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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아름다운 사람들_김영자 사모 (32)
편집부
3203 2012-09-04
채석포에서 온 편지아름다운 사람들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오랫동안 기억해 주는 사람들 많이 있기를” 봄부터 가뭄을 비롯하여 여름의 살인적 무더위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더니 연일 비가 내리면서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으며 태풍까지 덮쳤습니다. 이번 태풍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세력으로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뉴스가 시간마다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의 동쪽 하늘에서는 오랜만에 햇살까지 비치고 창 너머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놀 하나 일지 않고 잔잔하며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너무나 조용한 주변의 모습들이 앞으로 닥칠 태풍의 위력을 감지할 수 없기에 정적함이 오히려 사람들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동문가족수련회가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인하여 장소가 변경되기는 했지만 오래 전에 계획된 모임이라 실행하기로 했나 봅니다. 여름휴가도 가지 않은 상황이고 오랜만에 보고 싶은 동문들의 얼굴들을 생각하면서 많이 망설였지만 모임에 갖다 오기로 했습니다. 금년 여름에 태안 지역에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있었고 또 태풍 걱정으로 하룻밤만 같이 보내고 오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2년 전 태풍 곤파스로 말미암아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부러지고 넘어졌기에 많은 피해를 생각하며 거실 유리창에 테이프를 길게 붙여 가며 주변을 단단히 살피기도 했습니다. 많은 동문들이 각 곳에서 모여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도 하면서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나 엊그제 만난 사람들 마냥 금방 허물없이 두 다리를 쭉 뻗기도 하고, 비스듬히 눕기도 하면서 피곤한 눈을 깜박거리며 이야기에 열중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문들이 참 아름답게 보였으며, 그 가운데는 진정한 친구들도 있으니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밤을 하얗게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심한 바람과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온통 마음은 채석포에 있었습니다. 일행들에게는 미만하지만 태풍이 가장 먼저 닫는 곳이 서해안 쪽이라서 아침을 먹고 서둘렀습니다. 방송을 들으니 강풍으로 인하여 서해대교를 통제한다고 했습니다. 내륙으로 심한 바람과 억수같은 비를 뚫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집마다 창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모습에 웃음까지 났습니다. 어떤 집은 조그만 창에 두 줄의 테이프를 길게 붙이기도 하고.... 한 바탕 태풍이 불고 지나간 자리는 소나무 가지가 꺾어지고 외등이 바람에 날아갔으며 창고 문이 떨어져 나가고 여기저기 태풍의 잔해들이 보입니다. 성도들이 걱정되어 집집마다 전화를 해보아도 전화가 불통이고 정전이 되어 온 천지가 깜깜했습니다. 곤파스 때보다는 태풍의 세력이 약한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바닷가에서는 크레인 2대를 이용하여 어선들을 모두 육지에 끌어 올려 메달아 태풍을 예방하기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린 정도는 기본이고 수확할 작물들의 피해가 많았습니다. 가뭄으로 인해서 고추가 다른 해보다 수확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섯 번은 따야 하는 것을 두세 번밖에 못 따고, 논에서는 벼가 다 넘어지고 밭에서는 콩과 깨의 수확을 하나도 못한다고 합니다. 어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가 바람에 넘어져버려서 사용할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정전이 되어 깜깜한 암흑 속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유리창이 덜컹거리고 쏟아지는 빗소리가 촛불과 어우러져 신비함까지 느끼면서 옛 생각들을 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집에 우물이 없어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고, 냉장고가 없는 그 시절에 먹다 남은 보리밥을 바구니에 담아 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둥에 메달아 놓기도 했던 먼 시절을 남편과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새 날이 밝았습니다. 흩어져 있는 주변을 정리하는데 태풍 피해가 없었냐면서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다고 했는데 우리부부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주위에서 걱정해주며 안부를 묻는 지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 목사님 한 분이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여름에 휴가를 같이 가자고 여러 목사님들에게 콜을 받으셨다고 하면서 ‘본인이 은퇴를 해도 지금과 같이 본인을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결혼 할 때 남편에게 “예쁜 여자이기보다는 나이 들어 아름다운 여자로 가꾸어 주기를 바란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태풍이 물러갈 때 쯤 남편친구 목사님에게 “태풍후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또 다른 태풍이 나에게 올지라도 내 스스로 많이 인색했던 안부 전화 한마디가 상대방과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을 믿고,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사람들을 내가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591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8>| 아이들만 아는 천국_전정식 장로 (23)
편집부
2504 2012-08-21
아이들만 아는 천국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욕심으로 더 나은 아버지를 찾아 가지는 않아” 사람들이 나이 들어가며 듣기 좋아하는 말 중에는 “나이보다 젊게 보이십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냥 덕담으로 하는 말을 진담으로 듣고는 “제가 늘 아이들을 만나서 그런 가 봅니다”라고 말하며 기분 좋아합니다. 질병은 나이나 신분 등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래서 의사는 자연스럽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다양한 계층의 부모와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요즈음 특히 달라진 것은 우리나라도 다문화 가정이 많아져 다민족 아이들과 부모들도 심심치 않게 진료실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다보면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게 갖는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때로는 진찰받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예방접종과 같은 주사가 무서워 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상황이 멋쩍어서 부모가 아이를 야단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지나쳐 손찌검을 하는 경우도 있어 민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울거나 악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은 부모 손에 이끌리어 순종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한 살이 되면 벌써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인 기쁨, 호기심, 무서움, 노여움, 시기심 등을 모두 갖게 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인간의 학문과 사회를 본격적으로 알기 이전인 유아시기에 이미 어느 정도 사리를 분별하며 또 비교를 할 줄 알게 됩니다. 요즈음 방송 매체에서나 주위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양육되고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속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주어진 환경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여하튼 부모를 부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대상이며 또 항상 자기를 지켜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부모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가정과 사회는 철저히 아버지 중심이며 아이들이 좋은 아버지에 대한 탐심으로 더 나은 아버지를 찾아 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귀여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천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품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저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도덕적이거나 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천국은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천국은 천국 백성만이 갖는 특성이 있는데 그 것을 아이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특성 중 하나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중 처음 4개의 계명이 아버지에 관한 것으로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쉽게 지켜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천국의 비밀이 아이들에게는 미리 알려져 있나봅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는 아마도 부모가 없는 아이일 것입니다. 그래서 천애고아라는 말은 참으로 박복한 아이에 대한 표현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슬프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사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복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따라서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고아에게 아버지를 찾아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590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캄캄한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어... (361)
편집부
8326 2012-08-21
캄캄한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어...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참된 기독교는 명분적 윤리에서 벗어나 이해와 용서와 사랑 실천해야” 지난여름은 너무나도 무덥고 흥분되는 시간들로 가득 찼다. 폭염과 열대야에 지칠 때면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의 시구를 떠올리며 ‘농사에 제격이다’를 생각했고, 더위에 힘들어 지칠 때면 런던의 승전보와 함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보다’를 읊조렸다. 분노에 찬 기습폭우로 벌써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꿈같았던 어느 여름날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이렇듯 자연에 질서가 있고 법칙이 있는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작금 우리사회와 나라, 교회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복음은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 백성을 위한 것임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더 들게 된다. 죄는 우리를 갈기갈기 찢고 분리시키며 고립된 상태로 만들지만, 복음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하나 되게 하며 공동체에 속하게 한다. 성경이 지향하는 신앙생활은 개인적 차원을 상당히 내포하지만 고립된 개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인의 주변에는 항상 가족, 종족, 나라 곧 교회가 있다. 유진 피터슨의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조금 요약해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동시에 동산에 홀로 있는 경우가 아니라,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가운데 있을 때, 계시되고 체험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 ‘모든 계시가 그러하다. 복음은 우리를 공동체로 이끄는 것이다. 사생활 주의와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성향은 복음을 왜곡하고 곡해하는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에 주목하는 것은 언제나 공동체적 행위이지 사적인 행습이 아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신앙생활의 맥락인 것이다.’ 사랑은 역시 고립된 채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타인과 동떨어질 때 자만심으로 변한다. 따라서 은혜는 홀로 받을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단절될 경우 그것은 탐욕으로 변한다. 그리고 소망은 외로이 자랄 수 없다. 공동체로부터 떨어질 경우 그것은 공상의 씨앗을 뿌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은사, 그 어떤 미덕도 신앙공동체를 떠나서는 건강하게 개발되고 유지될 수 없다.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말은 거만한 교권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상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적인 상식이다. 이것을 무시한 채 살려는 사람은 평생 메마르고 빈곤한 삶을 면할 수가 없게 된다. 이 원칙에 승복하는 자는 풍성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날마다 우리에게 강요되는 이기적인 사생활을 희생하면 몸된 삶이 지향하는바 진정한 신앙성숙을 백배나 날마다 보상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은밀한 개인주의적인 믿음이라는 따분한 순례자와 굳이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한결같이 우리의 개인주의와 사생활주의에 도전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같이 하지 말라. 짊을 서로 지라는 등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완전한 자기를 추구하는 경향들이 있다. 목회자는 신자들에게 말 잘 듣는 병사가 되기를 요구한다. 신자는 무슨 일이 있으면 자연인의 본성에 따라 혼자 기도원을 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기독교를 윤리 위에 놓고 출발했다. 신앙의 핵심이 명분적 윤리로 갔다. 그래서 사실은 율법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그 후유증으로 후세대들이 아무리 성경을 봐도 그게 아닌데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신앙을 정성과 치성으로 만들어갔다. 신앙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윤리도 잘 지키지 못하면서 누구를 정죄하고 비판하기에 바빴다. 결국 기독교를 윤리, 도덕, 법으로만 가지고 가서 정직만을 강요했다. 윤리, 도덕, 법은 하나님이 도덕적 성품을 가지셨다는 뜻이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다. 정직과 윤리, 법 위에 이해와 용서와 사랑이 인격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법을 관계로만 붙잡지 말고 풍성하게 드러내는데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선배들이 신앙을 사명으로만 바라봤다면 이제 우리는 신앙을 삶으로 가져가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성경이 무엇이 말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내가 만난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될 줄로 믿는다. 어느 날, 훌륭해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임무, 교훈이 아니라 한 사람을 키워나가는 훈련소다. 교회가 윤리적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명령법이 많았다. 지상의 교회는 진짜 교회인지, 가짜교회인지 모른다. 교회는 이래야만 된다고 하는 것이 없는데 부흥해야 한다,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교회에는 시행착오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시기 때문에 어느 한두 가지를 가지고 속단하거나 분을 내어서는 안 된다. 박영선 목사님은, “영성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사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종교성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자기가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언제나 사고를 치게 되어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골짜기, 어두움 속에서 오늘도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나 기다리며 믿음을 가지고 화내지 말고 자폭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안 되어도 좋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잘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래야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약에 일이 잘 되면 “어, 이것 봐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서 있는 그 장소와 위치에서 캄캄한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맡은 직분과 공동체와 지역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어디서나 통하는 그리스도인의 부름인 것이다.
