 간섭을 하지 않는다. 시장이 스스로 알아서 돌아가게 한다. 장점도 많으나 여기에 문제점과 위험성과 약점이 있 다. 시장과 사람이 완전하지 않고 한계성과 불완전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이다. 그리고 시장이 공생과 상생이 아니라 절대 강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는 점이다. 시장은 자기만 존재해서 거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있어야 한다. 따 라서 상대도 살아남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경기 방식으로 한다면 승 자만 올라가는 토너먼트 방식이다. 동물세계로 비유하자면, 동물 우리 안에 사자와 토끼와 개와 호랑이와 사슴 등 각종 동물들을 들여놓고는 너희끼리 알아서 먹이사슬 매매를 자유롭게 하라는 서바이벌 방식이다. 결과는 너무나 도 자명하다. 개별적 역량과 능력과 상황과 인격과 상태와 공생과 상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부와 주인의 적절한 규제와 배려와 안배 없이 획일적인 접근 방식인 공평이라는 이상한 논리와 잣대로 경제동물의 왕국 게임으로 하는 것이 신자 유주의(시장만능주의) 사상과 실체다. 결국 강한 경제 동물만 살아남게 된 다. 그래서 결국은 교만하게 되고 남용하고 부패하게 되어 자멸하게 되는 방 식이다. 이것은 곧 시장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 나게 된다. 강한 자에게는 재물의 오용 과 남용으로 나타나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달리다가 결국 탈선하고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길로 치닫 게 되는 자본주의 약점을 갖고 있는 시장만능주의다. 이것이 오늘날 결국 신 자유주의가 올 것이 오고야만 미국발 금융위기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경제시장을 동물의 세계처럼 무한 자유와 경쟁과 승패로 가 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질서와 법(계명)과 적절한 안배와 배려와 규제에 따른 자유 시장을 허용하신다. 성경은 인간의 연약성과 오만성과 교만성과 부패성과 한계성을 잘 알기에 적절한 간섭과 규제를 통해 어느 한쪽에만 유 리한 주장과 시행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억압이나 수갑이 아니다. 경제의 발을 묶는 것이 아니다. 안전과 평 화와 상생과 발전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법과 규칙 안에서만 가능하 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검소하면 모두가 승자가 되고 이익이 되 게 하셨다. 누구만, 일부만, 힘 있는 자만 독식하고 삼켜버리는 시스템으로 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사상과 성경주의는 큰 틀과 많은 부분에서 충돌된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결고 성경주의 시장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런 차원에서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 장로 대통령은 성경에 반하고 극단 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 경제 방식으로 가지 말고 성경주의 방식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으면 한다. 신자유 주의 메카인 미국에서도 ‘아니다’라고 하는 모델을 따르려는 것은 어리석 은 선택과 미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경영하는 국가나 기업이나 자영업이나 학교나 단체나 가 정과 가게도 서로를 배려하고 상생하는 성경적 경제시장체제로 만들어 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래야 보다 안전하고 모두에 게 이익과 상생으로 가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는 9월 27일 세계 경제위기가 일단락된 뒤 IMF가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27일 밝혔 다. 국제사회에서 뭇매를 맞고 있고 미국 자체에서도 ‘아니다’라고 하는 미국식 탈규제 경제 정책인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는 이젠 버릴 때가 됐 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돈 있고 강한 자에게만 유 리한 너무 무한 경쟁시 스템으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이유는 이 또 한 성경의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다양한 방식의 상생의 경쟁방식으로 가야 한다. 인간 존엄성 살리는 경제관 살려야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법을 입안하고 집행 하는 위치에 신자들이 있다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고 연구해서 제시와 설득 을 하고 적용을 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일반 시장에는 성경에 반하는 방식들 이 난무하는데 이보다 온전한 성경적인 사상과 원리에서 나온 시장 방식이 지배하기를 바란다.
