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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9:25:19)

지난 겨울은 따뜻했네

 

< 남춘길 권사, 남포교회 >

 

 

“온기 가득한 교우들 사랑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

 

 

창밖은 혹독한 추위로 칼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 겨울은 따뜻했다.

 

지난 가을 갑작스런 암 진단을 받고 수술에 이어, 항암치료를 받느라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나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보내준 넘치는 사랑으로 내 생애 중 가장 따뜻하고 훈훈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주님의 사랑은 표현할 길 없거니와 기도와 격려로, 정성이 깃든 음식으로, 나를 품어준 믿음의 형제들에게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동안 암 진단을 받고 충격과 절망 속에 빠져있는 환우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했고 그들의 병상을 찾아 위로의 시간들을 무수히 가졌었지만 과연 나는 얼마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절실하게 느꼈으며, 그 가족들의 고통과 두려움 앞에 정직했는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내 평범한 일상에 대한 진정한 감사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서둘러 수술을 했고 회복도 순조롭고 빨랐다. 입원 중의 시간들도 놀라운 복된 시간들로 채워졌다. 퇴원 후 2주일의 회복기가 자난 후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항암 치료가 얼마나 힘들고 끔직한 일인지는 가족 중에 암환자가 없어도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주님을 향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을지라도 항암 치료는 무섭고 두려웠다.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구토, 설사, 입속의 헐음, 탈모, 거무스름하게 변하는 피부,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탈진 등등 아무리 단정했던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수 없이 보아온 터였다.

 

“다 지나갈 것이다.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다.”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항암제 복용 후 일주일부터 두려웠던 증상이 왔다. 오래 오래 씹어도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음식들, 이를 악물고 토해내지는 않았지만 먹은 것이 없으니까 등과 배가 딱 달라붙어 누웠다.

 

이렇게 견디어 내기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교회 식구들의 사랑이었다. 친 형제라도, 자식들이라도 이렇게 맛있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계속해서 만들어다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밥이 안 먹힐 때 부드럽게 넘기라고 쑤어다 준 호박죽, 잣죽, 전복죽, 흑임자죽, 야채죽 등은 조금씩 먹을 수가 있었다.

 

질 좋은 고기로 국물을 우려낸 담백한 맑은 국, 구수한 된장 국, 맛갈스런 밑반찬들, 특별한 조리법으로 요리한 생선조림과 구이, 단백질 섭취하라고 만든 닭발볶음, 예술품 같아서 젓가락 대기가 망설여지던 아름다운 색감의 유기농 나물들,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각종 떡, 김장은 물론 시원한 물김치부터 오이소박이, 싱싱한 최상품의 과일들까지도...

 

한 겨울의 추위로 창밖의 나목들은 칙칙하고, 황량한 모습을 담고 있었지만 거실안의 꽃들은 수줍은 듯 우아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쾌유를 빌어주는, 사랑을 가득 실어서 보내준 분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 했다. 햇살 가득한 마음으로 꽃들을 바라보면서 차오르는 영혼의 충만함으로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며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종양내과의 처방이 조종되기도 했지만, 도우미 없이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지극했던 남편의 보살핌, 두 딸의 간절했던 사랑의 기도, 온기 가득했던 교우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암으로 인한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은 내게 진정한 감사와 나눔의 참된 의미를, 사랑의 빚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다. 아픈 이들을 깊게 품고자 하는 성숙의 계절이 복된 길로 다가온 것이다.

 

“암은 앎이다”라고들 말한다. 건강할 때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아픈 몸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삶의 의미, 평범한 일상의 감사, 시간의 가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소중함 등등.

 

귀하고도 소중한 감사함으로 인해 가장 따뜻했던 지난 겨울 날들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새 봄의 초록색 환희를 향해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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