589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영원과 인생의 가치_최에스더 사모 (89)
편집부
4028 2012-07-10
영원과 인생의 가치 < 최에스더 사모 · 남서울평촌교회 > “이성으로 영원한 천국 이해할 수 없어 믿고 사는 것에 가치 두어야” 예닐곱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천국에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을 주일하교에서 배웠다.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천국에서 서로 미워하지 않고 슬픈 일도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아빠, 엄마가 늙지 않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고, 할머니와 엄마가 서로 미워하지도 싸우지도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매일매일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며 내 친구들과 즐겁게 놀기만 하다니, 공부 같은 건 하지도 않고. 이 얼마나 환상적인 곳인가!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방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이 공상에 빠졌다. 얼마나 좋을지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천국에는 내 방도 하나 있겠지? 완벽하게 꾸며진 공주방에서 공주처럼 꾸미고 매일매일 놀고먹는 상상을 하며 실실 웃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영원하다고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영원이라는 것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속 따라가 보다가 나는 마침내 공포에 사로잡혔다. 죽지 않고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곧 끝이 없다는 것인데, 나는 이 사실에 저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세상에! 끝이 없다니! 기가 막혔다. 아, 아무리 좋아도 끝이 없다는 건 정말 엽기였다. 이 생각을 몇 번이고 골똘히 할 때마다 공포가 몰려와 두 눈을 감고 머리를 가로젓다가 나보다 나이가 일곱 살이 많은 큰오빠에게 물었다. 천국에서는 정말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곳이냐고.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차라리 끝이 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지 영원한 것은 싫다고 했다.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싫으냐고 물어왔다. 그래도 싫다고 했다. 다행히 나의 의문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교회와 복음에 대하여 거부감이나 의심이 들지는 않았다. 나중에 교회에서 더 배운 바로는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 갇혀있는 존재들이라 이것을 벗어나게 되는 내세, 곧 천국에서의 삶을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3차원에 갇혀있는 우리로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나는 비로소 천국에 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다는 게 뭘까. 이건 고민 안 하기로 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신실하심에 믿음이 갔다. 돌아보면 언제나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벗어난 내가 비로소 알게 되는 그 순간 역시 감격하며 감탄하며 감사를 드릴 또 다른 차원의 세상, 곧 천국에 믿음이 가고 의심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시간과 공간에 갇힌 존재로서 타락한 창조세계에서 죄인의 한계를 지니고서 어떻게 높으신 하나님을 이해하며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우선 나는 철저하게 갇히고자한다. 시간 안에, 공간 속에 모르는 채로, 할 수 없는 채로, 아픈 채로, 병든 채로 그렇게 갇혀 지내려고 한다. 나의 전적 타락과 전적 부패를 인정하고 나는 시간과 공간에 갇힐 수밖에 없어서 미래는 닫혀있고 해답은 가려져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한다. 사도 바울도 희미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내게는 거의 안 보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가리어진 것을 보고자하고 볼 수 있다고 하고 보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고자했던 그 최초의 욕심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과 기도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보이는 것 너머의 뭔가를 조금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는데 이 개안의 사건이 바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궁극의 것으로 오해하지 않겠다. 이것은 그림자요, 맛보기요, 샘플일 뿐. 따라서 내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요, 펼쳐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부단히 말씀을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하는 것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을 창조세계에서 지나간 세대에게 응답하여주신 하나님의 수많은 음성을 말씀을 통해 차근차근 내 것으로 만들어 가리라. 형식적으로 반복되는 예배를 통해 한 때는 술집음악이었다는 찬송가 곡조와 시를 통해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지, 과연 나에게 하는 말씀인지 방향조차 보이지 않는 말씀 앞에서 나는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다. 지루하고 막연하다 해도 그것은 알아먹지 못하게 타락한 내 탓인 것을 잊지 않고 내 안에 이미 와 계신 성령 하나님을 귀하게 모시고 그분과의 동행, 그 자체를 감사하며 이 갇힌 세상에서 더욱 철저히 갇히리라. 사실은 아직도 가끔 천국과 영원을 떠올릴 때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 들기는 하다. 어느 날 내가 예감처럼 벼랑 아래로 밀쳐지는 날, 나는 황망함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비명도 없이 벼랑 아래로 내 몸을 맡기다가 비로소 처음으로 날개를 펴리라. 갇히고 갇혔을 때에 마치 제물과 같이 생명을 버리고 피를 버리고 혈기를 버리고 본능을 버릴 때마다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해 내 어깨에 조용히 자라던 그 날개, 내게 약속된 참된 자유를 보여주던 그 날개를 펴고 마침내 훨훨 날아올라 세상의 꼭대기에서 3차원을 한 번 바라본 후 미련 없이 활강하여 내 주님의 손 위에 순 착륙할 것이다. 천지는 사라지고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고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588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7>| 생후 8일의 지혜_전정식 장로 (359)
편집부
9468 2012-07-10
생후 8일의 지혜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믿음과 이성이 논리적으로 모순될 때 이성보다 믿음이 앞서길” 어느 날 오후 진료 시간에 30대 후반의 엄마가 6일된 신생아를 데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아기가 잘 먹고, 잘 놀고 있는데 체중이 늘지 않고 오히려 태어났을 때 보다 줄었다고 걱정스럽게 호소합니다. 아기는 진찰에서 이상소견이 없었고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합니다. 젊은 세대의 결혼문화가 예전과 달라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고 또 결혼하더라도 늦게 하며 아기도 잘 가지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아기를 갖게 되면, 육아와 교육에 대해 관심이 아주 높고 또 열심히 아기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기의 출생은 의학적으로도 아주 극적입니다. 양수로 차있는 엄마의 태속에서 엄마에 의존하여 호흡하고 살던 태아가 출산 이후에는 대기 속에서 스스로 숨 쉬며 생존해야 합니다. 따라서 출산은 아기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데 아기는 생존을 위하여 빨리 생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최소 안정기간이 7일 정도 걸리며 길게는 한 달까지도 봅니다. 그래서 생후 1개월까지는 아기를 신생아라고 부르며 특별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리적 변화에 따라 아기의 체중은 생후 3일까지는 누구나 줄어듭니다. 그리고 생후 7일 정도에 자기 체중으로 회복되며 작은 아기들은 더 늦게 돌아옵니다. 또한 생후 3일 정도에는 체중이 줄어들 뿐 아니라 몸의 혈액응고 인자가 모자라 사소한 출혈도 지혈이 안 돼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생리변화에 의해 오는 출혈을 신생아출혈성 질환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는데, 요즈음은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모든 신생아에게 태어나자마자 비타민 K 주사를 놓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신생아의 생리적 변화를 설명하였더니 엄마는 크게 안심하고 귀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기 엄마에게 설명을 하는 도중, 성경 속에 나오는 히브리 사람들의 생후 8일에 행하는 할례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의학적으로 보아 신생아에게 행하는 할례(포경수술)는 큰 스트레스입니다. 따라서 꼭 해야 한다면 아기가 생리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시행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 신생아의 할례가 안정기에 들어간 생후 8일에 시행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저에게 매우 신비롭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하던 할례는 사람들의 경험에 따른 위생학적으로 좋은 관습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생후 8일에 행하라고 명령하심(창세기 17:10)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할례를 시행하는 시기는 관습이나 경험에 의해 가장 안전한 시기라고 사람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분명하게 정해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주셨던 명령이지만 지금의 저는 하나님의 큰 배려와 합리성과 논리성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일찍부터 언약의 자녀로 자라게 하기 위하여 가장 빠르고 안전한 시기에 좋은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자는 현대의 세상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 전통적인 주일 성수나 연보 같은 수많은 성경의 말씀 또는 교회의 가르침을 지금의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도 사회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의 신앙생활에서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중에야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되었던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항상 저에게 더 크게 유익했었던 것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렇게 신생아 할례를 통해 하나님은 참으로 지식과 은혜가 충만한 분이신 것을 배우며, 중세기 어떤 신학자가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이성이 논리적으로 모순될 때에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믿겠다는 말에 공감을 갖습니다.
