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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 영광의 무게_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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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3 2008-08-13
하늘이슬로 쓴 편지 영광의 무게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마음의 문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젠 활짝 열려” 오늘은 김치담기로 한 날이다. 이웃에게 전할 김치이다. 권사님과 함께 김치 를 전할 이웃들 이름을 적다가 적잖이 놀랐다. 이웃들에게 김치 나눠주기로 배추 17포기를 반 포기씩 나누어 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하나님께서 많은 분들을 이웃으로 만나게 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넘쳤다. 작년 1월, 교 회가 설립될 때 만해도 이 지역에는 성도 한사람도 살고 있지 않았다. 최근에 단독으로 임직을 받으신 권사님! 교회 주위의 이웃을 생각하며 김치 와 멸치볶음을 하기로 집사님들과 계획을 하셨다. 모두 자원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돈을 내어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어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장에 가서 배추를 사서 저려놓고 가셨다. 배 추가 밤새 잘 저려졌다. 그동안 교회 주변 상가에 코코아를 전하기도 했고 간간이 호박죽을 나누기도 했는 데 이렇듯 성도들이 김치를 만들어 전하려고 하니 정말 흐믓했다. 권사님이 만들어 오신 콩국수를 맛있게 먹으면서 즐겁게 김치를 담고 포장 을 하셨다. 요리사인 집사님 솜씨로 담은 김치 맛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명 단대로 성도들과 함께 전하기로 했다. 특별히 교회 옆에 사는 아이 엄마를 오라고 해서 성도들에게 소개를 시켰 다. 어린 아이 삼남매를 힘들게 키우며 남편과 24시 게임방을 운영한다. 만 난지 1년이 된 요즈음에 아이들을 평일과 주일에 보낸다. 서로 반갑게 인사 를 나누고 선물을 전했다. 성도들의 격려와 귀한 선물을 받고 너무나 좋아했 다. 교회 앞에 있는 자동차 유리가게에도 찾아갔다. 언젠가 한 날은 그분이 큰 소리로 오지 말라고 했다. 며칠 후 미안했는지 과거에 교인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장모님도 교인이지만 자기 아내와 아이들은 절대 로 교회에 안 보낸다고 했다. 그 아이가 잘 따르는데도 교회는 절대 못 가 게 한다. 건네는 선물을 조금은 멋쩍게 받으셨지만 후에 아이 엄마가 감사하 다고 고마운 인사말을 건넸다. 또 교회 바로 근처에 사는 젊은 엄마에게 찾아갔다. 최근에 교회 앞에서 만 나게 되었다. 만나던 첫날, 말을 붙이는 낯선 나에게 자신은 무종교주의자라 고 하며 단호하게 대했다. 마침 가지고 있었던 자녀를 위한 기도책자를 전하 며 유태인 어머니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부모 없 는 아이가 없듯 우리에게 창조주가 계신다고 하며 다음 만남을 생각하며 짧 게 마무리했다. 헤어지기 직전 아이 이름을 웃으며 물었는데 가르쳐 주었고 그 이후 그 집 에 찾아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책자를 전했다. 이번에는 김치선물에 조금 의 아해 하더니 이내 기쁘게 받았다. 조금 열린 지하 현관 문 사이로 아이와 엄 마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언젠가 그 문빗장이 풀리고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게 될 줄 믿는다. 잘 저려진 배추에 양념이 속속들이 배어들 듯이 이 웃들의 마음에 사랑이 스며들었다. 작은 수고와 사랑을 통해 이렇게 귀한 분들을 이웃으로 만나는 것이 영광스 럽기만 하다. C.S 루이스는 이웃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 다음으로 이 세상에 서 거룩한 것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가장 하찮게 보이던 이웃이 천국에서 얼 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안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그 이웃을 위 한 사랑 의 짐은 아무나 질 수 없다. 이웃에 대한 영광의 무게를 아는 자, 그리고 겸 손한 등을 가진 자 만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3월에 만난 박스를 줍던 할머니 집에도 김치를 들고 찾아뵈었다. 그냥 걸어 다니기로 하고 나간 첫날에 만난 분이다. 늘 만나 뵙는 가운데 무직인 아들과 20대 후반인 두 손자들과도 가까워 졌다. 만나는 횟수가 쌓이면서 처 음에는 냉소적이었던 60중반의 아드님도 어느 때부터인가 반가와 한다. 남편 과도 여러 번 찾아갔고 부활절에는 집사님들과 그 이후 청년 자매들과도 갔 었다. 어릴 때 몇 번 교회에 갔었는데 언젠가 아들 데리고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과거에 술집을 경영하다가 망하고 이혼한 후 재혼했지만 그 아내마저 죽었다 고 한다. 모든 삶의 용기와 자존심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두 손자를 어릴 때부터 키우신 강직한 할머님도 이제 작년과는 달라지셨다. 많이 노쇠해지셨고 아들마저 각막질환으로 많이 고생하고 있었다. 좀 더 많 은 양을 드렸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어두운 지하 방에서 주고받으 며 감사로 만나는 마음들에 주의 영광의 빛이 가득했다. 나는 성도들의 수고가 소중한 이웃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이 웃을 생각하며 고되긴 해도 포기김치가 좋을 것 같다고 앞장서신 권사님, 그 리고 같은 마음으로 협력하신 집사님들의 땀방울은 또 얼마나 고귀한 것인 지 모른다. 늘 지역 사람을 접하는 목사부부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대로가 더욱 열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좋은소식 교회 1호 권사님! 그리고 집사님들 정말 잘하셨어요! 정말 수고 하셨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박수는 나의 박수만은 아닐 것이 다. 사랑따라 닫힌 문도 열리길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14-30) 하시며 어깨를 두 드려 주시는 주님, 우리의 작은 수고 하나 하나를 알아주시는 분의 이 한마 디! 이보다 더 큰 영광의 무게를 이 세상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471 no image |살며 생각하며| 우리가 본 그대로 주님은 우리에게 시행하십니다_이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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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5 2008-07-29
우리가 본 그대로 주님은 우리에게 시행하십니다. 이천우 목사, 부천개혁교회 믿음 안에서 함께 신앙 생활했던 어느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한지 는 얼쑤 25년 이상은 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와 헤어지게 되었습니 다. 서로 잘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에 종종 연락을 주고 받았지요. 가끔은 만 나 식사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연락을 하고 만날 때마다 얼마나 반가워했 는지요. 그러다 서로 만나지는 못하고 그저 가끔, 아주 가끔 통화를 하는 정도가 되 었습니다. 그 통화도 내가 해야만 비로소 되었지요. 서로 소식이 없으면 그 저 잘 지내는 줄 알았습니다. 옛날 어른도 그렇게 말해서 과연 그러려니 했 구요. 그러다가 근자에 그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었 습니다. “그 친구, 어디에 있는 OO교회 다닌다고 해요. 그런데 예수 믿는 게 아니에 요.” 무슨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신앙 생활도, 사회 생활도 부 지런하게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기에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런데 과연 말을 듣고 보니 예수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참으로 잘 살기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만, 그래서 중년 에 이른 지금은 그래도 중산층이라고 할 정도의 상태에 있습니다만, 그에게 서 개혁주의 신앙이니 개혁교회이니 하며 바른 신앙과 바른 교회 속에 있어 오고자 했던 것이 사라진지가 이미 꽤나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어 느 정도는 잘 사는 것으로 믿음의 형제를 돌아보는 일도 외면했습니다. 그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 종일 마음이 걸리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 한 생각으로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여전히 아픕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 이 듭니다. ‘그와 계속 함께 믿음의 교제를 하면서 붙잡아 주었어야 했는 데......’ 그와 함께 할 수도 없었지만, 그저 미안한 마음에 가져보는 부질 없는 생각인줄 알면서도 가지게 됩니다. 그렇더군요.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신자들을 이 세상의 현실 속 에 두시고서 시험하여 그들의 믿음을 심판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 말입니다. 매주 드라마 를 정기적으로 들려주듯이 주일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 님의 말씀을 듣고도 도무지 깨달음을 갖지 못하는가 하면, “어찌 저렇게 하 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배우는 일에 관심이 없을까?” 하는 말을 불쑥불 쑥 해주고 싶습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으련만 도대체 뭔 힘들고 어려움이 그리 많은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은 제껴 놓고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을 미 워하는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주님은 천국 복음의 비유인 ‘씨 뿌리 는 비유’에서 알려 주십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인내하여 결실에 이르는 착하고 좋은 마음은 주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데서 이미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며 세상은 미워하고, 세상으로부터 사 랑을 받는 자는 세상을 사랑하며 주님은 미워합니다. 그렇듯이 주님의 미움 을 받는 자는 주님을 미워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자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도 결실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세상에 자신들이 주 님께로부터 받은 천국 복음의 말씀을 다 내어주어 서 빼앗기는 것은 세상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미워하여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을 사랑 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기를 위하여서는 천국 복음도 외면하고 배척하여 버리 는 것입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천국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뿌린 씨가 생명 의 풍성한 결실의 열매를 맺는 것은 좋은 땅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여기에 뿌려진 씨만이 결실하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 켜 나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천국 백성으로 나타나는 마음을 주신 그 사람에게서만 천국 복음의 씨는 자라서 마침내 결실을 맺습 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로서의 신자에게서 그가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 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임을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십니 다. 우리는 주님이 행하여 나가시는 이 두 가지 일을 여실히 보고 그들을 통해 서 우리 믿음에 변호를 받는 증거로 삼습니다. 천국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 을 듣고도 빼앗기는 자를 가리켜 “그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가 행한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지 않습니까?” 하며, 천국 복음인 하나 님의 말씀을 듣고 인내하여 지키는 자를 “그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 합니다. 그가 행한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지 않습니까?” 하는 것으로 “네가 본 그대로, 내가 너에게 시행하리라!”고 말입니다.
