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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no image <유화자교수의원천골편지> 부모님
rpress
2463 2004-07-2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6yu.hwp 부모님 유화자 교수/ 합신 기독교교육학 며칠 전 학교식당에서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게 되었다. 식당에서 수고하시 는 권사님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삼계탕은 여느 때라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 날은 그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식사를 하다 그 만 자리를 뜨고 말았다. 그 날 따라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였 고 생전의 불효 때문에 가슴이 아팠었는데 학교식당에서 삼계탕이 점심으로 제공되었던 것이다. 자녀들은 여러 면에서 부모를 닮는다고 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생전에 거의 육식을 안 하신 분으로 삼계탕이나 백숙을 잡수시는 것이 유일한 육식이었 다. 이런 생전의 어머님의 식성을 필자는 완벽할 만큼 닮았었다. 방학이라 텅 빈 교수식당에서 혼자 점심식사를 하려다 맛있는 삼계탕 때문 에 어머니 생각과 생전의 불효에 목이 메어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음식에 거의 손을 못 댄 채 식당을 나오면서 젊어서부터 우리 형제들을 기르 시느라 한평생 고생 하신 어머님에 대한 많은 기억들이 회상되었다. 왜 자신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 그분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돌아 가신 다음 뒤늦게 이렇게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가?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왜 적절한 때에 알지 못하고 그분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면서 큰 아픔을 부모 님 가슴에 안겨 드렸을까? 가슴을 에이는 것 같은 후회와 회한으로 그 날 필 자는 오후 내내 연구실에서 눈물을 쏟아야 했다. 자신과 생전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필자의 어머니라 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일평생 나에게 베푸시는 삶만을 사셨고, 필자는 그 분 의 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어머니의 끝이 없는 사랑과 헌신 등 모든 것을 받 는 삶만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자신도 남들처럼 어머님께 잘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죄책감에 효도의 결심을 해 보기도 하였지만 오랜 세 월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아 왔고, 10년이 훨씬 넘는 긴 유학시절은 가난의 극치였던 시간들이어서 어머님께 오히려 부담만 안겨드 렸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 여러 면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유학 시절이나 귀국 후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별로 달라 진 것이 없어서 필자의 불효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불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필자는 어머니와 같은 식성 때문에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대할 때면 편안하고 쉽게 먹을 수 없는 아픔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이런 불효의 아픔은 그 날 필자에게 여러 가지를 생 각하게 하였다. 자신은 과연 돌아가신 육신의 부모에게만 불효를 한 것일까? 지금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는 제대로 효도의 삶을 살아가 고 있는가? 하나님께 향하는 자신의 효도에 생각이 미치자 몇 주 전 청년부 예배시간에 전한 이사야서 1장 2-5절 말씀이 떠올랐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 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 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 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 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 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 하고 물러갔도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불효가 얼마나 극심하였으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향하여 통곡이라도 하시듯 이렇게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하고 계시는 것 일까? 우리는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수 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적 말씀으로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은 나의 삶과 인 생, 아니 우리 모두의 인생과 삶을 지켜보시면서 동일한 아픔과 안타까움을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호소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물론 성경말씀의 역사적 실존성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성경은 단 순히 과거의 역사적 실존만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한 책이 아니라 그 역 사적 사실 속에 담긴 중요한 현재적 교훈을 우리에게 제시하시고 있다. 그래 서 성경은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한 우리의 인생 교과서라 하지 않 는가. 육신의 부모에 대한 불효도 막급한데, 인생의 주인이시요 우주와 역사의 주 관자이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향하는 내 자신의 불효는 어떠하며 또 그 불 효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머님과 연관된 식사로 야기된 인간 적 아픔과 회한 이 자신의 영적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켜 보고 점검해 보는 중요한 계 기를 마련해 주었다. 육신에 몸담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육신의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는 일과,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효도하는 삶으로 그 분을 기쁘시고 영화롭게 하여 드려야 할 인생의 소중한 책임과 의무를 지 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의무와 책임에 충실하면서 그 분이 예비하 신 영육의 복된 삶을 이 땅 위에서 누리기를 지금도 간절히 소원하고 계실 것 이다
71 no image <유화자교수의원천골편지> 인생의 건망증 (1)
rpress
2543 2004-07-2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5yu.hwp유화자교수의 원천골 편지 인생의 건망증 유화자(합신 기독교교육학 교수)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서 일생 교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어느 노교수님의 노 년의 삶을 보고 들으면서 많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이 교수님은 재직 시절 실력과 신실한 인품을 겸비한 분으로 학생들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삶과 가르침 속에서 많은 학생들과 젊은 이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였던 분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퇴임 후 부인을 잃 고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인생 마지막 무렵에 건망증, 곧 오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극심한 노인성 치매를 앓게 되었는데 그 정도가 아주 심각하였다. 다행히 경제적으로는 노후 대책이 되어 있어서 간병인을 둘 수 있었지만, 그 러나 문제는 이 교수님이 겪는 치매 과정 속에서 재직 시절 그가 보여주었던 인격이나 품위를 잃고 본능적이며 원초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인간상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게 된 것이다. 재직 시절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많 은 제자들이 이 노 스승님을 자주 방문하 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 교수님의 망가지고 일그러진 삶의 모습과 간병인에게 까지 무시와 천대를 받는 삶을 지켜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였 다. 유능한 학자와 훌륭한 인격으로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던 젊은 시절의 그 교수님의 모습을 이 노년의 교수님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무엇 이 이 교수님을 그렇게도 초라하고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주위 사람들을 몹시 안타깝고 슬프게 하였다. 물론 그 직접적인 이유는 기억력 상실로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할 수 있는 능 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건망증, 곧 심각한 치매 현상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이런 노인성 건망증과 치매 현상은 비단 이 노교수님에게만 해당 되는 상황이 아니라, 오늘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할 만큼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이슈(issue)로 부각되고 있다. 건망증이나 치매가 아니어도 노년기에 접어들면 신체적 쇠진과 여러 질병으 로 고통스러운 인생 말기를 보내게 되는데 치매까지 인생 노년기에 앓아야 한 다는 것은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심한 고통과 아픔을 겪게 하는 질병이다. 왜 누구도 원치 않는 건망증과 치매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건망증과 치매 현상은 노인들에게만 오는 것일까? 젊은이들과는 무관한 것일 까?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중요한 어떤 인생 치매에 걸 려 있지는 않는가? 등 건망증과 치매에 관련된 여러 질문들이 이 노교수님의 불행한 노년기를 보면서 가슴속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 교과서(The Textbook of Life)이며 인생 대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Life)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은 지구 위의 모든 사람들이 기 억해야 할 인생의 대 명제 곧, 절대로 인생치매에 걸리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제시하시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 이 누구인지 자신의 신분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과 영 광을 위하여 이 땅위에 보내신 존재라는 자신의 존재 목적과 신분에 대한 분 명한 인식 속에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도 신분을 모르고 덤비는 사 람을 주제파악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 다. 자신 인생의 주제파악을 바르게 하 고 사는 삶은 자신과 이웃,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는 축복의 삶이 된 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남녀 노소 인종에 구별 없이 누구나 사소한 일이나 중 요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있다. 때로는 그 망각이나 치매의 대상 이 너무 중요하여 큰 낭패를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생 여정에서 그런 일시적인 망각과 치매는 우리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건망증에 대하여는 대단한 관심과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정작 인생 최대의 중요한 사실은 잊어버린 채 기억 하지도 못하고 또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인생치매상태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사명을 부여받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들 의 영적 건망증이나 치매 상태를 때때로 점검하면서 살아야 함은 물론, 깊은 인생의 치매 속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생의 방향도 모른 채 살아 가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인생 건망증과 치매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 해 주어야 할 대행자의 책임 을 진 사람들이다.