481 no image |살구그늘아래서| 받고 또 받으니, 넘치고 넘쳐서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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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6 2008-10-01
받고 또 받으니, 넘치고 넘쳐서 추둘란 집사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섬김의 기회,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새벽기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초등학교에서 민속촌 관람 을 가는 날이기에 김밥을 싸야하기 때문입니다. 민서 혼자 먹을 김밥만 싼다 면야 바쁜 일도 아닌데, 직장에 가져갈 것까지 좀 넉넉하게 준비하려니 마음 이 조급해집니다. 김밥 때문에 분주해진 출근 시간 남편은 벼를 추수해야겠다고 일찌감치 논으로 나갔으니 하릴없이 혼자 다 챙 겨야 합니다. 김밥을 말면서 한편으로 두어 줄 툭툭 썰어 아이들 아침식사 로 차려주고, 물병을 챙기고 여벌옷을 챙기고 그만 먹겠다는 아이들에게 양 치질과 세수를 시키고 그러면서 제 자신의 출근 준비도 서두릅니다. 출근 시 간 5분 앞당기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오늘은 20분 일찍 집에서 나서야 하니 아침 내내 종종걸음입니다. ‘직장에는 뭐 하러 김밥을 가져 가? 바쁜 아침이니 아이들 먹을 만큼 서 너 줄만 싸면 될 것을…’ 마귀는 계속해서 내 마음에 속삭여대는데, 별것 아 닌 것이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섬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가 않습니다. 제 직장은 면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입니다. 이곳에서 특수교육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립학교이다 보니 교사실이 한 공간에 있지 않고 건 물마다 흩어져 있는데 저는 나이가 비슷한 선생님 서너 분과 같이 있습니 다. 나이가 고만고만한 선생님들끼리 모여 있다 보니 어린이집 이야기, 육 아 이야기, 집안 정돈 이야기, 요리 이야기와 같은 공통의 관심사가 많아 화 기애애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출근하기 때문에 1 교시 시작 전에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주전부리를 먹습니다. 주전부리라야 집집이 조금씩 가져오는 빵과 비스킷, 과일 따위인데 오늘처럼 김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날은 특식을 먹는 날이 됩니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1교시 수 업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니 김밥 도시락 뚜껑을 열 때 모두들 행복한 얼굴 이 되곤 합니다. 아침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이런 행복을 나눌 수가 있기 에 김밥을 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으레 넉넉하게 준비를 합니다. 지난 추석에는 친정에서 온 마른 멸치와 인터넷에서 구입한 아이들 양말을 선생님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멸치는, 친정이 통영이다 보니 부모 님께 사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비록 여럿이 나누어서 양은 많지 않지만 충 청도에서는 보기 드문 최상품의 멸치를 선물로 받은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감 탄사를 터뜨렸습니다. 아이들 양말은 다섯 켤레씩 세트로 된 것을 선물하였 습니다. “아이들 것까지 챙기셨어요? 우리는 이런 것 생각도 못하고 사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그 이유를 말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마을 어르신들이나 교회 성도님들이 주시는 것을 받 기만 했어요. 계속해서 받다 보니 이제 다른 아이들을 보면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선생님들도 그냥 받으시고 나중에 저와 같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다른 아이들에게 선물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 말 그대로입니다. 민서를 등에 업고 다닐 적, 소풍이나 운동회 때가 되 면 무슨 동네 잔치마냥 집집에서 김밥 먹으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리고 그 때나 지금 이나 명절이 되면 우리 가족 수대로 챙긴 양말 선물을 꼭 받게 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은혜를 받아본 사람이 은혜를 나 눌 수 있다고 하던가요? 하나님이 이웃과 성도들을 통하여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물을 주셨는데, 처음에는 그 선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되 갚을 생각을 전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받고 또 받으니, 어느새 넘치고 넘치는 그 은혜를 실감하게 되었고, 드디어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나눠주게 된 것입니다. 매달 받는 월급으로 따지면 제 월급은 다른 선생님들의 삼분의 일, 사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월급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따지자면 제 가 받는 은혜는 무한대의 은혜이므로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습 니다. 그 큰 은혜 받고 사는 사람이 멸치 한 봉지, 김밥 몇 줄, 양말 몇 켤레 나눈 다고 하여 궁핍해지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오히려 더 섬길 수 있는데 시간 없다 하여 기회를 놓치고, 피곤하다 하여 기회를 놓치는 제 자신이 한 없이 부족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영혼에 부어주시는 영적인 선물도 깨닫 게 되니 나만을 위하 여 기도하던 사람이 전도 대상자들의 영혼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게 되었습니 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줄도 모르는 연약한 영혼들을 위해 그들을 구원 해 달라고, 섬길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벼락처럼 큰 은혜를 한꺼번에 쏟아준 것은 아니 었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을 작고 작은 섬김들을 이웃들의 손을 빌어 제게 꾸준히 채워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섬김의 은혜를 오랜 세월 받고 또 받으 니 이제 그 은혜가 넘치고 넘쳐서 다른 이웃에게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 이웃들에게 나누어 내가 할 수 있는 섬김도 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 막고자 하여도 막 을 수 없는 섬김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누군가는 시나브로 그 은혜를 깨달아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480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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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0 2008-09-23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한 사람이 돌아올 때 그 기쁨 헤아릴 수 없어” “얘들아! 이제 놀던 것 정리하고 성경 읽자.” 나는 어린이 방에 있는 아이 들에게 성경을 꺼내주고 누가복음 한 장을 읽도록 했다. 