470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작은 것들이 주는 큰 기쁨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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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3 2008-07-29
채석포에서 온 편지 작은 것들이 주는 큰 기쁨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감사할 일이 많아질수록 위대한 삶을 사는 것” 잿빛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만 같고, 창 너머 보이는 바다 의 놀이 높은 것을 보니 바람이 이는 것을 알 수 있어 변덕스런 여름 장마철 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전형적 바닷가 여름 날씨 시작돼 방학의 시작과 더불어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일상에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것이 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2년 전 교회에 수돗물이 들어 올 때도 그랬고 올해는 에어컨 2대를 설치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촌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소나무 숲으로 둘 러싸인 교회인지라 우리 성도들은 선풍기 바람으로도 행복해 하지만 여름에 오는 수련회 팀들 중에 에어컨이 없다는 이유로 예약 취소하는 것을 몇 번 겪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환 경을 이해하면서도 못내 서운함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었는데 이제 우리 교회도 에어컨이 있다고 자랑하게 되었습니 다. 우리들의 일상의 평범한 것을 귀하게 여기며 크고 작은 변화와 소란들마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회지에서 느끼는 문화의 혜 택들은 누릴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환경과 우리의 일상들이 사람 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7월이 시작되는 날에 총회농목회 모임이 원시의 숨결이 가득한 자연 생태계 의 보고가 있는 우포늪 근방의 창녕 성지골 주민교회에서 모였습니다. 바다 가 있는 이곳과는 달리 전형적인 농촌이었습니다. 아름답게 교회를 짓고 입 당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각 곳에서 모인 목사님들과 교제를 나누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형제애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민들레 공동체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들을 보 며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도전이란 원래 새로운 것에 대한 떨림과 동시 에 짜릿함도 있고 외롭지만 뿌듯함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 동역하는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의 대화와 모습 속에서 동병 상린을 느끼고 나 만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님을 알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 생활에 온전한 만족이 없듯이 나 역시 가끔씩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 한 침묵과 고독 속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아픔들이 나를 짓누를 때가 있 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어려움 속에서 나의 믿음을 성장케 하시는 하나님 의 사랑을 체험도 하지만 가끔씩 편안하고 한가함이 나를 병들게 할 때도 있 습니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많지 않은 성도들과 하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 낙오된 유목민처럼 아주 외로운 사람이 되어 있음을 문득 느낄 때 고독 을 느낍니다. 사람이 당나귀의 고삐를 쥐었다고 해서 당나귀의 마음까지 좌 지우지 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지식인들의 오만과 지적 허영심 으로 상처받기도 했지만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성도 들과의 이질적인 문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에서도 교도원들에게 자존감을 회복해서 스스로를 존중하게 하여 자신 과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 속에 강연 과 연주회 등으로 정신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n“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 속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이 도서관에 서 우연히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음반을 발견하고 방문을 잠근 채 “편지의 이중창”을 틀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 선율이 흘러 퍼질 때 죄수들은 그 선율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순간 같은 마음이 되어 자유를 느끼고 있음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나 또 한 여러 모습 속에서 성도들과 하나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노회 여전도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2부에 성가 경연 대회가 있었습니다. 금어기가 되어 일손을 잠시 멈춘 교회 여성 성가대를 소 집하여 연습을 했습니다. 여러 교회 여전도 회원들의 찬양은 너무나 은혜롭 고 기쁨들이 충만 했습니다. 서로 즐거워하며 격려의 박수도 쳤습니다. 순서에 따라 우리 교회의 여전도회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준비한 “어지신 목자” 찬양과 목사님의 서투른 색소폰 연주도 곁들였습니다. 해풍에 그을 린 성가대의 세련된 목소리에 모두들 높은 점수를 주어 1등을 먹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채석포 바다 이외의 외출을 꺼리고 오직 삶의 터전에서 생 활하는 그들이 여 전도회 모임을 통해 기뻐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문화적인 공감대를 느 낄 수 없었으나 찬양을 통해 하나 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문화 사각지대에서 자신들의 삶을 통해 배운 자들에 대한 적대감과 타인들과 의 접촉을 꺼리던 성도들에게 본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음을 알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으면 행운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어디에서든 쓰임받는 기회 얻을 수 있어 우리의 일상은 감사할수록 삶이 위대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가대와 함께 즐겁게 찬양을 부르기 위해 새로운 도전으로 기타를 배우면서 작은 꿈 을 향해 달려갑니다.
469 no image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박집사님의 콩나물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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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1 2008-07-23
박집사님의 콩나물 추둘란 집사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정성스런 섬김을 받을 때 감동 받기 마련”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입니다. 교회버스에서 내린 성도들이 삼삼오오 예배당 으로 들어옵니다. 반갑게 목례와 눈인사를 나누는데 박길이 집사님은 부시럭 부시럭 들고 온 비닐꾸러미를 엽니다. 그리곤 기도하고 있는 몇몇 성도들 옆 에 한 봉지씩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성도들마다 콩나물 봉지 나눠준 집사님 내게도 한 봉지를 주어서 설핏 열어보니 집에서 기른 콩나물입니다. 소밥 주 고, 밭일하고, 아흔 넘으신 시어머니 끼니 챙겨드리느라 바쁠 터인데도 언 제 물 줄 틈이 있었는지 콩나물은 연하고 뽀얘서 예쁘기만 합니다. 무엇보 다 한두 해 전만 해도 거리를 두고 지냈던 같은 마을의 성도님 옆에도 한 봉 지를 내려놓는 것을 보고 코끝이 찡해 옵니다. 직접 농사지은 검정콩 가운데 모양 좋은 것만 골라서 오며가며 정성스레 물 을 주었을 것입니다. 먹는 사람이야 하루 저녁 에 요리해 먹으면 그만이지만 물주고 기른 사람은 며칠을 신경써가며 잔뿌리 많이 안 나도록, 너무 웃자라 지 않도록,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길렀을 것입니다. 몇 천원이면 손쉽게 살 수 있는 콩나물이건만 농사짓는 이에게는 그 몇 천원 이 아쉬운 돈입니다.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용돈이 다달이 생기는 것도 아니 요, 수입이라고 해봐야 농사짓고 소 대여섯 마리 키우는 것이 전부인 박 집 사님입니다. 나눌 것 없는 빤한 살림이라고 핑계 대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 는 형편이건만, 집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콩을 재료로 하여 시장에서는 살 수 도 없는, 돈으로는 계산할 수도 없는 정성어린 콩나물을 길러서 나누고 섬기 는 것입니다. 박 집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김치 집사님으로도 불립니다. 농사지은 열무, 배 추, 무를 부지런히 뽑아다가 김치를 담가서는 목사님 가정에, 우리 가정에, 주일낮 점심상에, 이웃 성도님들에게 퍼주고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것입니 다. 김장철이 되면 서울 사는 친척네에 보낼 김장을 담그느라 집사님네 마당 은 배추 포기가 산을 이루고 김치통, 김치 항아리, 김치박스가 줄을 섭니 다.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 나 모든 것을 가진’ 분이 박 집사님입니다. 야무지고 똑부러지는 박 집사님을 존경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집사님의 헌금 생활은 올곧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드릴 수 없 는, 제가 보기에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하고 값진 헌금입니다. 농사나 축산에서 나오는 이득이라는 것이 샐러리맨의 월급처럼 꼬박꼬박 정 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확하고 판매하여 들어오는 돈도 딱 히 순수익이라고 할 수 없는 애매한 구석이 있으니 종자값·기계 빌리는 값 ·사료값· 농자재값 등 모든 비용이 수확 전에 선지불되는 것이어서, 실제 로 수확 후의 수입에서 그 돈을 빼고 나면 이득이라고 하기가 무색하리 만 치 남는 돈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 집사님의 헌금 계산은 특이하고도 기발합니다. 매번 소 사료 를 살 때마다 그 사료값의 십의 일을 떼는 것입니다. 좀 의아한 계산법이긴 한데,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사료값이라는 게 결국 소를 판매한 이익금에 서 지불된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소를 팔아 큰돈을 만질 즈음에는 뭉텅이 돈이 들어갈 곳부터 마음이 쓰 이게 되고 그것부터 떼어놓게 되니,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헌금은 어느새 남 의 일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헌금을 판매 총액에서 계산할지, 순이익으 로 계산할지도 난감한 일이 됩니다. 더군다나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상 황에서는 헌금을 놓고 왈가왈부하여 오히려 남편의 전도에 걸림돌이 될 우려 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 집사님의 헌금 방법은 여러모로 보아 지혜로 운 방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박 집사님의 그런 중심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대개 소를 키우면 소가 병들거나 소끼리 서로 뿔을 받거나 하여 느닷없이 죽는 일이 드물지 않 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물을 줄 때마다 소 앞에서 기도하는 집사님네는, 서울서 내려와 소를 키우기 시작한 때부터 20여년 동안 그런 시련을 겪은 적 이 두어 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판매할 때 등급도 항상 최우수등급으 로 받습니다. 두어 번 있었던 그 시련마저 없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 려 그 시련을 통하여 박 집사님의 믿음이 단단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 다. 헌금 생활에 대해 남편이 “또 갖다 바쳐라, 다 갖다 바쳐라”고 농담 반 진 담 반으로 말할 때마다 “이 헌금 때문에 우리 두 사람 자식 없이 남의 집 에 살아도 두 다리 뻗고 살고, 끼니 걱정 없고, 내 지갑에 돈 마르지 않고, 우리 누렁이들도 병 걸리지 않고 사는 것이여”라고 담대하게 대답하였답니 다. 그 중심을 하나님이 어여삐 보시고 작년 성탄절, 마침내 남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주일낮 예배 때 남편을 위하여 성경 본문을 찾아주는 박 집사님의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9년 전, 세상에 이런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았던 저는, 훌륭한 사람들은 서울의 높은 빌딩 속에만 있는 줄 알았고 ‘시골 어 수룩한 곳에 무슨 존경할 만한 인물이 있을까’ 교만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인도해주셔서 이 작은 마을과 시골교회에서 삶이 간증 이며, 삶이 설교인 성도들을 만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행복 한지 모릅니다. 시골교회라도 존경할 분들 너무 많아 섬기라고 목자 가정 삼아 주셨건만 박 집사님 같은 성도들로부터 더 큰 섬김 을 받기만 하니 눈물 그렁한 눈으로 콩나물 봉지를 쳐다보며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468 no image |살며생각하며| “나는 왜 기독교인인가?”_손성은 목사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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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9 2008-07-16
“나는 왜 기독교인인가?” 손성은 목사 쪾부산삼일교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두려움 아닌 능력과 사랑” 다윈의 가족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거리, 런던대학이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러셀 스퀘어(Russel Square)라는 조그만 공원이 있습니다. 큰 호텔들 도 몇 개 있어서 투숙객이나 여행객들, 런던 시민, 특별히 런던대학의 학생 들이 쉬면서 담소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런던에서 유명한 철학자 러셀의 거리 러셀 스퀘어, 바로 노벨 평화상을 두 개나 받은 것으로 유명한 버틀란드 러 셀(Bertland Russell)을 기념한 곳입니다. 런던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아주 가깝게 있는 홀본(Holborn)이란 곳의 베리 플레이 스(Bury Place) 34번지는 그가 1911년부터 1916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현대철학의 한 분수령을 형성한 사람, 수학자이면서 또 한 반전평화주의자 등등 여러 가지로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저에게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am I not a Christian?)란 책의 저자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런던거리를 거닐 다가 그의 흔적이 있는 곳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Why am I a Christian?)라고 자문해보곤 하였습니다. 러셀이 제시하는 이유들 중의 마지막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공포(fear) 라는 감정이 종교의 기초이다. 그런데 또한 잔인함(Cruelty)의 기초도 바로 공포이다. 종교가 잔인한 것은 바로 공포라는 공통의 기초를 갖고 있기 때문 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특별히 기독교가 인류의 진보에 방해가 되어왔 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극명해집니다. 프로이드나 마르크스, 혹은 다윈과 비슷비슷한 억 지 이유들을 갖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이런 러 셀의 논리는 킹제임스역에서 “The fear of Go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 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라고 한 말의 ‘fear’를 우리 말 성 경처 럼 ‘경외’라고 번역하지 않고 ‘두려움’ 혹은 ‘공포’라는 말로 이해하 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러셀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류의 ‘fear’(공포)가 아닙니 다. 하여튼 러셀은 종교를,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이런 공포라는 감정에 굴 복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딴에는 의연히 공포에 맞서서 살아야겠다고 생 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이 ‘공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 선 자로서의 두려움이 그의 자서전에 배어 있기 때 문입니다. 마치 무신론자 니체가 자신이 그렇게도 비판하고 있는 기독교가 진실로 진리라면 자신은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였던 것과도 같습니다. 허무의 공포, 죄의 심판에 대한 공포, 이런 공포들 때문에 크리스천이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셔서 연약한 인 생들이 여러 가지 공포들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 이 크리스천이 된 모든 이유라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적인 신앙일 것입니 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마음”이라고 하였 습니다. 러셀이 공포를 종교의 기초로 본 것은 바로 이 ‘두려워하는 마음’ 을 모든 종교의 기초라고 본 셈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율법주의적 신앙 형태를 고소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크리스천이 된 것은 바로 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서인가?” 이것에 대해서 그렇다고 말하 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러셀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 대한 철학자라도 눈이 가려져서 보지 못하였던 것을 보게 된 우리들은 그가 헤아렸던 수학 공식은 알지 못할지라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라도 하나님 사랑 볼 수 없어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내가 크리스천인 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랑 때문입니다.