70 no image <독자의편지>[우리말 바로알기]에 '죽다','돌아가다'를 읽고 (93)
rpress
3610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6freletter.hwp 지난 355호 [우리말 바로알기]에 "죽다"와 "돌아가다"를 읽고 화평교회 협동목사 김영재 지난 7월 10일자 기독교개혁신보 6면에 [우리말 바로알기]에 "죽다"와 "돌 아가다"라는 말을 바로 쓰자는 말씀을 잘 읽었습니다. 우리말을 바로 쓰자고 독려하시는 목사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두고 도 윗사람에게 쓰는 우리의 어법에 맞게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고 해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에는 이의가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굳이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죽음이 예사로운 죽음이 아니므로 "돌아가셨다"는 완곡한 표현보다는 "죽으셨다"는 분명한 표현을 사용하는 줄 압니다. 죽음을 두고는 "저승으로 가다", "황천길 로 가다", "서거하다" 등등 여러 비슷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흙으 로 돌아가다", "본향으로 돌아가다"는 말씀 이 있습니다만, 이 모든 표현들이 한번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우리 사람의 죽음에 적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 편에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죽음을 가리켜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그 분의 부활을 가리켜서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에 있는 "잔다"는 말씀도 다시 살아남을 전제하는 말일 것입니다. 어법에 맞게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과 일반적인 논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상식과 논리를 초월하는 유일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는 영원 전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속하 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죽음을 두고는 우리의 어법에는 맞지 않으나 신학적으로 맞게 "죽으셨다"라고 말해야 하는 줄 압니다.
69 no image <독자의소리> 김선일 씨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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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2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6om.hwp김선일 씨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김동수 2004년 6월 22일 우리 모두는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대통 령은 한국군을 철수시켜라!', '나는 살고 싶다!' 이 절규가 하루 만에, 싸느 란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잔인하게 죽인 무장단체를 향하여 분노하였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아는 이들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 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우리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김선일 씨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이며, 복음 전파의 꿈을 간직한 신실한 믿 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 개혁신보 355호를 읽으면서 이런 논조만이 김선일 씨 죽음에 다한 올바른 시각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장단체가 잔인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고귀한 생 명을 죽인 것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악마'와 그들 의 최후는 '천벌지옥'이라 단정한 이라크 전쟁을 지극 히 미국의 시각과 미국 만을 절대선으로 보려는 편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절대선인 미국이 행한 '하나님의 전쟁'이 아닙니다. 신약 시대 는 결코 특정 국가를 '신정국가'로 보지 않습니다. 부시 미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처음 규정지어면서 '십자가군 전쟁'이라 명명하였습니다. 그가 얼마 나 왜곡된 성경관과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전쟁은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의 문명의 충돌이 아닙니다. 이라크 전쟁은 '석유'라는 엄청난 이권과 미국의 대중동정책, 중동의 대이스라엘 정 책이 혼잳된 매우 복잡한 전쟁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전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김선일씨의 죽음을 우리는 그가 선교사의 비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 로, 이슬람 무장단체가 기독신자를 죽였기 때문에, 무조건 '순교'로 단정해버 리는 것 역시 약간은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가 그의 죽음이 헛되었 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라크 전쟁은 '선한' 미국이 '악한' 이라크를 단죄한 전쟁이 아니며, 이슬람 과 비이슬람의 문 명 전쟁도 아니며, 무장단체가 영원한 멸망을 받을 사람들 로 단정하는 일 역시 우리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들이 언잰 가 김선일씨 같은 선교사의 꿈을 간직한 이들에게 복음을 듣고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8 no image 청소년을위한기독교용어바로쓰기(13)-미움/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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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6js.hwp교육 정설/ 나누며섬기는교회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우 리는 십 수 년 이상의 시간동안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 가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까닭에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을 받으면서도 교육 내 용들이 기독교와 무관한 것으로 가르침 받는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더군다나 여러 가지 종교와 신들에 대해 소개받으며 신을 믿지 않거나 혹은 범신론적 인 사고를 가진 선생님과 친구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면 기독교인으로서 사 고력을 갖추고 행동에 이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어떻게 교육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공부하는 내용 자체 는 ‘어떠한 사실의 발견’을 말하고 있지만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기독교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점은 과학 과목에 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교에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를 배울 때에 여기에 하나님의 의지나 하나님의 섭리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 인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진화론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각 과목이 서로 분절화되어 가르쳐지고 한 과목에서조차 여러 가지 평가 기준 으로 나누어 해당 분야의 능력만 체크되는 교육 환경 속에서 내가 새로운 지 식을 접할 때 그 지식이 담고 있는 기독교적인 의미를 찾고 생각해낼 수 있 는 훈련을 해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게 되 면서 ‘Human’이란 단어를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인간’이란 원 뜻보다는 [휴:먼]이란 발음과 입술 놀림에만 신경을 쓰게 되기 일쑤입니다. 누가 더 흉 내를 잘 내느냐에 따라 높은 성적이 매겨지고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 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라면서 난생 처음 ‘인간’이란 단어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면 그 사람에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타락한 존재임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을 우리나라 공교육에 기대하기 는 어려우니 교회와 가정에서 그러한 역할을 뒷받침해야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안과 문제의 본질에 대 해서 그 만물의 창조주이신 분보다 더 잘 아는 존재는 없습니다. 특히 인간이 어떤지,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속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이미 풍요롭게 원리를 제 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우리들은 그로 인해 세상의 사건 사고들 앞 에서 크게 요동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더욱 뚜렷하게 알아낼 수 있는 기회 를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우위에 서야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인생 공식과도 같 아 보입니다. 때문에 그러한 공식의 결과를 막연하게 기대하면서 수십 년을 보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사는 유일한 목 적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영원토록 기뻐하는 데 있으니 기독교인들의 교육 목 적 또한 이런 인간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할 것입니다. 다양한 학문과 사건사 고들을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재해석할 수 있는 훈련,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국 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우리들이 안고 있는 숙제일 것입니다.