그 때 한 엄마가 들 어왔다. PC방을 운영하는 남편에게 밥을 챙겨다 주고 오는 길이다. 들어오 는 그녀를 보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년 만에 복음 전도의 결실 얻게 돼 이 부부를 알게 된 것은 1년 전쯤 전도하기 위해 PC방에 들르면서부터였다. 점차 마음을 열고 친해졌다. 몇 달 전부터 아이들이 모이는 목요일에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식사를 한다. 삼남매가 어린이 주일예배에 잘 참 석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최근에는 그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 교인수련회에도 참석했다. 중요한 성경말씀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더니 내 옆에 와서 순순히 앉았다. 성 경을 읽어주며 복음을 전했다.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들었다. 특히 죄에 대해서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응했다. 다 듣고 나서 자기 중심의 삶에서 주님 중심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영원한 멸망이 며 불행하고 목적 없는 목마른 삶이라고 말해주었다. 짧은 간증과 함께 예수 님께 모든 삶을 맡기라고 권면했다. 이렇게 아이 엄마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 조용히 듣고 있던 분이 있었다. 4 월부터 나오는 새신자 성도이다. 자신이 약속한 목요일 밤 기도시간에 왔다 가 아이들과 식사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평생 방랑자로 살다가 최근에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그가 듣는 가운데 그녀 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아! 교회는 정말 너무나 위대한 곳이다!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말씀을 맡은 교회가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감사가 넘쳤다. 요즈음 우리 교회는 기쁨이 가득하다. 갓난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이 새신자 성도이다. 교회에 나온 지는 5개월 되었지만 우리가 그를 안지는 4년 이 되었다. 개척하기 이전부터 개포동에 있는 구룡 마을에 매주 발걸음 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였다. 야쿠르트 한 병을 나누면서 쪽방처럼 임 시로 지어진 판자촌 같은 곳에 사는 노인들과 외롭고 병든 분들을 만났다. 정이 깊어졌다. 그 역시 노동자이면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 다. 역사 철학 정치 모든 면에서 해박했고 나름대로 삶의 체계가 있었다. 사 회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 때문에 냉소주의자로 살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일을 많이 했다. 동네에서 무시당했 고 자라면서 놀림의 대상이 되다가 어느 날 주먹의 힘을 알게 되어 깡패 아 닌 깡패가 되었단다. 소망 없는 삶 때문에 술을 의지하게 되었고 한편 엄청 난 양의 책을 읽게 되면서 현실 부적응자가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교회에 달려가면 선생님이 자기 양말을 벗어 신겨주면서 차가운 발 을 녹여주었다. 그 사랑과 말씀이 고향처럼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장성 하면서 부모와 친척 동네에서 미움받고 세상도 교회도 비판하며 자기 세계 에 갇혀 살았다. 외국에 노 동자로 나가 일하고 나름대로 돈도 모았지만 목적 도 정착할 곳도 없는 방랑자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 지 않고 노마드(nomad, 유목민) 가 되어 살았다. 그런데 올 봄에 우리 부부와 성도들이 이곳을 방문했던 날, 교회에 나가야겠 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 안 나가면 자신의 인생이 마지막이 될 것 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년이 넘도록 교회에 나오라는 말도 못했는데 우리 교회가 그에게 문턱이 높 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는 모든 예배뿐 아니라 뜨겁게 기도하는 금요기도회까지 나온다. 더불어 성경공부를 하면서 믿음이 자라가고 많은 의심도 해결되었다. “예수님을 이 렇게 단순하게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을 정말 몰랐어요”라고 하며 기뻐했 다. 날카로운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순한 양처럼 목사를 따른다. 또한 그 가 르침을 사모하며 성도들의 사랑을 받고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 논리적인 지식으로 가득 찬, 마치 은둔의 야인 같았던 그가 교회의 일원이 되면서 얼굴 표정이 바뀌고 있다. 그가 들어오면 교회당이 꽉 찬 느낌이다. 빈자리 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회개하고 돌아온 한 영 혼을 인한 천국의 기쁨일 것이다. 그 동네에서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소문이 났다. 이슈가 되고 있다. 그의 표 정과 말씨와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전도했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을 자랑하기도 하고 전도까지 하고 다닌단 다. 그의 잔잔히 그러나 깊이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가, 복음을 맡아 전하는 교회는 얼마나 놀라운 곳인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 듣고 행동과 말씨까지 달라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던 어부였던 베드 로의 믿음을 보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신 주님! 평 생 가난한 노동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이 성도의 진실된 신앙고백 위에 복음 의 빛을 찬란히 비출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지게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479 no image |노트북을열며| 광야의 교회학이 필요할 때이다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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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2 2008-09-23
광야의 교회학이 필요할 때이다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신앙의 원리는 삶의 정황에 적용되어야” 교회학이라는 학문은 원래 없다. 교회론인데 거기에 ‘학’ 자를 붙인 것이 다.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들과 교우들이 즐겁게 교회 생활할 수 있는 교회 는 어떤 교회일까 고민해 보기도 한다. 즐겁게 생활하는 교회관 필요해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진 을 치게 하셨다. ‘돕는 장소’라는 뜻의 이 르비딤은 최상의 휴식 장소였 다. 그런데 이런 장소에서 문제가 생겼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장소였는데 마 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맛사와 므리바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시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세와 더불어 다투기 시 작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동질감과 동시에 이질감도 느끼게 된다. 