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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하늘의 빛나는 등대가 되어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세상의 무차별 공격 속에서 교회를 존속시켜야 할 책임 느껴야”

 

올 겨울 일찍 찾아온 추위가 신년 첫 날 내린 서설로 멀리 보이는 치악산 정상의 설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새해 들어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공평하게 하시는 것은 세상적 기준이 아닌 영적으로 죄인이라는데 있다. 공짜 점심은 인간은 무슨 일을 하면 다 생색을 내고 자기 공로를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관계는 인간이 깨닫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에 매순간 우리는 고민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매번 우리는 죄책감을 갖게 되고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폴 투르니에는 “현대인들은 자기합리화와 타인의 행위에 대한 비난을 통해 죄책감을 억압하거나 반대로 자기잘못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본질적인 죄성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에라야 진정으로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은혜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오늘 행동에서 오는 죄책감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죄책감으로의 전환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회개와 용서, 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책감에 다 민감하다.

 

정죄, 비난함으로 자기의 죄책감을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결국에는 어느 한두 가지 선행을 해놓고도 ‘나 훌륭한 사람이니까 누구도 건드리지마!’로 가서 자신이 기만당하며 사는 것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죄책감은 무엇을 기준으로 근거를 가지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윤리, 상식, 권력으로 죄책감을 대신하려고 한다. 심지어 못견딜만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은 다 알고계셔!’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옛날 선배 목회자들을 보면, 선비 사상을 가지고 목회를 많이 하셨다. 어떻게 해서라도 비난만은 받지 않으려고 했다. 오해 받는 것도 ‘내가 부덕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목회하면 사람이 항복하는 줄 알았다. 무흠하고 희생만하면 사람이 항복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지금의 시대는 성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목회해도 사람은 항복하지 않는다.

 

이렇듯 언제나 죄책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는 날에는 죽는다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따먹으면 죽는다는 존재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따 먹었느냐, 아니냐만 따지고 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회개와 은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인간이 행동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의 행동의 문제에만 사고가 고립되어 있다.

 

교회도 부흥기에는 숫자로 양적인 성장을 말했다. 그러나 지금같이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할 때 교회는 다시 본질적인 것을 찾아야만 한다. 국가도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성장에 무게를 둘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정신적인 성장의 문제에서 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으로 후퇴할 데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교회란 무엇인가? 목사란 무엇인가? 성도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할 좋은 기회다.

 

이제는 순교하고 각오만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공격을 당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변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죽기까지, 어려워지기까지는 문제에 대한 인식을 거의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역사이다. 인간은 보통 무탈하고 고통만 없으면 다 되는 줄 알고 그냥 놔두라고만 요구한다.

 

편하게 사는 것을 신앙으로 본다. 하다못해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에는 용서란 없지만 진정한 용서는 관계로 하고 인격으로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일찍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다. 그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다. 그런데 그 법을 지키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어느 날 자기가 법적인 사람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로마서 4장으로 와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다시 말하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 시니라’고 진정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실수와 게으른 것과 틀린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그래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끝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 복음의 선언이다.

 

목회자는 일반 성도보다 자질에서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위치에서 조금 나을 뿐이라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 만나면 ‘고생하고 계시네요! 고생하고 있구나!’로 격려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싸우지 말고 속에 뭐가 근사한 것이 들어있는 사람처럼 가만히 등대같이 자기 위치에서 서 있으면 된다. 우리는 욕만 먹지 않으려고 신앙으로 가는 정당한 길을 놓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 힘으로는 항복하지 않는다.

 

‘목사님이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는 있어도 ‘목사님이 얼마나 속상하시면 저럴까?’는 없다.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목사님이 알아서 하셨겠지!’로 가야지, ‘목사님이 그랬단 말이야? 그게 정말이야?’로 가면 안 된다.

 

우리는 어느 날 서로에게 믿음과 기대가 없어진 것을 보게 된다. 성공시대에는 자기가 의도한 것보다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 옛날에는 방법론이 통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아니다. 외롭고 희생당하고 비판을 받는 시대이다. 우리 때는 이렇게 했다는 말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시대다. 지금 이 시대는 막막함과 싸워야 한다. 우겨도, 화를 내도 이유도 모르고 당해야 한다.

 

우리는 세속적 현상이 교회를 공격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비전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의 문제이다. 고민이 있다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하는데 까지는 해야 한다.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의 세속적 공격 앞에 세상이 감당치 못할 위대한 사람으로 교회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교회를 존속시켜야 할 책임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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