67 no image 청소년을위한기독교용어바로쓰기(12)-교육/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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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5js.hwp 교육 정설/ 나누며섬기는교회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우 리는 십 수 년 이상의 시간동안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 가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까닭에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을 받으면서도 교육 내 용들이 기독교와 무관한 것으로 가르침 받는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더군다나 여러 가지 종교와 신들에 대해 소개받으며 신을 믿지 않거나 혹은 범신론적 인 사고를 가진 선생님과 친구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면 기독교인으로서 사 고력을 갖추고 행동에 이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어떻게 교육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공부하는 내용 자체 는 ‘어떠한 사실의 발견’을 말하고 있지만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기독교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점은 과학 과목에 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교에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를 배울 때에 여기에 하나님의 의지나 하나님의 섭리 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 인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진화론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각 과목이 서로 분절화되어 가르쳐지고 한 과목에서조차 여러 가지 평가 기준 으로 나누어 해당 분야의 능력만 체크되는 교육 환경 속에서 내가 새로운 지 식을 접할 때 그 지식이 담고 있는 기독교적인 의미를 찾고 생각해낼 수 있 는 훈련을 해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게 되 면서 ‘Human’이란 단어를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인간’이란 원 뜻보다는 [휴:먼]이란 발음과 입술 놀림에만 신경을 쓰게 되기 일쑤입니다. 누가 더 흉 내를 잘 내느냐에 따라 높은 성적이 매겨지고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 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라면서 난생 처음 ‘인간’이란 단어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면 그 사람에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타락한 존재임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을 우리나라 공교육에 기대하기 는 어려우니 교회와 가정에서 그러한 역할을 뒷받침해야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안과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그 만물의 창조주이신 분보다 더 잘 아는 존재는 없습니다. 특히 인간이 어떤지,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속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이미 풍요롭게 원리를 제 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우리들은 그로 인해 세상의 사건 사고들 앞 에서 크게 요동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더욱 뚜렷하게 알아낼 수 있는 기회 를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우위에 서야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인생 공식과도 같 아 보입니다. 때문에 그러한 공식의 결과를 막연하게 기대하면서 수십 년을 보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사는 유일한 목 적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영원토록 기뻐하는 데 있으니 기독교인들의 교육 목 적 또한 이런 인간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할 것입니다. 다양한 학문과 사건사 고들을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재해석할 수 있는 훈련,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국 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우리들이 안고 있는 숙제일 것입니다.
66 no image <교사를위한특강10> 생활훈련하는 교사-손종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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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5son.hwp생활훈련하는 교사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기독교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타락한 사람의 죄된 본성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데살 로니가전서 2:8은 이러한 교사의 역할을 말하면서 [권면]과 [위로]뿐만이 아 니라 {경계}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경계]란 훈계, 훈련을 의미하며 변화 된 인격과 삶을 갖게 하는 것이다. 스마일즈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생각을 심 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 두어 인생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거룩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을 섭취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성도의 교제와 복음증거를 통해서 예수님의 주되심과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성숙하게 할 수 있 다. 이러한 기본적인 영적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이 시작이 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에게 구원상담을 통해 예수 님의 주님되심을 가르쳐 고백하 게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헌신을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 야 한다.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 같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처럼 교사도 학생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함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성 경을 듣고, 읽고, 공부하며 암송하고 묵상하는 기술을 익혀서 전수하고 기도 의 5가지 요소(찬양, 감사, 죄의 고백, 도고, 간구)로 균형잡힌 기도를 하게 하며 지속적으로 기도노트를 작성하여 조지 뮬러가 자기는 5만번의 기도응답 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듯이 기도응답을 재산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교 회 공동체의 교제를 통해서 신앙이 온전해지고 복음증거를 통해 구원의 도가 보여주는 새생명의 기쁨과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심을 체험하면서 예수님 의 제자가 되어갈 수 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는 것이 다.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조성자이시며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 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 셨나이다"(시 89:11).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유하 고 있는 능력과 여러 가지 은사(선물, 재능)를 주셨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 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우리는 하나님의 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능력이 없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는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 랑하느뇨"(고전 4:7).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원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남의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이며 성도들은 이에 대한 부르심을 받았 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 로 봉사하라"(벧전 4:10). 우리는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하나님 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 건강, 물질, 인간관계, 은사들에 대한 자신의 권리 를 그분에게 드려 그 분의 권리를 인정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잘 훈련받아야 한 다. 먼저 이 모든 것이 선물인줄 알아서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최대한의 노 력을 다 하여서 잘 관리하려는 원칙이 있어야 하면 충성스럽게 수행해 나가 야 한다. 시간관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단위로 해야할 일 과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차례대로 성실히 해나 가면서 항상 점검표를 작성하도록 한다. 건강관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신체의 모든 기관이 각자 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유연성과 강인함과 역동성을 지니도록 운동을 주기 적으로 하며 식탐을 배제하고 적당한 칼로리를 섭취하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야한다.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감사하고 건전한 여가활동으로 스트레스 를 해소하도록 한다. 물질관리는 자기 생활비와 헌금, 저축, 구제의 비율을 70, 15, 10, 5%의 비율 을 기본으로 하여 잘 사용하도록 하며 항상 기록을 남겨서 조정해 나간다.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한 번의 교훈이 아닌 교사의 삶을 통한 모방과 지속적인 훈련으로 가능하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머리에서 머리로, 노트에서 노트로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다.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멘토 가 되어야 한다. ※ www.c3tv.com >에서 필자의 동영상강의를 시청하 실 수 있습니다.