이미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도움이 되어주시고 이미 하나님이 어 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능력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던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 으면서도 10년, 20년이 지난 사건이 아니라 불과 며칠 전에 하나님의 능력 을 체험했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을 몰랐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르비딤을 선택해서 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그 노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하나님 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지만 마실 물이 없는 곳으로 우리 를 인도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지켜보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배워야 할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을 인정하는 그의 엎드림의 영성이다. 그는 즉각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지 금의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내가 너를 대신하 여 네 앞에 서리라”고 응답하셨다. 마찬가지다. 오늘날 교회들이 목마름으로 지쳐 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한국교회 목마름의 문제는 그야말로 맛사와 므리바다. 그들은 계속 맛사 신 앙의 혼돈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회가 다툼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 모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목회자가 변화되지 않고 목회 자가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에 하나 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신인식의 부족과 구원의 의미를 너무 주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것은 우리 한국교회는 학문의 준비가 되 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준비 안 된 부분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 다. 그동안은 진지하고 어떤 면에서는 무식하기까지 했다. 진정성만을 갖고 있어서 열심 밖에 낼 줄 몰랐다. 또한 무엇을 할 만큼 우리 사회가 다층화 되어있지 않았다. 보통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인격이나 눈치가 없는 것과 같다. 비판할 것도 없이 이제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떤 때는 우리의 단순함이 무식하다 는 정도가 아니라 단호하게 폐쇄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의 무한하시고 높으심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이 어느 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들어서도 얼마든지 일을 하신다. 이미 우리를 돌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 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항상 메이저로 일하신 게 아니라 비주류로 일을 하셨다. 이런 차원에서 최소한의 신앙 자세를 지키 는 것이 우리 교단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보수 신학의 취약점은 하나님의 주권이 운명적 차원에서는 독자적이고 배타적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고 대화하고 의논하 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종만 강요하는 보수신학에서는 극과 극으로 감 히 하나님과 상의하거나 응답할 수 없는 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달리는 신앙 밖에 없고 기계적이고 무정한 사람이 되기 쉽다. 순종 을 해서 개인적으로는 복을 누릴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 고 있다. 다시 교회를 생각하며 전 삶을 이끌어내는 신앙이 아니면 사회를 변화시키 기 어렵다. 특히 목회자는 세상을 근거로 목회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목회자 는 가 자폭하지 않을 만큼만 하신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기쁨의 조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도 밋밋하게 진행된다. 우리가 힘껏 밀어 부친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어느 날,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바뀌지 않아 어딜 가도 말씀만이 답을 주고 하나님께로 가게 한다. 다시 한번 우리의 내 면적인 신앙의 원리가 일과 사람 사회 속에서 흘러나오는 교회학이 더욱 필 요할 때이다.
478 no image |살며 생각하며| 한글학회 백돌과 주시경 선생_오동춘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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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4 2008-09-10
한글학회 백돌과 주시경 선생 오동춘 장로_화성교회 "열방에 복음 전하는 도구로 ‘한글’ 사용되길" 지난 8월 31일로 한글학회는 백돌을 맞았다. 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서 대문 밖 봉원사에서 주시경 선생이 최현배, 김윤경, 권덕규, 장지영 같은 쟁 쟁한 초기 국어강습소 1회, 2회 졸업생과 유지들의 후원으로 처음 세운 것이 다. 창립 백돌 맞은 한글학회 세울 때 첫 이름은 국어연구학회였다. 1911년 9월에 ‘배달 말글 음’으로 이름을 바꾸고 1913년 3월에 ‘한글모’로 바꾼다. 보중친목회보 제1호에서 주시경 선생은 ‘말을 모르면 나라도 모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고 하면서 말이 나라를 이룬다고 강조했다. 주시경 선생은 이회종 진사에게 한문공부를 하다가 ‘글이란 말을 적으면 그 만이다’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여 어려운 한자보다 쉬운 한글을 사랑해야 한 다는 마음을 다짐하게 되었다. 주시경 선생은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며 아펜 젤러 선교사에게 세 례도 받았다. 서재필 박사가 창간한 독립신문 회계 겸 교보원이 되어 한글 맞춤법을 바로 세우고 한글 바로 펴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남대문 상동교 회에 출석하면서 민족주의자인 전덕기 감리교 목사로부터 교회 안에 설립된 공옥학교(초등과정), 청산학원(중등과정) 국어강사가 되었다. 초기 국어강습 소 강사까지 맡아 조선어문법을 가르쳤다. 국어문법(1907), 국어문전음학(1908), 말의 소리(1914) 등의 우리 말글 사랑 의 저서를 낸 주시경 선생은 배재, 이화, 보성, 중앙, 진명 등의 학교에서 주모퉁이 별명을 들으며 국어문법을 가르쳤다. 경술국치로 나라의 주권도 일 제에 빼앗긴 당시 조선은 암울한 식민통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 나라 애국자, 선각자요 국어의 횃불인 주시경 선생이 38세로 갑자기 별세하게 되 어 한글학회는 한동안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한글학회는 1921년 12월 3일 임경래 휘문의숙 교장을 중심으로 최현배, 김윤 경, 최주선, 장지영, 이병기, 신명균 등의 한글학회 회원들이 휘문의숙에서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었다. 