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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손에 잡히는 사본학 해설 <4>| 깨어지는 파피루스의 위엄_김진옥 목사 파일
편집부
3110 2015-08-04
깨어지는 파피루스의 위엄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 “계시는 오래 전에 완료되어 오류 없이 정경으로 우리 손에 주어져” 사본학에서 파피루스가 가진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파피루스는 편집비평에서 제일 먼저 고려되는 사료이다. 파피루스가 사본비평학에서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파피루스의 연대 때문이다. 양피지에 기록된 거의 모든 사본들이 주후 5세기 이후로 연대 측정되지만, 파피루스들은 현존하는 성경 사본들 가운데 가장 이른 연대의 기록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로 알려진 P52, P98과 같은 파피루스는 주후 2세기까지 그 기록 연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적인 탐사와 발굴에 기인하여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는 파피루스들은 파피루스(Papyrus)를 뜻하는 알파벳 이니셜 ‘P’에 위첨자로 붙여지는 번호로 분류된다(예: P+1 = P1). 지금까지 성경말씀으로 128번(P128)까지 파피루스들이 분류되었다. 파피루스들은 약 2000년 이상의 세월을 사막의 건조한 날씨를 조건으로 견뎌왔기 때문에 심하게 훼손된 경우가 많고, 대부분 파편들만 남아 있다. 하지만 어떤 파피루스들 속에는 다행스럽게도 많은 부분들이 손실되지 않고 남아있어, 성경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본을 뽑으라면 단연 P45-47까지로 분류된 ‘체스터 베티 사본’이다. 1931년 11월 19일에 처음 공개된 체스터 베티 사본은 구리광산업으로 모은 재산을 고대 유물을 수집하는 데 바친 체스터 베티 경(Sir Alfred Chester Beatty)의 이름을 붙인 사본이다. 체스터 베티 경은 현재 값을 따질 수 없는 이 사본을 이집트의 골동품 상인으로부터 헐값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굴업자를 통해서 불분명한 경로로 매입된 체스터 베티 사본은 그 발굴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 사본의 유래나 역사에 대해서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체스터 베티 사본의 위엄은 현존하는 파피루스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의 성경 본문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연대가 3세기 이전으로 소급된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특별히 P46의 경우는 김영규 교수의 역량 있는 논증으로 그 연대가 1세기 후반까지로 고려되는 사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1) 체스터 베티 사본은 크게 P45, P46, P47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P45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P46은 바울서신을, 그리고 P47은 계시록의 부분들을 각각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의 주목을 단연 한 몸에 받고 있는 P46은 사본학의 분야뿐만이 아니라 바울서신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아래의 사진은 P46의 41번째 장의 윗부분이다(P.Mich.inv. 6238.2). 이 부분은 로마서의 끝부분과 히브리서의 처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파피루스에서 우리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P46이 로마서 다음에 히브리서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P46이 보이고 있는 바울서신의 배열은 로마서-히브리서-고린도전후서-에베소서-갈라디아서의 순이다. 물론 이 배열이 성경 각 권의 분량에 따른 배열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으나, 사본의 기록자가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염두하고 있다는 인상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P46 로마서와 히브리서 사이 <출처: http://quod.lib.umich.edu>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P46의 로마서 본문이 16:27에서 끝나지 않고 16:23에서 일찍 종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P46의 본문에는 우리가 로마서의 종결에서 보는 ‘하나님께 드리는 송영(16:25-27)’이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성도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 ‘장엄한 송영’을 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서신을 담고 있는 가장 이른 연대의 P46이 이를 누락시키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까? 이런 비슷한 문제들은 다만 롬 16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요 8:1-11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단락이나, 막 16장의 종결에서도 우리가 비슷하게 맞닥트리는 문제이다.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보는 것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익할 것이다. ‘만약 로마서의 마지막 송영을 포함하고 있는 P46보다 더 오래된 파피루스가 발견된다면 어찌해야 할까?’ ‘성경말씀은 새로 발견된 사본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집 되어야 할까?’ 바로 이런 점에서 오래된 사본에 지나치게 편중하는 것을 재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계시는 이미 오래 전에 완료되어 오류 없이 우리 손에 주어졌다.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 말씀은 유동적인 시간의 차이를 기준으로 평가된 사본에 따라 확정될 수 없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증거하여 자기를 규명하는 ‘자증성’을 갖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놓여있는 자리를 통해서 자기를 규명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깨지지 않는 높은 내구성과 강도로 자기를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같이 스스로 자기를 규명한다. 말씀이 놓인 사본의 자리를 따라서가 아니라, 어디에 놓여 있든지 기록된 말씀이 자신의 말씀됨을 규명하도록 해야 한다. 1)Cf. Young Kyu Kim, “Palaeographical Dating of P46 to the Later First Century”, Biblica 69 (1988).
651 |손에 잡히는 사본학 해설 <3>| 종교개혁자의 사본_김진옥 목사 파일
편집부
2707 2015-07-21
 종교개혁자의 사본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 “성경의 난해함 속에 오히려 완벽과 신비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베자(Théodore de Bèze)는 칼빈과 함께 제네바의 개혁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칼빈의 후계자로도 알려진 베자는 칼빈과 함께 종교개혁의 최선두에서 싸웠던 인물이다. 베자는 개혁신학을 잘 전수하고 무엇보다 개혁신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예정교리와 성찬교리를 잘 정립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베자에게는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개혁자인 베자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본학자였다는 사실이다. 베자는 신약 사본학의 분야에서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심지어 1565년 ‘신약성경 편집본(kritische Textaufgaben des Neuen Testaments)’을 세상에 내놓기도 하였다. 그의 신약성경은 종교개혁자의 성경관이 담긴 편집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차대하다. 신약사본학에서 중요한 사본 가운데 베자의 사본으로 알려진 사본이 있다. 그레고리와 알란드에 의해서 05(D)으로 분류된 베자의 사본은 신약사본비평에서 중요한 사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사본은 리용 근처에 있는 이레니우스 수도원에 소장되었던 것으로 종교개혁 당시 베자의 손에 있다가 영국 켐브릿지 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된 사본이다. 그래서 후대는 이 사본을 라틴어로 ‘Codex Bezae Cantabriegiensis(켐브릿지의 베자 사본)’이라 칭하였다. 베자 사본은 서방계통의 사본의 전통을 따라 마태, 요한, 누가, 마가복음의 순서로 쓰인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을 포함하고 있다(Dea). 베자 사본은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두 개의 성경본문을 담고 있다. 양피지 책으로 묶여진 이 사본은 왼쪽에는 헬라어 본문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라틴어 본문이 쓰인 대문자사본에 속한다. 베자 사본(Dea, 05, Codex Bezae Cantabrigiensis) 사진출처: www.lib.cam.ac.uk 개혁자 베자의 사본은 사도행전의 본문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본이다. 사도행전에는 현대 사본학의 영향으로 구절이 완전히 삭제되어 ‘없음’으로 처리된 구절들이 있다(행7:37, 15:34, 28:29). 삭제된 이 구절들은 스테파누스(Robert Estienne)가 신약성경의 장절 구분을 하였을 때 당당하게 본문 속에 포함되었던 구절들이다. 그러나 현대의 사본비평학의 영향으로 그 구절들은 삭제되고 공란이 되어버렸다. 비평학자들은 이 구절이 후대에 윤색되어 첨가된 구절들이기 때문에 본문에서 필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략된 본문들은 본문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히 행 15:34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비평학자들이 편집과정에서 삭제한 15:34은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 동참하였던 실라의 흔적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원래 실라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신자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유다와 함께 안디옥으로 파송한 사람이다. 실라는 안디옥에서의 일을 마치자 그의 동료 유다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간 것으로 행 15:32에서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행 15:39의 말씀 속에서 예루살렘에 있어야 할 실라가 갑자기 안디옥에서 거론되고 있다. 유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실라가 어떻게 안디옥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을까? 실라의 행적에서 갑자기 공백이 생긴 이유는 행 15:34이 ‘없음’으로 처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략된 본문은 베자 사본을 비롯한 여러 본문에서 확인 된다: “실라는 그들과 함께 (안디옥에) 남아 있는 것을 좋게 여겼다.” 이렇게 행 15:34을 ‘없음’으로 삭제해 버리면 실라의 행적은 매우 어색하여 서로 어울리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비평학자들이 ‘없음’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있는 이유는 어색하고 난해한 본문이 원문에 가깝다는 자신들의 논리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편집된 성경사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베자를 반대하는 것과 같다. 그는 분명히 “너희는 성경관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크게 책망할 것이다. 성경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어색하지 않다. 때론 성경은 난해한 구절을 선사하지만, 그 난해함은 오히려 완벽과 신비가 조화를 이룬 난해함이다. 성경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던 베자의 신학과 그의 사본을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650 no image |IS 긴급진단 <1>| IS,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_강승빈 목사
편집부
1807 2015-07-21
IS,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 < 강승빈 목사, 합신총회 다종교문제연구위원회 전문위원 > IS가 작년 6월 29일 칼리프 국가로의 회귀를 목표로 「이슬람 국가(IS: Islamic State)」의 설립을 선언한지도 이제 1주년이 되었다. 우리는 막강한 연합군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와 이라크 땅에서 발 빠르게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IS라는 새로운 국제 이슬람테러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그들이 확전 과정에서 보여준 잔혹성과 반인륜적인 범죄로 인해 지구촌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급진주의 이슬람 무장 세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6월 24일자 IS 니느웨지부의 7분짜리 동영상에서 IS가 새로운 방법으로 16명의 포로를 처형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어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포로들을 승용차 안에 가두고 로켓포를 발사해 불태워 죽이는가 하면, 그들의 목에 폭약이 채워진 케이블로 목걸이 사슬로 연결하여 폭파해 살해하고, 또 다른 희생자들은 철창에 가두어 물에 잠기게 하여 수중에서 익사하는 장면을 수중 카메라로 촬영해 보여주었다. 이런 잔혹한 영상의 공개는 최근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의 공세가 강화됨에 따라 공포 심리를 극대화시켜 적진의 사기를 떨어뜨려는 심리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1. IS,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 IS의 전신은 “유일 신앙과 성전단”이라는 뜻의 수니파 무장단체인 「자마앗 알-타우히드와 왈지하드」이다. 요르단 출신인 알 자르카위가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아 이 단체를 이끌었는데 2004년도에 알카에다에 충성맹세를 하고 그 이름은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로 변경했다. 이 단체는 이라크 전역에서 외국인 납치와 참수 등을 비롯한 테러활동으로 연합군에 맞서 이라크 국내 혼란과 불안을 선동하는 전략을 펼쳤다.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고 미군납 업체 가나무역과의 고용계약 기간이 끝나면 중동선교회 소속 이라크 선교사로 파송 받기로 원했던 고 김선일 씨를 납치해 참수한 단체가 바로 AQI이었다. 당시 모든 선교사들이 공관의 지시에 따라 모두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철수하고 바그다트 한인교회에 설교자가 없을 때 그가 6주간 설교자로 강단을 지키다 피랍되어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라크 땅에 순교의 피를 뿌렸다. AQI는 2006년 10월 「ISI(이라크의 이슬람 국가)」로, 이후 2013년 활동 범위를 시리아로 확장하면서 ISIL(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 또는 ISIS(이라크·알샴 이슬람 국가)로 개명했다. 그리고 2014년 2월 알카에다가 ISIL과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014년 6월 29일 ISIS의 무슬림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IS)의 재건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때까지 전면에 나타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세이크”라는 별명이 붙어졌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가 자칭 칼리프 취임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그의 뒤를 이었던 정통 칼리프시대(632-661)는 네 명의 칼리프뿐이었다. 칼리프(아랍어: 칼리파)는 “라시둔” 곧 “정당하게 지명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후 1,382년이나 지난 2014년도에 이슬람의 정통 칼리프가 다스리는 이슬람 국가(IS)의 창건은 이슬람 세력의 종말론적 재탄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1)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누구인가? 이슬람 국가(IS), 즉 금세기 최초의 지하드 칼리프 국가를 창건하고 스스로 칼리프에 취임한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어떤 사람인가? 2003년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웠던 이라크 이슬람군의 지휘관 아메드 알-다바시의 증언에 의하면 그와 함께 공부했던 바그다드 이슬람신학교 시절에 알-바그다디는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었고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어서 알카에다 지도자들도 그에 대해서 잘 모를 정도였다. 그에 대한 뒷이야기는 신비에 싸여 있고 그 또한 이렇게 비밀 신비로운 인물로 관리해왔다. 그는 신학교에서 이슬람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0년에 IS의 전신인 AQI를 장악하기 전 부카 수용소에서 4년을 보냈는데 이 수용소에서 IS의 미래 지도자들이 될 동료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시리아의 내전으로 국지적 불안정 상태를 기회로 삼아 소리 없이 그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재기에 성공했고, 이렇게 시리아에서의 반군 활동을 통한 전투력을 강화를 시작으로 오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워싱톤 포스트지」는 그에 대해 “교활한 전략가요 고액 모금가이고 무자비한 살인자”라고 묘사했다. 