587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주님! 감사합니다_김영자 사모 (134)
편집부
7207 2012-06-26
주님! 감사합니다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이 가뭄에도 쏟아지는 물줄기 만난 것이 출산의 기쁨과 같습니다” 짙은 안개로 시야가 불투명하게 보이는 6월 중순의 이른 아침입니다. 오늘도 아침 방송에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고 많은 곳에서 아직까지 못자리도 못하고 있는 농가에서 이제 식수까지 바닥이 났다는 소식뿐입니다. 채석포 바닷가에서는 지금부터 금어기가 시작되었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며 그물 손질하는 어부들이 눈에 뜨입니다. 가뭄으로 인하여 육지의 식물들이 타들어 가고 지난해에 심었던 작물들의 수확의 결실이 메마를 때 바다라고 가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가 봅니다. 바다 고기들도 먼 바다로 피신을 했는지 채석포에 와서 꽃게 철인 5월에 꽃게를 맛보지 못한 일은 처음인 것을 보니 어지간히 고기가 잡히지 않는가 봅니다. 비가 와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아서 마늘과 양파의 굵기가 아주 작아 결실의 기쁨이 줄었지만 밭에서는 잘 여문 육쪽 마늘을 수확하느라 한창입니다. 마늘 수확 후에 뒷작물로 콩이며 참 깨와 들깨를 파종해야 하는데 아직 씨앗을 심지 못하고 비가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의 논에는 못자리를 하지 못한 곳은 없는데 이웃 동네에서는 아직도 못자리를 하지 못하고 논둑 곳곳에 관정을 하여 물을 찾느라고 바쁩니다. 주일 밤 예배 시간에 권사님의 기도가 내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권사님의 기도 내용은 대충 이러 했습니다. “하나님, 봄 어장을 잘 마치게 해서 감사합니다.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이익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바람이 불고 안개 낀 바다에서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몸 상한 곳 없게 한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색다른 어종이 그물에 걸리면 배에서 내려 미처 옷과 장화를 벗지 않고 목사님에게 생선을 먹이고 싶어 생선이 담긴 그물망을 조심스럽지마는 자랑스럽게 내밀고는 했습니다. 부부가 작은 배를 가지고 열심히 어업에 종사하여 딸 셋을 모두 서울의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시키고 모범적인 신앙생활과 가정생활로 동네에서도 칭찬을 받는 가족입니다. 신앙고백의 기도를 들으면서 믿음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마꼬(키가 작다는 뜻의 별명)가 권사 취임을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33년 전, 서울에서 이웃에 사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사업을 하다 망하여 피폐할 대로 피폐하여 말붙이기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어렵게 그녀를 전도한 다음 날부터 이제껏 열심히 다니는 교회를 잘 섬겼지만 생활이 어려워 식당 주방에서 식기를 닦는 일로 아르바이트를 십 수년하면서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키와 체구가 작아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 그 이름 석 자를 아는 이 별로 없었으나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 청소와 주방 일을 돕고 구역에서 어려운 성도나 병든 노인들을 소문내지 않고 몇 년간 돌본 일들이 많은 성도들에게 입소문으로 전하여진 것 같다고 하면서 내게 조심스럽게 이번 권사 취임을 받게 되었노라고 하면서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말 축하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처음 전도한 그녀가 권사가 된다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주일 날 오후 예배 때 행사가 있어 참석은 못했지만 “친구야, 권사 된 것을 정말 축하해. 하나님의 복이 넘치기를....”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내가 보낸 문자의 진심이 친구에게 전달되었는지 곧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고맙다고... 집에 물이 없어 샘을 파게 되었습니다. 지하수개발업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거창한 장비를 가지고 도착하여 물이 나올만한 곳에 기계를 설치하고 남편이 오래 전에 수맥을 보아 둔 지점에 기계를 설치하고 시끄러운 소음의 시작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순조롭게 30미터, 60미터 깊이로 봉이 들어가고 정오의 시간이 되었지만 물 소식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라고 했더니 기계를 쉴 수 없는 터라 식사를 밖에 나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식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바쁘게 점심을 준비하는데 지하수개발 사장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불안하게 왔다 갔다 했습니다. 집 근처에서는 보통 60미터 정도 땅을 파 내려가면 봉에 물기가 있는 흙이 비친다고 하는데 100미터를 파 내려가도 물 소식이 없으니 사장님은 불안해하면서 이제껏 수고 한 것이 헛것이고 아깝지만 기계를 정리하려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의 결단이 필요 했습니다. 남편은 기름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물이 나올 때까지 파라고 했습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 갈 무렵 시끄러운 기계소리에 남편과 나의 가슴은 타 내려갔습니다. 안절부절못하던 사장님이 조용해졌습니다. 150미터의 봉에서 흙에 물기가 있었다면서 물길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물길이 보였습니다. 기다림과 결단 끝에 지하 150미터 암반수가 터졌습니다. 이 가뭄에도 펑펑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얼마나 감사한 지,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의 기쁨과 이삭과 야곱의 우물이 생각났습니다. 며칠 전 오래 전에 작은 오해로 소식이 끊겼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 친구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면서 많이 아팠었는데 떨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물까지 났습니다. 그 동안 보낸 시간들을 주고받으면서 모든 서운한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한 시간정도의 통화를 끝내고 탈진상태가 되었습니다. 친구와 함께한 추억여행으로 타임머신의 미망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고통은 쉽게 잊히지만 인격이 수모를 당하면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친구가 그리웠나 봅니다.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할 때 권사님의 기도가 아닌 나의 고백으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놀라운 섭리와 은혜에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586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6>| 엄마의 희생_전정식 장로 (19)
편집부
3344 2012-05-14
엄마의 희생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엄마들은 아기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걸어” 봄이 막 지나가며 여름이 시작하는 시기에는 아침마다 어떤 옷을 입을까하고 작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즈음의 어느 오후 진료 시간에 40대 초반 엄마가 2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긴 소매의 옷을 입고 또 넓은 챙의 모자를 쓴 채로 아기를 안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기를 진찰할 때 엄마가 쓰고 있는 모자의 챙이 제 눈을 찌릅니다. 엄마는 깜작 놀라 손을 올려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더 당황했습니다. 엄마의 목 주위와 손목 부위에 얼룩얼룩한 반점이 가득했습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하는데 저는 더 미안했습니다. 아기는 정상 발육을 하고 있는 아이로 감기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변명하듯이 자기 병을 이야기해 줍니다. 엄마의 피부 소견은 루프스* 때문에 온 것이었습니다. 루프스는 쉽게 낫는 병은 아니지만 큰 합병증만 안 생긴다면 약으로 잘 조절할 수 있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엄마는 루프스가 잘 조절되고 있었고 또 7세 된 첫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 동안 투약에 반응이 좋아 증상 없이 지내고 있으나 투약은 해야 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큰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엄마가 약을 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 투약을 지속해야 하고, 그 약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어서 아기를 생각하면 투약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빠는 엄마가 우선이라며 임신을 지속하지 말자고 우기고 엄마는 첫아기가 외롭게 자라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둘째가 생긴 것은 복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절대 아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임신 기간 내내 투약을 중지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정상아로 출산되었고 엄마도 큰 위기는 없었습니다. 출산 후 즉시 투약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피부에 미진이 계속 남아 외출할 때 신경을 많이 쓰인다고 말하고 있지만 얼굴은 밝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크게 무안하였습니다. 처음 진료실을 들어 올 때부터 더운 날씨에 긴 옷을 입은 엄마를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또 진찰할 때조차 모자를 쓰고 있으니 조금은 예의가 없구나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즈음은 젊은 사람들에게 남녀를 불문하고 모자는 패션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이나 심지어 예배 시간에도 버젓이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하튼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을 쉽게 판단한 제 가벼움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할 때는 추진력에 힘이 붙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실행함에 있어 자기에게 손해가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더구나 자기의 생명이 걸리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이때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타인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의사(義士)라고 이름까지 부치면서 존경을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기를 위해서라면 망설이지도 않고 자기를 희생하는 엄마들을 쉽게 봅니다. 소아 병동에서 만난 부모들을 돌아보면 아기가 심각한 질환을 앓는 경우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아빠들은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마들은 아기를 위해서라면 상황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번에 만난 엄마처럼 자기 생명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남녀의 정서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역할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엄마는 아기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 루프스(전신 홍반성 낭창)는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라고도 부르며 주로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으로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남.