조선어연구회는 한글날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1926년 11 월 4일(음력 9월 29일) 한글반포 8회갑을 맞아 한글날 첫 기념식을 시내 식도원에서 가졌다. 그 한글날이 2005년 12월 8일 국경일로 승격되어 올해 562돌의 기념식을 갖게 된다. 한글학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어 큰사전을 만들기 위 해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1933년에 발표해서 오늘의 문법기초를 이뤘으며 이 어 표준말 정하기, 외래어 적기 등의 일을 했다. 그리고 기관지 ‘한글’을 27년부터 발행하다 9호까지 내고 중단된 것을 1932년 5월 1일을 기하여 다 시 ‘한글’ 기관지를 내며 창간호로 삼았다. 현제 280호까지 발행된 학술잡 지로 전통이 깊다. 일제는 조선민족말살정책, 조선어말살정책을 쓰면서 1942년 10월 1일부터 7 차에 거쳐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을 검거하여 홍원경찰서에서 1년간 고문하 고 1943년 9월말에 함흥지방법원으로 기소해 넘겼다. 그 결과 이극로 6년, 최현배 4년, 이희승 2년 6개월, 정인승 2년, 정태진 2년 등의 형량으로 유죄 언도를 받았다. 33명중 24명이 기소되어 심한 옥고를 치뤘고 이윤래, 한정 선생은 옥사를 했다. 광복후 한글학회는 국어교과서 편찬, 국어교사양성이 급선무였으며 1949년 에 학회 이름도 한글학회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수립 후 한자폐 지운동, 국어순화운동, 한글전용운동, 한글기계화운동에 힘쓰며 각종 건의 서, 성명서 등을 발표하며 한글전용법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 힘을 기울였 다. 1957년에 일제시대부터 착수해온 ‘조선어 큰사전’ 6권을 간행했다. 21세기 과학 첨단시대에 가장 과학적인 한글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세계 각 나라에 한글교육, 한국어교육이 큰 성황을 이루고 있다. 기대하는 한글의 세계화 한글 백돌을 맞는 한글학회는 한자, 영어 문제를 잘 조절 정리하고 성경의 한글화로 전도에 공이 큰 한글의 세계화, 산업화, 대중화, 기계화에 온 힘 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477 no image |살며생각하며| 배치, 조정, 그리고 섬김_김수영 목사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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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5 2008-09-03
배치, 조정, 그리고 섬김 김수영 목사_나눔교회,횃불트리니티 교수 “지혜롭고 공평하게 은사대로 배치해야” 며칠 전 평화포럼 모임에 갔다가 연세대 전우택 교수의 특강 중 서두 부분 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전 교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다섯 명을 비교했 습니다. 독특한 개성 가진 미국 지도자들 가장 유명한 조지 워싱톤은 든든한 지도자로서 군대가 주어지면 어떤 상황에 서든지 그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지휘자였지만 사상가나 선동가는 아니었습 니다. 사람을 모아서 열 배가 넘는 영국 군대를 대항하도록 마음에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종이와 펜을 주면 글을 써서 사람 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람이 움직이도록 열정을 코앞에서 전달한 사람은 토마스 페인이었 습니다. 웅변과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벌렁거리게 만든 사람이었습 니다. 독립에 불을 지핀 사람이었습니 다. 또한 흩어져 있는 13개 주가 연합하도록 주장한 사람은 헤밀톤이라는 사람이 었습니다. 그는 연방의 힘을 강조하여 지금의 미국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었 습니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은 나이가 비슷해서 의견이 부딪치면 갈등만 증폭되었습니 다. 그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끝까지 의견을 도출해 낸 사람이 바로 벤 자민 프랭클린이었습니다. 그는 초대 대통령을 맡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이를 이유로 거부하고 자기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엮고 의견 을 조정하고 자기의 위치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미국이 있게 된 것은 이들 다섯 명의 재능과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각각 따로따로 일하고, 힘을 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 안에서 일하다 보면 재능이 부족해서 일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 니다. 교회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재능 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워싱톤 같이 주어진 프로젝트를 목적지까지 이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추진력이 강합니다. 어떤 사람 은 제퍼슨처럼 자기의 생각 이 뚜렷하고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페인처럼 열정 적인 전달자이고, 어떤 사람은 헤밀톤처럼 모임의 기초를 놓되 멀리까지 바 로 보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벤자민 같이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재능들 을 겸손히 엮을 수 있는 역할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려면 성숙해야만 합니 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위치와 재능, 한계와 역할 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다양한 재능과 의견이 모두 필요하다 는 것을 알고 꾸준히 그들을 엮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를 한다면 모임은 다양하면서도 하나가 될 수 있 을 것입니다. 교회 목회를 하면서 늘 어려워하는 것은 사람과 같이 일하는 부분입니다. 제 일 힘들지만 보람이 있고, 제일 상처도 크지만 기쁨도 그만큼 큰 영역이 인 간관계의 역학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동기와 과정, 목적과 평가에서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 되기 힘듭니다.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제일 간단한 것은 제왕적인 리더십을 발휘 하는 것입니다. 군대식으로 정렬시키고 ‘좌향좌, 우향우’ 하면 됩니다. 그 러나 성경 어디에도 제왕적 리더십을 지지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 히려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섬기는 리더십이 무조건 섬김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 을 가지고 잘 섬길 수 있도록 잘 배치해 주는 것도 섬김입니다. 지혜롭고 공 평하게 각각의 은사를 따라 잘 배치해 주는 것이 지도자의 할 일입니다. 또한 갈등이 있으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조정해 주 어야 합니다. 잘 조정해 주는 것도 섬김입니다. 내 욕심대로 조정(control or manipulate)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조정(mediate or reconcile)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섬김의 리더십 성숙한 목회란 다양한 지도자들과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 고, 마음을 나누고, 설득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하나로 만들어갈 수 있는 목회가 아닐까요?
