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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알지 않고서 신앙인 될 수 없어”

 

일찍이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께 물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 후회와 절망이 있었다.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답을 하셨다.

 

전설에 의하면 후일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아마 그때서야 베드로는 비로소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사회적 현상을 보나, 그 현상들 밑을 흐르는 사상적 경향을 보나 기독교 신앙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오늘날까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그 멸망의 배후에는 그 나라가 지켜야 할 고귀한 내용과 사상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은 결과로 멸망이 온 것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마침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의 관리인 대통령이 정직하고 청렴하다는 것은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정부 전체의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다.

 

정부가 도덕성과 윤리성을 가져야 되는 것은 법을 시행하기 위함이며, 한 나라가 건강한 분위기를 갖고 범죄에 저촉되거나 도발하는 일을 차단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을 시행하기 위해서 관리는 청렴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책임을 져야한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식상해 있다. 국민들이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선거를 얼마나 공정히 하느냐? 외교관계를 얼마나 잘 하는가보다 더 시급한 것은 국민들이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책임지는 것이다. 정부가 가진 책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정부에 무엇을 바라야 되고 우리가 이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어떤 책임과 안목을 가져야 되는가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 나라에 충성을 해서 훈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와 우리가 소속된 이 국가를 위해 내가 애를 쓰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를 따지지 말고 우리는 이 사회에서 내가 맡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의 신자 된 책임인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정직하게 살지 않고 성실하게 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부패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에 큰 영향은 없다. 조금 속상하고 고달플 뿐이다. 우리는 사회를 개혁하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하여 이 사회 속에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이 교회역사만 하더라도 유명한 신학자나 신앙인의 가치와 내용도 죄 문제였다. 사도 바울도 그의 사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사역의 내용이었다.

 

어거스틴은 5세기에 펠라기우스라는 사람과 신학적인 논쟁을 벌여 기독교 교리를 확립했다. 칼빈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데 남까지 구원해줄 힘이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로마 가톨릭과 교황청이 주장하는 면죄부나 교회나 성직자들로 대행하는 구원을 거부하고 각자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확고히 했다. 20세기 들어와서도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설교의 초점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싸움에 두었다. 신 신학이라 불리는 인본주의 신학을 공격한 사람이다.

 

기독교 신앙인은 그가 어떤 사람이든 공통되게 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왜 오셨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않고서는 신앙인이 될 수 없다. 동시에 이것이 확고하지 않고는 기독교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부쩍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화합내지는 범종교적인 연합 등의 이야기도 옳지 않다. 우리가 배타성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배타적인 성격을 가져서가 아니라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기독신자들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의 신자된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교파는 기독교가 한 사회를 책임지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교단이 있고 또 그런 교단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개인들도 있다.

 

그들이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기독교 자체는 그것을 책임으로 하거나 본질로 하거나 그것을 요구받지 않는다. 기독교 차원에서의 정의 혹은 선, 자비, 은혜, 사랑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도 그것을 한 운동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그 경지에 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 내면에 있는 적을 몰아내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붙들어 매는 싸움으로 가는 것이지 전쟁을 하듯이 벌떡 일어나서 큰 세력과 흐름과 운동으로 한 사회나 한 시대의 분위기를 잡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지나친 감정적 주관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성탄의 기쁨보다 커서는 안 된다.

 

어느 모임에서 성도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들이 교회 걱정보다, 정치걱정을 더 많이 하고 계셔!”하는 소리를 듣고 민망했었다. 어떤 면에서는 신자들보다 우리 목회자가 더 정치에 집착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만이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서있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우리 때문에 오늘도 세상은 지탱이 되고 있고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계속하셔서 아직도 불러내야할 영혼들을 불러내시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논리와 세속적 사고에서 벗어나 비본질적인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맡은 책임을 완수하여 이 시대와 이 나라와 이 사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도록 하는 일을 잘 감당하는 시간들로 채워가야 한다.

 

시대가 변하여도, 권력이 바뀌어도, 기독교 신앙은 진리로서 세계와 국가와 우리의 인생을 밝힐 유일한 등불로 남아있을 것임을 기억하고 오직 주님 나라 완성을 위해서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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