585 no image |수필| 제주도는 고사리 축제 중_김혜연 사모
편집부
3730 2012-05-01
제주도는 고사리 축제 중 < 김혜연 사모, 한라산교회 > “고사리 한 개 꺾으면 12개의 형제들을 또 꺾을 수 있어” "사모님, 우리 교회는 고사리 꺾기 대회 안함수꽈?"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가져오는 복, 제주의 고사리 철이 돌아온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 기발한 내용의 공익광고를 보았다. 방자, 심청, 심봉사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기 계발의 균등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재미있지만 사회고발적인 내용의 광고를 보고 남편과 나는 천혜의 자원 제주의 고사리를 생각했다. 고사리를 꺾는 데는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고사리철 두어 달 간은 온 도민에게, 그리고 육지에서 원정 온 사람들에게까지 균등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 내가 꺾으면 내 것이 된다. 그래서 내 고사리 밭은 남편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리나라 남쪽 끝 제주에 4월이 오면 온 도민들이 삼삼오오 들로 산으로 나간다. 제주 벌판에 만발한 노란 유채꽃이나, 한라산 철쭉이나, 가파도 온 섬을 초록빛으로 넘실대게 하는 청보리 때문이 아니다. 말라비틀어진 억새 풀밭이나 키 작은 꽝꽝 나무 밑이나 이름 모를 잡초 속에 머리만 내밀고 숨어 있는 고사리를 꺾기 위해서다. “사모님, 고사리는 열 두형제가 이신디, 하나를 꺾어양, 그라믄 그 자리에 열 두 개가 나불써.” “꺾어서 뭐해요?” “볶아도 묵고, 국에도 넣고, 톳이랑 된장에 무쳐도 묵고 -- 팔기도 허고.”먹을 것 없던 오지 제주에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 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따가운 햇볕을 가려줄 챙이 큰 고사리 모자, 앞주머니가 크게 달려 있는 고사리 앞치마, 뱀이나 해충으로 부터 보호해줄 목이 긴 장화까지 갖추고(이 모든 것을 도내 오일장에서 이만 원이면 구입가능) 한 계절 잘 꺾으면 일 년 연세(제주도는 주택 임대시 전세나, 월세보다 연세로 계약한다)가 빠지니 저소득층에게는 한 해 벌이의 절반은 해결된다. 나머지는 감귤철에 귤 따서 번다. 얼마 전까지 도내 학교 중에는 일주일간 ‘고사리 방학’을 하는 학교도 있었단다. 감귤철의 감귤 방학과 함께 육지 학생들이 부러워 할 만한 것이다. 서툴러 열심히 하면 백만 원 넘게 벌기 때문에 생활비 걱정이 없는 사람들도 짭짤한 부수입이 생겨 좋고, 심심하던 차에 소일거리 생겨 좋고, 고사리 꺾다가 쑥도 뜯어 좋고, 두어 시간 산으로 들로 건강에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교회마다 고사리 꺾기 대회를 한다. 야외예배를 나가서 시간을 정해 놓고 각자 꺾은 고사리 무게를 달아 1등, 2등 -- 상품도 준다. 함께 꺾은 고사리는 모아서 교회 점심 식사 때도 먹고, 팔아서 여전도회 기금으로도 쓴다. 하루에 고사리를 400개만 꺾는다고 해도 400번 허리를 굽혔다 펴는 수고를 해야 한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400번의 수고를 했다면 그 영혼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고사리 한 개를 꺾으면 12개의 형제들을 또 꺾을 수 있다. 한 영혼이 전도되면 그를 따라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까? 그러나 그 한 개의 고사리를 꺾지 않고 놓아두면 금방 쇠져서 먹지 못하게 된다. 마침 우리 한라산교회도 한 사람이 열두 사람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열두 제자 전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해마다 ‘고사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부활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사리철’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584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_최에스더 사모
편집부
3752 2012-05-01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 <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 “우리의 동포를 향해 하나님께서 크신 긍휼 보여주시기를” 서울시 효자동에는 옥인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다. 그 옥인교회 정문에는 작은 무대와 텐트가 두 개 설치돼있고, 붉고 검은 글씨로 여러 장의 구호가 적힌 글들이 나붙어 있어 누가 봐도 농성 중인 어떤 일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일이 교회 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그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오고 갈 때 얼마나 심란하고 불쾌할까,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서 그냥 농성도 아닌 단식 농성을 할까 궁금해지면서 그 일을 보는 우리들 마음까지 두근거리게 되지만, 사실 이 농성은 그 교회를 향한 농성이 아니라 그 교회의 길 건너편 정면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대사관을 향해서 하는 농성이다. 중국 정부는 탈북난민을 강제북송하지 말라는 한국 기독교인의 뜻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저녁 7시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찬양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기도를 한다. 어제 저녁 우리 부부와 자발적으로 같이 가겠다고 나선 교인들과 함께 그 현장을 한 번 찾아가 보았다.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그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낸다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중국정부가 외면하다니 너무하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주여~!’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습관처럼 나왔을 뿐이다. 내 한숨이 기도가 되기를 바라는 이 얼마나 지극히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크리스찬의 모습인가. 그런데 이번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 집회 때, 우리가 부활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고난 받으심을 묵상할 뿐 아니라 지금 우리 교회가 우리 몸에 채워야 할 그리스로의 남은 고난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노숙자 사역, 장애인 사역, 난민 사역을 하는 분들을 모셔서 그들의 증언을 듣고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가운데에서 난민 사역을 소개하러 오신 외국인 난민, 탈북 난민을 돕는 NGO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로부터 이 사연을 듣고 알게 된 것이다. <피난처>의 겉모양은 NGO로 되어있지만 소개되고 알려지기를 원하기는 한국 교회의 헌금으로 지원되고 후원되는 100% 기독교단체였다. 생명의 위협을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난민의 지위를 얻게 되어 본국으로 강제소환 할 수 없다는 국제법의 보호 아래 살 길을 찾아 우리나라까지 온 난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해야하지 않겠냐는 사명과 함께 특별히 우리의 동포 탈북난민들이 중국에서 겪는 갖은 고생, 그들이 강제북송 당한다면 벌어질 일들, G2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이 이런 식으로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마땅히 중국에 요구할 수 있는 일, 이 모든 일들을 바탕으로 통일은 준비될 것이며 그 꿈을 함께 꾸자고 하는 메시지에 우리 교회는 함께 울었고, 함께 기도했다. 그래서 어제 같이 기도하고 싶어서 그 곳을 찾아가본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정말 외로운 곳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고독한 싸움을 하는 곳이었다. 교회 앞을 빌려주고 말없이 서있는 소박한 옥인교회당을 보고 있자니 주일예배를 마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거대한 무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이곳의 극소수와의 극심한 대조 때문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그 곳은 외면 받는 곳이었다. 동정 받지 못하는 곳이었고 ‘저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기를!’ 바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외치는 소리는 마치 꿈을 꾸는 소리 같았고, 그곳에서 갖고 있는 확신은 갖고 싶을 뿐, 이루어질 수 있을까, 믿기가 쉽지 않았다. 자세히 듣고 이해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데 별 관심 없는 한국 교회의 이목을 어떻게 끌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이 드는 바로 그 때 복음이 바로 그렇지, 예수님의 말씀이, 구원의 복된 소식도 얼마나 차갑게 외면 받아 왔던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이렇게 외롭게 외치는 이 소리도 바로 광야의 그 소리가 아닐까 생각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서울시 효자동 중국대사관 건너편 옥인교회 앞에서는 매일 저녁 7시 탈북난민 북송반대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이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도록 함께 가서 부르짖기를 한국 교회에 부탁드린다. 이들이 아파할 때, 주리고 벗었을 때, 매 맞고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혀있을 때 외면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 교회가 힘으로 뭉쳐 덩치를 키워서 우리가 모이기만하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자, 본때를 보여주자, 간담을 서늘하게 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의 동포를 향해 하나님께서 긍휼을 보여주시기를 바라는 그 현장의 사람들이 적어도 외롭지 않도록 한국 교회가 관심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함을 알기에 기도로 싸우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돕자는 것이다.
583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5>| 엄마의 힘 _전정식 장로
편집부
2760 2012-05-01
엄마의 힘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엄마라는 존재는 없는 확률도 만들어 내는 독특한 능력의 소유자” 제가 근무하는 병원이 새롭게 큰 건물을 지은 후, 은퇴를 앞둔 저는 교수실을 전망이 좋은 남쪽 방으로 배정 받았습니다. 따사한 봄날 오후 새 교수실에서 밖을 내다보며 오랜만에 분위기 좋게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온 전화인데 30년 전 제가 담당했던 환자의 가족이 부산에서 인사차 왔습니다. 보통 환자 보호자와의 면담은 외래시간에 하고 있지만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경우라 지체하지 않고 내려갔습니다. 50대 후반 부부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밝은 웃음으로 다가옵니다. 부부의 얼굴을 보니 누군지 금방 생각이 납니다. 오랫동안 많은 환자를 보았기 때문에 환자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때로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다. 제가 80년대 초 처음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고 병원 근무를 시작한 첫날, 경남지역에서 20대 후반의 교사부부가 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기는 난산으로 태어난 아기로 진찰 당시 벌써 뇌성마비아의 비정상 발달 모양을 보이고 있으며 혼자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소견을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종합적인 검토를 한 후 퇴원하는 날 부모에게 조기 재활 물리치료가 아기의 운동발달에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지 열심히 권유하였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희망을 갖도록 열심히 설득했지만 속으로는 과연 아기가 잘 적응할지, 또 부모가 일주일에 2-3회 이상해야 하는 그 어려운 재활 치료를 감당하고 또 경제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치료를 하는 시설이 대도시에만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재활치료를 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안쓰러운 마음을 가진 저에게 엄마는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퇴원했습니다. 이 환자는 교수로 임용되어 처음 진료를 시작하는 날 지방에서 찾아온 첫 환자여서 기억에 나는데, 특히 그 때 엄마의 미소가 허전하게 느껴져 뇌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는 어떤 획기적인 치료를 기대하고 왔었던 것 같은데 희망은 주었으나 너무나 힘든 숙제를 받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엄마와 아빠는 이제 반백의 머리와 이제 노년에 가까운 외모가 되었으나 환한 얼굴로 찾아 왔습니다. 같이 온 청년은 한눈에 봐도 뇌성마비인 것을 알아 볼 수 있지만 혼자서 정상적 보행을 하고 또 언어 소통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청년은 대학에서 복지학과을 다니고 있는데 내년이면 졸업을 합니다. 그리고 복지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보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저는 너무 깜작 놀랐습니다. 더구나 그 청년의 성품이 너무 밝아서 기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그 때 재활치료가 운동발달을 정상처럼 가져갈 수 있다는 제 이야기에 큰 희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절망하지 않도록 격려해 주어서 이 자리에 왔다고 고마워하며 꼭 한번 아들을 보여주고 싶어 찾아 왔다고 합니다. 휴게실에 앉아 살아 온 이야기를 하는데, 부부교사인 까닭에 여러 군데 근무지를 옮기느라 재활치료에 갖은 고생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지적장애가 없어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참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여유로운 생활은 못 했으나 아들로 인해 행복하다고 활짝 웃는 얼굴에서 지난 날 제가 기억했던 허전한 미소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환자의 치료계획을 세울 때 객관적인 통계를 신뢰합니다. 또한 그 통계에 근거하여 앞으로의 예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라면 낮은 확률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만난 엄마들을 보면, 엄마는 한 가닥의 가능성만 보여도 그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의사가 아닌 엄마는 아기의 치료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이 번 경우에도 봅니다.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없는 확률도 만들어 내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582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지금은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실천할 때 입니다_변세권 목사 (102)
편집부
4278 2012-04-17
