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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하심의 손길을 읽어내라!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오늘이라는 숙제를 하나님의 자녀로 대면하면서 살아가야

 

교회 앞 화단에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백합이 긴 장맛비에도 그 고운 향과 순결한 자태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의 동무생각의 노래구절이다. 문득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이 난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가 그동안 많이 외워서 익숙한 말씀이다. 그리고 많은 사역자들과 신자들이 이 말씀을 의지해서 큰 위로를 받고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맹목적 낙관주의도 아니고 이 부분이 어려운 것 같다. 그러면 이 대목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를 믿고 믿음이 요구되는 신앙실천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믿음과 실천에는 꼭 기독세계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영선 목사는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라는 인간 활동영역에서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망라하는 인간의 경험과 사고의 모든 영역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만일 기독교 신앙이 세계와 역사, 인간의 존재와 의미, 운명이라는 더 큰 조건과 틀에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지 않다면 우리의 신앙은 세상과 역사와 인생 속에서 종교라는 한 수단을 가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 역시 내일을 안심하도록 확보하려고 오늘을 살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내일을 안심해도 좋을 만큼 확보하려는 오늘로 싸우지 말고, 오늘은 오늘의 일로 채우고 내일을 내일로 채우라는 것인데 역시 이 부분이 어려운 것 같다.

 

그러면 내일이란 무엇일까? 내일을 오늘로 이해할 때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방법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면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오늘 가만히 있다가 내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이 말하는 내일은 이런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내일의 끝은 종말이다. 종말은 세상이 심판 받는 날이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되는 완성의 날이다. 우리가 내일의 연장선상 끝의 막연함과 눈과 구름 밖에 없으면 내일을 오늘 준비해야 맞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그 연장선상의 끝에 있다면, 또 기독교 종말론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의 시작과 만드심과 완성을 알고 있다면 내일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날로서 오늘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숙제를 하나님의 자녀로 대면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종말과 연결되어 있는 자로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늘 하루는 반복적인 일상이다. 아무 확인이 없고 밤낮 똑같은 일을 하는 막막함과 답답함이 견딜 수 없는 시험이 되고는 한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는 가치나 개념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크는 것이다. 무엇이 큰가 할 때도 기다릴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늘 불안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늘 더디간다. 누가 문제가 있고 누굴 보기가 싫어도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늘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다 받아주되 겁먹지는 말고 진지하게 살아가야 한다. 미화되고 완전한 것으로 사람을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하고 충성될 때에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은혜는 용서로만 온다. 용서 없는 은혜는 없다. 옳은 것에 내용이 없으면 사람을 정죄하게 된다. 우리가 설교를 할 때도 농사를 하고 밥을 짓듯이 해야 한다. 설교에 메시지가 없고 비판만 하고 그 비판한 것이 메시지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게 된다. ‘내가 살아보니까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셨나이다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넉넉함으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것들로 역사하셨지만 앞으로의 세대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일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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