바그다디는 2011년 10월 미국무부의 “특별 지정 글로벌 테러리스트” 명단에 들게 되어 현상금 1천만 달러의 살생부에 올랐다. 2) IS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IS는 2014년 11월 13일 “불신자들은 싫어하지만”이라는 제목의 7분 30초짜리 비디오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전 세계를 밝게 비추며는 IS의 빛의 확산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꾸란 9장 32장 “그들은 하나님의 등불을 그들의 입으로 끄려하노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허락지 아니하고 그 등불을 완성시키나 불신자들은 싫어하더라”는 구절을 전거로 제작한 것이다. IS의 빛이 이라크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이디오피아, 에리트리아, 소말리아, 서쪽의 이베리아반도, 로마(서양을 의미), 동쪽의 서남아시아에서 중국, 남북한(Koreas), 일본 그리고 마지막으로 멕시코와 미국까지” 확산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IS가 목표로 하는 중요한 나라의 국명이 언급되고 있는데 “Koreas”라고 명기하여 남북한도 그들의 정복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하드 국가가 된 IS가 2015년까지 전 세계 정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까운 장래에 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동조하는 급진주의 불만 세력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뇌시킴으로써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글로벌 지하드 전략을 펼치는 소위 “스텔스 지하드”를 통한 IS의 이상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그들의 선전선동의 메시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칼리프 국가는 피할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과업이다.” 3) 지지 기반이 된 이슬람 국가들과 서구 무슬림들의 꿈을 실현 2007년도 4월 미국 매릴랜드대학에서 모로코인과 이집트인 각 1,000명, 파키스탄인 1,243명, 인도네시아인 1,141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5%가 샤리아법으로 다스리는 통일된 칼리프 국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해 2008년도 7월에 영국의 사회결속센터(CSC)가 YouGov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한 영국 주요 12개 대학의 학생 1,400명(무슬림 600명, 비 무슬림 800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에서 무슬림 학생들의 33%, 무슬림학생회 회원들의 58%가 칼리프 국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슬림 학생들의 40%가 영국에서도 샤리아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지함으로써 영국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2014년도 7월에 러시안 투데이(Russian Today)지가 의뢰하여 영국 ICM 여론조사 기관에서 프랑스인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 결과 18-24세층의 27%, 25-34세층의 22%, 35-44세층의 20%가 IS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 등의 이슬람권 국가와 유럽에서 수천 명의 지하드 전사들이 IS 전선에 참전하는 데는 이렇게 두터운 지지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IS의 괴멸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이다. 4) IS의 이념과 신념 IS는 이슬람의 원리주의운동을 신봉하는 “근본주의자” 또는 “급진주의자”로 불리는 무장테러단체로 그들의 종말론적 신앙관이 특징이다. ‘정의로써 인도받는 이’라는 뜻의 ‘알마흐디’가 지상종말 이전에 나타나 모든 세계인들을 무슬림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를 근거로 ‘다비크’에서 벌어지게 될 기독교 십자군과 최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믿고 있다. 이런 ‘메시아’의 출현을 위해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IS의 한 깃발 아래 성전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불어 IS가 추구하는 이념과 신념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범 이슬람주의이다. 이슬람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서구 기독교 국가의 침략에 대항하려는 사상으로 일종의 유토피아적 사상이다. 둘째는 살라피스트 성전주의이다. 서구문화를 배척하고 세속화되고 변질된 이슬람 교리를 샤리아법이 지배하던 7세기 이전의 순수 이슬람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전(지하드)을 위해 극단주의 무장투쟁을 수행한다. 셋째는 칼리프주의이다. 이슬람의 유일 지도자 칼리프가 샤리아법으로 통치하는 이슬람 지하드 국가를 추구한다. 넷째는 반 시아파주의이다. 시아파를 이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처단하여야 할 이단으로 본다. 다섯째는 와하비주의이다. 사우디 출신 무함마두 이븐 압둘 와합이 창시하여 시작한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이다. 여섯째는 반 이란주의이다. 수니파에서 이단으로 보는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을 이슬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제거하여야 할 이단으로 본다. 일곱째는 반 알라위파주의이다. 현재 시리아의 사다트 대통령이 속한 시아파의 소수 종파를 제거 대상으로 본다. 여덟째는 타크피르주의이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모든 다른 종교의 신자들은 단죄를 받아야 할 이교도로 본다. 어떤 지하드단체도 지금까지 이런 이념들을 목표한 적이 없었다. IS를 현장 취재한 독일의 언론인 위르겐 토덴회퍼는 2014년 12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S가 전 세계적인 종교청소를 계획하고 있다”고 그들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이런 IS의 이념과 사상을 그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5) 7단계 이슬람 칼리프 국가 전략 목표 연도 단계별 전략 비 고 2000-2003 깨어나기 9.11 공격으로 이라크 침공 종식 2003-2006 눈뜨기 서구 음모를 이슬람 사회에 알림 2007-2010 일어나 세우기 시리아에 집중 2010-2013 아랍정권 몰아내기 증오스러운의 대상인 아랍정권 2013-2016 선언하기 이슬람 칼리프 국가 창건 2016-2020 전면전 수행하기 이슬람 군과 불신자 간의 전면전 이 후 최종 승리 위에서 언급한 동영상에서 과거 11간의 IS의 출현 관련 영상자료들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테러 세력이 아니라 단계별 전략을 가지고 준비해온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계획한 대로 이슬람 국가를 선언하였고 6단계 전략인 전면전 수행하기를 앞당겨 추진하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테러단체들과 충성맹세와 지지를 얻어내고 있어서 33개 지역에 60개 단체로 제휴수준이 아니라 IS의 산하 주정부(Provinces)로 복속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 참여자나 지지자가 아니라 칼리프 국가의 IS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2015년 2월 현재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시나이반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24개 주로의 분할을 주장한다. 이들 나라 중 이라크와 시리아, 시나이반도, 리비아 동부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다음호 계속>
649 |손에 잡히는 사본학 해설 <2>| 현대 성경사본학에 대한 유감_김진옥 목사 파일
편집부
2353 2015-07-07
현대 성경사본학에 대한 유감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 시나이사본(Codex Sinaiticus) 요21:15 - 사진 출처: www.codexsinaticus.org “성경은 계속해서 개정되어야 하는 미완의 문서로 전락될 수 없어” 오늘날은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이다. 허물어져야 하는 잘못된 권위가 있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다. 그 중에 우리가 무엇보다 지켜내야 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이다. 현대에 들어서 여기저기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성경은 살아있고 영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어떤 도덕책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기록으로 정확무오하다는 사실에 물음표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이 그저 인간의 저작이라는 생각들이 급속도로 편만하여지고 있음을 우리는 애통하며 직시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데는 성경사본학의 발달이 중요한 견인차를 담당하였을 것이다. 성경사본학이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경의 원문을 찾아 확정하는 학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수되어진 서로 다른 수많은 사본들의 편집본이라 말할 수 있다. 뱅겔(J. Albrecht Bengel)은 수많은 사본들을 비교하여 연구한 뒤 “사본들 사이의 차이는 미세한 것들이며, 사본들은 서로 놀랍도록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비평학자들은 몇몇 사본들의 불일치를 근거로 성경의 원문을 찾아가는 길을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 결과로 학자들은 아직까지도 주어진 신약성경의 원문에서 안정감이나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며, 항상 더 원문에 가까워 보이는 본문을 갈구하게 되었다. 계시의 종결과 함께 주어진 온전한 성경은 비평학자들의 손에서 사라지고 계속해서 개정되어야 하는 미완의 흔들리는 성경으로 남겨진 것이다. 이렇게 비평 사본학은 기독교의 중심추인 말씀의 권위를 오랫동안 갉아먹어 왔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들의 편집 원리이다. 비평 사본학은 두 개의 편집 원리를 큰 골자로 사본들을 취합하고 있다: ‘더 어려운 본문 우선의 법칙(lectio difficilior)’과 ‘더 짧은 본문 우선의 법칙(lectio brevior)’이다. 개혁주의는 서로 다른 사본들 속에서 영감 있는 본문을 찾으려 하나, 이들은 더 어려운 본문, 그리고 더 짧은 본문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더 어렵고 더 짧은 본문이 원본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편집 원리는 더 오래된 본문을 찾는 데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영감된 본문을 찾으려 하는 데는 합당하지 않은 편집 원리이다. 이 원리는 때론 유용할 수 있으나, 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요나의 아들, 시몬 베드로를 예로 들어보자.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네슬레-알란드가 내놓은 본문 때문에 베드로가 요한의 아들인지, 요나의 아들인지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네슬레-알란드가 요21:15의 편집에서 마16:17의 지지를 받는 ‘요나의 아들’을 버리고 더 어려운 독본인 ‘요한의 아들’을 본문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나의 아들’은 밑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들이 선호하는 시내산사본의 원본 내용이 아니라, 후대에 수정되어 추가된 내용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베드로의 출신에 대해서 불필요한 논쟁을 해야 할 형편이다. 바로 이곳이 개혁주의 성경관과 네슬레-알란드 사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다. 곧 이들은 어렵고 어색하여, 서로 불협하는 본문을 우선하고 있으나, 개혁주의는 성경 사이의 조화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 분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서 쓰인 말씀은 서로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씀은 하나의 진리를 말한다. 그래서 과학적인 편집 원리라는 미명 아래, 어색하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본문을 내놓고 있는 현대 사본비평학에 대해서 유감이다. 칼빈은 교의학자요, 주석학자였으나 또한 사본학자이기도 하였다. 칼빈은 에베소서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헬라어 사본의 대부분은 성도라는 말 앞에 ‘모든’이란 말이 빠져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하므로 나는 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칼빈은 주어진 사본에 구속되지 않았다. 칼빈은 사본들 위에 개혁신학, 곧 말씀을 올려놓았다. 그는 신학 속에서 사본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을 따라 개혁신학에 입각하여 진리의 말씀을 분명하게 통일성 있게 드러내는 본문을 확정해야 한다.
648 no image |선교지 현장 리포트 <1>| 한 인도 여인의 보석같은 눈물_최현재 목사
편집부
2095 2015-06-23
한 인도 여인의 보석같은 눈물 < 최현재 목사,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남가주노회 > 희브리 말의 ‘딤아’는 눈물을 의미한다. 슬플 때나 흥분했을 때 안구 위의 누선에서 나오는 분비액이 눈물이다. 성경 인물 중에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으로 구약에서는 다윗이며 신약에서는 바울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땅위에 사는 동안 때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겠으나 우리 주님의 나라가 임했을 때에는 계시록의 말씀처럼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고 하셨다. 그 눈물도 상황과 장소에 따라 많은 종류가 있겠다. 오늘 만나게 된 이 여인의 그것은 어떤 눈물일까? 필자는 인도 동남쪽에 해안가에 위치한 비사카 파트남에서 북동쪽으로 약 3시간 거리의 시골 한 장애인학교를 방문하였다.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도착한 그곳은 학교와 병원이 함께 지어져 있었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많은 장애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아이들, 보지 못하는 어린이들, 어떤 이는 다리가 하나 없고, 저쪽 아이는 손이 한쪽 없다. 철길 교통사고를 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비틀어지고 흉측한 모습을 그대로 한 채 상처가 아물어 뒤틀린 온 몸으로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년 등. 그 중 대부분이 청각 장애 문제가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다시 아리고 시리며 아프다. 모든 사람들이 불구도 없이 행복했으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이 앞선다. 이사야서 11장에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독사의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온전한 회복된 모습을 바라본다. 여기 아이들의 영육간 비참함을 보며 복된 구원의 소식이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함을 생각하고 마음에 벅차오르는 아픔과 슬픔을 억누르며 우리 일행은 치료를 받기에 너무 어린 아이들을 분류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주었다. 그외 치료가 가능한 아이들은 따로 분류해서 그 부모들을 모이게 하여 우리 일행과 치료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늘 해 오던 대로 복음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복음!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떨려야하는 놀라운 소식이 아닌가? 이 순간을 위하여 평소 몸을 단련하며 짐을 꾸려야 했고 미국 LAX를 출발하여 유럽을 거쳐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비행기를 수차례 갈아타며 그 긴 시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지 않았던가? 밭을 가는 농부가 한 모퉁이에 어마어마한 가치의 보물을 발견하고 그 보물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밭을 샀다는 비유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신다. 가당치 않는 비유 같긴 하지만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의 물질적인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한다 해도 먼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 우리의 전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는 마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모든 것을 얻은 것이리라. 이제 그 자리에서 인생의 모든 슬픔과 아픔과 고통 등 어려운 문제들의 진정한 해답이신 예수님을 떨리는 마음으로 전한다. 이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만이 정답이요 해답이다. 쾽하니 풀린 눈망울들,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표정 없는 석고상 같은 얼굴로 희망도 기쁨도 소망도 없이 불구가 된 자식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하여 이곳을 찾은 부모들. 그들을 향하여 때로는 간절함으로, 간곡히 부탁하며 호소하는 마음으로, 때론 큰 외침으로 “예수님을 믿으세요”라며 복음을 전한다. 대부분 모인 사람들은 모슬램이나 힌두교도들이다. 어떤 여인은 모슬램 여인들만 착용하는 부르카로 불리는 전통의상인 옷으로 눈을 제외한 온 몸을 가린 채 앉아 있다. 힌두교 여성들은 이마에 붉은 점이나 색을 칠하고 앉아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조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던 때를 떠올려본다. 증조할머니께서는 한국 기독교 초기에 선교사들에게서 처음 예수님의 복음을 접하였다. 글도 깨우치지 못한 할머니께서 성경의 사복음서 중에 하나인 쪽 복음책자를 가슴에 품고 귀한 것으로 여기며 시도 때도 없이 보던 중에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우주 창조의 중심에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 낮아지셔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시며 죄인들 가운데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구속해주셨다는 이 엄청난 소식에 할머니의 가슴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훨훨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할머니를 필두로 이어져 내려온 믿음으로 온 가문에 큰 은혜를 누리지 않았던가. 그 이후 이어지는 자손들에게 복음을 인한 큰 복과 은혜를 이 지면에 다 표현할 수 없다. 돌아보면 만약 복음의 빛이 우리 가문에 없었더라면 여전히 흑암과 저주가운데서 비참하게 살다 멸망가운데 떨어졌을 것이다. 그 크신 은혜를 앞에 앉은 모슬렘과 힌두교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나눈다. 그 순간 필자의 시선을 잡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표정이다. 갑자기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훔쳐 닦는 것이 아닌가? 복음을 전하는데 왜 눈물을 흘릴까? 모임을 마치고 치료를 시작하기 전 통역하시는 분을 통하여 그 여인에게 다가가서 묻기를 "왜 눈물을 흘리셨나요?"라고 물었다. 그 여인의 대답을 들을 때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저는 이 모슬램과 힌두교도들이 사는 지역 전체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몰래 이 신앙을 지키며 사는 중에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사랑하는 그 예수님의 복음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경황이 없어 묻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즉 자신들의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모신다는 것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며 믿는다는 고백과 함께 가혹한 미래가 기다리는 것임엔 틀림이 없었을 텐데 그동안 믿음을 지키며 살아오던 중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곤고한 시간들이 많았을 것인가? 그리도 외로운 투쟁을 여성의 몸으로 혼자 해오던 중 미국으로부터 날아왔다는 한 동양인으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되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아직도 이렇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 귀하신 분 예수, 만복의 근원이신 그분, 농부의 밭의 보물이신 예수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온 우주의 주인 되심을 알려야 한다. 주께서 택하신 자들은 복음을 전할 때 자석에 철이 붙듯이 예수님께 붙을 자들인 것을 오늘도 확신하며 “예수님 믿으세요”를 지구촌 곳곳에 복음의 빛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 외칠 것을 다시금 결심해본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그분을 마음에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생명을 대신 내어놓는 종들이 있다. 그들의 눈물이 진정 보석같은 눈물이 아닐까?