476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아내들의 휴가_김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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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3 2008-09-03
아내들의 휴가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평생을 함께 하면서도 남편 곁 떠나지 못해”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자동차들의 행렬이 줄어든 것을 보니 무더위를 피하 기 위한 피서 휴가도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휴가의 계절도 막바지 다다라 레저문화의 발전으로 인하여 여행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면서 생의 기쁨을 맛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기름값 인 상으로 인하여 어느 해보다 피서지를 만족시킬 수는 없던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 휴가를 즐기고 있을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 습니다. 며느리의 자리와 아내의 자리, 그리고 어머니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 고 한 인간으로 살고 싶어 집안의 어른에게 휴가를 허락 받았습니다. 그리 고 남편과 같이 혼자 생활할 집으로 가기 위해 이삿짐을 싣고 가는 차 안에 서 미소를 짓던 모습이 내 뇌리 속에 큰 충격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나”를 찾고 “여자”로 살고 싶어하는 그 모습 속에서 카타르시즘을 느꼈 습니다. 밤 예배 시간과 맞물려 그 연속극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나 또한 가끔씩 자유를 그리워 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문학을 갈망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던 그 시절에 보헤미안과 집시를 그리 워 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남보다 조금 일찍 운전을 배워 자동차를 구입했 을 때만 해도 혼자서 여행을 하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그 생각은 꿈이었습니 다. 결혼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고 행복했지만 여자 혼 자 여행하면 참 멋지게 보일 것 같았습니다. 어느 시인의 시에서처럼 나의 노래를 부르며 나를 위해 미소를 짓고, 나를 위해 노래도 부르면서 시간의 흐름 속을 걷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 어머니의 자리, 아내의 자리에서는 휴가를 얻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모로 서의 휴가는(?) 하고 생각해 보면서 몇 해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남편과 심한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너무 야속해서 남편을 가장 화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가출이었 습니다. 목사에게 사모의 부재를 묻는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당 황할 남 편을 생각하면서 막상 집을 나가 보려고 했지만 나갈 수가 없었습니 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정의 식구들이 미국에 있기도 했지 만 마땅한 친구도 없었습니다. 사모의 위치에서 누구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여자 형제가 없음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리고 가출해서 돌아 온 다음에 성도들과의 만남에서 구차한 변명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남편의 사과에 그만 슬그머니 주저앉은 기억이 이 제 추억이 되었습니다. 나이 들어 직장을 가졌던 친구들이 명퇴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고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것보다 퇴직을 한 남편과 한 공간에 서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말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습니다. 남편과 하루 종일 얼굴 마주하며 어떻게 보내느냐고 하면서 장하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대형 교회나 활동이 많은 목회자들의 사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목회자들 은 부부가 같이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부부 는 아무도 모르는 둘 만의 긴 세월을 같이 살았던 익숙함 때문에 같이 하지 않을 때는 옆구리 가 시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을 보면서 보르테르가 “동성간의 우정은 혼의 결혼이다”라고 했던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아내의 약속에 가끔 부도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내 게 미안해하며 외출을 하는 날이 나에게는 자유입니다. 남편이 나에게서 자 유를 느끼며 지인들과 만나는 그 시간들이 내게 큰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남편이 잠시 집을 비울 때 가구도 옮겨 놓을 때도 있 고 혼자서 차를 마실 때도 있습니다. 남편과 같이 마시는 커피의 향도 좋지 만 혼자서 마시는 차의 향도 기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연속극의 주인공처럼 휴가를 그리워하며 며 꿈을 꾸기도 합니다. 어질러진 화장대 위를 정리하면서 거울에 비친 눈가의 주름과 이마의 깊은 주름을 보며 세월의 흔적에서 우울할 때도 있습니다. 태양은 예나 지금이나 떠오르고 시계는 거꾸로 돌릴 수 있어도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음을 봅니 다. 그러나 외출해서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면서 잠시 자유를 느끼면서 행복하다 고 생각해봅니다. 나에게 있어서 휴가는 남편과 같이함에 익숙해서인지 혼자 만의 여행이 왠 지 청승맞게 보이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하고도 생각해봅니 다. 상상으로 끝난 혼자만의 여행 나는 항상 혼자만의 휴가를 꿈꾸어 보지만 그것은 꿈일 것이라 생각을 하며 늦은 휴가를 남편과 같이 손잡고 전나무 숲을 걸으면서 또 미래의 아름다운 석양의 붉은 노을을 그려보려고 합니다.
