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우리는 가야 할 길을 가야 할 뿐이다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생명과 진리를 가진 교회가 어려운 때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4월은 가고 꽃은 피는데 그 님 오지 않고 그리운 날 또 다시 찾아온 5월의 편지.’ 참으로 애틋한 사연이다. 거칠고 탁한 저 비정한 바다 위에 꽃잎처럼 떨어져 간 자식들 때문에 슬픔과 분노의 밤은 길기만 하다.

 

도처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사안일한 사회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부끄럽기만 하다. 다 우리 지도자들의 잘못이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는 무엇일까? 모두가 다 도둑인 것이 만 천하에 공개되어서 아무도 정직과 성실을 시행하려고 마음먹는 자가 거의 없다. 더 큰 도둑이 왜 조금만 훔친 자에게 와서 큰 소리를 치느냐고 하고 있다.

 

네가 힘을 가졌으니까 큰소리치지, 그러니까 우리도 힘을 모아서 힘으로 대항하겠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고, 우리의 사회현실이다. 아무도 정직과 성실을 책임지지 않는다. ‘누가 해야 할까?’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만이 할 수 있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생명과 진리를 가진 자가 없으며 하나님 앞에 선 자로서의 의식과 책임과 두려움을 가질 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단순히 인간의 가능성과 하면 된다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맞춰 외형적인 종교의 명분과 형태에만 집착하고 그 형태와 명분을 신앙의 내용으로 채우는 데는 실패했다. 그동안 모든 게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보다 이제야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오답이 나오는걸 보니 보다 넓고 높은 차원에서의 깊은 성경적 이해가 필요하구나 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을 다만 빨리지나가고 말아야 하는 곳이며 이곳은 오직 죄악만 가득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오로지 전도의 일 만을 위해서 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오직 전도로만 치닫는 것은 그 열심과 진지함이 옳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럴 때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성경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신앙고백 제정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것과 또한 생명분할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신학적 이론으로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먼저 성경론에 대한 위치를 이해해야 한다. 성경의 정체성은 신앙고백인데 그 때 구속사는 언약사를 중심으로 집행된다는 즉, 성경은 신조, 언약, 통치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해석론은 성경의 연속성과 상이성을 정립하여 3대해석을 구분하고 해석도 지적유희와 즐거움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신앙고백은 역사적 전통성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해석은 상응, 고백, 연속으로 가야 한다.

 

그 다음은 교회론이다. 교회는 신앙의 어머니이다. 교회의 3대 표식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주재권과 임재권이 살아있어야 한다. 구원의 인식은 개인적으로 오지만 홀로 있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반드시 몸으로서의 교회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이 필요한데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는 것이다(고전14:40).

 

개혁운동은 언제나 교회법을 통하여 신앙고백을 확정했다. 그래야 신앙의 질서가 확립된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자의 삶 속에 부여하신 소명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일이다. 즉 교회는 표식, 헌법, 소명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회자로서 이런 성경원리와 배경 위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바라보며 목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처한 공동체에서 따뜻하고 경건하고 부드러운 적용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잘들 하고 계시는데 주제넘은 소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힘든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이게 뭐야!’ 하는 원망이 많다. ‘죽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왜 죽게 하시나?’ 그것은 우리가 진 것이 아니고 망하는 것 같고 죽은 것 같은데 거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을 만들기 위해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이겨야 꼭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야 우리는 아프지만 웃을 수 있다. 웃어야 이기는 것이다. 그것은 실패와 실수로 억울하지 않다는 표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보고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네가 보복할 것 없다. 악을 해결하려고 화 내지 말라는 것이다.

 

시험들지 말고 너는 네 길을 가라는 것이다. “주님, 저 사람은요?” “그 사람은 놔둬라!” 예수께서 들어와야 한다는 말 일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웃는 것은 속임과 가장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를 원망하는 얘기를 많이 하고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합신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부족하고 못난 사람들로 묶어놓으셨다. 그러다보니 죄책감도 때로는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길만 가면된다. 아직도 무슨 모임만 있으면 자꾸 자존심을 살리려고 한다. 거기에다 말도 재미없게 한다. 우리가 철 없을 때에는 정죄하고 분노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고 이제는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중에 누가 능력이 있고 누가 분별이 있겠는가? 때로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억울해 하면서 잘 해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말과 논리는 틀리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웃을 틈이 있어야 한다. 늦게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낮춰서 쓰신다. 그래서 우리는 큰소리치지 못하는 자리에 와있다.

 

우리교단은 큰 일을 하려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교단인지 모르게 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무능해서 좋고 순진해서 좋고 진실해서 좋다. 큰일을 하려고 하지 말자. 교권주의와 권위주의가 싫어서 이렇게 모이지 않았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만 가면 된다.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나라와 민족, 사회가 어려울 때 신앙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 빛이 있어야 한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