467 no image |살며생각하며| 과정을 즐기는 인생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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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2 2008-06-25
과정을 즐기는 인생 박종훈 목사_궁산교회 “결과 위주의 인생은 괴로운 인생 살아갈 뿐” 몇 주 전에 텃밭에서 기르던 기러기가 자연 부화를 했다. 사람의 손길을 거 부하며 열심히 알을 낳더니 19개를 품기 시작했다. 어미의 처절한 인고(忍 苦)의 시간이 다 되자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껍질 깨고 나오는 생명 아름다워 하룻밤만에 17마리가 알에서 벗어나자 웬일인지 나머지 두 개의 알을 둥지 밖으로 내놓았다. 이미 앙증스러운 부리가 껍질을 뚫고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낌새를 보니 어미 기러기는 현재 먼저 나온 새끼들로 만족하는 것 같다. 저대로 놔두면 그냥 죽을 것 같아 두 알을 방으로 데려와서 부화시키기로 했 다. 어미 품처럼 따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감싸주고 지켜보았다. 가냘픈 소 리를 지르며 그동안 자신을 감싸준 알의 껍데기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 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동안 부화된 병아리만 보았고 부화 과정은 책에 나오는 사진으로만 알았다 r 가 막상 피나는 현실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껍질을 벗겨 주 고 싶지만 그러면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상식을 알기에 그저 지켜보고 만 있었다. 하루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살펴보니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 다 결국 하나는 부리만 내놓은 채 죽음을 맞이했다. 나머지 하나라도 살리려 고 더 따뜻하게 해 주었더니 마침내 부화에 성공했다. 겨우 알에서 벗어나 는 것도 사투(死鬪)를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텃새인 굴뚝새가 늘 집 주위에 살고 있다. 그들의 집은 아주 가까운 곳의 살 짝 가려진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발견한다. 은목서를 가지치기하려다 그 새 집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얼기설기 대강 만든 것 같은 데 새 집안의 모습은 얼마나 정교하고 아늑한지……. 그 작은 부리로 어떻게 이 집을 지었을까? 아마 수백 번은 재료를 물어 날랐 으리라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지은 집을 단 한 번의 부화를 위해서 만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새 집을 발견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우리 인간 같으면 어렵게 잘 지은 만큼 계속 사용하겠지만 그들은 해마다 다 른 장소 에서 새로운 집을 지었던 것이다. 제비들도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한 다. 새들은 새 집을 새로 짖는 과정을 즐기며 새 힘과 새로움을 누리는 것 같다. 필자가 십여 년을 넘게 사택과 교회당을 지으며 많은 힘과 고생의 과정을 겪 었지만 결코 후회함이 없다. 돈으로 완벽하게 다 지은 집을 들어가는 즐거움 도 있겠지만, 손수 지은 이 과정으로 인해 배우고 누리고 깨닫는 삶의 의미 는 소중한 보물처럼 여긴다. 비록 허물과 실수도 있고 자로 잰 듯한 반듯한 모습이 아닌 어딘가 미숙함 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손마디가 굵어진 것만큼 정성과 인간적인 숨결이 배어 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땀의 가치와 원칙과 예술과 우주를 배 우며 주님의 세심한 손길을 체험할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살아가는 인생 길에서 이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며 결과에 목 숨 거는 사람과 삶은 과정이고 내세의 결과를 보며 사는 사람의 인생은 하늘 과 땅 만큼 차이가 날 것이다. 성경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과 위주의 인생은 늘 불만과 다 채우 지 못하는 욕심으로 괴로운 인생 길지만, 과정의 인생은 모든 일에서 감사 가 나오는 인생이 되리라 확신한다. 욥기에서 위로(慰勞)하려왔던 세 친구들은 욥의 현재 나타난 결과만 보고서 정죄(定罪)자들로 논쟁을 다루는 모습이 나온다. 하나님은 욥기 38장에서 모 든 피조물들의 과정을 설명하며 결과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무지 함을 책망하며 측량치 못할 창조주의 위대함을 드러내신다. 좋은 원인(遠因)이 좋은 결과(結果)가 오듯이 좋은 과정은 또 좋은 결과가 올 것이므로 과정을 즐기며 산다면 그 인생은 행복이라 여긴다. 내일 일은 결과라면 오늘 일은 과정이다. 내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 일의 과정을 즐거 움으로 지내면 하루 하루가 창조주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이라 믿는다. 매일의 과정 통해 감사하는 삶 살아 정원의 꽃과 나무가 자라며 때마다 꽃피고 열매 맺는 식물들이 사랑스럽다.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고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교회를 중심으 로 조금씩 아름답게 달라지는 마을의 풍경이 보람을 느낀다.
466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어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이야기_김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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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4 2008-06-25
어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이야기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신앙생활 덕분에 무당 기업 대물려 주지 않게 돼”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고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는 금어기가 다가오기 전에 고기 잡는 일과 그물 손질로 손놀림이 빨라지고 밭에서도 육 쪽 마늘을 수확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신내림 대신 교회 선택한 집사님 그렇지만 그늘진 벚나무 아래 긴 탁자와 의자로 식탁을 준비하고 드럼통으로 만든 화 덕 위의 대리석 돌 판에서는 삼겹살 구워지는 냄새가 성도들을 모아들게 했습니다. 안 수 집사님 부부가 고기를 사오시고 다른 분은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 그리고 들깻잎을 따왔습니다. 서로가 바빠서 예배 시간에 눈인사를 나눈 것만으로는 그리움이 부족했나 봅니다. 눈으 로 펼쳐진 그림들도 우리들을 즐겁게 했으며 입도 즐겁고 마음까지 풍성한 저녁 시간이 었습니다. 꼭 이런 자리에서 말없이 봉사하면서 챙겨 주는 집사님이 있습니다. 가냘픈 몸매와 겁 먹은 듯한 큰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아름다운 사람입니 다. 9년 전 채석포교회에 부임하고 전도한 첫 열매입니다. 나이든 집사님의 처남 댁이라는 것만 알고 심방했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여러 곳 에 부적이 붙어져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부적을 제거하자고 하니 까 자기들이 제거하겠다고 하며 주일날 교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90 세가 넘은 할아버지만 빼고 부부와 네 자녀가 출석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아이들의 외할머니께서 무당이고 큰딸인 아이들 엄마가 신 내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많은 갈등 속에서 어머니의 뒤 를 잇지 않기로 하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가서, 나는 어머 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말하고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 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해도 그 집만큼은 전도에서 제외 될 것이라고 생각했 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들 놀라고 있었습니다. 몇 달 출석을 잘하다가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궁금 하여 심방을 했으나 핼쑥하고 창백한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으며 마음이 너무나 견고하게 결빙되어 있었습니다. 어렵 게 입을 열면서, 본인 스스로 신앙의 성장도 없고 남편과의 잦은 다툼과 변화되지 않 는 생활 속에서 절망을 느끼며 이대로 그냥 주저 않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사인 남편은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무당 인 것을 유산으로 남겨 주고 당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으냐”고 말했습니다. 아이 들 모두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안쓰럽게 울고 있는 모 습을 남겨 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석이 아름다운 것은 그냥 빛나기 때문이 아니고 깨어지고 부서지는 아픔을 견디고 자 신의 몸을 갈아내는 수많은 인고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성령 님의 도우심으로 다음 주일부터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진 후 아름다운 무 지개가 생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찬양을 부를 때도 울고, 대표 기도할 때도 울고, 울보 집사님입니다. 성가대를 지도하면서 찬양뿐만 아니라 나의 삶과 읽었던 책 중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r 사랑과 은혜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울보 집사님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많이 아팠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한 아버지가 어머니 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다니다가 신병을 앓고 있음을 알고 궂을 하고 그 날부터 무당 의 길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무당이 되는 그 날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데 부엌에 앉아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면서 아픈 기억들을 상기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 니의 일을 돕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두 분 모시고, 2대 독자인 남편은 어른들의 과보호 속에서 유약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시집만 오면 헤어날 줄 알았던 삶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버 거운 가장의 몫까지 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경운기 사고로 허리를 수술해서 힘든 일을 할 수 없고 본인도 디스크 수술과 약 한 몸으로 농사일을 할 수 없던 중에 남편에게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을 얻게 되었 습니다. 늦게나마 인생은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을 알고 일을 찾던 중에 요양 보호사 교 육을 받았습니다. 항상 봉사하기를 소망한 집사님은 교육을 다 마치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곳의 일자리를 기다리면서 인내를 배우며 자기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들이 너무 무거울 때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직장과 공부하다가 귀향한 자녀들 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우리들 의 첫 열매는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자식이고 동생이며 누이입니다. 외할머니도 일을 그만 두시고 수전증을 심하게 앓고 있어 요양 보호사인 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모처럼 나이 드신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이 집에 계 셨습니다. 야위고 구부러진 아버지의 몸을 주물러 드리면서 기억 속에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과자 나 선물을 받아 본적이 없어 섭섭했던 마음이 들어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아 버지, 나, 가방 하나 사 줘”라고 했답니다. 어릴 때부터 무당 일을 하시는 어머니만 을 보호하기 위해 큰딸인 자신에게는 너무나 인색했던 아버지에게 깊은 상처의 응어리 가 있었답니다. 아버지는 “그래, 사 줄께” 하면서 시장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시장 것말고 비싼 것 으로.....” 했는데 나이 쉰이 넘은 딸의 투정 같은 응석에 단 한번의 거절도 없이 기쁘게 딸의 청을 들어 주었다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아버지에 게 선물을 받고 싶은 소망을 이루었으며 쉰 살이 넘어서야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치 료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쉰 살 넘어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아 때로 열등감은 인생을 역전시키는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이 되는 것처럼 부모님들의 영 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 찬양 때 “나 같은 죄인 실리신.....”을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가족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전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465 no image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죄인의 습성을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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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2 2008-06-18