647 |손에 잡히는 사본학 해설 <1>| 재생지_김진옥 목사 파일
편집부
1916 2015-06-23
재생지 < 김진옥 목사, 합신 교수 > “에프렘 사본이 유명해진 이유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말씀 때문” 에프렘 사본(Codex Ephreami Rescriptus) - 사진 출처: gallica.bnf.fr,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현대에 들어서 성경이 기록된 사본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성경 말씀은 다양한 필기재료에 기록되었다. 파피루스, 양피지, 도자기파편(ostraca), 나무판, 천조각 등등 성경말씀의 자취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 가운데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있다. 이름하여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그리스어로 ‘다시 긁어냈다’를 뜻하는 이 사본들의 특징은 맨눈으로는 말씀을 식별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사본들은 먼저 기록된 글자들을 지우고 다시 사용한 재생지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성경이 기록되었지만 후대에 말씀을 지우고 다른 글을 기입함으로써 먼저 기록된 성경을 식별할 수 없게 된 경우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약품처리와 적외선촬영으로 완전히 해독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팔림프세스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에프렘사본이다(Codex Ephraemi Rescriptus). 에프렘사본은 사본비평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본으로, 현대 사본비평학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는 그레고리와 알란드에 의해서 04(C)으로 분류되었다. 5세기에 기록된 성경을 담고 있는 이 사본은 12세기 경 신학자 에프렘(Ephraem the Syrian, A.D. 306-373)의 신학논문을 기록하기 위해서 말씀을 지운 경우에 해당한다. 말씀을 지우고 에프렘의 논문을 기록하는 필사자에게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양피지는 비쌌으며, 또한 그 재질의 유연성 및 내구성으로 인해 자주 재사용되었다. 지워진 성경 위에 쓰인 에프렘의 신학논문 그리고 그 밑에 오래전에 먼저 기록되었지만 지워진 하나님의 말씀, 이 두 글의 관계가 참 아이러니하다. 에프렘사본은 어떻게 유명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에프렘의 신학논문 때문이 아니었다. 이 사본이 유명해지고 가치가 있어진 이유는 거기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떤 한 신학자의 글을 담은 사본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지만, 성경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어느 사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단지 말씀이 거기 숨어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 오래된 사본의 가치를 높이 상승시킨 것이다. 성경은 사람을 비유할 때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그릇의 비유이다. 사람은 무언가 담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배운 것을 그 삶에 담는다. 본 것을 담는다. 들은 것을 담는다. 또한 삶 가운데 느낀 것을 담는다. 넘치는 기쁨을 담기도 하지만, 쓰라린 눈물을 호리병에 담을 때도 있다. 잔잔한 삶의 평화를 담기도 하고, 불같은 분노를 담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양피지와 같이 부드럽고 유연해서 무엇을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우리, 과연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어제 본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감동을 계속해서 담아 놓을 것인가? 아니면 실연한 애인의 이름을 저 깊은 곳에 각인하여 담아 놓을 것인가? 우리의 그릇이 오로지 물질에만 몰두하여 돼지저금통과 같게 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이것저것 지난하게 담겨져서 휴지통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 안에 보화를 담았다” 말씀하셨다(고후4:7). 다시 사용된 재생지가 숨겨진 말씀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이다.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 삶의 가치이자 충족이요, 전부인 것이다.
646 no image |치악골 아침사색| 어느 봄날의 묵상_변세권 목사
편집부
1724 2015-05-12
어느 봄날의 묵상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믿음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통치를 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연일 내린 봄비로 흰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벚꽃 잎을 아쉬워할 때 앞 다투어 피는 꽃과 새로 돋는 잎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눈이 시리게 화창한 봄날이다. 곧 더워질 테니 이런 날이 며칠이나 더 갈까? 칼빈은 일찍이 창조계시의 목적에 대해 ‘창조의 역사가 명백해지는 것은, 곧 이것을 믿는 교회의 신앙으로 하여금 모세에 의해 나타난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을 찾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서 바라고, 하나님에게서 찾으며, 또한 이미 받은 것 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리기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쯤에서 이렇게 좋은 날들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해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아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아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릴 때에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누릴 수 있도록 예전부터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우리는 만물의 존재와 질서를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을 부지런히 명상할 수 있어야 한다. 칼빈은 창조를 단번에, 순식간에 하지 않으신 것은 인간이 허구적인 상상을 하지 못하게 하심이었고, 또한 그렇게 지으신 창조물 전체를 인간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부성적인 후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섭리로써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고 유지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어떠한 우연도 없는 것이다. 창조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바로 섭리 사실까지 고려되어야, 비로소 충분한 것이 된다. 이렇듯 단순한 세상적 관점은 창조사상에 머물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통치를 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감사하게 만드는데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또한 우리를 인내하게도 해준다. 세상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편이시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실지 보기 위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 또한 선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넉넉히 이길 힘 또한 함께 주시리라는 데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 여정의 매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보살펴 주실 것을 잘 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또한 우리가 미래를 대면하는데 있어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죄로 물든 세상을 살아간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 살아있을 때에 예수께서 재림하시지 않는 이상 우리 역시 언젠가 죽게 될 것도 자명한 일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우리가 끔찍하게도 아끼고 함께 하기를 즐겼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오늘도 자신감을 갖고 신자의 삶을 살며,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것이 철저하게 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아는 것에 있는 것이다. 칼빈은 ‘섭리에 대한 지식은 번영할 때는 감사한 마음을, 역경 속에서는 인내를, 미래에 대한 우려에서는 놀라운 자유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건, 아니면 무생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건 간에 일체의 번영과 형통 전체를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통해 교훈을 받았다. 주님의 창조와 섭리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면서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하며 단순한 호기심이나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고 인간의 교만이다. 따라서 창조는 섭리로 나타나고, 섭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일을 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을 떠나 하나님이 제정하신 교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봄날이 더 가기 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믿고 바르게 믿고 있는지 창조와 섭리를 통해 고민해봐야 한다. 그 진위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진지한 교회 생활과 목회에 있다. 교회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상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지체의 연합 사상은 당연히 으뜸이 되는 것이다. 이때 창조와 섭리는 구원의 든든함과 확실성 차원에서 접근하기만 하면 절대 위축되거나 타협하지 않고 온전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지고 가야할 길로만 가야할 필요가 있다.
645 no image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마지막회> 신천지에 대한 심층 분석을 마치면서_유영권 목사
편집부
2279 2015-03-31
신천지에 대한 심층 분석을 마치면서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1. 교회적으로 할 일 1) 일 년에 한두 번 이단세미나를 갖자! 사후처리보다는 사전예방이 최선이다. 이단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지 않는 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보다 피해가 많고, 큰 것은 자명하다. 드러난 이단들과 드러내어 포섭을 하는 이단들에 대해선 성도들이 나름대로 방어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이단들의 특징은 세밀한 위장과 거짓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신천지의 수법에서 살핀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의심할 새도 없이 미혹되어 가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이단들의 동태와, 신생하는 이단들의 정체와, 이단들의 수법을 알게 하여, 이단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때문에 정기적인 이단세미나는 꼭 필요하다. 2) 교리공부(신앙고백서)가 중요하다. 교리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교회서 가르쳐 배우긴 하지만 재미는 없다. 이것이 교리에 대한 성도들의 일반적 반응이다. 또한 교리를 성경이 아닌 교회의 또 다른 교재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단들이 기존교회의 성도들을 포섭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보는 것 중 하나가 교리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교리적으로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을, 관련 지식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는 성경구절을 하나씩 들이대며 부수는 수법을 활용하면, 교리뿐만 아니라, 교리를 가르친 교회와 목사까지 부정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교리는 성경 외의 내용이 아니다. 성경 내용을 성도들이 꼭 알도록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 놓은 것이다. 때문에 이것만큼 유익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단들의 공격에 교리부분이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리를 배울 때 방식 자체가 마치 성경외적인 교회의 교육 자료처럼 인식이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로 하여금 교리 공부를 하고 났을 때 교리책이 아닌, 성경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고, 미혹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답을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교리를 가르칠 때 성경을 가지고, 교리를 끄집어 내 주는 방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성도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목적을 갖고 덤비는 이단들의 교리를 중심으로 해오는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다. 본인은 상담성공률이 꽤 높은 편이다. 이유는 이단들이 부정해놓은 교리들을 성경을 가지고 확인해 주는 식인데, 이 정도만으로도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문제는 교리를 잘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고, 교리를 가르치되 성경외적인 교회의 주장으로서 인식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지혜롭게 해결하면 성도들을 이단으로부터 지키는데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3) 이단과 관련하여 큰 장점을 갖고 있는 우리 합신 교단과 신학 이단에 미혹되었다가 이단으로부터 이탈하는 수가 적지 않으며,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 틀림이 없다. 반면에 이러한 이탈자들을 감당할 교회는 많지 않아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던지, 자신들끼리 새로운 단체를 만들든지 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이후로 새로운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 틀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합신교단과 교회 그리고 목회자들은 이단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을 받아서 양육하여 바른신앙을 세워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본인은 확신한다. 그 근거가 무엇일까? 교회가 이단을 담당하려면, 첫째는 교회와 성도, 그리고 목회자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둘째로는 이단으로부터의 이탈하고 있는 이탈자들의 입장에서 자신을 맡길 수 있겠구나! 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단에 빠졌던 이단경험자들은 ‘오직성경’이 아닌 ‘오직성경’이란 ‘말’에 중독이 된 사람들이 많다. 현대의 이단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오직성경’으로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단들의 행태가 먹히는 것은, 기존교회의 설교의 외형적 형태에 기인하고 있다. 이단을 경험한 자들의 주장을 살피면, 기존교회들의 설교에 대해 아주 강하게 부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성경을 읽었으면, 읽은 성경 본문 중심으로 설교를 하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엉뚱한 내용으로 채우던지, 간증, 혹은 철학이야기, 예화로 꽉 채워 설교시간을 보낸다. 반면에 자신들이 경험한 이단단체는 오직 성경을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 한다. 즉, 이단들은 성경을 말하고, 기존교회는 성경 외의 내용을 말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단들은 성경만을 가지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의도하심과는 동떨어진 사악한 자신들의 주장을 성경을 도구로 주입시키는 것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방식은 성경 중심적이고, 기존교회는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누군가 기회를 타서 의도적인 접근을 하여 거론하는 것으로 수없이 많은 성도들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단집단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 이탈 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신천지로부터 이탈 후에도 신천지에서 배운 성경지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다. 강단의 모습에 대한 신뢰와 인식의 문제 때문이다. 물론 철학과 예화 및 간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단들에 세뇌당한 사람들에겐 그렇다. 반면 우리 합신은 어떠한가? 합신 강단은 어떠한가?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할 만큼 성경중심이다. 또한 개혁주의신학을 갖고 있다. 개혁주의신학이란 완벽한 신학이 아니라, 현재까지 가장 성경에 가까운 신학이다. 성경적이라는 의미이다. 신천지에서의 성경공부란 신천지 식으로 짜 맞추어 놓은 것으로 전혀 성경적인 것이 못되어서 현재까지 성경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개혁신학과 만나면 맥을 못 춘다. 이런 면에서 이단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을 받아서 새롭게 양육시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최적의 교단이 우리 합신교단이 아닌가 하고 늘 생각한다. 세미나를 갈 때마다 이 부분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이다.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우리교단을 중심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2.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 1)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와 불온전한 목회자 그리고 문제가 많은 지체를 사랑하는 것이 바른 교회다. 신천지인들이 기존성도들을 흔드는 가장 흔한 의문을 하게 하는 말이, “목사님이나 교회의 리더의 말을 다 믿으면 안 돼! 중세 가톨릭처럼 지금 교회도 썩었어, 문제가 많지?”이다. 놀랍게도 신천지인들의 이 말이 성도들에게 가장 잘 먹힌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강의를 하면서 묻는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다 믿습니까?’ 그러면 ‘예’라고 하는 반응이 태반이다. ‘여러분 현시대의 교회 문제 있습니까? 여러분의 교회 문제 있습니까?’ 역시 ‘예’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다시 묻는다. ‘2000년 전 초대교회는 문제가 있었을까요?’ 이번에 다른 반응이다. ‘아니요’, 절대다수의 답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지 않은 성도들이 막연하게 갖고 있는 생각이다. 즉 교회는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현대의 교회,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는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인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교회와 목사를 부정하게 하여야 이런 저런 근거를 제시하여 이만희와 신천지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도들의 막연한 이러한 견해와 사고는 신천지인들의 가장 훌륭한 낚시 밥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전 기독교시대를 막론하고 오류가 없는 목사는 단 한 명도 없다. 베뢰아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과연 그러한가” 하고 상고하였고, 바울은 그런 베뢰아 성도들의 모습을 칭찬했다. 베뢰아 사람들이 선포되는 말씀을 비판하고자 함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설교자를 의심하여서도 아니다. 들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한다. 설교자가 오류를 범할 수도 있고, 자신이 잘못 들을 수도 있는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반응이다. 목사가 언제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을 겸손함으로 바르게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신천지인들의 의도는 목사들이 참 목자가 아니어서 오류를 범한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고, 말씀을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온전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참 목자만 가능하며, 결국 이만희가 참 목자다. 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이만희는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한심스러운 성경해석으로 도배하고 있다. 또한 신천지가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느 시대에도 문제가 없었던 지상교회는 없었다. 교회로 불림을 받았지만, 죄성을 그대로 갖고 모인 성도들로 구성된 지상교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문제가 있었고, 문제가 있음이 마땅하다. 문제가 없는 교회가 가능하다면 구태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으시다. 교회의 문제를 보면서 교회에 대한 비난보다는, 비난 속에 있는 교회를 위해 세상에 오시고, 죽어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은혜를 가질 때 비로소 온전할 수는 없지만, 교회가 아름답게 변화되어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교회가 문제 있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교회 안의 문제를 보면, 실망하는 마음을 품는다. 교회가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있을 때, 교회의 문제를 들춰내면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단들이 교회의 문제를 건드리는 이유이다. 신천지가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신천지만이 완벽하고, 온전한 곳임을 알리고자 함이다. 신천지 내부의 거짓과, 폭력과 더러움과 타락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신천지의 내부의 모습을 차단하여 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신천지의 더러움을 보고 그곳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모든 이단의 속은 말할 수 없는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교회관에 대한 막연한 지식에 의한 견해의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교회와 신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이단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교회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사랑하고, 지체를 사랑하자. 부족한 교회를 사랑하고, 부족한 목회자를 사랑하고, 부족한 지체를 사랑하자. 억지로가 아니라, 부족함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감격하자. 감격으로 말미암는 겸손함으로 사랑하자. 결론 신천지는 한 사람의 인생과,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가장 사악한 집단이다. 거짓과 속임에 피해를 본 사람들과 가정과 교회의 피눈물이 너문 많아서, 상담 중에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될 때를 수없이 경험한다. 이러한 사악한 집단에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사악한 집단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자신의 것을 제대로, 바르게 아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미혹되어 가기 때문이다. 금번 신천지 심층 분석이 교회와 가정과 성도들께 큰 유익이 있기를 기대한다.