475 no image |살며 생각하며|프로이드를 따를 것인가? 성경을 따를 것인가?_손성은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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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5 2008-08-27
살며 생각하며 프로이드를 따를 것인가? 성경을 따를 것인가? 손성은 목사·부산삼일교회 세속철학이나 심리학계의 인물 중에서 프로이드만큼 현대교회의 목회영역에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 미친 영향력을 나의 목회에서 제거할 뿐만 아니라 극복할 수 있을까 하 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저서 ‘Moses and Monotheism’(모세와 유일신교)은 그의 정신분석이론 을 성경해석에 적용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프로이드는 주장하기를 모세는 고대 이집트인이었는데, 파라오 아크나톤의 종교개혁에 힌트를 얻어서 유일 신을 주장하여서 근족들의 해방에 성공하지만, 근족들은 오히려 모세를 살해 하게 되고 그 살해의 죄의식 때문에 모세를 영웅으로 추앙하게 되었다는 식 으로 주장합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그의 정신분석이론에 기초해서 그럴듯하게 설명해 갑니다. 그런 해석을 받아들이는 현대의 역사가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이론으로서는 설득력을 상실해 버렸지만 그의 성경을 뒤집어 읽는 태도 는 현대의 많은 성경이론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프로이드의 생존당 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고등성서비평운동의 조류와도 비슷하였기 때문입 니다. 한 마디로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하 나님이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란 ‘개념’일 뿐이라 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깨어지면서 보다 더 완전한 존 재의 모습으로 투사된 것이 그 하나님 개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유아기적 기대가 신이라는 존재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많은 면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우상’들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이 먹혀 들어갑니다. 거짓된 허상들을 실상인 것처럼 속고 사는 인간들의 모습은 이 러한 프로이드의 분석에 의해서 발가벗고 맙니다. 한편으로 고마운 분석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질문을 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불완전한 것에서 완 전한 것을 형성 하여 투사할 수 있는 그 정신적 기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요? 불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완전한 존재를 그려보려는 그 욕구를 가지게 된 것일까요? 그 욕구 자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프로이드는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여기에 바로 전도서 3장 11절이 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 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지만, 하 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프로이드는 말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란 개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프로이드를 만들었도다.”
474 no image |살구나무그늘아래서| 규모 있게 살도록 가르쳐 주신 하나님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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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4 2008-08-27
규모 있게 살도록 가르쳐 주신 하나님 추둘란 집사_수필가,홍동밀알교회 “낭비하지 않고 사는 것,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해” 전도대상자인 준민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잠깐 우리 집에 들러 놀고 싶다고…. 그이를 위하여 ‘무슨 방법으로 섬길까?’ 늘 기회를 엿보고 있 는 나에게 자청하여 도움을 구하니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얼른 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누추한 살림살이 부끄럽지 않아 준민 엄마가 우리 집을 찾은 것은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첫 번째 방문 때 그이는 우리 집 사는 형편을 보고 적이 놀란 듯 보였습니다. 오래된 시골집 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이의 상상보다 훨씬 작고 허름했던지 앉아야 할 지, 서야 할지, 어디에 기대어야 할지,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네 식구가 잠자는 안방 한 칸과 거기에 딸린 작 은 부엌, 책과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방 한 칸이 전부입니다. 거실도 따로 없 고 마루 도 따로 없습니다. 안방이라고 해봐야 책상 하나, 서랍장 세 개, 옷 걸이가 전부이고 집집마다 있게 마련인 장롱도 없습니다. 준민 엄마는 지난 번 방문 때에 집도 집이지만 수돗물도 시원스레 나오지 않 은데다, 지네를 비롯한 온갖 벌레나 쥐와 더불어 사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그이는 뜻밖의 말을 하였습니다. “참 단출해요. 이렇게 간단하게 해놓고 살다니… 부러워요.”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동안 이 작고, 허름하고, 벌레가 버글거리 는 집으로 인해 얼마나 속을 끓이며 살았는지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집에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생기다니, 하나 님은 참 희한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집안 꾸미기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면 모를까 나는 누구보다 예쁜 집, 예쁜 살림살이를 좋아합니다. 잡지에서 그런 사진을 보며 즐기는 것도 좋아하고, 직접 꾸미는 일을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즐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의 욕망이 하나님의 나라 와 그 의를 구하는 데에 꼭 필 요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시며 이 작고 허름한 집을 통하여 철저하게 교육시켜 주셨습니다. 한동안은 하나님의 방법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순종할 만큼 순 종하고 봉사할 만큼 봉사하며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도 누구 못지 않게 잘 드 리건만 어찌하여 이 작은 집에서 지네에 물리며 살게 하시는지, 이만하면 우 리를 출애굽시켜 주실 때도 되었건만 어찌하여 내버려두시는지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교육 방법은 너무나 탁월하였습니다. 우선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해 주었습니다. 어떤 물건을 사야 할 때나 심지 어 공짜로 얻어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꼭 필요한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하 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쁘든지 안 예쁘든지 어떤 새로운 살림살이가 하나 들어오려면 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집밖으로 나가야 할 구 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경제적으로도 필요 이상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남편 이 거의 무보수로 장애인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다 보니 수입이 생겨도 공과 금을 비롯한 생계비에 즉시로 지출이 되어버려 집안 꾸미기에 쓸 돈은 애초 에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오 년을 교육받다보니 나도 모르게 규모 있게 사는 방법이 저절로 체득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작년부터 나에게 직장을 주 시고 월급을 주셨는데 그 수입으로 집안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목장과 목원 들, 전도 대상자들을 섬기는 일에, 그리고 교회의 필요를 돌아보고 사용하도 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가계부를 쓰게 하셨고 적금까지 들게 해 주셨습니 다. 