지금은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실천할 때입니다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이해와 명분 아닌 기독교 신앙의 실천 목회 지향하길” 올 들어 사회와 시대 앞에서 교회 지도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목회를 하면서 더 많이 느끼고 깨닫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종교적 형식주의와 기능주의, 어떤 역할주의에만 익숙해지고 신앙을 책임과 실천으로 만들어가는 데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나 학자들은 한국의 사회적 현상에 따라 이해와 명분론으로만 목회의 방향을 잡았다. 말하자면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기독교 신앙의 실천을 대신해왔다. 우리의 신앙을 교리적으로만 대치해 온 것이다. 성경공부를 해도 실천이 없고 그것이 이해로만 되어지다 보니 남을 정죄하고 비판만 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신자의 일생이 구원이라는 큰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다보니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전통적인 구도자의 신앙형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도 멋이 없는 신자가 되고 말았다. 정죄하지 않고 먼저 실천해내는 모습이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한 비밀을 놓치고 살았다. 칼빈의 말처럼 ‘성경적으로 훈련된 지성과 성령으로 조율된 가슴이 없다.’ 신자의 인생이나 우리의 사역에는 특별한 지름길은 없다. 어떤 삶이든지 그 삶 자체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감탄, 신음, 독백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를 필요로 하며 사는 것이 신자의 인생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보기에 전혀 영적이지 않은 실제생활 환경에서 나타나며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다. 각종 사고와 혼란, 즐거운 날과 그렇지 못한 날, 단조로움이나 격변을 모두 무난히 극복하는데 있다. 이렇듯 하나님은 지금도 일상 속에서 숨어서 일하시는데 인간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실제 신앙생활은 막막하다고 봐야 한다. 하다보면 어느 날 되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도 명분이 아니고 진리인데도, 막상 그렇게 살라고 하면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순조롭고 단조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인 우리는 신자들을 무슨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내려는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기능이나 역할, 열심은 좋은 것이지만 인생의 다양성을 떠나 획일성을 낳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각각의 다른 길들을 막아버리게 된다. 이 방식으로만 해야 된다고 큰 소리를 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다 시시하게 보이게 된다. 우리는 어떤 이상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인격에 항복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세상의 풍조에 밀리면 인간이 인격적 존재라는 것이 밀려나게 된다. 순수함, 진실, 간절함 등 모호한 개념으로 인간을 이상화만 시키면 안 된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랑하자’라는 것도 거창한 구호로만 되지 않는다. 이렇듯 실천이 없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명분에는 항상 인격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만날 때 전인격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내 말을 이해해주고 편하게 들어주는, 내 편이 있다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힘으로 또 하루를 버티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내 편, 네 편만 있고 원칙과 정의만 있게 되면 율법주의적 냉혹함만 남게 된다. 인격이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진정한 인격자지만, 인격이 법아래 있으면 비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법과 정의 앞에 인간성이 많이 상실된 세상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법과 논리 보다 크신 분이시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의 신앙은 누가 물어볼 때 정답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남을 비판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바꾸고 우리의 삶의 모든 모습들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박영선 목사의 말처럼 ‘우리는 고통당하면 위인이고, 죽으면 순교다. 어려움과 고통이 우리의 명예가 되어야 한다’는 실천적 대안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어떤 목회환경 가운데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실천해 내는 우리의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 공동체 안에서 훈련시킨 신앙인들이 그들의 신앙고백과 그들의 삶을 통하여 책임 있는 신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581 no image |수 필| 지난 겨울은 따뜻했네_남춘길 권사
편집부
3109 2012-04-17
지난 겨울은 따뜻했네 < 남춘길 권사, 남포교회 > “온기 가득한 교우들 사랑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 창밖은 혹독한 추위로 칼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 겨울은 따뜻했다. 지난 가을 갑작스런 암 진단을 받고 수술에 이어, 항암치료를 받느라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나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보내준 넘치는 사랑으로 내 생애 중 가장 따뜻하고 훈훈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주님의 사랑은 표현할 길 없거니와 기도와 격려로, 정성이 깃든 음식으로, 나를 품어준 믿음의 형제들에게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동안 암 진단을 받고 충격과 절망 속에 빠져있는 환우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했고 그들의 병상을 찾아 위로의 시간들을 무수히 가졌었지만 과연 나는 얼마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절실하게 느꼈으며, 그 가족들의 고통과 두려움 앞에 정직했는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내 평범한 일상에 대한 진정한 감사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서둘러 수술을 했고 회복도 순조롭고 빨랐다. 입원 중의 시간들도 놀라운 복된 시간들로 채워졌다. 퇴원 후 2주일의 회복기가 자난 후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항암 치료가 얼마나 힘들고 끔직한 일인지는 가족 중에 암환자가 없어도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주님을 향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을지라도 항암 치료는 무섭고 두려웠다.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구토, 설사, 입속의 헐음, 탈모, 거무스름하게 변하는 피부,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탈진 등등 아무리 단정했던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수 없이 보아온 터였다. “다 지나갈 것이다.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다.”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항암제 복용 후 일주일부터 두려웠던 증상이 왔다. 오래 오래 씹어도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음식들, 이를 악물고 토해내지는 않았지만 먹은 것이 없으니까 등과 배가 딱 달라붙어 누웠다. 이렇게 견디어 내기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교회 식구들의 사랑이었다. 친 형제라도, 자식들이라도 이렇게 맛있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계속해서 만들어다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밥이 안 먹힐 때 부드럽게 넘기라고 쑤어다 준 호박죽, 잣죽, 전복죽, 흑임자죽, 야채죽 등은 조금씩 먹을 수가 있었다. 질 좋은 고기로 국물을 우려낸 담백한 맑은 국, 구수한 된장 국, 맛갈스런 밑반찬들, 특별한 조리법으로 요리한 생선조림과 구이, 단백질 섭취하라고 만든 닭발볶음, 예술품 같아서 젓가락 대기가 망설여지던 아름다운 색감의 유기농 나물들,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각종 떡, 김장은 물론 시원한 물김치부터 오이소박이, 싱싱한 최상품의 과일들까지도... 한 겨울의 추위로 창밖의 나목들은 칙칙하고, 황량한 모습을 담고 있었지만 거실안의 꽃들은 수줍은 듯 우아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쾌유를 빌어주는, 사랑을 가득 실어서 보내준 분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 했다. 햇살 가득한 마음으로 꽃들을 바라보면서 차오르는 영혼의 충만함으로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며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종양내과의 처방이 조종되기도 했지만, 도우미 없이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지극했던 남편의 보살핌, 두 딸의 간절했던 사랑의 기도, 온기 가득했던 교우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암으로 인한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은 내게 진정한 감사와 나눔의 참된 의미를, 사랑의 빚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다. 아픈 이들을 깊게 품고자 하는 성숙의 계절이 복된 길로 다가온 것이다. “암은 앎이다”라고들 말한다. 건강할 때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아픈 몸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삶의 의미, 평범한 일상의 감사, 시간의 가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소중함 등등. 귀하고도 소중한 감사함으로 인해 가장 따뜻했던 지난 겨울 날들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새 봄의 초록색 환희를 향해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580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제자리 뛰기’와 망신살_김영자 사모
편집부
3390 2012-03-20
‘제자리 뛰기’와 망신살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가슴만 내밀고 달리는 모습이 마치 제자리 뛰기하는 것 같아” 작년 가을에 노회대항 체육대회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가끔씩 우리 부부는 웃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항상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본인들이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면서 착각의 세월들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내 남편을 나이보다는 조금 젊게 보아주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가끔씩은 마누라인 내가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본인 자신이 항상 청춘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남편은 대학교 때 핸드볼 선수로 전국체전에 나간 것과 골키퍼의 경력으로 모든 운동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젊은 날 목회하기 전 교직에 있었을 때 운동회 때마다 바람처럼 날라다녔던 시절에 학부형으로 온 동네 처녀들에게 인기가 짱이었던 것들을 추억 삼고, 또 같은 또래의 동료들보다 조금 젊게 보인다고 말하는 말을 그 이상으로 믿는 남편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운동신경이 예민하고 빨라서 축구면 축구, 달리기면 달리기, 모든 운동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제 60이 넘었다고 그 누구도 같은 팀에 넣어 주려고도 않을 뿐더러 반가와 하지도 않으며 남편도 주제를 파악하여 응원팀에서 응원만 하려고 합니다. 대학 때 선수로 활동했던 남편은 단체 경기에서 팀원들의 팀웍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구성된 선수들이 각자 개인기를 뽐내며 각자의 성격대로 경기에 임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체육대회 날에 선수로 나가지는 않지만 흩어져있는 동문들과 목사님들을 만나기 위해 천안 종합경기장에 갔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고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여기저기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며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든 경기가 거의 마무리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릴레이가 있었는데, 사모 1명과 목사님들은 나이별로 선수가 뽑혔습니다. 그곳에 참여한 목사님과 사모님들은 운동장에 원을 그리면서 빙 둘러앉았습니다. 곳곳에서 운동복을 입고 준비운동을 하는데 60대의 선수로 남편이 선수로 뛰게 되었습니다. 충남노회에서는 60대에 뛸 만한 분이 없고 그래도 조금 팔팔하다고 생각이 들어 그 자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체육대회가 있는 전 날까지 비닐 하우스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짓느라고 모든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고 약간 틀어진 다리까지 절룩였는데 겉옷을 벗고 한 쪽에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친한 친구 목사님이 걱정을 하며 “최 목사, 무리하지 마! 연예인 누구도 연예인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어” 하면서 말렸습니다. 남편은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과거의 자기 몸만 믿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충남노회가 선두에 있었고 그리고 남편이 바통을 받고 달리는 순간 응원을 하던 나는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습니다. 1등에서 2등, 그리고 뒤로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회 때 보면 달리기 못하는 아이들이 가슴만 내밀고 종종 걸음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했었는데 남편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남편을 건강하고 운동에는 만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노회 목사님들이 여기저기서 “최 목사, 다 되었네!” 하면서 웃는데 그 소리를 옆에서 듣는 나를 민망하게 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겨우 예선에 들어서 또 그 모습으로 결승에 나갔는데 결승에는 그 모습이 더 심한데다가 맨 마지막 한바퀴 반을 60대에게 돌렸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일이었지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편은 바통을 터치하는 순간에 다른 선수가 부딪혀서 달리지 못했다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것으로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폐회 전에 행운의 추첨시간이 되었을 때 비록 경기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추첨을 통해 마지막 행운이라도 올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참석자 모두 숨을 죽이고 번호에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상품의 단가가 조금씩 올라갈수록 추첨 번호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내 손에 들려진 번호가 불려졌습니다. 상품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가니 짓궂은 목사님들이 “마누라 덕분에 산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격려 아닌 격려를 했습니다. 그렇게 체육대회 날 하루가 우리를 즐겁게 했지만 남편은 못 내 아쉬워하면서 세월을, 그리고 나이는 어쩔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가끔씩 태권도 포즈를 취하며 자기가 건강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지난 체육대회 릴레이를 생각하며 “제자리 뛰기~~!” 하면 이내 올렸던 다리를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 일을 생각하면서 우리 둘은 서로 웃는 것으로 마감합니다. 달리기 라이벌인 신종호 목사님을 이기고 달리기에서 은퇴를 하겠다고 농담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나게 합니다. 추첨되어서 받은 담요로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면서 또 우리를 즐겁게 하는 체육대회를 기다려봅니다.