죄인의 습성을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 추둘란 집사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변명은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 언제부터인가 다육식물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 다. 하나씩 구입해 앙증맞은 화분에 심어놓고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 런데 다육식물은 새끼를 잘 치므로 사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공짜로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짜로 얻으려는 그 작은 마음의 틈이 크나 큰 죄로 연결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욕심이 큰 욕심으로 변해 어느 집에서건 다육식물 한 뿌리를 떼어 달라고 하면 선뜻 떼어주었습니다. 문제는 주인이 없을 때였습니다. 말만하면 두말없이 떼어줄 정도로 친한 집 인 경우, 우선 한 뿌리 표시 안 나게 떼어간 다음 나중에 말해도 괜찮겠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떼어갔노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서너 번 하다 보니 말하는 게 번거로워 아예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육식물만 탐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모종에서 제법 키가 큰 모종까지 몰래몰래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책감을 갖 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영의 눈이 멀어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 급기 야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그날, 꽃모종 하나를 뿌리째 뽑아가는 것을 그이가 보았는지 아닌지는 지금 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이가 어느 날부턴가 내 인사를 받지 않는 듯 하자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시작하고 그 장면을 목격한 게 틀림없다고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십 계명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죄가 들어오면 관계가 깨어진다’고 성경공부 시간에 배웠는데 그 말씀대 로였습니다. 그이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데도 마음이 불편해졌고 일 부러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나빠졌습니 다. 제자리에 도로 심어놓아야 한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계속하여 주셨지만, 핑계가 먼저 앞섰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도로 심어놓습니까? 그이가 또 보면 어쩌라구요? 이번까 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해주세요.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습니다. 저는 돈 이나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닙니다. 식물 한 뿌리 뽑아왔다고 무슨 표시가 나 겠습니까? 번식 잘 하는 것들이니 빈자리는 금방 메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하여 제자리에 돌려놓길 원하셨고 며칠 후 저는 마지 못하는 마음으로 꽃모종을 제 자리에 도로 심었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 지만 완전한 해방감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훔친 행위보다 더 크 고 중요한 죄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속 묵상하는 가 운데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고 수백 번도 더 말해왔건만 정 작 훔치는 그 순간,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 며 사람의 눈은 두려워하여 어쩔 줄 모르면서 하나님의 눈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돈이나 물건이 있었다면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 고 발뺌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훔친 대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나님의 계명을 잊어버릴 정도로 탐심에 쏠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다른 일로 하나님 은 당신과의 관계를 한 번 더 점검해 주셨습니다. 나는 요즘 초보운전이라 읍내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는 일이 무척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야만 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읍내를 나갔고 무사히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데 볼일을 다 마치고 주차장을 나오려하다가 간발의 차이로 옆 차의 범퍼를 긁고 말았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의 긁힘이었습 니다. 그 순간, 한 번 더 하나님과 내 자신을 속이고 말았습니다. “차 주인이 없잖아. 저 정도 긁힘은 아무 것도 아니야. 주인이 있다고 해 도 눈감아 주겠네.” 연락처라도 적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괜찮아, 괜찮아. 다 음에 주의하자. 물어달라고 해도 물어줄 돈도 없어. 남들도 다 그럴 거야’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나님은 나의 양심을 향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 습니다. ‘정직하게 연락처를 남기는 것이 그리도 두려웠느냐? 혹여 상대방 이 배상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만한 돈 채워주지 않을 정도로 인 색한 분이겠느냐? 그 상황에서 도망 을 가는 너와 정직하게 배상해 주려는 너, 어느 쪽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겠느냐?’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하더니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 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게 하셨습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여러 번 경험하고도,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내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여 하나 님을 인색하기 그지없는 분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사실 깨달아 아울러 빠듯한 살림을 핑계 대는 내 모습이 하나님 앞에 발가벗겨진 듯이 느 껴졌습니다. 공짜를 바라는 그 마음이 ‘나는 늘 가난해요’라는 불평이요, 배상을 두려워하여 도망가는 내 모습이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주시지 않아 요’라는 불만을 토해 놓은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큰 허물이건만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 가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빨리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큰 죄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무엇보다 크나큰 죄를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나는 여전히 죄가 죄인 줄도 모르 고 살았을 터인데…. 회개는 잘못에서 돌이켜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행하지 않는 것이라 배웠 습니다. 배운 대로 다시는 같은 죄 짓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이 렇게 죄인의 옛 습성을 하나하나 제거해 주시며 거룩한 하나님을 닮아가도 록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464 no image |살며생각하며|‘오직 성경’과 ‘전체성경’_박창욱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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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9 2008-06-11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성경’(tota scriptura) 박창욱 집사·양의문교회 “철저한 개혁만이 교회를 회복할 수 있어” 얼마 전 가까운 분이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 : 북경에 있는 유명한 골 동품 상가)에서 산 꽤 오래된 도자기를 깨트려버려 금전적인 아쉬움을 토로 한 적이 있었다. 조선 근대 문화 공급처 ‘유리창’ 몇 달 전까지 꽤 친숙한 지명이었음에도 쉽게 잊어버렸던 이 지명을 뜻하지 않은 계기로 다시금 되새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리창하면 아쉬움과 ‘개혁’에 대한 미련이 새롭게 일어나는데 이것은 나도 모르는 일이다. 18세기 조선의 지식계에 형성된 새로운 기운도, 우리가 실학이라 부르는 사 유의 기원들도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몇 푼 금 전적 이해 관계가 별 의미 있겠는가마는 유리창은 단순한 골동품 가게가 아 니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고려의 금속활자는 2세기나 앞서 존재했으나 오 n늘날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것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최초일 뿐이다. 최초의 발명자가 어떤 의도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중요한 것은 고려시대의 인쇄, 출판 전체에 금속활자가 활용된 풍부한 사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미완의 혁명가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년)이 서적포를 설치하여 다량 의 책을 출간해 문예부흥을 꽤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생각은 세상으로 나 올 수 없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정도전의 정적인 태종을 거쳐 세종에 이르기까지 계미 자, 갑인자 등 다수의 금속활자가 개량되어 다량의 서적이 출간되게 만들었 지만 금속활자는 여전히 사대부의 전유물이었으며 기껏해야 성리학적 윤리서 (삼강행실도)와 사대부를 위한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보급하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이처럼 금속활자는 시대의 소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호학(好學)한 군주 정조(1752-1800년)에 대한 관심이 우리 시대에 풍미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MBC드라마 ‘이산’ 때문은 아닌지, 혹자는 정조 를 일컬어 조선의 개혁 군주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군주로 정조를 근 대와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 역시 주자대전(朱子大全)의 그 마르지 않는 거대한 호수에 갇힌 조선의 유림으로 ‘문체반정’을 주도 한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을 뿐이다. 정조는 율곡과 퇴계가 걸었던 그 길에 서 있었다. 주자(1130-1120년)의 주해(四書五經)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 선발의 척도 로 규정된 조선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조선의 사림(士林) 은 최고의 도덕적 인간을 양성했고, 그 자신들부터 소학(小學)에 의해 의식 화된 도덕적 존재가 되어야 했고, 피지배층과 별도의 존재로서 사회적 습관 과 윤리적 모범을 창출했다. 조선의 지배 계급을 위한 장치였던 성리학을 곱씹어 보노라면 ‘근대’적 모 티브에 충실한 르네상스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 만 조선에 르네상스와 개혁의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실학 사상가들이 아니었 는지 조심스럽게 평가해 볼 수 있다. 베이징의 유리창은 조선의 굳어버린 상부 구조, 곧 ‘주자의 세계’를 타파 할 유일한 대안이자 근원지였다. 유리창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갈구하는 많 은 지식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금속활자라는 뛰어난 지식의 매개를 가졌음에도 베이징의 유리창을 통해 서 적을 공급받아야 했던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의 비애는 그들이 집필한 서 적 속에 곧잘 묻어난다. 주자의 세계에 갇혀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 던 건조한 서적들... 사실 정조의 개혁은 그들만의 개혁이었다. 조선의 수많 은 백성, 그들의 일상과 동떨어진 ‘개혁’이었다. 오늘날 교회 개혁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신뢰하 지 않고 또 그들의 개혁에 기대하지도 않는 것은 다름 아니 동일한 이유 때 문일 수 있다. 그것은 거짓 개혁이기에 그러하다. 개혁파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그리고 이것과 짝 을 이루는 ‘전체 성경으로’(tota scriptura)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데, 이것을 통해서만 ‘교회개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짝퉁 ‘개혁’에 혹시나 하는 미련은 버려야 한 다. ‘철저한 개혁’만이 진리의 기둥과 터로 교회를 회복할 수 있다. ‘오 직 성경, 전체 성경’을 통해서 말이다. 명분 개혁 아닌 실질 개혁 이뤄야 누구를 위한 개 혁이고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이제는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되 었다. 말씀과 신앙고백으로의 복귀는 개혁 그리스도인의 당면한 의무요 책임 이다. 분리는 말씀과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으로의 복귀를 전제해야 한 다.