65 no image <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단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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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6mun.hwp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단 3일" 문창석 목사/ 부다페스트 한인교회 헬렌켈러는 만일 단 3일만이라도 눈을 뜰 수 있다면, "첫째 날, 나는 매우 분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놓 고 그 동안 목소리만 듣던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 마음에 심으면서 오랫 동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애기들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 다. 그 천진스러운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 지 나에게 인간생활의 심오한 이치를 발견케 해 준 책을 눈으로 읽고 싶습니 다. 오후에는 시원한 숲 속을 거닐면서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황홀한 색깔의 저녁노을을 보겠습니다. 역시 그 날 밤은 너무 감격스 러워 잠을 이룰 수 없겠지요. 둘쨋 날,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감격적인 순간을 보고 싶습 니다. 그 다음 들릴 곳은 미술관입니다. 나는 그 동안 손으로 만져서 예술품 을 감상해 왔습니다. 역시 촉감으로 느꼈던 것을 보고 싶 습니다. 내가 볼 수 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감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극장이나 영화관 에서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촉감으로만 알던 나에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면 그 스릴이 얼마나 클까요? 셋째 날, 나는 다시 한 번 해 뜨는 광경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거리에 나 가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빈민가, 공장, 아이들이 뛰노는 놀 이터에도 가보겠습니다. 외국인들이 사는 지역도 방문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외국 여행을 대신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 헬렌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일이면 장님이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내일이면 귀머거리 가 될 것처럼 말소리와 새 소리, 오케스트라의 힘찬 선율을 들어 보십시오. 하지만 모든 감각 중에 아마도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거기에다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눈과 귀가 있다면 금상첨화일겁니다.
64 no image <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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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5 2004-07-0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5-8illust.jpg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소망 이라크에서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어간 한 형제로 인해 우리 모두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참으로 어두운 세상입니다. 단순히 그가 바로 내가 아님으로, 나의 가족이 아님으로 안도할 수 없으며, 더욱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할 때임 을 절감합니다. 1948년(제 1차 세계교회협의회 회의)(wcc)가 암스텔담에서 개최되었을 때 개 회식에 앞서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궁금한 회원들은 차례로 나가 관 뚜껑 을 열어보았습니다. 관 밑바닥에는 큰 거울 하나가 깔려 있었습니다. 사회자 가 입을 열었습니다. “주여, 우리는 제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나라와 나 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담을 쌓고 지내왔음을 자복합니다. 지금 저희들의 속 에서 증오심과 적개심을 완전히 죽여 주옵소서. 전쟁이 지나간 이 세계를 향 하신 주님의 소리가 이 회의를 통해 전달되게 하옵소서!” (크리스탈 크리스 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3차 전 쟁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전 쟁은 아담의 불순종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두움이 극심할수록 참 빛으로 오신 주님 이 계시기에 우리는 소망을 유효합니다. 문창석 목사/부다페스트한인교회
63 no image <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염려가 담긴 상자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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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0 2004-06-24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4box.jpg염려가 담긴 상자 문창석 목사/ 부다페스트 한인교회 아더 랭크라는 영국의 실업가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습 니다.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주 수요 일을 ‘염려의 날’로 정하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 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날, 그는 상자 속의 메모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사 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상자 를 계속 활용하면서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 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 사는 우리들은 굳이 상자 안에 넣어둘 필요조 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의 말 씀의 약속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 보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시고 아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 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 느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빌립보서 4:6-7).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큰 문제거리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 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뢰할 수 있는 기회 요, 그분이 주시는 풍성함을 경험할 기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더욱 주님의 약속을 의지함으로 양적인 시간을 질적인 시간으로 빚 어 가십시오.
62 no image <교사를위한특강9> 상담하는 교사-손종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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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004-06-23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4son.hwp상담하는 교사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교사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상담을 빼놓을 수가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2:8 은 교사는 권면과 위로와 경계를 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아비처럼 권면과 위로와 경계하노니." 여기서 권면은 공과교수, 위로는 상담, 경계는 구체적인 생활훈련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진리로 채워져야 할 뿐만 아니라 주위환경으로 부더 받는 상처와 성장에 따른 내적인 불안정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받아야 한다. 상담은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 있는 내담자를 도와 함께 물을 퍼내고 새로 담아 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담은 '인간의 성장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있을 때 이를 제거하고 극복하여 인간 자원의 최적 발달을 성취하도록 개인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정의되어지 며 기독교 상담은 '피상담자가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가 되어 매일의 삶 속 에서 그의 인생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이러한 상담에는 7가지 단계가 있다. 1) 제1단계 : 문제 제시 및 상담의 필요성 인식 단계 먼저 내담자로 하여금 걱정거리와 문제, 이유를 말하도록 한다. 여기서 내담 자는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며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자 신을 피해자로 여기게 된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이 도움을 받아 야 할 사람임을 깨닫게 하여 상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여야 한 다. 2) 제2단계 : 촉진적 관계 형성 이 단계는 솔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인데 내담자가 상담 자에게 전문성, 신뢰성, 매력 등을 느끼는 것은 상담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인이다. 여기에는 상담자에게 공감적 이해와 수용적 존중, 일괄적 성실, 전문적 능력이 요구된다. 3) 제3단계 : 목표 설정 및 구조화 상담은 본래 발전적 목표를 향한 인간관계에 있다. 특히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거나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 및 행동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을 기대한다. 또한 상담의 확실한 목표 설정은 상담 과정에 대 해서 갖는 내담자의 공포와 경계심, 불만을 제거해 주 고 궁금증도 완화해 주 게 된다. 4) 제4단계 : 문제 해결의 노력 이 과정에서는 상담 목표에 이르기 위해 취해진 노력 등에 대한 내담자의 감 정이나 생각을 탐색해야 한다.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는 내담자의 자각과 실천적인 노력을 촉진하는 상담자의 노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 탐색 과정 에서 나타나는 정신 병리적 요인이나 기질적 장애에는 부수적 조치를 취할 수 있기도 하다. 5) 제5단계 : 자각과 합리적 사고의 촉진 상담자는 내담자가 상담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확한 자기 이해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 내담자의 문제들의 상당 부분이 자기 이해가 왜곡되어 있거나 감정이나 환경적 압박에 의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 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피하려 한다. 따라서 상담자는 이러한 자기의 실상 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서 자기 탐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사고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촉진해 주어야 한다. 이 때에 상담자는 공감적 이해자로 서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새로운 동기부여를 해주 어야 한다. 심리적 부담과 저항은 개념의 차이, 목표 행동을 위한 수 행 기 술 부족, 의사 소통의 문제의 차원에서 탐색, 재조정되어야 한다. 6)제6단계 : 실천 행동의 계획 내담자가 자각과 합리적 사고 능력을 회복하였다고 해서 상담이 종결되는 것 은 아니다. 실제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로 인해 많은 수정 과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내담자와 함께 목 표에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들을 작성하여야 한다. 또 예상되는 갈등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방안도 함께 수립되어야 한다. 세워진 판 단 기준이 실천 계획에 의해서 내담자의 실생활에 실현되는 지를 면밀히 검 토, 체크해야 한다. 7) 제7단계 : 종결 단계 상담자와 내담자의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단계로써 지금까지 성취한 것들 이 요약되어야 한다. 상담의 종결 여부는 내담자의 성취도에 의해서 결정되 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내담자로 하여금 계획 수립이나 과정들이 어 떻게 결실을 맺은 지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다. 현실적으로 교회는 상담 전문가를 활용하고 상담실을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 운 실정이다. 따라서 반을 맡은 교사들이 성경 교수와 더불어 상담가로 준비 되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 www.c3tv.com >에서 필자의 동영상강의를 시 청하실 수 있습니다.