579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4>| 아기에게 배우는 진리_전정식 장로
편집부
3176 2012-03-06
아기에게 배우는 진리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하나님께서 주신 행동발달 능력은 영아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소아과 외래진료는 토요일이 바쁩니다. 쉬는 토요일에 맞추어 엄마 아빠들이 아기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어느 토요일 진료 시간에 한 아빠가 2 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기는 아빠가 나이 35세에 결혼하고 4년 만에 얻은 아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아기가 좋은지 진찰하는 내내 아기를 안고 달래고 하며 아기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고 웃는 얼굴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기의 예방접종을 위해 왔는데, 아기가 벌써 자기 힘으로 선다고 자랑이 대단합니다. 아기의 발달 상황을 진찰해 보았더니 아기는 생후 2개월에 보이는 정상적인 발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2개월에 자기 힘으로 서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2개월 된 아기를 세워서 발을 땅에 닿게 하면 아기가 다리에 힘을 주어서 마치 스스로 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현상을 의학적 표현으로 원시반사 중 “하지의 지지반사”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원시반사는 6개월 이하의 영아에서만 나타납니다. 아기를 길러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2개월 이하의 아기들은 아무거나 입에 물리면 무조건 열심히 빨아댑니다. 아기가 원시반사에 의해 빠는 것입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면 입에 넣어 준다고 다 빨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빨고 싶을 때에만 빱니다. 아기에게 나타나는 원시반사는 커서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행동과 비슷한 모양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 모양이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에 진료실에서 만난 아빠처럼 사람들이 원시반사 모양과 자발적 행동 모양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기에게 나타나는 원시반사 모양은 때로는 인체의 신비로 여겨져 아기가 갖는 잠재된 초능력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방송사에서 그런 개념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을 본 기억도 납니다. 이런 원시반사는 모두 자기가 의지를 가지고 자발적 행동을 하는 시기가 되면 그 행동과 관련된 모든 원시반사와 함께 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원시반사는 어느 아기에게나 다 똑같이 나타나며 또 일정시기에만 있다가 없어지는 매우 과학적인 현상을 보입니다. 이런 오묘한 사람의 발달과정을 생각하면 그렇게 만든 분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학적인 근거로 소아과의사는 진찰을 통해 아기가 몇 개월 수준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또 아기들의 행동이 원시반사인지 자발적인 행동인지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아기의 원시반사를 또 잘 들여다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행동에 관한 것과만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식물 섭취를 위한 빨기, 두발로 지탱하고 서기, 그리고 물건 잡기, 균형 잡기 등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귀중한 행동발달이 훈련이나 가르침으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꼭 있어야 할 행동발달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지며 습득하기 위하여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연습한다고 더 잘 하는 것도 아님으로 참 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이는 햇빛과 비를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신다는 말씀이 꼭 들어맞는 말씀인 것을 아기가 커가는 모습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도 늦추고 아기도 잘 안 가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기를 갖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아기를 짐처럼 생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만난 늦은 나이의 아빠도 결혼 전에 그러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현재 아기에 대해서 행복해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아기를 갖기 전에는 아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아 아기가 짐처럼 생각되지만, 아기를 만난 후에는 아기가 부모에게 주는 행복이 작지 않음을 우리 믿음의 후배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578 no image |들꽃향기처럼| 된장 가족_윤순열 사모
편집부
3292 2012-03-06
된장 가족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구제 시장에서 값싸게 명품 구입하는 것도 일상 행복 중 하나” 저는 항상 아기자기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에 장식품이라던가 화분을 놓아야 마음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패션에도 유난히 관심이 많습니다. 비록 제 몸매가 받쳐주지 못해도 언제나 최선의 신경을 씁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최대한 예쁜 스타일로 꾸며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로서 아름답고 우아하게 살아가기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는 것처럼 힘이 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감을 끊어다가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양재를 배운 적은 없습니다. 저의 옷 만드는 기술은 저만의 특유의 기법일 뿐입니다. 우선 헌옷을 뜯어서 분해합니다. 아이 옷을 만들 때는 아이 옷이 본이고, 제 옷을 만들 때는 제 옷이 본입니다. 그 본을 따라서 재단을 한 후 유행에 따라 바지 통을 넓혔다 줄였다 하거나 옷 길이를 짧게 했다 길게 했다 하면서 옷을 만들면 멋진 스타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딸을 키울 때는 공주처럼 예쁘게 꾸미면서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로 살면서 터득한 저만의 지혜입니다. 백화점에 가서는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스타일이 예쁜가 하고 유행을 살피기도 하면서 멋진 옷이 있으면 스케치를 하면서 저만의 디자인을 구상하며 아이쇼핑을 맘껏 즐기고 오는 것입니다. 집안 장식품도 모두 손수 만들었습니다. 커튼은 아이보리색 면실을 한 타래 사다가 한 가지 뜨는데 한 달씩 걸려 뜨개질해서 거실 커튼, 주방 작은 창 커튼, 다용도실 출입문 커튼, 식탁보 거실 탁자보 등을 덮어놓으니 유행도 타지 않고 멋진 장식이 되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유행에 뒤지지 않는 우리 집을 보고 오시는 분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침실 역시 최대한 로맨틱하게 꾸며놓고 싶어서 커튼은 아이보리 톤의 기계수를 놓은 망사 커튼으로 만들었습니다. 낡은 이불을 화려한 침대 이불로 교체하려니 너무 고가여서 낡은 이불 위에 작은 꽃무늬의 퀼트 천을 끊어다가 씌워놓으니 근사한 침실로 바뀌었습니다. 화장지 커버는 못쓰게 된 퀼트가방을 잘라서 원판을 만든 후, 가장자리 레이스 장식은 딸아이가 버리려고 내놓은 블라우스 레이스를 잘라서 사용하니 너무도 멋진 장식으로 바뀌어 방마다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니 썰렁한 분위기의 집안이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어 훨씬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별로 비싸지 않은 퀼트 천을 끊어다가 꽃무늬로 된 붉은 색, 초록색, 아이보리색 3가지를 섞어서 작은 트리를 만든 후 그 속에 솜을 집어넣고 팽팽하게 한 후 끝에는 금방울을 달아 크고 작게 만들어 놓으니 너무도 멋진 나만의 트리 장식이 되었습니다. 방마다 달린 문에는 길고 부드러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둥글게 원을 만든 후 가에는 예쁜 장식 꽃을 달아 멋지게 만들어 달아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대문 시장을 단골처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시장을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곳에 허름한 옷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는 큰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허름한 옷들 사이로 윤기가 나고 럭셔리해 보이는 옷들이 사이사이에 보였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옷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상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닥스, 버버리, 빈폴 등등 말로만 듣던 상표들이 구겨진 옷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은 수입 명품 구제 가게였습니다. 그곳의 역사는 60년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구호물자가 들어오던 것을 이곳에서 판매하던 역사가 오늘날에는 현대인들 기호에 맞는 명품수입 구제 상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멋쟁이들이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서 입고는 유명 백화점에서 사 입었다고 허세를 부리는 곳이라고 상인이 말해 주었습니다. 60년 역사가 있지만 별로 알려 지지 않은 곳인데 그 이유는 사 입은 사람들이 알리지 않고 쉬쉬하면서 자기들만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옷을 고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 콤비, 아이들 리바이스 청바지, 순모스웨터 캐시미어 반코트 등은 최고급 수준이었지만 값은 어마 어마하게 저렴하였습니다.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샀지만 값은 10만원 내외였습니다. 꾸미기 좋아하는 저에게는 아들도 저를 닮아 분수를 모르고 꾸미기 좋아하여 저를 힘들게 하였는데 그야말로 굉장한 발견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우리 가족은 구제명품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딸은 된장 가족이라고 놀려댑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하며 행복합니다. 비록 유행이 지나 버리고 남이 입다 버린 옷들이지만 저는 딸과 함께 이곳에서 쇼핑을 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 나라가 명품 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명품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명품에 아우성입니다. 평생 동안 얇은 지갑과 허덕거리며 생활하는 목사의 아내로서 제 손으로 명품을 한 번도 구입해 본적이 없지만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본적은 없습니다. 명품가방 하나에 최하 60만원 내지는 300만원을 호가하는 가방을 들고 옷 하나에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하는 옷을 어떻게 사 입을 수 있을까 저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제가 비록 돈이 많아진다 해도 그런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은 사 입지 않으리라 결심해 봅니다.