결혼 전부터 ‘있을 때 쓰고 보자’는 식의 경제관념을 가졌던 제가 이 렇게 규모 있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작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 육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은 집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 덕을 세우는 귀한 집입니 다. 작고 허름한 집에서 목장예배를 드리게 됨으로써 좋은 집이나 넓은 집 을 갖고 있지 않아도 목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성도들도 알게 된 것입 니다. 그리고 준민 엄마처럼 단출하게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까지 생기 게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나에게 규모 있게 돈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남편에게 n는 규모 있게 시간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편은 논농사를 짓는 농 부이자, 교회 차량 운전자이며 한 목장을 섬기는 목자이면서 초등학교의 운 영위원입니다. 여기에 홍성 지역과 충남도, 그리고 전국 대표 직함까지 장애 인부모회와 관련한 회장직을 세 개나 갖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부족한 것은 돈보다도 시간인데 24시간을 쪼개어 그 많은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남편은 남편대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음이 틀 림없습니다. 스포츠 뉴스를 보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던 남편이지만 스포 츠 뉴스는커녕 지금 우리 가족은 아예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 위해 쓰임받는 것 감사해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건만 우리 같이 부족한 사 람을 선한 싸움에 사용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시간이든 돈이든 낭비하며 살아도 그것이 낭비인 줄 모르고 살았던 우리를 오직 하나님의 나 라와 그 의를 위해 규모 있게 살도록 하시니 하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473 no image |살며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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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6 2008-08-20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 김명혁 목사_강변교회 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보배로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 은 사랑입니다. 사랑보다 더 귀하고 더 아름답고 더 보배로운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이 행복이고 사랑이 기쁨입니다. 사랑보다 더 귀한 것 세상에 없어 사랑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사랑을 지니지 못하고 사는 사 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받을 줄 알아야 지닐 수도 있고 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받을 줄도 알고 지닐 줄도 알고 나눌 줄 도 압니다. 그래서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 을 지니고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주 님을 뜨겁게 순수하게 전폭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은 최고로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주님 을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모와 사랑은 체면이 나 물질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모와 사랑은 체면도 물질도 시간도 정성도 눈물도 모두 쏟아 바칩니다. 마음과 심장을 살피시는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사랑을 귀하게 여기시고 칭찬하시면서 그 여인을 비웃고 있던 바리새 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 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 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 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 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 이라”(눅 7:44-47).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은 최고로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주님 을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베다니 마리아도 최고로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주님 을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아래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죄인인 한 여인처럼 그녀도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자기 머리 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 기사가 요한복음 12장과 마태복음 26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주님께서는 베 다니 마리아의 사랑의 행위를 기쁘게 받으시면서 그녀를 최고로 칭찬했습니 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 26:12,13). 주님을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한 베다니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최고의 칭찬 을 받은 최고로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막달 라 마리아도 최고로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했 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죄사함과 병고침 을 받은 후 주님을 떠나지 않고 항상 주님을 사모하 고 사랑했고, 주님을 따 르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진정한 사모와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모와 사랑은 박해나 조롱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는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서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모와 사랑은 울면서 보고 싶어하는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면서 주님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부활의 주님께서 제일 먼 저 나타나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분부하신 사람은 사도들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뜨 겁게 사모하고 사랑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나서 부 활의 메시지를 전한 최고로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것이 가장 값져 무엇이 행복입니까? 주님을 뜨겁고 순수하게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영원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보다 더 귀하 고 아름다운 것은 없는데 모든 사랑 중에서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보 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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