61 no image 청소년을위한기독교용어바로쓰기(11)-겸손/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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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2004-06-23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4js.hwp겸손 정설/ 나누며섬기는 교회 사람과 사람 사이엔 원래부터 '겸손'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똑같이 타락 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늘 하나님을 대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이야기 는 달라집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기에 겸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겸손이야말로 참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죄인이며 무능력한 자임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죄된 본성을 억누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겸손, 이런 겸손에서부터 사람에 대한 진정한 겸손이 생겨납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재능이나 외모가 뛰어난 사람, 부를 거머쥐거나 권 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의 칭찬받 는 성경 인물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 지방의 통치자나 학식이 뛰어난 자 혹은 나라의 통치자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만물을 창조 하시고 운영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심을 확신할 때 이런 태 도 가 가능해집니다.(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확신과 담대함을 허락해주실 때 에만 가능합니다.) 한편 겸손한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연륜이 뛰어난 사람들 에 대해서는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자신을 그 앞에 기꺼이 낮추게 됩 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겸손’이란 단어가 삶에서 어 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볼까요. 윗사람에게 충성을 바치고, 나이드신 분들 앞 에서 말을 삼가는 것, 조신하고 얌전하게 구는 태도를 갖춘 사람이 인정받 고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자제를 요구받는 분위기…. 제 생각엔 이 정도의 겸손은 참 겸손이라기보다 유교적인 겸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태 생적으로 이방민족 출신인 우리는 주로 유교적인 겸손을 참 겸손과 동급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참 겸손이 실현된다면 나이, 학식, 부와 명예 가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당당한 사고와 삶 을 유지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참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전적으로 그 분을 믿는 자들 에게 허락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날 구원하심, 보호하심 에 대 해 믿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분이 없는 듯 생활합 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우리 믿는 자들 역시 이러한 교만에 빠져있을 때 가 많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지요?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나 같은 존재는 재수가 없어.’, ‘난 왜 태어난거지?’, ‘난 불행해’, ‘이놈의 세상 싹 쓸어버리면 좋겠 어.’, ‘저 사람은 실패해도 마땅해.’, ‘내가 원하는 대학만 가면 난 정 말 행복할텐데.’ 등등….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곧 겸손하지 못함과도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위와 같은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면 겉보기엔 내 자신이 낮아진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합니다. 겸 손하라는 말을 성경에서 접하거나 주변에 권할 때가 있지요? 이때 우리가 사 용하는 겸손의 뜻은 유교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그런 겸손이어야함을 늘 되새겨야할 것입니다.
60 no image 청소년을위한기독교용어바로쓰기(10)-영성/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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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004-06-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3js.hwp 영성 정설/ 나누며섬기는교회 ‘영성을 훈련시켜자!’, ‘영성의 길로 나갑시다.’, ‘하나됨의 영성이 소 중합니다.’, ‘그런 짓을 하면 개인의 영성이 파괴될지도 몰라!’, ‘영성 충만한 하루가 되세요.’ 좀 시시한 질문이지만, 퀴즈를 낼까 합니다. 위의 문장 속에 모두 들어있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딩동댕! 답은 ‘영성’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영 성’이란 용어에 대해서 살펴보자, 뭐 이런 의도로 퀴즈를 내보았습니다. 언제부턴가 ‘영성’이란 단어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 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러 군데에서 영성 의 뜻을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더군요. 참 좋은 의 미 같습니다만 저는 이 용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실 은, 아예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일단, ‘영성’이란 단어의 의미가 굉장히 모호합니다. 이 단어 자체가 어디 서, 누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서두의 문장 들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경건의 훈련’일 수 있고, ‘성령 충만한 상태’이거나 ‘믿음’, ‘사랑’, ‘성도간의 풍성 한 교제’ 등등으로 그 쓰임새가 매우 다양합니다. 쓰임새가 다양해서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표현 가능하고 이해 가능 한 것들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인터넷상에서 누군가 풀이해놓은 것처럼, 영성이란 단어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대로 사는 것’을 뜻한다면 신앙의 선배들이 사용해 오던 좋은 용어인 ‘경건’ 혹은 ‘경건 생활’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어떤 기도원들은 ‘영성훈련소’라는 식의 홍보문구를 내걸기도 합니다. 여기 서 말하는 ‘영성’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수준’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면 ‘영성’은 일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일정한 시기동안 훈련을 받아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교회를 통 해 말씀을 배우고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사는 삶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삶은 우리의 일상 즉 가정, 학교, 직장, 눈에 보이는 교회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들 과 부딪히고,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살다보면 홀로 깊은 상념에 잠기거나, 호젓한 곳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낼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이 어떤 특정 장소나 시간 속에서 잠깐 동안 에 ‘길러낼’ 어떤 것이 아닙니다. 가끔은 ‘영성’이란 것이 실제로 기독교인들 안에 들어있는 무슨 ‘에너지’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을 기울이면 더욱 커지고 그렇지 않 으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이렇듯 자꾸 우리가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이 형성되고, 뭔가 열심히 이루어낼 때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세계관은 철저히 신 중심,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인 간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관하심 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배웠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살면 서 괜스레 믿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 무엇인가 이루어내고, 일해야 한 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 다. 이왕이면 ‘영성’이란 표현보다,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고 신학적으로도 정립되어 있는 기독교 고유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하고 말이지요.