463 no image |노트북을 열며| 광야의 경제학이 필요하다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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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6 2008-06-11
광야의 경제학이 필요하다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권력이나 조직으로 평등사회 만들 수 없어” 요즘 몇 날을 돌아보니 시절이 하수상하기만 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으로 인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원망과 불신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 는 것을 본다. 인식의 차이로 불신의 골만 패여 이른바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부자의 편만 든다는 인식이 있는 데다 대통 령의 일방주의적 국가 운영 방식이 국민들의 불만을 키워왔다. 애당초 도덕 적 흠결이 있는 중에 국민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다보 니 무슨 사과를 하고, 무슨 말을 해도 그 것을 국민들이 믿으려고 하지 않는 다. 거기에 유류가 인상 등으로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다보니 경제만큼은 살리 겠다는 대통령의 경제 정책마저 의구심을 갖는다. 물론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국민의 분노가 매 우 큰 것만 같다. 여기서 대통령은 차라리 후보시절부터 부강한 선진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 어야 했다. 경제라고 하는 각론으로 국가 경영이라고 하는 총론을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공약으로 이명박식 성공 신화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정신적 욕구가 먼저 충족되어야 육체적 욕구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원리와 방법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 원리가 불투명하 고 한 개인의 삶도 경제 원리가 잘못되면 그 나라도, 그 인생도 어둡고 답답 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경제 원리를 광야 의 경제학에서 만나를 통해 다시 배워야 한다. 만나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광야의 양식이었다. 하나님께 서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만나는 하나님 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시는 지 상 최대의 학습법이셨다. 그것은 평등의 경제 원리였다. 누구나 새벽에 들판에 나가면 한 오멜씩 거두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걷은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공산주의 복지 주의도 실패했다. 사회복지를 실행했던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경제 파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촌은 지금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고 북한은 그 중에서도 세계 최 악이다. 누가 이 진정한 하나님의 평등의 경제 원리를 실현할 수 있을까? 지난 정권이 평등 사회를 만들겠다고 부동산 투기 잡기, 강남 잡기, 서울대 잡기, 교육도 평등주의 주장했지만 이런 것들이 정말 평등이 가능한 일인지 깨달았어야 했다. 평등 사회는 어떤 국가 권력이나 조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그것은 하나 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할 때에만 진정 한 의미에서 평등의 경제 원리는 가능하다. 초대교회가 그것을 증명했다. 대통령은 통치자이기 이전에 장로이기도 하다. 실용적인 경제 원리와 실용 학문의 원리로 모든 국가 경영을 대입하지 말고 기초 학문의 배경이 되는 인 문학적 문학, 예술, 철학, 역사의 원리 위에 실용 학문과 실용 경제를 조화 시키며 국가의 경영을 이끌어가야 한다. ‘다음 세대의 날개’를 쓴 작가 한홍 목사도 역사나 철학, 문학 같은 인문 학을 전공한 최고 경영자들이 세계 경영에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하 면서 창 의적 사고가 중요한 것이지 대학 전공은 경영 자질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우 리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원망으로 살 것인가를 결단해 야 한다. 세상 나라는 탐욕이 지배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나눔의 삶이 지배한다. 어 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주변의 환경을 원망한다면 그는 지금 자기 가 어느 나라에 속하고 무엇으로 살고 있는 사람인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만일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원망하고 염려만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디에 살고 있나, 자신의 경제 원리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 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경 제원리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인 광야의 경제학으로 살아가 야 하는 사람들이다. 탐욕 아닌 나눔으로 평등 이뤄야 우리는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본질을 먼저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의 나눔의 법칙으로 환경에 지배되고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환경을 이끌고 나아가는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462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 아이야, 나는 너를...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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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8 2008-06-04
아이야, 나는 너를...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마음의 문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젠 활짝 열려” 요즈음 우리 부부는 한 아이 때문에 기쁨이 크다. 1년 전 교회 아래층에 있 는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아이이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위층에 있는 교회로 데리고 왔다. 그 아이는 6학년이었다. 보통 키에 몸무게 70Kg을 웃도는 아이이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집에도 가보았다. 너무 열악한 환 경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동네 아줌마가 그 집안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부부가 헤어져 살고 있으며, 엄마는 식당에 나가 일을 한단다. 겨 울에는 내복만 입고 나와 돌아다니기도 했단다. 돕고 싶은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요즈음 우리가 그 아이로 인 해 큰 기쁨을 얻고 있다.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에 눈을 뜨고 있다. 처음에는 기쁘게 다니더니 한 발자국 가까이 가려고 하면 마음을 닫았다. 집 에 가서 부르면 꼼짝 안 하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기도 중에 학교에 나가 그 아이를 만났다. 간식을 먹으면서 공휴일에 야외로 나가자고 했다. 몇 아 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점심도 먹고 하루를 보냈는데 그 때 많이 가까워졌 다. 어느날 집사님이 책장 정리를 하시다가 우연치 않게 책장 사이사이에 숨겨놓 은 자살스토리 메모들을 발견하셨다. 나는 우리교회 아이 것이 아니라고 했 는데 후에 그 아이가 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충격이 컸다. 그 아이 깊은 곳 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두렵기까지 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토요 전도 때 아이가 따라 나오기 시작했는데 한 날은 얼 마나 거칠고 산만한지 정신이 없었다. 숨겨진 그 아이의 다른 면을 보았다. 나는 전도를 그만두고 그 아이를 껴안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미 주님을 영접 한 아이지만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를 전했다. 그리고 하나님 닮게 그를 만드셨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교회로 데리고 왔다. 간식을 먹으며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었고 성적을 물어보는 나에게 구구단 을 아직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 과목이 밑바닥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 부끄러운 이야기를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말 한마디로 아이에 대해, 특히 초등학교 생활에 대해 한눈에 다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거의 모든 초점이 그 아이에게 맞춰졌다. 성경을 같 이 읽을 때나 공작을 할 때나 설교를 할 때나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계획 이 있다는 것을 심어주었다. 교사들과 성도들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쌀과 김치를 보내주기도 했고 헌금도 해주셨다. 아끼던 책들과 교구들도 보 내주셨다. 졸업식에 갔는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엽서를 주었다. 아이의 엽서 를 읽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를 생각하면 너무 답답하구나! 그 러나 점점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네가 너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너 를 대우해 주겠니...” 나는 그 선생님이 왜 그렇게 썼는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글을 읽으면 서 하나님의 심정이 절실히 다가왔다. 활발하고 자신감 있고 멋진 아이들 속 에서 그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날 공교롭게도 타 교회 집사님이 교회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축 졸업’이라고 그 아이 이름과 함께 써 붙이고 갑작스럽게 축하 이벤트를 가지게 되었다. 모두 돌아가면서 축하의 말을 했 다. 주님이 그 아이를 얼마나 축복하시는지를 느꼈다. 집에 돌아가는 아이에게 어린이 성경으로 말씀을 읽어주는데 나도 모르게 목 소리가 떨렸다. “네가 나의 말을 지키면 네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잠 3:5,6). 반드시 성공 할 것이라고 확신을 주었다. 아니 하나님이 나에게 확신을 주셨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아이가 교회에 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상 한 만화책들을 한 아름 빌려와서 읽더니 점점 교회에 구비된 책을 읽었다. 빌려가기까지 했다. 특히 만화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오면 꼭 화초 에 물을 준다. 가끔 유아방 책 정리도 한다. 사모님이 좋아하니까 하는 것이면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것이 아니란다. 또한 청소도 하겠다고 한다. 목사님의 작은 방에 드나들면서 목사님과 대화 도 많이 한다.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하루에 있었던 좋은 일과 어려웠던 일을 돌아가면서 나눌 때는 매우 좋아하고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한 날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서 싱크대에서 같이 일하는데 “너 나중에 크 면 훌륭한 사람이 될텐데 그 때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 면 목사님과 사모님을 찾을 거지?” 아이는 꼭 그러겠다고 한다. 지금 잘하 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가노라면 후에는 거북 이처럼 승리하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의 친구 가 되셨고 그들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행복해 하는 인호의 표정을 보며 말할 수 없는 포만감을 느꼈다. 두 달 전부터 학습지 선생님의 진단을 받고 세 자리 수 덧셈부터 시작하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른다. 늘 혼자 컴퓨터와 TV에 빠져있을 그 아 이를 걱정하며 남편은 자주 전화를 넣어준다.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남편은 영어 알파벳을 가르쳤다. 자기 동생도 지금 붙들어 주지 않으면 자기처럼 된 다고 남편에게 말했단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타교회 성도님이 이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대 학 다니는 딸을 전화로 즉시 오게 했다. 그 때부터 일주일에 두 번 영어를 가르치러 온다. 또한 그 딸이 매주 토요일 교회에서 하는 어린이 전도모임에 서 피아노 반주를 해주고 있다. 그분들이 주일학교예배에 참석해서 예배드 리 며 반주도 해주시고 있다. 그리고 본교회로 가신다. 대형 교회 목사님이신 데 개척교회를 그렇게 섬기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소원을 주시면 개 척교회를 섬기라고 하셨다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았다. 며칠 전 해질 녘에 호숫가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 아이가 걸으면서 엄마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자주 아프시다고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엄마 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런 마음이 있을까 싶었다. 옆에 있는 큰 교회 건물을 보더니 돈을 벌어서 목사님에게 교회를 사드리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호수에 떠있는 배를 스케치하는 아이의 뒤에서 나도 모르게 그 앞에 펼쳐질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를 도와야 된다고 생 각했는데 오히려 이 아이를 통해 눈이 열리게 되었다. “주님.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분이시기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고 개 숙인 이 아이를 이렇게 찾아 머리를 들게 하십니까. 지극히 작은 이 아 이 하나를...”
461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어머니의 정원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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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6 2008-05-28
어머니의 정원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어머니에게 나는 사랑이 인색한 딸이었습니다” 계절의 여왕답게 아카시아 꽃향기와 연두 빛의 초목들이 우리의 오감을 즐겁 고 행복하게 해주는 축복의 5월입니다. 기름유출의 피해로부터 조금씩 회복 되어 가는 바다에서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모내기 준비와 밭에 씨 앗을 심는 성도들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서 바쁜 계절이 왔음을 알 수 있습 니다. 오랜만에 ‘어머니’ 생각하게 돼 비가 온 다음 날, 남편과 나는 교회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남편은 잎이 무성 해진 벚나무의 가지를 쳐주고 교회 주변의 잡초를 뽑고 풀을 베어 깨끗하게 새 모습으로 단장했습니다. 마당 한쪽의 내 작은 텃밭에는 상추씨를 뿌리고 고추와 가지, 오이와 피망 여러 가지 모종을 심었습니다. 텃밭 일이 끝나고 베란다에서 가꾸는 화분 손질을 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했습 니다. 어머니는 90세이며 노회 목사님께서 운영하고 있는 실버 쉼터(홍광교회 : 홍 세기 목사님)에 입주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아이들과 유난히 꽃을 좋아합 니다. 이번 어버이날에 내가 뿌리 내려 기른 문주란과 연분홍 꽃을 피운 제 라늄 화분을 햇볕이 잘 드는 어머니 방의 창가에 두었습니다. 어머니를 텃밭에 먹을거리의 씨를 뿌리며 모종을 하는 것처럼 어린 우리들 을 가꾸고 돌보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아픕니다. 저는 어머 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했던 나쁜 딸이었습니다. 사랑받는 데만 익 숙해서 사랑을 나누어주는데 인색한 딸이었습니다. 30세에 남편을 여의고 오빠들과 유복자인 나를 키우신 어머니... 눈물이 앞 을 가리고 목이 메입니다. 얼마 전 수근근종이라는 병명으로 손가락을 자유 롭게 올릴 수 없어 수술을 했습니다. 항상 바쁘다며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어머니와 단 둘이 있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부잣집으로 시집와서 남편과 아이들이 오래 살게 해 달라고 집에 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첫 새벽에 용수(솟아나는 물)를 떠와 제단 위에 놓고 빌었답니다. 그처럼 빌었던 남편을 6.25 때 잃었고, 아들들도 죽었으 며 남 겨진 것은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들과 뱃속에 있는 아기였습니다. 그 렇게 태어난 유복녀가 나였습니다. 남편 잃고 난 후 하나님을 영접한 어머니는 용수를 떠 날랐던 그 열심과 정 성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글을 배웠고 남편과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남아 있는 자녀들에게 성경말씀으로 본인이 아는 식대로 하나 님을 알게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 대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자연스럽 게 부르게 했으며, 나의 생활은 교회 다니는 것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자존심과 주관적인 생활이 나에게는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습 니다. 그러나 제도 밖의 것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나는 주일 날 야외로 스케치 여행을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주일날은 오직 교회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배시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도 없었고 그때는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사랑을 나에게 주었지만 그 사랑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도망치 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 게 하는 못된 딸이 되었습니다. 애증의 골이 너무 깊어 나를 괴롭힐 때가 많 았습니다. 연세가 들어 눈이 잘 보이지 않으신 어머니는 성경을 더 열심히 읽고 싶어 연세가 많다고 의사 선생님도 만류하신 양 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하셨습니 다. 어머니는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가장 훌륭하다고 자랑하는 분 이십니다. 자식들이 사 주는 옷과 선물에서도 십일조를 떼시며, 나이 들어 잘 걸을 수 없어 전도를 할 수 없으니 본인이 죽으면 신체를 기증하라고 하 셨습니다. 사랑은 표현을 원하고 주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쑥스럽지만 마음속 에 있는 사랑을 어머니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한 번도 불 러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그 사랑과 은혜를 알게 하시 고 사모의 길을 걷게 한 것은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 때문입니다. 만날 때마다 사위가 목사인 것과 딸이 사모인 것을 아시면서도 성경말씀으 로 훈계하실 때는 조금 서운할 때도 있지만 항상 자식들과 손자들을 사랑하 는 어머니의 마음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집안으로 시집와서 많은 것 을 잃었지만 복음의 씨를 뿌려 많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정 원에 기도와 말씀을 심어 아름답게 꽃을 피어나게 했듯이 하늘 정원에서는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하늘 정원 아름답기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해 주신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 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정원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 나 는 꽃이 될 것입니다.