644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8> 이만희의 이력과 신천지 현황_유영권 목사 파일
편집부
3854 2015-03-03
이만희의 이력과 신천지 현황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신천지 전략은 상황에 따른 적응에 뛰어나서 전국 교회의 예방과 대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해오고 있어" "‘만민의 어머니’라고 알려진 김0희씨를 중심으로 하는 신천지 후계 계획대로 성취될 것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1. 이만희는 누구인가? 이만희는 1931년9월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1948년 서울 침례교 외국 선교사에게서 믿음 없이 침례를 받았다. 1957년 전도관에 입교했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가족력인 한센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도관에 입교했다고 하는데, 1957년 3월 전도관에서 만행된 만인이 공로할 피가름 사건이 당시 세계일보를 통하여 드러났다. 전도관의 교주인 박태선은 자신뿐만 아니라 처와 장모까지 피가름을 하게 할 정도로 탈기독교적인 존재였다. 이만희는 이러한 곳에 성령으로부터 환상과 이적과 계시에 따라 입교하였다고 신천지 홈페이지에 자랑스럽게 이력으로 기재해 놓았었다. 1967년 유재열이 교주로 있었던 장막성전에 입교하였다. 1970년 장막성전에서 이탈하였다. 1978년 신천지에서 두 증인이라고 부른 홍종효씨와 함께 백만봉의 제자로 들어갔다. 1980년 신천지를 창설하였다. 1984년 신천지는 신천지의 개업일을 1980년이 아닌 84년 3월 14일로 정하였다. 1984년 문화재단 창설, 신천지 도서출판 발족. 1987년 말세론 주장을 하였다가 불발되었다. 이 씨의 처는 유0순씨이다. 2. 신천지의 조직 신천지는 요한계시록 4장 2-8절과 21장 14절, 22장 16절에 근거한다고 하면서 총회장, 7교육장, 12지파, 24장로로 조직을 구성해 놓았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된 실상이니 교육장이든, 지파장이든, 장로들은 변경이 없어야 하는데 이미 죽은 사람도 있고, 쫓겨난 사람도 있고, 이탈한 사람도 생기는 등 저들의 주장이 허구이며, 조작인 것을 조직을 통해서도 여실이 보이고 있다. 3. 신천지의 현황 현황표를 보면 신천지가 교회에 노출되면서, 전기독교적인 예방교육 및 연합적인 대처가 활발하게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의 대처에 비하여 기독교계를 향한 신천지의 전략이 훨씬 더 교묘하고,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천지의 전략은 치밀하고, 세밀하며, 또한 상황에 따른 적응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때문에 교회의 예방과 대처에도 불구하고 신천지는 성장해오고 있다. 4. 김0희씨와 이씨의 주변 현황 신천지는 이씨가 총회장이다. 만남이라는 단체장은 김0희 씨이다. 이씨의 본부인은 유0순씨이다. 어느 순간부터 동행해오던 유0순이 빠지고, 김0희 씨가 동행하고 있다. 김0희씨를 이 씨의 내연녀라고 말하였다가 고소를 당한 목사들이 있다. 이 발언에 대한 물증 없이 심증으로 언급하였다가 당한 고소였다. 재판은 목사 두 분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결국은 물증을 확보하려고 하는 중에 김0희씨와 이씨가 강가에서 망중한을 보내면서 김0희씨가 이씨의 엉덩이를 치는 동영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결국 이씨는 ‘하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셨다’라는 말과 함께 고소를 취하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재판의 내용이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취한 선택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명령을 빙자하는 모습이며 양의 탈을 뒤집어 쓴 거짓 목자의 모습 그대로임을 보여준다. 김0희씨에 대한 소문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소문은 이씨 사후에 신천지를 맡을 사람이라는 소문이다. 신천지는 이씨가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한다. 전에는 144,000명이 차면 144,000명으로 인침을 받은 모든 사람이 먼저 죽은 144,000명의 영과 인침을 받은 144,000명이 합일 하여 죽지 않는 몸이 된다고 하였다. 현재는 하도 의견이 분분하여 무엇이 참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어떤 사람은 아무도 누가 죽지 않을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절대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주장을 말하던지 저들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천지 내담자 대부분이 이씨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파별로 약간의 변화가 있어서 이씨도 죽을 것이고, 이씨 사후에 신천지를 준비하는 세력이 있다는 소문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씨의 절대 불가한 죽음과 관련해 신천지 안에서 이렇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씨의 상태이다. 84세의 노인으로서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이씨의 몸 상태 변화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분명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연합집회에서는 김0희씨를 카드섹션을 통하여 ‘만민의 어머니’라고 소개하였다.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 통일교 등에서 이미 보인 교주의 아내들을 내세워 조직을 이끌고 있는 것에서 김0희씨를 중심으로 하는 후계 계획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만민의 어머니’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과 반발하는 세력 사이에 홍역을 치렀다는 소식도 들리는 것을 보면, 이러한 신천지의 계획이 계획대로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5. 위장을 잘하는 신천지 현재 신천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사업은 세계대통합과 흰무리를 불러 모으는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면 동서남북에서 사람들이 신천지로 모여든다는 저들의 교리 때문이다. 144,000이 거의 다 차고 있는 마당에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자 뜬금없이 흰무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고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144,000명이 차면 나머지 흰무리는 알아서 신천지로 모인다고 하였는데 144,000명이 거의 다 차가자 이제는 먼저 온 사람들이 흰무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운동의 일환으로 세계에서 신천지를 찾아온다는 홍보를 하기 위해 저들이 꾸미는 것이 세계대통합이고, 이씨는 이것을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643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인간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범위를 보라_변세권 목사
편집부
1930 2015-03-03
인간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범위를 보라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이 자리에서 고생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감격할 줄 알아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우리가 맡을 만하고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일을 하도록 기술 습득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아니다. 구원의 관점에서만 보아도, 신자의 인생 자체는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을 때 예수가 오셨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오셨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를 거절했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성화의 관점에서도 어떤 일들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 문제에 대하여 외인이며, 본성적으로 악을 좋아하며,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함을 위하여 우리가 얼마나 많이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되는가 하는 과정이 훨씬 근본적이고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래서 성화라는 말 자체가 거룩해지는 과정이지 거룩해진 것은 아니다. 성화란 거룩하게 되는 과정으로 실수와 실패가 늘 연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듯이 신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신자의 가정이 자녀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며 설사 신앙의 원리를 알고 가르친다 할지라도 그것은 좋은 열매를 맺기 이전에 있는 것들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가 자기 중심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어떻게 겸손해지며 주님 앞에 어떻게 무릎을 꿇는가로 우리를 점검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 오늘따라 스승 되시는 박윤선 목사님이 그리워진다. 생각해보니 박윤선 목사님의 시대는 기도와 공부가 하나의 윤리이고 신앙이었다. 내세지향적 설교로 하나님 앞에 ‘지사충성’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시대는 다원주의의 영향 속에서 그 부족한 어떤 인생을 신앙으로 감수하며 살아내는가에 있다. 때로는 알고도 가고 모르고도 가는 것이 많다. 박윤선 목사님의 시대가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시대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간다. 우리 중에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교역자인 나도 본인에게 아픔이 있으면 자책하며 가게 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오해로 생긴 일인데도 어디 가서 그 흔한 하소연 한 번 못하고 쓰라린 마음을 평생 가슴에 안고 가야할 때도 있다. 또한 본의 아니게 가족에게 상처를 줄 때도 많다.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조건과 현실에서 마치 반석에서 물을 내신 것처럼 우리를 끌고 가신다. 우리의 가장 나쁜 조건 속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신다. 한국교회에서 박윤선 목사님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누구를 비판하고 정죄한들 그게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재를 뒤집어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누가 잘나서, 누가 오해해서 어떤 얘기를 하면 그 말을 받는 수밖에 없다. 아니, 받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 수 는 없다. 칼빈도 모든 것이 높이 평가되지 않았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분의 인생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있다. 우리의 가야할 길을 몸소 제시해주셨고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 시대에 맞게 진솔하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 자기를 확인하지 말고, 그 겸손함으로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묻히고 삼켜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은 내가 죽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권력이 있는 곳에서, 사회공동체 안에서 어떤 기반이 없는 자들이다. 이것이 영광으로 가는 기독교이다.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주께서 그 사역을 감수하신 것처럼, 이 길을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며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지고 있는 한심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도망갈 수 없는 길을 가야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역의 현장을 지켜내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인생의 역할이다. 바울의 사상은 “네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너에게 거룩하고 생명되고 진리가 되는 그 무엇을 줄 것이므로, 어떤 모습으로든지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그 어떤 자리까지 감수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범위 안에서, 비로소 자기 역할을 알게 된다. 우리는 영적인 문제와 거룩한 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실력 없음과, 주님께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과, 우리와 우리 자식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매어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관해 아무도 이 문제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혹 어떤 아픔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 저는 이건 정말 못하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제 자녀의 마음을 간섭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을 이길 힘을 전달하여 주십시오”라며 겸손하게 기도하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일에서 “왜? 어떻게?”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그것들을 허락하고 만드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끌고 나와서 고생시키는 것에 대하여 감격할 줄 알아야 한다. “왜 태어나게 해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들었어요? 도대체 이게 뭐에요?”라고 하는 것은 자식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나쁜 말이다. 성경에는 감사한 말, 감격하고 만족하는 말, 알아듣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자신의 모든 생애 속에서 경험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희로애락, 절망과 탄식, 갈등과 배신, 감격과 후회, 비탄과 탄성들이 모두 들어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인생과 신앙의 스토리를 겸손함으로 받아 우리의 한 시대를 넉넉히 이기며 걸어가야 한다.
642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7> 신천지의 이씨가 말하는 ‘실상’은 만들어 놓은 자작품_유영권 목사 파일
편집부
5084 2015-02-10
신천지의 이씨가 말하는 ‘실상’은 만들어 놓은 자작품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신천지는 이렇게 주장한다. ‘기독교회는 추수밭이다. 추수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 알곡들을 추수해야 한다. 추수하는 방법은 말씀으로 한다.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말씀을 받아먹으려면 말씀이 있는 곳으로 와야 한다. 말씀 즉 영의 양식 중에 특별히 때를 따라 먹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예언은 응할 때가 있고, 그 실상을 반드시 깨달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예언의 내용을 모르면, 예언이 성취되어도 약속한 말씀대로 나타난 실상을 알아 볼 수 없다. 때를 따라 먹어야 할 영의 양식을 제때 먹지 않으면, 우리는 그 시기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특히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당대의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실상을 예언의 말씀과 함께 깨닫지 못하면 화를 입게 된다.’ 이 주장대로라면 예언된 말씀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실상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때를 따라 주는 양식을 먹어야만 화를 입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화를 입지 않으려면 성경에 어떻게 예언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고,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는가를 알아야 하며, 그러한 역할을 할 사람을 만나야만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을 만나면 어떤 것이 예언되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고,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생생하게 증언을 들을 수 있어서 그가 새 목자인 것을 알 수 있고, 새 목자인 그의 입을 통하여 마지막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교훈과 지침을 받을 수 있고, 조치를 취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할을 하는 곳이 신천지이며, 이 역할을 하는 자가 이씨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씨는 자신이 보았다는 실상을 증언차원에서 쏟아냈다. 그렇다면 이씨가 말한 실상들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맞아야 한다. 만일 맞지 않는다면 이씨의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그는 거짓말쟁이요, 성도들을 미혹하여 망하게 하는 사기꾼으로서 마귀의 앞잡이요, 마귀새끼임을 자증하는 것이다. 신천지에 있어서 실상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이미 수없이 많은 실상들이 거짓으로 드러났고, 현재도 실상의 거짓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여기 그들의 거짓 실상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신천지집단 명칭과 관련하여 신천지의 정확한 이름은 ‘신천지예수교장증거장막성전’이다. 이 이름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자신들의 이름은 사사로이 지은 것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대로 나타난 이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름인 ‘대한예수교’라는 이름에 대해 자신들의 이름과 비교하면서 폄하하는 글을 이씨의 책 ‘천지창조’에서 다음과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작은 나라이며, 대한예수교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예수교를 의미한다. 그러나 신천지는 새 하늘 새 땅이라는 뜻으로, 신천지예수교라고 하면 하늘과 땅, 산 자와 죽은 자 전체를 두고 말하는 크나큰 예수 교단을 의미한다. 이는 대한예수교라는 명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보혜사가 이끄는 신천지는 그렇게도 형편없는 이름으로 폄하한 대한예수교라는 이름을 적어도 2003년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이씨는 그의 책 천지창조에서 1984년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창립, 선포하였다고 하고 있는데, 신천지의 1999년판 새신자교육교재에도 대한예수교신천지성전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씨는 ‘신천지’라는 이름이 의미 없이 붙여진 명칭이 아니라 성경에 예언대로 쓰고 있다고 하며, 어느 교회가 ‘신천지’라는 이름을 쓰고 있냐고 하면서 신천지가 계시록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곳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대한예수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곧 저들의 수준과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2. ‘서기’ 사용과 관련하여서 신천지는 ‘신천기’라는 표현을 쓴다. 신천지는 1984년에 창립하였고, 이후로 ‘신천기 00년’ 식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저들의 문서 및 책들에는 신천기가 아니라 서기로 표기된 부분이 널려져 있다. 