577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3>| 아바 아버지_전정식 장로
편집부
3468 2012-02-07
아바 아버지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간절하게 아버지 찾는 아들의 마음 느낄 수 있어” 한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이제는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는 환자의 아빠가 자기는 작은 교회의 부목사라고 하시며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책은 이스라엘에 관한 책이었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그 날로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유대기독인들이 부르는 찬송곡이 들어 있었고, 그 중에서 주기도문 찬송이 눈에 크게 들어 왔습니다. 유대기독인들의 주기도문 곡이 어떠할까 아주 많이 궁금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음악을 전공한 큰며느리에게 부탁하여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부른 노래를 얻었습니다. Malotte의 주기도문 찬송은 우리에게 친숙하며 많은 교회에서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 송영으로 같이 찬송하고 예배를 끝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부르거나 성가대의 찬송을 들을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저는 장엄하고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으며 참 좋은 찬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Malotte의 곡을 들으면 유럽의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당과 그 안에서 부르는 성가대의 장엄한 찬송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유대기독인들의 곡을 처음 듣는 순간 역시 장엄하고 숙연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절하며 간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한다기보다 기도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애절하며 간절한 기도를 생각해보면 저는 예수님 예화 속에 나오는 세리와 바리새의 기도 중 얼굴을 들지 못하는 세리의 기도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세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금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잘 살면서 주님의 제자처럼 살지 못해, 기도할 때마다 늘 떳떳한 마음이 들지 못하는 내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사에 대해 알고 싶어 이스라엘 문화원 박 선생님께 부탁하여 자료를 얻었습니다. 가사는 신약 성경 현대 히브리어 역본(하브리트 헤하다샤 모데르니)의 마태복음 6장 9-13절의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헬라어 원본처럼 가사 속에 서두에서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1, 2인칭 대명사가 많은 가사는 아버지를 대면하고 아뢰는 아들을 연상케 하였으며,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와 기도하는 아들 사이가 가까운 사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마음이 가슴에 느껴졌습니다. 기도하는 아들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를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호칭은 수난 전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아버지를 “아바” 하고 부르는 구절에서 잘 나타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바”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아이나 어른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고 있답니다. 노래는 곡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예로 고전 음악을 듣거나 외국 성악곡을 감상할 때 가사 전달이 잘 안 되더라도 듣는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찬송가는 일반 노래와 다르게 곡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가사를 통해 은혜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송은 노래로 하는 기도라고 하는 말에 저는 크게 동감을 합니다. Malotte 주기도문 찬송을 들을 때나, 또는 부를 때 저는 늘 가슴이 찡합니다. 더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 본 유대기독인들의 주기도문 찬송을 들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동을 배웠습니다. 기도는 높고 존귀하신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보듯이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며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찬송뿐 아니라 주기도문을 할 때는 주문을 외우듯이 습관처럼 건성 건성하지 말고 가사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576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2012년 벽두에 생각하는 소망_최에스더 사모 (1)
편집부
3464 2012-01-10
2012년 벽두에 생각하는 소망 <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 “하나님의 손 잡는 것이 그토록 원하는 빛보다 낫고 가장 안전해” 年의 門(Gate of the Year) -Minnie L. Haskins- 나는 연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말했네. 빛을 주시오. 그래야 내가 미지의 세계로 안전히 걸어 들어갈 수 있소. 그는 대답했네. 어둠에 들어가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오. 그러는 것이 빛보다 나으면 안전할 것이오. 이 시를 쓴 미니 해스킨즈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영국사람인지, 미국사람인지 혹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인데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인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시인이 굉장히 옛날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망해가는 나라인 조선을 사랑했던, 복음을 위해 그들의 삶과 죽음을 바쳤던 한 선교사 가족과 이들과 함께 했던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가슴 벅차게 펼쳐지는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책에 나오는 시로서, 1940년 일제의 탄압으로 이 땅에서 추방되던 선교사 가족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불안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온 가족이 함께 기도처럼 낭송했던 시였다. 그 때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11년 지난 해 말,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된 선교책무라는 책의 한글판 서문에서 이런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1907년 최초의 독노회에서 이기풍 선교사를 제주에 파송하기로 결정한 후 한국 교회를 일제의 참혹한 식민통치하에서도 선교적 사명을 중단하지 않고 충실히 감당했다. 복음을 전해 받은 지 130년도 채 되지 않는 한국교회가 2010년을 기준으로 2만 명에 가까운 선교사들을 해외에 파송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은 명실공히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두 번 째 국가가 되었고, 한국인 선교 지도자들이 세계 여러 선교지, 선교 기관, 선교 훈련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세계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함께 하심이 아니었다면 우리 민족에게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도저히 자신은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던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기드온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색과 궁리 저 너머의 방법으로 이들을 도우시고 큰일을 행하셨던 것처럼 독립은 멀고 먼 것 같았고, 독립을 했어도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갖추고 발전시켜나갈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라는 문을 열어주시고 그 문을 통하여 세계인이 놀라는 큰 복을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지금은 복음을 들고 산을 넘겠다는 자들이 이 민족에게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이 차세대 선교를 책임질 민족으로 떠오르면서 그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킬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한국 교회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볼 때마다 역사를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시계와 지도의 움직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문득문득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원수 마귀도 오래 전부터 교회 안팎으로, 나라 안팎으로, 사람들의 마음 안팎으로 수많은 가라지를 뿌려 놓았나보다.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있더니 급기야는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크고 튼튼하고 풍성하여 그것을 곡식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가 돼버렸다. 무엇이 선인지, 진리인지, 정의인지, 복음인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한 이 때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시계 역시 마지막 때를 향하여 기다려주지 않고 정확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복음은 빠르게 전파되고 세상은 더욱 빠르게 죄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분쇄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선회상」의 마지막 장면이다.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아이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아름답게 수놓은 조선 국기를 꺼냈다. 해주에서의 환송연 때 조선 친구들이 기념품으로 우리에게 준 것이다. 나는 태극기를 펼친 다음 나뭇가지에 걸었다. 우리 가족은 태극기 주위에 모여 섰다. 조선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복을 기원할 때 ‘만세!’를 부른다. 이 말은 ‘1만 년을 사십시오!’라는 뜻이다. 우리 가족 다섯 중 네 명은 모두 조선에서 태어났다. 메리안(아내 선교사)도 생애의 전성기를 조선에 바쳤다. 나는 가족에게 조선의 국기인 태극기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목소리를 높여 ‘만세!’를 외쳤다. 조선의 진정한 국기에게 ‘만세!’를. 그리고 이들은 위의 시를 다함께 낭송하고 이 땅을 떠난다. 이들이 진심으로 외쳐준 만세. 이들이 우리의 같은 마음으로 외쳐준 만세. 이들이 우리가 되어 외쳐준 만세. 이들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로 외쳐준 만세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온 민족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감격으로 외쳤던 ‘대한독립만세’라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 민족과 조국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기도해야한다. 그리고 외쳐야한다.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선포를 저들은 비웃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결코 헛되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2012년 임진년. 흑룡의 해라는 아무 의미도 없고 근거도 없는 것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사는 이 목자 잃은 양과 같이 불쌍한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외치자. 어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이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빛보다 낫고 가장 안전하다고.