59 no image <교사를위한특강8> 교육의 7가지 법칙-손종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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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6 2004-06-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3son.hwp교육의 7가지 법칙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 성공의 열쇠이다. 보통의 교사들은 공과를 가르 치면서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과 정보들을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뜻한 다. "학생들이 배워 알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가르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지만 교회학교 교사에게 있어서는 한 가지가 더 첨가되어 "학생이 배워 알 고 그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당신은 가르친 것이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골 1:9, 10절에서 바울은 이 점을 명확히 일러주고 있다. 처음에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더 나 아가 그 지식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발전하여(모든 신령한 지 혜와 총명에), 그 모든 것을 실천하게 하고(주께 합당히 행하여), 마지막에 는 헌신으로 결실을 얻게 한다(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위에 열 거한 모든 요소를 포함하지 않은 가르침은 불충분한 가르침이다. 교육에도 과학의 법칙들처럼 확고부동한 자연법칙이 존재한다. 1)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교사의 법칙). 교사는 수업 전, 자기가 가르치려는 내용을 확실히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 다. 가르치는 교사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때, 교 사 자신이 기력이 없게 되기 마련이며 더구나 학생들이 이를 이해한다는 것 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2) 학습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이를 계속 유지시켜야 한다(학생 의 법칙). 교사는 학생의 관심을 유발시키되 학습 내용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야 한 다. 이러한 접촉점을 위해 학생을 잘 이해하고 감정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야 한다. 3)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해야 한다(언어의 법칙).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의 용어(예를 들어, 구원, 영 접, 회개 등)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기도하며, 듣고 있는 학생들의 경험과 전혀 무관한 예화로 설명을 하려 든다. 예수님이 하신 설교는 듣는 청중 누구 r 나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우리에 게 가장 좋은 지침이 된다. 4)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지식으로 이끌고 나가 야 한다(수업진행의 법칙). 새로 배워야 할 진리는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흔히 교 사가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학생들이 알고 있으리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 중 에 실제로는 그들이 모르는 것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확실히 알고 있 는 개념 혹은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미지의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5) 학생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전을 준다(교육과정의 법칙). 학생들이 머리를 쓰도록 자극해야 한다. 교육은 사람에게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다. 세상에서 가장 혁명적인 힘이다. 가능한 한 학생이 교사의 설명에 한 걸 음 앞서 생각하게 하여 학생이「발견자」의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 다. 공부시간 중에 학생으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참여케 한다. 질문이나 과제 를 주고 일정시간 동안 학생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한다. r 6) 학생으로 하여금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을 자기 것이 되게 한다(학습과정 의 법칙). 학생은 배우는 진리를 자기 마음에서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자기가 배운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정도라면 그것은 학생이 스스로 이해하는데 혼란 을 가지고 있거나 명확하게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7) 공과 내용을 반복하고 복습하도록 한다(복습의 법칙). 복습은 지식을 완전하게 하며 지식을 확실하게 하고 지식을 즉각적으로 사용 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경의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나 그 의미 를 늘 새롭게 발견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반복하며 깊이를 더하여 설명 해 주어야 한다. ※ www.c3tv.com >에서 필자의 동영상강의를 시청하 실 수 있습니다.
58 no image <우리 말 바로 알기> 비에 젖은 우리 정서-변이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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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 2004-06-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3byun.hwp우리 말 바로 알기 ♣ 비에 젖은 우리 정서 변이주 목사/알곡교회 바야흐로 비의 계절입니다. 제때 알맞게 내리면 더할 수 없이 고마운 비, 그 러나 내리는 양이 너무 적거나 지나치게 많으면 상상할 수 없을 만치 큰 피해 를 가져다주는 비 ―. "비의 온도는 몇 도인가?" "5도." "왜?" "흔히 '비가 오도다' 하니까." 이런 농담이 그리워지는가 하면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오더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소월의 시라도 한 수 읊조리며 한껏 낭만에 사로잡혀 보고도 싶은 때입니다. 비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 알아봅니다. 안개비 안개처럼 몹시 가늘게 오는 비. 는개 안개비보다 조금 굵은 비. 안개비와 이슬비의 중간 굵기에 해당됩니 다. 이슬비 는개보다 조금 굵고 가랑비보다는 가늘게 내리는 비로서, 일반적으 로 많이 쓰입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어렸을 때 많이 부르던 동요가 새삼 그리워지는 비입니다. 그런가 하면 먹고살기가 몹시 궁하던 시절, 주인: "가라고 가랑비가 오네 그려." 손님: "있으라고 이슬비가 오네." 밥이라도 한끼 얻어먹고 가려는 손님과, 손님을 보내려는 주인의 대화가 연 민의 정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보슬비 바람 없이 보슬보슬 조용하게 내리는 비. 어쩐지 그리운 마음과 서글 픈 마음을 함께 실어다 주는 비입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싫던 부신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보슬비보다 큰말로 가 쓰이는데, 음산한 느낌이 들어 금방이라도 머 리를 풀 어헤친 처녀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합니 다. 가랑비 이슬비보다는 좀 굵게 내리는 비. 세우(細雨)라고도 하는데 가루(粉) 와 비의 합 성어입니다. 가루와 같이 잘게 내리는 비. 소나기 갑자기 세차게 몰아쳐 쏟아 지다가 이내 개는 비. 특히 여름에 자주 오며 번개·천 둥·거센 바람 등이 따릅니다. 백우(白雨), 혹은 취우 (驟雨)라고도 합니다. 단편소설로는 김유정 선생과 황순원 선생의「소나기」 가 유명한데, 특히 황순원 선생의 작품에서는 소녀에게 주려고 남의 호도를 딴 소년이, 밝은 달빛을 피해 어두운 곳을 골라 밟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폭우와 호우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를 폭우(暴雨)라고 하며, 줄기차게 내 려 퍼붓는 비를 호우(豪雨)라고 합니다. 24시간 예상 강우량이 80밀리 이상 이어서 피해가 예상될 때 호우주의보가 발령되며 150밀리 이상일 때 호우경 보가 발령됩니다. 호우(好雨) 때맞추어 알맞게 내려주는 고마운 비를 말합니다. 장맛비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을 말하며 '장마'와 '비'의 합성 어로서 장맛비가 표준어입니다. 비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는 낭만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기상이변 의 속출과 더불어오늘의 비는 황사를 나르는가 하면 '죽음의 재'를 실어 나 르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보슬비에 온몸이 촉촉이 젖는 줄도 모른 채 꽃모 종하던 그때가 몹시도 그립습니다.