이런 표기 사례는 신천지 외의 사람들에게는 별 것이 아니지만 신천지에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예루살렘보좌마크와 관련해서 신천지에는 보좌마크가 있다. 보좌마크는 신천지가 어떤 곳인지를 그림으로 설명해 준다. 신천지가 어떤 곳인지 알려면 성경에 신천지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알면 된다. 이러한 신천지를 상징적으로 알리는 것이 보좌마크 그림이다. 그러므로 보좌마크의 그림은 신천지가 계시록에 예언된 새 하늘과 새 땅임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신천지가 예전에 사용하던 보좌마크와 현재 사용하는 마크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이씨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먹은 진리의 보혜사가 맞는가? 4. 일곱교회에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 데 사실인가? 이것과 관련하여 이씨는 횡설수설하고 있다. 1986년판 ‘계시록완전해설’ 머리말에서는 책을 받아먹고 편지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씨의 책 ‘천지창조’에서는 편지부터 하고 책을 받아먹었다고 하고 있다. ‘계시록완전해설’ 머리말에는 “1980년 봄 구름을 입고 오시는 성령체에게 안수 받고 책과 지팡이를 받게 되었으며”, ‘대적자교리반증’이라는 책에서는 “선생님은 1977년 가을 예수님께 안수와 지시를 받고 과천에 다시 왔으며, 1979년에 편지를 했고, 가을 무렵에 열린 책을 받고”, ‘천지창조’에서는 “1977년 가을 요한계시록1장과 계시를 받고 과천 첫 장막에 왔다. 79년에 장막성전에 편지했고, 1980년 초 천사로부터 작은 책을 받았고”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가? 실상을 보고 증언한다는 보혜사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5. 7천사 100일 양육진상 장막성전(유재열)의 시작과 관련하여, ‘종교세계관심사(전편)’과 ‘신천지 발전사’에선 ‘1964년 호생기도원-> 1966년2월17일 다락방기도회-> 1966년3월14일 첫 장막 창립일-> 1966년4월4일 청계산 입산 초막에서 100일간 양육->1966년6월1일 장막성전착공-> 1966년6월24일 장막성전 완공’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그러데 ‘종교세계관심사(후편)’에선 입산 일을 1966년2월17일로 변경하여 증언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양육을 100일간 받았다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57일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지적을 받으면서 억지로 100일을 채워야 하는 부담을 느껴서 결국은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해서 신천지 사람들은 이씨가 틀린 것이 아니라, 이씨가 하는 말을 받아 적은 사람들이 잘못 알아들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거짓은 물론이고, 진실치 못한 이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6.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와 관련한 사건 계시록 12장에 ‘해를 옷 입은 아이를 밴 여인’에 대한 내용과 관련해서 이씨는 해괴한 실상을 말하였다가 망신을 당하였다. 이씨는 해를 옷 입은 아이를 밴 여인을 유재O이라고 하고, 아이를 이씨 자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계시록 12장에 해를 옷 입은 여인이 독수리 두 날개를 입어 광야로 도망하여 1260일 동안 양육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 ‘해를 입은 여인은 유재열이고, 광야는 미국이고, 독수리 두 날개는 대항항공 비행기이고, 1260일은 1980년9월14일부터 1984년3월14일까지 즉 3년 반이고, 양육하기 위하여 마련된 곳은 웨스트민스트신학교로서, 유재O이 양육을 받아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면서, 유재O씨가 웨스트민스트신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증거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짜로서 판명되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자신이 따라다니면서 확인한 것도 아니고, 저들이 그렇게 말하여 자신도 그렇게 말하였다고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이것이 이씨가 말하는 실상이다. 실상을 본 증인으로서의 실상이다. 실상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이다. 7. 아마겟돈에 대한 증언의 번복 계시록16장16절에 등장하는 ‘아마겟돈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씨의 책 천지창조와 계시록진상에서는 각각 다르게 증언을 하고 있다. 천지창조에선 아마겟돈을 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고, 계시록진상에선 첫 장막성전이라고 하고 있다.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먹은, 모든 실상을 본 보혜사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현 교육부장인 최동O이라는 사람은 지나가는 소가 웃고, 삼척동자가 다 웃을 소리를 하고 있다. 보혜사로서 이씨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이씨가 이긴자요, 보혜사임을 믿는다면 다 이유가 있어서 그와 같이 말을 하였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아마겟돈은 전쟁터인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첫 장막성전에서도 싸움이 있었고, 장막성전에서도 싸움이 있었으니, 그런 면에서 아마겟돈을 첫 장막성전이라고 해도 되고, 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여도 된다는 것이다. 아맛겟돈은 전쟁터라는 상징적 단어가 아니다.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다. 엉터리 주장을 해놓고는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고, 공격은 받고, 그러다 보니 더욱 웃지 못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해놓고 ‘맞죠?’라고 묻는데, 의문을 표하든지, 질문하는 사람은 없고, 아멘으로 일관하는 신천지에 미혹된 사람들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결론 이씨는 계시록은 예언으로서,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는 것으로 사실은 이미 성취되었다고 한다. 예언 성취의 과정과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실상인데, 모든 실상을 보고 목격한 증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자신이라고 강변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씨는 자신의 강변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자료로써 실상을 말해왔다. 이만희나 신천지에 있어서 실상은 핵심이다. 실상이 무너지면 이만희도 없고, 신천지도 없는 것이다. 이씨가 말하는 실상은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씨가 말한 실상이 왜 그렇게 엉터리가 많은가? 이씨가 말하는 실상이 엉터리인 이유는 자명하다. 이씨가 말하는 모든 실상이 모조품 혹은 자작품으로서 억지로 껴 맞춘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신천지에서는 거짓으로 드러나는 실상에 대한 비난에 대해 실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상 중에 실상은 이만희가 이긴자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실상인 이만희가 곧 이긴자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 과정 속에 언급되었던 실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실상을 통하여 이긴자 이만희가 성립이 되었다. 실상이 없으면 이긴자 이만희는 없다. 그런데, 결국 이긴자 이만희를 성립시킨 실상을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며, 틀려도 상관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저들의 머리 구조는 어떻게 된 것인가? 다음호에는 현재 신천지의 역사와 근황에 대해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대처방안을 살펴보자.
641 no image |치악골 아침사색| 별을 보고 달을 보며_변세권 목사
편집부
2228 2015-01-27
별을 보고 달을 보며 < 변세권목사, 온유한교회 > “사람이 편하고 여건이 좋아서 훌륭해지는 법은 없는 것 같아” 새해가 되고 날이 바뀌면서 다시 해도 길어지고 머지않아 우리 곁에 봄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때마침 작년에 두고 온 시간과 공간을 애써 잊으려는 듯 자주 새하얀 눈이 소리 없이 대지와 교회당을 덮는다.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쩌면 삶의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것, 모두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작년에도 우리는 각자의 현실과 삶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포함해서 잘도 이겨냈다. 그렇다면 올해도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우리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만들어 주실 것이다. 작년에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올해 또 오신 것이 아니고 올해 새롭게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할 때 가장 적당한 일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우리에게 주신 값진 은혜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동안도 우리가 못하겠다고 나가 넘어졌던 일들 속에 우리의 인생을 만드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이 담겨 있었다. 말씀 사역과 돌보는 사역 위에 신앙고백과 교회교육, 그리고 몸 된 지체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공동체를 이루게 하셨다. 또한 소극적인 의미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실수하고 연약하고 부족했던 것들도 많이 있었다. 어찌 작년뿐이랴,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지워주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시며 채워주셨다. 설사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그린 그림의 실수를 지우시는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분의 일하심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환경과 조건, 어떤 삶의 정황과 역사, 어떻게 만나는 사람도 그와 협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는 것이 없다. 지난날도 어떤 소원과 계획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장 싫어하시는 길로 인도하신 적도 있다. 고통의 바다로 끌고 가신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보면 우리가 소원했던 길로 갔더라면 후회하고 실패했을 일이 한 두 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요구했던 길로 가는 것을 성경이 허락한 적은 없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를 풍성하게 한 것은 고달팠던 일, 힘들게 고민했던 일,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던 일들, 많은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고 깊은 한숨을 쉬었던 것들이다. 역시 조금 살아보니 사람이 편하고 여건이 좋아서 훌륭해지는 법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만이 늘 한결같으셔서 우리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반전의 무대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올해도 차분하게 이 길을 걸어가 보자. 우리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훌륭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것을 감수하며 가는 것만이 정답일 뿐이다. 그나마 유능하고 훌륭한 친구가 있어서 우리를 이해하고 받아주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살아서 험한 꼴을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훌륭하게 보여주고 자신은 허망한 길을 걷는 것을 조심해야 된다. 성화의 과정은 ‘이렇게는 못해! 더 이상은 안 해! 말로는 못할게 없는데 왜 오늘을 살 방법은 없나? 오늘 닥치는 현실과 나의 못난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런 고민들이 많다. 우리의 거룩한 성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못난 행동과 결정에 그리스도가 늘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은 것 같이 우리의 삶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말을 전후해서 여러 모임에서 들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정리해보았다. 삶이란, 매일 아침마다 찾아오는 하나님의 도전이다. 우리가 묶여있는 현실을 하나님이 담아내신다. 오늘도 동일한 정체성과 목적으로 우리를 묶고 계신다. 인간은 한 입에서 모순된 말이 나오는 존재다. 하나님은 괜찮은 사람을 골라서 사역을 맡기시는 게 아니라 이 한심한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기적이 예수를 보내셨다. 하나님이 우리가 뭐라고 이 한심한 인생들을 하나님이 목적하셨으니 ‘순종하겠습니다’ 밖에는 우리가 할 말이 없다. ‘나를 세움으로 저들을 세웠고, 또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값싼 확신으로 입을 열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깊이에 대하여 입 다물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길 같지만 그러나 그 길이 승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설교로 성도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보자. 일찍 죽으면 행복이고 오래 살면 고생이지만 그래도 그 날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자로 신비한 웃음을 띠면서 오래 버텨보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죽을 수 있다는 믿음도 가져보자! 입 다물고 가자! 우리 중에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다. 오늘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이 가장 위대한 기적의 현장임을 기억하자. 사는 동안 비굴하지 말고 없어도 멋있게 살아내자. 그리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 하심의 방법에서 도망가지 말자. 아무것도 아닌 자로 아무것도 아닌 삶으로, 아무도 모르게 사역을 해 나가자! 마치 별을 보고 달을 보듯 바람이 스치듯이 이 길을 조용하고도 평온한 그 어느 날과 같이 차분하게 걸어가 보자.
640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6> 이만희의 오직 목적은 자신을 구원자로 만드는 것_유영권 목사 파일
편집부
3100 2015-01-27
이만희의 오직 목적은 자신을 구원자로 만드는 것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신천지는 이만희를 이 시대의 구원자로 만들기 위해 성경에도 없는 ‘목자론’을 만들고, 아담이 첫 번째 창조된 인물이 아니며 아담 전에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짐승과 같은 사람들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거짓말 만들어" "이만희는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촌 출신의 사람이이지만 예수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여 자기가 보혜사가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마지막 시대에 등장할 새목자이며, 자신을 통해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성취되었다고 억지 펴고 있어"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이만희는 자신을 구원자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주장들을 하게 되고, 이것이 중요한 교리를 이루고 있다. 1. 신천지의 목자론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자는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이씨는 자신 역시 구원자로 둔갑시키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위해 시대마다 구원자가 있다는 설을 다음 그림으로 설명한다. 2. 목자론의 근거가 되는 이중 아담론 이러한 목자론을 주장하려면 아담이 처음 사람이면 안 된다. 때문에 가인을 죽인 사람들, 가인과 결혼한 여인, 이들이 누구인가?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최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아담이라면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라고 질문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신천지 사람들과 처음 접촉이 되었을 때 결정적으로 저들의 성경 해석에 관심을 갖게 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 이 논리로 아담이 최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의심을 하게 하고, 아담이 처음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새로운 질문을 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 목자론이다. 신천지의 목자론 핵심 내용은 아담 전에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말씀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짐승과 같은 사람들로서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한 목자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 처음 목자가 아담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신천지가 창세기 2장 7절에 “생기”를 곧 말씀이라고 주장을 하는 이유이다.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말씀으로 구원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을 목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목자론을 주장을 하면서 결국 이만희를 마지막 목자로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교리가 노정교리이다(문제는 현재 이중아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사람들이 이씨와 같은 사람들을 인정케 되는 중요 배경이 되고 있다). 3. 신천지의 노정교리 그들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이 창세기라고 말하면서 창세기 1장은 그런 면에서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나침반과 같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접하는 창세기 1장을 가지고 다룸으로써 저들의 주장이 옳고, 성경적이라는 동의를 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였지만, 창조한 상태로 있지 못하여 재창조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동의를 얻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와 재창조는 성경 역사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러한 이유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택한 목자와 선민들이 끝까지 견디며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배도를 하기 때문이며, 배도는 자연스럽게 멸망을 가지고 오며, 멸망은 저절로 오지 않고 멸망케 하는 주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선민이 배도하여 멸망하는 상황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을 멸망한 상태로 둘 수 없어서 새로운 목자를 보내 구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이 성경 역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정의 최후는 언제란 말인가? 