460 no image |살며생각하며|'사울 초파일'에 갖는 단상_황대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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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1 2008-05-15
'사울 초파일'에 갖는 단상 황대연 목사_한가족교회 “아직도 ‘생명’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 전해야”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오래된 한옥에 사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었습니다. 집 안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진공관 전축이 있었습니다. 불교를 믿는 할머니께 효도한다고 ‘사월 초파일’에 아직 장가 안 간 막내 삼촌이 사다 드린 검은색 레코드판의 이름은 ‘회심곡’(回心曲)이었습니다. 회심곡 통해 불교의 ‘허무함’ 느껴 레코드판이 빙글빙글 돌아갈 때마다 염불인지 노래인지 약간은 우울하고, 슬 프고, 어떤 한(恨)이 담겨있어 한숨 소리가 날 것 같은 여성의 목소리가 느 릿느릿 운율을 띠며 흘러나왔습니다. 가끔은 징 같은 것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구 남매 중 가장 아끼는 막내아들이 사다준 선물이어서인가, 아니면 그 회심 곡의 내용이 할머니의 삶이어서인가 할머니는 이 회심곡을 무척 좋아하셨습 니다. 할머니의 회심곡은 막내삼촌의 결 혼과 함께 진공관 전축이 치워지고, 그 자 리에 시집온 막내삼촌의 아내가 가져온 피아노가 놓여지면서 끝났습니다. 갖 시집온 새 색시가 시어머니 앞에서 피아노를 두드릴 수 없었든지 피아노 는 자리만 차지하고 먼지만 뒤집어 쓴 채 세월을 보냈고, 할머니는 회심곡 을 잃어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도 회심곡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불교에 대한 이미지는 밝고 창조적이며 생동감이 있는 삶보다는 ‘허무함’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이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정확하게 확인이 되었는데, 이미 불교의 허무함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누가복음 7장 11-17절에는 ‘나인’이라는 성에 살고 있는 한 과부의 이야기 가 나옵니다. 그 과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청년이 된 그 아들이 그 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어 상여를 따라가는 과부의 심 정이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울면서 상여를 따라가는 과부를 예수님이 만나 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여를 멈추게 하고 죽은 그 청년을 향해 명령 하셨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 명령을 받자 생명이 없는 죽 은 청년이 관에서 벌 떡 일어나 그 어머니에게 갑니다. 비슷한 내용이 불경에도 나옵니다. 옛날, 인도의 구시라 성의 시다림이란 한 가한 숲속을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숲에 서 한 젊은 과부가 애통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외아들이 죽어서 너무 처절하 게 울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내 외아들을 살려 주십시오”라고 애원했더 니, “일어나서 마을에 가서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 줌씩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너의 아들이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 다. 젊은 과부는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내려가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가 지 다녔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 하루 종일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한 톨 의 쌀도 못 얻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인생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법,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 너무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석가모니는 이 한마디의 말을 주려고 젊은 과부를 하루 종일 걷게 만들어 놓 고 허탈 상태에서 기진맥진했을 때 가장 인간적인 지혜의 말로 위로 를 한 것 입니다. 여기서 불교와 기독교의 생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과부와 외아들의 죽음이었는데 불교에서는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기 독교에서는 생명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부활이고 생명인 참 진 리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인생의 근본적인 생사 문제를 제기하였을 뿐 그 해답은 주지 못 했는데, 예수님은 문제뿐만 아니라 해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 인이시고, 생명을 가지고 계시고,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 주신 분은 오직 ‘예수’ ‘사월 초파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연등을 달고 정성을 바치고 있지만 우 리 크리스천들에게 이 날은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인지, 아직 불신(不信) 가운데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날입니다. 전도 리스트 를 작성하는 날이 됩니다. 다시금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구령의 열정을 가 져 봅니다.
459 no image |꽃잎에 쓴 편지(52)| 인간의 법칙_Mrs. Daisy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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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4 2008-05-15
꽃잎에 쓴 편지(52) 인간의 법칙 Mrs. Daisy Sung_미국 포들랜드 한인 문화방송실 “거듭난 사람만이 참된 인생 살 수 있어” 인간은 피해 갈 수 없는 우주 공간 이 지구 위에서 인생을 살게 된다. 금붕 어가 어항 속을 벗어날 수 없듯이 말이다. 이미 정해진 부모 밑에서 한번 받 으면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신체를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운명이란 굴레 속에 빠져 있는 인생 내가 바꿀 수 없는 이런 것들을 두고 사람들은 운명이라 부른다. 그래서인 지 어떤 이는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정리해 놓았다. 1.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나의 육체를 받는다. 그 몸의 지체는 좋든 싫든 이 세상 사는 끝날까지 자신이 소유하게 된다. 2.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할 과제가 있다. 사회라는 큰 인생 학교에서 매일 의 생활이 배우는 기회와 연습장이 된다. 그런 훈련을 좋아할 수 있지만 부 적절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3. 그런 과정에서는 실패라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훈련 과정일 뿐이다. 시 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은 계속된다. 그러다 보면 하고자 하던 일은 이루어 진다. 4.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면 훈련은 반복된다. 마침내 다 배우게 된 다음에 는 또 다른 단계의 훈련으로 넘어간다. 5. 그런 배움의 과정은 끝이 없다. 매일의 생활이 다 배움의 한 부분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이상 훈련은 계속된다. 6. 지금보다 더 좋은 다른 것이란 없다. 바라던 좋은 것이 현실이 되어 오늘 에 이르면 또 다른 바램이 생긴다. 그 다른 앞날의 바램은 다만 더 좋을 것 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7. 남이란 또 다른 나의 거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신에게 비추어진 나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8. 결국 인생을 어떻게 꾸며 가느냐는 각자 자신이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필요한 정보와 기능이 다 주어졌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각자 하기 나름이다. 결국 모든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9.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서 찾아야 된다. 해답은 이미 각자 내면 에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당 신 스스로 잘 살펴보고 듣고 또 믿 고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10. 이상의 모든 것은 당신이 평생 지니고 다녔던 그 육체를 떠날 때에 모 두 잊혀 지게 된다. 필자 미상의 이런 개성 있는 내용은 스스럼없이 인생의 깨우침을 얻기 위해 한 이야기다. 긴 인생을 한 눈에 보듯 인생 공식을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아무도 강제할 수 없는 ‘의지’라는 것도 있다. 곧 자신 이 원하는 대로 매일 매순간 많은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산다. 그런 선 택의 자유함이 자신의 인생 모양을 만들어 간다. 잘못된 결정을 하여 같은 실수를 연거푸 반복하는 일은 피하려 노력한다. 매일 먹는 음식량의 결정도 자신이 하고 사귀는 친구의 선택, 직업의 선택 도 자신이 할 일이다. 거짓말을 입에서 만들어 내지 않고 바르게 인생을 살 고자 하는 마음도 스스로 정한다. 세상의 유혹에 빠져 얄팍한 인생을 사는 그것도 그들이 선택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어떤 이는 인생을 연극이라 하지 않았나. 어느 훗날 하늘나라 예수님 앞에 자신의 흠 없고 아름다운 작품을 내려놓게 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산 복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 라. 아름다운 작품으로 인생 써나가야 그 작품은 연습과 배움을 반복하며 각자 자신이 작가가 되어 써 내려간 것이 다. 그런 작품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생활을 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 믿어진다.
458 no image |살며 생각하며| 산다는 것_황형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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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6 2008-05-07
산다는 것 황형목 목사_울산 목은교회 “국민 성공 시대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 많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억만장자가 아니라 의와 진리와 거룩이었 다. 어떤 이는 내심 ‘최소한 오복이라면 몰라도 그게 무슨 복이냐’고 냉소 할는지 모른다. 참된 복 외면하는 사람들 백번 양보해서 성경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런 고상한 복은 에덴 동산에서 나 필요할 뿐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는 순진한 이상에 불과하다고 일축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선물을 인간은 불편하게 여기며, 공연히 잠자 는 양심을 깨우는 통에 처세술에 걸림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동방예의지국 역시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 성공이 곧 정의고 명분이고 최고선이라는 성공지상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한 도 끝도 없는 욕심을 다 채우지는 못해도 최소한 남과 비교하여 한 움큼이라 도 더 많이 가지겠다는 경쟁심으로 충혈되어 있다. 공부나 사업의 목적이 돈 이요 모든 갈등 과 화합의 원인도 돈이요 학문과 종교도 결국 돈으로 귀착된 다. 모든 인생사의 이유와 목적은 돈으로 설명이 가능할 정도다. 특권과 유착 끝에 IMF를 당했던 부실경제를 반성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제 로 선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계속했 고 국민 소득 2만 불을 달성했으며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제도의 기본 틀도 어느 정도 마련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내내 경제가 죽었다는 선동에 동조했고, 멀쩡한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국민성공시대 만 열어준다면 부패고 거짓말이고 부도덕도 다 눈감아 주겠다는 게 국민적 합의였다. ‘어떤 자세로 돈을 벌어야 하나, 재물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에 대해서 는 별로 고민이 없다. 북한 어린이와 주민들을 돕자고 하면 군량미로 전용한 다고 거부하고, 남북이 경제협력하면 북방 특수를 누릴 뿐만 아니라 한민족 끼리 서로 상생하니 일석이조가 아니냐고 하면 핵폭탄 만들어 남침하려는 공 산당을 돕자고 하는 친북 좌파 주장, 낭만적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부자라고 하루에 열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비하면 보릿고개 같은 절 대 가난은 극복한 것 같은 데도 거짓과 경쟁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이웃 사촌끼리 소박한 정을 나누며 온갖 국난도 극복해 온 민족인데 경제대국이 된 마당에 오히려 더 각박해진 이유는 뭘까? 이웃을 존중하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왜 욕심과 경쟁으로만 내달 릴까? 이웃을 인정하지 않고 각자 혼자 사는 길을 택한 이유가 뭘까?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이익과 편의에 따라 언제든지 배신하는 세상에서 철칙 같은 게 있다면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다. 약속 을 믿고 이웃을 의지하는 사람은 맹수와 어울려 사는 철없는 애송이로 취급 한다. ‘형편이 변하고 이익이 갈리면 언제든지 변한다’고 긴장하며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하니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열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쓰러지면 누구하나 믿을 수 없고, 심지어 형제나 아들조차 나를 맡기지 못한다는 불행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의와 진실을 생명처럼 여 겨도 눈앞에 이해관계가 걸리면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웃을 수단으로 삼으니 거짓과 변덕이 난무하는 세상이 된 것이 다. 의와 진실은 낙원에만 필요하고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상에서는 필요 없는 게 아니라 험한 세상일수록 더욱 절실한 가치다. 누구나 이를 인정하면서도 이익과 편의를 위해 신의를 저버리는 모순을 반복하는 것은 역으로 그 누구 도 극복할 수 없는 근본 한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언뜻 가난 때문에 가정 과 교회가 붕괴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맨 밥을 삼키듯 삶의 근본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진실과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불행의 원인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 다. 신자는 의와 진실 지켜내야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선물을 진주처럼 귀하게 여기며 의와 진실을 사모 할까? 이웃에 숨어 있는 그런 분을 만나 섬기며 고단한 행로에 서로 위로를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457 no image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나같은 자에게도 귀한 직분을 맡기시니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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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1 2008-04-30
