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조회 수 : 3299
2012.05.14 (19:53:48)

엄마의 희생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엄마들은 아기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걸어”

 

봄이 막 지나가며 여름이 시작하는 시기에는 아침마다 어떤 옷을 입을까하고 작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즈음의 어느 오후 진료 시간에 40대 초반 엄마가 2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긴 소매의 옷을 입고 또 넓은 챙의 모자를 쓴 채로 아기를 안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기를 진찰할 때 엄마가 쓰고 있는 모자의 챙이 제 눈을 찌릅니다. 엄마는 깜작 놀라 손을 올려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더 당황했습니다. 엄마의 목 주위와 손목 부위에 얼룩얼룩한 반점이 가득했습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하는데 저는 더 미안했습니다.

 

아기는 정상 발육을 하고 있는 아이로 감기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변명하듯이 자기 병을 이야기해 줍니다. 엄마의 피부 소견은 루프스* 때문에 온 것이었습니다. 루프스는 쉽게 낫는 병은 아니지만 큰 합병증만 안 생긴다면 약으로 잘 조절할 수 있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엄마는 루프스가 잘 조절되고 있었고 또 7세 된 첫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 동안 투약에 반응이 좋아 증상 없이 지내고 있으나 투약은 해야 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큰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엄마가 약을 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 투약을 지속해야 하고, 그 약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어서 아기를 생각하면 투약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빠는 엄마가 우선이라며 임신을 지속하지 말자고 우기고 엄마는 첫아기가 외롭게 자라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둘째가 생긴 것은 복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절대 아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임신 기간 내내 투약을 중지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정상아로 출산되었고 엄마도 큰 위기는 없었습니다. 출산 후 즉시 투약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피부에 미진이 계속 남아 외출할 때 신경을 많이 쓰인다고 말하고 있지만 얼굴은 밝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크게 무안하였습니다. 처음 진료실을 들어 올 때부터 더운 날씨에 긴 옷을 입은 엄마를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또 진찰할 때조차 모자를 쓰고 있으니 조금은 예의가 없구나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즈음은 젊은 사람들에게 남녀를 불문하고 모자는 패션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이나 심지어 예배 시간에도 버젓이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하튼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을 쉽게 판단한 제 가벼움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할 때는 추진력에 힘이 붙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실행함에 있어 자기에게 손해가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더구나 자기의 생명이 걸리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이때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타인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의사(義士)라고 이름까지 부치면서 존경을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기를 위해서라면 망설이지도 않고 자기를 희생하는 엄마들을 쉽게 봅니다. 소아 병동에서 만난 부모들을 돌아보면 아기가 심각한 질환을 앓는 경우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아빠들은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마들은 아기를 위해서라면 상황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번에 만난 엄마처럼 자기 생명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남녀의 정서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역할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엄마는 아기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 루프스(전신 홍반성 낭창)는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라고도 부르며 주로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으로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남.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92 |채석포에서 온 편지| 아름다운 사람들_김영자 사모 (32)
편집부
3162 2012-09-04
591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8>| 아이들만 아는 천국_전정식 장로 (23)
편집부
2458 2012-08-21
590 |치악골의 아침사색| 캄캄한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어... (361)
편집부
8285 2012-08-21
589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영원과 인생의 가치_최에스더 사모 (89)
편집부
3982 2012-07-10
588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7>| 생후 8일의 지혜_전정식 장로 (359)
편집부
9425 2012-07-10
587 |채석포에서 온 편지| 주님! 감사합니다_김영자 사모 (134)
편집부
7163 2012-06-26
Selected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6>| 엄마의 희생_전정식 장로 (19)
편집부
3299 2012-05-14
585 |수필| 제주도는 고사리 축제 중_김혜연 사모
편집부
3685 2012-05-01
584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_최에스더 사모
편집부
3697 2012-05-01
583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5>| 엄마의 힘 _전정식 장로
편집부
2711 2012-05-01
582 |치악골의 아침사색| 지금은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실천할 때 입니다_변세권 목사 (102)
편집부
4229 2012-04-17
581 |수 필| 지난 겨울은 따뜻했네_남춘길 권사
편집부
3065 2012-04-17
580 |채석포에서 온 편지| 제자리 뛰기’와 망신살_김영자 사모
편집부
3343 2012-03-20
579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4>| 아기에게 배우는 진리_전정식 장로
편집부
3121 2012-03-06
578 |들꽃향기처럼| 된장 가족_윤순열 사모
편집부
3251 2012-03-06
577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3>| 아바 아버지_전정식 장로
편집부
3424 2012-02-07
576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2012년 벽두에 생각하는 소망_최에스더 사모 (1)
편집부
3412 2012-01-10
575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2>| 웃는 얼굴_전정식 박사
편집부
3048 2012-01-10
574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그 사랑 어디서 오는지_추둘란 집사
편집부
2958 2011-12-27
573 |치악골의 아침사색| 그래도.. 나는 목사다_변세권 목사 (105)
편집부
4663 2011-12-27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