최후의 노정을 종말과 함께 언급하면서 이씨 자신을 최후에 새목자로 내세운다. 4. 이만희의 종말론 목자선택, 선민과의 언약과 배도, 이방에 의한 선민 멸망, 새목자에 의한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노정을 설명하다가 마태복음 24장 15절 전후의 말씀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근거로 마지막 때 역시 동일하게 배도-멸망-구원이라는 순서에 의하여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이씨는 마지막 구원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마지막 새목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종말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있을 배도와 멸망 및 구원의 노정을 목격하고 모든 것을 이긴 사람이 마지막 새목자라고 하면서, 그것이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위해 이씨는 앞에서 이미 다룬 것처럼 성경의 마지막 종말을 우주적 종말이 아닌,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5. 구약과 신약의 역할론 사람들은 당연히 이만희가 새목자라는 주장에 대해 의심을 갖는다. 이러한 의심을 풀게 할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이씨는 이것을 구약과 신약의 역할론으로 해결해간다. 구약은 초림 예수님에 대한 약속이고,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께서 초림하실 때 유대 땅 어느 조그만 마을로 오신 것처럼 다시 오실 새목자 역시 우주적이고 거국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마을 한 곳으로 조용하게 오는 것이다. 과천에 사는 이만희가 어떻게 구원자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신천지의 답변이다. 그럼에도 이만희에 대한 의심을 포기할 수 있는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 보혜사론이다. 6. 신천지의 보혜사론 이만희에 대한 의심은 예수님 초림 때 사람들로부터 받은 의심으로 대신한다. 우선 예수님이 사람이었고, 예수님 역시 예수님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였는데, 사람인 예수가 어떻게 보혜사가 되었는가? 하나님의 영이 예수와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과 비교 대입을 한다. 마찬가지로 이만희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보혜사로 소개한다. 왜냐면 평범한 사람을 구원자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촌 출신의 사람이이지만 예수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여 보혜사가 되었다고 하는 주장에 사람들이 오히려 환호하는 장면을 보면 이만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 부분을 왜 활용하는 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하여 그가 보혜사가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을 위해 신천지는 ‘예언과 성취’라는 것으로 설명을 한다. 7. 역사, 교훈, 예언, 실상(성취)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신천지의 성경론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봤느냐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고, 사람들이 알고 인정하게 된 것은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대로 다 보여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빙자로 이만희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등장할 새목자 역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보잘 것 없지만 이만희가 새목자요 구원자인 것을 알 수 있는 방법 역시 말로 ‘이다, 아니다’ 하지 말고, 새목자에 대하여 예언을 해놓은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이만희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닌지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신천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성취, 즉 실상이다. 8. 환상계시와 실상계시(계시론) 그리고 봉함교리 신천지는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환상계시는 환상으로 계시하여 주었다는 것인데, 환상계시를 주장하는 이유는 환상계시의 특성으로 이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는 봉함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서이다(사 29:11,12). 비록 계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봉함되어 있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으며, 예언된 대로 성취가 되어 실상으로 나타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데, 이 실상을 보고 들은 새목자를 통하여 알게 된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이다(신천지는 ‘계시’의 의미조차도 모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을 근거로 신천지는 이만희가 바로 그 새목자이며, 신천지증거장막성전에서 일어난 일을 살피면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신천지가 열두지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이름이 장로교, 감리교 이런 것이 아니라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도 다 이런 까닭이며, 때문에 계시록에 예언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살펴보고, 신천지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신천지가 계시록에 기록된 새하늘과 새땅이고,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있는 이만희가 보혜사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신천지를 다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이 바로 '실상' 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치는 말 이러한 이유로 신천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실상이다. 실상은 저들의 말대로라면(신천지는 실상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이며, 실제로 본 것이며, 일어난 일로서 일어난 사실을 전하는 것이며, 이것을 근거로 이만희가 보혜사임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실상” 내용 중 단 하나라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안 된다. 때문에 신천지가 주장하는 실상이 성경적인가? 성경적이지 않은가? 라는 이 싸움보다도 신천지가 실상이라고 한 사실들이 하나라도 거짓됨 없이 일어난 사실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들의 실상은 모든 것을 억지로 꿰맞추어 놓은 것으로 올바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정확히 맞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아니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라도 있어선 안 된다. 실제로는 과연 어떨까? 다음호에서는 ‘신천지 실상’의 실체를 살피며 그들의 주장이 허상이며 거짓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639 no image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5> 신천지의 교리와 그 배경_유영권 목사
편집부
3368 2015-01-13
신천지의 교리와 그 배경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정신병자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를 해대는 신천지인들은 이긴자를 만나야만 영생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면 이긴자인 이만희를 찾아야 한다고 세뇌되어 있어" "이만희는 시내산과 과천을 연결시키면서 ‘시내산’에서 ‘시내’가 한자로 ‘천’(川)이기에 과천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면서, 이기는 자를 통해서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해" 신천지의 교리를 살피려고 하는데, 신천지의 교리를 쉽게 살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곧 신천지의 교리는 모든 것이 이만희 씨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1. 신천지 교리는 이만희를 이긴자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신천지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가 이긴자 사상이다. 이긴자를 통하여 영생을 하게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신천지의 교리는 이만희를 이긴자로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신천지의 이긴자 사상과 관련하여 핵심을 이루는 것이 실상이다.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사건이 실제적으로 일어난 현장의 모습을 실상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긴자는 모든 실상을 목격한자로서, 이만희 씨는 줄곧 실상을 증언함으로 자신이 이긴자임을 확인시켜왔다. 당연한 결과로써 실상이 맞을 리 없다. 실상이라는 내용과 관련하여 모순들이 속속들이 들어났는데, 현재 신천지는 교육을 통하여 말하기를 “주변의 실상이 뭐가 중요한가? 이만희 씨가 이긴자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실상이다. 이거면 된다”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신천지에서 이긴자 사상은 이만큼 중요하다. 이같은 이유로 신천지의 교리는 이만희를 이긴자로 만들기 위한 수순에 따라 만들어졌고 동원되고 있기 때문에 이 순서를 역순으로 살피면 저들의 교리 및 내용을 파악하는데 수월하다. 이러한 수순으로 살펴볼 때 그 끝에 있는 것이 계시록이다. 계시록 해석은 신천지 교리 교육에 화룡정점이다. 때문에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을 살피면서 전체 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천지는 계시록에 왜 큰 관심을 보이는가? 신천지인을 만났을 때 들을 수 있는 질문 중 하나가 ‘요한계시록을 아느냐?’이다. 목회자를 만났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아느냐?, 설명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해댄다. 계시록을 모르는 목회자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신천지인들은 무슨 배짱으로 감히 목회자들에게 계시록을 가지고 토론을 해보자고 덤비는 것일까? 신천지인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목회자들 역시 쉽게 대답을 한다. ‘좋다’. 목회자가 성경을 아느냐고 묻는데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기에 하는 대답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질문을 여러 성도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받는다면, 모른다는 말을 하기란 더욱 쉽지가 않다. 혹 이렇게 해서 신천지인과 계시록에 대해서 토론이 시작되었다고 하자! 결론은 어떻게 끝이 날까? 보기 좋게 신천지인이 나가떨어질까? 아니면 항복하는 목회자를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신천지인은 ‘역시 기존교회 목회자들은 계시록을 몰라’하면서 의기양양해서 돌아가고, 목회자는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어! 바보들 아냐!’ 하며 씩씩하는 모습으로 끝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신천지인들의 계시록관 때문이다. 목회자들의 관심은 계시록의 해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해석에 대해 옳고, 그름을 결판지려면 서로가 인정하는 잣대가 있어야 하는데, 신천지와 사이에는 그러한 공통잣대가 없다. 때문에 신천지인이 보기에는 목회자가 하는 모든 계시록 해석은 실상을 보지 못한 사람의 주장으로 들린다. 반면에 목회자 입장에서 볼 땐 정신병자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를 해대는 신천지인들을 보면서 그렇게 만든 이만희를 생각하면서 화가 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대체 신천지의 계시록관이 어떻기에 그러한가? 신천지가 계시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이만희=구원자 구도를 주장하고자 함이다 신천지에서 구원자는 이만희다. 신천지인들은 이만희를 ‘총회장’, ‘이긴자’, ‘보혜사’ 라고 부른다. 이만희가 구원자인가? 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반응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의심에 대한 논쟁을 피하고 싶은 까닭이다. 그들이 부르는 찬양가사에는 ‘이긴자=구원자’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긴자는 무엇이며, 이긴자의 자격이 무엇인가를 보면 이러한 저들의 구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만희 씨의 글(요한계시록실상)을 보면 이긴자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구약 39권이 예수님 한 분을 증거한 책이라면(요5:39) 신약 27권은 이기는 자 한 사람을 알리는 말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상고하여도 이기는 자를 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영생과 천국을 얻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 사단의 무리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는 자들이 여러 명이 있으나 그들이 전부 예수님께서 ‘약속한 목자’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고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과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기록 받는 이기는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수의 이기는 자들과 이 약속한 한 목자 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이 씨의 책, p.101). “주 재림을 앞둔 오늘날 모든 성도는 계시록이 응하는 것을 확인하여 무엇보다 2, 3장에 약속한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이 씨의 책, p.102)“따라서 만국 백성은 이기는 자를 통해서 천국과 영생을 얻고 예수님께 갈 수 있다” 이상으로 볼 때 신천지인들에게 이만희는 어떠한 존재인가? 이긴자를 만나지 못하면 구원을 가질 수 없으며 영생과 천국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긴자를 만나야만 영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면 이긴자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만희는 자신을 이긴자로 만들고 있다. 4. 그러면 이긴자의 자격은 무엇인가? “본장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목자 한 사람을 우리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그는 바로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와서 하늘에서 온 열린 책을 받아먹고 통달한 자요 보혜사 성령의 위치에 있는 본장의 천사가 함께하는 예수님의 대언자이다”(이 씨의 책, p.217). “계시록 성취 때에는 사도 요한의 입장에 있는 목자에게 천국에 관한 설명을 듣고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이 씨의 책, p.117). “이 천사가 보혜사 성령이면 그가 함께하는(요 14:17)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도 보혜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 씨의 책, p.210). 이상을 살펴보면 이긴자를 사도 요한과 비교하고 있다. 먼저 계시록에 등장하는 사도 요한의 역할을 살펴 찾는다. 새 목자라고 하는 이긴자는 기록에 나타난 사도요한의 역할을 동일하게 현장에서 그 전철을 밟는 자이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환상으로 지시하시는 대로, 주님께서 환상으로 보이시는 대로 본 것을(이미 이루어진 것과, 현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일과, 장차 될 일)기록하고 증언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긴자는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일어난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목격하여 본 것과 이루어진 일과 장차 될 일을 증거를 하는 자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 와중에 멸망자들과의 사이에서 말씀과 증언을 하며 이긴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긴자의 자격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조건들이 성립되어야 하는가? 5.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이 일어나는 장소에 대한 신천지의 주장 이긴자가 되려면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사건을 목격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계시록에 기록된 내용과 시점이 역사적, 우주적이어선 안 된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계시록은 역사적, 우주적 종말적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어느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어야 한다. 이만희가 과천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모든 이단들이 동일하게 떠들어 대는 한국이 동방이라는 주장의 배경이다. 이만희의 어리석음은 극치를 이룬다. 시내산과 과천을 연결시키면서 과천이 왜 새 하늘과 새 땅인가?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모세의 시내산이라는 것이다. 모세의 ‘시내산’에서 ‘시내’가 한자로 ‘천’(川)이라는 것이다. 지나가던 소가 다 웃을 소리를 하고 있을 만큼 무지하고 무식한 자이다. 이렇게 한 장소가 계시록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주장하려면 ‘성경대로’를 강조하는 이만희로서 이 모든 주장이 성경적임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저들의 교리인 것이다. 마치는 말 다음 호에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교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살피기로 하고, 오늘은 신천지와 목회자들과의 사이에 논쟁이 붙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니골라당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666은 무엇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은 무엇인가? 해를 입은 아이를 밴 여인은 누구인가? 만국을 다스릴 태어난 아이는 누구인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무엇인가? 바벨론은 무엇이며, 음녀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목회자들은 역사적으로, 종말적으로 연구하고 살펴서 답하려고 할 것이다. 신천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 현장을 이긴자인 이만희가 봤고, 신천지인들은 이긴자인 이만희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을 들어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은 오OO, 해를 입은 여인은 유OO, 아이는 이만희라고 확신하고 있기에 이렇게 답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을 보면서 삯군목자, 거짓목자,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며 비웃으면서, 의기양양 한 채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악한 사기꾼에 사기를 당하여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가 된 줄 모르고 말이다.
