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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19:38:37)

 

나, 그대 있음에...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새해에는 모두에게 서로 ‘그대’가 되어 기쁨과 슬픔 함께 나누길 기대해”

 

 

하늘이 캄캄해 지며 진눈개비가 세찬 바람에 날리어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12월 초의 아침입니다. 5년 전 이맘 때 태안 앞바다가 새까만 기름 덩어리로 뒤덮이면서 주민들에게 절망을 안겨다 주었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온 국민들의 성원과 사랑으로 어느 정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평상시와 같은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 온 것 같지만 상흔들의 모습들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5년 전 그 때도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후보들과 많은 정치인들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기름 덮인 태안 앞바다에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이 봉사활동에 참여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하게 멀어져 가는 듯합니다.

 

아무리 큰 사건일지라도 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아닌 사건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당사자 자신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나 슬픔이 되어서 평생 그 일들로 인하여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연말이 되어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그 동안 배려해준 고마움을 한 장의 카드에 정을 담고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몇 년 동안 사군자를 치고 있는데 이번에는 한지에다가 그 동안 학습한 솜씨로 부족하지만 정성을 담고 싶었습니다.

 

카드를 그리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는 중에 그 동안 간직해 둔 오래된 카드를 펼쳐 보게 되었습니다. 빛바랜 상자에는 오래된 카드가 많이 있었습니다. 보내 준 카드에는 남편과 성도들 그리고 많은 지인들과 제자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것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아주 촌스럽고 오래된 카드 한 장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고 말하는데, 그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아빠, 엄마에게 준 카드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철없는 아이가 그냥 무심코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돈되지 않은 글씨로 써진 “자랑스러운 엄마에게”라는 글을 보고 한참 동안 멍해졌습니다.

 

짧은 순간 내 자신을 반추해 보면서 자신에게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으며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고 같이 해 줄 시간이 항상 부족했고, 생활도 어려워서 성장기에 많이 먹이지도 못한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자기 가족을 잘 챙기는 가장이 되었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아들이지만 그 아들들을 생각할 때는 많은 것들을 채워주지 못하고 부족하기만 했던 가난한 그 시절이 늘 생각납니다.

 

자녀를 가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하면서도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깊은 슬픔과 아린마음이 샘솟아 눈물이 됩니다. 자녀들에게는 어머니가 항상 고향이듯이 세월이 지나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을 때도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한결 같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흐린 날씨만큼이나 슬프고 울적한 마음이 가득 찬 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시신을 기증받은 대학병원에서 어머니의 유해 화장과 안치 절차를 알려왔습니다. 2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또 한 번 다시 보내는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시신 기증으로 인하여 어머니를 기억하기위해 갈 곳이 없었던 것을 섧게 여기면서 마음 아파해왔습니다. 2년 전에 장례를 치렀고, 다른 가족들은 외국에 있기도 하지만 남편과 둘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어느 목사님 부부가 오셨습니다.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 요즈음 많이 울적하다고 하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검정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추어 입고 오셨습니다.

 

2년 전에 어머니를 보내면서 슬퍼했던 그 슬픔이 또 한 번 왔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기위해서 그 자리에 함께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부부를 보면서 항상 이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었는데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항상 내 자신만을 생각하며 도시인답게 타산적이면서도 이기적이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중년이 된 아들들에게 어릴 때부터 항상 너희들 곁에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 모든 일을 소신껏 하라고 이야기했던 말들이 생각납니다. 내 아들들에게 그들이 찾는 곳에 가족이 항상 있다고 말했듯이 나로 하여금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모두에게 “그대”가 되고 싶은 바람입니다.

 

거실에 천정을 뚫을 것 같은 행운목이 있었습니다. 키를 조정하기위해서 여러 개로 삽목을 했는데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문득 밖을 내다보다가 그 곳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꽃대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새해에는 모두에게 행운을 주는 행운목의 꽃처럼 모두에게 향기가 되는 “그대”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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