나같은 자에게도 귀한 직분을 맡기시니 추둘란 집사_수필가,홍동밀알교회 "벽에 걸어 둔 집사 임명장 보고 충격받아" 이번 주일에 목장 분가식이 있었습니다. 새로 임명되는 목자가 목자 서약을 읽고 축하받는 모습을 보면서 2년 전 같은 자리에 서 있던 남편과 저를 떠올 렸습니다. 그리고 직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올해 초, 집사 직분 받게 돼 우리 교회에서 남편과 제가 처음으로 받은 직분이 목자입니다. 집사 직분을 받지 못한 때였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떨떨했던지…. 목자 직분을 받으라는 목사님의 권유에 남편이나 저나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 자 리에서 바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목자의 직분이 너무 자랑스럽고 좋았던지, 올해 초 집사 직분을 받 을 적에는 오히려 무덤덤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지 9년 만에 받은 집 사 직분이 건만 뜻밖에도 가슴이 벅차지 않아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다른 교회 성도들이 남편과 저를 집사라고 부를 때마다 계면쩍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그분들에게 우리는 집사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딱히 부를 호칭이 없어 예의상 그리 부 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러려니 넘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 서 정말로 집사 직분을 받았으니 자랑스럽고 감사해야 함이 마땅한데 실제로 는 감동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목장 분가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있던 한 기억 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미루고 있던 일을 결단하고 실행하게 해주셨 습니다. 두어 달 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최고 연장자이신 이석순 집사님이 기운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몇 주 동안이나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여 러 성도님들과 함께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삼 대가 모여 사는 집사님 댁은, 함께 간 성도님들이 눈치껏 자리를 좁혀 앉 아야 할 정도로 작고 낡은 집입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인 것을 다 아는데, 그럼에도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는 평안 과 기쁨이 충만하여 보기 에 참 좋았습니다. 한창 혼담이 오가는 손녀딸이 지극한 정성으로 집사님을 섬기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저는 더 큰 감동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큰 충격을 받 았습니다. 벽에 붙여둔 두 장의 증서 때문이었습니다. 두 손자의 대학 졸업 사진 옆에 당당하게 보란 듯이 붙여둔 것은 집사 임명장과 ‘생명의 삶’ 성 경공부의 수료증이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무릎을 쳤습니다. ‘아하! 사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평생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랴? 주신 직 분에 대한 감사와, 하늘나라를 알게 된 것에 대한 감사 외에 달리 무엇이 있 으랴?’ 그렇게 깨닫게 되자 무덤덤하게 집사 직분을 받았고 임명장을 어디에 두었는 지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일흔 살이 넘는 어르신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집사 직분을 줍니다. 어려운 세월을 믿음 지키며 살아오신 것에 대해 예우해 드리는 것이 며, 인생의 값진 지혜와 경험을 많이 갖고 계신 나이이기에 직분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뜻은 그렇지만 나이만 차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명예집사이 니 누가 귀하게 여기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어르 신들이 받는 집사 직분과 젊은이들이 받는 집사 직분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 고 교만하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석순 집사님은 그 직분과 성경공부 수료증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서, 손자들 대학 졸업만큼이나 가문에 길이 남을 기쁜 일로 여기셔서, 들고 나는 사람들 다 보도록 방 한 가운데에 붙여두셨던 것입니다. 그 모습 보고서 심방 끝나고 돌아가면 집사 임명장부터 찾아보아야겠다고 속 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뿐 그날의 감동과 결단을 까맣게 잊고 있 었습니다. 집사 된 지 다섯 달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기억이 떠올랐고 직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목자나 집사 직분을 주기 전에 남편과 저는 자원하여 따로 받 은 직분이 있습니다. 남편은 차량봉사를, 저는 꽃꽂이를 자원하였습니다. 이 런 일을 두고 직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9년 전 처음 우리 교회에 와서 각자의 달란트를 따라 자원할 때부터 우리는 직분이라고 여겼습 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그 해 가족별로 특별찬송을 드리는 시간에 ‘천하고 무능 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워라 이 생명 바쳐 서 충성하리’라는 찬양을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그 찬송을 하나님이 귀기울여 들으셨기에 오늘까지 이렇게 충성할 수 있도 록 건강을 주시고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부족한 우리를 목자 가정 으로 세워 주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주님 섬기는 복된 직분 감당할 것 이번 주 안에 집사 임명장과 목자 서약서를 액자에 넣어 걸어 두려합니다. 들고 나며 바라볼 적마다 주님이 인도해 주신 시간들이 떠오를 것이며 ‘큰 열매 눈앞에 안보여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는 약속도 새록새록 새겨질 것입니다.
456 no image |노트북을 열며...|춘심(春心)이 흔들린 날들 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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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5 2008-04-30
춘심(春心)이 흔들린 날들 변세권 목사_온유한교회 간밤에 연못에서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에 잠을 설쳤다. 궁금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연못에 가 보니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맹꽁이들이 물밑에 숨어 서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장애인 수 400만 명 넘어 때마침 잦은 봄비도 추적추적 내린다. 그래서 인지 어디선가 꽃이 피고 지 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산 너머 푸른 하늘도 오늘은 바람이 불고 구름 자락으로 가득하다. 문득 본능적 그리움이 작은 정서적 자아를 타고 달려온 다. 무슨 병이 날 것만 같다. 젊은 날의 초상이 그리워진다. 그리움으로도 갈 수 없는 구름 속에 가려진 그리운 추억들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침 지난주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숫자는 보고되지 않 은 장애인까지 하면 40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행동이 불편할 뿐이지 마음 이 불편하지는 않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을 잊어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장애인 이 지나가면 한번 쳐다보고 뒤돌아서 쳐다보고 가다가도 쳐다본다. 문제는 그들 은 몸이라도 불편해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비장애인인 우리는 더 큰 정신적 장해 요인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닌가 우리 자신에게 이제 질문 을 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인권 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관점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소유와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신분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자칫하면 사람의 존엄성의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살아갈 수가 있다. 왜 우리는 동정심을 잊어버리고 사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왜 우리는 동정심을 갖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우리는 다른 사람 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자신의 소유 와 명예욕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소유에 대한 욕구보다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더 큰 사람들이다. 소유를 없애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앞 에 진실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데이빗 A 씨멘즈는 “우리의 과거의 기억의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동정심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지난날의 아픔과 잠재의식 속의 과거의 상처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되고 치유가 되어야만 진정으로 회심을 체험한 사람이 되어서 가난한 자 에 대한 참된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마음속의 깊은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우 리는 여전히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고 대인 관계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며 예수 믿는 사역자이지만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뒤떨어진 성격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어떤 때 사역을 보면 목회를 멀쩡히 하다가도 어느 날 사람이 이상해지는 나 를 볼 수가 있다. 내 마음속에 아직도 지배하는 사람의 소용돌이가 가끔씩 토네이도처럼 나타나서 인생의 결정적 중요한 순간에 소용돌이로 말미암아 나로 결단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또한 성격 장애 입을 수 있어 우리가 자기를 대하는 신앙 인격에 장애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보다 도 사람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이 없다면 목회를 잠시 중단하고서라도 주님 의 십자가를 다시 확인하고 기도하면서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하나님의 사 랑으로 상처를 회복하면서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삶이 되어야 한다.
455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토요일의 신부_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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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2 2008-04-23
하늘이슬로 쓴 편지 토요일의 신부 “주일을 기다리는 이들이 진정한 주님의 신부”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토요일 아침, 호숫가에 나갔다가 갑자기 봄 신부가 되었다. 누군가 벚꽃자 락 면사포를 씌어주고 온갖 고운 봄 색으로 신부 단장을 해주었다. ‘아. 그 렇습니다. 나는 당신의 신부입니다!’ 민들레와 제비꽃 그 작은 것들이 정성 스럽게 노래를 불러주는 듯 했다. 화사한 벚꽃 면사포 쓴 신부 돼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토요일만 되면 마음이 분주하고 힘들어진다. 주일 준비하는 일이 여간 많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즐겁고 기쁜 토요일이 되었 다. 예배당에 나가 기쁘게 찬양했다. 오후에 있을 어린이 전도파티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집사님이 왔다. 가락시 장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재료들을 잔뜩 들고 왔다. 이제 막 마흔 고개 넘 은 처녀 집사다. 간식을 만들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지난 주 수 요, 금요 모임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 여러모로 힘들었던 가슴 속 이야기 를 했다. 음식이 다 만들어질 때쯤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오늘도 안 오려 고 했는데 잘 왔다고 하며 기뻐했다. 잠시 후 주일학교 선생님이 왔다. 피곤에 지친 얼굴이다. 새벽일 마치고 다 시 직장으로 나가는 두 가지 일을 한다. 일찍이 혼자되어 가장처럼 살아온 아직은 젊은 집사님, 오늘은 왼팔에 마비증세가 와서 송곳으로 찔렀다고 하 며 자국들을 보여준다. 우리들은 약할 때 강함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의 피 값 위에 세워진 교회, 연약한 우리들의 작은 수고와 눈물을 받으사 ‘좋 은소식 교회’와 이 지역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간구했다. 우리 몸과 마음이 새롭게 소성되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놀토라서 학교에 전도하러 나가지도 못했고 동네에도 아이들이 없었 다. 한 명이 와서 찬양을 하는데 다섯 명이 되었다. 못 말릴 정도로 까부는 아이들을 대하노라면 진이 다 빠지지만 그래도 성구암송하고 복음을 듣고 기 쁘게 간식을 먹는 그들을 보면 감사가 넘친다. 전도모임을 마치고 내일 먹을 미역국을 끓였다. 팔이 아픈데도 기쁘게 국을 끓이는 선생님이 자꾸 맛이 없다고 한다. 주일아침에 는 더 맛있어질 거라고 하니 크게 웃는다. 강단을 닦다가 다리에 쥐가 난 선생님의 다리를 주물러 주고 내가 닦았더니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닦는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삶을 나누었다. 우리는 돈보다는 주님이, 일보다는 사랑이 먼저라는 삶의 지혜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녀의 긴장되고 경직된 마음이 풀어지는 듯 했다. 교회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우리의 모습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아닐까? 교회당에 남아있던 인호와 다시 공부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인호 의 수학실력 때문에 학습지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했다. 월요일 4시에 테스 트를 하기로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인호에게 전에도 몇 번이고 다짐했지 만 다시 시작해 보자고 했다. 구구단이 되지 않는 아이의 고민은 얼마나 깊 은 것일까. 그 아이와 엄마에게 희망의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 다. 어둑어둑해질 때쯤 청년 자매가 왔다. 주일예배 준비를 위해서 퇴근 후에 들 른다. 월세가 비싼데도 교회 근처로 이사 온 자매, 그 좋은 직장도 마다하 고 주일을 지키는 직장을 기다렸던 시간들,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무남독 녀 외딸이기에 연로하신 홀어머니를 돌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어머 니 혼자 지방에 사시는데 넘어지셔서 지금 딸집에서 치료 중이시다. 다시 넘 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던지,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새 힘을 얻고 모셔다가 기쁘게 섬기고 있다. 주일 예배를 위해 마켓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준비해 놓고 언제 했는지 달걀 조림까지 해놓았다. 일을 마치고 우리는 유자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조금 있다가 이슬이가 왔다. 1년 전에 주신 주일학교 첫 열매이다. 심부름 도 하고 유아 방 정리도 한다. 같이 팔씨름도 하고 교회가 떠나가도록 웃으 며 놀았다. 가끔 놀러오는 자매가 왔다.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고 지금은 교회근 처 고시원에 있다. 가끔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평일에 와서 밥도 먹고 어려 운 일 있으면 찾아와 의논도 한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내일은 꼭 예배드리 러 오겠다고 한다. 귀한 섬김들로 주일 맞을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이 뿌듯함과 기쁜 웃음 소리로 가득 메워진 토요일 예배당은 천국의 한 페이지가 아닐까! 다 보내 고 예배당에서 혼자 감격하며 주일 예배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간절 히 기도한 다. 토요일마다 주님 맞는 신부 돼 우리는 주의 날을 기다리며 토요일을 사는 주의 신부들이다. 성금요일과 부 활의 날 사이의 끼인 토요일은 긴장의 날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신랑을 기다 리는 신부에게 설레임의 날이기도 하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 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아 4:10).