57 no image <이단긴급진단>통일교의 포교전략인 순결캔디를 조심하라-박형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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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0 2004-05-27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2idan.hwp통일교의 포교전략인 순결캔디를 조심하라 박형택 목사/ 화평교회 최근 교회 유치원에 이상한 우편물이 왔었다. 담임목사인 내게 가져와서 열 어 보았더니 캔디 2봉지가 들어있고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에서 무료로 나 누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요청하면 더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필자는 그 순결캔디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 때문에 모든 유치원에까지 캔디 를 보내는 지에 대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폐기하였지만 다른 교회나 유치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가볍게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신 문지상을 통하여 그 진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도 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를 통해 통일교 가 순결교육과 순결캔디로 위장된 포교전략으로 미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 는 공문을 통해 문선명집단의 청소년 순결교육에 참여하지 말도록 알린 바 있 다. 그러나 해당 교회나 기관들이 순결캔디 실체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 는 실정 이다. 순결교육과 순결캔디를 통한 포교전략은 "참가정순결운동본부" 산하기관으 로 알려진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가 초, 중, 고 학생들과 심지어 유치원 의 어린이들까지 순결교육을 실시하고 순결캔디를 먹게 하는 행사인데 지난 3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계획된 행사라고 한다. 그 행사에 대해 "문선명이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교육을 2004년 6월 30일까 지 완료하라는 지시로 한국 통일교 회장 황선조와 김봉태의 명령아래 전국 시 군구 통일교 교역자들이 일시에 순결교육, 순결캔디 먹이는 운동을 대대적으 로 실시하고 있다"고 통일교대책협의회가 밝히고 있다. 안타깝게도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혈통복귀 구원의식인 순결교육, 순결캔디를 먹이는 운동에 교 육부와 시도교육청, 학교장, 지도교사들이 그 실체를 알지 못하고 이용당하 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에서 나와서 이제는 통일교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박준철목사(통일 교대책협의회 사무총장)는 순결캔디의 성분은 통일교 구원의식인 합동결혼 식 때 문선명의 혈통을 이어받는 성주식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성주와 같 은 성분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표하고 있다(현대종교 4월호 16p). 일각에서 는 순결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통일교 교리를 설파하다가 학교측과 마찰을 빚 기도 하여 문제가 되자 순결캔디만 배포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통일교대책협의회에서는 주지하다시피 이들의 순결교육과 순결캔디 먹이기 운 동이 통일교의 위장된 포교전략으로서 오는 7월 25일로 예정된 "합동결혼 식"의 숫자 불리기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그를 위하여 통일교 관 계자들이 동분서주 하며 고속터미널, 유원지 등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면 어디든지 그리고 심지어 가정방문을 하면서까지 열을 올리고 있다고 경고 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는 통일교 소유의 건물인 도원빌딩에 소재하고 있 으며 통일교 교역자들이 "참가정순결운동본부 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교육 청이나 학교장 및 교사들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의 심각성을 알고 한국 교회는 통일교의 포교전략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 해야 할 것이다.
56 no image <교사를위한특강7> 소그룹을 통한 학생지도- 손종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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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2004-05-27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2son.hwp 절기에 맞춘 학생지도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대구에 사는 한 교사가 넌지시 자랑하였다. 얼마 전에 학생들에게 꽃다발을 주기 위해 직장을 조퇴하고 4학교 10명의 학생을 찾아갔었다고 한다. 왠 꽃 다발인냐고 했더니 기말고사를 고생스럽게 마친 기념이었다고 하였다. 보통 시험이이 끝나면 허전해지고 그날 하루는 방황하게 된다. 이럴 때 선생님의 꽃다발은 가슴 가득 사랑을 채우고 다시금 신앙으로 정진할 수 있는 촉매가 된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 목숨을 아낌없이 바칠 뿐만 아니라 양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하였 는데 바로 이렇게 학생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신앙교육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교사가 목자가 되어서 반목회를 해야한다면 반운영을 위한 나름대로의 교육계 획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필요성이 있다. 1) 전문가로서의 교사-교회학교 교사가 단지 성경을 가르치 는 교사로 머물 지 않고 학생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발달과제를 다루는 전문가 가 되기 위해서. 2) 작은 목자로서의 교사- 학생의 신앙성장을 최대한 돕는 작은 목자가 되 기 위해. 3) 체계적인 반운영-교회학교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서 자기 반에 대한 분명 한 교육목적과 교육내용을 가지고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4) 학생의 비전을 공유-학생들 개개인의 꿈을 기독교교육을 통하여 실현하 기 위해. 5)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성취-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충성되고 헌신된 교사 를 통해 이루기 위해. 교육계획서에 담긴 반운영계획은 학생의 생활환경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따 라서 1년의 절기에 따라 작성할 수 있다. 1월-신상카드 작성/반친목회(교사의 집)/인성검사/기도카드코팅/개별구원상 담/방학대심방/가정통신문 2월-반운영을 위한 협의와 사명선언문작성/겨울수련회/말씀읽기와 암송 시 작/발렌타인데이 선물교환 3월-학교생활 원리지도/학습법과 노트작성법특강/영화보기/잃은 양 찾기/편 지노트쓰기 4월-고난주간기도회/부활절카드나누기/관계전도를 위한 태신자 작정/중간고 사격려 하기/가정통신문 5월-학부모편지보내기/청소년 헌장과 청소년기관탐방/큐티강의와 시작 6월-잃은 양 찾기/성경읽기와 암송 전반기 시상과 성경퀴즈대회/하반기 기도 카드 코팅 7월-기말고사격려/여름수련회참석독려와 릴레이기도하기/가정통신문 8월-새학기 학원사역을 위한 또래상담과 전도훈련/봉사하기/독서토론 9월-은사검사와 진로지도/총동원전도/가을공원산책 10월-중간고사격려/종교개혁가조사발표/가정통신문발송 11월-감사절행사와 1년간 감사편지쓰기/나뭇잎줍기 12월-기말고사 격려/자금마련을 위한 밀감장사/양로원봉사하기/롤링페이퍼나 누기 나는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가? 교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좋아해 야 한다. 자신의 개성이 강하면 학생과 나누는 것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바 울은 영혼을 얻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대했다. 종에게는 종처럼, 자유자에게는 자유자처럼 만나는 것이 우리가 배 워야 할 점이다. 학생과 동일한 환경은 아닐지라도 동일한 문화와 경험을 나 누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절기에 맞는 행사를 통해서 늘 반가운 관 계, 그리운 관계, 필요를 절감하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자. 생명을 주는 모 습은 본능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준비되는 있는 모습 이어야 한다. www.c3tv.com >에서 필자의 동영상강의를 시청 하실 수 있습니다.