638 no image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4> 마약에 중독된 것과 같이 만드는 신천지의 방식과 내용_유영권 목사
편집부
3220 2014-12-30
마약에 중독된 것과 같이 만드는 신천지의 방식과 내용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신천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읊어대는 말이 있다. 성경 갖고 얘기하자는 말이다. 실제로 신천지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면 신천지가 주장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성경구절을 들이민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에 대해 알고 싶은 심리가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에 성경을 들이밀면서 접근하는 신천지의 수법에 사람들이 놀아나게 된다. 저들의 성경풀이에 대해 의문을 던지려면 나름 성경을 보는 정확한 시각이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성경구절을 갖고 파고드는 신천지의 성경풀이가 옳은지, 그른지 알아볼 틈도 없이, 아니 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들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신천지는 철저하고 교묘하다. 이에 저들의 수법을 자세히 알아보자. 1. 성경개론을 시작하기 전에 대상 상대의 형편과 수준에 맞는 밭갈이를 한다. 세미나 중에 받은 질문이다. ‘목사님! 성령도 받았고, 은사도 받았고 그런데도 신천지에 넘어갈 수 있나요?’ 신천지의 모든 결론은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살피고, 상대의 형편과 특성에 맞추어 결국은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쪽으로 유도한다. 신천지의 선교방(복음방)에서 첫 교육내용은 다음과 같이 대상 상대에 따라 준비되어 있다. 무지파, 지성파, 맹신파, 은사파, 믿음파, 기복 신앙파, 부자의심파 등이다. 신천지가 내용뿐만 아니라 적용과 응용에 있어서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2. 성경개론을 시작으로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성경개론은 성경의 일반적 지식이다. 일반적 성경개론을 언급하기 때문에 처음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의심하지 않게 한다. 주제와 제목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그들은 내용을 다루면서 새로운 정의들을 내려준다. 물론 이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해석과 설명을 해줄 때마다 성경구절을 일일이 제시해 주기 때문에 배우는 입장에서는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구절을 제시하니 틀린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고,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성경공부를 그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제는 새로운 주장과 해석 그리고 설명을 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성경구절을 들이대미고, 들이대미는 성경구절마다 신천지가 말하는 설명이나, 해석에 딱딱 맞아 떨어지게 하니 배우는 입장에서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들이야 말로 성경을 제대로 알고, 가르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3. 성경의 짝맞추기식으로 신천지 교육만이 옳은 성경풀이라고 확인 및 세뇌를 시킨다. 성경에 짝이 있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에게 이사야 34장 16절을 읽게 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그리고 나서 마치 성경마다 짝이 있는 것처럼 짝을 찾아 제시한다. 첫 번째 예) 마태복음 13장 24절부터 30절까지를 읽으라! 무슨 비유인가? 이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은 누구인가? 좋은 씨는 무엇인가? 원수는 누구인가? 가라지는 무엇인가?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은 인자, 원수는 마귀,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천국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사람들이요, 가라지들은 마귀의 씨, 즉 마귀의 말씀을 먹은 자요. 마귀는 용, 짐승, 뱀으로서 즉 옛적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지금은 기존교회의 목사들이니, 기존교회 목사들의 말씀을 받아먹는 사람들이 가라지라는 것이다. 때문에 기존 교회에서 말씀을 받아먹는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존 교회의 목사들에게서 말씀 혹은 상담을 받으면 죽는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하는데, 지금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자에게 가야 하나님의 말씀, 영생의 말씀을 먹을 수 있고, 영생을 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순 엉터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일이 성경구절을 갖다 대는 식의 주장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예) 요한복음 3장 5절을 읽으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거듭남으로, 무엇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물과 성령으로, 물은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2장 23에서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니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거듭나게 하는 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거듭나고, 영생을 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참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가야 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이 사람들의 수작이고, 주장이다. 이와 같이 모든 성경은 짝이 있다고 확인해 주고, 중요한 주장과 교리들마다 짝을 찾아 줌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신천지의 가르침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더불어 짝교리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확실한 답을 주는 짝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의문을 가질 수 있겠는가? 더 이상의 생각이 왜 필요한가? 문제는 이러한 지식을 기존교회서는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신천지에서 배우는 것만큼 궁금한 것들에 대해 확실하게 가르친 교회가 없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물론 신천지의 짝교리는 처음부터 엉터리이며, 위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 요한복음 3장의 물에 대한 해석 모두가 엉터리이며, 잘못된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단순 명료하게 성경이 답을 주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신천지가 성경풀이를 하면서 ‘우리 생각에는~’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였다면 지금의 신천지는 없었을 것이다. 신천지의 특성은 질문에 대해 단순명료하게 답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성경으로 제시하여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천지식의 성경공부방식이 일단 접수가 되면, 신천지의 성경풀이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신천지는 이때부터 기존교회가 왜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성경교육을 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면서, 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여 기존 교회와 목사들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입시키고 싶은 자신들의 교육내용을 하나 하나 성도들에게 주입을 시킨다. 4.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신천지의 질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신천지 교육에 들어가면 교육 중에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아래의 내용은 궁금중을 유발시키고, 자신들의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으로서 일부만을 옮겨놓았다. 1) 하나님께서 지으신 첫 사람이 아담과 하와라면 아담과 하와가 출산한 자녀는 가인, 아벨, 셋인데 가인이 결혼한 아내들은 어디서 출현한 것인가? 2)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한 몸으로 만들면서 부모를 떠나라고 하였는데, 아담의 부모는 누구인가? 3) 신앙인에 있어서 성경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어떻게 존재하는가? 4) 선, 악 구분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사단의 출현 배경과 정체는 무엇인가? 5) 영분별은 어떻게 하는가? 언약한 선민이라는 사실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느냐? 6) 아담이 범죄 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만 소망을 이룰 수 있는가? 7) 성령을 받고도 성경에 무지할 수 있는가? 예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8)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 그리고 행함과, 인정할 수 없는 믿음과 행함은 무엇인가? 9) 비유란 무엇인가?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비유는 언제 풀어지는가? 10) 생명나무와 선악나무 과일들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실제의 과일이라고 생각하는가? 11)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이 하나님의 교회라면 추수는 어디서 하는가? 마치는 말 위의 질문들은 일반 성도들의 입장에서 질문을 받으면 궁금증이 유발될만한 내용들이다. 이렇게 질문을 하고, 성경에서 해당되는 성경구절을 제시함으로 찾게 하니, 저들의 주장을 부정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정은커녕, 신천지와 같이 가르치지 않은 기존교회들을 불신하는 마음들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신천지에서 성경을 들이밀고 하는 모든 주장들이 먹히게 되어, 결국은 신천지의 총회장이라고 하는 이만희가 보혜사요, 이긴자요, 이만희에게서 나오는 말씀을 받아먹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엉터리 주장까지도 먹히게 된다. 다음호에는 신천지의 주요 교리와 그들이 말하는 주요교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 근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637 no image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3>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신천지의 수법_유영권 목사
편집부
4280 2014-12-16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신천지의 수법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되돌아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의도적이고 교활한 신천지 교리” 신천지에 깊이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천지에 빠지면 왜 헤어 나오지 못하는가? 신천지에 깊숙이 빠지기까지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우리의 관심이다. 신천지에서 나온 사람들을 상담을 할 때마다 동일하게 듣게 되는 신천지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첫째는 왜 진작 신천지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왜 신천지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나? 신천지에 대한 정보가 주변에 홍수와 같이 넘치는데 어떻게 이토록 오랜 시간을 무시하고 살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말이다. 둘째는 “그래도 성경의 눈을 뜨게 한 곳은 신천지야!”라는 말이다. 신천지 전체에 대해, 이만희에 대해 부정을 하면서도, 그곳에서 배운 성경공부 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신천지가 성경을 엉터리로 보도록 망쳐놓았다고 탄식을 해도 부족한 판인데, 신천지에서 나온 후에도 신천지가 성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저들의 성경공부 방식과 내용이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이며, 그렇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 이 부분과 관련한 신천지의 수법에 있어서 교리적인 부분을 알아본다. 1. 입막음교리 신천지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상황과 내용을 누구에도 알리지 않는다. 이유는 신천지의 입막음교리 때문이다. 그들은 마태복음 13장 44절부터 46절까지의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진주의 비유를 근거로 든다. 한 사람이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였다. 발견을 하였지만 아직 자신의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로 작정하였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사 자신의 밭을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밭의 보화는 그의 것이 되었다. 신천지는 본 비유를 근거로 입을 열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 놓는다. 신천지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얻게 한다. 만일 보물을 발견하였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바로 알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 사람의 것이 되었겠는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겠는가? 당신이 보물을 발견하였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여기서 ‘보물’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진리의 말씀’이다. 무슨 ‘말씀’인가? 영생을 갖게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알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완전히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알리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공부하면서 아무리 놀랍고, 신기하고, 기뻐도,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알려서도 되지 않고, 상의해서는 안 된다. 만일 섣불리 신천지 성경공부를 주변 사람에게 말하게 된다면, 쉽게 신천지 정체가 탄로나 신천지가 말하는 영생을 갖게 하는 말씀 즉 보물을 가질 수 없다. 이것이 신천지의 입막음교리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영생을 담보로 확인시키며 입막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입을 여는 것이 쉽지 않다. 당연히 입막음교리의 근거로 제시한 ‘밭에 숨겨진 보물’ 비유를 자기 입맛대로 왜곡해서 해석을 하고 적용시키고 있지만 일반 성도들이 알아채기 쉽지 않다. 2. 신천지의 모략 교리(거짓말 교리) 신천지에 가서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 신천지 냄새가 난다. 당연히 신천지냐고 묻게 되는데, 신천지가 사실대로 말할 리가 없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고, 왜 거짓을 말하였느냐고 따지면, 당신! 영생을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처음부터 신천지라는 사실을 사실대로 밝혔으면, 당신! 어떻게 하였겠느냐? 이렇게 해서 거짓은 묻혀 지고, 신천지에 새롭게 몸담은 사람들도 거짓말의 화신들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맘에 걸리는 일일 것이다. 스스로 껄끄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 양심의 가책은커녕, 거짓을 당연시 여기며 거짓을 일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들은 모든 주장의 근거로 성경을 내민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고 넘어간다. 거짓말의 정당성 또한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 31절에서 성경은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도운 일과 관련하여 멸망하지 않았다고 칭찬을 하고 있다. 기생 라합이 한 일은 무엇인가? 정탐꾼을 숨겨준 일과 거짓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한 것이다. 라합의 거짓으로 정탐꾼들은 살았고, 라합도 멸망하지 않고 살았다. 만일 라합이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하나님께서도 라합의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겠는가? 이것이 거짓을 정당화 하는 신천지인들의 교리다. 신천지식의 주장대로라면 신천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라합은 그들로부터 멸망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정탐꾼이 거짓을 말하였는가? 그들로부터 멸망을 당하기를 바라지 않는 입장에 있는 라합이 거짓말을 하였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짓을 말하라고 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런데 신천지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거짓을 말하여도 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로마서 3장 7절 말씀이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신천지는 위의 말을 바울이 하였다고 생각한다. 즉 바울도 하나님의 참되심을 풍성하게 할 수 있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본문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신천지가 바울이 한 말이라고 언급한 로마서의 말씀 역시 바울의 말이 아니다. 바울을 비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모함하고자 꾸민 말이다. 이것을 가지고 성도의 거짓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얼토당토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이 위의 두 성경본문을 놓고, 저들의 주장대로 이해시킬 때 본문 내용을 바르게 알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 야곱도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았듯이 “하나님을 위한 거짓말은 괜찮다”라고 거짓을 정당화하도록 자연스럽게 세뇌되어 간다. 신천지 신도들은 거짓말로 위장도 잘하고, 포교를 위한 위장단체를 만들어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연기 연습이나 스피치를 교육받는다. 다단계 사기꾼처럼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너무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니 저들의 정체를 알아채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3. 상담 및 사실확인을 막는 신천지의 가르침 신천지식 비유풀이를 통한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입막음 교리를 통하여 충분히 교육을 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성경공부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다. 영적인 이유로 거짓으로 완전 위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정보홍수 시대에 사는 만큼 신천지가 어떠한 집단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저들은 성경을 근거로 그 탈출구를 막아버린다. 선악과이야기는 치명적이다. 하와는 결론적으로 죽었다. 죽은 이유는 선악과(신천지에서 말하는 비진리)를 먹었기 때문이다. 선악과가 정말 과일일까? 선악과는 말씀이다. 누구의 말씀인가? 사탄의 말씀이다. 뱀은 사탄의 말을 전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뱀의 역할을 하는 세상 목사들의 말을 들으면 죽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결코 상담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악나무가 아닌 생명나무인 신천지 말씀을 들어야만 영생을 얻게 된다 라고 믿게 만든다. 수개월동안 그들만의 성경공부 프레임에 젖어 성경말씀이 맞으니까 신천지 센터 강사의 말도 당연히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신천지로부터 들은 내용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영혼을 죽게 하는 ‘선악과’라고 교육하기 때문에 정보를 통해 신천지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들을 접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는 말 이렇게 하여 신천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누구에도 알리지 않고, 자신들을 철저히 은폐시키면서 신천지 공부에 깊숙이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다음호에는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같이 신천지에 들어가면 꼼짝 못하게 만드는 저들의 성경공부 방식은 무엇이며, 내용은 무엇인지에 살펴보자.
636 no image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2> 성도를 빼가고 교회를 무너트리는 신천지의 수법_유영권 목사
편집부
3683 2014-12-02
성도를 빼가고 교회를 무너트리는 신천지의 수법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신천지는 추수와 관련해 거짓을 일삼는 일에 전혀 죄책감 갖지 않아” 신천지는 기존교회를 예수교회라고 칭한다. 당연히 자신들과 구분하려고 하는 의도이다. 예수께서 예수교회에 씨를 뿌렸다고 하고, 때가 되면 예수교회에서 알곡을 추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신천지가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때문에 신천지 사람들은 반드시 교회에서 전도하고 있다. 혹 교회 밖에서 전도를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들의 주장을 심각하게 뒤엎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천지는 기존교회를 대상으로 성도들을 빼간다. 1. 한 성도 빼내기 성도들을 빼감에 있어서 가능한 모든 수법과 방법을 동원한다. 전도를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를 철저히 감춘다. 한 성도를 빼 내가가기 위해 적어도 세 사람이 붙는다. 저들의 악랄한 수법을 보자. 1) 추수꾼1 전도대상을 찾는다(빼내기로 한 기존교회 대상을 저들은 ‘땅콩’이라고 부른다). 충분히 친분을 쌓는다. 정보를 캐낸다. 정보를 다른 추수꾼들에게 넘긴다. 우연을 가장하여 다음 타자 즉 추수꾼2에게 땅콩을 넘긴다. 2) 추수꾼2 추수꾼2는 실질적으로 땅콩을 신천지로 이끌어갈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자신이 직접 알리지 않고 숨긴다. 추수꾼2는 추수꾼3을 ‘동생’ 혹은 ‘이웃언니’ 혹은 ‘친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어떤 관계로 소개를 하든지 교회를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소개를 한다. 땅콩 입장에서 볼 때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적극적으로 교회로 인도하여 친분을 갖고 지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추수꾼3이 땅콩에게 접촉이 된다. 3) 추수꾼3 추수꾼3은 땅콩으로 하여금 추수꾼2를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작업을 한다. 추수꾼2의 전력을 화려하게 가장하여 소개를 한다. ‘전도사’ ‘전직목사’ 혹은 ‘선교사’ ‘외국한인교회목사’ ‘유학생’ 등으로 소개를 한다. 기도의 능력이 있어 기도만 하면 응답을 받는 사람으로 소개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거짓이다. 4) 추수 마무리 수법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소개된 추수꾼2가 땅콩에게 접근한다. 추수꾼3을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핑계로 밥을 사겠다고 한다.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소개가 된 터라 땅콩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추수꾼2는 땅콩을 만나 추수꾼3을 잘 인도해 줘서 고마워 늘 기도하고 있다고 하면서 기도 속에 땅콩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미 다른 추수꾼들을 통해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땅콩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건드린다. 땅콩은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고, 추수꾼2는 이러한 단계를 밟아 자연스럽게 소위 복음방(가정집, 빵집 등 다양함)으로 인도되어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이 때 복음방에 참여하는 사람이 3-7명이 되는데, 자신을 빼고 대부분이 이미 신천지인들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이들은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한다. 신천지는 이들을 ‘잎사귀’라고 부른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들을 위장하며, 거짓으로 시작하여 거짓으로 끝내기 때문에, 저들의 걸린 성도(땅콩)는 그가 누구일지라도 미혹되지 않기가 쉽지 않다. 