454 no image |꽃잎에 쓴편지(51)| 해변의 봄 청소_Mrs. Daisy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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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2 2008-04-23
꽃잎에 쓴 편지(51) 해변의 봄 청소 Mrs. Daisy Sung_미국 포들랜드 한인 문화방송실 “서해안 자원 봉사 통해 국민의 저력 보여줘” 3월말 지구의 북반구 쪽에서는 여기저기서 봄이 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유 난히 세계 전역에서 기록적인 눈이 내렸거나 홍수가 났다는 소식을 더 자주 듣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갈수록 기상 이변 더욱 잦아져 겨우내 비오는 날도 많더니 개나리꽃도 한물 수그러질 때가 되었는데도 흰 눈이 펑펑 내린다. 깜짝 놀랐을 연분홍 꽃잎들은 활짝 벌린 그대로 눈 무게 에 눌려 애처롭게 보인다. 땅에 닿으면 곧 녹아버리면서도 눈송이는 크다. 이렇게 날씨가 불안정할 때면 차 사고도 잦다. 특히 길이 아닌 다리 부분은 땅위보다 쉽게 얼어붙는다. 오르막길에 갑자기 까만 아스팔트 위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black ice)이 깔리게 되면 사고는 쉽게 난다. 미리 속도를 매 우 줄여야 되는 일은 운전하는 이가 꼭 알아야 될 상식이다. 오늘같이 궂은 날에도 오레곤 주 바닷가에는 연중행사로 해변 봄 청소의 날 이라고 TV뉴스 기자도 바쁘다. 개인 자원봉사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가족끼 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꽤 많이 모여든다. 필자도 바닷가를 즐겨 찾지만 지저분하게 쓰레기가 막 버려졌다고 생각한 적 은 없다. 항상 그랬듯이 공공장소나 야외는 미국답게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 곤 한다. 주로 바람에 날려 온 플라스틱 봉지들과 굴러다니는 쓰레기는 누구 의 눈에 띄어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바닷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다. 대개는 주립공원 들이 많다. 일일 소풍장소 공원(3$)과 전기와 수도가 있는 캠핑하며 밤을 지 낼 수 있는(18$) 유료공원도 많지만 무료 공개된 공원도 많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는 완연 다르다. 한국에서 온지 얼 마 안 되어 처음 바닷가에 갔을 때 나는 이상한 모습을 보는 듯 의아해 하였 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확 트인 바닷가에 나오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흥분하여 나대는 그런 모습은 어디에도 없어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나 궁금했 었다. 그들이 이상한지 나의 기대가 이상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어 도 바닷가 에서 사람들 노는 모습은 언제나 한산하고 조용하다. 이곳은 알래스카 쪽의 한류가 흘러 여름한철에도 물이 차가워 젊은이들이 아 니면 수영을 못한다. 그러기에 주로 물가를 거닐거나 운동 삼아 걷고 뛰고 한다. 햇빛을 쪼이며 앉아 살을 그을리며 싸온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먹는 다. 그리고 먹고 난 쓰레기는 각자 자기 집으로 싸들고 간다. 주차장마다 쓰 레기통이 있어도 대개는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가끔 말을 타고 나와 물가를 거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삶에서 최상의 것을 즐기고 있지 않나 부러운 마 음이 들 때가 있다. 여름철이 되면 어쩌다 고속도로에서 큰 통 같은 것에 말 을 싣고 가는 대형차들을 볼 수 있다. 차 뒤로 노출되어 보이는 반들거리고 누렇고 둥근 말 궁둥이는 쳐다보는 재미가 있다. 말을 키우는 것은 잘사는 사람들만이 하는 줄로 알았다. 허나 수입은 별로 좋지 않으면서도 어릴 때부터 말과 살아왔기 때문에 말없이는 못산다는 얘기 를 들을 때도 있다. 우리 같으면 그 돈으로 더 좋은 차를 사거나 다른 곳에 돈을 쓸텐데 말이다. 그렇 게 말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다녀도 바닷가에 말 분뇨는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한다. 아마도 뒤처리를 해야 되는 규정이 있 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잠잠해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건은 찐득거리는 기름 덩이를 한 주먹 씩 닦아내는 그 열의는 대단하게 보였다. 이처럼 군중심리와 혈기 있는 우 리 국민성은 큰일을 해내곤 한다. 위대한 서해안 살리기 운동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자연과 서로를 아끼고 잘 보존하려는 계몽이 되 면 매년 여름 골칫거리인 바닷가의 쓰레기 몸살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해본다. 이곳 바닷가의 자원봉사 청소의 날은 1984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 다.
453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흐르는 세월 속에....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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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9 2008-04-16
흐르는 세월 속에.... “인생의 종착역까지 행복한 여행하고파”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따스한 봄볕으로 수많은 봄꽃들이 수줍은 듯 살포시 꽃망울을 터트리는 복 된 계절입니다. 나무 위의 연꽃이라 불리는 목련도 눈부시게 자태를 자랑하 고 있습니다.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천의 꽃, 나무들로 인해 모든 사람들 이 행복해 하는 것 같습니다. 철따라 옷 갈아입는 자연으로 행복해 봄의 계절이 너무 짧아 봄이 없다고 하는 이곳에서는 어부들의 바빠진 일손 과 그물에 걸리는 생선의 종류로 계절을 알 수 있습니다. 진달래꽃이 필 때 는 주꾸미 철이라든지..... 우리 집에는 우리 부부와 같이 하는 식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 이 내리 비치는 날이면 현관 앞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며 큰 단추 같은 두 눈 에 혀를 길게 늘여 빼고 턱을 다리 사이에 고이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 서 오수를 즐기다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는 돌이가 있습니 다. 강아지 때 서울 아파트에서 살다가 입주를 거부당해 짐승을 좋아하는 남편에 게 맡겨졌습니다. 개 나이로는 10년이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노년이 되었 습니다. 요즈음에는 가끔씩 마당 한가운데다 실례를 하는 것을 보니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늙게 될 것입니다. 나무나 골동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볼품 이 있고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소나무와 향나무 그리고 느티나무와 은행나 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늙으면 겉모습부터 보기가 흉하고 일반적으로 마음도 아집으로 인해 때가 끼기 쉽습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 누가 늙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년 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 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시편의 기도처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건강히 오래 살기를 원하고 행복한 여생과 더불어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위한 노인 10계명도 만들어 실천해 보기도 합니 다. 나이가 들다 보니 흘러온 세월들을 생각해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편 과 같이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 각하며 감 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것을 내 자신 속에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흐르는 세월 속에서 소 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아늑하고 그윽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 같 습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 사모님이 있습니다. 본인의 몸도 추스르기 어렵 지만 몸이 불편한 남편을 몇 십 년 동안 내조하면서 느낀 것은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삶에서 이제 눈빛만 보 아도 아련함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우러난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얼굴에 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볼 때마다 많은 어려움 과 시련 속에서 진실한 행복의 침착함이 서려 있음을 알고 공감했습니다. 또 내 이웃에는 아름다운 부부가 있습니다. 안수집사님과 권사님이 있습니 다. 많이 배우지도, 젊지도 않은 초로의 부부입니다. 10여 년 전에 집사님 이 과로로 쓰러지기 전까지의 삶은 큰 저택에 경제력이 있는 삶이었습니다. 20여 일 동안 산소 호흡기의 도움으로 숨을 쉬고 있는 집사님을 살릴 수 있 었던 것은 성도들과 권사님의 기도였습니다. 2년 동안의 병상 생활을 털고 처음 한 일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시골 교회를 아름답게 도색한 일이었습니다. 그 교회가 채석포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그 분들을 만났을 때는 지팡이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바로 서지 못해서 두꺼운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데리고 온 인부들을 지시했습니다. 육신은 망가졌지 만 말은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죽음에서 깨어난 집사님의 삶은 새로워졌습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 해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오로지 페인트로 1인자가 되기를 원했다고 했습니 다. 부도 얻고 사장이라는 직함도 얻었지만 하나님께서 흩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자가용을 타고 쇼핑을 즐겼던 권사님은 남편의 불편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운전을 배워 자가용이 아닌 트럭에 페인트를 싣 고 다니며 남편 대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권사님께서도 남편의 병간호와 부 도로 인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새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제는 올바르게 걷지는 못해도 지팡이를 짚지 않고 발을 디 딜 수 있습니다. 집사님은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 욥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채석 포 가까운 곳에 30여 년 전에 나이 들어 여생을 보내려고 작은 집 하나를 장 만했었습니다. 그때 권사님은 본인은 서울에서 살겠으니 남편만 시골이 좋으 면 그곳에 가서 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 있을 때마다 텃밭에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나무가 큰 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에 철새 수 백 마리가 무리지어 노닐고 앞산의 나무 위에는 하얀 백로가 앉아 있는 것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난다 고 합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미술 작품도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싫증나 지만 하나님이 주신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감동을 주어 하나님의 솜씨를 찬 양한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행복해 하는 마음은 세상만사를 모두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했습 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며 과시하면서 시간들을 보내지 만 나이가 들면 신뢰로써 믿음을 가지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혼자라고 느낄 때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 한 가닥이 가슴 밑바닥에 쌓일 때도 있습니다. 해지기 전의 해와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노년에 얻는 행복 비할 데 없어 n내 인생의 여정에서 영영 날이 새지 않을 것 같은 때도 있었지만 춥고 세찬 바람을 극복한 후에 핀 새로운 꽃에서는 먼 곳까지 향기가 퍼져 나가 듯, 흐 르는 세월 속에 내 삶의 여행에서 종착역에 이르는 시간까지 가슴 두근거리 며 행복한 여행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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