55 no image <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편지를 찢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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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 2004-05-27
54 no image <문창석 목사의 기도편지>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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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7 2004-05-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1mun.hwp"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문창석 목사(부다페스트 한인교회 http://budapestkch.freeweb.hu) 오늘은 헨리 나우웬의 글 중에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글을 함께 나 누고 싶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나그네에게 좋은 주인이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녀 들이 우리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발견하면서 끊임없이 놀란다. 우리가 자녀들의 지성이나 예술 적 재능이나 운동 소질로 기뻐하거나 혹은 그들의 학습 부진이나 무절제함이 나 “이상한” 취미들로 인해 슬퍼할 수 있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우리의 자 녀들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을 창조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그들을 소유하는 것도 아니 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그들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우리 자신을 책망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들의 성공 역시 우리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하 여금 그들에게 내적이며 외적인 자유를 위해 자라나기에 안전하고 사랑스러 운 장소를 제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환대를 요구하고 얼마 동안 좋 은 친구로 지내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와 같다. 그들은 엄청난 기쁨 과 슬픔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그들이 선물이기 때문이다. 속담에 있는 대로, 좋은 선물은 “두 번 주어진다.” 우리는 받았던 선물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의 자녀가 학업이나 직장이나 결혼이나 공동체 삶 을 위해서, 혹은 단순히 독립하기 위해 우리 곁을 떠날 때에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의” 자녀가 실제로 “우리의 것”이 아 니라, 그들이 다른 이들을 위한 참된 선물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맡겨졌던 것임을 깊이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이 난폭하고 착취적인 세상에서 자녀들에게 자유를 허용하기는 너무 도 어렵다. 우리는 모든 위험에서 그들을 보호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렇 게 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가장 위대한 행위 중 하나는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 나 름의 결정 을 내리게 하고 그들 자신의 길을 찾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53 no image <교사를위한특강6> 소그룹을 통한 학생지도- 손종국 목사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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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0 2004-05-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351sjk.hwp소그룹을 통한 학생지도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학생들의 불만이다. "아이들이 교회에 그냥 놀러 나온다. 교회에 재미없어 한 다. 여러 가지 소스들이 먹히지 않는다", "단지 의무감에 예배에 참석하는 아 이들이 몇 있다", "교사의 부재로 인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게 된 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못한다", "아이들의 참여도가 떨어진다", "치유 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불만과 어려움은 원칙적으로 반으로 구성된 소 그룹 운영이 원인이 된다. 기독교적 소그룹이란 "정해진 시간에 동일한 목적,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 성한 삶을 발견하고 자라 가는 일의 모든 가능성을 위해, 3명에서 10명 정도 의 그리스도인들이 의도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모인 모임"을 의미한다. 예수님 도 대그룹사역과 함께 제자들과 동거하시며 소그룹에 집중하셨다. 건강한 소그룹은 단순히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교육의 장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특징이 있다. 즉 건강한 소그룹의 특징은 그리스도 안에서 비전을 발견 하고 함께 성숙해 가기를 소원하는 지체들의 관계형성 즉"그룹 세우기"가 주 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소그룹에서는 교제, 교육, 봉사, 문제해결의 목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유익이 있다. 1. 성경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도록 그룹으로부터 동기부여를 받는다. 2. 개인이 깨닫는 한계점을 넘어 그룹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3. 그룹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를 증진시켜 준다. 4. 집단 상담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5.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간다. 변화되어 가는 지체들의 모습 속에서 다른 지체 들에게 모델이 되어 동일시하려는 동기를 부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 아 가는 도장이 된다는 것이다. 6. 많은 적용을 하도록 자극한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성경말씀과 자신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룹에서 함께 성경을 보게 되면 오늘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해 야 할 지 그룹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자연적으로 의논하게 된다. 그리고 다 른 그룹 원들 앞에서 적 용한 것들을 실천하려는 노력도 수반하게 된다. 그러면 교사는 어떻게 소그룹을 운영할 것인가? 먼저 주중에 다양한 만남을 갖기 위해 문자메세지, 전화, 편지,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 활동을 활성화 한다. 둘째, 주일 공과 시간이 되면 마음을 열기 위한 아이스 브레익 프로그램을 활 용한다. 우선순위 1번이니까 시간이 허락되지 않으면 다음 프로그램은 포기하 고 매월 첫 째주는 아예 관계형성과 나눔을 위한 시간을 가져도 좋다. 예를 들면 어릴 적 사진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나누거나 간 단한 질문(나의 별명, 나의 취미, 나의 기쁜 일과 슬픈 일, 가고 싶은 곳, 하 고 싶은 일 등)을 둘씩 짝지어 이야기하고 전체적으로 나눈다. 이따금 기도제 목을 나누거나 큐티한 내용을 소개하도록 한다. 셋째, 소그룹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협동학습과 참여학습의 방법을 도 입하여 공과시간에 브레인 스토밍과 브레인 라이팅, 마인드 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넓혀가도록 한다. 넷째, 공과시간 중에 한 달에 한 번, 또는 별도의 시간에 반별로 사회기관을 탐방하여 봉사활동 을 하거나 교회 근처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도록 한다. 다섯째, 서로의 문제해결을 위해서 공동의 기도카드를 작성하여 기도하고 상 담을 통해서 문제해결을 돕도록 한다. ※ www.c3tv.com >에서 필자의 동영상강의를 시청하 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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