간혹 장로, 권사, 집사, 목회자 자녀, 직분자 자녀 등이 신천지에 가는 것을 보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신천지가 대단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나요? 이런 질문들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고, 저들의 수법 자체가 누구라도 속일 수 있을 만큼 철저히 계산된 거짓으로 일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들은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이라 믿어 거짓을 일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이 부분 대한 대처방안은 차후에 하도록 하겠다. 2. 교회 하나를 통째로 빼앗기 신천지인들은 한 사람(땅콩)을 빼가기 위해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이런 식의 수법을 활용하던 중에 효율성의 문제를 따져, 성도 하나가 아닌 교회 하나를 통째로 빼앗는 계략을 짜내어 실행해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산 옮기기’이다. 한 사람이 전도되어 들어간다. 목사로 하여금 하나님이 보내주신 일꾼으로 보이도록 자신을 관리한다. 다음 단계로 전도를 한다. 물론 전도되어 오는 사람들 모두가 신천지 사람들이다. 그 숫자가 충분하다 싶으면, 목회자를 걸어 넘어트려 쫓아내고, 신천지 쪽에 한 사람을 초청하는 식으로 목회자를 세운다. 이렇게 하여 한 교회가 졸지에 신천지로 넘어가는 것이다. 00교회에 추수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해당 교회에 알렸다. 교회의 처음 반응은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얼마 후 전화가 다시 왔다. 추수꾼으로 확인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도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도 신천지인이었다. 교회가 급해졌고, 다행히 세미나와 상담을 통해 문제가 해결 되었다. 바로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일들이다. 3. 교회 밖에서의 수법 이단들이 사회악적인 존재로서 일으키는 가장 심각한 악한 범죄는 앞날이 창창한 청소년들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것이다. 신천지 역시 젊은 청소년들을 집중적으로 미혹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청소년들이 신천지에 미혹되어 가고 있다. 수능을 마치고 진학을 앞두고 있는 고3학생들, 대학에 갓 입학한 대학생들을 집중적으로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영어, 중국어등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불허가, 불법학원을 세워 놓고, 저렴한 값으로 유인하여 미혹하고, 대학교 내에는 위장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을 모집 하고는 위에 언급한 수법을 동원하여 미혹함으로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넘어가고 있다. 상담 중 상당수가 대학생들이다. 다음으로 많이 미혹되어 가는 대상이 어린 자녀를 둔 자모들이다. 자녀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성을 교묘히 이용하여 미혹해 가고 있다. 4. 신천지의 다양한 접근방법 및 미혹방법 첫 번째 단계, 각종 설문조사, 지인소개, 동호회활동, 문화강좌 및 평생교육원, 재능기부, 봉사단체, 연구소, 선교회, 일일찻집, 바자회, 콘서트 등 이런 활동을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한다. 이단단체들의 공통점이다. 두 번째 단계, 상담 단계이다. 여러 방법과 수단을 도구로 하여 관심을 끌어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을 이끌어 간다(신앙, 진학, 진로, 이성, 비전, 건강<힐링, 비전, 선교, 그림치료, 음악치료, 심리치료>, 분석<심리, MBTI, DISC, 애니어그램, 혈액형검사, 도형분석>). 세 번째 단계, 소그룹<복음방, 다락방> 혹은 위장교회<교회명을 기존교회식으로 한>으로 이끌어 간다. 이 단계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월화목금(오전10시30분, 혹은 오후7시30분에 두 시간 이상씩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교육받는 것이 치명적이다.) 네 번째 단계, 비밀성경교육센터(무료성경신학원)에서 약 6개월 정도를 교육받는다. 다섯 번째 단계, 센터를 수료하고, 신천지에 입교를 한다. (지문인식 출입증 카드 발급) 여섯 번째 단계, 신천지교회에서 예배를 한다. 마치는 말 이런 신천지의 악랄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접근에 우리의 성도들이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옳아서가 아니고, 철저히 속아서이다.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속은 것을 알면 나오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다음 호에서 신천지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635 no image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 1> 신천지는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집단_유영권 목사
편집부
3136 2014-11-18
신천지는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집단 < 유영권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 > “신천지의 거짓은 단순한 거짓 아닌 치밀한 계획 속에서 만들어낸 것” 기독교개혁신보의 특집 <심층진단-신천지를 해부한다>는 연재 글을 통하여 신천지 및 이단에 대해 보다 더 심각성을 인지하였으면 한다. 우리의 자녀들, 배우자들, 부모들, 교회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편집자 주> 시작하는 말 신천지가 9월 17일부터 삼일 간 ‘종교대통합 만국회의’라는 행사를 가졌다. 1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운집되었다. 그곳에선 신천지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카드섹션이 행해졌다. 카드섹션의 모습은 마치 평양아리랑축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수준이다(인터넷 유튜브에서 확인). 이 정도의 실력이 발휘되려면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잖은 준비로서는 어림도 없다.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본인이 사는 지역에 있는 신천지교회가 00동과 혹은 0000센터와 협약을 하여 지역봉사활동과 시민체육대회 등이 열릴 때 응원부대로 참여한다. 응원상을 휩쓸고 있음은 당연하고, 이러한 도움을 받는 단체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들의 속셈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용당하는 줄 모르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는 응원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런 행사가 아니어도 거의 매일 출석을 하며, 출석체크를 하여야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해내야 한다. 1. 응원부대로 동원되는 이들은 누구인가? 상담을 해오는 많은 분들이 신천지에 빠진 자녀들 둔 부모들이다. 그들의 상담을 통하여 확인된 신천지에 빠진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학업중단이다. 학업중단은 시한부종말론을 말하는 모든 이단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곧 세상이 끝날 텐데 학업이 중요할 리가 있는가?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학업중단과 함께 부모들의 확인과 반대 그리고 훈계가 시작이 되면, 다음 수순은 가출이다. 학업을 중단하고 가출한 자녀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신천지에서 행하는 행사와 일들을 보면 불 보듯 뻔하다. 다음으로 많은 상담자가 신천지에 빠진 아내와 엄마를 둔 남편과 자녀들이다. 이들 역시 공통적으로 동일한 고백들을 하고 있다. 아내들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그리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온다. 가정이 어떻게 될까? 10년간 신천지에 빠졌다 신천지에서 나온 한 60대 주부의 이야기다. 신천지에 빠진 동안 가정을 돌볼 수 없었고, 가족관계는 파괴되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가정은 파괴되어 갔고, 가족이 아니라 남남만도 못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던 중 이만희가 말한 내용이 자주 번복되면서 신뢰에 금이 가게 되었고, 결국 신천지의 거짓말에 신물이 나 10년 만에 신천지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미 갈 때까지 간 가족관계는 그녀가 신천지에서 나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되지 않았고, 그녀는 현재 심한 우울증과 무력증에 빠져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이것이 신천지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응원과 카드섹션의 화려하고 웅장함을 웃으며 보고 넘길 수 있는가? 만일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가장 심각한 미혹에 빠져 가정과 가족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를 포기한 결과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지금 이 시각에도 신천지 건물 혹은 센터를 찾으면 자녀를 비롯한 가족을 찾으려 생업을 포기하고 통곡을 하면서 썩어버린 오장육부를 움켜잡고 일인시위를 하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다. 2. 무너지는 가정과 교회들 신천지인이 140,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어디로부터 나온 사람들인가? 그들은 신천지인 140,000명이 추수밭에서 추수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교리화 하여 가르친다. 신천지가 말하는 추수 밭은 교회이다. 신천지는 추수는 추수밭에서 하여야 하며, 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아 가르친다. 그렇다면 140,000명 대부분이 기존교회로부터 나온 성도들임이 틀림이 없다. 기존교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140,000명란 사람들이 신천지에 빼앗길 만큼 물렁물렁한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신천지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신천지 사람들의 말은 90%이상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고 하는 말이다. 한 사람을 신천지로 빼가든, 교회자체를 약탈해 가든 저들은 거짓말로 시작하여 거짓말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신천지의 거짓말에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단순한 거짓말에 성도들이 넘어가겠는가?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신천지가 진리를 가르친다고 믿는다. 다른 교회에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를 가르칠 실력과 능력 그리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다. 말씀에 자신이 있으면 이만희가 그렇게도 공개토론을 요청했는데, 왜 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냐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만희에게 공개토론을 요청한 사람들이 부득이수다. 목사부터 평신도까지 줄기차게 신천지교회를 찾아가서까지 공개토론을 요청해왔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신천지 사람들은 신천지에 들어가면서까지 입막음교리를 비롯하여 상담을 받지 못하도록, 인터넷 등 매체들을 통해 확인하지 못하도록 세뇌를 받는다. 상담을 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확인을 하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죽은 것처럼 죽게 된다고 세뇌를 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할 길이 없다. 거짓도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속에서 만들어낸 거짓이다. 누구라도 대상이 되면 걸려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거짓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영생과 구원을 빌미로 차단시키는 것이다. 넘어갈 수밖에 없고, 돌이켜 나올 수 없는 이유이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도 매한가지다. 마치는 말 지금도 기존교회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교회마다 심각성이 크지 않다. 한 교회에서의 이탈이 아니고, 전국교회에서 이탈해감으로 교회마다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교회이다. 다음 호에서는 신천지의 수법을 살피고, 나아가 순차적으로 신천지의 정체, 신천지의 주요교리를 살핀 후에 신천지의 미래와 신천지에 대한 대처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634 no image |들꽃향기 처럼| 낮은 데로 임하시는 주님_윤순열 사모
편집부
2448 2014-11-04
낮은 데로 임하시는 주님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앞으로 한국교회는 사역의 눈을 낮춰 소외된 자들로 향해야” 온 들판이 황금들판으로 노오란 들국화 향기가 가을의 정취를 더해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 노회에서는 교역자 위로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든 늦가을의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목사님과 사모님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오래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버스는 출발하였습니다. 버스 안에는 오랜만에 보는 반갑고 정다운 얼굴들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워 정겨운 모습이었습니다. 제 뒷자리에는 같은 노회 지역에서 특수목회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몇 년 전에 힘들게 시작하신 사역으로 알고 있어 저는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하여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목회 하실까? 저는 조금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사모님의 이야기를 경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염려스러운 생각은 곧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하시는 사역은 노숙자 사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랜 노숙으로 길가의 잡초같이 거칠어진 그들을 데려다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사역이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일반 교회처럼 헌금하는 사람은 없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야 하니 그 많은 물질을 얼마나 쏟아 부어야 하는지 가히 상상이 갔습니다. 그들은 부모 형제들에게 조차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내는 물론 떠났고 형제들에게 데리고 가면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철저히 버림받고 외면당한 소외계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칠 대로 거칠어진 그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서 믿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시작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던 그들에게 삶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기야 일터에 나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자립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흩어졌던 자식들과 제회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갑자기 많은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50명을 데리고 오면 3-4명 정도, 극히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변화에서도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변화된 사람들 중에 줄반장도 세우고, 그들이 규율을 잡는 일에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사역이 알려지면서 돕는 자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근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급식하고 남은 반찬, 생선 등으로 돕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였던 목사님의 자녀들은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자녀들이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어 사역을 돕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날씨가 추워지면 서울역으로 노숙자들을 데리러 갈 것이라 합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노회에 다녀온 남편으로부터 잘 알고 지내던 목사님의 교회가 폐쇄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도 수 감소와 그에 따른 경제적 압박이 더 이상 목회를 지속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6.25전쟁 후 60여 년 만에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 영적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교회가 부흥되어가고 있다는 소리보다 성도 수가 줄고 있고 새 신자가 없다는 등의 어두운 소리가 많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폐쇄는 안했지만 폐쇄직전 까지 이르러서 전전긍긍하는 교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국 사회는 부요해졌고, 그리하여 예수님이 들어 갈 자리마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아! 나는 배부르다!’라고 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주님의 책망이 두렵습니다. 복음은 가난한 자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사역의 눈을 낮은 데로 향하여야 할 듯합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신도시입니다. 주변이 40-50평 수준이어서 어려운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이곳에도 소외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선교사 사모님이 귀국하셔서 이 동네에서 특별한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자기 집을 오픈하고 주변에 다문화 사람들을 초청해서 각 나라 음식을 만들어 그들을 대접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또한 이역만리 이국땅에 와서 겪는 아픔들을 상담해주고 감싸 안아주는 사역으로 이 지역에 많은 무슬림 부인들이 그 집에 모여서 안식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그분의 전도로 조선족 여성도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눈을 낮추면 얼마든지 사역의 폭을 확보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분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어 알고 있는 푸드 뱅크를 연결해 주려고 합니다. 가을은 점점 깊어 갑니다. 가을은 많은 결실을 통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듯이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결실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633 no image |치악골 아침사색|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_변세권 목사
편집부
1957 2014-10-07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후회 없는 목회인생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길” 올 여름은 지나간 어느 여름날의 추억도 없이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갔다. 벌써 가을 같은 겨울아침, 저녁이 찾아오는 것을 보니 매우 섭섭했었나보다. 어느덧 올해 총회도 끝나고 곧 노회가 펼쳐진다. 좋은 과정과 결실들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섭리하심 가운데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진행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동안 우리의 총회나 노회를 보면, 왠지 싸우고 논쟁하는 것 밖에는 별로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세계와 인간역사를 돌아볼 때 그런 현상들을 무조건 비판만 하지 말고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얼마나 답답하면 본인이 그렇게 발언을 하며, 자기의 주장을 펼칠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그 분야에 관심이 있고 그런 정보와 지식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상대적 입장에서 그런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반박하기보다 풍성한 자료와 인간의 실존을 알고 잘 반응하며 대꾸해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회의 분위기를 성숙하게 이끌어야 한다. 사실 하나님은 교회역사를 예배와 교회회의에 함께하시는 임재방식으로 항상 이끌어오셨다. 우리는 때로 법과 원칙, 관용과 용서의 한계에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당연히 원칙이라는 큰 틀의 차원에서 먼저 그 법을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전체 공동체가 어디로 향하는지 방향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작은 일들이 발생하는데 그런 것들은 각종 회의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서로 돌아보며 그 형편과 처지에서 예외적으로도 다를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장로교회는 민주정치체계이다. 예를 들어 목사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장로도 중요하다. 장로교회는 장로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들은 장로들을 존중하고 대등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때 우리 목사들은 너무 순진하고 무능하기도 하다. 그래도 목사가 칭찬받는 이유는 목사는 모든 이해관계에서나 또 권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우리는 모든 관계성 속에서 그것을 이룰만한 실력이 부족하다. 결코 목사의 지위를 낮추거나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일이 되던 안 되던 목사는 언제나 자기의 경우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목사는 목사다워야 한다. 목사가 너무 유능하면 교인이 무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리에 늘 와 있는 자들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목회나 인생사에 수두룩하다. 무엇하나 멋있고 시원하게 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후회 없는 목회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께 진심과 바른 목적을 갖고 있으니 하나님 저에게 잘해주셔야 되고, 보상해주셔야 됩니다!’라고 생각하기보다 그것으로 인한 우리의 분노와 열등감을 벗어버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면할 방법이 없다. 그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기에 배신이 있고, 서러움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러나 주님과 묶여있기에 걱정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목사가 되었든 장로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전우로서 전선까지 같이 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같이하고, 웃고 떠들다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만나지 않고 그만두는 것은 성경적 인간관이 아니다. 편을 들어 같이 가는 마음이 중요하다. 무슨 대세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목사가 실수할 수 있다.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을 누가 흉을 보면 “내 앞에서 그 사람 흉보지마!” 하고 편을 들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고 고쳐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다하다 안되면 ‘합신 괜히 들어왔어’ 하고 말하는 것을 본다. 아무도 합신에 오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본인이 선택해서 들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럴 시간이면 교인들 밥을 사주고 안부를 묻고 이름을 외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목사들은 누군가가 뒤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를 제일 두려워한다. 그러나 무슨 소리를 들어도 목사는 늠름하고 너그럽고 당당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개혁신보 김상우 기자가 사진을 찍을 때 “이게 진짜입니다. 이제 신문에 날겁니다”라는 멘트로 모든 이들의 입가에 웃음을 띠게 하는 것처럼, 마치 카메라 앞에서 웃음 띤 얼굴처럼 서 있는 것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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