575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2>| 웃는 얼굴_전정식 박사
편집부
3091 2012-01-10
웃는 얼굴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교회 안에서는 상대를 따지거나, 외모로 구분하는 일 없기를” 오늘은 새로 온 전공의가 첫 근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늘 새로운 시작은 긴장과 함께 희망을 갖게 합니다. 오후 소아병동 회진 시간에 새로 온 닥터 박이 단정한 모습으로 뒤를 따릅니다. 저는 닥터 박의 첫 번째 회진 시간에 아기를 울리지 않고 진찰할 것을 보여줘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병실 첫 환자로 3개월 된 아기를 택하였습니다. 예상한대로 아기는 환한 웃음으로 진찰에 응했습니다. 힐긋 보니 닥터 박의 표정에 존경심과 부러움이 보였습니다. 아기들의 성장, 발달하는 모습을 볼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기들을 한없이 약한 존재로만 보며 아기들의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가 일수입니다. 그런데 아기를 발달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 살 된 아기는 어른이 느끼는 감정을 다 느끼며 또 사회의 구성원이 될 준비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학적 발달의 모습 중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생후 3개월 때 보이는 ‘웃기 반응’ 모습(social smile)입니다. 이때는 아기가 누구를 보든지 무조건 웃습니다. 보이는 사람이 늘 보는 가족이 아니고 낯선 사람일지라도 웃습니다. 그래서 초보의사라도 3개월 된 아기를 울리지 않고 능숙하게 진찰할 수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와서 편한 자세로 커피를 마시며, 거실 창밖에 보이는 산자락을 내다보다가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기가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따지지 않고 웃는 모습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라면, 성인이 돼서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사람을 봐가면서 반기기도하고 외면하기도 하는 모습은 병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자면 때로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도 만나기도 하니까 어떤 사람인지를 잘 따져보고 대하는 것이 어쩌면 합리적일 수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사람 만남이라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상대를 따지지 않고, 외모로 구분하지 않고 오히려 약자이거나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더 큰 관심과 지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아기가 자라며 보이는 첫 번째 사회적 발달의 모습이 사람을 보고 웃는 것이라는 사실이 우연히 얻어지는 보통의 사건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은 창조 때부터 다른 사람을 만나면 웃게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인류의 원죄, 인간의 전적인 타락 등에 관해 들었을 때, 삶 속에서 경험하는 제 속 안의 죄성을 미루어 보아, 사람의 본성이 선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자라며 보이는 사회 발달의 모습 중 가장 처음 얻어지는 아기의 ‘웃기 반응’을 보면 애초에 사람은 선하게 창조되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애초에 선하게 창조되었다면, 삶에서 사람이 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갖고 있는 죄성은 영지주의자 주장처럼 만드신 분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의 잘못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믿음이 갑니다. 그러니 인간을 선하게 만드신 분이 악해진 인간을 보실 때 얼마나 안타까우시며 또 화가 나실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참으로 사람이라는 존재란 하나님 앞에 면목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를 아들이라고 하시며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참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전적인 공감을 느낍니다. 장로이면서도 아직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좋아하는 사람을 더 반겨하고 또 꺼려하는 사람이 있으며 때로는 미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면, 저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고칠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회진에서 만난 3개월 된 아기의 활짝 웃었던 모습은 저에게 가르침도 주고 부끄럼도 주었지만 또 큰 도전을 주기도 했습니다.
574 no image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그 사랑 어디서 오는지_추둘란 집사
편집부
3003 2011-12-27
그 사랑 어디서 오는지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주님은 모든 것 준비해 놓고 구원 이루시는 분” 복지관 프로그램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초긴장입니다. 준비물이 하나라도 빠지면 프로그램 진행에 차질이 생기므로 살피고 또 살핍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물이 확인되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이 깡통인 자가 주님 가라 하는 곳에 순종하여 갑니다. 성령으로 함께 해주세요. 그들의 마음을 알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나 주님이 책임지고 만지시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자동차 시동을 겁니다. 복지관으로 가는 내내, 식물 모종은 싱그러운 이파리를 흔들어대고 모종삽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냅니다. 어르신들께 선물로 드릴 요술풍선 꽃은 비닐과 마찰하면서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냅니다. 그 물건들과 함께 나도, 주님 일하시는 곳에 준비물로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연초에 주님은 디모데전서 4장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속에 있는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말 것, 힘써 행할 것, 내가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 보일 것, 그리하여 나도 구원하고 내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았다고 하여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직접 책임지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환경과 주위 사람들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딱 1년 만에 주님이 나는 원예치료사가 되어 주님과 함께, 몸도 약하고 마음도 약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이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팍팍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자식마저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버거워하고 힘들어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퍼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던 사람이 사랑을, 이해를, 희망을, 복을 나눠주러 다니다니…. 특별히 중증 치매 어르신들을 만나는 날에는 가슴 한구석이 미어집니다. 그분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2010년 겨울, 주님이 친정아버지를 구원하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친정 식구들은 사돈의 8촌까지 불교 신자들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맏아들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책임감으로 조상, 제사, 족보, 명예, 체면을 너무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평소의 아버지라면 복음을 받아들일 분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께 어떻게 할지 여쭈니, 나더러 4영리 책자를 갖고 가서 직접 영접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보다 더 큰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3남매 중에 아버지와 사이가 가장 나빴던 나보고 영접을 하도록 하라니…. 그러나 싫고 좋고를 따질 겨를도 없었고 방법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지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심지어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기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복음을 전하니 아버지는 순진한 아이처럼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급성폐암 말기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영접 기도문을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렸던 한편 강도에 대해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니 “내가 목사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라고 고백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면하신 그 순간에 햇빛 같이 밝은 얼굴을 보여주어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놀라고 신기해하였습니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주님은 나에게 계속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주 뵐 기회도 없고 복음은 더더욱 전할 기회가 없으니 다른 사람이 전도해주려나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도했던 바로 그 딸을 사용하셨습니다. 반대하는 결혼을 고집하여 아버지의 체면을 구긴 딸을, 가문에 없는 장애아를 낳아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한 그 딸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생결단을 하고 기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생각나면 가끔 하는 기도, 때도 모르고 방법도 모르는 막연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 놓으셨고 구원을 행하셨습니다. 친정 아버지는 감기인 줄 알고 주사 한 대 맞으러 병원에 갔다가 그 길로 입원하였고 열흘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바람에,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천국에 계시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곳에서 아이처럼 뛰어논다는 주님의 답변이 없다면, 이 땅에서 아버지와 딸로 살면서 서로를 아프게 했던 회한이 나를 평생토록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그 반대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에 계시다고 생각하면 기쁨이 날마다 샘물처럼 가슴에 고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드리지 못했던 그 사랑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주님은 바로 그 기쁨과 사랑을 지적하시며, 그것 가지고 세상에 나가자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나가서 연약한 영혼들에게 그 기쁨 나눠주자, 그 사랑 나눠주자 하십니다. 이와 같은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한 영광도 주님만이 받으셔야 합니다.
573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그래도.. 나는 목사다_변세권 목사 (105)
편집부
4718 2011-12-27
그래도.. 나는 목사다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말씀만이 답이라는 사실 삶으로 증거해야” 지난 연말 성탄절의 사랑이 빛을 타고 오더니 오늘도 인생을 살면서 해가 바뀌어 또 다른 새해를 은혜로 맞이했다. 새해는 언제나 있었던 날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눈금을 그어주시어 다시 시작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실수했고 잘못 그렸던 그림을 끝내버리고 새 도화지를 받는 것과 같은 일들을 반복하게 하신다.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고민하는 것은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의 분주함만큼이나 하나님과의 영혼의 깊은 고독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마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 해야지 하며 다짐을 하는 것처럼, 올해는 설교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더 제대로 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요즘 자기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가수인 사람은 ‘나는 가수다’라고 하고 꼼수라는 말의 부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나꼼수’라고 하며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세상이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거기에 빗대어 ‘그래도.. 나는 목사다’를 생각하며 나의 목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 확인해보려 한다. 나는 목사다. 설교학적 측면에서만 목사를 생각해보면 최대의 설교는 최대의 인격임을 전제하고서라도 사실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이 가지는 표현은 자기 하나에 국한되지만 잡다한 공동체 속에서는 우리의 신앙이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신자의 삶의 보편성을 설교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한 설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되기도 한다. 목사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사람을 도우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나님도 원망하게 되고 교인도 원망하게 된다. 목사는 목회 외적인 문제에 답을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내적인 충성의 답만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진실하게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만이 목사가 살 길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마땅히 신자들도 어떤 프로그램이나 어떤 희생과 봉사로 자신의 믿음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 영혼을 만나셔서 그 영혼을 간섭하시기 위해서 목사와 그 설교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는 목사라는 똑똑한 한 사람이 하나님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입술에 넣어주는 그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자라야만이 목사로서의 진정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오기까지 목사는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은 때를 만나게 하신다. 어떤 때는 목자적 심령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보이는 증거도, 내적 증거도, 없는 것 같이 한 치 앞을 볼 수없이 불확실한 경우로 인도하신다. 겉으로는 표정이 없을지라도 속으로는 죽게 하시는 방법을 쓰신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갈증이 있다는 또 다른 반증이 된다. 신자들이 세상 앞에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몰라서 고민할 때 목사인 우리는 인간적 배려나 위로에 앞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돌보심의 은혜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 사명과 의무가 있다. 목사는 심리 치료사가 되어서도 안 되고 상담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물론 분위기를 위로하는 자로 사역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먼저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설교도 너무 똑 떨어지게 하려는 유혹을 조심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설교는 우리가 우리의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가 자기가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도 꼭 아니다. 우리가 한 설교를 하나님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결과로 주실지 아무도 모른다. 박영선 목사님은 “설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모델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설교를 어떻게 성경적으로 잘 해야 하는가 할 때에도 성경본문을 잘 해석해서 감동을 주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만큼 하나님의 편을 들면 된다. 하나님 편을 잘 드는 그것이 곧 신자를 위한, 사람 편을 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하는 설교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구원론과 교회론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풍부했으면 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적 구원론이 교회론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화 중심적 설교가 되어 신자가 개인의 구원의 확신을 넘어 하나님이 나를 불러내신 그 존재와 신분과 운명과 그 목표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살게되는 것이다. 성화는 사회적인 문제다. 내면적인 신앙의 원리가 일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와야 신자의 전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믿음은 구원론적 이지만 신자 개인의 삶에 적용할 때는 종교적 사명보다 실천론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로 가야한다. 목사는 영혼의 깊은 갈망을 깨우쳐서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없이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신자에게 있어 믿음은 세상적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과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이끌어 가느냐?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가로 도전을 줘야 한다. 올해에도 공동체 전부를 돌아보되 목회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깊이 돌볼 뿐 아니라, 어디를 가도 말씀만이 답을 주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말씀을 분석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목사의 삶으로 살아내고 그 설교를 감동으로 만들어 내야한다. 그것만이 내가 예수를 믿는데 왜 삶이 고통스럽고 고달픈가 하는 수많은 인생의 원망 앞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설교가 되는 것이다. 이제 목사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많이 가르치고 선포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 성공과 실패에 대한 답과 교만과 겸손에 대한 답을 하며 목사나 신자나 다 하나님 앞에 택함 받고 부름 받은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부름받은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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